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 전화해서 협박한 선거관리위원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놀러 갈 기회가 있어서 잠시 들렀는데,
편집팀장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연락이 와서
"O승주라는 기자가 오마이뉴스 소속이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편집팀장님은 "회사 소속 기자는 아니고 시민기자다"라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선관위 말이 기사를 편파적으로 써서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만약 제가 오마이뉴스 편집국 기자였다면 선관위로부터 법적 제재나 경고를 먹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지나간 일이지만 황당했습니다.
지난 6일 보도에서 JIBS는 김 소환대상자에겐 세 꼭지에 4분 10초를 할애한 반면 주민소환운동본부의 보도분량은 한 꼭지 23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선관위에서 경고를 받았다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네티즌 님들이 보시고 직접 판단해 주십시오. 문제의 기사들입니다.(클릭하시면 글을 볼 수 있어요)

 

바보야, 문제는 10월 재보선 아닌 8월 소환투표야!

도지사님, 제주도민을 잘 모르시는군요

택시기사 인터뷰로 본 제주도 '소환 민심'

 

오마이뉴스에 올린 주장글입니다. 하나는 메인에 올라갔고 나머지는 잉걸로 하단에 쳐졌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주장글에 대해서 기사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글에서 양측의 주장 모두를 담아내는 것만이 기사는 아닙니다.

물론 선관위는 그런 기사를 좋아하겠지만, 모든 뉴스에는 관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마이뉴스가 언론사이고 책임 편집을 하기 때문에 김태환 씨에게 유리한 보도를 다른 기사로서 채택하거나 다뤄주면 될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에게 문제제기한 선관위가 참으로 불쌍해 보입니다.

게다가 기사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려거든 제게 직접 하십시오.

오마이뉴스가 제 기사를 반려하지 않고 메인에 올렸다고 앙탈을 부린 것입니까???

 

더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주도민인 쌍둥이아빠 님은 "투표독려"를 했다는 이유로 선관위로 불려갔습니다.
선관위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투표독려"를 할 수 있지만,
유권자가 유권자에게 투표독려를 하는 것은 선거법상 위반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누구를 찍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민주시민으로서 선택을 해라고 말하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라니 참 황당합니다.

 

선관위의 이 같은 비헌법적인 처사 때문에 제주도지사 소환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마치 소환 찬성이라도 되는 양 취급받으며 온갖 불이익 협박을 당했습니다.

선관위는 한나라당 부속기관도 아니고 정부기관도 아니고, 더욱이 김태환씨 사조직도 아닙니다. 헌법에 규정된 헌법기관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신 있게 경고를 하던 기백은 다 어디 갔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줄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선거관리 전문가들을 데려와서 법 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형평성을 잃은 선관위는 이미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반장선거만도 못한 도지사선거가 된 데는 선관위의 직무태만과 위헌적인 선거관리가 제1원인입니다.

 


11% 투표율, 김태환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기적 같은 참여율

 




▲ 홈페이지에 버젓이 투표 하지 말 것을 적어 놓은 김태환씨. 선관위는 소환본부와 시민들의 무수한 항의를 수십번 받은 후에야 할 수 없이 제재조치를 했습니다. 소환본부 사람들은 김태환 도지사 외에도 서관위를 감시하러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선관위가 정말 일을 안 했거든요. 국정감사라도 해서 이번 선관위의 직무유기를 조사해야 합니다.

 

김태환 도지사는 제주도의 문어발입니다.
모든 인맥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40만 유권자에 공무원 수가 5,000명에 달하며,
공무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회단체나 기관들이 엄청나고,
또 그 기관들의 직원과 그 가족들이 엄청납니다.
공무원 1인당 수십명 정도만 커버해도 유권자 30만명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입니다.
게다가 제주도청은 제주도의 삼성처럼 1대 광고주입니다.
제주도민은 조선, 중앙, 동아 못지 않게 한라일보, 제민일보, 제주일보 같은 지역신문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의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소환투표 관련해서 단 한줄도 취재를 하지 않고 보도자료의 내용만 반복했습니다. 신문인지 관보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투표를 할 것이냐 인생을 걸 것이냐의 문제에 봉착해서
투표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만그만한 결단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11%가 인생 대신 투표를 선택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전후사정을 안 후에 제주도민의 투표행위를 평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 선관위 여러분 할 말이 있으면 저한테 와서 직접 하시지 애꿎은 오마이뉴스에 전화해서 협박을 하는 일은 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투표독려를 했다고 해서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당신들의 주장은 명백한 위헌적 발상입니다. "투표합시다"와 "누구를 찍읍시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당신들은 선거를 관리할 자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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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9-09-0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정신인 것이 있나요? 도무지 갈피를 못잡겠습니다. 여의도나 삼청동이나. 이럴 때 이렇게 주문을 외워보세요. "이런 젠장."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책질합니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82874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 구석구석 장면을 뽑아서 틈새논평을 만드시다.

딴지총수에게 3주간 특별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
불쌍해서 두 주를 내리 만나주었다.
아직도 그 가르침을 다 채우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말처럼 달아놓는 쉼표 하나 부사 한구절이
무척 정밀하다는 느낌이 들고,
대단한 내공이 몸에 와닿는다.

문정우 시사인 전 편집국장이 귀띔을 해준 바에 따르면
딴지총수는 글쓸 때 실에 수를 놓듯이 한다고 한다.
한줄 한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땀 한땀"인 게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틈새는 그나저나 어디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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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 많이 만나보고 강연회도 많이 쫓아다녀 보았습니다만,
가장 많이 남은 것은 자본론 강독할 때였습니다.
그날 분량의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발제도 하고,
요약도 해야 하는 강도 높은 공부가 기억도 많이 나고
생생한 느낌이 더합니다.

역시 품을 들여야 공부인 것이지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고민 많이 하지 않고 질러 버렸습니다.

우선 강좌에 있는 책들 상당수가 내가 읽은, 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책들이어서 책값 부담은 덜었고, '사회적 열공'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독서량과 공부량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간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30분이라서 나쁘지 않네요.
저를 위한 안배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치과를 바꿔야겠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가입해서 14만원인데,
그 중에서 몇 개는 기사 써서 한 5만원 선에서 부담을 나눠가져야겠네요.

혹시 저랑 "열공"하실 분 안 계신가요...
이제부터 강연책 독서모드로 들어갑니다^^


오마이뉴스 열공 강독회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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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1면 김대중 대통령 서거 기사

출근길에 신문 보며 눈물 펑펑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펼쳐들었다. 
신문은 한 정치인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고인의 인생을 반추하고 추모객과 각계의 반응을 전하는 내용이지만, 눈물이 고이더니 신문의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자동차 시세와 부동산 정보를 보고 있었고, 옆에 앉은 사람은 휴대폰으로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서러워서 더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다가 혹시 바보 같이 보일까봐 주위 눈치를 살폈지만, 오늘만큼은 내 마음껏 울고 싶은 마음에 소리도 내서 울었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상관없다. 오늘은 슬픈 날이니까.

대통령이 돌아간 것은 슬픈 일이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도 비통함은 컸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나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슬픔에 눈물이 쏟아졌다. 

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아버지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들의 아버지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아버지들의 아버지다. 
나의 아버지가 어부로 살았으니 어부의 비유를 들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부의 땀과 꿈을 실은 만선이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만선을 실은 바다다. 
요즘 일본에서 건너 온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남해안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만선의 꿈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만선의 꿈이 날아간 바다에서는 울기라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눈물을 쏟아낼 바다가 없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 중에서


나는 영웅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당대인

 "김대중 씨가 죽고 나면 한국인들은 그때 가서야 그에게 정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도쿄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버나드 크리셔 씨가 남긴 말이다. 과연 우리는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못하는 당대의 소시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이후 오로지 남북화해만을 위해서 대북특사로 가겠다고 간절히 요구했을 때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며 의지를 꺾은 것은 우리들이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고인을 위해서 꼭 남기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고 간절히 원했을 때도 말을 꺼낼 수조차 없게 한 것도 우리들이다.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나는 내가 한 일, 우리가 한 일, 사태가 여기까지 오도록 했던 일을 알고 있다. 그것을 기록할 것이다. 기록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매래에 부끄러움을 전이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이미 과거와 현재에게 충분히 부끄러럽다. 

한 달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분향소에 갈 수는 없고, 2009년에 일어난 일들을 차곡차곡 챙겨두었다가 머리가 깨면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2009년에는 시민들이 무능해서 애꿎은 영웅이 죽고 간악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영광을 차지했다고. 그리고 미래의 그 날에 간악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 '상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싸울 것이다. 

이 마음을 담아 얼굴 없는 시민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영전에 이 추도사를 바친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라며 정치와 관계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는 자들이다.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자들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저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 일부




다음 아고라에도 올렸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98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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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학번 선배와 술잔 기울이며 김대중 당선 소식을 듣던 97학번 새내기

대학 새내기 시절에 문학동아리를 했는데,
전통이 있었는지 70년대 학번이 많이 있었다.
97학번 새내기가 79학번 선배와 동아리방에서 소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인생에 두 번 없는 기회라서 그 때는 바싹 긴장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동아리는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 등 진보운동에 관한 문학창작과 비평작업을 같이 했었는데,
박노해 <노동의 새벽>을 필독도서로 했을 정도였다.

선배들도 진보적이고 진보운동을 했던 추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97년에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었을 때
머릿고기를 파는 술집에서 까마득한 선배들과 술을 마시면서 선거방송을 보고 있었다.

신문도 안 읽으니 시국을 알 리 없고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다만 선배들이 옆에서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간절히 바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그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이겼다. 건국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자막이 뜨면서 사람들이 환호했다.
대통령 당선확정이 아마 밤 9시~10시 사이에 결정이 되었던 것 같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한줄에 꽂혀 미치도록 선거운동을 한 선배

79학번 선배는 92년 대선 당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 선배는 김대중 후보의 선거공보에 담겨 있는 단 한 줄에 감명받고 시키지도 않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미치도록 뛰어다녔다고 한다. 노태우와의 대결인지 김영삼과의 대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호는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이제까지 '양심'이라는 말은 형식적으로만 사용했고 도덕교과서에서만 보았던 것이지만, 김대중 후보의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에 이르러서야 그 선배는 '양심'이라는 말의 무서움을 깨달았다고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다"라는 어록도 마찬가지다.

김대중의 행동은 그 후 현대사 공부를 통해 생생히 알 수 있었다. 40대 기수론에서부터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야기, 재야 정치인으로서 활약하던 이야기. 그리고 헌책방에서 만났던 <후광 전집> 같은 책의 볼륨을 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왜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논어에는 "섣달 혹독한 겨울이 지난 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까지 지지 않는지 알게 된다."(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도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 알 수 없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이명박 정권이 막바지로 갈수록 올해 함께 돌아가신 두 대통령 생각에 목을 놓아 엉엉 울 것 같다. 기형도의 시구절처럼.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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