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귀를기울이면님의 "모바일 종결자,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자본주의에도 있고 저널리즘에도 있는 이것의 공통점은 "경마"인 것 같습니다. "경마"는 악마의 유혹입니다. 알라딘은 악마의 유혹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알라딘 하면 "구매왕"이 떠오르고, 그 옆에 괄호로 (악마에게 혼을 팔린 알라딘)이라고 써넣습니다. 알라딘이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로운 무기를 갖출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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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서재에 올리는 ttb2 광고에 대해서

오랜만입니다.  

서재를 간만에 꾸미면서 최근 읽었던 책을 ttb2를 통해 올려 놓았습니다.
블로그에 광고를 올린다는 것은 "클릭"을 유도하고 "구매"로 연결시키는 것이 최고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ttb2나 구글 애드센스 같은 광고는 "클릭"에 치중돼 있고,
구매로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ttb2의 포맷을 건드려야 하지만,
책의 물류와 정보 유통 사이트로서
책에 관한 정보를 올릴 수 있게 한다면
구매와 더 가까워질 거라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제가 올려놓는 책에 멘트나 링크를 걸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된다면
맘 놓고 책 링크 이미지를 올려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지 오웰의 책 5권을 올려 놓았는데, 책 이미지나 그 옆에라도
올려놓은이가 책에 대해서 정보를 소개할 수 있도록 공간을 허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이런 계획이 있으신가요?

ttb2가 광고와 정보를 동시에 만족시켜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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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정치인 유시민에게 종이컵 하나 선물한다

 
▲ 3월 30일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유시민과 독자의 만남이 있었다. 이날 진행자로 나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욕을 많이 봤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제도정치 경력 6년차의 휴업상태라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정치인'이다. 3월 30일 오마이뉴스와 알라딘이 공동으로 주최한 작가와의 대화에 나온 유시민을 어떻게, 어떤 존재로 보아야 하는가는 나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여의도 정치에 대한 그의 반감이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궁금했고, '관조자'로서 이번 국면에서 그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새 술을 담기 위해 유시민이 새 부대를 장만했는지 보고싶었다.

"대한민국,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유시민, 오마이뉴스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다. 작가나 지식인의 말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 <창작자유의 조건>《김수영 산문전집》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 나는 유시민이 너덜너덜한 정치인의 옷을 아직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그가 사용하는 용어의 모호함에서도 발견된다. '지식소매상'이라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만큼이나 그 정체를 알기 어렵다. '지식인'과 '장사치'의 중간사쯤 될 것이다. 유시민의 위상은 지식인과 장사치, 정치인 중 어디에 놓여 있는가? 이런 용어의 모호함 때문에 얼마 전 된통 야단을 맞았다. 르네21에서 <지식의 대융합>의 저자 이인식 선생을 초청해 강연회를 할 때 나는 <과학윤리>의 문제를 물었다. 선생은 대뜸 "과학의 윤리 이전에 과학자의 윤리가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은 사치스럽다"고 답변했다. 과학계 내부의 통제가 안 되고, 과학 언론이 살아서 과학의 모순을 밝혀내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황우석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선생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과학계에 '과학자'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유시민은 '조어'가 아니라 '표제어'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유시민과 종이컵

홍대의 '홍콩반점'이라는 음식점에 자주 가는 편인데, 그 집은 서빙교육을 엄격히 시키는지 손님을 접대하는 요령과 폼이 완벽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언젠가 헛점을 발견했다. 볶음짬뽕은 현금으로 시키고 탕수육은 카드로 주문했는데, 볶음짬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짬뽕'이 나온 것이다. 예측된 시나리오에서는 완벽하지만 예측을 벗어난 상황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유시민과의 간담회에서 공교롭게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달변의 유시민과 본의 아니게 난상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해서 양비론으로 답변해서, 나는 처음으로 '재질문'을 했다.
질문의 요지는 특이하지는 않았다. 사상 최초의 역정권교체를 당했는데, 사상 최초의 정권재탈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히 2~3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20대가 50대와 정치성향이 비슷하다는 답변을 하며 은근히 20대를 깔보는 '꼰대근성'을 발휘했다. 그리고 30대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30대 후반이나 40대들은 싸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헌법조항'의 소중함을 알지만 '어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사실 그는 2~30대에게 해줄 답변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종이컵'의 비유로 답변하고자 한다.
일회용 종이컵은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쓰기 무척 어렵다. 하지만 다시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대는 박스 안에 담긴 종이컵처럼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다행히 30대 초중반은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과외나 사교육 열풍이 그다지 심각했던 것도 아니고 싸워야 할 독재정권이 엄존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릴 기회가 있었다. 이들이 새로운 종이컵이다. 자유를 누린 만큼 현재 상황에 대한 빚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을 포함해서 386들은 한번 쓰고 난 종이컵이다. 종이컵에 커피를 부었든 떡볶이를 담아 먹었든 쓰고 난 종이컵을 잘 닦아야 또 쓸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잘 닦은 것처럼 보이지만 홈에는 아직도 떡볶이 자국이 남아 있다. 물을 넣어 마시면 떡볶이 냄새가 난다. 홈까지 아주 정성스럽게 잘 닦아서 '새 종이컵'으로 승화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

유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참여정부 시절과 지난 10년의 민주적 성과를 낙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386의 상황을 최첨단으로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지는 않다. 유시민의 책이 의미를 얻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지난 시대에 대한 총정리이자 반면교사다.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은 <후불제 민주주의>가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축 늘어진 남성이 되어버린 형님들의 '자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상징자본이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이 대부분 빠져 있는 딜레마다. 그들은 시대를 바꿀 힘도 의지도 없고 다만 '지식'을 소비할 뿐이다. 그들의 지식을 사는 사람들도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며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차가운 진리와 새삼 조우했다.


<페이퍼에 소용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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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할매꽃>, 새벽 3시에 우리의 할머니들이 몸부림쳤던 '그날'

작가, 감독과 함께 한 다큐 데이트


▲ 할머니에게 보여드리려고 만들었다는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은 개봉되지 못할 뻔했다. 문 감독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영화가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문 감독은 영화를 접을까도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할매꽃>은 (당시)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말못할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서 손자인 감독이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현대사와 가족, 이웃, 인간의 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큐멘터리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소설가로서 감정 이입이 잘 되며 스크린 바깥, 그리니까 찍지 않은 부분과 다큐가 말하지 않는 부분이 상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극 영화는 스크린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나라는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는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하지 못할 이야기가 많다. 3월 18일 저녁 알라딘과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할매꽃>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러 갔다 왔다.(홍대 KT&G 상상마당) 이미 DVD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소설가 김연수 작가가 힘을 보태기 위해 흔쾌히 자리에 동석했다. 그의 최근 작품인 <밤은 노래한다>의 상황을 한 마을의 한 가족에게 대입한다면 <할매꽃>과 비슷하게 그려졌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팜플렛을 통해서 현대사와 가족의 문제를 다룬 다큐라는 설명을 보고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은 대개 극적인 부분을 과장하거나 너무 진지해서 지루한 일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다른 종류의 난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김연수에 의하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객관적인 위치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 작업을 하는 내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문정현 감독 본인도 "앞으로 다시는 가족에 관해 찍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 난제들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었을까? 영화는 문 감독의 감미로운 나래이션으로 시작되었다. 문 밖에만 나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좋은 할머니의 인생이 그 비밀을 드러냈다. 임종을 앞둔 할머니에게 바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던 감독은 결국 영화를 할머니의 영정 앞에 바칠 수밖에 없었다.

문 감독은 우선 작품의 범위를 자신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 철저히 한정했다. 전쟁 상황에서 학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갈등과 국내의 상황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당대의 상황은 마을 안에서도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그 동안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치 상황이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얼키고 설킨 인간적 감정들이 정치적으로 반영돼 비극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현대사를 둘러 보면 개인의 사적 감정이 국가 대사에 공공연하게 개입되는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컨대 제주 4.3 당시 제주민들을 가장 가혹하게 괴롭혔던 사람들은 북한에서 쫓겨난 부잣집 자식들로 이루어진 서북청년단원이었다. 이들은 반동분자 색출이라는 명분을 개인적 감정과 구분하지 않았다.


새벽 3시에 미친 사람 같이 몸부림쳤던 그의 외할머니와 나의 외할머니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폐부 깊숙이 찌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나의 개인사 속으로 다큐멘터리가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나아가 나의 비밀까지도 들춰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가 좋던 동네 친구에 의해서 동생이 즉결처형되고 또 다른 동생은 고문으로 잃고, 면회간 다른 동생은 경찰이 쏜 공포탄에 의해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가세가 완전히 기울고 남은 전답을 마저 팔아야 하는 날 새벽 3시 외할머니는 산발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고 자신의 소유였던 밭을 헤매며 죽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우물에 몸을 던지려고 우물 안으로 고개를 쳐드는 순간 달빛에 비친 우물물 속에 자식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떠올라 끝내 죽지는 못했다고 한다. 새벽 3시에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와 추억이 겹친다.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4.3 당시 희생된 친척이 있는데, 지식인이었던 외할아버지가 영문도 모르게 잡혀간 이후에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책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제주도에 살던 지식인들은 제거대상 1호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감춰야 했다. 외할아버지의 책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새벽 3시마다 남몰래 책을 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이 끝도 없어서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어머니는 만약 그 때 책을 태우지 않고 남겨 두었더라면 골동품 가치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마을과 중대마을은 예로부터 양반들이 살던 마을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대마을'이라고 불리던 '풍동마을'은 하인이나 천민들이 거주하던 마을이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의 감정의 골은 깊을 대로 깊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그 감정의 골은 여지없이 비극을 낳았다. 비극으로 인해 선량한 한 가족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의 가족을 만나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다큐멘터리는 영화 내내 고민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할매꽃>은 '현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의 주제는 철저히 '인간'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작용한 결과가 현대사의 비극이며 <할매꽃>의 주변을 이루는 이야기일 뿐이다.

워낭소리가 인생의 큰 의미를 알게 해주는 훈훈한 다큐멘터리라면 <할매꽃>은 이제 당신의 고민은 무엇인가라는 구체적인 물음을 던진다. 문정현 감독은 시사회가 끝난 후 나눈 인터뷰에서 "고민하지 않고 완결되는 다큐멘터리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 안에 담긴 깊은 질문과 서사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 영화와 인터뷰가 끝나고 밖에서 서성대다가 문정현 감독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도 아직 시작하지 못한 4.3 이야기가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데, 문정현 감독은 소설이 되었건 영화가 되었건 지금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인생으로서도 '해원'할 것은 반드시 해원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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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포도밭 이야기와 한국사의 유산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역사야!

'어른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읽으면서 문득 ‘포도밭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식들에게 포도밭에 엄청난 금덩어리가 있으니 캐서 가지라는 유언을 남긴 아버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포도밭을 일군 자식들. 결국 수확철에 풍성하게 자라난 포도밭을 보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박은봉 선생의 '어른판', '어린이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는 '한국사의 상식'이라는 금광을 찾기 위해 저자가 동분서주 뛰어다닌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사의 유산'이다. 사실이 왜 왜곡됐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왜곡됐으며 누가 왜곡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면 어느덧 그것 역시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월 26일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있었던 박은봉 강연에서 이러한 점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참고로 박은봉 선생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위해서 들인 집필 기간은 3년이며 구상기간까지 합하면 모두 5년의 기간이 걸렸다. 읽은 논문만 1,000여 편에 달한다. 어른판은 44개의 꼭지로 이루어졌는데, 어린이판에서는 어린이가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이는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추가해서 1,2권 40개의 꼭지로 나누어 펴냈다. 어른판의 저자인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판'에서는 멀찍이 뒤로 물러서고, 이광희 작가가 어린이의 시각에 맞게 전면적으로 리라이팅을 했다. 그림과 도표, 인터뷰와 인터넷 토론방, 상황극을 넣어서 원작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박은봉 선생은 책 속에서 자신이 '바빠서 이만'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서 내심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리라이팅 결과에 대해서는 흡족한 눈치다. 특히 박은봉 선생이 강연에서도 강조했던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의 온전하게 살려낸 점은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역사공부가 될 것이다. 역사책에 나와 있는 대로 암기하고 문제푸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게 되는지 다양한 유형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라면 교과서에 갇히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소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눈매의 박은봉 선생. 말 한마디, 조사 하나까지 신중하게 구사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말하는 동안에 진지하게 학문을 하는 사람의 선한 표정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야, 너의 포도밭은 어디 있니?

 

이왕 '어린이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니까 어린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을 들고,

"역사책에서는 어린이를 만날 기회가 무척이나 적은데, 그 당시 어린이는 어떻게 살았나요? 그리고 어린이와 관련된 역사적 오류도 있나요?"

박은봉 선생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19세기까지 이 세상에는 '어린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에 의하면 어린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의 일로 매우 최근의 일이다. 19세기의 서양과 동양의 어린이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우석훈 <괴물의 탄생>에 보면 성인들은 자기들 보수의 1/3만으로 소년, 소녀들을 혹사시켜 20세가 되기 전에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많았다. 그보다 훨씬 전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도 어린이 노예는 3년 동안 써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양의 역사에서 어린이는 19세기 전까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존 스튜어트 밀 등 자유주의자들이 문제제기를 하였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안데르센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동화를 쓴 것도 19세기다. '이솝우화'의 '이솝' 하면 어린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솝우화는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를 위한 우화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어린이 보는 책에, '그저 마누라는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는 진지한 충고를 써넣을까 이말이다.

동양의 어린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박은봉 선생에 의하면 동양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워낙에 유아사망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유교전통 속에서 응석을 부리는 장면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 해야 서당에서 훈장님한테 매맞는 그림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널리 전파한 소파 방정환 선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파가 왜 어린이를 사람으로 대우하자고 그렇게 외쳤는지를 보면 당시 어린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와닿는 말이었다.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들의 직관력과 이해력은 어른을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작업이 교과서와 배치되는 점이 내내 우려되었던 선생은 어린이 30여 명에게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설문의 내용은 "교과서의 내용과 (자신의) 책의 내용이 부딪히면 혼란스럽지 않을까?"였다. 어린이들의 대답은 대부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였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사실과,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사실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물며 어린이도 이 정도인데, 고등학생들은 어느 정도일까? 그런 학생들에게 좌파 척결한다 어쩐다 하면서 편향된 관점의 현대사 강좌를 한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그 어른들만은 어린이보다 어리석은 것 같다.

박은봉 선생의 책을 통해서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익혔다면 한번 응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쉽지는 않겠지만, 박은봉 선생의 책 내용에 도전해 볼까 한다.

제3장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말한 사람은 최영 장군일까?>의 대목 중 우리가 한때 즐겨 불렀던 유행가사의 한 대목을 문제삼고 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 중

박은봉 선생은 '황금' 발언을 한 사람은 최영 장군이 아니라 최영 장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래가사를 바꿀 필요는 없을 듯하다. 노래 가사는 최영 장군이 말씀을 하셨다는 뜻이 담겨 있지, 최영 장군이 처음으로 그 말을 했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황금' 발언은 그 전에 있었을 수도 있고, 최영 장군 집안의 가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최영 장군이 그러한 정신을 전파했다는 것이니 '황금' 발언을 최초로 한 사람은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실지 궁금하지만, 어쩌면 칭찬을 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 그 날 어린이들이 참 많이 왔다. 맨 처음에 박은봉 선생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호명하고 나서 '유치원생'이 안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마치 내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 기분이 좋았다.

- 알라딘 제1기 리포터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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