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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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물속 골리앗>(김애란)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에 수록
 


왓슨 : 홈즈, 한주 내내 비가 어지간히도 오는군. 주말도 꼼짝없이 갇혀버렸어.

 

홈즈 : 오늘(2011.6.26) 태풍 '메아리'도 상륙한다잖아. 북한에서 제출한 이름이라는데..

 

왓슨 : 이름이 심상찮군. 메아리라. 큰 피해없이 지나가야 할텐데.

 

홈즈 : 그러게 말이야. 농부들의 한숨 소리, 침수 지역의 절규가 메아리치지 않기를 바랄뿐이야.

 

왓슨 : 참, 홈즈, 지금 생각해보니 묘하지?

 

홈즈 : 뭐가?

 

왓슨 : 이번주 읽었던 책 말이야.

 

홈즈 : 어디 보자. 그래, 바로 이 책이지. <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왓슨, 근데 뭐가 묘한가? 난 책 값이 반값이라 그게 이상하더구만. 5,500원, 자장면 곱빼기 한 그릇 값이니까 말이야. 이상하다기 보단 깜짝 놀랬어.

 

왓슨 : 하, 자네도 참..싱거운 소리를 다하는 군.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출간 후 1년간은 보급가인 5,500원으로 판매한다잖나. 그건 그렇고. 내가 묘하다는 건 우리가 딱 장마기간에 맞춰 이 작품집을 읽었다는 것이네. 정확히 말하자면 대상 수상작인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이 그렇다는 말이고.

 

홈즈 : 음, 하기야 <물속 골리앗>을 한 겨울에 읽었다면 그 독특한 감각적 묘사들을 싱거워졌겠지.

 

왓슨 : <물속 골리앗>이 시기를 딱 맞춰 우리에겐 온 이유가 있을거야.

 

홈즈 : 그래, 출판사에서 딱 장마기간을 겨냥해 출간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자네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왓슨 : 그럴거야, 홈즈. 그럼 슬슬 <물속 골리앗>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 볼까?

 

홈즈 : 잠깐만,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나는군. 자네도 마실텐가? 

 

왓슨 : 좋아, 홈즈. 블랙으로 부탁하네. 레이저 빔처럼 쏟아지는 창 밖의 저 빗줄기를 보면서 자네 이야길 듣고 싶네.

 

홈즈 : 아무튼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날씨가 무대를 멋지게 꾸며주는군. <물속 골리앗>의 소년도 장마가 시작되는 며칠 동안은 '먼지 낀 유리 너머로 소리가 삭제된 채 보이는 풍경'이, '아주 먼 데서 형성된 기류'가 자신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 지 몰랐을 걸세.

 

왓슨 : 그랬겠지. 장마와 가족의 상황이 불운하게 엮여가면서 소년은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완전히 고립됐으니까.

 

홈즈 : 배경묘사 뿐 아니라 상황의 전개나 소년의 심리도 작가 김애란의 펜 끝에서는 하나 하나 감각적으로 묘사되어 뚜렷해지더군. 마치 내가 장마 속 고립된 소년이 된 듯 했으니까. 소름이 오소소 돋았네. 내가 가진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이렇게 날 세워놓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지.

 

왓슨 : 나도 그랬네. 뿐만 아니라 두 가지 감각을 버무려 하나로 엮어내기도 하더군. 황톳물 위를 위태롭게 표류하던 소년이 1.5리터짜리 사이다 페트병의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시는 장면말일세. 그 한 순간의 미각을 시각으로, 과거로, 추억으로 전이시켜가는 게 일품이었네. 혀 끝에서 탄산음료가 톡 쏘는 맛과 용접봉 끝에서 번쩍거리는 불꽃을 대비해내더니 다시 소년이 밤하늘 강가에서 아버지께 수영을 배울때 만났던 유성우(流星雨)의 추억과 맛을 떠올리지 않던가? 

 


이번에는 사이다 병뚜꺼을 따 한 모금 마셔봤다....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이다를 들이켰다. 컴컴한 입안에서 작은 불꽃놀이가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살짝 매캐한 눈물이 났다....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 몸속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이내 사그라졌다. 그러자 문득, 아버지의 보호안경 위로 비쳤을 용접 불꽃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평생 마주한 불빛, 불빛. 그리고 내게 다른 빛을 보여주려 한 아버지의 마음도....그리고 그렇게 아버지와 노닥거리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어느 순간 놀랍게도 나는 수영을 하고 있었다....아버지는 손목시계를 보며 이번에는 잠수를 해보라고 했다....그러고 어느 순간, 숨을 참지 못해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 내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정말이지 그건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선물 중 가장 근사한 거였다. 나는 사이다를 들이켜며, 이내 사라지고 없는 불꽃 맛을 음미했다. 그러곤 나직하게 중얼댔다. 여기에서 어쩐지 그 유성우 같은 맛이 난다고.

 

- 201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물속 골리앗> 45-46p


홈즈 : 홈즈, 난 빛을 압도하는 어둠이 인상적이던데.

 

왓슨 : 그래?

 

홈즈 : 그렇다네. 늘 빛은 어둠 위에 물린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물속 골리앗>을 읽고서는 '아닐수도 있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빛이 몰아낼 수 없는 어둠이 있더라 이말이야. 어둠이 빛을 완전히 지배하는 거지. 결국 그건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찬 소년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이겠지?

 

왓슨 : 나도 생각나. '몇 개의 빛으로는 물릴 수 없는 유구하고 원시적인 어둠',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무시무시한 어둠', '칠흑같은 어둠'. 어둠의 위세가 이렇게 대단했었나 하고 느낄 만한 표현들이지. 또 촛불, 손전등, 용접 불꽃, 유성우같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빛은 참 하잘 것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홈즈 : 암흑은 소년을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소년이 가진 희망의 당도를 떨어뜨리지. 싱겁게 만들어. 왓슨, 그런데 말이야. 소년은 무엇때문에 겁이 났을까? 그냥  먹장구름아래 장마가 계속되고 전기가 나가 불을 켤 수 없어서일까?

 

왓슨 : 아직 다 크지 않은 나약한 사춘기 소년이었으니 그것도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홈즈 : 맞아. 하지만 그것이 극도의 공포에 이르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네.

 

왓슨 : 그럼 뭔가? 자네 생각은.

 

홈즈 : 먼저 시시각각 변해가는 소년의 주변 상황에 따라가 보세.

 

왓슨 : 좋아. 소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곧 장마가 시작됐지. 그러곤 길이 끊기고 휴교령이 내리고 마을 남자 하나가 급류에 실려 사라지고 전기가 나가고 가스가 끊기고 아파트가 황폐하게 물러 썩어가고 유기견이 죽고 수도가 끊기고 비는 계속 계속 보름넘게 내리고 장마는 한달이 지나도 계속되고 마을이 사라지고 엄마는 죽었네. 숨가쁘군.

 

홈즈 : 좋아, 왓슨. 소년은 접촉하고 살았던 모든 것들과의 통로를 잃어버렸네. 몇가지 추가하자면 소년이 살아온 동네는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결국 소년과 엄마만 남았지. 또 아버지는 체불임금시위를 하느라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실족사-사실인지는 모르지만-했네. 상중(喪中)이었네. 그때부터 장마는 시작됐고.  자, 소년의 심리상태는 어떻게 변하던가?

 

왓슨 : 처음엔 비가 오는 걸 보곤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은 풍경이라고 느꼈지. 또 가뭄과 폭염에 지쳐있던 터라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또 용역회사 사람들이 당분간 오지 않을거라 생각도 했고,  이런 저런 몽상에 잠기기도 했지. 그러다 빗소리 말고 '사람이 만들어낸 어떤 소리들' 곁에 있고 싶어했네.

 

홈즈 : 그러다가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하지?

 

왓슨 : 맞네. '오늘이 내일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 날들이 이어지자' 날짜감각이 사라져 버렸지. 그리고 자꾸만 집이 흔드리는 것같고 엄마의 얼굴이 왜곡돼 보이기도 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거야. 엄마는 히스테리컬한 말과 행동을 보이다 생존을 위해 받아둔 물봉지를 터뜨리고 결국 자신도 죽네.

 

홈즈 : 왓슨,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의 구분이 생기는 건 아니네.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과거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움직이고 변하기 때문에 과거가 된다네. 변화가 없는데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구분은 무의미하지 않겠나? 무의미한 것에 감각적일 필요가 없으니 그 감각은 사라져 버리지. 나 말고 변하는 것이 없고, 변하는 어떤 것을 확인할 수 없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나?

 

왓슨 : 나는 혼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겠지.

 

홈즈 : 바로 그걸세. 소년도 그렇게 생각했네. 장마 이후로 그 어떤 구조의 조짐도 없었으니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삭제된다면 존재의 의미는 없네. 공포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고.

 


그 위로 현대의 아름답고 치명적인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녔다. 나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어떻게든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구조대를 태운 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하지만 점점 뚜렸해져가는 어떤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 사람들이 우리를 잊은 게 아닐까?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 201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물속 골리앗> 30p


왓슨 : 아, 그래서 소년이 나무문짝으로 배를 만들고 탈출을 시도하는 군. 비록 쓰레기처럼 둥둥 떠다닌다 해도 말이야.  

 

홈즈 : 물론이지. 혼자가 된다는 건 무섭고 서러운 일이야. 소년이 나무문짝배를 띄워 탈출을 시도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네. 그래서 물 속에 잠긴 크레인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같은 환상을 보며 유령이라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왓슨 : 그러고 보니 소년은 탈출의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함께 태우는구만.  '두려운 망자(亡子)'라고 생각하기 보다 '함께 있는 엄마'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나중엔 배까지 버려가며 떠내려가는 엄마의 시신을 붙잡으려고 한 것이고 말이야.

 

홈즈 : 맞아,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무인도를 탈출할 때 함께한 자신의 분신으로 여겼던 게 있잖나? 바로 '배구공 윌슨' 말이야. 섬에서 자신의 유일한 말 벗이자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그 윌슨이 뗏목에서 떨어져 바다 한 가운데로 멀어지자 그렇게 엉엉 대성통곡 했던거랑 비슷하지. 왓슨, 소년의 마지막 독백은 '누군가 올 거야' 였네. '비가 그칠 거야'라든가 '물이 빠질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어. 사람에 기대를 걸고 있는 거지.

 

왓슨 : 이제 뭔가 제대로 맞춰지는 느낌이군. 그래, 극심한 재난 속에서 나약한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생존이지. 왜 그런지 아나, 홈즈?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지. 내가 저 머나먼 땅 아프카니스탄에서 군의관으로 전쟁에 투입됐을 때 내 희망이 바로 저 소년의 것과 같았군 그래.

 

홈즈 : 소망...희망이라...왓슨, 자네 소년의 아버지가 훌륭한 용접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아나?

 

왓슨 : 이십 수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해온 것만 봐도 소년의 아버지가 꽤 괜찮은 용접 기사였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잖나?

 

홈즈 : 음... 왓슨, 내 말은 말이야. 용접봉을 사용해 쇠와 쇠를 붙이는 용접말고 더 멋진 진짜 용접을 말하는 거야.

 

왓슨 :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진짜 용접?

 

홈즈 : 하하, 그래 진짜 용접. 소년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자신을 용접했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거야. 앞 부분에서 자네가 인상적이었다고 인용한 부분말이야. 그게 바로 용접 장면이었네.

 

왓슨 : 거 참 모를 소리만 하는군...

 

홈즈 : 그러니까 왓슨, 소년은 아버지에게 수영을 배울 때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게 됐지. 그 추억은 표류의 순간에도 희망의 맛을 느끼게 해 주었고. 아버지라는 존재가 용접되어 있지 않았다면 위태위태하게 흔들리는 골리앗크레인 위의 소년은 엷은 희망도 가지지 못했을 걸세. 그러니 소년의 아버지가 탁월한 용접 기술을 가졌다 할 밖에.

 

왓슨 : 일리가 있군 그래. 그런데 홈즈, 소년이 누군가 올 거라는 희망을 중얼거리지만 누군가 와서 구조한다면 그 이후가 더 걱정되는군. 부모를 잃어버리고 아파트 마저 철거대상이 된 마당에 소년에게 실현된 생존은 축복이 아니라 차라리 고통이 아닐까?

 

홈즈 : 그렇지? 작가는 골리앗크레인 위에 두 명의 인물을 올리네. 소년의 아버지와 소년이지. 소년의 아버지는 체불임금 시위를 하느라 올랐네. 소년은 온통 물로 잠긴 세상에 땅에 고정되고 물 위로 솟아있는 유일한 구조물 붙잡았네. 둘 다 생존을 위해서네만 아버지는 죽었고 소년은 크레인 위에 아직도 있네. 왓슨,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자네 질문에 답이 될지 모르겠네. 우리도 선(善)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보면 어떻겠나?

 


요 며칠 나를 쥐고 흔든 건, 재난의 풍경이 아니라 폐허에서 드문드문 피어나는

인간 내면의 풍경이었다.

이상한 사람들......

때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아파하면 자기도 아픔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들......

 

내가 소년을 거기 혼자 둔 이유.

나는 그게 소년이 행복해지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결말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엄연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며,

재난 앞에서 웃으려고 애쓰고, 이웃의 손을 잡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현실적'이라는 게 대체 뭔가. '나아진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맞다.

진짜 공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혹은 부족한 것은

공포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선(善)에 대한 상상력이 아닐까.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 201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물속 골리앗>  작가노트 50-51p


왓슨 : 와~, 선(善)에 대한 상상력이라. 정말 맘에 드는데. 하하. 이 메시지를 주려고 이 작품이 우리에게 묘한 시기에 왔나 보이. 기분이 유쾌해지네, 홈즈.

 

홈즈 : 나도 그래, 왓슨. 다행히 비가 그치는군. 조심해서 돌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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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망고 - 제4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36
추정경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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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일상적인 요즘,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장소,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찾아 헤멘다. 그래서 여행지과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걸까? 하지만 그건 좁은 의미의 여행일 뿐이다. 우리는 책을 펼쳐드는 순간, 즉시 그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

 

문학 작품은 생소한 시공간에서 낯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여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여행지가 된다.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문학은 경계석을 뒤로 물려가며 영역을 넓혀간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장소와 시대로 시작하여 다른 직업과 연령을 거쳐 평생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이성(異性)과 타인의 내면에 이르기까지.

 

여지껏 청소년문학은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가족, 친구, 이성, 입시, 집단따돌림같은 소재를 다루며 익숙한 영역에 머물러 왔다. 똑같은 트랙을 반복해서 도는 계주 선수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은 지루하고 식상한 계주를 중단하고 트랙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궤도를 이탈한 소행성처럼, 탁트인 초원을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경계가 없는 공간 속으로. 2007년 수상작, 김려령의 <완득이>는 다문화장애가정의 이야기를 경쾌한 문체로 풀어내 독자에게 웃음을 한가득 안겨주더니, 2008년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판타지적 요소와 멀티엔딩을 도입해 독자를 놀래켰다. 한 술 더 떠 2009년 배미주의 <싱커>는 공상과학소설의 영역까지 넘나들었다. 이로써 우리는 청소년문학이 얼마나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를 오갈 수 있는지를 알게됐다.

 

창비 청소년 문학상 2010년 수상작은 추정경의 <내 이름은 망고>다. 심사위원들의 말을 들어보자. 

 

무엇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청소년문학의 미답지를 개척한 점이다. 만날 학교와 집, 학원만 오가는 얘기가 범람한 요즘 청소년문학 판에서 이렇듯 세계로 시야가 확 트이는 이야기라니!  - 심사위원의 말 중에서

 

이로 보건대 창비 청소년 문학상은 확실히 '청소년문학의 미답지 개척'이라는 트랜드를 만들어 이를 하나의 척도로 활용하는 듯하다. 서두가 길었다.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내 이름은 망고> 이야기를 해 보자.

 

<내 이름은 망고>는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열 일곱 수아의 여행가이드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여행지를 직접 다니는 듯한 생생함이다. 캄보디아의 현황을 소개하는 여행책자를 훓고 캄보디아史를 섭렵한다해도 비포장된 도로 위를 달리는 뚝뚝이의 덜컹거림이나 망고와 두리안 같은 열대과일의 향기를 느낄 순 없다. 독자는 여행자가 되기도 하고 여행가이드가 되기도 하면서 '쏙서바이', '클랑클랑, 틱틱'같은 현지어를 들으며 캄보디아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책을 읽는 동안 캠코더를 들고 두 주인공 수아와 쩜빠의 성장기을 필름에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맨이 된다. 

 

 

지금 뚝뚝이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흙길로만 내달리고 있다. 빼곡히 서 있는 야자수들과 그 아래로 타오르는 듯한 붉은 흙, 시원한 바람.(중략) 옆이 훤히 트인 뚝뚝이를 타고 달리다 보면, 버스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눈높이의 캄보디아가 보이기 시작한다.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맑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도 모두 뚝뚝이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내 이름은 망고> 103p

 

 

다문화에 대한 자연스런 공감을 이끌어 내는 건 이 작품의 두번째 장점이다. 작품 속엔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현실과 개인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은 서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원하지 않는 무례함으로 상처를 준다. 이방인과 현지인이 '우리'가 되려면 서로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캄보디아의 현재를 못먹고 못살던 우리의 6, 70년대로 치환하기 전에 그들의 고달픈 현재에 우리의 아픈 과거를 겹쳐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듯 그들의 그것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현재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의 가치를 건져 올린다. 공감은 그렇게 이뤄진다. 학교가 주입한 크메르 왕조와 앙코르 와트 사원에 대한 얇팍한 지식은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지식에 비할 바가 아니다. 주입은 산화되고 흡수는 체화되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생생함의 연장선상에서 캄보디아를 가슴 속에 새긴다.  

 

삼 년 전, 아빠는 바이욘 사원에 얽힌 이야기를 바로 이 자리에서 내게 들려주었다. 쉰네 개의 탑과 이백 개가 넘는 얼굴상은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고 우리가 순간순간 가슴에 담는 감정이 다 다르듯, 이 석상들의 표정도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던 말. 그 말이 지금 내 입에서 반복되고 있다. <내 이름은 망고> 223p

 

 

장점 하나 더, <내 이름은 망고>는 청소년문학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틀에 박힌 소재에선 벗어났지만 주인공인 수아와 쩜빠의 갈등, 화해, 우정, 성장, 꿈을 녹여내면서 이 작품은 여전히 청소년성장소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꿈을 묻고 답하는 장면, 사소한 이유들로 행복해 하는 장면은 나를 가슴설레게 하는, 청소년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으로 여겨진다.

 

"쩜빠......넌 진짜 압사라 무용수가 꿈이야?"

"......" 

하긴 뻔한 걸 물었으니 대답하기 입 아프겠지.

"그럼 그거 말고, 나중에 뭐로 태어나고 싶어?"

쩜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말고, 다음 생애에 말이야. 다음에 뭐로 태어나고 싶냐고?"

<내 이름은 망고> 166p

 

내 캄보디아 친구 쩜빠는 이렇게 말했다. 앙코르 와트에 뒷동산 가듯 놀러 갈 수 있고, 신발 없이 흙길을 걸을 수도 있고, 밤이면 네온사인보다 더 환한 별빛들의 축제를 볼 수 있고, 일 달러면 시장에서 망고를 한 바구니나 사 먹을 수도 있고, 또다시 우기가 찾아오긴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건기가 시작되었으니까 행복하단다. <내 이름은 망고> 253p

 

 

열대우림기후인 캄보디아에는 우기가 되면 하루에 한 차례 '스콜'이 쏟아진다. 인생길 걷다보면 짜증, 한숨, 가시, 빚, 불면증, 악몽, 고통, 불공평, 최악, 좌절, 오해, 추락, 살얼음판, 우울증, 상처, 암담...우중충한 감정과 암울한 상황들이 갑작스레 스콜처럼 쏟아져 가던 길을 멈출 때도 있을 터다. 하지만 엄마의 일을 돕는 현지인 쿤라가 엄마 대신 여행가이드를 불안하게 시작하던 첫 날, 수아에게 건넨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좋은 쪽, 생각해.' 그리고 익을수록 달고 부드러워지는 수아(스와이는 캄보디아어로 망고를 의미한다)의 이름도 잊지말기를.

 

이제 나의 해외여행목록에는 캄보디아도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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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시대 - 캐롤라인 왕비의 1460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2
페르 올로프 엔크비스트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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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친애하는 왓슨

 

왓슨, 잘 지내나?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하느라 바쁠테지? 하지만 충분히 쉴 시간을 가져야 하네. 몸이 쉬이 지쳐버리는 계절, 여름이니까 말이야.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고 여유도 미소도 사라지고 정상적인 의사결정도 힘들어지지. 더군다나 자넨 환자의 병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확실한 처방을 해야하는 의사이니 만큼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유지하도록 하게. 하하,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았군. 그래도 친구 좋다는게 이런 것 아니겠나?   

 

자네, 내가 이렇게 메일을 보내는 이유가 궁금하지? 지난 주말 내가 자네 병원에 잠시 들렀을 때  자네가 내게 건넨 책 기억하나? <가면의 시대> 말이야. 자넨 일이 너무 바빠서 그냥 대충 훓어봤다고 했어. 그러면서 18세기 후반 덴마크 궁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역사소설 정도라고 했네. 책을 돌려 받을땐 내 생각을 듣고 싶다고 덧붙이면서 말이야. 그래선지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더 주의를 기울였네. 꼭 사건을 의뢰받은 느낌이 들었거든.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 보자구. <가면의 시대>를 깊이 읽어내려면 18세기의 덴마크를 들여다봐야 된다고 생각하네. 자네에게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군. 먼저 <권력과 광기>(비비안 그린, 말글빛냄)의 12장(덴마크의 연극-크리스티안7세)을 읽게. 작품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덴마크 크리스티안 7세의 통치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걸세. 또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철학>(남경태, 들녁) 중에서「InterludeⅡ 혁명을 선도한 계몽 309p~322p」부분도 발췌해서 읽어두면 17~18세기에 걸쳐 유럽 지성사에 대두되었던 계몽주의가 크리스티안 7세의 통치시대였던 덴마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을거야. 물론 이런 배경지식이 없어도 책은 바람이 책장을 넘겨주는 것처럼 술술 잘 넘어가네. <가면의 시대>는 그 자체로 독자가 흥미있어할 만한 요소-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점,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분명하다는 점, 왕실의 치열한 권력 암투와 부도덕한 애정 행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 등-를 두루 갖춘 하나의 완결된 소설이기 때문이지.    

 

이야기의 뼈대는 단순하네. 나이 어리고 정신이상인 왕(크리스티안 7세)과 왕비(캐롤라인 마틸드)를 둘러싸고 한 쪽에선 보수세력(굴베르)과 개혁세력(슈트루엔제)이 힘을 겨루고 또 한 쪽에선 왕비와 왕실 주치의(슈트루엔제)가 애정 행각을 벌이지. 결국 왕비는 이혼당한 후 외딴 성으로 유배되고 슈트루엔제는 처형되네.당연히 슈트루엔제의 개혁안들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권력은 굴베르의 손에 들어가면서 끝을 맺지. 이 단순한 스토리 속에 신학이 지배한 그 시대의 순수와 신성, 계몽주의의 이성, 그리고 개성 강한 인물들의 욕망을 절묘하게 엮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더군. 

 

왓슨, 난 말이야 표지와 제목에서 <가면의 시대>가 꼭 한 편의 연극이나 오페라처럼 느껴졌네. 이 책의 원제는 '주치의의 방문'이거든. 뭐 하지만 난 <가면의 시대>도 멋진 함축을 담은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하네. 겉과 속이 다르고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행동이 조화롭지 못한 등장인물들을 잘 표현하고 있어. 또 크리스티안,캐롤라인, 슈트루엔제, 브란트 같은 인물들은 자의든 타의든 진정 원하는 삶은 따로 있는데도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당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 마치 출연하고 싶지 않은 연극의 무대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간 배우들처럼말이야.

 


 

벽난로에 불을 켰다. 다른 불은 없었다. 다들 떠날 준비가 돼 있었다. 응접실에 모인 사람은 국왕 크리스티안 7세, 왕비 캐롤라인 마틸드, 에네볼트 브란트, 그리고 슈트루엔제였다. 불빛은 벽난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슈트루엔제가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새로운 인생,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린 뭐가 될까?"

"스테인드글라스 만드는 화가." 왕비가 말했다. "영국의 한 성당에서 작업할 거야."

"배우." 브란트가 답했다.

"밭에 씨 뿌리는 사람." 국왕이 말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당신은?" 왕비가 슈트루엔제에게 물었다. "당신은 뭐가 될 거야?"

슈트루엔제는 답변 대신 둘러앉은 친구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마디 툭 던졌다.

"의사."

 

- <가면의 시대> 367p


왓슨, 현실을 연극으로만 채워야 한다면 그 삶은 거짓일 수 밖에 없지 않겠나? 더구나 그런 연기를 강요당해야 한다면 일상이 고통과 공포로 얼룩져 결국 피폐해질 뿐일테고. 태생적으로 왕실에 태어난 왕가의 사람들이라해도 감정과 언어까지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마리오네트 인형이 아닐까?

 

책의 전반부는 주요 인물들-굴베르, 크리스티안, 캐롤라인, 카테리네, 슈트루엔제-의 외모와 성향이 집중적으로 묘사되고 있네. 또 사료를 인용함으로써 독자의 신뢰를 획득하고 성경의 내용을 삽입하여 그 시대의 종교적 분위기도 잘 만들어 내고 있고. 중반부는 캐롤라인과 슈트루엔제의 부도덕한 애정행각 혹은 진실된 사랑이야기가 나오고 후반부는 체포되어 유배되고 처형되는 파국이지. 아무튼 <가면의 시대>의 핵심 내용은 부도덕이라고 하든 진실하다고 하든 캐롤라인과 슈트루엔제, 그들의 사랑이야기네.

 

사랑이야기 좀 해 보겠네. 내 비록 장가도 안 간 사립탐정이지만 사랑도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다면 분석하고 추리해 볼 수 있지 않겠나? 사랑은 수작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네. 사람은 수작, 즉 말을 주고 받는 것으로 서로 의사소통할 뿐 아니라 감정까지 전달할 수 있지. 처음엔 불쾌했던 감정도 말을 하다보면 유쾌해질 수도 있고 유쾌한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말이야. 신분은 왕비 캐롤라인이 높고 나이는 주치의 슈트루엔제가 15살 정도 많네. 둘의 공통점은 뭘까? 덴마크에서는 둘 다 이방인이라는 사실이지. 뿐만아니라 왕비는 왕과의 관계가 아주 좋지 못하고 말붙일 진실한 벗 하나도 없었네. 슈트루엔제는 정신이상인 왕을 대신해서 덴마크의 개혁을 거의 혼자서 추진하고 있었네. 그렇다면 또 하나의 공통점은 외로웠다는 것이겠지. 당연히 사랑에 빠졌네. 신분과 나이의 벽을 넘어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거야. 죽을 줄도 모르고. 이런 사랑을 하려면 규칙이 필요한데 '조심'과 '용기'네. 슈트루엔제는 왕비에게 승마를 가르쳐 주면서 승마의 규칙을 가르쳐 주더군. 아이러니하게도 승마의 규칙도 '조심'과 '용기'더군. 슈트루엔제는 사랑도 승마도 '조심'해서 했지만 캐롤라인 왕비는 사랑도 승마도 '용기'있게 했네. 근데 말이야, '조심'을 첫째 규칙으로 삼은 슈트루엔제는 말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사랑도 비극적으로 끝나 처형당했고 '용기'를 더 낫다고 생각한 캐롤라인은 승마를 하면서 말에서 떨어진 적도 없었고 목숨도 부지했어. 재밌지 않나? 사랑이든 승마든 뭐든 간에 너무 조심하는 것보단 약간 용기있게 하는 게 났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첫 수업에서 탈 말 쪽으로 안내했다.

"첫 번째 규칙은 '조심'입니다." 슈트루엔제가 말했다.

"그럼 두 번째는요?"

"'용기'입니다."

"두 번째 게 낫네요." 캐롤라인이 말했다.

 

<가면의 시대> 236p

마지막으로 <가면의 시대>에서 수도 없이 등장하는 말, 순수 이야기를 해볼까하네. 왓슨, 나는 말이야 크리스티안, 캐롤라인, 굴베르, 슈트루엔제는 모두 순수를 추구했다고 생각하네. 먼저 크리스타안을 보자구. 그는 직함에 굶주린 자들이 들끓고 부도덕이 창궐한 궁정 풍토를 그리스도가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아 성전을 정화한 것처럼 자신의 궁정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했네.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슈트루엔제는 개혁을 통해 덴마크를 더 나은 사회와 국가에 이르게 하는 것이 순수함(신성함)에 이르는 길이라 생각했지. 굴베르는 덴마크의 전통과 궁정, 나아가 모든 백성이 계몽사상에 전염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순수를 수호하는 것이라 믿었네. 캐롤라인은 철저히 사랑이라는 자신의 욕망에 순수하게 응했고 말이야. 누가 진정 순수의 수호자일까?  묻지 않을 수 없네. 어렵군.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나치게 순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비, 관용, 용서가 부족하다는 거야. 근본주의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네. 어려워.

 

왓슨, 이상한 일이야. 책을 덮고 나니 책 속 몇 구절이 머릿 속에서 맴도는군. 그러다가 전혀 다르게 해독되는 암호문처럼 눈 앞에 펼쳐져. 그건 나의 가능성에 대한 꿈으로 읽힌단 말이지. 신성하게 살고 싶은 꿈 말이야. 다시 진지하게 묻자구. 왓슨, 자네 꿈은 뭔가? 신성하게 살고 싶은 꿈 없나?

 


 

"우리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슈트루엔제가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새로운 인생,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린 뭐가 될까?"

<가면의 시대> 367p

 

"그럼 두 번째는요?"

"'용기'입니다."

"두 번째 게 낫네요." 캐롤라인이 말했다. 

<가면의 시대> 236p

 

결국 스트루엔제 시대에서 남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 그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생물학이나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꿈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신성한 것이고 포착하기 어려운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슈트루엔제 시대가 남긴 단순하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플루트의 음률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완전히 잘라낼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가면의 시대> 489p

 

계몽이란 인간이 자기 책임인 미성숙 상태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미성숙이란 남의 인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러한 미성숙이 자기 책임이라는 것은 그 원인이 이성의 결핍이 아니라,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겠다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1783년)에서

<가면의 시대> 9p


그렇찮아도 바쁠텐데 긴 글 읽어줘서 고맙네.

다음 주말에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하세.

 

홈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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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이야기 카르페디엠 19
안케 드브리스 지음, 박정화 옮김 / 양철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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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사무실로 들어선다, 왓슨이 기다리고 있다)

 

홈즈 : 왓슨, 오래 기다렸지? 미안하네.

 

왓슨 : 괜찮네. 자네 많이 바빴군 그래.

 

홈즈 : 그렇게 됐네. 의뢰받은 사건 현장을 면밀히 조사하고 관계된 사람들과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지 뭔가. 자네, 2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느라 지루했겠어?

 

왓슨 : 하하. 전혀 지루하지 않았네. 책을 읽었거든. 자네 요즘 아동도서도 읽는 모양이지?

 

홈즈 : 내 지식의 폭을 넓히려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나. 그래, 최근엔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동도서도 읽고 있네. 자네가 손에 들고 있는 <두 친구 이야기>도 읽었고.

 

왓슨 : 음, 이 책은 제목을 보곤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로만 생각했어. 근데 처음부터 긴 한숨이 나오더군.

 

홈즈 : 그렇지? 자네가 긴 한숨을 토해 낸 건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때문이겠지.?

 

왓슨 : 맞아, 홈즈. 어떻게 열 살짜리 여자 아이 유디트에게 그토록 심한 폭언과 구타를 일삼을 수 있을까? 그것도 엄마가 말이야. 생각만해도 끔찍하군.

 

홈즈 : 유디트의 엄마(코니 반 헬더르)라는 사람이 저지르는 폭행은 거의 광기에 가깝지. 그 여자는 허울만 엄마일뿐 유디트에겐 잔인한 괴물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지 않겠나?

 

엄마는...진공청소기의 금속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제발……엄마, 제발……." 유디트는 멍한 상태에서 중얼거렸다. 어느새 등과 팔과 엉덩이는 쏟아지는 매를 맞고 있었다. 매질은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았다. 유디트는 침대로 기어가 베개 밑에 머리를 묻었다. 공포에 질려 몸을 잔뜩 웅크렸다. <두 친구 이야기> 95p

 

느닷없이 손이 다가와 유디트의 머리채를 거세게 잡아서 뒤로 확 젖혔다. 유디트는 아프고 겁에 질려서 비명을 질렀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여서 얼굴을 가리는 것도 잊었다. 엄마가 유디트를 부엌으로 끌고 가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밟고, 마구 차기 시작했다. 유디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조리대에 쿡 쳐박혀서 두 팔로 얼굴을 가로막았다. "역겨운 도둑년."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을러댔다. <두 친구 이야기> 139p

 

왓슨 : 홈즈, 이 여자의 잔인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홈즈 : 왓슨, 자넨 지금 약간 흥분상태네. 진정하게. 하여간 유디트의 엄마가 왜 유디트를 그토록 심하게 매질했을까 생각해보는 건 중요한 문제야. 그건 유디트의 미래와도 관계되어 있으니까.

 

왓슨 : 홈즈, 자네도 짐작하고 있군. 보통 자녀를 학대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지. 자기도 부보로부터 학대를 받았거나 심한 차별을 받은 경우가 많아. 유디트의 엄마도 그런 유년의 슬픈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말이야. 자기의 아픔이 자녀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심한 폭력으로 자신의 과거를 보상받으려 하더군.

 

홈즈 : 학대받는 아이들의 문제는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해가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겠나? 극도로 소심해져서 친구관계에 폐쇄적이된다든지, 아니면 집에서 겪은 폭행, 폭언을 다른 약한 친구들에게 행사한다든지. 물론 그보다 아동학대가 그토록 위험한 이유는 끊어버리지 못하고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어 나타난다는 것이겠지. 마치 물을 먹은 스펀지가 불쑥 불쑥 스며있는 물을 짜내듯이 어느덧 가해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해서 학대에 중독된 낯선 자신을 발견하곤 통탄해한단 말이야.

 

왓슨 : 그러니까 가정에서 학대받은 아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 장치가 필요하네.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 아니겠나? 하지만 이 나라엔 그런 부분이 매우 취약하지.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세. 그래도 유디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등장하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홈즈 : 미하엘이라는 친구지.

 

왓슨 : 홈즈, 친구라는 말이 참 좋지 않나? 정겹고 들으면 웃음이 나고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야, 하하. 친구라는 말 속에 홈즈 자네의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

 

홈즈 : 참, 그 친구 새삼스럽기는. 친구 관계가 빚어내는 보석을 우리는 우정이라고 부르네. 왓슨, 우정이 언제 싹 트는지 아나?

 

왓슨 : 글쎄?

 

홈즈 : C.S.루이스는 <네가지 사랑>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네.

 

단순한 동료 의식으로부터 우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은, 동료 중 어떤 두사람(혹은 그 이상이) 다른 동료에게는 없는 어떤 공통된 본능이나 관심사나 취향-그 순간 전까지만 해도 각자 자기에게만 있는 고유한 보물(또는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입니다. 우정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전형적인 표현은 이런 것입니다. "뭐, 너도?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었는데!"  C.S.루이스 <네가지 사랑> 

 

왓슨 : 꽤 공감되는데.

 

홈즈 : 유디트와 미하엘은 가족때문에 겪는 '아픔'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지. 둘 다 한부모 가정이지. 좀 복잡하게 얽혀있긴 하지만 말이야. 

 

왓슨 : 미하엘은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있지만 네덜란드 헤이그의 엘리 이모네 집에서 생활하지. 홈즈, 이 책은 말이야 낳았다고 부모가 되는 것도, 함께 산다고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어.

 

홈즈 : 맞네. 부모다워야 부모고 가족다워야 가족이지. 유디트의 엄마를 엄마라고 할 수 없네. 또 미하엘의 아빠가 미하엘에 대한 태도,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면 진정 아빠가 될 순 없었을 걸세. 낳지는 않았지만 미하엘을 자식처럼 데리고 사는 엘리 이모를 보게. 미하엘이 엄마라고 불러도 손색없어. 

 

왓슨 : 미하엘과 유디트는 매일 점심도 같이 먹고 조금씩 과거와 가족사 이야기도 하면서 깊은빛을 내는 우정을 만들어 가네. 또 서로의 약점을 메워주면서 일종의 동지 의식도 느끼고. 유디트에게는 미하엘이 일종의 쉼터 역할을 했지. 미하엘도 자신의 난독증을 이해하고 책을 읽어주는 유디트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고.

 

홈즈 :  그래. 왓슨, 난 이런 열 살 또래의 아이들이 과연 이런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네. 내 어린 시절이 떠 올랐기때문이지. 부럽더군. 아무튼 유디트와 미하엘의 관계가 더 진전되려면 유디트가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필요했네. 

 

왓슨 : 홈즈, 우린 유디트를 좀 더 이해해야하네. 미하엘이 편안한 쉼터같은 친구였겠지만 유디트는 엄마로부터 학대받는다는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을 걸세. 아니, 진실이라기보다는 봉인된 비밀 같은 것이었겠지. 어린 아이의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는...

 

홈즈 : 그랬겠군, 왓슨. 소중한 친구가 자신의 비밀에 휘말리도록 하고 싶진 않았겠지. 그 보다 더한 이유는 공포와 긴장감이었을 거고.

 

"왜 진작 말하지 않은 거야" (중략)

"왜냐하면 너무 겁을 먹거든. 그냥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무서워." <두 친구 이야기> 278-279p

 

왓슨 : 홈즈, 사람이 언제 더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지 아나? 폭행 순간이 아니라 폭행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 순간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라네. 긴장의 진폭이 커지고 공포는 극대화되지. 유디트는 늘 그런 분위기 속에 살았네. 폭행 후 엄마의 우호적 행동조차도 공포스러워지는 그런 분위기 말이야. 난 한 순간도 그런 삶을 살 수 없을 걸세. 그런 분위기는 열 살 소녀 유디트를 완전히 불능상태로 만들었겠지. 공포는 비밀과 거짓말을 키워낼 수 밖에 없었을테고.

 

홈즈 : 자네 말을 들어보면 미하엘이 끈질기게 유디트를 위해 준 마음이 결국 유디트를 진실과 용기의 마당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어. 미하엘은 유디트에게 '유디트'임을 상기시키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유디트는 유디트'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네. 나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은 나와 내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니까.

 

"처음에, 널 알기 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넌 스테피가 아니라 유디트잖아."

유디트는 몸을 돌려 미하엘의 얼굴을 보았다. 눈에 이상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 나는 유디트야. 유디트."

유디트가 천천히 되풀이했다. 자기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말했다.

<두 친구 이야기> 215p

 

왓슨 : 유디트의 이야기와 함께 <두 친구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미하엘의 이야기는 가족의 회복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해서 좋았고.

 

홈즈 : 왓슨,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한 장면을 짚고 넘어가야겠네.

 

왓슨 : 혹시 이 책에서도 추리할 만한게 있었던 건 아니겠지?

 

홈즈 : 좀 비약적인 생각이긴 해. 하여간 이 장면부터 보자구.

 

그때부터 선생님이 틀어 놓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정신을 집중했다. 포악한 괴물 같은 불도저들이 열대우림을 파헤치고 있었다. 동력 톱이 기분 나쁜 소리로 울부짖고 나자 키 큰 나무들의 몸통이 트럭에 실렸다. 몇백 년 동안 숲에서 종족의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숲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미하엘은 그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다. 원주민과 오랫동안 살면서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영국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숲의 파괴를 막으려고 벌목 작업을 방해했다. 그의 목에는 막대한 현상금이 걸려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누구 하나 그 사람을 신고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숲에 숨어,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며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두 친구 이야기> 101p

 

왓슨 : 이건 베크만 선생과 아이들이 수업하는 장면이잖나?

 

홈즈 : 맞아. 좀 느껴지는게 없나?

 

왓슨 : 어디 보자...

 

홈즈 : 이 장면이 <두 친구 이야기>가 인류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주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믿네. 작가가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왓슨 : 들어 보세.

 

홈즈 : 이 책은 표면적으로 유디트와 미하엘의 상처난 가족사, 둘의 우정이 싹트고 열매맺는 과정을 다루고 있네. 물론 이것만으로도 작품의 의미가 대단하지. 하지만 책 속에 소개된 다큐멘터리 수업장면을 보면 인류가 친구 자연에게 한 짓이 유디트의 엄마가 유디트에게 한 학대와 뭐가 다른가 하고 생각해보게 되네. 상처입은 유디트는 파괴된 자연환경(숲과 원주민)으로, 유디트의 친구가 되는 미하엘은 원주민의 방패가 되어주는 영국 사람으로 대비해볼 수 있어.

 

왓슨 : 오, 홈즈. 그건 비약이 아니라 대단한 통찰인걸.

 

홈즈 : 파괴된 것이 무엇이든 원상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되돌려 놓으려해도 파괴의 시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걸 우린 기억해야하네.

 

왓슨 : 아이들을 지켜가는 노력만큼 자연을 지키는 건 중요해. 다 망쳐놓고 자연보호캠페인이다, 탄소배출제한이다 떠들어봐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지. 아이들과 자연은 인류의 미래라는 걸 다시 한 번 뼈져리게 깨닫게 되는 구만.

 

홈즈 : 아이들의 언어를 배워야 하네.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지. 그래야 공감할 수 있어. 또 자연의 경고도 잘 들어야 하고. 훼손된 자연과 상처입은 아이들이 여는 미래는 비참할 수 밖에 없겠지. 그들이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가 버리지 않도록 희망찬 오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가는 길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네.

 

왓슨 : 오늘 즐거웠네 홈즈. 이래서 자네 사무실에서 2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손해볼 게 없다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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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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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던 홈즈가 신문을 보고 있던 왓슨에게 말을 건넨다)

 

홈즈 : 왓슨, 이것 좀 보게.

 

왓슨 : 왜? 무슨 특종 기사라도 났나?

 

홈즈 : 그게 아니고 김려령 작가가 신작을 냈어. 동화야.

 

왓슨 : 그래? 어디보자...제목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군 그래.

 

홈즈 : 왓슨, 난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네.

 

왓슨 : 허, 김려령이라면 이름만 보고 막 사는군. 주문하는 김에 내 것도 한 권 부탁하네. 나도 읽어야 자네랑 신작 이야길 할 게 아닌가?

 

홈즈 : 그러지. 왓슨, 난 말이지 <완득이>를 펴냈을 때부터 김려령 작가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어.

 

왓슨 : 내 잘 알고 있네. 자넨 스스로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독자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난 자네가 김려령의 광팬같이 보인단 말이지, 하하.

 

홈즈 : 이친구 하는 말하곤, 광팬이라니...

 

왓슨 : 뭐 그럼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홈즈 : 당연하지.

 

왓슨 : 그렇다면 말해보게. 내가 자네를 김려령 작가의 광팬으로 몬 것이 오해였다는 걸 해명해 보라구.

 

홈즈 : 먼저, 김려령 작가는 자칫 불편하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밝고 경쾌하게 그려낸다네. 이건 김려령 작가에게나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매우 중요하네. 김려령은 내가 알기론 이번 신작까지 4편의 동화와 2편의 청소년 성장소설을 펴냈네. 독자층이 주로 아이들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각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한 번 보게.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공개입양아 하늘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고, <완득이>는 장애인 아빠와 국적이 다른 엄마가 부모인 고교생 완득이의 성장 이야기지. 또 <우아한 거짓말>은 10대의 집단따돌림을 다루고 있네. 김려령의 작품엔 정상적이라 할만한 가정이 잘 없네. 무거울 수 밖에 없지.

 

왓슨 : 음, 입양, 다문화가족, 집단따돌림... 어느 것 하나 다루기 쉬운 소재가 없군 그래.

 

홈즈 : 김려령은 독자층이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들 속에 엄연히 실재하는 이야기들을 외면하지 않아. 진실되게 그려내지. 하지만 경쾌한 문체와 아이들의 언어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네. 이때문에 김려령은 아이들에만 머물지 않는 더욱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게 됐고.

 

왓슨 :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홈즈 : 그러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김려령의 작품은 재밌네. 왜 그런지 아나?

 

왓슨 : 글쎄.

 

홈즈 : 인물들의 캐릭터가 분명하기 때문이지. 주인공이 주제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저음으로 잡아나가면 톡톡 개성이 넘치는 조연들이-<완득이>의 '똥주'나 '핫산', <우아한 거짓말>의 '오대오'같은- 쳐진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독자를 킥킥거리게 만들어. 그리고 판타지 소설의 스펙타클은 없지만 우리가 잘 아는 소박한 소재와 일상을 다루고 있어 낯설지 않아. 중간 중간 다음 사건 전개에 대한 암시와 복선을 추리소설처럼 잘 깔아 놨지. 재밌을 수 밖에. 독자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고 웃음 가득한 즐거움을 준다면 작가가 더 할 일이 뭔가?

 

왓슨 : 음... 잘 알겠네. 근데 말이야 홈즈, 그렇게 침 튀기며 얘기하는 걸 보니 광팬이 맞는거 같은데...하하.

 

홈즈 : 인정하지. 난 김려령의 광팬이 맞다고 말이야..하하.

 

왓슨 : 지금 신작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주문하면 내일 도착하겠군.

 

홈즈 : 그럼 이번 주말에 내 사무실로 오게. 김려령의 신작 이야길 해보자구.

 

 

(주말, 왓슨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들고 홈즈의 사무실로 들어선다)

 

 

홈즈 : 잘 지냈나? 시간이 빨리도 지나가는군. 

 

왓슨 : 그러게 말이야. 벌써 주말이야. 커피부터 한 잔 부탁하네.

 

홈즈 : 자네 올 시간에 맞춰 준비해뒀네. 자 여기.

 

왓슨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감동적이었네. 자네 말대로 무거워야할 이야기가 밝고 경쾌하더군. 

 

홈즈 : 그렇지? 자네 소감부터 정리해보게.

 

왓슨 : 홈즈, 사실 감동적이었다는 말은 맨 나중 감정이야. 내가 작품 속에서, 작중 인물들로부터 받은 느낌은 '통(痛), 통(通), 통(統)' 세 단어라네.

 

홈즈 : 뭐라구? '통, 통, 통'?

 

왓슨 : 그래, '통(痛), 통(通), 통(統)'.

 

홈즈 : 왓슨, 날 시험하는 건가? 얼른 설명하는게 좋을 걸세. 내가 추리하기 전에 말이야.

 

왓슨 : 안그래도 그럴 참이네. 첫번째는 통(痛)일세. 아팠네. 마음이 말이야. 아내를 잃고 쌍둥이를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건널목 씨, 아빠 엄마의 부부싸움에 친구도 사귀지 못했던 도희, 아빠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돈벌러 집을 나가버려서 부모없이 둘만 지내야 했던 태석이와 태희. 모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네. 특히 아이들을 보게. 어디가서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특히 가정에서 이뤄지는 부모의 모범과 지지는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신감의 굳건한 기초네.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자기를 탓하게 되지.

 

홈즈 : 맞네. 완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은 절대적 약자네. 어떤 아이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학교와 학원의 입시교육에 정신이 피폐해지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극심한 빈곤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 모두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네.

 

왓슨 : 말 못할 이야기를 가슴에 묻은 아이들은 마음을 닫기 마련이네. 통증(痛症)은 그때부터 시작되고 말이야. 인간은 마음을 닫는 순간 섬이 되어 버리지. 우린 먼 발치에서 섬을 볼 수 있지만 가닿을 수 없네. 하여간 홈즈, 아팠네.

 

홈즈 : 자네 얘길 들으니 나도 다시 가슴이 아리하게 아파오는군...

 

왓슨 : 두번째는 통(通)일세. '건널목 씨'라는 이름이 모든 걸 함축하고 있지. 건널목 씨는 실제로 카펫 건널목을 가지고 다니며 아이들과 주민들이 여기서 저기까지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해 주었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건널목 씨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음과 마음을 통(通)하게 해 주었다는 것 아니겠나? 이웃들을 사촌처럼 만들고 형제도 아닌 도희와 태석이 남매를 형제처럼 이어주는 진정한 건널목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니 말이야. 놀라운 일이네.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 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와서 사는건데 아리랑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다니까. 이웃끼리 인사도 더 자연스럽게 했고 상냥해졌지.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77p 

 

그래, 그렇게 건널목 씨와 도희는 만났어. 그리고 도희는 건널목 씨 덕에 다른 아이들도 만날 수 있었지.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93p 

홈즈 : 완전 공감하네. 건널목 씨도 교통사로로 쌍둥이를 잃고 나서 전국을 떠돌며 위험한 도로에 그저 건널목 설치를 주장했겠지. 짓궂은 운명이지만 그런 개인적 경험이 건널목 씨를 인간 일반에 어떤 사명감을 갖게 했을 것이고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마침내 건널목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걸세.

 

왓슨 : 음...일리가 있군. 건널목 씨는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열어젖혀서 마음과 마음을 이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네.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길'은 생기지 않아. 일단 마음을 열어야 하네. 열린 마음 사이엔 왕래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왕래를 통해 길이 생긴다네. 그러면 놀랍게도 둘 사이에 난 길 위에 다른 이들도 들어서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길은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지. 길이 생명력을 얻게 되는 셈이네.

 

홈즈 :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에는 마음이야기가 좀 나오는 군. 마음이라..작가 김려령이 뿌려놓은 작품 이해의 비밀 열쇠가 아닐까? 작가와 독자를 통(通)하게 하는 것도, 낯선 아이들이 형제처럼 지낼 수 있게 하는 것도 진실된 마음, 진심 아니겠나?

 


 독자들에게 가슴을 열지 않은 작가라니,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중략) 진심!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려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음을 닫아 놓고 입으로만 하는 이야기, 그러면 안 된다.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14p

 

도희는 태석이와 태희 마음을 참 잘 알아줬어.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한테 바라던 것들을 도희 자신이 태석이 태희한테 해 줬던 것 같아. 참 안쓰러운데, 그렇게 나눠 주고 사랑해 주면서 도희도 마음속 상처가 아물었던게 아닐까 싶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139-140p

왓슨 : 두말하면 잔소리지.

 

홈즈 : 자, 마지막 통은 뭔가?

 

왓슨 : 하하, 서두르지 말게. 세번째는 통(統)일세.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네.

 

홈즈 : 왓슨, 우리 모두라면 누구를 말하나?

 

왓슨 : 말 그대로 모두네. 하나씩 해볼까? 먼저 작품 속에서는 오명랑과 이야기 듣기 교실에 온 아이들, 오명랑의 가족들, 이야기 속 아파트 주민들, 도희와 태석이 태희, 작가 김려령과 독자인 우리까지 한데 묶어주지. 뿐만 아니라 표제가 된 작가의 마지막 질문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을 통해 불려나온 '모든 독자의 기억속 건널목 씨'들까지 포함해서 말일세. 진실된 이야기의 힘이란 참 위대하다네.

 

홈즈 : 그렇게 본다면 작가 김려령은 또 한 명의 '건널목 씨'가 되는 셈이군 그래. 왓슨, 하여간 대단하이. '통(痛), 통(通), 통(統)' , 귓전을 맴도는군.

 

왓슨 : 우리가 성인이 되기까지 참 든든한 건널목 씨들이 많았던 것 같아. 

 

홈즈 : 그렇지? 우리를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손잡아주고 껴안아주었던 분들이 없었다면 우린 더 많은 좌절을 통해 삶을 배웠을 걸세. 

 

왓슨 : 문학 속에도 나의 건널목 씨들이 있네. 대표적으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뽀루뚜까, <빨강머리 앤>의 마릴라와 매튜라네. 이들은 내 아이들의 건널목 씨들도 될테지. 김려령은 작가의 말에서 자네나 나도 생활속에서 아이들의 소박한 '건널목 씨'가 될 수 있기를 바라더군.

 


 나는 벌써 어른이 되어 건널목 앞에 서 있습니다. 조심하면 괜찮다고, 잘 살피고 건너면 된다고, 이제 내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나는 그런 어른이고 싶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아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홈즈 : 왓슨, 그래도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가장 좋은 건널목은 부모네. 그렇지 않나?

 

왓슨 : 지당한 말씀이네.

 

홈즈 : 부모들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주의깊게 읽는다면 자녀양육서로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네.

 

왓슨 : 자녀양육서?

 

홈즈 : 그렇네. 자녀양육서. 이 책을 통해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네. 건널목 씨가 도희에게, 태희와 태석이에게 어떻게 했는지 보란 말이지. 건널목 씨가 아이들에게 팔자를 고칠만큼 돈을 준 것도 아니고 자기 호적에 입양을 한 것도 아니네. 그저 말벗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을 나눠주었을 뿐 아닌가? 아이들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건 부모의 능력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아니야. 함께 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 그리고 하나 더 내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남의 아이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네. 건널목 씨처럼 아이들 모두에 대한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어른이 되는 거야. 결과적으로 그것이 내 아이를 위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네.

 

왓슨 : 장가도 안 간 자네가 꽤나 통찰력있게 읽어냈군그래.

 

홈즈 : 좀 더 늘어 놓겠네. 반면교사도 등장하지. 먼저 도희의 부모. 서로가 배려하지 않는 부모,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는 부모 아래서 자녀가 예의바르고 내면이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하네. 차라리 개꼬리를 묻고 황모가 되기를 기다리게. 도희는 건널목 씨를 만난게 정말 다행이었지. 앞서 자네도 말했지만 그런 부모는 자녀의 자존감과 정체성에 심각한 상처입혀 친구관계마저도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거든.

 


 도희 부모님은 알까? 자신들 때문에 딸이 외톨이로 지낸다는 걸. 혹시 우리는 집에서만 싸웠다. 그러니 밖에서 친구를 못 사귈리 없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당신들은 어린 시절이 없었냐고.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건,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거라고. 이상한 부모를 두었다는 소문은 동네보다 학교가 더 빠르게 퍼진다고.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121p

 

엄마가 떠나고, 아빠가 떠나고, 그 뒤 육 개월가량을 엄마 아빠 대신 건널목 씨가 두 아이를 보살폈어. 하지만 누군가 보살펴 주는 것과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건 다르잖아. 보살펴 주는 누군가가 있어도 존재 자체로 든든한 부모와는 다르지. 너희 그런 경험 있지? 베개 꼭 쥐고 벌벌 떨면서 무서운 영화를 보다가도, 엄마가 와서 "무슨 영화야?" 하고 옆에 앉으면 무서웠던 게 싹 달아나잖아. 밤늦게 혼자 있으면 멀쩡한 집도 얼마나 무서워. 그런데 엄마 아빠가 띵동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무서움이 싹 가시잖아. 부모는 그런 존재야. 그런 부모가 태석이와 태희에게 사라졌어. 하루하루 얼마나 무서웠겠어.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130p

또, 태석이 엄마가 아이들만 두고 6개월씩 비웠을 때 태석이와 태희가 느꼈을 공포감을 기억해야 하네. 부모들은 자신들의 존재만으로도 자녀들의 강력한 성장공간이 됨을 반드시 마음 속에 새겨야 해.

 

왓슨 : 홈즈, 자넨 장가가면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겠어. 나도 많이 배웠네. 이제 오늘은 이만 할까?

 

홈즈 : 하나만 더 하세, 하하.

 

왓슨 :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나?

 

홈즈 : 중요한 건 아닌데... 문득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작가 김려령의 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직업병이지. 하하. 자넨 누가 김려령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나?

 

왓슨 : 재밌는 발상이군, 홈즈. 간단히 추리하면 작중 동화작가 오명랑이 아닐까? 16페이지에 "'문밖동네'라고 엄청 큰 출판사에서 나온,『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라는 동화, 그거 내가 쓴거야."라고 바로 김려령의 작품을 암시하는 말이 나오니까 말이야.

 

홈즈 : 그렇지, 왓슨. 오명랑도 김려령의 분신일 수 있지. 하지만 함정일 수도 있어.

 

왓슨 : 허, 동화를 읽고 추리를 하다니 나 원...자넨 누구라고 생각하나?

 

홈즈 : 난 말이지.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에 온 나경이가 유력하다고 생각하네. 물론 도희도 배제하진 말아야지. 165페이지엔 도희도 예술고에 진학했고 작가가 꿈이었다고 나오니까.

 

왓슨 : 뭐? 나경이? 걘 초등학교 5학년짜리잖아?

 

홈즈 : 그렇지. 어린 시절의 김려령이지. 95~96페이지를 잘 읽어보게. 나경이는 오명랑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중에 자신이 동화로 써도 되냐고 묻고는 허락을 받아내지. 20년을 넘게 기다린 나경이가 이제야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로 펴낸 거라고 말한다면? 하하.

 

왓슨 : 그 친구 참, 재밌네. 김려령 작가 사인회나 북콘서트 같은 걸 하면 꼭 물어보자구.

 

홈즈 : 그래야겠지? 난 벌써 김려령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네. 오늘 즐거웠네, 왓슨.

 

왓슨 : 동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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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11-05-25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형식의 리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ㅎ

BOOK소리 2011-05-25 17:14   좋아요 0 | URL
정말요? 서재를갖고싶어님 반갑습니다. 제가 쓴 글이 작은 나눔이 된다니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