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명품 - 옛사람들의 일상과 예술에서 명품을 만나다
최웅철 지음 / Storyblossom(스토리블라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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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알 수 없다. 알지 못하면 깨달음도 없다. 깨달음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변화가 없다고 상상해보라. 지루한 삶이 지속되고 고루한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표정 없는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겉은 살았으나 속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지식인이라면 자기 분야를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에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와 관계된 것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전주에서 종가의 장손으로 자랐다는 최웅철. 그가 <생활명품>이라는 경전을 독자에게 건넨다.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익히 알만한 공예품, 그림, 건축물과 음식들을 들먹여가며 조곤조곤 전도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옛 선조들이 옹기와 유기의 첨단기술을 방불케 하는 효용을 알게 되고, 퀼트를 뛰어넘는 조각보에 담긴 조상들의 심성과 정성을 깨닫게 되고, 한지에 녹아있는 가림과 드러냄의 미학을 발견하게 되고, 세한도와 인왕제색도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감동하게 되고, 소쇄원의 건축 내력에 탄성을 지르게 되고, 마침내 전주비빕밥 한 그릇에 담긴 우주와 조우하게 된다. 최웅철의 복음에 설복(說伏)된다.

 

 현대인들이 전통이라면 쭈뼜거리는 이유가 뭘까? 버리기엔 찜찜하고 가지고 있기엔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유지비는 많이 들고 효용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유기는 한나절 이상 매달려 힘들게 닦아야하는 관리과정이 있지만 음식의 유해 성분을 알려주는 척도가 되고 뛰어난 보온력을 자랑한다. 전통간장을 담그려면 늦가을에 메주를 쑤기 시작해 이듬해 8월쯤 햇간장이 완성되니 그 까다롭고 지난한 과정에 손사래를 칠 수 있겠지만 영양과 맛은 양조간장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생활명품>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편리함을 택했다.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버렸다. 신속한 결과만 취하기 위해 과정을 압축하고 생략한 우리.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과정에 녹아있는 선조들 지혜마저 함께 잃어버렸다. 꼬리 대가리를 알 수없는 생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번뜩이는 통찰력과 멀리 보는 혜안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쌓이지 않는다. 선조들이 남겨놓은 전통문화 속에 녹아있는 유산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라기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임을 <생활명품>은 가르쳐 준다.

 

  <생활명품>에는 또 하나의 가르침이 있다. 바로 마니아가 되라는 것. 사람이 뭔가에 매료되면 마니아가 된다. 마니아의 특성 중 하나는 수집이다. 자연스럽게 컬렉터가 된다. 마니아들은 어떤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되면 생겨나는 아집과 광기, 불타는 소유욕과 남의 것을 폄하하는 몰상식은 금물이다. 달항아리를 사 모으다 전쟁통에 전부 깨져버린 경험을 한 수화 김환기는 마음을 비우고 다시는 달항아리를 사모으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진정한 마니아는 대상을 있는 그자리에서 즐기는 사람이며 많은 곳에 그것을 퍼뜨리는 사람이다. <생활명품>은 당신과 내가 가진 명품이 무엇인지 하나 하나 스토리텔링하며 전통문화 마니아로 인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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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뚜아 아저씨]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뽀루뚜아 아저씨 - 2010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 푸른숲 그림책 3
이덕화 글.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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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루뚜아 아저씨>는 제목만 보고 그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제제의 친구 뽀루뚜까 아저씨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맘좋고 친절했던 어느 아저씨의 이야기려니 했다. 근데 웬걸?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참 내 상상력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뽀루뚜아 아저씨>는 천진난만한 아이 다혜와 산 아저씨의 이야기다. '뽀루뚜아'는 다혜라는 어린 아이가 언니처럼 근사한 말을 하고 싶어 지어낸 이름이다. 그 무의미한 이름의 주인을 찾아 나선 다혜는 산 아저씨를 만난다. 마침 이름을 갖고 싶었던 산 아저씨는 무척 기뻐했고 다혜는 '산 아저씨' 를  '뽀루뚜아 아저씨'라고 부른다. 다혜와 뽀루뚜아의 관계가 시작된다. 구름도 꽃도 다른 산들도 그 관계 속으로 들어온다. 하나의 이름이 놀라운 비밀들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은 2010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일러스트레이터상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난 그림에 조예가 없어 무슨 상을 받았다해도 '아 그렇구나.' 정도 생각한다. 그래도 느낀대로 표현하자면 <뽀루뚜아 아저씨>의 그림은 편안하다. 이불로 치자면 푹신푹신한 솜이불이라고 해야될까? 다혜가 안겼던 뽀루뚜아 품, 엄마의 품같은 그런 넓은 품같은 그림들이다.

 

 의미없던 대상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순간은 바로 이름을 가질 때다. 이름이 호명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태고적부터 이름을 짓고 부르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아담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모든 창조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그것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와 관계가 없는 대상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관계의 첫걸음은 이름을 아는 것이며 거기에서 관심이 발아하게 된다. <뽀루뚜아 아저씨>는 이름과 관계, 의미와 창조에 대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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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야 미안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고양이야, 미안해!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68
원유순 지음, 노인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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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다. 주워서 모아 놓기만 한 알밤들은 계절이 바뀌면 맛이 없어져 내다 버린다. 이야기도 그렇다. 내 속에만 있는 이야기는 망각 속에서 사라진다. 알밤도 이야기도 나눠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이에게는 소중한 꿈을 일깨우고, 어떤 이에게는 깨달음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활력소가' 된다.

 

 원유순의 <고양이야 미안해>는 그런 여섯 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주머니에 넣어두고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조금씩 아껴먹고 싶은 군밤같은 이야기들이다. 

 

 표제작 '고양이야 미안해'는 길가에 신음하며 쓰러져 있는 고양이를 보고는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소녀 은선이의 마음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은선이는 애완동물을 만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만 어떻게든 고양이를 도와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동물병원 아저씨에게,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 미나에게도 부탁해보지만 아무도 선뜻 도와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온 은선이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언니에게 도움을 청하고 언니와 함께 고양이가 있었던 곳으로 가지만 이미 고양이는 없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이 바로 은선이의 마음 아니었을까?

 

 '도도야, 어디 가니?'는 진돗개 '도도'의 이야기다. 도도는 진돗개가 아니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면서 진이는 못내 속상하다. 친구와 다투기도 한다. 그런 도도의 행동이 며칠째 수상쩍다. 줄만 풀어주면 산 속으로 냅다 뛴다. 도도를 추격한 진이는 결국 도도가 왜 그렇게 했는지 알게 된다. 도도는 덫에 걸린 오소리를 돌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도도가 상처난 오소리의 다리를 핥아주는 장면을 목격한 진이는 도도가 진돗개라는 확신을 가진다. 우리가 도도만큼만 해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체육시간'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상상을 짧은 이야기 속에 잘 담았다. 한 반에 꼭 한두 명씩 아이들을 괴롭히는 싸움 좀 하는 녀석들이 있다. 그런 녀석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상상. 사고라도 나서 제발 없어졌으면 하는 상상. 누군들 안 해봤을까? 이 이야기에선 지호라는 녀석이 그렇다. 주인공이 지호의 의자에 압정을 가득 뿌려놓기를 바랬는데 이야기는 그저 상상만으로 끝이 난다. 무지무지 아쉽다. 뭐 아이들 세계에서만 그런 녀석들이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조직이나 사람 모인 곳이면 그런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나도 대리만족을 좀 느껴볼까했는데 말이다.

 

 '조나단 알기'는 아이들이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겪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사촌동생 조나단이 찬민이가 사는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 문화가 낯선 조나단. 조나단은 된장찌개에 이 숟가락 저 숟가락이 들어 가는 걸 나쁘다고 말한다.

또 찬민이 엄마가 빨래하려고 자기 가방에 말없이 손댄걸 잘못이라며 화를 낸다. 찬민이는 이런 조나단이 얄밉기만 하다. 가족들이 조나단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데 조나단은 제 생각만 한다고 여긴 것이다. 재채기 하나에도 다른 문화가 있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네 것도 내 것만큼 소중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다.

 

 '우아하고 고상한 우리 할머니'는 손녀 지민이와 외할머니 김숙분 여사의 에피소드다. 일주일간 해외 여행을 떠나게 된 엄마, 주중엔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외할머니는 처음엔 손사래를 치다가 우여곡절 지민이를 돌보게 된다. 지민이는 일주일도 못 맡아준다고 했던 외할머니가 밉다. 외할머니가 그저 동주민센터에서 그림을 취미삼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에겐 관심도 없다고 뾰로통해 있다. 하지만 지민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시고 듣기 좋은 자장가를 불러주시는 외할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민이는 외할머니에게도 화가의 꿈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그림전시회에 방문해서는 외할머니의 행복한 얼굴을 보게 된다. 그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꿈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이들도 그걸 알아야 한다.

 

 '전화 한 통만'은 외국인 노동자의 아픔이 전해져오는 이야기다. 회사를 운영하는 우주네. 핫산이라는 외국인 노동자가 돈을 떼먹고 달아났다. 우주네는 핫산을 무척 괘씸하게 여긴다. 우연찮게 집 앞에서 핫산을 다시 만난 우주. 핫산은 돈을 전부 딸의 약값으로 줬다며 눈물로 애걸한다. 전화 한 통만 하게 해 달라고. 쓰나미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핫산은 가족에게 안부를 물을 길도 없었던 것이다. 우주는 핫산을 집으로 데려와 전화를 사용하게 한다. 순수한 동심이 전해져 온다.

 

 여섯 편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내용이 더 이어질 것 같은데 끝나버린다. 열린 결말이다.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종일관 아이들의 시선을 유지한다. 억지가 없다. 순박하고 순수하다. 

 

그리고 하나의 메시지가 가슴깊이 박힌다. 다른 사람, 다른 대상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면 동화같은 세상도 가능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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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어린이/청소년>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갑신년의 세 친구 (안소영, 창비)

 

 

 안소영이다. <책만 보는 바보>의 작가다. 조선시대 이덕무의 책사랑, 그의 친구들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백동수의 우정을 잔잔히 풀어 깊은 감동을 주었던 책이다. 바로 그 작가 안소영이 이제 갑신년의 세 친구 이야기를 할 모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갑신정변이라는 역사를 배경으로 홍영식, 박영효, 김옥균의 시대를 향한 꿈과 도전을 다루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을 얻을 것이 분명하다. 고전을 새롭게 양념하고 멋지게 조리한 다음 우리 앞에 펼쳐놓는 작가 안소영에 대한 기대가 큰 작품이다.

 

 

 

 

 

 

2.빨간수염 연대기 (김영주 글, 홍선주 그림, 문학과지성사)

 

 

 서점이 없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구했을까? 조선시대 책이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책을 전해주었던 책장수 조생의 이야기다. 조선시대 책을 필사하고 책을 만들어 팔았던 이야기를 <책과 노니는 집>을 통해 알 수 있다면 그 책들이 전해지는 과정이 이야기들은 <빨간수염 연대기>를 통해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책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해지리라 생각한다.

 

 

 

 

 

 

 

3.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오승현, 살림Friends)

 

 

 문자의 전성시대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인터넷 자판을 두들겨 댓글과 덧글을 단다. 통신기기를 이용해 문자를 전송하고 트윗과 리트윗을 한다. 그렇게 사용한 문자가 우리의 입으로 쏟아지고 쏟아진 말들은 흉기가 되어 누군가의 옆구리를 찌르는 칼이 된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그런 현실이 강화될수록 우리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되는 것이고. 제목만 보고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 아이들이 사용하는 아픈 말, 그런 말들을 부추기는 환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말을 고쳐 세상이 낫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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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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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밀쳐 두었던 책이었다. 작가 정유정의 작품을 읽어본 일이 없었다. 블로그 리뷰와 인터넷 기사를 통해 간혹 소식을 접했을 뿐이다. 작가도 작품도 서먹했다. 나와 <7년의 밤>은 서로 선 낯을 익히느라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7년의 밤>은 독자들을 불러 모았다. 올해 3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책은 11월까지, 자그마치 20만부를 찍었다. 곧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했다.

 

 영화로 제작된다고? '그럼 읽어야겠군'하고 <7년의 밤>을 책장에서 빼냈다. 영화가 되기 전에 읽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있었다. 공지영의 <도가니>, 김려령의 <완득이>도 영화로 제작되기 전에 독파했다. 영화는 원작만 못했다. 지면과 화면이라는 콘텐츠의 본질적 차이가 있고 사람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난 원작 읽는 즐거움을 영화에 뺏기고 싶지 않다. 책이 꽤 두꺼웠다. 자그마치 500페이지. 그래, 보물은 깊고 넓은 바다에 숨겨져 있는 법이다. 20만 독자(물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겠지만)를 믿고 책을 펼쳤다.

 

 세 페이지의 프롤로그.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빼곡한 수학 문제를 보는 기분이었다. 범인은 없고 범죄 현장만 남아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고 가장 핵심적인 사건 현장을 전면에 부각시켜 놓았다. 바다 밑에 거대한 몸을 숨기고 날카로운 봉우리만 내 놓은 빙산같았다. 아수라장이 된 하룻밤을 떠받치고 있는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그 인물들이 살아온 삶과 만들어낸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안승환처럼 '결말을 알고' 싶었다.  

 

 <7년의 밤>에는 두 가족이 등장한다. 한 가족은 전직 프로야구선수이자 현재 보안업체 팀장인 최현수, 그의 아내 강은주, 그의 아들 최서원이다. 또 한 가족은 메디털 센터를 운영하는 치과의사 오영제, 그의 아내 문하영, 그의 딸 오세령이다. 대비되는 두 가족 사이엔 보안업체 직원이자 작가지망생이며 수준급 다이버 안승환이 끼여 있다. 이들은 시골 오지 세령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그러니까 사람들이 '세령호의 재앙'이라 부르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현실적으로 두 가족과 안승환이 같은 시간, 동일한 장소에 모여 하나의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은 '지구와 명왕성이 랑데부'할 정도로 낮았다. 백에 하나, 만에 하나 그렇다해도 그건 우연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작가는 그 모든 우연의 가능성을 필연으로 돌려놓았다. 인물 하나 하나의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는 과거사가 섬짓할 정도로 치밀하고, 사건을 연결하는 복선과 암시가 거의 완벽에 가까워 우연이 파고들 틈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을 최현수, 오영제, 안승환, 최서원 등 등장인물 각각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독자에게 들이밀며 '자, 이래도 우연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읽을수록 작가의 필력에 설득당한다. 나중에는 독자 스스로 '당연'하다고 결론짓는다. 정유정에게 박수를! 

 

 작가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 있는 '그러나'를 들여다 보기 위해서 작품을 썼다고 했다. 사이코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오영제, 비루한 삶마저도 벼랑 끝에 몰린 미련한 곰퉁이 최현수, 그 사이에서 결말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안승환, 은행통장을 종교로 믿는 생활전사 강은주, 모든 것을 잃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최서원, 악마의 손에서 기적처럼 탈출했지만 지옥같은 과거에 눌려 사는 문하영. 그들의 '그러나'는 무엇이었을까? 완벽한 자기 세계의 구축(오영제), 자신의 분신같은 아들의 구원(최현수), 사건의 진실 그 자체의 규명(안승환), 중산층 가정으로의 도약(강은주), 자기를 붙들고 있는 세령호 사건으로부터의 자유(최서원,문하영) 뭐 그런 것들이었을까?

 


 운명은 때로 우리에게 감미로운 산들바람을 보내고 때론 따뜻한 태양 빛을 선사하며, 때로는 삶의 계곡에 '불행'이라는 질풍을 불어넣고 일상을 뒤흔든다. 우리는 최선의-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일간지 사회면을 점령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가 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이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을 끝내던 날,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우리들이, 빅터 프랭클의 저 유명한 말처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 작가의 말 중에서


 그래, 보이는 사실 너머에는 진실이 있다. 왠지 의문이 생기고 뭔가 찜찜하다면 99.9%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밝히려는 자가 있으면 감추려는 자가 있기 마련이니까. 나아가 가진 것 전부를 잃고 종국에는 목숨까지 내 놓아야 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지배하려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7년의 밤>에 등장하는 사이코 오영제처럼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서 말이다. 오영제가 아내 문하영과 딸 세령이를 어떻게 대했던가?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자신의 통제 속에 가둬두지 않았던가? 날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 삶을 부지했던 아내와 딸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영제는 그것을 가족의 행복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정한 규칙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세계를 구축하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것을 침범하거나 무너뜨릴 수 없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진실마저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사람들. 두려움에 소름이 돋는다.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공동체는 공포, 그 자체다. 진실을 외면해도, 진실을 향해 나아가도 결과는 절망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진실접근도가 현저히 떨어진 요즘 그래도 공은 우리 손에 놓여 있다. 진실이라는 포수는 끝없이 승부구를 던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승리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혹, 패배할 지는 모르지만 패배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7년의 밤>을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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