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천진난만함과 완전한 것에 이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것으로 되어 버릴까!" (故이오덕 선생)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며 어버이"라는 말은 내게는 진리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어린이날'은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시간을 내서 놀아주거나 문구점에서 선물을 사다가 바치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에게 반성문을 쓰는 날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집안에서 막내로 자라서 철이 없었는데, 지금도 철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것은 나에게 단점이기보다는 자랑이다. 어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어린이의 시체를 안고 있는 어른과, 살아있는 어린이를 안고 있는 어른이다.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나의 어린이가 몇 살때 죽었는지. 그때는 어린이가 죽어야만 어른이 된다는 이상한 상상이 만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학원강사로 일하면서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을 자주 접했고 더러는 어린이들도 접했다. 이들을 접하면서 내가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어린이 역시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죽은 어른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어린이와, 살아있는 어른을 머릿속에 그리며 살아가는 어린이다.
내 마음속에 어린이가 죽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죽어야 어린이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그야말로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육체적인 죽음은 맨 마지막에 찾아온다. 때로 어린이 시절부터 간직해온 꿈을 잃지 않은 어른들은 육체적인 죽음'만' 찾아오기도 한다. 그것은 사실상 살아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앞선 시대를 살다간 성인이나 지성인들은 인사치레로 어린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가능성으로서 어린이를 염원했다. 그들이 어린이에게 가졌던 관심은 '인간'에 대한 절실한 관심이었다.
● 천재성이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 “대인이란 그 어릴 적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맹자, 이루하)
● 만약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처럼 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하다. (예스 그리스도)
● 중후한 덕을 품은 이는 갓난아이와 같으니, 독충이 쏘지 않고, 맹수도 덮치지 않으며 독수리도 할퀴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나는 이번 어린이날을 특별한 어린이날로 삼으려고 한다. 조카들에게 선물이나 사줄 걱정을 하지 않고, 나의 어린이정신은 온전한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서 어린 시절의 나에게 배움을 얻어야겠다. 시골에 태어난 나에게는 유년시절의 원형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나는 방학이 되면 아침 먹고 바닷가로 뛰어갔다. 해변에서 잘 생긴 짱돌을 하나 쥐고 썰물이 만들어놓은 신천지를 걸어서 갔다. 신천지에는 언제나 소라며 성게, 굴 같은 것이 가득했는데 점심은 그걸 깨먹으면서 해결하고 해가 빨갛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바다의 이름이 세 개 있었는데 각각 오정께, 통밭알, 수메밑이었다. 수메밑과 오정께는 일출봉을 빙 둘렀다. 일출봉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는데, 수메밑으로 해서 일출봉을 삥 둘러서 걸어봐야겠다는 나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출봉 뒤쪽에는 돌고래들이 둥지를 틀었다는데, 직접 보고 싶었다. 오정께는 아침의 바다였다. 물질하는 우리 엄마는 수메밑에서는 해삼물을 캐다가 오정께 옆에 있는 우뭇개에서 관광객들에게 파는 일을 했다. 엄마가 바다에 갔다가 벗어놓은 몸빼바지에서 나는 바다내음이 너무 좋아서 밤새 그것만 붙잡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바다 냄새와 엄마의 살내음이 땀내음이 함께 전해져 왔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혀지기도 하고 야릇한 구석도 있을 테지만, 어렸을 때는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 수메밑으로는 멸치떼 같은 것들이 모래사장까지 밀려오기도 하는데, 그때는 잔치라도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멸치떼를 잡아갔다. 가끔 밀물에 밀려왔다가 바위 웅덩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어린 고기떼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서너 시간은 족히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고기떼들은 쪼로롱 쪼로롱 떼를 지어 가다가 가끔 한번씩 몸을 비틀어서 은빛 비늘을 뽐냈다. 한번은 새끼 복어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뜰채로 홱 낚아채니 화가 단단히 난 듯 삐익~ 소리를 내며 몸을 한껏 부풀리는 거다. 나는 겁이 몹시 나서 물가에 던져 버렸는데,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우습기 그지 없었다.
통밭알은 내가 노을바다 또는 설핏바다라고 별명을 지어 주었다. '설핏'(부사)이란 "해의 밝은 빛이 약해진 모양"을 뜻한다. 이 바다는 우리집 마당에서 올레(입구)로 향해 있었기 때문에 저녁마다 마당에 나가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아침바다는 이글이글 해를 팔팔 끓일 정도로 거세지만, 설핏바다는 국이 식는 모양처럼 잔잔하고 온기가 배어 있다. 그것은 물만 짰지 거의 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몰은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린 시절에도 일몰을 바라보는 것은 슬프기도 하고, 하루 동안 수고 많았던 해가 한숨을 쉬는 듯한 대견한 모습까지 보였다. 이것은 나의 유년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되었다. 해질 무렵마다 마당에 나가서 설핏 바다에 해가 기울어지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봤으니 그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아쉬우면 바다까지 직접 가서 수면 위로 길게 늘어져서 하늘거리는 빨간 해님을 오랫동안 배웅한 적도 있다.
이러한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마음 속의 어린이를 잃지 않기 위해서 단단히 신경을 썼다. 힘들었던 시절은 중고등학교 때였는데, 어린 남학생들의 치기를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공부를 못해서 상고를 나왔는데, 상고의 녀석들을 3년간 감당하기 위해서 나는 육두문자와 쌍욕을 거의 달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언어가 존재를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은 입에 담지도 않지만 나의 어린이가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어린이를 살해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당신의 어린이는 건강한지 안부를 물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