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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 맘을 몰라 -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푸른숲 어린이 문학 27
재니 호커 지음, 앤서니 브라운 그림, 황세림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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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이곳 지방까지 "앤서니브라운 원화 전시회"를 한다길래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다녀왔다. 손에 손을 잡고 온 우리 같은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어찌나 많던지 전시회에 작품 감상을 하기도 전에 우리 나라 엄마, 아빠들에게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작가의 위상이 대단하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일까? 도서출판 푸른숲주니어에서 새로 출간한 <아빠는 내 맘을 몰라>라는 신간도 제목 만큼이나 큼직하게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이라는 문구가 씌여있다. 나 역시 어쩔수 없는 앤빠(?)인 탓인지 책의 첫장을 넘기면서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그림들을 우선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의 다른 대부분의 그림책들처럼 매 페이지마다 가득한 삽화를 기대했던 나는 이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110여쪽의 페이지 중에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은 7~8컷 정도. 물론 작은 그림들까지 포함하면 그 두배는 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조금은 맥이 빠진 상태로 다시 처음부터 책을 쭉 읽어내려가다 보니 비유적인 문체 속에 드러나는 칼튼 홀 정원의 기괴한 풍경, 주인공 소녀 리즈와 심리, 아흔 한살의 비밀스런 샐리 백 할머니의 모습 등을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지 않은 것이 고맙다 생각되었다. 리즈가 겪는 사흘 간의 일련의 일들을 작가의 삽화가 아닌 나의 머리 속에서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한 구성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 리즈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 정도를 앤서니 브라운이 주석을 달 듯 설명하는 정도의 삽화만 삽입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파괴하지 않고 최소한의 양념으로만 남겨두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앤서니 브라운의 몇 장 안되는데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이라는 부제를 어색하게 여긴 것이 부끄러웠고, 독자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여백을 남기고 구성해 준 데 고마움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멀리, 아주 멀리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아빠와 오빠에 대한 리즈의 가슴아픈 책망

by 앤서니 브라운

 

 

 <아빠는 내 맘을 몰라>의 리즈는 아빠의 오토바이 경주를 위해 낯선 캠핑장을 찾게 되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받은 고급스러운 스케치북 첫 장에 오빠 앨런이 여자의 알몸을 빨간 펜으로 대충 그려놓는 장난을 치고 만다. 자상하지만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는 아빠와 오빠의 태도에 화난 리즈는 캠핑장을 뛰쳐 나가고 우연히 아흔 한 살의 할머니 샐리 백을 만나게 된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세상을 시처럼 표현하는 리즈에게 캠핑장에 끌려오듯 와서 봐야하는 오토바이 경주는 먼 나라 이야기지만 어쩔수 없이 남자 행세를 해야했던 샐리 백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낯설지만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이야기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든 액자식 구성으로 리즈가 샐리 백 할머니를 만난 여행이야기와 어린 샐리가 집을 나와 지금껏 살아온 여정을 풀어놓는 과정이 교차하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빠와 오빠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칼튼 홀 정원에서 인위적으로 다듬어져 뒤틀어진 어떤 조형물보다 자신을 감춰야 했던 샐리 백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리즈는 현재 자기의 모습을 사랑하고 자아를 찾게 된다.

 

어린 샐리 백이 자신을 감추고 남자아이 행세를 하며 잭 백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절 아버지 처럼 그녀를 받쳐주던 칼튼 홀의 수석정원사 컴스터씨는 이렇게 말한다. "인위적으로 다듬는 가지치기야 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악한 기술이다. (...) 대자연을 코르셋 속에 쑤셔 넣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흔 한살의 샐리 백이 리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시다 싶이 난 몸도 마음도 남자가 되고 싶었던게 아니란다. 난 그냥 샐리 백이고 싶었지. 다만 잭의 자유를 가진 샐리 백이고 싶었어."

마지막으로 오토바이 경주를 마치고 캠핑장 바베큐 파티에 참석하는 리즈의 말. " 저는 그냥 제 모습 그대로 갈래요."

이 세 사람의 말 속에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모두 담긴 듯 느껴진다.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지고 꾸며진 살이 아닌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을 살길 바라는 애끓는 작가의 충고. 엄마, 아빠에 의해 학원으로 돌려지고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며 나를 포장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나 또한 그런 것들을 강요한 리즈의 주변인이 아니었나 반성해 본다.

 

 다만 주인공 리즈가 둘러싼 주변인으로부터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이고 아빠는 그 주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제가 인데 번역된 책 제목은 <아빠는 내 맘을 몰라>라고 한 것은 너무 비켜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니 직설적이고 분명한 제목을 지은 것은 좋은데 나라면 리즈의 마지막 말을 인용해 <나는 내 모습대로 갈거예요>로 하고 싶다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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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좋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31
고대영 글, 한상언 그림 / 길벗어린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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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신간이벤트로 "누나가 좋다"라는 길벗어린이 출판사 책을 수령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꺼내들고 표지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멈출수가 없더군요.

제가 장남이기 때문인지 저 역시 어릴적부터 부모님께 누나 하나 낳아달라고 떼 아닌 떼를 쓰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가끔씩 외동으로 크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곤 합니다. "혹시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요. 동생 말고 전 누나(또는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나, 오빠는 이렇듯 아랫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가 봅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책에 고스란히 잘 옮겨 담아 두었네요. 특히 삽화를 보고 있자면 피식피식 웃응이 절로 납니다.
책 읽어주는 누나를 바라보며 눈에서 광채를 뿜어내고,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가서 따로 자야 하는 첫날밤 누나 방 앞에 주저 앉아 엉엉 우는 모습, 놀이터에서 누나와 겨루기를 하며 처음으로 이겼을 때의 감격스런 표정, 꿈 속에서 만난 누나의 예비신랑을 어떻게든 구박해보려는 밉지 않은 난동들.

책을 읽다보니 우리집 꼬멩이들이 자연스레 오버랩됩니다. 5살 누나와 그 누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판박이 처럼 따라하는 3살 남동생.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잘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누나는~~?"이라고 말하는 우리 막내. 할아버지가 사준 로보트보다 누나가 가지고 노는 낡은 인형을 더 좋아라 하는. 그래서 늘 동생을 달래고 챙기면서도 혼자이고 싶어하는 5살 누나.
우리집의 모습이 책 속의 그림과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가족과 성에 대한 그림책을 주로 찾아 읽어주습니다. <돼지책, 내 동생 싸게 팔아요, 책 읽어주는 할머니, 엄마 언제부터 날 사랑했어?,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최고야.> 등등.
그런데 <"누나가 좋다">  이 책이야 말로 제가 5월의 주제로 삼은 가정/가족의 이야기로 딱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너무나 사랑스럽게도 아이들의 마음을 잘 녹여낸 책. 그 책 <누나가 좋다> 때문에 마음 훈훈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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