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1] 동양의 유머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다닐 때도 장난꾸러였습니다. 가끔 장난 때문에 크게 혼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강의를 길게 하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강의를 계속 하자 우리반 아이들은 애가 탔습니다. 몇 분 후에 선생님이 강의를 끝내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게임 셋(Game set!(ゲームセット : 경기종료)”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무척 화를 내시면서 나를 앞으로 불러세워놓고 뺨을 계속 때렸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뺨을 맞는 게 수치스럽기도 했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속상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선생님의 강의를 모욕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굴이 붉혀졌습니다. 갑자기 학창 시절의 민망한 기억을 떠올린 것은 동양고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답답함 때문입니다. 동양고전에는 일종의 ‘엄숙함’이 느껴집니다. 공자를 신격화하거나, 지나가는 한마디에 엄청나게 의미를 갖다 붙이는 등 공자의 제자라고 자부하는 학자들이 동양고전을 무척 무겁게 만듭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 독자들이 동양고전에 어렵게 느끼게 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울 때 훈장님께서 했던 농담이 생각납니다. 학문을 깊이 닦은 형제가 공부하던 시절 어떤 책의 글자가 파리 죽은 자국 때문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제는 훼손된 글자가 무엇인지 분석하면서 서로 책 한 권을 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판본을 살펴보니 형제가 주장했던 것과는 전혀 엉뚱한 글자였습니다. 논어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100번도 넘게 읽은 까닭도 바로 '인간 공자'를 바로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석가들의 주석을 떼어내고 논어를 여러 번 읽어보니 논어가 ‘사랑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이 제자들과 허물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달항의 촌장이 공자를 핀잔하여 말했다. “위대한 공자여! 박학하지만 어느 것 하나 명성을 이루지 못했구나!” 공자가 이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할까? 말고삐를 잡을까 아니면 활쏘기를 해야 할까? 나라면 활쏘기보다는 그래도 말고삐를 잡겠다.”
- <논어> 9-2

동양고전에서 유머 코드는 무척 중요합니다. 유머 코드를 잘 잡고 번역을 한다면 일반 독자들이 동양고전을 더욱 사랑할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논어> 전반에도 공자는 유머를 잃지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슬픔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심하고 제자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제자와의 대화에서 일관되게 유머 코드가 흐릅니다. 공자는 다혈질은 아니지만 감정이 무척 풍부한 사람입니다. 감정이 풍부하다는 말은 자기 감정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고 세상 사람들과 호흡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제자가 같은 것을 물어봐도 대답일 달라집니다. 공자는 제자에 대한 애정이 큰 선생님이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에서 ‘골계열전’을 보면 동양의 유머를 볼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유머를 놓지 않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입니다. 제나라의 위왕은 수수께끼를 좋아하고 밤새도록 술 마시기를 좋아했지만 주위의 신하들 가운데 누구도 감히 충고를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당시에 차별대우를 받았던 데릴사위이자 키가 7척((161.7㎝)도 되지 않는 순우곤이 서슬퍼런 위왕에게 수수께끼를 던지며 정신을 차리게 만듭니다. 

순우곤이 위왕에게 이런 수수께끼를 냈다.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대궐 뜰에 멈추어 있으면서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울었다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 사마천, <사기열전> 중 ‘골계열전’

정신을 차린 위왕은 전국의 관리들을 집합시켜 한 사람은 상을 주고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한 뒤 병사들의 사기를 일으켰으며, 한달음에 병사를 일으켜 출정하자 제나라의 땅을 빼앗아 갔던 제후들이 깜짝 놀라 땅을 모두 돌려주었고, 그 뒤로 36년 동안이나 제나라의 위엄이 천하에 떨쳐졌다고 합니다. 제나라 위왕 이야기는 그래도 점잖은 편입니다. 초나라 장왕은 말을 극진히 사랑하여 말이 죽자 대부의 예로써 장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역시 신하들이 벌벌 떨며 말 한마디 못한 까닭은 초 장왕이 “감히 말을 놓고간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명을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맹이라는 음악가는 농담 한마디로 왕의 엽기적인 행동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왕 앞에서 대부의 예는 너무 인색하니 마땅히 국왕의 예로써 장사를 지내야 한다고 한걸음 더 나아간 거죠. 왕이 방법을 묻자 우맹은 해학으로 왕을 설득합니다. 

신은 청컨대, 옥을 다듬어 관을 짜고 무늬 있는 가래나무로 바깥 널을 만들고, 느릅나무‧단풍나무‧녹나무로 횡대를 만드십시오. 병사들을 동원하여 무덤을 파게 하고, 노약자들에게 흙을 져 나르게 하며, 제나라와 조나라의 사신을 앞쪽에 열을 지어 서게 하고, 한(韓)나라와 위(魏)나라 사신을 그 뒤에서 호위하게 하십시오. 사당을 세워 태뢰(太牢)로 제사지내고, 만 호의 읍으로써 받들게 하십시오. 제후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모두들 대왕께서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말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 사마천, <사기열전> 중 ‘골계열전’

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요리사에게 말을 넘겨 세상 사람들 모르게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가정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만큼 권력관계와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갈등이 점점 커져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합니다. 그때 농담은 순식간에 감정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느 날 과음을 해서 집에 늦게 들어갔습니다. 택시에서 조느라 아내의 전화도 받지 못하고 들어가자마자 잤는데, 다음 날 아내의 표정을 보니 전날 내가 무슨 짓을 한지 알겠더라고요. 아이를 혼자 데려다주겠다는 아내를 극구히 따라나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말을 걸지만 좀처럼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어제 일이 생각났는지 아내가 한마디 던집니다. 

“택시기사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봐야 정신 차리지?”

택시 유괴사건이 빈번했던 일을 가지고 돌직구를 던진 것입니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유머를 던집니다. 

“잠시만요. 민준이 아빠, 따귀 한 대 맞고 가실게요.”

아이 엄마는 따귀를 때리는 시늉을 합니다. 나는 엉거주춤하면서 분위기를 따라 줍니다. 우리 부부가 나눈 대사는 KBS의 유명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유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유머 프로그램이나 연예 프로그램을 함께 보는 게 중요합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을 수 있다면 가족 간의 공통 언어가 생긴 것입니다. 난처한 경우나 갈등이 있을 때는 적절히 엮어서 유머를 던질 수 있습니다. 유머도 단련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속을 썩히고 말을 안 들을 때 부모님들은 혼내는 대신 유머를 던졌습니다. 

“아이고, 크게 될 놈아. 얼마나 크게 되려고!”

혼내는 것보다는 농담을 던지는 게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을 줍니다. 유머는 타이밍이 생명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분위기가 썰렁해질 수도 있지만,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은 상대에게 전달되니 남는 장사입니다. 자꾸 자꾸 시도하고 연습하다 보면 가끔 한 번씩 터질 때가 있습니다. 웃음이 함께 하도록 만드는 일은 집안의 가장에게 요구되는 사명이라고 하면 너무 엄숙한가요? 해학(諧謔)은 동양만의 덕목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해학의 대상이 있고, 날카로운 해학이 있습니다. 만약 해학이 없다면 폭력이 이를 대신할지 모릅니다.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는 ‘해학’의 위대함에 대해서 인정했습니다. 

"파리의 웃음은 온 세상에 진창이 튀게 하는 화산의 아가리이다. 파리의 해학은 곧 불똥이다. 파리는 무수한 민족들에게 자기의 이상과 함께 자기의 풍자화들을 안겨 준다. 인류 문명의 가장 숭고한 기념물들이 파리의 빈정거림을 받아들이며, 그 장난질들에 자기네들의 불후성을 부여한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펭귄판 3권), 33쪽)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식 사이에 유머와 농담,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이 없어서 웃는 것도 웃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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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0] 아이와 즐거움을 함께 할 준비가 되었나요?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나는 것은 거의 모든 부모님들의 꿈입니다. 부모 강의를 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받는 질문이 아이의 독서에 관한 질문입니다. 아이의 책 읽기에 관해서 나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안 읽고 다른 것을 좋아했거든요. 심지어 아이 엄마는 ‘당신은 독서 전문가이면서 아이들의 독서는 신경 쓰지 않는 거냐?’라고 따져 물었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다행히 아이들이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자기 전에 한 사람이 다섯 권씩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하는 통에 아이 엄마는 즐거운 비명을 내지릅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책을 좋아할지 몰랐거든요. 내가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책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 중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굳이 책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책보다 장난감이 좋은 게 사실이니까요. 그것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책 읽기’는 아주 자연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했습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이들이 책과의 첫인상을 망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다는 사실입니다. 독서전문가로서 제가 개입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아이 엄마의 노력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제가 한 일이란 ‘기다린 것’입니다. 아이 엄마한테 잔소리 들으면서도 때를 기다리며 개입하지 않은 것이 일이라면 일입니다. 아이의 독서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님들께는 영화 <타짜>에 나오는 대사처럼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서 노력했던 부모님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도록 했던 부모님들 중에서는 성공보다도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안 좋은 경우는 아이가 아예 책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아이가 거부반응을 하는 것은 그나마 행복한 경우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반응을 알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에 순종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깁니다. 부모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줄 알고 만족합니다. 아이의 속마음은 대입 시험이 끝나고 나서 드러납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청년으로 자라난 것이지요.

아이들의 독서를 고민하는 부모님들께 내가 자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가 읽는 책을 함께 즐겨 읽으시나요?”

 

이 질문을 받은 부모님들은 급소를 찔린 것 같은 표정을 보여줍니다. 부모님은 아이의 독서 습관과 책 읽기 취향은 걱정하면서 정작 아이가 읽는 책에 관심을 갖고 함께 읽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데도 말이죠. 아이가 책을 좋아하기를 바라려면 부모는 책 읽기를 즐거워야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떤 것을 깨닫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 <논어> 6-18

 

어느 정도면 부모가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이른바 ‘액션 읽기’를 많이 합니다. 책을 거의 행위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아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콧구멍을 후비면>(애플비)를 읽을 때는 과장된 몸짓으로 아이들에게 큰 동작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었습니다. <엄마가 화났다>(책읽는곰)를 읽을 때는 엄마 입에서 불이 나오는 장면에서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둘째 민서를 마구 들었다가 휘감습니다. 민서는 이렇게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민서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좋습니다. 공자가 주역을 읽을 때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진 ‘위편삼절(韋編三絶)’은 아이들과 그림책 읽을 때 매번 일어나는 일이어야 합니다. 나는 아이들이 예전에 함께 읽었던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할 때 쾌감을 느낍니다. 아빠와 읽었던 시간이 재밌었다는 인정인 셈이거든요. 바로 이런 게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마르셀 모스는 모든 물건에 사람의 영혼(hau)이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물건의 영혼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아이의 손길이 닿는 것을 사랑해주면 아이들을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읽는 책, 자신의 장난감 등을 부모님이 사랑해주면 자신이 사랑을 받는다는 걸 느낍니다. 아이 하나만을 사랑하는 부모의 자세는 ‘외로운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것을 책에 적용하면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은 ‘책을 읽지 않을 때’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시경>의 시를 다 외운다 해도 그에게 정사를 맡겨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나가 혼자 응대하지 못한다면 비록 훌륭하다 칭송을 받은들 어디에 쓰겠는가?”

- <논어>, 13-5

 

부모님이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고 즐겨 읽으면 책의 범위를 ‘일상생활’까지 넓힐 수 있습니다. <칫솔맨, 도와줘요!>(책읽는곰)를 여러 번 읽으면 아이가 칫솔질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칫솔맨과 치약맨 이야기를 하면서 충치 벌레들을 혼내주자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책을 읽는 부모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책을 읽을 때만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을 때 책 이야기를 이끌어내면 아이의 독서 세계는 책을 읽지 않는 일상의 세계까지 넓어집니다. 부모가 책의 이야기를 일상으로 확장해서 이야기하면 아이 역시 일상생활 속에서 책 읽었던 내용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합니다. 독서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읽는 책 속에 갇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표입니다. 

부모님들에게 아이 책 읽는 방법 등에 관해서 질문을 받을 때는 부모님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거의 모든 질문을 던질 때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비슷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 아래의 말이 자신에게 해당하는지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1.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조바심이 나요

2. 누가 속 시원하게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3.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게 좋지만 힘이 드네요. 

4. 누가 내 아이에게 맞는 믿을 만한 독서 목록을 제공해주면 좋겠어요

5. 아이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6. 그림책도 읽고, 자연관찰책도 읽고, 학습만화도 읽고, 아동문학도 읽고 골고루 다양하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7. 내 아이가 책 읽는 태도와 습관이 마음에 안 들어요

8.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읽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위에 열거한 말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이와 부모의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교육과 책에 대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 부모 자신이 많은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 가사가 이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죠.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 계셨죠. 

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아빠' 하고 불렀는데, 

어쩐지 오늘 아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

- 동요 <아빠! 힘내세요> 일부


세상에 걱정 없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신(神)은 아기를 보내주셨는데, 아기 때문에 부모가 더 걱정한다면 얼마나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일일까요? 부모가 아이 앞에서 걱정을 할 때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고민하는 건 어떨까요? 뭐 즐거운 일 없을까, 함께 즐길 만한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 보면 아이가 바로 이 방면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즐거움’은 '아이와 함께', '가족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즐거움입니다. 

 

제선왕이 맹자를 설궁에서 만났다. 왕이 말했다. "현명한 사람도 이러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그 임금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고 그 임금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면, 백성도 그(왕)의 즐거움을 즐거워합니다.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면, 그(왕)의 근심을 근심합니다. 천하와 더불어 즐거워하고, 천하와 더불어 근심하면, 그러한데도 왕다운 왕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 <맹자>, 2-4

 

그러니까 부모의 걱정을 아이가 걱정하게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의 걱정을 함께 걱정하고, 아이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는 것에서부터 행복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해야만 아이들에게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노력을 많이 하는 것은 바깥에서 얻어 온 걱정과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아이들 앞에 가져오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병원 놀이를 하거나 목욕을 할 때는 온전히 거기에만 집중합니다. 이기적인 말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내가 온전히 힘을 받을 수 있거든요. 아이와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뭘까요?

 

자하가 물었다. “‘방긋 웃는 사랑스러운 입술 반짝반짝 아름다운 눈매, 흰 바탕에 수놓은 듯!’ 이 <시경>의 노래는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다음이라는 뜻이다.”

- <논어> 3-8 일부

 

이제 아이 앞에서 왜 리셋(reset)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분명해졌죠? 나는 칭찬놀이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부모님들이 아이에 대한 시선 자체를 바꾸는 일을 해왔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데 상당히 효과가 있죠. 아이들이 한 말이나 손짓, 그리고 표정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여유로운 눈빛’이 필수적입니다. 걱정할수록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치죠. 아이와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심정으로 이제까지 보지 않았던 것을 보려고 해보세요. 시도를 하는 순간 이미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감았던 눈을 뜨는 게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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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19] 진심이 진리보다 앞선다

"아버지가 없는 집이나 싱글 맘들은 어떤 해결책이 있나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부모님들과 육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어떤 엄마가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대답을 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질문을 받는 순간 편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꽤 많다는 것을 제가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군대 시절 일반 사병의 인사를 담당했었는데, 사단에 신병이 오면 작성하게 되는 신상명세서에는 편부모 가정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엄마와 아빠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사랑으로 표현하면 세 갈래의 사랑으로 아이를 안아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갈래는 부모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자기애(自己愛)입니다. 동양에서는 자기애와 이기(利己)를 구분합니다. 두 번째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부부애(夫婦愛)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부모가 아이에게 향하는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끊어지면 아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티모시 윌슨은 미혼모 가정이 겪게 될 시련을 경고했습니다. 

10대 임신부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미혼모로 살아가면서 가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그 자녀들은 아동 학대의 희생양이 되거나 위탁 보호 기관에 맡겨지고, 유치원 입학 전 평균 이하의 일반 상식과 수학, 읽기 능력을 보이고, 고등학교를 중퇴하며, 10대나 청년 시절에 구치소에 수감될 가능성이 전부 높게 나타난다. 그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우나 기타 관련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 티모시 윌슨, <스토리>(웅진지식하우스), 189쪽
※ 설문 결과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가 2년에 한번씩 실시하는 'Youth Risk Behavior Survey'의 자료. 임신 관련 통계 : Stein & St. George (2009) ; Terry-Humen, Manlove, & Moore(2005) ; "Teen Pregnancy" (2008)

10대 미혼모라는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부모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시련이 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사회구조를 이겨낼 만큼 충분히 힘이 강합니다. 항간에 떠돌던 말 중에서, '무병장수(無病長壽)'라는 말이 이제는 '무병단명(無病單命) 다병장수(多病長壽)'로 바뀐 것처럼 불리한 여건이 서로의 사랑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잔병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몸을 돌아보니 오래 산다는 뜻입니다. 축구경기는 11명이 하지만, 한 사람이 퇴장을 당해서 10명이 싸울 때는 어떤가요? 그 팀이 당장 골을 먹고 질 것 같지만, 생각보다 잘 버팁니다. 모든 선수들이 자기 팀의 절박한 상황을 알기 때문입니다. 엄마 없는 아이와 아빠 없는 아이는 세 가닥의 사랑 중에서 한 가닥이 끊어졌지만, 핵심은 가닥이 아니라 '사랑'이지요. 촛불이 세 개면 무척 밝지만 두 개 또는 한 개 있어도 밝을 수 있죠. '빛'이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장자는 도(道)가 펼쳐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도를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알고 안타까워합니다. "삶은 사는 것이고, 생활은 견디는 것이다"는 시인 김수영의 말처럼 가슴을 울리는 장자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비천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물이다. 비루하지만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민중이다. 축소해야 하지만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정사다. 거칠지만 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법이다. 소원해지지만 본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의(義)이다. 친족을 편해하지만 넓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인(仁)이다. 절제로 일을 꾸미지만 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예(禮)다. 중화(中和)일 뿐이지만 바뀌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도이다. 신령스럽지만 유위(有爲)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천(天)(자연)이다.
- <장자> 11-8

나는 어릴 적에 다른 친구들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들은 방황하시고, 어머니들은 고생하셨죠. 원양어선을 타고 며칠 혹은 몇 달씩 집에 머무르지 않지만 집에 함께 있을 때는 나를 많이 사랑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어릴 적에는 나를 많이 사랑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는 사랑해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해 하셨고, 나에게 사랑을 많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랑이었죠. 이것을 다 커서야 알았으니 나는 아버지에게 불효자입니다. 나의 아버지처럼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되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사랑하려는 것은 동양철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사서(四書) 중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중용(中庸)>의 핵심 개념은 '중용'이 아니라 '성(誠)'입니다. 우리말로 '정성'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중용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誠之者)'이 <중용>이 꿈꾸는 인간상입니다. 

정성[誠] 그 자체는 하늘의 도요, 정성을 다하려고 애쓰는 것은 사람의 도다. 정성이라는 것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중도(中道)에 맞고 힘써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어 조용히 도에 적중하니 이를 갖춘 사람은 성인(聖人)이고, 정성을 다하려고 애쓰는 것은 선(善)을 잘 가려내어 그것을 굳게 잡는 것이다. 그것을 널리 배우고, 그것을 따져가며 깊이 묻고, 그것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밝게 가려내며, 그것을 독실하게 행해야 한다. 
- 중용, 18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심리학 연구로 회자되는 카우아이 섬 종단 연구 이야기를 보면 <중용>이 말한 '성(誠)'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 본토의 소아과 의사,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1955년 카우아이 섬에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추적 조사하는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10여년을 조사한 끝에 연구의 첫 번째 결과물은 1971년에 <카우아이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이 아이들이 18세가 될 때까지의 연구결과는 1977년에 두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카우아이 섬 연구의 자료 분석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전체 연구 대상 중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의 아이들에 주목했습니다. 이들은 '고위험군'이라 불리는데, 다른 집단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학교 생활 부적응과 학습장애를 보였고 집과 사회, 학교에서 갖가지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예컨대 상당수가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소년원에 들락거리거나 여러 차례 범죄 기록을 갖고 있거나, 정신질환을 앓거나 미혼모가 되어 있었죠. 그런데 에미 워너 연구원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72명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들 72명은 마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 것이었습니다. 에미 워너는 오랜 연구 끝에 72명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엄마였든 아빠였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이든 간에,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서 아이가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 
- 김주환, <회복탄력성>, 54쪽

삶의 고된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 되는 이러한 속성을 에미 워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온전히 자라나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오로지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부모의 일은 그만큼 무겁습니다. 엄마 없는 아이의 아빠, 아빠 없는 아이의 엄마는 더욱 무겁습니다. 무거운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힘만큼은 온전한 부모님보다 편부모가 가질 수 있는 절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두 부모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분들은 한목소리로 '전전긍긍'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자신의 육아 방법이 틀리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항상 하신다는 어머니, 아이에게 뭔가 부족하지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한다는 어머니. 사랑에는 답이 없으므로 진리보다는 진심이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그 모습을 그대로 바라봅니다. 엄마나 아빠의 판단이 틀리다고 생각하거나 섭섭하다고 생각해도 부모님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아이는 마음을 열거든요. 답을 찾으려고 멀리서 헤매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되돌아보는 것이 아이를 대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임종을 앞두고 이 마음을 잘 정리했습니다. 

증자가 병이 나서 죽음이 가까워지자, 자기 제자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내 발을 펴 보아라. 내 손을 펴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전전긍긍하기를, 깊은 못 가에 서 있듯, 얇은 얼음판을 밟고 가듯 한다.'고 하였다. 이제부터 내 잘못을 면하게 되었음을 알겠다. 제자들아!"
- <논어>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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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18] 가족이 눈치 보지 않게 하려면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라는 책을 쓰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마치 삼각형이나 사각형처럼 다루겠다고 선언합니다. 철학자들은 인간이 시계처럼 ‘자동기계’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동기계 같은 점이 참 많습니다. 인문학의 특징은 포장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인문학이 가족을 바라본다면 사랑이 넘치고 따뜻한 선의가 있는 모습만 보지 않습니다.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동물의 모습도 함께 바라봅니다. 가족 역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누군가요? ‘엄마’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집단에서든 가장 힘이 센 자, 또는 왕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의 질서가 정해집니다. 아이들은 힘이 센 엄마에게 매달리고,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봅니다. 이 글은 가족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을 위해서 썼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권력자가 부러워 보이고,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권력자는 피곤합니다. 견제를 많이 받아 시달리는 일이 많고, 견제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두들 자기 눈과 입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은 참 피곤한 일입니다. 정말 권력을 잘 쓰는 사람들은 권력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 서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입법가 리쿠르고스는 공화국을 세운 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여 정치적 권력을 분산시켰습니다. 리쿠르고스에게 권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후세의 스파르타 사람들은 독재정치가 될 요인이 아직도 강력하고 우세하게 남아 있다고 보고 군주의 폭력과 분노를 제어하기 위해서 왕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작업을 계속 했습니다. 이 중에서 테오폼푸스 왕이 남긴 말이 유명합니다. 왕비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합법적인 권력’을 자식들에게는 더 적게 물려준다고 왕을 힐난하자 테오폼푸스 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더 적어진 것이 아니오. 왕의 권력은 더욱 커진 것이오. 왜냐하면 이 권력이 더욱 오래갈 것이기 때문이라오.”
- 프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축소한 덕분에 스파르타의 왕들은 적들의 시기나 그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반면 스파르타의 이웃 국가인 아르고스나 메세나의 왕들은 자신들의 왕권을 너무나 철저하게 고수하며, 대중들의 요구에 조금도 굽히지 않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사람은 단 두 사람만 모여도 권력관계가 생깁니다. 가족에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울 리는 없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절대 권력자의 복종’을 강조합니다. 절대 권력자 역시 복종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복종하는 대상이 없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폐해를 살펴볼까요?

“법조문에 따르면 당연히 유죄입니다만, 폐하께서 현명하게 헤아려 살펴 주십시오.”
- 사마천, <사기열전>, ‘혹리열전’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형법을 담당하는 관리가 사형이나 최고형을 내리기 전에 황제에게 허락을 받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교수형을 처할 때 대통령 결재를 맡거나, 미국에서 사형을 처하기 전에 주지사의 사인을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마천이 살던 시대에는 가혹한 관리들이 많이 있었는데,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법조문을 고무줄처럼 바꾸는 폐해가 많았습니다. 법을 엄밀하게 집행하지 못한 관리의 태도도 잘못이지만, 애초에 이런 구조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절대권력자인 황제의 잘못입니다. 집안의 권력자, 예컨대 ‘엄마’가 권력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아이들을 혼낼 때 엄마가 일일이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엄마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이렇게, 저런 경우는 저렇게 판단하기 쉽습니다. 엄마의 판단이 일관되지 않으면 판단에 영향을 받는 가족이나 아이들은 예측을 하기가 참으로 어려워집니다. 이것은 정말 피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엄마 역시 복종하는 원칙이 있다면 엄마의 눈치를 보는 일은 사라집니다. 
제가 알고 있는 노부부는 수십 년 동안 자식을 기르면서 두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처 번째 원칙은 “아이가 잘못을 할 경우 아이의 해명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아이가 큰 잘못을 했을 때는 혼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큰 잘못을 하는 순간 아이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부의 자제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가지 원칙 이야기를 했더니 “어릴 적에 잘못을 할 때 항상 이야기를 하게 해서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라고 답하더군요.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진 것입니다. 원칙의 생명은 집행입니다. 의지를 가지고 지키려고 해야만 원칙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원칙이 깨지면 잘못을 인정하고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과정을 통해서 빛이 날 수 있습니다. 
원칙은 ‘명분’과 같습니다. 명분이란 어떤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마땅한 것을 말합니다. 정치 역시 ‘명분’과 같습니다. 권력-원칙-명분의 관계가 깨지면 어떤 혼란이 찾아오는지 <맹자>에는 분명히 소개돼 있습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자,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천 리를 멀다고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셨으니, 장차 어떤 방법으로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꼭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신다면, 대부들은 어떻게 내 고장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며,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내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여, 위아래에서 서로 이익추구를 하게 되면, 나라는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만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에서 그 나라의 국왕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의 제후며, 천 량의 병차를 소유한 나라에서 그 왕을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 량의 병차를 소유한 고장의 대부입니다.”
- 맹자1-1

아이가 아직 어린데 ‘권력관계’를 벌써부터 생각해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부모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두어 살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잘 지켜보십시오. 힘에 의한 위계질서가 보일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권력관계의 구조를 비켜갈 수 없습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원칙과 명분을 가르치고 부모가 몸소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면 가족을 지배하는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민주주의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 체제를 말합니다. 부모 역시 견제 받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차 크게 어떤 일을 하려는 임금은 반드시 소환하지 못하는 신하가 있습니다. 상의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찾아갑니다. 덕망을 존중하고 도의를 즐기기를 이와 같이 아니한다면, 그와 더불어 어떤 일을 하기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탕왕은 이윤에게 먼저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왕이 되었고, 제환공은 관중에게 배운 뒤에 신하로 삼았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천하의 각 토지는 비슷하고 덕행도 비등한데, 서로 뛰어날 수 없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가 가르친 사람을 신하로 삼기 좋아하고,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탕왕이 이윤에게, 환공이 관중에게도 감히 소환하지 못하였습니다. 
- 맹자4-2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가족을 지배하는 원칙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칙을 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부가 서로 협의하는 경우가 있고, 시간을 두고 원칙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원칙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리 가족은 아이들과 함께 세운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함부로 도와주지 않고, 아이가 반드시 도움을 청해야 도움을 준다는 원칙이 그것입니다. 막내 민서는 완력이 약하다 보니 차 문을 여는 게 서툽니다. 내가 차문을 열어주려고 했더니 민서가 화를 냅니다. 나는 힘 약한 아이도 스스로 하려고 한다는 걸 알고 그때부터는 함부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차 문 열기 힘들어?’ ‘도와줄까?’ 물어봅니다. 아이가 도와주라고 하면 그때 도움을 줍니다. 동의의 절차를 밟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자주 물어보고 의향을 물어보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아이가 과자 봉지를 뜯는데 힘들어 하면 힘든지 물어보고 도와줄까 물어봅니다. 어떤 날은 아이가 힘들어도 스스로 끝까지 과자를 까려고 노력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날도 있습니다. 부모는 지레짐작하지 않고 질문을 하면 그만입니다. 이 원칙을 한동안 실천했더니 아이들이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원칙을 정하되 자주 물어보는 것 역시 하나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권력관계, 명분과 원칙은 어린 아이들의 생활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민주주의 감각을 키워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민주주의를 책을 통해서 배웠지만 이미 아이들은 민주주의 감각이 타고 났으니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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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17] 부모의 빠른 반응이 아이를 망친다


예전에 육아 초기에는 아이들 보기가 힘들고 귀찮아 TV를 자주 틀어줬습니다. 요즘은 같이 있을 때는 TV를 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침 잠이 많은 아이들을 깨울 때는 어쩔 수 없이 TV를 틉니다. 아침에 아이들 깨우는 거 정말 힘들어요. 자는 아이를 깨우면 짜증을 내거나 울기 일쑤입니다. 단잠을 깨웠기 때문이죠. 아침에 울면 짜증으로 하루를 시작하니까 조심스럽게 깨우려고 노력합니다. 아이 옆에서 발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면 아침 요리를 하고 있던 아이 엄마에게 견제 들어옵니다. 

“아이 안 깨우고 뭐해? 아이랑 자는 거야!?”

TV를 틀면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니까 잠자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납니다. 이제부터는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만화 나오다가 광고가 지나가면 저거 갖고 싶다가 사달라고 하죠. 그러면 대답이 궁해집니다. 안 된다고 하면 또 ‘아빠 미워!’ 하면서 삐치고, 그렇다고 다 사줄 수도 없는 이야기고. 가끔 슈퍼마켓에 갈 때도 또봇 장난감 사 달라, 풍선껌 사 달라 요구가 끊임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울고불고 할 때가 있죠. 어머니들 마트에서 그런 경험 있으실 거에요. 아이들 마트 바닥에 드러눕고 엉엉 울면서 사 달라고 떼를 씁니다. 옆에 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빨개집니다. 활극도 이런 활극이 없죠. 할 수 없이 아이가 사 달라는 것을 사주는 부모님들도 있는데 난는 그럴 때일수록 사 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노자를 비롯한 많은 심리학자들이 조언입니다. 

거두어들이려고 하면 반드시 베풀어야 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 해야 하고 장차 무너뜨리고자 하면 반드시 세워야 하고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줘야 한다. 이를 일컬어 보이지 않는 빛이라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고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날 수 없으며 나라의 이로운 그릇은 남에게 보이면 안 된다.
- 노자, <도덕경> 36장

한 심리학자는 어떤 사람을 순식간에 불행해지게 하는 방법은 그 사람에게 거액의 돈을 건네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이나 하듯 미국의 거액 복권 당첨자들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함부로 무엇인가를 사주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사줘야 할까요? 그것을 사기까지의 과정을 만드는 게 좋습니다. 그 과정이 채워지면 사줘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예컨대 ‘크리스마스 되면 갖고 싶은 거 사줄 거야.’ 또는 ‘선행카드 10장이 되면 사주는 거야.’ 하고 룰을 정하면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아이는 물건을 쉽게 생각하고 교만한 마음을 품기 쉽습니다. 맹자는 흐르는 물에 비유했습니다. 

서자 : “중니(仲尼 : 공자)는 자주 물을 칭찬하면서 ‘물이로다. 물이로다!’ 하셨는데, 무엇을 물에서 취한 것입니까?”
맹자 : “근원의 샘물은 철철 넘쳐 흘러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움푹 들어간 곳을 채운 뒤에 흘러나가 사해에 퍼져 나가니,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이것을 취했을 뿐입니다. 진실로 근본이 없다면 7,8월 사이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려 배수로가 다 차도, 그것이 말라버림에는 서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성이 실정을 지나치면, 군자는 이를 부끄러워합니다.” 
맹자8-18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의 하나가 바로 맹자의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참 재밌는 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걸어갈 때 명령을 내리는 것은 머리이지만, 실제로 거기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발이란 말이죠. 하지만 머리는 사람만큼 이기적이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발이 고생하는지 잘 몰라요. 물이 가장 먼저 닿고 채워지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님들도 자주 헷갈릴 때가 많지요. '아이가 공부하는 게 아니라 아이 마음이 공부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아이의 마음이 편안하고 집에서 존중과 사랑을 받아서 자존감이 채워지면 알아서 공부를 하는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상황논리와 욕심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아이를 불편하게 하거든요. 동양철학에 회자되는 선비들이 조신하는 까닭은 행동한다는 게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죠. 아이가 울 때 반응을 너무 빨리 하는 부모님,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덮어놓고 뜯어말리기부터 하는 부모님, 아이 또래 부모님이 학원이나 과외를 받는다고 하면 안절부절 못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습니다. 강의를 할 때 어머니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자신이 찜해둔 책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하는 점입니다. 예컨대 “아이들이 마법천자문을 좋아하는데, 그것보다 한자 설명이 잘 된 책이 하나 있던데 사야 할까요?” 또는 “어린 아이들 글자 공부하기 재밌게 나온 책이 있다던데” 하며 물어봅니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한 가지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물어보면 저는 일단 ‘사지 말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걸 사는 과정에서 일정한 품을 들여야 하는데, 그만큼 품을 들였다면 엄마가 대답을 알고 있어요. 질문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하지만 엄마가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품을 들이지 않았다는 말이거든요. 품을 들이지 않았다면 사는 것보다 사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죠.”

우리 집에서도 가끔 전집을 들일 때도 있고 교구를 마련하기도 하고 아이를 위해서 교육 프로그램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덮어놓고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고리타분한 일이죠. 하지만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충실히 지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효과를 알아보고 카페 검색해서 구매했던 엄마들의 반응을 살펴보거나 직접 물어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구매를 하면 후회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 없듯이, 흔들리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나도 역시 첫째 민준이가 네 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손가락 빨 때, 둘째 민서가 어린이집에 가서 불평하고 친구들 괴롭힌다는 얘기 들을 때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부모의 마음이 느리냐 빠르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 때 부모가 바로 대응하는 것은 어쩌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기다려 주는 사람인데 아이와 같이 빨리 반응하면 아이는 더 불안해지거든요. 어떤 문제를 발견했다면 시간을 두고 그게 진짜 문제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지 차분히, 하지만 객관적이고 철저하게 분석을 하면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행동하고 개입하는 것은 치밀한 계산의 결과이어야 하는데, 서둘러 행동하면 항상 대가가 따르더라구요. 부모가 아이를 관찰해서 어떤 문제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하고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 문제가 진짜 문제인지 검증하는 과정 또한 필요합니다. 
한 어머니에게 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국민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예전에 ‘주택은행’이 있었거든요. 그 어머니가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대출을 알아보러 은행에 갔는데, 주택복권 당첨금 13억원 주인에게 당첨금 받아가라는 안내판을 봤대요. 그걸 보면서 ‘13억이 나한테 온다면?’ 하고 고민을 해봤대요. 어머니는 지금 당신능력에 13억원을 조리할 방법이 없고, 그 당시 집 사느라 대출받은 7천만원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13억이 자신에게 온다면 적재적소에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덜컥 들더라는 거죠. 
말이 나온 김에 ‘부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유가(儒家)를 이야기할 때 지나치게 입신양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비들은 그 폐해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꿈 중에는 ‘돈 벌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꿈이 참 많습니다. 돈을 번다는 게 어떤 건지, 유명해지는 게 어떤 건지를 알려주는 장자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언젠가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장주(莊周)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후한 예물로 그를 맞아들여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주는 웃으며 초나라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千金)이라면 막대한 이익이며, 재상이라면 높은 지위이지만, 그대는 천자가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몇 년 동안 잘 사육되다 수놓은 옷이 입혀져 사당으로 끌려들어가오. 그때 가서 하찮은 돼지가 되겠다고 해봤자 어찌 그렇게 될 수가 있겠소? 그대는 빨리 돌아가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마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거워할지언정, 나라를 가진 자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평생 벼슬하지 않아 내 마음을 즐겁게 하고자 하오.’”
- 사마천, <사기열전> ‘노장신안열전’

우리가 만약에, 조금 더 불행해졌다면 ‘부자 되세요.’ 광고 카피도 일조를 했다고 생각해요. 한 때 우리의 인사말이 ‘부자 되세요’였던 거 기억하시죠. 사람이 괜히 깜냥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니죠. 어떤 사람은 1억원을 운용할 수 있는 깜냥, 어떤 사람은 10억원 깜냥, 또 어떤 사람은 조 단위의 깜냠 등등이 있겠죠. 그 깜냥을 넘어가면 사람은 살 수가 없어요. 만져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할 수 있지만, 만져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는 게 동양철학이죠. 깜냥은 한계가 있지만 욕심은 한계가 없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합의하는 행복과 부유함의 기준은 ‘균형’입니다. 우리 가족이 연간 얼마 정도의 수입을 목표로 하면 좋을까요? 내 아이가 자라서 연간 얼마 정도 벌면 좋으신가요? 끝으로 부유함과 행복에 관한 한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어렵지만, 망치기는 참 쉽습니다. 

<행복연구저널 The Journal of Happiness Studies>은 1년에 5백만 달러를 버는 사람들이 1년에 10만 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눈에 띄게 행복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돈이 행복지수를 증가시키는 경우는 오직 하나, 빈곤에서 벗어나 수입이 5만 달러 정도까지 오를 때뿐이다. 1년에 5만 달러 이상을 버는 경우, 재산과 행복은 제 갈 길로 간다. 
- 존 메디나, <내 아이를 위한 두뇌코칭>(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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