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시대를 너무 앞질러 태어나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사라진 인물들이 참 많다. 그들중 특히나 여자라서 구속당해야했던 그녀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리고 그 꿈은 어떻게 짓밟혀졌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꿈틀대던 그 흔적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얼까?
초희 난설헌, 여자로는 최초로 시문집을 냈다는 그녀의 일생과 시가 담긴 소설! 여자라면 고상하게 수를 놓거나 요조숙녀가 되어 남자의 출세를 도와 내조에만 힘써야하는 시대에 살았던 그녀가 남자들만이 할 수 있었던 시를 쓰고 그 시가 나오게 되기까지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떤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한편의 영화처럼, 때로는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읽게 된다.
누나의 부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누나의 죽음에 오열하고 누나가 남긴 시를 끌어모아 한권의 시문집을 만들려던 동생 허균, 여자가 쓴 글은 환영받지 못했던 조선땅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가서야 누이의 시를 인정받게 되면서 시작되는 초희 난설헌의 이야기! 별이니 달이니 하는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 사랑스러운 어린 초희는 시를 지을줄 아는 천재소녀, 어느새 훌쩍 자라 남장을 하고 남자들만 모이는 시회에 나가 당당하게 시를 겨루게 된 초희의 열정은 한남자와의 사랑의 불꽃으로 피어오르게 되지만 세상은 그 둘을 사랑하게 두지 않는다.
결국 사랑을 잃고 이제 갓 시행된 혼인제도로 시집을 가게 되는 초희, 남편을 섬기고 시부모를 모시며 최선을 다하려하지만 자기안에 꿈틀대는 시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 시어머니의 위세와 스스로의 능력부족으로 출세하지 못하는 남편의 자격지심에 눌리면서도,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들로 인한 고통속에서도 그녀를 견딜 수 있게 만들었던 시, 종이가 없어 장독대에까지 시를 써야했던 그녀의 시에 대한 갈망과 마음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모든걸 내려놓고 침묵한채로 영면에 들게 되는 그녀의 마지막은 어쩌면 해탈의 경지에 이른것만 같은 느낌이다.
언젠가 허난설헌의 시 한수가 좋아서 그녀의 시집을 산적이 있다. 오늘 나는 이 책을 통해 호기심 많고 꿈많던 어린시절의 그녀를 만났고 또 그녀의 마음을 다한 사랑을 만났고 시대에 순응하려 했던 그녀를 만났고 억눌리면서도 쓸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시를 만났고 모든걸 내려놓고 눈을 감은 그녀를 만났다. 비록 소설이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에 정말로 초희, 그녀를 만난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