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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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 13일 홍대 근처 <상상마당>에서 김연수의 신작 소설 출간기념 낭독회(북살롱)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사운드트랙>이 있는 소설을 만났다. 북살롱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나왔고 김연수는 여섯 쪽이나 되는 단원을 뭉텅이로 낭송하는 기술을 뽐냈다. (김연수 낭독회에서 들었던 음악이 듣고 싶은 독자들은 김연수 블로그에서 <아키라디오>를 클릭하면 된다) 독자들과 함께 한 낭독회는 시트콤을 방불케 할 정도로 '큰웃음'을 선사했다. 김연수는 남은 장작을 땔감으로 쓰듯 연변에서 품고 살았던 사진집과 자료집을 행운의 독자에게 선사했다. "소설이 다 끝났으니 제게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서요"라는 말과 함께. 선물을 받지 못해 아쉬운 독자들은 김연수의 목소리를 군불 삼아 '밤의 노래'를 되살리려 애썼고, 나는 지금 김윤아의 '야상곡'(夜想曲, 사운드트랙 두 번째 수록곡)을 들으며 다리 잘린 여옥이(김해연의 애인)를 회상한다. 
 


▲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예스24 북살롱에서 김연수는 신작 <밤은 노래한다>의 구절을 사운드트랙과 함께 낭독했다. 김연수는 독자와 함께 하는 낭독을 몹시 좋아한다. 낭독을 하면 시간이 잘 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1930년대가 아니었다면 등장할 수 없었던 인물


김연수의 신작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를 들고 나는 '1930년대'라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1930년대는 현대사에서도 잘 소개되지 않는 대목이다. 1930년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대륙에 대한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이들은 그 구실을 만들기 위해 봉천(奉天; 현 瀋陽) 외각의 류타오거우에서 스스로 만철(滿鐵)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측 소행이라고 트집잡아 32년초까지 거의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같은 해 3월 1일에는 일본의 괴뢰국가(傀儡國家)인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하여 만주를 일본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었다. 괴뢰국가 수립 이후 전방(동만, 즉 간도)과 후방(조선)의 항일연합투쟁을 두려워한 일제는 '간도(間島)에서의 조선인 자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민생단'을 창설해 중국 공산당으로 하여금 민족배타주의에 빠져 조선인을 탄압할 빌미를 제공했다. 때문에 항일 유격근거지 내에서 조선인이면 일단 민생단의 스파이라고 한번쯤 혐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간도 전역에서 민생단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반민생단투쟁이 대대적으로 전개돼 최소 500여 명의 한국인 항일운동가들이 체포·살해되거나 도망가야 했으며, 많은 하부조직들이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와 중국 공산당, 심지어 같은 조선인에게 공격을 받게 된 조선인들의 기막힌 사연과 그 잔인한 시간을 수진무구하고 별볼일 없는 청년 김해연이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소설의 이야기틀이다.

김해연이라는 이름은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과 본인의 이름 김'연'수에서 따온 거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김해연'이라는 관광가이드를 통하지 않고는 이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김해연이라는 인물이 별로 맘에 내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펀지처럼 사랑에도 잘 젖고 혁명에도 잘 젖는 듯 보이지만, 반대로 두 가지 모두 제대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김연수는 "김해연이라는 인물은 바로 현대의 여러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리에 상영되는 영화 <모던보이>의 이해명처럼 탄탄대로를 달리며 부르주아의 모퉁이에서 별 유감없이 살아가는 만철의 '드문' 조선인 기사로 일하며 '이정희'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정희가 사실은 중국공산당의 당원으로서 첩보활동을 하고 있는 요원이었던 것이다. '이해명'이 사랑한 '조난실'과 비슷하다. 조금 더 오래된 영화를 원한다면 <플래툰>의 크리스 신병처럼 젊은 시절의 번민을 이겨내기 위해 살점이 찢기고 나부끼는 전쟁터에서 적군보다 더 두려운 동료들의 전쟁을 견뎌야 하는 잔인한 운명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이 사람(김해연)은 '아이'고 '소년'이다. 사랑을 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세상이란 원하는 대로 돌아가 주지 않는다. 그는 '아이'의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며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 김연수의 인물평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와 우리들'이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김연수는 1930년대의 다양한 인물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공산당, 중국공산당, 국제주의자, 민족주의자, 친일파, 난봉꾼, '이상' 같은 아웃사이더 등 시대가 만들어낸 온갖 사람들이 살아가는 1930년대를 끝으로 김연수의 이분법적 사고와 결별하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분법적 사고로 설명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1930년대를 살아가는 '김해연'의 상황이다.  


▲ 소설을 쓰는 내내 품에 안았을 것 같은 사진자료집에 손수 사인을 해서 독자에게 선물했다. 김연수의 선물을 받은 독자 3명은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소설가가 애착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애착은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내가 애착하는 사람은 고생고생하면서도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지도 못하고 누군가 기억해주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소설가는 이들의 인생에 묘하게 끌린다."

힘없는 약자와 기억될('기억할'이 아니라) 가치조차 없는 군상들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가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소설가의 펜끝에서 되살아난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선망의 눈빛으로 본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다. 역사책 속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역사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우리들은 정체성에서 멀어지고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이 틈으로 소설이 들어온다. 소설은 역사가가 쓰기 싫어하는 것을 다룬다.

서금원의 바이올린은 실명하기 전 그가 만들었던 사제폭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그 가락에 맞춰 혁명가요를 부르며 학교 마당을 빠져나갔다. 지난 몇 주 동안, 반민생단 투쟁을 거치면서 모든 일에 소극적이었던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들 날창 하나면 38식 보총을 가진 적군 10명쯤은 상대할 수 있다는 듯 기세가 동등했다. 박도만은 적이 찹잡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반면에 여옥이는 벌써 부녀대원 사이로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밤은 노래한다>, 256~257쪽

항일전설집에서 연길작탄(깡통에 탄약을 넣어 수류탄처럼 터지게 만든 폭탄)을 만들어 혁명에 큰 보탬이 되었다던 송원금의 화신인 서금원을 비롯해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행동들과 넘치는 자신감은 꽤나 역설적이다. 작가는 매우 공력을 많이 들인 대목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한 듯 자세히 설명했다.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이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도 믿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그런 것(혁명 따위)을 믿었더라면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무척이나 탐이 났다는 소설의 제목 <사랑하라, 희망없이>를 예로 들었다. 소설의 결말과는 별개로 이곳이 자신이 도달한 지점이라고 김연수는 고백했다. 이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 전에 했지만,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쓰는 동안 도대체 자신이 이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 몇 번이고 되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못 상투적인 고백 하나를 더 보탰다.

"제 인생의 긴 나날이 이 책에 묻어 있어서 특히나 정이 가는 책이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희망'이라는 둔탁한 팻말을 만들어 그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작품에 헛된 의미를 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초에는 '현대사'나 '현실',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리는 소설가의 관점을 부여하려 하였지만,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어린애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김연수를 읽는다면 독자인 나도 어른이 될 방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 몹시 침울하고 멍한 듯하면서도 한 곳을 분명히 주시하는 듯한 어두운 표정의 남자는 어린애에서 어른으로 가는 잔인한 여행의 길잡이 김해연이다. 김연수에 의하면 소설가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과 작가 본인의 이름 '연'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김연수는 이 소설을 집필하며 두 가지 원칙을 지켰다고 말했다. '믿는다'와'혁명'이라는 것은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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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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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학에 '빠진 고리'(missing link)라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유인원과 인간의 중간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생물이 있다는 가정 하에 생겨난 상상의 응고물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했던 '고리'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빠진 고리'라는 별칭을 쓴 것이다.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있는 베르베르 베르나르는 '빠진 고리'라는 주제로 <아버지들의 아버지>(열린책들)를 쓰기도 했다.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어버이날 아버지에게 선물했다가 한참 뒤에 후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미 흘러간 옛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에 순수-참여문학 논쟁이 있었다. 말 그대로 문학이 현실에 개입해서 모순점들을 파헤치고 싸우는 전투병 역할을 하려는 게 참여문학의 목표였다. 물론 요즘은 '참여문학'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논쟁처럼 순수문학이 승리했다기보다는 참여문학의 수준이 봐줄 만한 정도가 아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산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수준이 과도하게 높고 금욕주의를 완벽하게 실천해야 하는데 인간으로서 이를 감당할 리 만무하다. 

가공의 작품이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고도의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바에 한해서, 세계 문학사상 현실을 멋지게 변화시킨 사례가 두 번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의 <엉클 톰스 케빈>(엘리자베스 비처 스토우)과 프랑스의 <파리의 노트르담>(빅토르 위고)이었다.

1852년 3월 엘리자베스 비처 스토우라는 여류작가가 쓴 <엉클 톰스 케빈> 이라는 한권의 소설이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예들의 비참한 상황을 쓴 이 고발소설은 비인도적이고 반인간적인 노예제도의 폐지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파리의 노트르담>(1843년) 은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당시에는 중세의 예술에 대한 관념이 매우 불완전했는데,이 때문에 사람들은 고대의 건축물을 미화, 보존한다는 핑계로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서 중세 사회와 그것에 의해 창조된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관해서 구체적이고 생생한 관념을 독자들에게 심어줌과 동시에 이를 존중해줄 것을 간청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옛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고 급기야 노트르담의 성당 역시 1850년 르 뒤크(Violet le Duc)에 의해서 복원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 <실미도>가 흥행에 성공하자 '71년 실미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인권유린과 법률 위반 여부, 국가 책임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김연수의 신작 소설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를 이야기하면서 엉뚱한 작품들을 사례로 든 까닭은 이 소설 역시 현실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해제를 맡았으며 이 책의 배경이 된 1930년대 초반의 '민생단 사건'으로 박사논문을 쓴 한홍구는 사건에 감춰진 말 못할 사정과 상황논리, 공포와 욕망 등은 이미 역사서술의 경계를 벗어나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현대사의 '빠진 고리'를 채워넣는 기능을 한다. 작가가 의도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 때부터 김연수를 읽기 시작했는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역시 1991년 여름 이른바 '5월투쟁'이 끝난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대학생의 분열된 시선으로 역사적 기록의 틈새에 박힌 개인의 진실을 파고들었다. 김연수의 소설이 여타 다른 소설처럼 기발하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으면서 마니아의 층을 두껍게 하고 있는 이유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다'라는 상투적인 언어로 역사서술의 한계를 표현하듯이 역사 서술은 주관과 이해관계라는 웅숭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기득권'이라는 소유자가 엄격하게 있기 마련이지만, 소설은 '형식'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이런 훼방꾼들이 차단된다는 점에서 현실을 노래하기에 적당한 언어다. 단, 노래를 하는 작가는 형식의 높은 장벽 위에 이미 올라설 만큼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김연수가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하는 것은 몹시 민망하지만, 김연수의 신작은 최소한 그런 수준에 도달했다는 느낌(혹은 착각)을 주기 충분한 몇몇 군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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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0-13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씨의 작품은 여행할권리와 함께 요 책 딱 두권 봤는데 앞으로 계속 주목해야 할 작가임에는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승주나무 2008-10-16 16:58   좋아요 0 | URL
저도 여행할권리와 네가 누구든..부터 봤는데~ 저랑 맞는 작가인 것 같아요..진지한게 ㅎㅎ

수양버들 2008-10-18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추천하고 갑니다. ^^
표지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
 
맥베스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4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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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충성과 권력의 방정식

"유모차 부대까지 수사하다니, 경찰이 과잉충성이나 하라고 정권 교체한 거 아니다." -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

과잉충성과 '공'(功)은 권력을 향한 손짓이다. 권력을 가지기 위한 몸짓임과 동시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권력이라는 것은 실체를 정의하기 무척 어려운데, 이를 알기 위해서는 권력 앞에서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를 보면 된다.
왕 밑에서 떡고물만 받아먹던 사람들은 권력이 항상 남으로부터만 온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권력은 빌붙은 권력이며 스스로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권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도 권력에 참여하고 있으며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행위 하나 몸짓 하나, 이렇게 인터넷에 쓰는 글 하나가 권력의 참여임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권력에 대한 오해의 첫 번째 특징이다.
권력의 두 번째 오해는 권력을 도구화하려는 행위에 있다.  쉽게 말해 권력만 생기면 당장이라도 엿바꿔 먹으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청와대 청소부까지 끗발을 세우며 뇌물을 받아챙기며, 대통령의 일가친척들이 '권력 비즈니스'를 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여기서부터 권력누수현상이 생기고 레임덕이 생긴다.
권력은 피와 같아서 흐르지 않으면 종국에는 생명 자체가 멈추게 된다.
이 시대에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권력이 머무를 한뼘 땅이 없다는 거다.

 

동양에는 '한신', 서양에는 '맥베스'

주말 동안 <맥베스>(아침이슬)를 찬찬히 읽어 봤다.
맥베스에게 가장 강력하게 보이는 키워드는 '욕망'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욕망을 끌어들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맥베스의 전모가 드러난다.

"두려운가요 당신, 자신의 행동과 용기가 욕망과 같아지는 일이." - 맥베스 부인


동양에서는 '공이 지나치면 화를 면치 못한다'는 교훈이 있다.
한고조 유방이 항우와 결전을 벌일 때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한신이었다.
하지만 한신은 토사구팽을 면치 못했다. 그것은 공이 지나쳐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서양의 '한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토사구팽당하지 않은 것만 빼면 크게 다르지 않다.

맥베스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노르웨이와의 전쟁에서 눈부신 공을 세워 왕으로부터 작위를 받기에 이른다.

그대가 너무 앞서 가니 가장 빠른 보상의 날개도 그대를 따라잡기에는 너무 느리구려. 그대 가치가 덜했다면 감사와 보상 양쪽의 균형을 내가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 - 덩컨 왕(맥베스에게 살해당하기 전)

동양은 노회해서 공(功)이 선을 넘어서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지만, 덩컨왕은 선이 넘는 것을 자신의 덕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해 버린 것이 화근이다. 덩컨 왕, 당신은 정녕 듣지 못했는가? 욕망이 권력을 깨우는 소리를...


욕망과 권력에 관한 셰익스피어의 질문

권력은 욕망을 조작하고, 욕망은 행동을 조작한다. 권력이 얼마나 인간을 가지고 노는지는 맥베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맥베스는 덩컨 왕을 죽이고 나서, 뱅쿼 장군을 죽였다. 뱅쿼는 신실한 사람으로 덩컨 왕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한 인물이다. 맥베스의 강력하고 두려운 적이다. 벌써 두 사람의 목숨을 끊었지만, 권력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갑시다, 잠을 자야지. 이 이상한 자기기만은 초짜의 두려움이니 가혹한 훈련을 해야지. 우린 아직 범죄의 나이가 어린 상태요. - 맥베스

맥더프의 아내와 아들도 살해된다. 맥베스의 권력에 위해가 되는 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셰익스피어가 권력의 본질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햄릿에서는 동생이 형을 살해하고, 리어 왕에서는 리어왕의 딸들이 모든 권력을 리어왕으로부터 회수하고 천둥번개 치는 광야로 리어 왕을 내쫓아 버린다. 맥베스는 왕의 친애하는 장군의 몸으로 직접 손에 피를 묻혀 왕위를 찬탈했다. 왕위와 권력을 빼앗은 자들의 행위를 탓하기 전에 극소수에게 밀집된 권력의 웅덩이에 자꾸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권력과 욕망의 합성어를 '권력욕'이라고 하는데, 타인과의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권력욕은 어린아이의 자잘한 수준에서부터 왕위를 찬탈하는 장군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권력에 참여하기보다 권력을 소유하려 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데 있다. 한번 일어난 권력은 쉽게 주저앉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자잘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욕망'을 상대하기도 버거울 뿐만 아니라, '권력'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상대하는 인간이 오죽하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권력을 개인에게 주어 완전한 모습이 되게 하지 마라. 최대한 잘게 잘라서 권력이 전횡을 부리지 못하고, 나약한 인간을 더 이상 흔들지 못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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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0-07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전집을 사려고 하고 있어요..ㅋㅋ 서점에서 보니 판형은 작더군요.
 
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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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은 제주의 여성성을 살려낸 제주 여성 서명숙


서명숙(존칭생략)은 내가 아는 제주 여성 중에서 우리 엄마 다음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을 돕기 위해 싸움판 한복판으로 들어가던 때다. "'짝퉁' <시사저널>을 고발합니다"로 필화에 연루된 상황을 가볍게 떨쳐버리고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떠나는 먼발치에서 위태롭게 지켜보던 때가 생각난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 후로 소송에 말미암은 사람들이 늘어났고 기자들은 회사와 결별수순을 밟고 있었다. 마침내 먼 순례길을 마치고 그가 돌아올 때는 기자들과 독자들이 세상의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새매체를 일으켰을 시점이었다. 와인과 현지의 치즈를 한아름 들고 나타난 티없이 맑은 자태의 거무스름한 아줌마는 과연 이국의 정취를 한껏 안고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아줌마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좀 풀려고 갔구나' 정도만 생각했지, '제주 자연길'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들고 온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제주는 '여성'의 섬이다. 모든 자연 경관과 사람들의 마음이 섬세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제주를 방문해서 '여성'의 이미지를 찾기는 매우 힘이 든데, 그것은 남성적인 힘에 지배를 많이 당해서 '보이는 부분'은 이미 남성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탑동 부근에 이마트가 생겨난 이후로 제주 동문시장과 재래시장 등 상권이 거의 붕괴되었는데, 얼마 전 신제주에 이마트 2호점이 생겼고 롯데마트도 생겼다. 성산일출봉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신양리 해수욕장에는 삼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보광이라는 회사에서 대규모 호텔단지를 조성해서 순식간에 '인스턴트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제주는 '패키지'라는 치밀한 괴물에 산채로 잡혀 여성성은 아주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그것을 서명숙이 찾아낸 것이다.


▲ 성산포와 서귀포는 형제다. 그 구비치는 주상절리는 서귀포의 전매특허지만, 주상절리보다 높게 솟구치는 파도는 성산포가 일품이다. 이것은 서명숙도 인정해야 한다.



서명숙은 서귀포 바당(바다) 출신, 나는 성산포 바다 출신


서명숙과 나는 유년이 겹친다. 비록 사회적 경력으로 따지자면 내가 '삼촌'(제주에서는 부모 외에 어른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른다)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이 책에서 '소녀 서명숙'을 만나면 왠지 맘먹고 싶어진다는 거다.

<서명숙의 유년>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와랑와랑(이글이글)한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흙길을 팬티와 수건이 담긴 세숫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던 여름날이, 바닷속 날카로운 돌멩이가 여린 발바닥을 찢어놓는데도 우린 아랑곳하지 않았다. 짠물을 너무 들이켜 목이 다 쉬고 귀가 멍멍해질 때까지, 우린 몇 번이고 물속에 들락거렸다.
입술이 새파래지고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면 내팡돌에 엎드려서 꼬치처럼 몸을 굴려가며 햇볕에 말리곤 했다. 그러다 몸이 덥혀지면 다시 바닷물에 뛰어들고, 운동신경이 젬병인 나는 개헤엄이 고작이었지만, 내 또래인데도 자맥질을 해서 미역이랑 소라 따위를 건져 올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여태껏 내가 먹어본 가장 맛난 성게는, 소낭머리 맞은편 너럭바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을 때 친구가 잡아와서 나눠먹은 것이었다. 새까만 성게를 돌멩이로 내리치는 순간 터져나온 노오란 속살! 갯내음 물씬한 그 맛을 어찌 잊을까.
지치도록 놀다가 타박타박 돌아오는 길, 그제야 지구리로 오던 동무들이 다시 돌아가자고 붙든다. "맹숙아, 자구리 가게." 집에 서둘러 가야 하는 날에는 도리질치지만, 대부분은 동무를 따라 바다로 되돌아가곤 했다.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제야 "어멍(엄마)한테 욕들으키여" 하면서 서둘러 머리를 말리곤 했다. 제주 바당은 그렇게 우리의 어린 영혼을 살찌우고, 여린 근육을 다져주었다.
- <제주 걷기 여행>, 본문(23~25쪽) 중에서

<승주나무의 유년>

바닷가에서 태어난 나는 방학이 되면 아침 먹고 바닷가로 뛰어갔다. 해변에서 잘 생긴 짱돌을 하나 쥐고 썰물이 만들어놓은 신천지를 걸어서 갔다. 신천지에는 언제나 소라며 성게, 굴 같은 것이 가득했는데 점심은 그걸 깨먹으면서 해결하고 해가 빨갛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바다의 이름이 세 개 있었는데 각각 오정께, 통밭알, 수메밑이었다. 수메밑과 오정께는 일출봉을 빙 둘렀다. 일출봉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는데, 수메밑으로 해서 일출봉을 삥 둘러서 걸어봐야겠다는 나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출봉 뒤쪽에는 돌고래들이 둥지를 틀었다는데, 직접 보고 싶었다. 오정께는 아침의 바다였다. 물질하는 우리 엄마는 수메밑에서는 해삼물을 캐다가 오정께 옆에 있는 우뭇개에서 관광객들에게 파는 일을 했다. 엄마가 바다에 갔다가 벗어놓은 몸빼바지에서 나는 바다내음이 너무 좋아서 밤새 그것만 붙잡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바다 냄새와 엄마의 살내음이 땀내음이 함께 전해져 왔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혀지기도 하고 야릇한 구석도 있을 테지만, 어렸을 때는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 수메밑으로는 멸치떼 같은 것들이 모래사장까지 밀려오기도 하는데, 그때는 잔치라도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멸치떼를 잡아갔다. 가끔 밀물에 밀려왔다가 바위 웅덩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어린 고기떼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서너 시간은 족히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고기떼들은 쪼로롱 쪼로롱 떼를 지어 가다가 가끔 한번씩 몸을 비틀어서 은빛 비늘을 뽐냈다. 한번은 새끼 복어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뜰채로 홱 낚아채니 화가 단단히 난 듯 삐익~ 소리를 내며 몸을 한껏 부풀리는 거다. 나는 겁이 몹시 나서 물가에 던져 버렸는데,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우습기 그지 없었다.
- 5월 5일- 어른에게 더 절실한 어린이날


이처럼 느리고 게으르고 낭만적인 소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수십 년을 굴렀다. 서울사람보다 더 깍쟁이가 되었고, 서울 기자보다 더 날카롭고 빠르고 까칠했다. 그를 물가에, 아니 서울 한복판에 보낸 제주의 바다는 그가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맑은 바람을 어김없이 선사해 주었다.
나도 언젠가는 제주로 돌아갈 것이다. 서명숙은 가슴속에서 청순한 소녀를 귀환시키고 연륜과 인맥을 이용해 제주의 길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큰 빚을 진 느낌이다. 나의 '제주'는 제주 올레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낮은 구름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오름 한켠에 앉아서 제주의 격정적인 바람을 맞고 있는 소녀는 서명숙의 분신으로 보인다.

 

이 책은 여행서, 아포리즘, 자서전, 에세이의 종합판이다.


<제주 걷기 여행>이라는 제목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다. 얼핏 보면 '여행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랜 세월 감정의 앙금이 쌓인 동생과의 재회 과정과 서명숙의 유년을 살지게 했던 '길'이 주는 성찰적 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림들에 대한 회상이 저널리스트의 대중적인 문체로 기록돼 있다. 가끔 서명숙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기는데, 동향 출신이라 그런지 금방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카페에서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사유가 듬뿍 담긴 문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책이 다소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책의 한줄 한줄은 모두 돌담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듯 신천지를 펼쳐낸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무게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슬로우'라는 개념을 환기할 수 있었다. 속독과 속보에 익숙한 나에게 '게으른 독서'를 선사해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처음 쓴 기사는 '엄마를 인터뷰하다'이다.

단순히 제주를 '패키지'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이다. 하지만 제주가 주는 비유와 은유의 '와랑와랑'(이글이글)한 땡볕을 한껏 쬐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권할 만하다. (책이 잘 팔리면 현재 6코스까지 개발한 제주올레의 속살이 더 드러날 수 있다. 속살을 속속들이 보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책을 많이 알릴 요량이다^^)

걷기는 온몸으로 하는 기도요, 두 발로 추구하는 선(禪)이다.(143) 두 발은 인간의 철학적 스승이자, 걷기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제주올레를 걸음으로써 당신은 비로소 당신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당신이 얼마나 약하고 여리고 아파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른 데다 소녀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왼쪽의 아줌마가 바로 서명숙.



※ 서명숙은 어떤 사람인가?

<시사저널> 창간멤버 서명숙은 1989년 6월부터 2003년 4월까지 15년 동안 정치부 기자·정치부장·취재1부장·편집장을 역임했다. 금창태 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던 당시 사장과 한 차례의 면담 후에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의 불길한 예감은 100% 적중돼 <시사저널>은 매체가치보다는 '돈'으로 급격하게 방향추가 쏠리더니 2006년 6월 16일 '기사삭제 사태'를 계기로 시사저널 기자들의 길거리 생활이 시작됐다. 서명숙은 2007년 1월 9일 오마이뉴스에 올린 칼럼 "'짝퉁' <시사저널>을 고발합니다"로 인해 사측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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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9-3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어요. 제주를 좋아하니까...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주나무님의 행적으로 봐서 서명숙씨와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김없이. 흐흐 .삼촌이군요.

승주나무 2008-09-30 15:35   좋아요 0 | URL
네~ 맹숙이누나라고 부르는 사이입니다 ㅎㅎ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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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 책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내가 읽었던 글쓰기 책들을 통해 나의 글쓰기가 실제로 늘어나거나 그런 느낌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시중에 소개된 대부분의 책들은 '가르치는 글쓰기책'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현업 작가들의 글쓰기책은 거의 최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글쓰기는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글쓰는 주체에 대해서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기성 작가들의 강한 자의식은 글쓰기를 두려워하거나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독자의 개성을 배려하기 힘들다. 이는 마치 사랑이나 연애에 대해서 남의 조언을 듣는 것과 같다. 사랑은 당연히 당사자들 본인이 스스로 풀어나가는 문제이며, 사실 본인들의 마음이 전부다.

글쓰기 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쌍방향의 소통이 필요하다. 즉 직접 쓴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면서 점차 가다듬어나가는 것이 글쓰기 교육의 정석이다. 하지만 책으로는 이를 달성하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 생각쓰기>라는  책을 읽기 전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로 이 책을 위한 이름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부축하는 글쓰기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평생을 저널리즘 분야에서 논픽션을 써왔다.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독자들의 반응이나 어려움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이 풍부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하고 있는 나는 오마이뉴스 편집자로부터 애써 작성한 기사가 반려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충고가 바로 이 책에 들어 있어서 반가웠다.

나열식 글쓰기는 그다지 재미없습니다. 역삼각형 글쓰기를 해보시기 바랍니다.…이 글은 거의 녹취 수준인데, 이렇게 되면 강연회 기사라기보다는 강연집 정리한 것밖에 안됩니다. 그 점이 무척 아쉽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가 반려한 기사에 코멘트한 내용>

힘들게 전부 받아 적었으니 노트에 있는 말을 모두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방종이다. 독자에게 똑같은 수고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 때로는 인터뷰 대상자의 말에 너무 충실하려다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그런 충실한 필사자가 된 것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 다시 생각해보니 표현이나 논리에 구멍이 있는 것이다. 그런 구멍을 그냥 두는 것은 독자에게나 말한 사람에게나 실례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불명예다. <책 86~88쪽>


글쓴이는 저널리스트답게 '진실'을 추구한다. 그래서 솔직하고 어떨 때는 무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전체의 글을 지배하는 것은 그의 자신감과 인간미이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책이라는 점만으로 이 책은 다른 <글쓰기책>보다 앞서 있다. 글쓴이의 말과 같이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당장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탈자 : 36쪽 '칼럼리스트'→('칼럼니스트'), 187쪽 '스런 성미는'(글자 누락), 231쪽 '그것의 그들의'→'그것은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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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1-2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었구나.
몰랐네. 네가 시민기자라는 것.
글쓰기가 분명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계속하다 보면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을 보게되고
그것에 점점 빠져들게 돼. 그렇지 않니?^^

승주나무 2008-01-30 11:04   좋아요 0 | URL
넹~ 스텔라 누나.. 좋은 책 소개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가끔 책이나 언론에 관한 기사를 싣곤 해요 ㅎㅎ

마늘빵 2008-01-2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책 저도 관심가던데. 나쁘지 않은가보군요.

승주나무 2008-01-30 11:05   좋아요 0 | URL
네~ 글쓰기책 중에서는 아마 드물게 호평을 할 만합니다~

프레이야 2008-01-2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쓰기 관련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유용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전 간소함과 명료함이란 두 단어로 이 책을 요약하고 싶어요.
글쓰기는 더하기가 아니라 덜어내기라고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어요.

승주나무 2008-01-30 11:06   좋아요 0 | URL
혜경 님.. 제가 짚지 못한 내용을 잘 짚어주시네요~
저도 다시한번 숙독하고 리뷰 2탄을 써보도록 할게요~
역시 눈치빠른 혜경님은 좋은 책을 알아본다니깐 ㅋ

책의미로 2008-06-1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와 사랑방식의 비유~^^ 좋네요^^ 그럼 우리가 읽은 책들이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네요^^ 오탈자까지 수정해 주시는 배려~^^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