또 다른 나에게로 가는 일기
헨리 데이빗 소로우.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최석민 옮김 / 북인 / 2006년 10월
절판


내가 만일 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고, 다만 아내라는 이름을 가진 인형에 불과하여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부질없을 뿐더러 구태여 살고 싶지도 않다. 물론 나는 게으르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게으른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화를 내고 그것을 참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염려하지는 마라! 나는 오늘 참 자유롭고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그는 매우 우울해 보였지만, 나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나는 안다. 그가 훌륭하고, 시적이며, 이지적이고, 또 힘에 가득 차 있음을. 그러나 그가 언제나 모든 사물의 어두운 면만 보는 것이 나를 괴롭힌다. 때때로 나는 그의 어두운 세력권에서 벗어나려고 해보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권태를 느끼게 될 때마다 마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 어디든 갔다 올 작정이다. 때로 내가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갑자기 자유를 느끼곤 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가 걱정하며 나를 찾아다니는 상념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가 그처럼 우울했기 때문에 나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그는 나에게 말조차 건네려고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다시 피아노를 치러 가야겠다. 그는 지금 목욕탕에 들어가 있다. 오늘 그는 마치 낯선 사람과 같다.-톨스토이부인쪽

어제 저녁 남편 일기의 마지막 구절이 전신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최후가 멀지 않았다"는 가냘픈 호소였다. 전신기사와 나만이 있었다. 무슨 다른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전신실로 갔다. 나는 첫눈에 굶주림이 탐험대원들을 살해했음을 알았다. 그것은 버림받은 죽음이라고 생각되었다.
전신기사와는 말을 건네 본 적이 없다. 그는 기록을 마치자 전문을 내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들고 침실로 갔다. 더 이상 전보를 받고 싶지 않다.
영광과 용기가 가득한 전문의 기록은 나에게 위대한 영감을 주었다. "극도로 허약해져 있으면서도 그대는 불굴의 정신으로 목적을 향해 나갈 수 있었다면 좋았으리라"는 부질없는 이야기는 감히 하지 않으리. 나는 그의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유감이 없다.-캐슬린 스콧쪽

건강을 보증한다는 점으로 보더라도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긴밀한 것이라야 하겠다. 사람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우정을 지각하여야만 한다. 우리 친구가 우리를 저버리거나 죽거나 할 때 고독의 심연을 메워주는 것이 자연이다. 나는 아무리 저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자연과 더불어 아무런 부드러운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를 존경할 마음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사랑만이 우리로 하여금 겨울도 따뜻하게 느끼게 해주며 광야와 황무지에서도 우리에게 아늑한 공간을 제공해준다. 만일 자연이 이렇듯 우리를 동정해주고 그 마음을 속삭여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가장 윤택하고 화려한 분야를 상실하게 될 것이요, 말로 할 수 없는 황량함이 우리를 엄습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자연에 대한 애정을 끊고 나서도 사람이 여유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암석의 신비를 눈앞에 보고도 나의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는다면, 대체 암석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이냐? 나는 옥수수나 감자가 어떻게 저 불모의 토지로부터 생산될 수 있느냐를 다루는 화학을 그리 대견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토양에 뿌리박고 있는 인간의 생명으로부터 사상과 감동을 끌어내는 따위의 화학을 존경하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의 마음속에 계절이 들어 있지 않는 한, 계절에 대하여 말을 하거나 쓰거나 하는 것은 헛된 수고일 따름이다.-헨리 소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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