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번, 외부기관에서 도서관 사서에게 강의 요청 문의가 온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기관인데요. 도서관에는 독서 관련 전문가 사서선생님이 계시지요. 우리 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독서방법이나 책 소개 같은 강연을 해주실 분 계실까요?" 그 순간 사서들은 감사하게도 나를 떠올린다.
늦은 나이에 끝낸 대학원 공부가 도움된 걸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원서 수업, 원서를 번역하고 요악한 후 프리젠테이션으로 발표하던 힘겨웠던 시간. 영어사전과 구글에 의지해 졸린 눈 비비며 공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강의 주제는 내 마음대로 '사서의 즐거운 책 읽기' 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책을 재미있게 읽는 법, 책을 꾸준히 읽기 위해 독서동아리 꾸리는 법, 독서동아리 내용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요즘 재미있게 읽은 목록을 소개한다.



얼마전에는 신규 사서를 대상으로 '독서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을 주제로 강의 했다. 도교육청 소속 교육도서관으로서의 방향성, 청소년 중심 독서프로그램 운영, 작가강연회 섭외 방법 등 실제적인 업무 위주로 다루었다.
강의를 시작할 때 수강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진진가 게임으로 나를 소개한다. 사지선다형 중 틀린 답 찾기. 대부분 2번을 고른다.
1번. 나는 어릴 때부터 책벌레였다.
땡! 어릴 때 책을 모르고 자랐다. 독서퀴즈로 자주 인용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자인 빌 게이츠 동네에는 그 당시에 공공도서관이 있. 었. 다. 그러나 빌 게이츠 보다 한참 어린 내가 살던 동네에는 공공도서관이 없었다. 도서관은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하나 둘 늘어났고, 덕분에 수월하게 취업했다. 어릴 때 동네에 만화방은 있었고 언니, 오빠는 자주 들락거렸다. 나는 친구들과 늘 밖에서 놀다 "ㅇㅇ아 저녁 먹어" 하는 엄마 목소리에 집에 들어왔고,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고3 담임샘은 경영학과를 가겠다는 내게, 여자 직업으로서 사서가 좋다고 추천해 주었고 순순히 따랐다. 도서관학과를 전공하면서 독서가 시작 되었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위대한 개츠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을 재미있게 읽었다. 책은 읽어야 되겠다는, 읽고 싶다는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발생할때 시너지가 생긴다.
2번. 나는 커피 지도사 자격증이 있다
몇년전에 도서관 야간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핸드드립 과정'을 이수했다.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성공했다. 오래전 유후인 '카라반' 카페에서 사이폰으로 내려준 커피 맛에 반했다. 그 후 핸드드립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처음부터 끝 맛까지 깔끔해서 좋아한다. 휴일 아침 눈을 뜨면 커피 향이 진동하고, 남편이 직접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꿈을 꾸지만 어림없다. 남편은 다방커피를 더 좋아한다.
3번. 나는 책 보다 TV를 더 좋아한다.
주말에 집에 있는 날은 TV 앞에서 떠날 줄 모른다.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우리들의 블루스'는 본방사수다. 옴니버스로 차승원, 이병헌, 한지민, 김우빈, 신민아, 이정은, 엄정화 등 초호화 캐스팅에 매회 생각할 주제를 던진다. 고등학생 임신, 다운증후군, 장애인, 우정 등으로 몰입도 및 흡입력이 굉장하다. 역시 노희경 작가의 위대함.
오래전에 본 '로맨스는 별책부록'도 내 스타일이다. 남들은 이종석, 이나영 조합이 어색하고 내용도 유치하다고 하지만, 잘 어울리는 커플이고 로코의 진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무대가 출판사인 것도 매력적이다. 사서보다 출판사 직원이 더 멋져 보였다. 어쩌면 나는 출판사 직원이 더 맞았을지도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라는 사명감으로 TV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척한다.
4번. 내 취미는 서평 쓰기다
한 달에 한번 지역신문에 서평 칼럼을 쓴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도교육청에 근무하면서 절필(?) 했다. 칼럼은 우리 교육청 홈페이지에 탑재되어 나를 홍보하는 도구가 된다. 잘 모르는 교장선생님도 신문에서 봤다며 반가워할 때의 기쁨이란. 원고료 한 푼 받지 않는 순수한 봉사지만 나를 성장시킨다.
진진가 게임으로 강의를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내 삶과 책의 연결고리가 된다. 이론적인 강의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수강생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강의를 시작하는 동기부여는 확실히 된다.
강의는 자주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