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와 사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1
제임스 도허티 글, 그림 |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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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꿈이 되고 꿈이 삶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앤디와 사자>는 책과 꿈과 삶을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1.도서관

<앤디와 사자>는 주인공 앤디가 도서관에서 사자 도감을 빌렸다가 돌려 줄 때까지의 이야깁니다. 앤디의 시대는 1930년대 후반. 앤디는 도서관에 갑니다.

 

도서관에서 사자 도감을 빌린 앤디는 사자에게 온통 마음을 뺏앗깁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밥을 먹고 나서도 도감을 읽고 또 읽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으로 즉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서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꿈의 출발점입니다. 도서관은 넓고 깊은 지식의 샘이기 때문이죠.

 

도서관은 수많은 블록을 담고 있는 상자와 같죠. 무한에 가까운 조합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 하나 쌓는 건 우리 몫입니다.

 

서가에 빼곡한 책을 보면 꺼내 볼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돌아서지 마세요. 앤디처럼 사자 도감만 빌려도 되니까요. 시작이 반입니다. 기억하세요.

 

무엇을 원하세요? 어떤 것을 쌓고 싶으세요?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 보세요. 문자의 향기와 책의 기운이 가득할 겁니다. 힘이 날걸요? 꿈은 현실이 될거구요.(도서관 캠페인 아닙니다.ㅎ)

 

 

2.사자 도감과 꿈

앤디의 머리엔 사자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앤디는 책을 놓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사자 사냥 이야기엔 정신을 빼놓고 듣죠. 얼마나 사자를 열망했는지 꿈에서도 사자를 잡으러 갑니다.

 

어린 시절 슈바이처 전기를 읽고 감동했죠. 아프리카에 가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때 꿈 속에서 의사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자면서 꾸었던 꿈과 장래 희망이 똑같았던 시절이었죠.

 

책이 꿈으로 나타났다면 책과 꿈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일만 남게 되죠. 이 공백의 이름은 우리가 늘 마주하고 있는 '바로 지금'입니다. 책 속의 사자, 이야기 속의 사자, 내 머리와 가슴 속의 사자를 눈 앞에 불러내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3.사자  

꿈에 그리던 사자를 만난 앤디. 사자 도감에서 보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듣고, 꿈에서 만났던 바로 그 사자를 진짜로 만났습니다.

 

앤디의 모습이 상상이 되세요? 사자다! 순간 앤디는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무섭고 낯설었기 때문이죠. 사자는 앤디를 따라다니던 개(프린스)하고는 달랐으니까요.

 

저는 <앤디와 사자>에서 사자가 꿈의 화신으로 보였습니다. 처음 본 사자를 '그래, 바로 이거야!'하고 덥석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겁니다.

 

하지만 용감하게 사자에게 다가서야만 기적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4.가시

꿈을 보고 달아나면 꿈도 내게 등을 돌립니다.

 

사자를 본 앤디가 도망친 것처럼 사자도 앤디를 보고 피하려 합니다. 숨이 차서 멈춰선 앤디 앞에 사자는 앞발을 내밀어 보이죠. 커다란 가시가 박혀 있었습니다.

 

꿈을 삶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꿈에 박힌 가시 때문이죠. 누가 사자의 발에 가시를 박았을까요?

 

열망했던 일이 가로 막혔을 때가 있었습니다. 내게 부정의 마법을 걸었던 사람들. 가족, 친구, 동료들입니다. 나를 위한 충고가 꿈에 박힌 가시로 돌아왔을 때 많이 아팠습니다.하지만 꿈은 가시로 내 간절함의 정도를 시험했을테니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앤디는 사자의 발에 누가 가시를 박았는지 묻지 않죠. 온 힘을 다해 가시를 뽑는데 집중합니다. 이제 앤디도 사자도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앤디는 꿈이 출제한 문제를 잘 풀어 냈습니다.(짝짝짝)

 

 

5.서커스

앤디는 사자와 헤어집니다. 가시를 뽑아주고 떠나 보낸 사자. 아프리카 초원이 아니라 서커스단에서 묘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루지 못한 꿈을 저 서커스단의 사자처럼 마음 속 쇠우리에 가두어 둡니다. 보고 싶을 때 가끔 추억을 더듬는 구경꾼이 되죠. 하지만 그건 꿈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갇혀 있던 꿈이 앤디의 사자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마음의 창살을 뛰어 넘는 순간 주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죠. 나이값 좀 해라, 아직도 그러냐, 네가 청소년이냐, 뜬구름 잡지 마라...

 

듣기 싫은 말들... 꿈을 우리에 가둔 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아닐까요? 그 정도 쓴소리는 신경쓰지 마시고 이렇게 말해 보세요. "내 나이가 어때서? 꿈을 이루기 딱 좋은 나이야!"

 

6.용기와 상

쇠우리를 뛰쳐나온 사자와 다시 만난 앤디. 이번엔 도망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자를 덥석 끌어안죠. 서커스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두려움에 떨며 사자를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앤디는 이렇게 외칩니다.

 

“사자를 해치지 마세요! 이 사자는 내 친구예요.”

 

앤디는 성대한 대열 속에서 사자와 함께 행진을 합니다. 소리치고 화내던 마을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냅니다. 용기 있는 앤디는 상도 받게 되죠.

 

저도 꿈을 다시 만났다면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끌어 안아야겠습니다. 소리 높여 '이 꿈은 내 친구'라고 고함치고 싶네요.

 

책도 꿈도 삶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 속의 꿈은, 도감 속의 사자는 일장춘몽이요, 찻잔 속의 태풍입니다. 변덕스런 주변과 하나되지 마세요. 비난은 언제라도 칭찬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요.

 

용기있는 자는 상을 받습니다. 상은 누군가가 주는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꿈을 삶으로 바꾼 자가 받게되는 진정한 상은 '삶이 된 꿈' 바로 그 자체입니다.

 

 

7.마지막 장면과 심우도

영화마다 명장면이 있고 책마다 명문장이 있습니다. <앤디와 사자>의 명장면, 명문장을 꼽으라면 저는 마지막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앤디는 사자도감을 돌려주려 도서관에 갔습니다.“

 

사자 도감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던 소년 앤디. 대출하던 날엔 기르던 개와 함께 도서관에 가더니만 이제 사자를 데리고 반납하러 갑니다.

 

들뜬 마음으로 도석관을 향해 빠른 걸음 내딛던 첫 장면과 많이 다릅니다. 무척 여유롭습니다.

 

보물을 찾은 사람에게 더 이상 보물 지도는 없어도 되죠. 앤디에게 사자 도감은 이제 반납해도 되는 책입니다.

 

마지막 장면을 마주하며 예전에 한 사찰에서 보았던 심우도가 딱 스쳐가더군요. 심우도를 찾아 보았습니다. 작가 제임스 도허티가 이걸 참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꿈꾸는 그 무엇이 사자가 될 수도 있고 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은 꿈을 이루면 나를 찾는다는 겁니다.

 

<앤디와 사자>는 사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앤디가 결국 자기를 온통 사자로 채우더니 몸 밖으로 그 사자를 끄집어내는 이야깁니다.

 

사자를 꿈이라고 할 수 있죠. 바꾸어 말하면 사자는 앤디 자신입니다. 앤디의 내면을 다 차지하고 있던 존재였으니까요.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인간이라면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꿈은 무엇인가?

 

<앤디와 사자>를 읽으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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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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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왓슨이 홈즈의 사무실로 들어선다. 

 

왓슨 : 홈즈, 주말 잘 보냈나?  

 

홈즈 : 나야 뭐 늘 똑같네. 사건 조사로 바빴어. 자네는? 

 

왓슨 : 가족들과 유채꽃이 만발한 강변에 다녀왔다네.

 

홈즈 : 유채꽃이 아직 있더란 말이지?

 

왓슨 : 우리가 거의 마지막이었어. 강둑을 노랗게 껴안은 유채꽃이 정말 아름답더군.

 

홈즈 : 그렇다면... 자네 저기 내 서가에 있는 유리병 보이나? 가져가서 자네 아이들에게 주게. 홈즈 아저씨가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전하고.

 

왓슨 : 아, 유리병이 참 앙증맞군 그래. 홈즈, 이 안에 있는 건 무슨 씨앗인가? 좁쌀만 한데.

 

홈즈 : 마을 저수지 둑에 피었던 유채에서 받은 씨앗이네. 작년 6월쯤 이었을거야. 그 유리병 다섯 개에 들어 있는 씨앗이 몇 개쯤 될 것 같나?

 

왓슨 : 글쎄, 한 병에 적어도 백 개는 넘겠어.

 

홈즈 : 그게 말이야 유채 하나에서 나온 씨앗이야. 씨앗 하나를 심어 다시 받은 씨앗이 수백 개라는 거지.

 

왓슨 : 음, 근데 자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가?

 

홈즈 : 하하, 왓슨. 사실 지난 주말에 사건 조사는 하지 않았네. 요즘 사건 의뢰가 통 없거든. 무료하게 앉아서 보낼 순 없어서... 심혈을 기울여 책을 좀 읽었네.

 

왓슨 : 그러니까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렇게 뜸을 들인거구만. 그래, 무슨 책인가?

 

홈즈 :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네.

 

왓슨 :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면 나도 몇 번이나 읽은 책이군. 자네도 처음 읽었을 리는 없을텐데.

 

홈즈 : 맞네. 아끼는 책이지. 여러번 봤고 말이야. 사건이 없었던 지난 주말, 다시 읽고 또 읽었네.


왓슨 : 그런 줄 알았으면 우리랑 같이 유채를 보러 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래 무슨 중요한 실마리라도 찾았나?

 

홈즈 : 왓슨, 오래된 미제 사건 하나를 해결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은 거의 없었잖나?

 

왓슨 : 그야 그렇지.

 

홈즈 : 자네도 여러번 읽었다고 했으니 <나무를 심은 사람>의 브리핑을 부탁하네.

 

왓슨 : 하, 나 이거 참. 좋아, 재미삼아 한 번 해 봄세.

 

홈즈 : 부탁하네.

 

왓슨 : 그럼 두 가지로 정리해보겠네. 책의 내용과 작가로 나누어서 말이야. 먼저, 책은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한 늙은 양치기가 프로방스 지방의 황무지에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무를 심고 가꾸어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그랬더니 향긋한 바람이 불고 시내에 물이 흐르고 생명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떠났던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와 희망과 행복의 삶을 회복한다는 내용이네.

 

홈즈 : 굿, 귀에 쏙 들어오네.

 

왓슨 : 우리가 이 책에서 주의를 집중하고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은...

 

홈즈 : 오우, 기대되는군. 뭔가?

 

왓슨 : ‘단지 육체적 정신적 힘만을 갖춘’채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만들어낸’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늙은 양치기의 ‘위대한 영혼 속의 끈질김과 고결한 인격 속의 열정’이라네.

 

홈즈 : 그렇지. 책의 맨 끝에 나오는 내용이구만. 엘제아르 부피에의 위대함은 인내와 열정에 더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에서 나온다네. 씨앗을 땅에 심고 나무가 자라는 긴 세월 동안 그는 계속 씨앗과 묘목을 심었지. 좌절하거나 회의에 빠지 않았네.

 

왓슨 : 맞네. 클릭만 하면 결과가 튀어나오는 인터넷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한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미덕이야. 오늘 씨앗을 심고 내일 나무 그늘에서 쉬기를 바라는 사람은 더디게 가는 시간과 계절에 지쳐버리겠지. 할 수만 있다면 마법을 부려서라도 자연의 시간을 단축하려 할테고 말이야.

 

홈즈 : 왓슨, 사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마법을 부렸다네. 드러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 속에 말이야. 월리엄 블레이크가 그의 시(詩) <순수의 전조>에서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속 무한을 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라고 읊었듯이 말일세.

 

그래서 나는 삼십년 후면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아주 멋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일 삼십년 후에도 하느님이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면 그 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는 바다 속의 물방울 같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 34p

 

왓슨 : 이제 작가인 장 지오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네. 지오노는 왜 이 책을 썼을까?

 

홈즈 : 계속 해보게. 


왓슨 : 지오노는 말일세, 정말 책을 읽은 누군가가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주기를 바랐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은 전세계적으로 환경운동단체의 교육자료로 채택됐어.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행동했네. 또 세계적인 화가 프레데릭 바크는 <나무를 심은 사람>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지. 이를 통해 캐나다에서는 나무심기 운동이 벌어져 무려 2억 5천만주의 나무가 심겼다고 하네.

 

 

홈즈 : 빙고, 대단한 성공이군 그래. 드러난 것만 보자면 말일세.

 

왓슨 : 대개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거나 영화로 찍거나 하는데 지오노는 역발상을 했던 것 아닐까?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먼저 써 놓고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거지. 물론 지오노는 이루어질 거라고 확신했겠지만 말이야.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가처럼 말일세.

 

홈즈 : 예언가라...흥미롭군. 하여간 지오노의 황무지는 ‘산업화, 기계화 되면서 희망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마음’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리라 생각하네만.

 

왓슨 : 오호, 예리하군 그래.

 

홈즈 : 정리하면 지오노의 씨앗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이고, 그의 황무지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네. 희망이 심겨진 마음은 행동을 불러 일으키지. 풍요로운 열매가 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지오노는 정말이지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를 골라 심은 거라네.

 

왓슨 : 동의하네, 홈즈. 내 브리핑은 여기까지네. 이 정도로 끝낼 건 아니겠지? 이제 미제 사건 이야길 좀 해보게.

 

홈즈 : 하하, 알겠네. 왓슨, 이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네.

 

왓슨 : 쉽게 이야기하게. 쉽게.

 

홈즈 : 지오노는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네. 그러니까 숲의 회복을 통해 결국 인간 내면에 상실한 그 어떤 것의 회복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은유라네.

 

왓슨 : 허, 어렵군 그래.

 

홈즈 :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사실은 천국의 은유야.

 

왓슨 : 천국?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홈즈 : 천국, 극락, 무릉도원, 파라다이스, 유토피아...뭐라고 해도 좋네.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전한 이상향이라고 보면 되겠지.

 

왓슨 : 아, 그러니까 엘제아르 부피에가 만든 울창한 숲과 그로 인해 회복된 마을 공동체가 천국을 은유한다는 말인가?

 

홈즈 : 물론 그것도 천국의 일부라고 해야겠지. 내가 말하는 천국의 은유는 책 제목에 있네.

 

왓슨 :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제목 이잖나?

 

홈즈 : 그렇지.

 

왓슨 : 거 참, 그럼 나무가 천국인가? 사람이 천국인가? 하, 웃음이 나오는구만.

 

홈즈 : 둘 다야.

 

왓슨 : (어깨만 으쓱한다)

 

홈즈 :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있자니 문득 어린 시절 성경에서 읽은 천국 이야기가 생각나더군. 마태복음 13장이었지 아마. 저기 책장에 있는 성경을 꺼내 한 번 읽어주겠나?

 

왓슨 : 그러지, 여기 있구만.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태복음 13:24)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태복음 13:31~32)”

 

홈즈 : 그렇지. 천국은 사람이고 겨자씨고 나무라고 되어 있지. 무슨 말인지 어려워서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마치 미제 사건을 푼 것처럼 깨닫게 됐지. 지오노도 지오노의 화신인 엘제아르 부피에도 천국 그 자체였던 거야. 그들이 뿌린 씨앗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게. 거대한 나무가 되었지? 그러니까 ‘씨앗이 자란 나무’도 천국이고 ‘나무가 되기 전의 씨앗’도 천국인 거야. ‘씨앗을 손에 쥐고 나무와 숲과 새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도 천국이고. 좀 알아듣겠나?

 

왓슨 : 아하, 완전히 은유였군. 손에 잡히는 천국, 눈 앞에 보이고 만져지는 천국을 지나치다니 말이야. 반전 드라마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데. 아, 그래서 나한테 이 유채 씨앗이 담긴 병을 선물하는거구만.

 

홈즈 : 올 가을에 자네 앞 마당에 천국을 심게.

 

왓슨 : 그러지 내년 봄에 노란게 물든 천국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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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 영어, 미국화, 세계화 사이의 숨은 그림 찾기 라면 교양 4
문강형준 지음 / 뜨인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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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 : 왓슨, 잘 있었나?

 

왓슨 : 그럼, 난 뭐 특별한 일은 없었어. 근데 갑자기 날 부른 이유가 뭔가?

 

홈즈 : 특별한 일이 없었다구? 잘됐군. 무료했겠어?

 

왓슨 : 홈즈, 특별한 일이 없었을 뿐이지 무료하진 않았어. 돌봐야 할 환자가 너무 많았거든.

 

홈즈 : 그렇군. 자네 내가 두 주 전 보내준 사건 자료는 확인했나?

 

왓슨 : 아까 말했다시피 바빴어. 메일 확인은 매일 하지만 자네가 보내준 사건을 눈여겨 본 건 이삼일 전이야.

 

홈즈 : 그래 그럼 사건 내용은 기억 하겠군.

 

왓슨 : 이번 사건은 정말 특이하더군. 우리 영국 국내 사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인이나 절도도 아니고.

 

홈즈 : 맞아, 하지만 이번 건은 정말 흥미롭지 않나? 난 내가 쓰는 이 영어가 한국에서 그런 현상을 일으킨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어.

 

왓슨 :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이건 '믿거나 말거나'에나 나올 만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는 느낌이었지.

 

홈즈 : 어쨌든 나는 이 건을 수락했네. 내가 맡은 사건 중에는 종종 그 배후가 엄청난 것들이 있었지. 직감적으로 이번 건이 그럴거라는 느낌이 들더군. 그리고 배후를 밝혀도 그저 밝히는 것으로 끝날 뿐이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왓슨 : 여보게, 홈즈. 자네는 그게 문젤세. 꼭 뛰어들 필요가 없는 일에 정력을 소모하는 것 말이야.

 

홈즈 : 이번 건은 개인적으로 두가지 이유로 수락했네. 하나는 사건을 의뢰한 한국의 '기러기 아빠' K씨를 순수한 마음으로 돕고 싶네. 또 하나는 내 뛰어난 두뇌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기름칠을 해 줄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왓슨 : 하하하. 틀림없이 두번째 이유가 90%이상 일테지.

 

홈즈 : 이번 건을 상기하는 의미에서 다시 사건파일에 첨부된  한국의 '기러기 아빠' K씨가 보낸 메일을 보자구.

 

 

<사건 파일 : 한국의 영어광풍현상>

 

   친애하는 셜록 홈즈씨

 

  저는 한국의 평범한 40대 가장입니다. 이런 사건도 맡아 주실 지 모르겠지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의뢰합니다. 스팸 메일이 아니니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제 가족은 영어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왔고 또 받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는 정규학교교육으로 10년동안 영어를 배웠습니다. 그것도 영문법만을 중심으로 오로지 대학입학을 위해서 말입니다. 제 경우는 대학 졸업이후에 취업을 하고나서도 꾸준히 영어공부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영어를 쓸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젊은 직원들이 거의 현지인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기때문에 뒤쳐지지 않고 흉내라도 내려면 퇴근후 반드시 영어학원을 들러 수강을 해야합니다. 뭐 집에 일찍 가봐야 아무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아내와 아이들(딸 12세, 아들 10세)은 홈즈씨께서  계신 영국에 있습니다. 왜냐구요? 한 살이라도 어렸을때 영어를 습득하려고 조기 유학을 간 셈입니다. 벌써 2년째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아내와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고 혼자서 살아가는 아버지들을 '기러기 아빠'라고 부릅니다.  제 힘이 닿는데까지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힘이 듭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어느날 저는 '내가 왜 이렇게 가족과 생이별을 해가면서까지 생활해야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도 망설임없이 영어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는 저 뿐만아니라 수많은 한국인들을 불행하게 하고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생에겐 언제부턴가 1~2년 영어권 국가에 어학 연수를 가는 일이 필수적인 대학생활 코스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들이 졸업이나 취업을 하려면 토익이나 텝스같은 공인영어시험 점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소위 '영어몰입교육'을 내건 국제중학교를 만들겠다는 정책도 등장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직장인들도 출퇴근 시간에 영어회화학원에 가서 수업을 받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몇몇 지식인들은 영어를 한국의 공용어로 만들자는 영어공용론은 끈질기게 주장합니다. 우리 말과 글이 있는데 말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또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친(외국인 친구) 만들기'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일부의 일이긴 합니다만 영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혀수술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영어의 배후엔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행복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저 영어 광풍현상들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 홈즈씨라면 밝혀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부디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2010. 8월

                                                                                                  한국의 기러기 아빠 'K'

 

 

 

홈즈 : 다시 읽어 보니 어떤가?

 

왓슨 : 허허. 글쎄 난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네. 다시 읽어도 말이야.

 

홈즈 : 난 내일부터 2주동안 한국을 방문할 생각이네. 의뢰인도 만나고 한국의 영어광풍현상을 확인도 할겸. 자네도 같이 가지 않겠나?

 

왓슨 : 미안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병원을 비울 수가 없네. 미안허이.

 

<2주뒤>

 

왓슨 : 홈즈, 한국은 잘 다녀왔나? 표정을 보니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 같은데.

 

홈즈 :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해야할 지, 일이 너무 잘 풀려 버려서 맥이 빠져버렸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왓슨 : 그렇군. 어쨌든 해결은 된 모양이야?

 

홈즈 : 한국 현지에 가보니 기러기 아빠 'K'가 한 말은 사실이었어.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 또 내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친구도 만났지. 이게 실수라면 실수였어.

 

왓슨 : 왜? 그가 무슨 싫은 소리라도 하던가?

 

홈즈 : 아니야. 그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친군데 추리에도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이름은 문강형준이야. 이 친구에게 내가 한국에 온 이유를 설명하자 그가 자신의 책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를 보여 주더군. 

 

왓슨 : 그 책이 어떻길래?

 

홈즈 : 그 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단숨에 다 읽어버렸지. 기러기 아빠 'K'가 의뢰한 영어광풍의 배후를 거의 완벽하게 추리해냈더라구. 내가 추리하면서 느끼는 지적 쾌감을 이 책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를 읽으면서 느낄정도였어. 세상에는 참 똑똑한 인간들이 많다는 걸 새삼 알게됐고.  그러고는 K씨를 만나 책 한 권을 선물해주었지. 평소에 책 좀 읽으라는 충고도 빠뜨리지 않았고.

         

왓슨 : 그 책 나도 좀 볼 수 있을까?

 

홈즈 : 그렇게 하게. 읽고 나서 내일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

 

<다음날>

 

홈즈 : 자네 눈이 쾡한 걸 보니 책을 여러번 읽었나 보군.

 

왓슨 : 홈즈, 그렇지 않아. 어제 저녁 급한 환자가 생겨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책은 아직 못 읽었네.

 

홈즈 : 그러면 내가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의 내용을 중심으로 문강형준의 추리를 알려줌세.

 

왓슨 : 고맙네, 나는 손 안대고 코풀게 생겼으니. 어디 이야기를 들어볼까?          

 

홈즈 : 먼저 문강형준이 영어열풍현상의 배후를 캐기 위해 잡은 단서는 '영어는 언어다'라는 사실이지.  왓슨, 언어의 두가지 측면을 알고 있나?

 

왓슨 : 하나는 나와 자네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소통의 측면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홈즈 : 언어는 우리의 의식과 정신, 세계관을 형성하지. 바로 나머지 하나인 언어의 권력적 측면이지. 문강형준은 언어의 권력적 측면을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추리하고 있다네. 사라지고 있는 소수언어를 실마리 삼아 언어의 죽음이 환경변화, 정치권력, 경제개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지. 또한 소수 언어들이 소멸할 수 밖에 없었던 더 근본적이고 큰 인류사적이고 세계사적인 원인을 제시한다네.

 

왓슨 : 거창하군. 인류사적이고 세계사적이라. 도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데.

 

홈즈 : 문강형준이 제시하는 큰 그림, 소수 언어가 소멸하거나 적어도 탄압받았던 세계사적 원인은 두 가지야. 농업혁명으로 시작된 유럽나라들의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자본주의네. 인류사의 큰 획을 그은 두가지 혁명을 꼽으라면 아직도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아니겠나? 유럽의 제국주의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식민지 언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죽였다면 산업혁명이후의 자본주의는 세련된 경제적인 압박을 통해 후진국 국민들이 자신의 언어를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버리게 만든 것이지. 결과적으로 세계경제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국가들은  제국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예전 제국주의 국가들이 대부분이고.

 

왓슨 : 한국의 영어광풍현상을 추리해내는 데 너무 먼 이야기 같아.

 

홈즈 : 그렇지 않아. 문강형준은 멀지만 정확한 길을 찾아갔어. 책을 읽어보면 자네도 알게 될거야. 그는 영를 포괄하는 언어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한 뒤, 영어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경로를 추적해 가지. 그런 후 더욱 범위를 좁혀 한국에서의 영어사(英語史)를 분석한다네. 마지막에는 이렇게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들을 한데 모아 전체 그림을 보여주지. 나름의 해결책도 모색하고 있고.

 

왓슨 : 음, 그렇게 치밀한 줄은 몰랐네. 결국 한국 영어교육광풍의 배후로 지목된 자는 누군가?

 

홈즈 : 글쎄...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될 지 모르겠네. 배후는 영어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야. 이는 세계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배후를 밝혀내긴 했지만 특정(特定)할 순 없지. 실체가 너무 커. 다 알려주기엔 시간이 부족하군 그래. 오늘밤에는 꼭 읽어보게.

 

왓슨 : 말이 좀 어렵군.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같은데. 자네는 하룻저녁 단숨에 읽었다고 했지. 아마.

 

홈즈 : 맞아. 왓슨 자네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는 자네같이 역사적 지식이나 경제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읽기가 아주 수월하지. 청소년들도 교양수준의 도서로 충분히 접근할 수 있어.

 

왓슨 : 그래? 이유가 뭔가?

 

홈즈 : 저자 문강형준이 세심하게 독자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첫째로 문강형준은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를 추리해가지만 다양한 매체에서 대중들이 알만한 사례들을 잘 활용하고 있어. 예를 들면 언어의 권력적 측면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을 인용하지. 아주 흥미롭지. 또한 대 문명이 작은 종족을 정복해 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멜깁슨의 영화 <아포칼립소>를 소개하는가 하면, 대니얼 디포가 1719년 발표한 <로빈슨 크루소>를 활용하여 18세기 제국주의가 팽창할 무렵 유럽의 백인들이 식민지 주민들에게 영어교육을 시작한 이유를 분석하고 있지. 뿐만아니라 90년대 초 한국에서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된 현 국회의원 홍정욱의 자전적 미국유학기 <7막7장>, 김성수 감독의 영화 <영어완전정복>, 셰익스피어의 <폭풍>,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균,쇠>도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네.

 

왓슨 : 음. 그렇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지식을 넓혀가는 법이니까. 독자와의 좋은 접점이 되겠군.  

 

홈즈 : 둘째로 생소하거나 전문적인 용어들을 잘 풀어서 설명하고 있지. 책을 읽다가 잘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독서의 맥이 끊기기 쉽거든. 두어 가지 정도를 살펴보자구.  문강형준은 식민주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 "식민주의란 강력한 군사력으로 남의 땅을 정복하여 원주민들을 지배하고, 그 땅에서 생산되는 원자재들을 공짜, 혹은 헐값으로 사들여서 본국의 산업발전에 이용하는 체제를 말합니다. 정복국은 자국의 시민이나 처치 곤란한 범죄자들을 식민지로 보냄으로써 그 땅에 사람과 체제, 문화를 심었지요. '백성들을 심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인 '식민植民'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때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나? 하나 더 볼까? "신자유주의란 국가가 시장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서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게 해주고, 또 무역을 자유화하여 그에 따른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이념입니다" 방송과 언론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개념 정립이 잘 안됐던 말이지만 이젠 알겠지?

 

왓슨 : 이것 말고도 읽기 쉬운 이유가 더 있나?

 

홈즈 : 하나 더 있지. 문강형준이 글을 전개하는 방식과 어투지. 그는 계속해서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네. 마치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듯.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책의 제목부터 의문형이지 않은가? 이유를 설명할 때도 긴 장문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대부분 첫째, 둘째, 셋째 해가면서 병렬식으로 구성해놓고 있어. 뿐만아니라 어투도 경어체를 쓰고 있어. 마주 앉아 상담을 받는 느낌이 들지. 친절한 문강형준씨라네. 

 

왓슨 : 홈즈, 지금 문득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이 책을 내가 꼭 읽을 이유가 있나?

 

홈즈 : 왓슨, 책을 읽건 읽지 않건 선택은 자네가 하는 거야. 하지만 꼭 이유가 필요하다면 몇가지 말해주지. 문강형준식으로 해볼까. 첫째, 이 책은 현상을 보는 시각을 폭넓게 만들어준다네. 지엽적인데 얽매이거나 근시안적으로 보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해 줄걸세. 한국의 영어열풍현상을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아우르면서 제국주의와 언어제국주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그 주범으로 잡아내는 시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둘째, 수많은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함으로써 질문하는 법과 왜 질문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문강형준은 "자연스러워 보이는 현상에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면들을 보게"된다고 했네. 정말 백번 지당한 말이지. 나도 추리에 몰입할 때는 그 사소한 실마리 하나에 수도 없이 질문을 한다네. 셋째,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는 한국 사회에 나타나는 영어광풍현상에 대한 토론재료로 충분할 걸세. 얼마나 할 말들이 많겠나? 직간접적으로 다들 영어에는 한 발씩 걸치고 있으니까 말이야.

 

왓슨 : 오늘밤에 꼭 한 번 읽어봐야 겠군. 마지막으로 문강형준이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에서 한국광풍열풍의 주범으로 지목한 '신자유주의를 동반한 세계화'에 대한 대안은 뭔가?

 

홈즈 : 아까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에서도 봤다시피 세계화는 "경쟁과 승리만이 강조되기 때문에 경쟁력 없는 부분들은 무조건 정리되어 사라져서 결국 우리 삶은 더욱 획일적이 될 가능성이 높"지. 물건, 사람, 기업, 환경 등 경쟁력 없는 부분에는 예외가 없어. 자네같은 의사들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이뤄지면 전 지구적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지. 경쟁의 이면에 놓여있는 우리 삶의 고단함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보자면 영어는 한국에서 더 나은 학교를 가고 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남게 될거야. 영어라는 언어가 하나의 물신이 되어 버리는 거야. 말하자면, 우리가 영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영어가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주객전도현상이 생기는거네. 이런 점에서 문강형준은 "지금이라도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한다고 말하고 있지. 자신의 영역에서 영어에 대한 개선의견들을 개진하라고 독려하고 있어. 영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라고 하는군. 획일화된 세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의미는 없어. 울긋불긋 여러 색깔이 모일 때 아름다움이 생기고, 그 속에서 하나의 색깔이 의미를 가지는 법이지.

 

왓슨 : 자네말대로 배후는 밝혀졌지만 그것으로 끝나버렸군. 다시 공은 기러기 아빠 'K'씨에게 넘어간 셈이고.

 

홈즈 : 아쉬운 일이지. 문강형준은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네. 물론 제시한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지, 정책적으로 채택될지 모르는 일이고 말이야. 하지만 문강형준이 제시한 개인적 차원의 대안들은 충분히 가치가 있어.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킨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난 이번 기회에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에 소개된 책 중에서 <총,균,쇠>(재레드 다이아몬드,문학사상사), <진화하는 세계화>(피터 L.버거, 새뮤얼 헌팅턴, 이이필드)도 읽어 보려하네.

 

왓슨 : 아, 피곤하군. 홈즈, 오늘은 이만 하세. 하여간 고맙네.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를 다 읽어버린 느낌이야. 우리가 쓰는 영어를 비판적으로 엮은 책이라 다소 불편하기도 해. 또 다음 기사를 보면 문강형준의 한국어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될거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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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보다 높은 네팔의 '한국어 열기'(조선일보 2010.8.27자)

 

◆한국어시험 4만2000여명 몰려 10대1 경쟁

 

"우리도 한국어 시험에 꼭 합격해서 언니와 오빠랑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요."

28~29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나라 네팔에서 '고용허가제 한국어시험(EPS-KLT)'이 실시된다.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5일 카트만두 한국어학원에서 만난 니하 머걸(21)과 아유사 머걸(19) 자매는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해 한국에서 2년 넘게 사는 언니(25)·오빠(23)와 합류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봄 휴가 나온 오빠는 "한국은 네팔과 달리 여자도 대접받는다. 한국에서 오빠랑 함께 일하자"고 했고, 자매는 "꼭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둘은 몇 달째 한국어 공부에 매달렸다.

◆10.5대1의 경쟁률을 뚫어라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이고 사는 이 나라에 한국과 한국어 바람이 뜨겁다. 네팔 노동부에 따르면, 머걸 자매처럼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한국어시험에 응시한 사람만 4만2050명. 카트만두와 네팔의 방방곡곡에서 몰려온 젊은이들(18~38세)은 10.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4000명 이내에 들어야만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2004년 고용허가제 한국어시험이 도입된 이후 15개국에서 수십 차례 치러진 한국어 시험 중 이번 네팔 응시자가 사상 최대 인원이고 경쟁률도 최고다. 작년 5월 인도네시아에서 실시된 시험에 4만1756명이 응시한 것이 지금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인구(2억4000만명)와 네팔 인구(2890만명)를 비교해야만 네팔의 한국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주말 사상 최대 규모의 '고용허가제 한국어시험'이 치러질 네팔. 이 나라 노동부와 교민사회는 비상이다. 28일부터 이틀간 약 2만명씩 나눠 시험을 치르느라 28개 학교를 빌리고 시험 감독 요원 2098명, 네팔 경찰 630명이 동원된다. 네팔 현지인 1556명, 서울에서 온 88명, 네팔 교민 약 200명(어린이와 학생 제외) 중 159명이 27일 사전교육을 받고 28일과 29일 시험감독을 한다.

지난 6월 네팔 카트만두 한복판의 다샤라스 스타디움에서 네팔 젊은이들이‘고용허가제 한국어시험’지원서를 제출하는 모습. /네팔 노동부 제공
 
◆시험 합격은 로또에 당첨된 것

네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한국행을 원할까. 한국이 "가장 임금을 많이 주는 나라(most lucrative country)"이고, 그래서 "수많은 네팔 젊은이들에게 한국행은 하나의 거대한 드림"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6월 16일자 히말라야 타임스). 네팔은 인구 2890만명 중 약 300만명이 해외에서 일한다. 이들 중 한국에 간 근로자들은 시간당 최저 4100원씩 하루 평균 10시간, 한 달 25일을 일하면 잔업 수당을 합해 110만~120만원(약 1000달러)을 받는다. 그런데 가까운 인도말레이시아·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아시아·아랍권 나라들의 월급은 200달러(약 23만원) 안팎, 홍콩도 350달러(약 40만원) 정도에 불과해 한국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이다.

"네팔 사람들에게 한국어 시험 합격은 한마디로 로또에 당첨된 거예요."

'네팔에서'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류배상(45) 대표의 말이다. "재작년 3월 시험 때에는 네팔 총리실 직원을 비롯한 전국의 공무원들, 교사와 간호사, 대학생 등 네팔의 엘리트들은 물론, 시골 농부와 심지어 한국어 여행 가이드와 한국 식당 종업원들까지도 합격해 한국에 달려갔어요." 재작년엔 3만1530명이 응시해 6700명이 합격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최소 3년에서 5년(2년 연장 가능)까지 일하고 오면 네팔에선 중산층이 될 수 있다. 네팔 직장인들의 월급이 대부분 한국 돈 5만~10만원 정도인데 그 10~20배의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어학원 난립에 악덕 브로커까지

하지만 한국 열풍에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15~18일 지원서를 접수할 때에는 "수만명이 한꺼번에 몰려든 수험생들이 수십 시간씩 줄을 서 카트만두 복판의 다샤라스(Dasharath) 스타디움을 빙 둘러쌌다"고 '카트만두 포스트'가 전했다. 이들 가운데 10여명은 날밤을 새운 뒤 뙤약볕에서 기다리다가 탈진해 응급치료를 받거나 후송되기도 했다. 네팔의 수많은 관공서와 병원, 여행사 등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또 이때를 전후해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100여개의 한국어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엉터리 수업을 하면서 매달 5000~1만네팔루피(약 8만~16만원)씩, 네팔인들의 평균 월급 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다. 합격자들이 한꺼번에 한국에 가지 않고 수십~수백명씩 2년 반에 걸쳐 분산 입국하면서 "우리를 통해야 한국에 빨리 간다"는 브로커들에게 또 수십만루피씩 뜯기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네팔 노동부 외국고용지원국 마헤시 아차랴(Acharya·32) 총괄팀장은 "앞으로는 적은 인원을 매년 2~4회씩 자주 뽑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최종적으로는 더 많은 인원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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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6-1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 한편 쓰신다면 대박일 듯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영국 유학한 자녀 분은 아직도 그곳에 계세요? ^^
 
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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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삶으로 포장되어 있듯 김려령의 경쾌한 문장 속엔 언제나 묵직한 주제가 감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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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넓다 -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
유승훈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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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온 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알고자 한다면 `지난 시간`의 베일을 한꺼풀씩 벗겨내야 한다. 도시 또한 그러하다. 유승훈의 <부산은 넓다>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든 `발명`이 아니라 시간의 지층 속에서 건진 부산의 진면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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