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약이 엄마]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삐약이 엄마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백희나의 <삐약이 엄마>는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고양이 니양이가 어쩌다 꿀꺽 삼킨 달걀이 뱃 속에서 부화해

병아리를 낳게되고 이 병아리를 삐약이라 부르며 자식처럼 기르게 되고 주변에서는 그런 니양이를 ‘삐약이 엄

마'로 부르게 된다는 한 토막 짧은 이야기다.


 글을 아는 나는 제한된 텍스트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느라 자못 심각했지만 글을 모르는 4살박이 내 아

들은 그림에 집중하며 니양이의 우스꽝스런 생김새와 어이없는 행동에 줄곧 킥킥거렸다. 또 왜 고양이가 삐약이

를 낳았는지, 왜 고양이는 똥을 모래에 싸는지, 개 집 앞을 지나는데 왜 니양이는 털을 꼿꼿하게 세우고 가는지,

어떻게 삐약이는 지붕에 올라갔는지, 달님은 왜 노란색인지 묻고 또 물었다.  


아들이 태어난 후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면서 난 혼자 흐뭇하기도 했지만 <삐약이 엄마>를 함께 읽으며 아들 녀

석이 나에게 그림을 읽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하, 그래서 '그림, 책' 이구나 하며 깨닫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삐약이 엄마>를 그려낸 작가의 의도를 찾는다. 그것은 바로 '변화'다. 니양이는 다른

약한 동물들을 괴롭히고 먹고 싸는데만 관심있는,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에 따르면 1단계의

생리적 욕구만을 추구하는 고양이였다. 하지만 삐약이를 낳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단숨에 3, 4, 5단계로

뛰어오르게 된다. 애정, 존중, 자아실현의 단계. 어떤 과정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맺었던 자녀는 부모를

성스럽게 만드나 보다. 심지어 주변의 다른 동물들이 니양이를 '삐약이 엄마'라고 부르지 않던가. 성품과 이름마

저 바뀌는 놀라운 결과에 이르는 마지막 장은 한참이나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찾은 의미도 아들의 해맑은 미소와 아름다운 추억보다 더 의미있진 않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들은 백희나 이모(아들을 백희나 작가를 '이모'라고 부른다)의 <달 샤베트>와 <구름빵>을

책장에서 꺼내들고 내 품에 달려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아/어린이/청소년>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메멘토 노라(엔지 스미버트, 한겨레틴틴)

 

 어릴 적에 TV에서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언젠가는 먹는 것 마저 귀찮아진 인간이 하루 세 끼 밥을 먹는 대신 알약 하나로 식사를 해결할 날이 올 것이라는. 첨단과학이 발달한 미래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모르겠지만 <메멘토 노라>에서는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주는 알약'이 소재로 등장한다. 잠깐 '좋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과거의 시간 중에 없애버려도 괜찮은 장면이 있을까하고 되물어보게 된다. 비록 죽도록 잊고 싶은 기억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아마 <메멘토 노라>는 이런 질문에 나름의 답을 준비해두고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 청소년도서다.

 

 

 

 

 

2.TV쇼크(하재근, 경향에듀)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TV를 치웠다. 어느 소아과의사는 만6세 이전에 아이에게 TV를 보여주는 건 미친짓이라고까지 말했다. 비단 이 말때문은 아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내 아이와 책과 관련된 어린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거실을 서재로 꾸민후 나는 영유아들이 읽는 그림책을 무척 사랑하게됐다. 의 목차에는 공격, 지배 같은 말들이 등장한다. TV가 아이들의 두뇌와 마음, 영혼까지 송두리째 영향을 미쳐 싹이 나기도 전에 삶을 황폐하게 만들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하게된다. 평생 영상매체에 노출될 아이들에게 어떻게 TV를 사용할 것인지 알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주변의 젊은 부모들에게 TV를 치우고 그 자리에 책을 두라고 권하려면 TV의 악영향에 대해 조목조목 알고 있어야 설득력이 있지 싶다.

 

 

 

 

3.우리 그림이 들려주는 사람이야기(박영대, 현암사)

 

 내 가정, 내 지역, 내 국가. 나의 소속은 나를 안정시켜주고 내 소속의 역사는 내 존재의 뿌리다. 뿌리가 튼튼하면 정체가 분명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 자신감 속에서 비로소 남이 눈에 들어오고 다른 나라와 그들의 문화가 궁금해진다. <우리 그림이 들려주는 사람이야기>는 선조들의 삶에 대해 우리의 이해도를 높여준다. 특히 그림을 통해 남는 머릿속 이미지는 더 오래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선조들의 삶 끝에서 시작되는 우리는 그림을 통해 이어지는 우리의 이야기를 더 확장해 갈 수 있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퍼펙트 게임 - Perfect Game
영화
평점 :
현재상영


 

 

1. 실화

박희곤 감독의 <퍼펙트 게임>은 야구계의 전설이 된 최동원(2011.9.14 사망)과 선동열(현 기아 타이거즈 감독)의 맞대결 경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1987년 5월 16일 롯데와 해태의 선발투수로 나서서 연장 15회까지 4시간 56분간의 혈투를 치러 한국 야구사의 불멸의 명장면을 완성했다.

 

 

2. 영화

 한마디로 멋진 작품이다. <퍼펙트 게임>은 당시의 야구와 관계된 분위기를 완벽에 가깝게 살려내고 있다. 롯데와 해태의 라이벌 관계, 프로야구단의 팀 분위기, 두 팀 팬들의 광기, 프로야구를 이용해 지역감정을 부추겨 보려는 정치권의 음모, 최동원과 선동열의 보이지 않는 경쟁, 벤치 멤버의 애환까지 챙기고 있다. 두 전설적인 투수가 벌이는 한 경기에 집중하면서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웃음과 눈물이라는 감동도 빠지지 않고 곁들였다.

 

 

3. 전율 - 첫 장면, 1981년 대륙간컵 야구대회 결승전

 최동원은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자기 경기에 대한 책임감은 말할 수 없이 높았고 그것은 때때로 독기로 비치기도 했다. 1981년 대륙간컵 이틀을 거푸 선발로 던지고도 최동원은 결승전 등판을 대비하고 있다. 찢어져버린 손가락의 벌어진 틈에 순간접착제를 부어 봉합하는 장면, 전율을 느끼게 하는 오프닝이었다.

 

 

4. 흠모 또는 트라우마 - 선배 최동원을 롤모델로 삼는 선동열

 대륙간컵에서 선동열은 최동원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보며 자신도 최동원 선배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락커에 그 기사를 붙여두고 흠모한다. 하지만 선동열에게 최동원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 또는 돌아서 지나야 할 산이 된다. 그 시대는 둘의 맞대결 보길 원했다. 야구선수들도, 팬들도, 언론도, 정치권도 모두. 선동열이 모든 것에서 최동원을 앞서지만 '독기'가 없다던 감독도 선동열과 최동원의 맞대결을 허락한다. 선동열은 마침내 락커에 붙은 최동원 선배같은 선수가 되고싶다던 그 기사를 뜯어낸다.

 

 

5. 눈물, 감동 - 박만석(마동석 분), 벤치 멤버의 꿈

 그 시절 프로야구는 있었지만 프.로.야.구.선.수.는 드물었다. 군사정권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는 시작됐다. 대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적자일 수 밖에 없는 프로야구단을 창단했다. 몇몇 특급 선수를 제외하고는 생활마저 불가능한 프로야구선수. <퍼펙트 게임>에서 해태의 벤취 포수 박만석은 이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프로생활 시작하고도 한번도 경기 출장이 없는 선수, 연봉 300만원으로 가족 부양은 꿈도 꿀 수 없다. 치킨집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아내와 선동열의 사인볼을 원하는 아들. 아무리 깜깜해도 꿈의 스위치를 내릴 순 없다. 슈퍼스타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 경기, 감독은 교체포수로 박만석을 투입한다. 9회말 투아웃 1:2로 해태의 패색이 짙은 상황, 박만석의 타석. 해태의 모든 선수와 팬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순간 박만석은 헬맷이 벗겨질 만큼 크게 헛스윙을 한다. 떨어진 헬맷 속에 붙어 있는 가족 사진. 다시 헬맷을 고쳐 쓴 박만석은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에게 솔로 홈런을 날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공은 둥글고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6. 음모 - 스포츠를 이용하는 추잡스런 정치권

 <퍼펙트 게임> 속 등장하는 정치인들. 그들이 당시 최동원과 선동열의 경기를 정치에 이용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정황상 프로야구를 통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국민들을 기만하려 했을 것이라는 심증은 간다. 1987년 5월이면 노태우의 6.29선언 발표되기 한 달 전이니까 말이다. 하여간 그들은 당시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 것이 아쉬웠을 것이다. 한 쪽이 이겨 소요가 커지기를 내심 기대했을테니까.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던 국민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가십거리가 되기를 원했겠지만 전설의 두 스타만 만들어냈을 뿐이다.

 

 

7. 명언 - '일구일생, 일구일사'

 최동원이 경남고 재학시절 그를 키워준 스승이자 감독이 남긴 가르침은 '공 하나에 살고 공 하나에 죽는다'라는 의미의 일구일생 일구일사였다. 최동원은 평생 이 말을 가슴에 새겨 지켜냈다. 야구든, 축구든, 노래든, 글쓰기든 생과 사를 거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감독은 최동원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데 훈련이 끝나고 라면을 함께 먹으며 이런 말도 한다. "다이아몬드는 처음부터 빛나지 않고 갈고 닦아야 우리가 보는 그렇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다시 태어난다"라고. 야구장의 내야를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최동원은 그 내야의 중심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이 되었다.  

 

 

8. 거짓말 - 무쇠팔, 고무팔

 언론과 팬들은 최동원을 향해 무쇠팔이라고 불렀고 선동열을 향해 고무팔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최동원은 선수시절 그 어느 누구보다 완투능력이 뛰어났다. 한 번 던진 경기는 끝까지 책임진다는 영화 속 대사가 말 그대로 진실이었다. 하지만 오른쪽 어깨에 흉하게 남은 선명한 수술 자국과 수시로 병원을 찾아 진통제를 맞으며 공을 던지는 최동원. 손가락이 찢어지고 야구공에 피를 묻혀가며 끝까지 공을 던지는 선동열. 누가 이들을 무쇠팔, 고무팔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망신창이가 된 육신을 다 태운다면 혼신을 다했던 그들의 열정만 고스란히 남지 않을까?

 

 

9. 명장면과 사족 

 최동원과 선동열의 경기가 15회말로 종료된 순간, 최동원은 다시 홀로 당연하다는 듯 마운드에 올라 공을 잡는다. 그때 팀 동료 김용철(조진웅 분)이 한 마디 한다. "야, 너 뭐하냐? 경기 끝났어, 임마."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며 텅 빈 그라운드에 홀로 선 자신을 발견한다. 이 장면은 최동원이 어떤 마음으로 경기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 장치였다. 이렇게 끝났다면 좋았을 걸. 뱀다리들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한다. 팬들이 다른 편 투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가운데 경기장 안에서는 개와 원숭이 같았던 양팀의 선수들이 악수를 하고 화해하는 장면들이 꽤 오래 삽입되어 있다. 할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편집해내고 싶은 부분이다.

 

 

10. 배우들 - Goooood!

 조승우와 양동근의 연기는 실제 인물들의 사투리와 투구폼, 습관을 어색하지 않게 잘 표현해내고 있다. 마동석, 조진웅, 현주니 등 조연급 연기자들- 의 맛깔나는 연기도 일품이다. 이들 때문에 엄청 웃었다.

 

 

11. 기대감

 <퍼펙트 게임>의 성공은 <퍼펙트 게임2>, <퍼펙트 게임3>의 제작을 불러 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최동원의  84년 한국시리즈 4승 신화,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도전과 성공, 이승엽의 56호 홈런 기록처럼 한국프로야구에는 영화화 소재가 여전히 많다. 국내 최대규모의 야구팬들이 그대로 극장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2011년 한국프로야구 누적관중수는 680만을 넘었다. 사상최대다.나는 영화를 보며 2012년 한국프로야구는 올해보다 더 흥행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박찬호, 이승엽의 국내 복귀는 구름관중을 모으며 사상 최초 700만 관중을 가볍게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했다. 영화와 야구의 선순환 시대가 오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웨이 - My Way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김준식(장동건 분) 너무 많이 달렸어. 적당히 달려야지. 경성에서 노르망디까지 징하게 달렸네. 스토리도 없이."

 

 <마이웨이>는 한 장의 사진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노르망디 해변에서 연합군의 신문을 받고 있는 조선인. 그는 독일군복을 입고 있다. 감독이라면 강한 호기심이 일었을 것이고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기 힘들었을 터. 하지만 영화로 다시 태어난 그 독일 군복의 조선인은 수많은 전쟁장면만 찍어대다가 죽는다. 작품 만드느라 애쓴건 알겠는데 수고했다는 말을 못하는 심정이었다.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도, 연인에 대한 가슴시린 사랑도, 조국에 대한 투철한 애국심도 없다. 일단 감동은 둘째치고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스토리가 극히 약하고 사건의 개연성이 너무 부족해서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선인 마라토너 김준식과 일본인 하세가와 타츠오(오다기리 조 분)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애증의 관계를 이어가고 결국 화해로 마무리된다. 전체 설정은 좋은데 그 격동의 시대를 모두 다루려 했다는 것이 문제다. 중국, 소련, 독일을 거쳐 프랑스 노르망디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무려 12,000km다. 오로지 전투신에만 올인한 이유가 뭘까? 스펙타클도 한두번이지 한 영화에서 무려 4번을 보니 지루하다.

 

 또 전지적 작가 시점의 등장이 불편했다. 일본군 장교로 소련군과 전쟁하던 중 타츠오가 후퇴하는 자신의 부하들을 권총으로 사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타츠오는 포로가 되어 소련군으로 독일군과 전투에 투입된다. 이때 타츠오는 소련군 장교가 후퇴하는 아군 병사들을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관객이 직접 타츠오의 과거를 오버랩시키며 뭔가를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감독은 그 장면을 굳이 교차편집해서 오버랩시키는 친절을 베푼다. 마지막 장면에서 타츠오는 준식의 이름을 달고 마라톤에 참가한다. 앞뒤의 정황으로 충분히 관객이 찾아낼 수 있는 마지막 감동마저 어린 시절 준식과 타츠오가 처음 만나 순수하게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앗아가 버린다. 씁쓸하다. 

 

 아쉬움이 크다보니 또 눈에 거슬리는 부분하나 더 지적질하자면 저격수로 등장하는 판빙빙이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장면이다. 여자 저격수가 딱총 하나들고 전투기 한 대를 잡는 장면은 람보를 연상시켰다. 람보는 그래도 기관총이었는데. 적당히 했어야 했다. 

 

 뭐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노르망디에서 재회한 준식과 타츠오가 나누는 대화 장면, 준식이 타츠오에게 대충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서 경성까지 얼마나 걸릴까? 우리 너무 멀리까지 왔지?" 나는 내가 대사를 받아치고 싶었다. "그래, 동건아 너무 멀리까지 왔어. 이건 아니잖아. <친구>에서처럼 부산 자갈치 시장바닥이나 적당히 뛰었어도 되잖아? 하여간 애썼다."

 

 

 

 <마이웨이>를 보면서 작품을 이끌어 가는 건 인물보다 스토리라는 걸 더 절실히 느꼈다. 서사의 힘, 그게 있어야 한다. 같은 사진을 모티프로 한 소설들이 있다. 조정래의 <사람의 탈>, 이재익의 <아버지의 길>, <마이웨이>의 원작으로 알려진 김병인의 <디데이>가 그것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아버지의 길>을 먼저 읽어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유명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됐다. 현장을 발견한 인물은 친구이자 동화작가인 노노구치 오사무와 구니히코의 아내 히다카 리에. 사건을 맡게 된 형사는 가가 쿄이치로로 노노구치 오사무와는 전 직장동료다. 가가 형사는 사건 현장의 트릭과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치밀하게 파고들어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밝혀낸다. 사건의 발생, 탐정의 등장, 트릭과 알리바이 등 고전적 추리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는 하지만 범인을 밝혀낸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누가? 어떻게?'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왜'의 문제는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상자 속에 작은 상자가 연이어 들어 있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상자를 열면 또 상자가 들어 있고 그 상자를 열면 또 작은 상자가 들어 있는 선물. 이번이 마지막 상자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해서 마지막에 들어 있는 선물에 대한 기대감를 극대화하는 포장술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는 하나의 인형 속에 또 다른 인형을 품고 있는 러시아 수제 인형 마트로시카(러시아어: Матрёшка)같다. 범인을 잡고 트릭을 풀었는데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동기때문에 가가 형사는 사건을 종결할 수가 없다. 가가 형사도 독자도 끝을 알고 싶다.  

 

 <악의>는 범인의 수기와 형사의 기록이라는 두 가지 형식의 글로 전개된다. 범인의 수기는 진솔하고 주관적이다. 이는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를 기만하기도 하고 독자를 속이는 기술적 장치가 되기도 한다. 형사의 기록은 냉철하고 객관적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수기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가가 형사가 범인이 구니히코를 살인한 이유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악의>는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로 변모한다. 특히 학교 폭력에 대한 뿌리깊은 기억이 등장인물들의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가가 형사는 범인의 동기를 벗기고 벗겨 최후의 동기에 도달한다. 극한값은 바로 악의(惡意). 그 악의의 형성 원인까지 찾고자 하는 가가 형사의 집요함은 홈즈의 직관적 탁월함을 뛰어넘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죄의 궁극적 동기를 물음으로써 추리소설의 경계를 허물고 일반문학 영역으로 나아간다. 추리소설의 독자든 그렇지 않든 선(善)과 악(惡)의 문제는 모든 인간의 화두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당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중략)... 깊디깊은 악의가 잠재되어 있었고, 그것이 이번 사건을 일으키게 한 동기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악의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중략)...그러한 은혜가 거꾸로 미움을 낳는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당신이 그에 대한 열등감을 품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 <악의> 346p

 

 고전적 추리소설의 형식 안에서 학교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거론하고 인간의 궁극적 내면 속에 잠재된 악(惡)을 파헤치는 <악의>를 통해 당신도 어쩌면 가슴 속 깊은 곳에 봉인된 악의(惡意)와 대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1-12-2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이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 가장 지루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좋았어요.
거의 처음 접하는 그의 책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참 좋았던것 같아요.

BOOK소리 2011-12-21 19:05   좋아요 0 | URL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수준높은 문학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물론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