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서(抄書) : 책의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만을 뽑아서 씀. 또는 그렇게 쓴 책

(국립국어원)



정약용 책 500권의 비밀



다산 정약용은 생전에 500권이 넘는 책을 썼다.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500권은 한 생애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비밀은 바로 초서(抄書)에 있었다. 정약용은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은 옮겨적고 연관된 다른 구절과 배치하는 편집 방법으로 많은 책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이 순수 정약용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약용과 비교되는 조선시대 철학자로는 『송자대전』의 주인공 송시열이다. 송시열은 자신의 생각으로만 책을 써냈다고 한다.





책을 쓰는 방법론에서 서로 전혀 달랐던 우암 송시열(위)과 다산 정약용(아래)



나는 책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다산의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러니까




책에 대한 기록들은 서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논어>의 한 구절은 프랑스 영화감독의 자서전과 묘하게 일치한다. 논어 11편인 '선진(先進)'편의 제목이기도 한 구절이다.




공자가 말했다. 옛사람들이 몸에 익힌 교양은 촌사람식이었다. 지금 사람들의 교양은 완전히 문화인풍이다. 어느 쪽이 진정한 교양인인가 하면 옛사람들 쪽일 것이다. (논어 '선진'편)





'선진'은 과거를 살았던 선배나 부모 세대를 말한다. 문화 혜택도 교육 기회도 경제적 여유도 적을 수밖에 없었던 부모 세대가 지금보다 교양인일 수 있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의 자서전을 보면 단번에 이해가 된다. 영화 문화의 퇴보를 걱정하는 대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문장을 논어 구절과 함께 감상해보자.




맥 세네트(1880~1960, 초기 미국 무성영화 코미디의 두드러진 개척자)의 관객은 이상적인 대중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새로 정착한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노동자 계층이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무성영화는 그들에게 잘 맞아떨어졌다. 이 초창기 관객의 자손들이 오늘날의 관객들을 이룬다. 이들은 대학을 나왔고, 광고, 신문, 주간 영화평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이들이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원칙들은,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오락적임과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홍보매체에 의해 주입된 것이다. 그들을 위해 영화 산업은 영웅주의나 사랑, 혹은 - 무엇보다도 최악으로 - 심리학을 공장처럼 쏟아내고 있다. 

(장 르누아르 자서전, <나의 인생 나의 영화 장 르누아르>)



만약 메모를 하지 않았다면 동양고전과 서양 문화의 아이디어가 접점을 찾는 일도 어려웠을 것이다. 순간 뇌리에 스치다가 이내 사라졌겠지. 책과 책이 연결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르네 데카르트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은 데카르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일단 한 권의 책을 집어들고 읽어보라. 다음 읽을 책이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다.





'김소진 사전'이 준 영감





20년 동안 메모 독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방법. 서지정보와 읽은 시간은 나중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작고한 김소진 소설가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는 '자신만의 데이터'에 관한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소설가 김소진은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었다. 물론 '김소진 사전'이 국어사전의 맥락을 뒤집지는 않았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기 언어를 가지고 쓴다는 게 얼마나 절대적인지 알지 않은가? 나도 김소진을 흉내내 책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우리말을 예문과 함께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어를 아름답게 구사하고 싶으니까.





소설가 김소진은 잘 다듬어진 한국어를 구사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어서 그것을 소설쓰기에 반영했다고 한다.



가끔 독서 메모를 담아 둔 엑셀 파일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많은 분들께 엑셀 파일을 보내드렸다. (엑셀파일 용량이 9MB) 보내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나만의 독서 경험이므로 데이터의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4회독을 하면 내 뇌에 각인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구절들이 나를 붙잡아주는 효과를 준다. (4회독의 방법은 "4번 읽을만한 책을 소개합니다"를 참조) 이 느낌은 장기하가 부른 '그때 그 노래'에 담긴 가사가 잘 살려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독서 메모를 다시 읽을 때는 읽을 당시의 느낌과 맥락이 신기하게 되살아난다. 심지어 10년 전에 읽었던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의 독서메모를 엑셀로 옮기는 작업을 할 때는 마치 어제 책을 읽었던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자기만의 데이터가 주는 신비로움이다.




책 읽으면서 처음 메모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이었다. 그때는 공책 한 권에 메모를 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라는 책이 워낙 난해하기도 했지만 7월과 8월 여름 내내 한 권의 책밖에 읽을 수 없었다. 그때 읽었던 경험이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도움을 주었다. <미디어의 이해>라는 명저를 남긴 마셜 매클루언은 감각에도 계급이 있다고 말했다. 가장 낮은 계급의 감각은 시각이다. 시각은 사기를 잘 당한다. 틱 나한 스님은 '눈'의 사기에 속지 말라고 경고했다. 만약 눈이 어떤 음식의 정량을 바라보았다면 그것의 반만 먹는 게 '진짜 정량'이라는 것이다. 착시도 빈번해서 독서를 교란시킨다.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독서는 가장 약한 감각인 '시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시각을 넘어서야 독서가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공부방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소리 내 읽기를 시키고, 그림책 필사를 시킨다. 시각보다 큰 감각은 청각이다. 그리고 감각 중에서 '장군'에 해당하는 감각은 '촉각'이라고 한다. 마셜 매클루언은 연인들이 키스를 할 때 눈을 감는 까닭은 촉각의 강력한 느낌을 시각으로부터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말했다. 메모 독서는 가장 강력한 감각인 촉각을 이용한 독서 방법이다.




눈으로 책 읽기는 '구경'이지만, 메모하면서 책 읽기는 '참여'다. 책의 기록에 기록으로 동참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독서경험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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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09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우 도전이 되는 페이퍼다.
난 책은 읽어도 정리나 요약을 잘 못하겠더라구.
특히 나이들고 팔이 아파서 항상 건너 뛰게 되더군.
암튼 정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스럽긴 해.ㅠ

승주나무 2018-01-09 13:2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요번에 <공자, 인간과 신화>라는 책을 메모하고 워드까지 하느라 며칠을 소비했어요. 할 때는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책 내용이 가슴속에 나무처럼 솟아난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아요. 정리 고민 잘 해결되길 바래요^^
 





페북 친구인 한 독자분이 나의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베껴 적은 사진을 올려주셨다. 

A4로 두 장이나 베낄 게 있었다는 게 놀랍다. 



천천히 곱씹으며 책을 읽어 나가는 중..
일주일 정도 해보니 참 좋다..

간간히 필사에 내 생각을 적고
어디서나 할 수 있고..

지금 몇 가지 책을 한 번에 읽다보니
속도는 더디지만 효과는 좋다.

요즘 메모 독서법과 관련해서 많이 쓰고 있다. 

저자 열풍과 SNS의 대중화로 SNS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 작가가 된 상황에서, 

쓰기보다는 읽기가 개선되어야만 '책 쓰기'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메모 독서법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실행을 하는 페친의 실천력을 보면서

나의 실천력을 되돌아봤다. 


일단 쓰기로 약속한 글들을 주말께 다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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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07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복이 많은 작가로군!
부럽다.^^

승주나무 2018-01-07 18:15   좋아요 0 | URL
인정, 어 인정^^
 

편협한 독서에 빠지지 않는 방법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입니다. 눈과 귀를 가리면 읽고 싶은 책만 읽게 되고, 그만큼 사고는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철학 서가'를 먼저 찾는 것은 제 오래된 습관입니다. 철학으로 생각이 맑아지면 좋겠지만, 생각이란 게 철학만 읽었다고 맑아지는 게 아니기에 썩 좋은 습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저를 내던지기도 합니다. 실용서 코너로 가거나 시집 코너 등을 두리번거리면서 '뜻 밖의 책'을 찾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좋은 친구의 조언을 듣는 게 가장 탁월합니다.


《서유기》는 임건순 작가의 추천으로 읽었습니다.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쓰면서 원래 《과학혁명의 구조》가 들어갔던 자리에 《서유기》를 대타로 넣을 수 있었던 까닭은 올해 부지런히 읽고 완독했기 때문입니다. 임건순 작가는 저와 거의 동년배로서 요즘 가장 핫한 동양철학자입니다.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등 지은 책 제목만 보더라도 개성이 확연합니다. 그는 '삼국지를 읽을 바에는 차라리 서유기를 읽으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유기》를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200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완역본이 출간되었더군요. 성실히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서유기 이야기를 집대성한 '오승은'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1. 민중의 편에 선 치열한 승리 《서유기》 오승은 정본


《서유기》는 7세기 초엽 당나라 스님 현장 법사가 불경을 가지러 천축으로 여행하였다는 역사절 사실을 토대로 중국인의 상상력을 과감하게 펼쳐낸 흥미진진한 대작입니다.  삼장 본인이 쓴 여행기 『대당서역시(大唐西域記)』와 그의 제자인 혜립과 언종이 쓴 『대당 자은사 삼장법사전(大唐 慈恩寺 三藏法師傳)』이 실제 기록입니다. 하지만 경을 얻기 위해 나라를 떠나 머나먼 여행을 한다는 테마는 당시 정치가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12~13세기 원~명나라 초에는 희곡으로 창작되고 상연되어 크게 인기를 끌다가, 16세기 중엽 명나라 시절에 현존하는 100회본이 완성되었습니다. '중국판 파우스트'라고 할 만합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흩어진 이야기를 모아 엮었습니다. 민중을 교화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사대부들은 삼장법사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갖가지 이야기가 정본이 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오늘날 독자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명나라의 하급관리 오승은의 《서유기》입니다.


오승은(1500? 1504?~1582)은 학관(學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뇌물을 쓰지 못해 번번이 과거에 낙방했습니다. 50세가 되어서야 과거에 합격했고, 60여 세에 이르러서야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을 그것도 2년만에 사직하고 자손도 없이 불우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평생 뜻을 펴지 못하고 가난에 시달렸지만 어릴 적부터 총기가 있었고 학문적 열정을 놓지 않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시대의 참상을 풍자하고 비판할 것입니다. 당시 도교의 맹신자였던 세종은 불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도사들에게 이끌려 밤낮 종교 의식을 치르느라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환관들과 간신이 매관매직을 일삼고 부정부패와 가혹한 세금, 착취가 들끓을 수밖에 없었죠. 여기다가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중앙정보부'를 연상시키는 동창과 서창, 금위위 같은 정보기관이 역모를 색출하고 유언비어를 단속한다는 명복으로 사방에 배치돼 전국의 도로가 공황상태일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서유기》에는 당대의 상황과 권력자들의 행태가 치밀하게 반영돼 있고 가공의 인물과 허구적 상상력으로 표현돼 있기에 저항문학의 고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서유기》 10권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뒤로 갈수록 질리지 않았죠. 저는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에서 손오공을 아이로 놓고, 삼장법사를 부모로 놓고 그 성장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가족관계도 나이를 먹으며 성숙해지는 모습을 다뤘죠. '저팔계'의 역할이 문학작품에서도 가족관계에서도 무척 중요합니다. 가족관계에서는 아이를 괴롭히고 부모의 눈을 가리는 모든 현실적인 요소를 상징합니다. 《서유기》에서도 저팔계는 별 능력은 없지만 스승인 삼장법사를 속여서 손오공을 혼내게 하고 쫓아내게 하는 능력만큼은 역대급이었죠. 현실에서 저팔계 같은 인물이나 요소가 항상 있죠. 최근에 중학생들과 함께 읽어던 《동물농장》이 떠오릅니다. 소설보다 더 거짓말 같고,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가 막힌 사실을 환상의 세계에 담아내는 것이 제 꿈이 되었습니다. 아직 그 세계가 근사하게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서유기》를 더 열심히 읽으면서 다듬어가려고 합니다. 



2. 논어와 공자를 보는 눈을 확 바꿔준 최술


청소년을 위한 논어 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료를 이것저것 읽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인 평사리 김관호 편집주간 님이 뜻 밖의 전화를 주셨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참신한 논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마땅히 최술의 《수사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을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최술이라는 작가 이름도, 책 이름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좋은 논어책을 써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평사리 출판사는 인문고전을 맛깔스럽게 다듬어 대중들이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출판사입니다. 최근 출간된 《군주론》과 《루터의 두 얼굴》이 출판사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듯합니다. 


인터넷서점에 '논어'만 검색해도 국내도서만 800건(인터넷 교보문고 기준)인데 거기다 한 권을 붙이겠다니 왠지 귀가 간지러운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최술의 말을 들으면 미래의 독자를 위한 논어책이 왜 쓰여져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학자들이란 오로지 장구나 익히며 과거 공부에만 매달릴 줄 알았지, 일찍이 의리를 탐구하고 글의 수미를 고찰하여 원류를 변증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의 작업을 보고 크게 놀라면서도 끝내 나의 말이 옳다고 여기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 《수사고신여록》


최술은 공자의 전기를 철저히 고증해 《수사고신록》을 썼고, 공자의 제자들과 공자의 진실을 잘 담아내려고 했던 현자들을 철저히 분류해 《수사고신여록》을 썼습니다. '수사(洙泗)'란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 곡부 북쪽의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라는 두 강의 앞머리를 딴 글자로, 공자는 이 두 강 사이에 학당을 열고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공자나 유가의 별칭으로 '수사'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최술은 논어에 관여했던 당대의 석학들을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논어의 주석가를 꼼꼼히 보지는 않았지만, 제게도 익숙한 이름들이 최술의 도마 위에서 사정없이 비판의 칼날을 받고 있었습니다. 최술에 따르면 우리가 읽고 있는 《논어》는 동한(東漢) 시절 '장우(張禹)'가 엮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생들 사이에서 장우의 명성은 절대적이어서 "《논어》를 배우려면 장우의 《논어》를 읽어라."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합니다. 반고가 저술한 《한서》「장우전」에도 "배우는 사람들이 거의 장우의 《논어》를 따르게 되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논어》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읽는 《논어》에 큰 영향을 미친 장우라는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요? 최우는 장우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습니다. 최술에 따르면 장우는 학식이 비루하고 천박했습니다. 왕망(王莽 : 후한을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건국해 황제 노릇을 하다가 살해당한 관료)에게 빌붙어서 부귀나 보전하려다가 끝내는 왕망의 찬탈과 시해에 동조했죠. 《논어》에는 반역자 공산불요와 필힐이 공자의 방문을 요청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최술은 장우 자신이 스스로를 향한 조롱을 벗어나려고 시도했을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현행본 《논어》를 엮은 장우에 대한 최술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멋대로 《논어》를 다시 엮음으로써 반드시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게 되고, 채택해서는 안 될 것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 《수사고신록》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최고의 학자라고 추앙받는 후한의 정현과 삼국시대의 하안은 장우의 논어에 주석을 보탰고 송나라 대학자 주희까지 거들었으니 왜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실을 압도하고 말았습니다. 주자 이후의 학자들 역시 선배들의 명성에 압도돼 밝은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공자의 시대상황을 정확히 고찰하고 공자의 실체와 맥락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논어》를 비판적으로 읽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사리출판사 김관호 주관님이 왜 전화를 주셨는지 그 깊은 뜻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최술이 신뢰한 책은 《논어》, 《춘추좌전》, 《맹자》였고, 사마천의 《사기》는 중요성은 인정하면서 엄밀하게 따져보고 비판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공자가어》와 《공총자》, 《한비자》 등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일꾼인 아이들에게 어떤 《논어》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아직도 묵묵부답인 상황입니다. 오승은처럼 평생 과거에 낙방하고 벼슬 기간이 짧았던 데다 귀한 아들과 어머니를 동시에 잃고 병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쓸쓸하게 살다 간 최술과 그의 수제자 진리화. 그들이 평생을 매달린 까닭은 후세의 독자인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걷어내고 귀중한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우리의 시간도 소중하지만 미래의 인재인 아이들의 시간은 더욱 소중하기에 동양정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논어》를 제대로 읽고, 졸렬한 실력이지만 조그만 책을 써보려고 합니다. 오승은의 《서유기》를 추천해준 임건순 작가님, 최술의 《수사고신록》과 《수사고신여록》을 추천해준 김관호 주간님께 이 글을 빌려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여러분이 발견한 2017년의 작가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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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0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문화평론가 김갑수.ㅋㅋ
네가 발견한 거에 비하면 한참 격떨어지나...?ㅋㅋ

책은 어떻게 잘 나가고 있나?
올해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건강하고,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항상 깃들길 바래.
새해 복 많이 받아.^^

승주나무 2018-01-04 00:44   좋아요 0 | URL
네. 김갑수 찾아서 읽어볼게요.
격이 어딨어요. 제가 인문고전에 치우친 거죠. 책은 다양하게 읽어야 하잖아요.
누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 유럽 근대의 뿌리가 된 공자와 동양사상
황태연.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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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의 《유교와 도교》, H.G.크릴의 《공자, 인간과 신화》와 곁들여 읽으며 그 합을 추출해내야 정당한 동양과 정당한 서양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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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읽기가 다소 필요한 책이다. 중국이 유럽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과연 이 책이 객관적인 자세로 동양과 서양 모두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klklk 님 100자 평


서양 우월주의자가 서양에 대해서 글을 써서 기분이 유쾌하지 않듯이, 이 책은 동양을 특히 중국을 우월한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 개운치 않습니다.

taekwon 님 100자평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라는 책을 읽다가 잠시 중단했다. 인터넷서점을 검색해서 100자평을 보았는데, 내 생각과 맞는 평들이 있었다. 서양인들이 우리 문화나 철학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막스 베버가 동양을 그렇게 비판할 때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이며,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묵묵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것은 동양인이 근거 없이 동양을 찬양하고, 서양에 대한 비교우위를 강조할 때다.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동서양 철학교류사의 대가인 황태연 교수의 <공자와 세계> 등을 재구성한 책이다. 동서양의 학문 발전에 공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고찰한 책이기에 이번에 청소년 공자 책을 쓰기 위한 목록에 넣고 열심히 읽고 있다. 하지만 감정적인 서술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함께 독서목록에 넣고 분석했던 막스 베버의 <유교와 도교>, H.G.크릴의 <공자, 인간과 신화>를 아울러 보면서 그 합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읽어야 동서양이 관점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공자를 읽을 때는 첫째도 비판적으로 읽고, 둘째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인류에 큰 획을 남긴 위대한 인물인 만큼 지뢰도 엄청나게 많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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