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판 카프카 전집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오용록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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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여태 못 읽었던 카프카. <변신>을 중학생들과 읽고 나서 내친 김에 고독의 3부작인 <소송>, <실종자>, <성>을 읽었다. <소송>은 헌법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가 있기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현실 그 자체가 <소송>이니까. <실종자>는 자본주의 세계, <성>은 좁게는 관료주의 세계이지만 실체가 되어버린 관념의 세계를 다룬다. 이를테면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다.

성은 환상이고 관념이고 허상에 불과하지만 마을 사람 중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은 백성들을 평생동안 지배하는 실체로 작용한다. 누구나 의식하고 두려워하고 이쁨을 받으려고 집착하는데 어찌 실체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세계든 성의 지배를 받는 백성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K, 바르나바스 가족, 페피처럼 정직하게 살다가 말라가거나 프리다처럼 성의 여왕으로 살지만 단 한 순간도 눈치보기와 신경과민을 벗지 못하든가. 거칠게 비유하면 군자와 소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성의 안개를 걷어내지 않고서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보기에 이건 웃기는 이야기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성 이야기가 섬찟한 현실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성>은 대학 시절 펼쳤다가 앞장에서 죄절한 기억이 있다. 요즘 중학생들과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읽고 있는데, 소설의 문장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읽히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카프카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발저의 소설도 탐독했던 생각이 난다. 좀처럼 발저의 작품은 번역되지 않아 아쉽다. 이제는 카프카가 세상의 어떤 모습을 목격했는지 알 것 같다. 소설 문장에 익숙하지 않으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카프카의 소설이야말로 진정한 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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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2-05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은 어렵다고 징징대더니 기어코 다 읽었네.
그럴 줄 알았다.ㅋ
마지막 문장이 비장하군.

승주나무 2019-02-07 15:40   좋아요 1 | URL
네. 어렵긴 어려웠죠. 카프카 해설서들을 좀 훑어봐야겠어요^^ 어쨌든 고독의 3부작 완독한 것은 만족합니다
 
- 개정판 카프카 전집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오용록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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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소송>, <실종자>를 읽은 후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옳은 결정이었다. 소름끼치도록 현대적인 이 세계는 서람들이 만들어낸 환상이지만 지금은 이미 실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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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조지 오웰, 빅브라더를 쏘다 - 감시사회를 예언한 천재 작가의 모든 것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데이비드 스미스 지음, 마이크 모셔 그림, 방진이 옮김 / 다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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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몰래 스승으로 여기는 네 명의 작가가 있다. 도 선생(도스토예프스키), 나 선생(나쓰메 소세키), 카 선생(카프카) 그리고 조 선생(조지 오웰)이다. 특히 조지 오웰은 에세이와 틈만 날 때마다 에세이와 소설 작품, 그리고 해설서를 챙겨 본다. <만화로 보는 조지 오웰, 빅브라더를 쏘다>도 눈에 띄자마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루룩 흡입했다. 


저자인 데이비드 스미스는 미국 캔자스주립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이자 왕성한 사회활동가로 노동자의 생활임금 보장을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펼친 공로로 2004년 올해의 시민상(미국사회사업가협회 수여)을 받았다. 이 정도면 조지 오웰을 이야기할 자격이 충분하다. <만화로 보는 조지 오웰>은 1984년에 출간되었다. 원래 이 책은 오웰의 작품을 분석한 1부로만 나왔는데, 최근에 조지 오웰이 아서 쾨슬러,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 등과 함께 새로운 인권 선언문 초안을 작성하고 심리적 무장해제와 국제사회의 민주주의를 압박하는 조직을 만드는 일에 열정을 바쳐왔다는 자료가 발견돼 '부록'처럼 2부로 새롭게 삽입되었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작품을 충실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제까지 읽지 않았던 조지 오웰 작품을 알 수 있었다. <버마 시절>, <숨 쉬러 나가다>, <목사의 딸>, <엽란을 날려라>를 빼놓고는 대부분 읽은 것 같다. 1984년 이후에 업데이트된 내용이 무척 풍부하다는 게 특징이다. "빅브라더와 빅데이터가 만나다"는 표현을 보자마자 등골이 오싹했다. 스노든과 <1984> 윈스턴의 대비, 푸틴의 언론인 살해, 시진핑의 온라인 장악 등 현재의 시사점이 대부분 담겨 있어서 확실한 전면 개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나는 왜 쓰는가>에 수록된 오웰의 자전적 에세이 '정말, 정말 좋았지(Such, Such Were the Joys)'(1947.5)는 새롭게 발견한 느낌이었다. 예전에도 두 번 정도 읽은 것 같은데, 불쾌하고 지루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고등학생들과 르포르타주 쓰기 연습을 하기로 했는데 이 에세이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를 쓰는 연습을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조지 오웰의 전집은 아직이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경우는 투철한 반공 사상을 선전할 의도로 우리나라에 매우 빨리 소개되었을 정도였다.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오웰 전집은 요원한 걸까? 나는 오웰 전집이 나올 때까지 오웰에 관한 글을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새롭게 삽입된 2부 '오웰의 행성'은 짧지만 오웰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미 1부에서 오웰의 전기와 전 작품의 성장 과정을 보았기 때문에 오웰이 세계대전과 권위주의, 전체주의, 파시즘이 인류를 가루로 만들어버리려는 위험에 몸을 던져 마치 노동조합의 조직부장처럼 행동하게 했던 이유를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거기에는 모순도 있었고, 오웰 스스로가 부도덕하다고 비난받을 수 있는 마음 약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미심쩍은 작가 목록을 작성해 영국 정부에 제공한 일은 비판을 영원히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래 문장이 좀 가슴 아팠다. 


이렇듯 오웰은 잠시나마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실수도 했다. 엄격한 윤리관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직접 보여준 셈이다.(276)


가족여행을 가면서 가방에 넣은 책이 <만화로 보는 조지 오웰>뿐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훑었는데, 읽고 나서는 메모를 하면서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처 읽지 않은 작품들을 마저 읽어야겠다. 

시민운동가 잔 아이종은 이 모든 것이 "<1984> 속 사회의 모습과 똑같다"라고 말했다. 서구 언론도 동의했다. "빅데이터와 빅브라더가 만났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빅데이터가 시따따(시진핑의 별칭)를 만났다.‘(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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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 개정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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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맛이 너무 달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빨리 취한다. 카프카는 마음만 먹고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술술 읽힌다. 작년에 변신과 소송을 읽고 실종자는 이월된 상태에서 오늘 완독했다. 고독의 3부작이라고 하는 <성>을 남겨 놓고 있다.

나는 '실종'이라는 의미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왜 실종인지 나온다. 그래서 '아메리카가 낫지 않나?'고 생각했다. 나쓰메 소세키 <마음>의 주인공처럼 나도 소설책 읽기 전에 마지막 페이지를 스윽 보는 습관이 있는데 거기서 본 문장 때문에 읽는 내내 제목 가지고 불평을 했다.

<그들은 밤낮 기차를 탔다. 카알은 이제야 비로소 미국의 크기를 알게 되었다>

카프카의 일기에서 '실종자'라는 제목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메리카가 대세였다고 한다. 군 입대와 함께 14년 동안 서울(정확히 말하면 수도권) 생활을 하다가 제주로 돌아오는 시간이 생각났다. 14년 동안 나도 성실히 버텼으나 '교묘하게 추방'된 느낌이다. 나의 어떤 부분도 분명히 실종되었을 것이다. 나는 다만 제주도 쫓겨나기 전에 제주로 질주했다는 점에서 <실종자>의 주인공 카알과 달랐다. 누군가 나를 절벽 아래로 밀기 직전에 스스로 점프한다고나 할까?

지금 쓰려고 하는 소설이 카프카의 색깔을 강하게 담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으니 조금 더 집중하고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적응이 안 되는 것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는데도 주인공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도 죽었고, 소송의 K도 죽었고, <성>의 주인공도 죽는다는데 카알은 죽지 않았다니. 이것도 일기에 적혀 있다고 하는데, 카프카는 카알이 죽을 것이라고 썼다. <실종자>가 미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극적으로 살아 있는 건데, 그렇다면 그건 더욱 곤란한 일이다. 독일 동화 <유령선>의 선장처럼 "영원히 죽지도 그렇다고 살지도 못하는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가. 카알의 머리에 흙을 뿌려줄 이는 누구인가? (동화 유령선에서는 주인공이 선장의 시체를 널빤지채로 뜯어 육지에 뉘고 이마에 모래를 부으면서 저주가 풀린다) 독재자 아버지와 방관자 어머니의 원체험이 가장 강하게 녹아 있어서 카프카의 자전소설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실종자>의 주인공 카알이야말로 가장 저주받은 인물이 아닐까.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카알의 이마에 모래를 뿌릴까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다.

솔 출판사의 2017년 개정판은 2000년판에서 커버만 교체한 것 같다. 만약 구판이 있다면 굳이 신판을 살 필요는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출판사는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도서관에서도 구판이 있는 경우 굳이 구판을 구매하지 않았다. 도서관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글이 첫 리뷰라는 것도 놀랍다. 카프카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는 말인가? 갑자기 카프카한테 미안해지려고 한다. 나라도 부지런히 읽어서 리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솔 출판사 전집 <실종자>의 몇몇 장은 제목 없이 편집자가 첫 구절을 이용해 하단에 제목을 표시했다. 이 리뷰의 제목도 그런 방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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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11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자의 여유가 느껴지는군.ㅎㅎ
어렵지. 나도 이번에 새로 나온 책중 두 권을 가지고 있는데
넘 어려워서 중고샵에 넘길까 생각중인데
너의 리뷰를 읽으니 또 마음이 약해지는 걸.

지금 쓰고 있다는 소설 궁금하다.
만일 책으로 나온다면 이번엔 꼭 사 보도록할께. 퐈이팅!!

승주나무 2019-01-11 13:56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카프카를 읽을 때가 되었나봐요.
저도 일단 고독의 삼부작 읽고, 해설서를 좀 읽은 다음에 단편전집은 나중에 도전하려고요.
혼자 쓰는 소설은 아니니까 쉽다면 쉽겠지만 어렵게 흘러갈 수도 있어요.
암튼 열심히 해볼게요. 고마워요^^

뚜유 2019-01-12 0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나를 절벽 아래로 밀기 직전에 점프한다는 표현이 참 좋아 보입니다. ^^
건필하시길 ~

승주나무 2019-01-12 10: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글쓰기는 슬럼프중이라 읽기로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절벽으로 떨어지기 싫어서요^^
 
실종자 - 개정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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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의 실종인지도 몰랐고 소설에 대해서 전혀 무방비한 상태에서 읽어서 충격이 컸다. 카프카는 일기에 소설의 전망에 대해서 글을 남겼는데 실제 소설의 운명과 일기의 전망이 너무 다른 경우 참 당황스러운데, 《실종》이 그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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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료샤 2022-09-0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긴 하지만, 리뷰에서부터 너무 노골적인 스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직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댓글을 통해 님이 충격적이라고 느끼신 결말을 순식간에 알아버리는..

승주나무 2022-09-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스포 부분이 드러나지 않게 고치겠습니다. 일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