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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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드라마는 이젠 좀 지겹다."

세계가 한 사람의 영웅을 기다리고 영웅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좁게 말하면 제시 잭슨 목사의 말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들이 40여년 전에 벌인 투쟁의 결실”이며, 넓게 말하면 당파성과 대립을 종식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피부색과 관계없이 선택을 해왔던 미국 유권자들의 승리다. 그리고 민주-공화라는 양대 정당이 수백 년 동안 영락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형국이다. 최근에는 전 정부에 대한 반대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이른바 '반발의 원리'가 주요한 선거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오바마의 당선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감상적이다.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 - 흑인 민권운동의 두 거목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연설문에 주목해야 한다.

#연설1
“저는 케냐 출신 흑인 남성과 캔자스 출신 백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를 키워준 백인 외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패튼 군단에서 복무했고, 할아버지가 바다 건너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백인 외할머니는 폭격기 생산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들을 나왔고,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에 산 적도 있습니다. 노예의 피와 노예 소유주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흑인 여성과 결혼해서 이 혈통을 사랑하는 두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피부색의 형제자매, 조카, 삼촌과 사촌들이 3개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이 저를 일반적인 후보자들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지난 3월18일 필라델피아에서 행한 ‘인종 연설’



#연설2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도 아닙니다. 2천 2백만 흑인 중 한 명으로서 미국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본 적도 없습니다. 조지아주 목화 농장에도 결코 민주주의는 없었으며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빈민가에도 민주주의는 없죠. 우린 민주주의를 본 적이 없고 오로지 위선만을 봤습니다! 우리에게 미국의 꿈은 없었고 체험한 건 악몽뿐입니다
말콤X의 연설, 영화 <말콜 X> 중에서..


▲ 영화 말콤X의 한 장면


오바마에게는 2명의 선구자가 있는데 흑인 민권의 상징인 마틴루터 킹과 다소 과격한 흑인 민족주의를 표방한 말콤 X다. 말콤 엑스는 비폭력적 흑인 인권을 주장한 마틴 루서 킹 2세와 달리 흑인들의 현실과 분노를 그대로 뱉어낸 연설로 흑인 인권운동에서 명성을 쌓는다. 그는 마틴 루서 킹 2세를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는 마틴 루터 킹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연설1에서 보듯 오바마는 다양한 인종이 결합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적격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외조부모의 집에 머무르던 당시 오바마는 인종문제로 정체성 갈등을 겪었다. 농구에 미쳤고 술과 담배, 마약에도 손을 댔다. 어두운 경험은 말콤 엑스 등 대부분의 흑인 지도자들이 겪는 통과의례인 듯하다. 맬컴 엑스도 당시 하류층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생활과 함께 범죄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21세에 그는 강도죄로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이슬람 신앙에 귀의하게 된다.
오바마가 정치 신인이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란 없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명연설은 그래서 무게감이 있다.

만화로 보는 미국인 대해부

연나라로 연나라를 친다. (맹자)
以燕伐燕


연나라가 연이은 실정과 백성에 대한 탄압으로 민심이 들끓고 일대 혼란에 빠졌다. 제나라는 이 틈을 타 연나라를 점령해 버린다. 연나라 사람들은 처음에는 제나라를 '해방군'으로 인식해 시골 촌부들까지 소쿠리에 음식을 담아와 제나라 군사를 환영했을 정도다. 하지만 제나라는 애초부터 연나라의 혼란을 해결하기보다는 제나라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연나라를 제물로 삼은 것뿐이다. 맹자는 이러한 제나라의 행태를 "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는 촌평으로 비판한다.
미국은 낡은 사고와 새로운 사고가 오랫동안 겨뤄왔던 나라다. 낡은 사고는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사고이며, 대내적으로 악덕자본가의 사고방식과 인종차별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 미국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탐욕적, 인종차별적, 제국주의적 사고를 고수해 왔다.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2004년 이라크 아부그리브 수용소의 포로 학대사건, 베트남전의 무차별적 네이팜탄 공격, 19세기 J.P.모건, 존 록펠러, 제이 굴드 등 초기 악덕 자본가들에 의해 희생당한 미국의 노동자들.


1898년 7월 17일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 산티아고에 있는 총독의 궁에는 성조기가 게양됐다. 쿠바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스페인의 항복절차에 쿠바인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민간정부가 공공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허락했다. (<만화미국사> 61쪽)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지만 친일파와 일본 관리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시킴으로써 우리들의 독립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았고 지금도 친일파가 득세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6.25 전후처리에서도 남한이 당사국 자격을 얻지 못한 것은 미국의 정책 때문이었다. 미군은 어디서나 점령군이어야 했다.
독재정부에 대한 지원도 미국의 전문 분야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아메리카의 독재국가는 미국의 지원으로 탄압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조차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언론탄압 실태와 기자 살인 등에 대한 내용은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코리브르)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난 이야기만으로 미국의 힘을 이해하려 한다면 반쪽짜리 지식밖에 얻지 못한다. 미국인들은 제국주의, 악덕자본, 인종차별에 대해 강력한 저항운동을 벌여 왔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지성인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역사적인 노동운동 사건을 꼽으라면 풀먼 파업을  들 수 있는데 악덕자본이 백인 노동자들을 인디언이나 흑인처럼 천대하던 지역이 바로 풀먼 신도시였다. 유진 빅터 뎁스는 미국철도노동조합의 젊은 지도자로 활약했는데 1893년 경제불황과 공황기에 미국 철도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894년 풀먼사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주도했다. 풀먼 노동자의 외침이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1893년 5월에서 9월 사이에 우리의 임금을 다섯 차례나 삭감했습니다. 그래도 집세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고용주로서 우리에게 돈을 지급해놓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립니다."



▲ 1893년 풀먼사 파업 당시 사람의 논물로 목욕을 하는 해골들의 춤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한 세기 뒤 이 현상은 '바닥을 향한 경주(국가나 기업 간의 과다경쟁이 빈곤층을 만든다는 이론)이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고, 월마트의 사업모델이 되기도 했다. (만화 미국사, 32쪽)


노동자운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반전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반전운동이 벌어진 나라다. 다만 제국주의적 행태 속에 감춰졌을 뿐이다. 일본이 자민당의 나라라는 오해를 사는 것과 같다. 일본 역시 시민운동이 활성화된 나라이며 풀뿌리네트워크가 만만치 않다. 선진국은 이와 같이 양식 있는 시민들에 의해 견딜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징집반대연맹을 조직한 엠마 골드만의 일화가 담긴 만화 한 컷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그는 징집법 위반으로 2년 형을 받고 미주리 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재판에서 그녀의 유일한 변호 수단은 감동적인 연설뿐이었다.

"국민을 군사적으로 예속한 상태에서 잉태된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독재정치입니다."


▲ 이 그림은 수감 2년 후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하워드 진이 상상해서 삽입시킨 대목이다. 하워드 진은 '엠마'라는 제목으로 그녀에 대한 희곡을 쓰기도 했다.


미국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여느 대통령과 다른 이유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속성, 즉 제국주의적 속성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권운동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의 이전 정책기조에서 큰 틀의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미국인의 의향을 지속적으로 살펴서 정책을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의지가 사실상 오바마의 의지가 될 확률이 높다.

우리의 경우 한미FTA에서 방점으로 보아야 할 것은 '미국 노동자'이다. 만약 FTA를 통해 미국민들의 손해가 예상된다면 오바마는 이를 없던 일로 하거나, 미국 노동자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급 선회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미국의 국익은 한국의 국익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이익'에 머무른 반면, 오바마가 말하는 미국의 이익은 '미국인의 이익'에 가까울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오바마가 노무현의 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노무현에 비해 민권운동의 뿌리가 매우 깊은 오바마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슬기롭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리라고 본다. 
미국인, 미국 노동자들은 한국인, 한국 노동자들과 매우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민과 한국 시민, 전 세계 시민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

이명박을 통한 FTA는 한국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절대로 대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노동자와 시민들이 협의할 수 있다면 미국 노동자의 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에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하워드진의 미국 민중사라는 책이 국내에서도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만화 미국사>는 미국의 '반대쪽 에너지'를 알기에 손색이 없다. 궁금한 내용은 추가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이 책이 어느 정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 한 쪽만 알아서는 곤란하다.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 한다."


<참고한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0250015&code=970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111824005&code=21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1825085&code=9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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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워드진의 만화 미국사라고요? 이렇게 흥분될때가.... 이거 수업자료로 최고겠어요. 담아갑니다. ^^

승주나무 2008-11-21 16:02   좋아요 0 | URL
수업자료로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좌파적출 바람'은 조심하세요^^

마노아 2008-11-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주문했는데 아직 안 도착했어요. 미국 민중사 읽기 전의 워밍업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승주나무 2008-11-21 16:03   좋아요 0 | URL
네~ 미국 민중사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기 위한 워밍업이고, 이 책은 미국 민중사를 읽기 위한 워밍업인 것 같아요^^
 
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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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에게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다.

시사IN 55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이른바 '강남 좌파' 이야기. 인터넷 토론 사이트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강남아줌마', '변호사의 아내', '내과의사' 같은 닉네임을 가진 논객들은 강남 부유층에 속함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생각은 좌파적인데, 생활 수준은 강남 못지 않다"는 게 강남 좌파의 정의이다. (강준만, <한국생활문화사전>)
폴로 셔츠에 CP컴퍼니 재킷, 450만원짜리 까르띠에 시계, 고급일식집과 룸살롱 한 달 접대비만 2억원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와 나 사이에 명확한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에 몇 천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면서도 군복을 입고 광화문에 나가 정부 지지 농성을 벌이는 할아버지들이 더 낯설다.
우리나라에는 돌연변이가 많다. 가난하고 비정규직이면서 비정규직을 대변하는 후보보다는 착취자들을 대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이른바 '계급 배반 투표'도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환경에 의해 억눌린 삶이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는 돌연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사회를 바꾸는 돌연변이는 가만히 있어도 기득권 안에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데도, 그곳을 과감하게 박차고 나온 사람을 말한다. 강남 좌파는 우리 사회의 몇 안 되는 돌연변이다. 교수나 자본가, 정치인, 사회 지도층은 대체로 기득권의 이익을 수호하며, 약자들에게는 몹시도 인색하다. 이것이 계급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이다.
기득권 복종자들이 많으면 그 사회는 활력이 떨어진다. 역설적으로 돌연변이들은 기득권에게도 도움이 된다. 기득권이 극단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제어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기득권과 약자들 사이에 교량 역할까지 할 수 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도합 10% 넘는 득표율을 차지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와 민주노동당 김재연 후보는 강남 지역이 고학력층이 많은 만큼 논리적 설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맹자는 '사람이 항산(恒産, 일정한 벌이)이 있으면 항심(恒心)이 생기게 마련이다'고 했는데, 강남 사람들이야말로 항산이 있으니 당연히 항심이 생길 터이다. 지식과 문화를 쌓아가는 사람은 지식과 문화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 중의 부자인 재벌들은 하나같이 멍텅구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변화할 역동성의 한 축을 잃은 상태다. 어떻게 재벌들이 이토록 멍청할 수 있을까.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유한양행의 유일한 사장 정도뿐인데, 그 정도로는 한국 사회는 끄떡없다. 이 분야에서는 애초에 기대를 접었다. 

 

▲ 연설 중인 아룬다티 로이(위키백과)

인도 부유층에 사랑과 찬사를 받던 작가, 부유층의 주적으로 돌아서다.

한국사회를 바꾸는 '돌연변이'를 언급하며 한국 작가의 예를 들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이번 촛불 국면에서 눈에 띄는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계급배반을 할 만큼 돈이 많지도 않고 그들이 보여준 활동량 역시 일반인들을 감화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인도의 작가를 예로 들고자 한다.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데뷔작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아룬다티 로이는 그 후로 단 한권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핵실험, 대형댐 건설 프로젝트, 다국적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는 정치칼럼을 써왔다. 한때 인도 중산층이 총애하던 존재에서 이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로이는 인도의 힘있는 이권세력의 아픈 곳만 골라서 찌르며 격분을 사더니 결국은 법정모독죄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그가 사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99년 인도 대법원이 중부 인도의 '나르마다' 강에서 반쯤 지어진 상태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에 대해 4년간 계속되어온 법적 건설중단 조치를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뉴스를 보면서부터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새만금 사업의 판결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사건 속에서 '나르마다 바차오 안돌란(NBA)'의 열정적인 활동가들을 만나고 나서다. 이 판결은 한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스고, 국가이익이라는 이름 밑에서 이렇게 교묘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 로이는 톨스토이 문학집 대신 댐 건축에 관한 책, 관개업에 관한 책, 핵폭탄에 관한 책, 법정 진술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며 현장의 투사답게 싸웠다.
로이 덕분에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의 댐 건설과 핵폭탄에 투자하기를 꺼려하여 점점 발을 빼게 되었다.

로이에 의하면 인도는 수 세기가 공존하는 나라다. 수천 년 동안 숲에서 한발자국도 떠나보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가 하면, 도시에서는 세계 일류의 유행을 몸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위에 언급한 나르마다 강은 3,500개의 크고 작은 댐을 건립할 예정인데, 30개의 초대형 댐과 수백 개의 대형 댐, 수천 개의 소형 댐이 강을 완전히 분해하면 최소 5천만명 정도가 숲과 강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똥을 싸는 일에서부터 하루 생계를 벌기 위해 남들 앞에서 굽신거리는 일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로이는 말했다. 이 약자들의 운명을 걱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작가가 있다는 것이 부럽지만, 작가의 힘만으로는 이들을 지키기에 턱이 없어서 위태롭기 그지 없다.

로이는 자신이 약자들의 고통을 끌어안는 '계급 배반'을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보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그것을 본 이상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로이가 보았던 장면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리고 잘 먹고 잘 배워서 똑똑한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장면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이런 장면들을 외면하는 사회라면 누가 우리 사회를 책임질 것인가.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는 사회과학자의 분석력과 작가적 상상력이 환상적으로 조합된 정치평론집이다. 때문에 사회과학자의 분석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무미건조함도 없고, 문학 작가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패배감이나 허무함이 없다. 작가다운 조롱과 해학이 매우 날카롭다. 그가 염원하는 것은 작은 풀벌레와 나무숲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 한 마리이다. 9.11이 일어나고 이라크 전쟁이 터진 전장에서 작은 풀벌레가 날아다니는 상상이란 몹시 잔인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우리가 멀리까지 왔음을 차분히 말해준다. 지적인 작가들의 사회 분석이나 비판보다 한 발짝 정도 나아간 사유에 이르러서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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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0-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사in의 기사는 저널리스틱한,섹시한 것이었지요...마치 가십기사를 보듯 봤습니다.
왜인가 하면...
'계급은 동일하지 않다.' 라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지요. 강남에서 진보신당10% 넘었다고 놀라는 분위기에서는 사실 약간 웃음도 낫습니다. 간남에 온통 사모님,사장님만 사신다고 생각했던 걸까요.전 오히려 기사 내용에 한달 접대비로 1억 쓴다는 강남 좌파의 경제규모에 사실 약간 놀랐습니다.저 같은 월급쟁이는 생각해보지 않은 판공비여서.^^

제가 보기에 '강남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우파',어떤 의미에서 클래식한 의미의 '보수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맞는 듯 합니다. 그들이 자신과 선긋고 있는 것이 '천민적인 강남 땅부자'들인 것도 그때문입니다. 즉 어느정도 가진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지와 사회 공공성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번 걸쳐 이야기하는 거지만, 좌파의 척박성만큼이나 부족한 한국 우파의 얇은 선수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보수주의(사실 수구)들에게 없는 '관용의 정치'인데...^^ 언젠가 그 '관용'이 얼마나 허약하고 취약한 것인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던것 같군요. .

승주나무 2008-10-10 20:3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람들은 강남좌파가 아니라 강남우파라고..
좌파가 워낙 죽을 쑤니까 강남좌파, 심지어는 '한나라당 좌파'라는 말까지 나도는 것 같습니다. ㅎㅎ
 
부동산 계급사회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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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목동점>


대형서점의 미운오리새끼

"부동산 책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어 '부동산'을 치면 단행본만 5,000권이 넘게 뜬다. 대형 서점에는 대부분 부동산 관련 책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도서 시장에도 부동산 열풍은 예외가 아니다."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의 저자 손낙구 씨가 자신의 책 머리말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4대 인터넷 서점에서 '부동산'을 쳐봤습니다.

1위 : 교보문고(3,006건)
2위 : 알라딘(2,348건)
3위 : 예스24(1,685건)
4위 : 인터파크(1,435건)

과연 교보문고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에는 또 얼마나 많은지 교보문고 목동점에 가봤습니다.












부동산에 관한 코너만 족히 10개는 돼 보였습니다.






이게 다 부동산 책들입니다.
하지만 돈이 되는 곳에 역시 책이 모여든다고 이렇게 쌓여 있어도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책이 부동산 책입니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내용을 보면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1963년 땅값을 100으로 놓고 계산해 보니 1963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 땅값은 1,176배, 대도시 땅값은 923배가 올랐다. 같은 도시 땅값은 22배가 더 오른 것이다. 소득에 비해서는 어떨까? 1965년부터 통계를 낼 수 있는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실질소득은 1965년 24만809원에서 2007년 350만,7091원으로 15배 증가했다. 따라서 대도시 땅값은 실질소득의 60배 이상, 서울 땅값은 70배 이상이 더 오른 셈이다. (책 25쪽)

성실히 일하고서는 절대로 부동산을 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질소득 말고 GDP와 비교해 보아도 세계에서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이 2001년 땅값이 GDP의 2.6배 규모였는데, 2007년 말 GDP(901조원)과 비교해 2008년 1월 1일 공시지가(3,227조)는 GDP의 3.6배에 달합니다. 국내 경제가 담당하기 힘들 만큼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는 거죠.

부동산이 이렇게 많은 수입을 거둬들이면서 세금을 잘 환수되고 있을까요?

21년 동안 땅값 상승으로 발생한 불로소득 1,284조 원에 비해서 환수 총액(이전과세+취득과세+토지부담금)은 총 113조에 지나지 않아 불로소득 대비 8.8%에 불과하다. (책 62쪽)

하지만 환수율 8.8%는 좋을 때 얘기입니다. 2003년은 공시지가 증가액 191조 원에 대한 환수율은 2.0%에 지나지 않으며, 2004년에는 1.4%로 또 떨어집니다. 결국 불로소득 중 극히 일부분만 환수되고 90% 이상이 사유화되는 현실 속에서 부동산을 산다는 것은 결국 엄청난 부를 보장해준다는 말이니 책이 잘 팔리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제 제가 찾으려는 책 <부동산 계급사회>를 찾을 차례입니다. <경제경영> 코너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부동산> 코너는 아닙니다. 부동산 책이긴 하지만, 부동산 재테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낄 수가 없는거죠. 결국 찾다 찾다 못 찾아 점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분명히 재고는 있는데, 찾을 수가 없으니 찾아달라며.
점원도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제게 책 위치를 안내해 줬습니다.





책은 경제경영 신간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오른쪽 맨 구석에 전혀 상관 없는 책들과 함께 꽂혀 있었습니다.
점원에게 다른 책은 없느냐 물었더니 그게 마지막 재고라고 합니다.
마지막 재고라는 말이 다 팔려서 재고가 되었는지, 처음부터 '마지막 재고'로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팔렸다면 아래 있지 않고 빛이 잘 들어오는 코너에 있어야겠죠.

인터넷 서점들은 이 책을 어느 위치에 배치했을까요?

1위 : 알라딘(부동산 2번째)
1위 : 교보문고(부동산 2번째)
3위 : 예스24(부동산 29번째)
4위 : 인터파크(부동산 38번째)

교보와 알라딘은 부동산 키워드 수에서도 1~2위를 다투더니 역설적이게도 부동산 인문사회서를 두 번째로 올려놓는 과감한 조치를 내렸군요. 다음은 분류체계입니다.

1위 : 알라딘 분류 : 홈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노동문제 > 빈곤/불평등문제
2위 : 교보문고 : 홈 > 국내도서 . 사회/정치/법 > 사회학 > 사회일반 > 사회/문화에세이
3위 : 인터파크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비평/비판
3위 : 예스24 분류 : welcome > 국내도서 > 사회 > 사회비평/비판
 
 알라딘이 비교적 구체적인 분류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실 사회과학에서 노동문제나 빈곤/불평등문제를 카테고리로 분류하기가 쉽지 않은데, 인문사회 전문서점답네요. 예스24는 좀 실망이네요. 사회비평이나 사회비판 등 추상적인 분류체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을까요? 인문사회 분야에서 알라딘을 제쳐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데, 기본기에서 실력차가 드러나는 듯합니다.


향후 5년 내에 이런 책 나올 수 없다.


정말 사실입니다. 이 책의 저자 손낙구 씨는 심상정 의원이 현역이었던 당시 보좌관이었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신분이 이 책을 쓰는 데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지난 4년간 일했던 국회의원실은 두 가지 점에서 부동산 문제를 분석하고 '자료와 통계로 입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나는 장서 규모를 자랑하는 국회도서관을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정부 각 부처에 자료를 요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책 11쪽)

갑자기 <법률사무소 김앤장>(후마니타스)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이 책도 임종인 의원(현역일 당시)과 공동저자로 쓰면서 정치적인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국회에는 심상정 의원도 없고, 국회의원을 동네 꼬마아이로 생각하는 총리가 버티고 있으니 자료제출을 요구해도 제대로 협조해줄 리 만무합니다.

이제까지 투자의 개념으로만 생각하던 부동산에 대해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주어서 더욱 반갑습니다. 예컨대 부동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정해지며 자녀의 대학 진학이나 평균 수명, 심지어 스트레스 정도까지 연관돼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명쾌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기막힌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세금폭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빤한 속셈이 다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위험한 뇌관이기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그때 이 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약간 메모를 해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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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8-24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동산 책 중에 유일하게 관심가는 책이군요. ^^

승주나무 2008-08-25 12:4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정말 피로 쓴 책이라는 생각이 팍팍 드네요. 통계가 적절하게 녹아들고 있어서 보기가 좋네요^^
 
입시 공화국의 종말 -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교육부의 유아기적 사고방식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항상 '문제'라는 단어의 수식을 받는다. 교육은 항상 문제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화법으로 문제를 지적했고, 그만큼 많은 해법이 쏟아졌다. 해법이라는 것은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할 때 제시가 가능하다. 문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죄다 '헛발질'일 뿐이다. 문제를 모를 때는 차라리 방치하는 게 낫다. 헛발질을 자꾸 하다 보면 실타래가 자꾸 엉켜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바로 무수히 엉킨 실타래와 같다. 최근 이 실타래에 한 줄이 더 엉키는 일이 발생했는데, 교육부가 천명한 이른바  ‘기초학력 미달 제로플랜’이다. 교육부는 진단평가를 정례화하고 뒤처지는 학생과 학교를 지원해 지역·학교·학생별 학력차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올해 10월 초6·중3·고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초등 3학년을 대상으로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실시한다. 매년 3월에는 초4~중3학년을 대상으로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시행되니 초6·중3학년은 1년에 두 번 시험을 치르는 꼴이 된다. 교육부의 관점에서 보면 '학력'은 '성적'과 동의어다. 일제고사를 실시해서 성적이 처지는 녀석들이나 그런 학교는 '학교 끝나고 남으라'는 식인데, 이보다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를 한줄로 세워서 관리하기 편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대개 어떤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은 두 가지 경우로 반응한다. '문제'를 중시하는 경우와 '해법'을 중시하는 경우이다. '해법'을 중시하는 경우는 한 가지 문제만을 연상하는 1:1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 해법을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객관식 풀이 능력을 잘 모르니까 이번 기회에 통제하기 쉽게 1등부터 100등까지 '해쳐모여'를 시키려는 교육부의 처사가 그것이다. 반면 '문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다발'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이들은 교육부의 '기초학력 미달 제로플랜'과 '일제고사'는 오히려 정부보다 보습학원이 절실히 원했던 자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즉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입시공화국의 종말>(인물과사상사)의 저자인 김덕영 씨는 객관식을 유아기 시절에 뗐어야 할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유아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배우듯이, 정답과 오답이라는 흑백논리를 강요해 사고를 단순화시킨다는 것이다. (272쪽) 나이가 들면 서서히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면서 주관적인 세계관을 정립하는 단계, 즉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교육부 역시 유아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력'이라는 것은 단지 '객관식'을 틀렸다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바라본다는 것

 

교육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교육문제와 관계 있는 사람들 역시 '해법'과 '문제'라는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정치인이나 정부는 당연히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교육 전문가나 학자들은 '문제'적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본다.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교육 관련 서적들은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철수와영희, 2008.3월)와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포럼, 2008.2월), 그리고 <입시공화국의 종말>(인물과사상사, 2007.6월)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들은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관점으로 보면 아직은 대한민국에서 '교육 해법'은 너무나 먼 이야기인 듯하다.

<입시공화국의 종말>은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교육의 문제점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차별성이 있다.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 씨는 어느 해인가 4ㆍ3 강연에서 "제주도 안에서는 제주를 쓸 수 없다. 그래서 도망쳤다"고 말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그것이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란 독일의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cal anthropology)과 사회학의 대가인 헬무트 플레스너가 사용한 개념이라고 하는데, 그는 바로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독일을 보니까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잘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단지 밖에 가 있다고 해서 '다른 눈(other eye)'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성찰하고 지치도록 고민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끝내 '끊어진 고리'를 찾았을 때 쓰는 말로 해석된다. 단지 밖에서 배운 것에 불과하다면 미국의 경제학(주로 한물 간 시카고 학파)을 배우고 와서 신자유주의 이론만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수많은 학자들의 눈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실제로 저자약력을 살펴보면 김덕영은 독일에서 사회학·철학·역사·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공부하였는데 독일의 학풍과 교육 시스템에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독일의 위대한 학자들의 저서를 원서로 읽으며 자신만만했던 김덕영은 그러나 입학하는 순간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부했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저자약력)

 

본문에서는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일화가 소개되는데, 단지 세 줄에 지나지 않는 칸트의 사상에 대해서 한 학기 동안 리포트를 준비해서 교수와 직접 토론을 하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독일은 담당 교수가 학생과 과제를 가지고 직접 토론을 하며 면밀히 검토한 끝에 세심히 코멘트를 달아주고 원고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글쓴이에게 잊지 못할 가르침이 되었던 담당교수의 코멘트 전문을 싣는다.

 

"칸트 윤리학의 기본적인 의도와 논리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난 후에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면 된다. 대학의 기초적인 지적 훈련 과정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221쪽)

 

이런 이유로 독일의 대학에서는 학문의 엄밀성과 명증성을 유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학의 모습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교수는 공천장을 받아들고 끝내 강의를 제끼고 말았으며, 대학생들은 시시콜콜한 연예담을 예사로 늘어놓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칸트며 플라톤, 게오르그 짐멜을 거론하던 고등학생의 기억은 온데간데 없다.

역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더욱 명쾌하게 보이나 보다. 서문부터 던지는 질문이 거침없다. "한국이 세계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을 십분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교육은 앞으로도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은 출산율 저하로 또는 이농으로 걱정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놀이터는 걱정하지 않는가?", "왜 한국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당연시하는 대학의 서열화를 외국인들은, 그것도 이른바 선진국의 국민들이 모르고 있을까?" 서두에서 던진 질문들은 본문에서 세세히 다뤄진다. 그러나 이 질문들이 귀결되는 지점은 한 가지이다. 바로 '인간 존중 교육'이다.

 

'인간 존중 교육'을 위하여

 

글쓴이가 '인간 존중 교육'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교육의 밑바탕을 이루어야 하며, 서로 부딪힐 때는 당연히 인간 존중을 교육의 위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은 책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존중 교육'이라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반 인간 교육이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글쓴이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축구 선진국에선 정장기에 있는 유소년 선수들의 경우 훈련 시간이 많아야 하루 2~3시간인데 반해, 한국에선-2002년 일산백병원이 축구 선수 1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최대 7시간, 평균 4.57시간이나 된다. 한국의 축구는 한마디로 성적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학원 축구인 셈이다."
(동아일보 2004.6.15일자 "'축구 꿈나무'의 눈물", 34쪽에서 재인용)

 

어디 학원축구뿐이랴. 개성적이며 아름다운 몸을 가꾸는 복장은 청소년들의 성장하는 정신과 함께 몸의 논리를 구현할진대 군대나 감옥, 수도원, 공장에서나 어울릴 법한 '유니폼'은 다름아닌 감시의 의미일 뿐이다. (30쪽) 지난 2002년에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자살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은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 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절규했다. 학원은 학생의 일상생활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데 기숙학원이나 자물쇠반에서 이루어지는 행태들은 산업혁명 당시 중노동을 견디다 버려지는 유럽의 애띤 소년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만약 교육의 현장에서 '인간의 얼굴'이 조금씩 회복된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즉 한국 사회는 이제 '국가(사회)의 개인들'에서 '개인들의 국가(사회)'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역량이 생기는 것이지, 지금처럼 한줄로 늘어놓고 훈시를 하듯 일방적으로 정책을 주입시키는 것은 '글로벌한 자살한위'나 다름없다.

 

대체로 신선한 관점이며 타당한 주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바라본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현지의 입장'에 대해서 너무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스쿨의 전면적인 지방대 배분이라든가 논술시험을 담당교사가 출제하는 방법, 객관식의 폐지, 모든 시험을 토론과 논술로 치르자는 결론적 주장은 장기적 과제는 될 수 있지만, 당장 밟을 수 있는 땅은 아니다. 예컨대 담당교사의 시험 출제라든지 모든 시험을 토론이나 논술로 출제하자는 주장은 출제 이전에 담당교사의 역량이나 교사 교육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목에서 학자와 정치인의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나는 무척이나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이 지점에서부터 끊어진 고리는 분명히 적임자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다. 당연히 정치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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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주에 사는 촌놈 치고 서울을 많이 다녔다. 서울대 병원에 가기 위해서이다. 내가 서울대 병원을 찾는 이유는 거의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 유아기에 유리창에서 떨어졌을 때 동네의사가 신경이 끊어진 채로 그냥 봉합해 버리는 사건이 있은 후로 우리 어머니는 심상치 않은 병이 났을 때 무조건 서울로 향했다. 다행히 종양을 제거하고 정기검진을 받아야 했는데 문제는 비행기값과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장난이 아니다. 당시 돈으로 십여 만원 쓰고 수 시간 걸려서 찾아가면 검진은 30초만에 끝난다. 뭘 물어보려고 해도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제주도에서 올라온 촌놈에게 배려할 머시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병원에 자주 들락거리지 않아도 병원만의 분위기가 있다. 접수를 하고 진료 대기실 앞으로 가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입구에 A4로 대충 붙여놓은 목록에 내 이름을 확인하면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의사방에 들어가기 전에 들어오라는 호출을 받으면 긴장이 된다. 그 모습을 지금 떠올려보면 의사들은 눈 앞의 환자를 보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의사들은 '다음 환자'를 보고 있다. 다음 환자가 들어오면 또 다음 환자를 본다. 한번도 눈앞의 환자를 주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파스칼의 한숨이 떠오른다.

"사람은 과거에 항상 집착한다. 그리고 미래만을 바라며 행동한다. 그리하여 영원히 '현재'와 만나지 못한다."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의 저자는 일종의 내부고발자이다. 의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학을 따로 전공한 전문의가 현장에서의 경험을 회고하며 병원시스템의 모순을 고발한다.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사가 환자에게 살갑게 대할수록 자기 자리가 위협받고 환자를 코 닦은 티슈처럼 팽개칠수록 승진의 확률이 올라가는 처지를 보여줌으로써 의사 정신 자체에 대해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의사들이 반성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병원시스템과 의사들의 잠재의식이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수성이 괴로울 것이다. 슬프고 화나고 읽는 사람 스스로가 치욕을 느끼게 만드는 실존인물 의사들과 그들의 피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여과 없이 회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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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3-1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여 영원히 '현재'와 만나지 못한다"

저 역시 의사들에게 대해 안 좋은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편견과 경험의 조합적인 감정.
'사람을 위해 의술을 펼치는' 의사가 아닌 '돈 많이 버는 직업'으로써의 의사가 너무
많은 현실에 늘 불만이었습니다. 불친절한 곳에 가서 무슨 병을 치료하겠습니까.
환자의 마음부터 편안히 해주는 것이 이미 의술의 시작이란 것을 모르는 -
친절교육과 인성교육이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이 바로 의료계일겁니다.
그들은 (물론 모두 다 그러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의 몸을 치료하기 전에 자신의 정신부터
검사받고 치료받아야 됩니다.
이런걸 읽으면 인간 혐오증이 더욱 더 짙어지겠지만, 전 읽을겁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승주나무 2008-03-14 15:25   좋아요 0 | URL
이제는 자본주의가 모든 영역에 다 얼굴을 들이대고 있지만.. 적어도 인간이 최소한 누려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자본주의가 무참히 헤집지 않았으면 합니다.

법이나 의료서비스 같은 것은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공적 서비스이니까요.. 안타깝습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