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가 맡던 역할의 일부분을 심리서가 이어받은 지난 몇 년. 이제(혹은 여전히) 철학도 이 역할을 해보려는 모양새다. 아직 이런 책들을 위한 분류는 없어 대개 인문 에세이나 교양 인문학으로 자리를 잡는데 어쩌면 치유 철학 정도의 소분류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철학 상담가를 자처하는 레베카 라인하르트의 저작 두 권이 연달아 한국에 소개되는데, 이번 책의 제목은 <방황의 기술>, 부제는 '불확실한 삶이 두려운 이들을 위한 철학 연습'이다. 눈치 빠른 분들은 여기에서 세 권의 책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편집자가 의도한 건 아닌 듯) 어쨌든 철학의 효용이 늘어간다는(발견이 적합할지도) 건 먹고사니즘과 관련해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마음이 아프면 철학 상담소를 찾아가게 될까. 아차, 한국은 이미 수많은 철학원을 갖고 있는 이 분야의 프런티어 아니었던가. 아쉽게도 이에 대한 분석은 잠시 미뤄두고 <방황의 기술>을 만나보자. 철학자 강신주의 추천사와 저자의 프롤로그를 차례로 소개한다.

 

방황, 혹은 자발적 여행의 지혜

- 철학자 강신주 

얼마 전 출간된 내 책을 들고서 어느 독자가 수줍게 사인을 요청했다. 웃으면서 나는 그의 얼굴을 잠시 본다. 그러고는 펜을 잡고 책 앞면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었다. “여행과도 같은 삶을 살아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물론 그와 만난 장소와 시간, 그리고 내 사인을 병기하는 걸 잊지 않는다. 내 팬인지 그 독자는 사인을 받은 것으로 아이처럼 행복해한다. 나도 행복한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안타깝다. 그는 내가 왜 ‘여행과도 같은 삶’을 이야기했는지 깊게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인 요청에 기계적으로 응하지 않고, 내가 독자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어떤 역사를 껴안고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아우라를 남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유심히 보지 않아도 상관은 없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 번의 느낌만으로 족하다. “여행과도 같은 삶을 살아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귀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다. “당신은 안주하면서 살고 있군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 말을 나는 하고 싶었던 것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실려 있다.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나 보다.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모양일세.” 그렇다. 여행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낡은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짊어지고 오는 것이다. 낡은 것이라니?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낡은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여행의 본질이다.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자신이 새롭게 된다는 것이 말이다.

낙관하지 말자. 새롭게 된다는 것이 반드시 더 바람직스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무서워하는 것이며, 심지어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명언 아닌 명언도 만들어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앙다물고 다시 배낭을 꾸려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항상 이미 그리고 앞으로도 여행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여행과도 같은 삶’은 사실 ‘삶다운 삶’을 말한다고 말이다. 

어머니 자궁으로부터 나와 낯선 부모를 만났을 때, 과연 우리는 자신이 어떤 어린이로 자랄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이것도 여행이다. 훌륭한 부모를 만났다면, 우리는 유년 시절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미성숙한 부모를 만났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품고 살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이것도 여행이다. 인간의 삶 자체를 저주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할 수도, 혹은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는 느낌 속에서 사랑을 누릴 수도 있다. 모를 일이다.

여행을 포기하고 익숙한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가? 유지하고 싶으면 해보라. 불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세계는 여러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주식 대폭락이나 금융 질서 붕괴와 경제 위기가 닥칠 수도 있고, 아니면 지진과 수해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혹은 여러분의 애인이 여러분의 무미건조한 생활에 싫증을 내고 결별을 선언할 수도 있다. 본의 아니게 새로운 환경이 여러분을 덮칠 것이다. 그러니 싫든 좋든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단순하다. 자발적인 여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타율적인 여행을 할 것인가? 급류를 거슬러 수영을 할 것인가, 아니면 급류에 휩쓸려 내려갈 것인가? 어느 경우든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나’로 변할 것이다. 그렇지만 전자의 경우,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성장하는 자신을 확인할 테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갈수록 약해져만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지혜롭다면, 자발적 여행을 떠날 일이다.

지금 여러분이 들고 있는 책 《방황의 기술》의 저자 레베카 라인하르트는 자발적 여행을 ‘방황’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간은 왜 방황해야만 하는지, 왜 방황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방황이 인간에게 얼마나 커다란 선물을 줄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려고 한다. “낯선 것, 예측할 수 없는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이 세계에서 우리가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인간이라는 것과 인간성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방황이라는 여행이.   

아직도 방황에 주저하는 독자에게는 라인하르트가 인용한 노발리스의 말이 힘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란 주어진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소설이어야 한다.” 남들이나 환경이 만들어놓은 소설의 조연 노릇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남들과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머물면서 소설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질 때, 다시 말해 삶을 마무리할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바로 그 순간, 엷은 미소를 띠면서 혼잣말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파란만장했고 순간순간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흥미진진한 소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소설을 쓴 것 같다”라고.

한동안 독자들에게 친필 사인을 할 때 내게 덧붙일 말이 하나 생긴 것 같다. 라인하르트의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어쩌면 독자들은 여행과도 같은 삶을 살아내기를 기원하는 나의 마음을 더 쉽게 알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방황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그것을 기꺼이 감내해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삶, 다시 말해 ‘나’이기 때문에 혹은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방황하는 기술이다

- 프롤로그 

불안의 시대에는 안전이 고가의 자산이다. 우리 모두는 안전한 직장과 보장된 연금, 믿을 수 있는 파트너를 원한다. 제아무리 사나운 변화의 폭풍이 몰아쳐도 모습이 변치 않는 것, 푹 믿고 기댈 수 있는 것.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고 믿는 순간 문제는 다시 시작된다. 사랑스럽던 파트너가 갑자기 우울증 환자임이 밝혀진다. 그렇게 말 잘 듣던 아이는 질풍노도의 나이가 된다. 직장은 위태위태하다. 직장에서 잘리면 어쩌나? 혹시 암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불안하다. 세상만사가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다시 붙들고 싶다. 불확실한 건 싫다. 실패할까 봐 겁난다. 궤도에서 이탈하고 싶지 않다.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착오와 실패는 계획에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제대로 하고 싶다. 일, 가정, 건강, 적당한 수입. 직선거리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목표를 이루고 싶다. 실험은 안 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비전과 꿈을 갖는 것이 낭만적이긴 하겠지만 그것으론 건질 것이 없다.

미래는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늘 이런저런 예기치 못한 문제와 씨름했듯 미래도 편안한 산책길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모험을 강행하여 미지의 땅을 정복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조심 또 조심하는 편이 옳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극대화하고 완성하는 것으로 족하다. 지금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삶을 꾸려갈 것이며, 미심쩍은 불확실성은 애당초 차단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남는 시간이 있거든 여유 있게 즐기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바로 이런 태도가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를 가로막는다. 남보다 뛰어난 시간 관리가 과연 인생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손실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 최대한 즐기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이 세상에 왔을 때보다 조금 더 똑똑해져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철학자이기에 매일 이런 문제들과 만난다. 책에서도 만나지만, 내가 운영하는 상담소나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늘 이런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철학도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아주 다양하고(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 젊은 사람, 늙은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 못 한 사람, 돈을 잘 버는 사람, 못 버는 사람) 인생 역정도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관심사는 다 거기서 거기다. 다들 행복이 무언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새삼 확인하는 사실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불확실한 상태에 있는 걸 못 견뎌 한다는 것이다. 집안일이든, 직장 업무든, 병이든 마찬가지다.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며, 어떤 땐 오히려 해결책이 없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헤매는 것은 무조건 시간과 비용의 낭비라고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그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해방시켜주겠다는 전문가를 서둘러 찾아 나선다. 재미있는 건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원인이,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결코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원인은 해결 지향성이 지혜의 마지막 결론이라고 주장하는 이 시대, 어린 시절부터 효율과 효과를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차단시키려 애쓰는 이 시대와 훨씬 더 관련이 깊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차단시킬 수는 없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예측 불가능이라는 매력이 사라진 우리의 삶은 상상만 해도 너무 황량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시대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나를 찾는 환자들을 통해 거듭 확인한다. 나아가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보다 포괄적인 철학적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다면 정말 못 견딜 것 같은 문제들도 갑자기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불확실한 세상을 떠도는 방황이 죄나 벌이 아니라 기술로 보이는 그런 관점 말이다.

이 책은 미래를 두려워하고 해결을 지향하고 계산에 집착하는 이 시대에 더 많은 용기와 호기심을 갖자고 외치는 변론이다. 이 책은 고대 영웅 오디세우스를 모델로 삼아 일상적이지 않은 일, 낯선 일, 한계상황에 뛰어들라는 초대장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이 드러날 일을, 심지어 실패할 줄 뻔히 아는 일을 감행해보라는 초대장. 이유가 뭘까? 우리는 절대 직접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빙빙 돌아봐야, 삼천포로도 빠져봐야 자신에게 갈 수 있다. 낯선 것, 예측할 수 없는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이 세계에서 우리가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인간이라는 것과 인간성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쉽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쉽게 정리가 안 되고 쉽게 내 손아귀에 안 들어오는 것이 더 매력적이고 더 스릴이 있는 법이다.

―헤매다
―헷갈리다
―착각하다
―혼란스럽다
―길을 잘못 들다
―길을 잃다

방황을 인생의 장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와 다른 것, 쉽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혼란스러운 것을 무시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절대 아니다.

두려워 말자. 망설이지도 말자. 지평을 넓혀라. 방황을 기술로 생각하자. 방황의 기술을 배워 인생의 가장 흥미진진한 즉 예측 불가능한 측면들을 만나보자. 수동적인 자세에 신물이 났다면, 다시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싶다면, 현재의 상황이 참을 수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은 당신의 멋진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습관으로 굳어버린 세계관을 버리고 불확실한 것에 다가갈 수 있는 용기와 호기심과 능력을, 숨어 있던 그 능력을 일깨우라고 재촉할 테니 말이다. 놀랄 만한 인생의 다양성, 일상의 근심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그 다양성을 새삼 깨닫게 해줄 테니 말이다. 더 용기를 내라고 외칠 것이고,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인내하라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라고 가르칠 테니 말이다. 공동체는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우리 것’과의 동일시를 넘어 남의 것, 낯선 것과 친구가 될 때 탄생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수많은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모든 경우에서 서둘러 (소위) 올바른 해답을 내기보다는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불확실성, 다의성, 모순을 ‘합리화로 제거하는 것’은 손실이 없을 수 없다. 철학에서도, 실제 삶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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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에 관해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이 중첩되어 명멸했다. 나는 우리 대통령이 인문학적 통찰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우리 시민들이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제발 묻지마 아무개 식으로 투표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정말로 역사학자마저도 역사적 유물을 깔아뭉개면서 건조물을 만드는 것을 개발이라 여기고, 그렇게 하여 많은 업적 을 쌓은 사람을 유능한 지도자라고 지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자신의 언행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정도의 지각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의 시인의 이름쯤은 몰라도 괜찮다. 한시 한두 구절은 못 외어도 상관없다. 가끔 성질에 못 이겨 상소리를 내뱉어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어떤 역사적 위상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반성하고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반성과 성찰을 하는 사람은 남의 비판과 충고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일 줄 안다 옛날 현명한 왕들은 남의 좋은 충고를 들으면 그 말에 절을 했다고 하지 않은가. 경연은 남의 지혜를 빌리는 자리 곧 지존의 왕이 신하들을 스승으로 삼아 그들의 지혜와 경륜을 배우는 자리이다. 남의 머리를 빌리는 것,남의 말을 듣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교양을 쌓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에서 당대의 문제를 솔직하게 묻는 왕과 이에 대범하게 답하는 젊은 인재의 모습으로 시대의 과제에 대응하는 조선의 모습을 보여준 김태완 선생이 신작 <경연, 왕의 공부>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최고 권력자이면서도 하나의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읽고 또 읽고, 묻고 또 묻고, 논쟁에 논쟁을 거쳐야 했던 조선 왕의 공부의 장, 즉 경연을 현장에서 바라보듯 그려내고 이에 당대의 역사 맥락으로 해설을 붙이고,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평을 더했다. 지도자 혹은 리더란 무엇인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묻는 요즘, 공부하고 토론하는 열린 리더의 모습뿐 아니라 이에 부응해 함께 공부하고 논의하여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시민의 자세까지 생각해볼 좋은 기회다. 경연이란 무엇인지 이와 함께 왕의 일과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짧게 살펴보고 실제 조강의 한 대목을 따라가보자.

 

 

경연과 왕의 하루 

조선시대 왕들은 날마다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萬機)을 몸소 점검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틈틈이, 아예 시간을 정해놓고 유학의 경전과 역사서를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그 시간을 이용하여 정책을 의논하고 토론했다. 이처럼 왕이 군주로서 덕성을 수양하기 위해 공부하고, 현명하고 경륜이 많은 관료들과 정책토론을 하게끔 제도적으로 마련한 공간이 바로 경연이다.
  국왕의 하루는 일어나자마자 죽이나 미음 등 간단한 초조반(初早飯)으로 요기를 한 다음, 웃전에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과 함께 시작된다. 많은 왕들이 모후(母后)보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당대의 왕에게는 어머니와 할머니까지 층층시하로 살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유교적 가치와 윤리가 체화한 사회의 왕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왕은 어머니(대비)와 할머니(대왕대비)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빠뜨리지 않았다.
  문안을 마친 왕은 신료들을 만나 국정에 관한 업무를 시작한다. 약식 조회인 상참(常參)이 끝난 뒤에는 경연을 열었는데, 세종 이후 상참과 경연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상참의 연장으로 시사(視事)를 아뢰고 경연을 했다. 그러다가 영조 이후에는 상참 전에 경연을 먼저 해서, 국왕은 해가 뜰 무렵 조강(朝講)으로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경연이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하고, 이어서 문무 관료들과 조회를 하면서 업무 보고를 받는 등 국정을 돌본다. 정오에는 주강(晝講)을 하고, 요즘 시간으로 오후 2시(未正)에 석강(夕講)에 참석하는데, 이 세 차례의 경연을 삼시강(三時講)이라고 한다. 이것이 국왕의 공식적인 경연, 곧 법강(法講)이다. 그리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특강 또는 보강 형식의 소대(召對)가 있는데, 특히 밤에 열리는 소대를 야대(夜對)라고 한다. 소대나 야대에는 학덕이 뛰어난 학자나 은퇴한 원로가 특별히 초빙되어 왕과 담론을 하기도 했다.
 

  

위 인장(정조의 만기지가 인장)에 새겨진 ‘萬機之暇’, ‘萬幾餘暇’는 왕이 온갖 업무(萬機)를 처리하는 틈틈이, 여가를 활용해 책을 읽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국정을 돌보는 바쁜 와중에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던 국왕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경연이 제도상으로 이처럼 완비되어 있었지만, 아무리 경연에 열의를 갖고 임했던 왕이라 하더라도 매일 삼시강과 소대를 열지는 않았다. 왕의 분주한 일과를 생각하면,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는 며칠에 한 번 경연을 여는 때도 있었고, 오랫동안 경연을 거른 때도 있었다. 또 성실하게 경연에 임한 왕도 가끔씩은 몇 차례의 경연 내용을 한꺼번에 몰아서 공부하기도 했다.
  삼시강과 소대 및 야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조선 초기의 정치적 안정을 구가한 성종의 경연 사례를 들어서 살펴보기로 한다. 편의상 왕이 하루 동안 참석하는 경연으로 구성했지만, 실제로 어느 특정한 하루 동안에 삼시강과 소대를 모두 행한 왕의 사례는 <실록>이나 다른 사료에서도 찾아보지 못했다.(내가 게을러서!) 또한 실제로 삼시강과 야대에 모두 참석했다 하더라도 진강한 내용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으므로, 성종 대의 대표적인 경연 가운데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을 위주로 선별해 재구성했다. 그리고 소대는 <성종실록>에는 적당한 사례가 없어서, 영조 때의 기록을 가져왔다.

조강
강론이 끝난 뒤 관직에 선발된 관리의 적격성 여부를 토론하다
성종9년(1478)10월7일

경연에 나아갔다. <예기(禮記)>'상복소기喪服小記'의 “조부가 죽고 조모의 후사가 된 자는 삼년상을 입는다(祖父卒而後爲祖母後者, 三年).”라는 구절을 강론하였다.

지경연사(知經筵事) 이승소(李承召)  수양부모(收養父母)에 대해 삼년상을 입는 것은 옛 글에는 실려 있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서는 행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있는데 양부모에게 삼년상을 입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임금  당초에는 어찌하여 이 법을 세웠는가?
영경연사(領經筵事) 윤필상(尹弼商)  수양부모는 어루만져 기른 은혜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복(服)을 입습니다.
이승소  예전에는 계후(繼後, 양자로 후사를 이음)에 관한 글이 없었을 뿐더러, 오직 대종(大宗, 대종손)에게만 계후가 있었습니다. 선조(先祖)를 중히 여겨서 후사가 끊어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들을 데려다가 후사를 잇고 사람들도 기꺼이 후사가 되려고 하는 것은 땅과 백성을 탐내서 그런 것입니다. 예전에 공자가 확상(矍相)의 채소밭에서 활을 쏘는 의식을 거행했는데, “남의 후사가 된 자는 들어오지 못한다(爲人後者不入 <禮記>'射義').”라고 하였습니다. 후사가 되는 것을 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후하는 법은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지 오래되어서 가볍게 고칠 수는 없습니다.

강을 마쳤다.

지평(持平) 허침(許琛)  창원군(昌原君)은 죄를 범한 것이 가볍지 아니한데, 한 해가 안 되어 갑자기 벼슬을 돌려주었습니다. 또 임사홍(任士洪)은 조정의 정사를 어지럽게 해서 먼 지방에 귀양 보냈는데, 겨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곧바로 소환하였습니다. 아마도 국가의 법이 이로부터 허물어질 듯합니다.
임금  임사홍이 벌써 돌아왔는가?
우승지(右承旨) 김승경(金升卿)  임사홍이 서울에 들어온 지 벌써 사흘이 되었다고 합니다.
임금  공주의 병이 나은 뒤에 배소(配所, 귀양지)로 돌려보내겠다.
허침  이조(吏曹)는 인물을 전형(銓衡)하고 백관을 벼슬에 나아가거나 물러나게 하는 곳이므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자가 아니라면 하루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박중선(朴仲善)을 판서로 삼았습니다. 박중선이 무신이라서 그 직책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임금  문신으로서 비록 경적(經籍)을 밝게 통달한 자일지라도 일을 처리하는 데는 간혹 잘못 조처하는 수도 있고, 무신이라 하더라도 일을 잘 처리하는 자가 있다. 하나만 가지고 논할 수는 없다. 박중선은 어떠한 사람인가?
윤필상  박중선은 세조조에 여러 번 좋은 벼슬을 역임하여 병조 판서까지 되었는데, 지금 이 벼슬을 제수하는 것이 어찌 옳지 않겠습니까?
이승소  박중선이 비록 무신일지라도 글을 알고 사리에 통달하였습니다. 다만 일을 처리하고 판단하는 데 능한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시험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임금  박중선은 참으로 바꿀 수 없다.
허침  참판 신정(申瀞)은 비록 자질이 명민하나, 역시 물망(物望, 여론)에 맞지 않은 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어찌 인물을 전형하는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신은 전선(銓選, 인물의 전형과 선발)이 정밀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임금  참판이 물망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허침  여론이 모두 청렴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임금  이조는 중대한 곳인데, 그 사람됨이 이와 같다면 그 벼슬에 둘 수 없다. 저마다 아는 것을 말하라.
윤필상  신정은 일찍이 도승지가 되었으니, 그 사람됨을 성상께서 자세히 알고 계실 터입니다. 그가 청렴하지 않은지를 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승소  신정이 청렴하지 못하다는 말은 신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듣건대, 신정은 사는 것이 넉넉하다고 합니다. 대개 부(富)란 원망의 대상이므로 여론이 이와 같습니다.
시독관(侍讀官) 안침(安琛)  나라 사람들이 모두 어질다고 한 뒤에야 쓸 수 있습니다. 신정이 청렴하지 못한지는 신이 자세히 알지 못하나, 여론이 이와 같으면 전형의 지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전경(典經) 안윤손(安潤孫)  신도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나, 여론은 참으로 대간(臺諫)의 말과 같습니다.
임금  신정이 도승지로 있을 때 잘못한 일이 없었고, 이제 참판이 되어서도 잘못이 없으며, 또 무슨 일이 청렴하지 못하다고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 근거 없는 말만 가지고 갑자기 벼슬을 바꾸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한 일이다.
허침  유양춘(柳陽春)은 행실이 경박한 사람이라서 참으로 조정의 벼슬에 서용할 수 없는 사람인데, 지금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로서 승문원(承文院, 외교문서를 맡아보던 기관) 교리(校理)에 올랐습니다. 온당치 못합니다.
임금  자기 의견을 말하라.
윤필상  유양춘이 예문록(藝文錄)에 참여하여 뽑혔으니, 만약 이문(吏文, 조선시대에 공문서에서 쓰던 특수한 양식의 이두문체 또는 용어)과 한훈(漢訓, 중국어)에 정통하다면 쓰더라도 괜찮습니다.
이승소  그러합니다.
임금  승문원의 소임은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양춘이 이문에 정통하다면 쓰더라도 무방하나, 정통하지 못하다면 쓸 수 없다. 이문에 정통한지 여부를 전조(銓曹, 인물을 전형하는 부서. 이조와 병조)에 물어보도록 하라.
 

풀이
이날 경연에서는 <예기>를 텍스트로 삼아, 거기 수록된 예(禮) 규범과 실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관습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토론했다. 이어서 종친이나 권신에게 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사례를 들어서 비판하고, 관직에 선발된 관리의 적격성 여부를 논의했다.
  창원군(昌原君) 이성(李晟)은 세조와 근빈(謹嬪) 박씨의 둘째 아들이다. 종친이라는 신분을 믿고 제멋대로 불법을 자행했고, 오만무례하고 포악하게도 국가의 기강과 질서를 어지럽혔다. 지방에 가서는 수령들을 능욕하고 함부로 폭력을 휘둘렀다. 궁중의 법도까지 어지럽혀, 정희왕후(貞熹王后, 세조의 비)가 여러 차례 꾸짖어도 뉘우치지 않았다. 심지어 여종을 살해한 죄로 국문을 당하기도 했다.
  여종 살해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종 9년(1478) 1월에 창원군의 구사(丘史, 종친이나 공신에게 소속된 관노비) 곱지(古邑之)라는 여자가 살해되었다. 곱지는 음악을 할 줄 알고 이름처럼 용모도 고왔던 모양이다. 가외(加外)라는 여자가 진술한 내용은 이러했다. 자신의 팔촌 동생인 곱지란 여자가 음률(音律)을 조금 아는데 창원군의 구사로서 그 집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다, 창원군이 곱지를 간통하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죽은 여자가 아마도 곱지일 듯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곱지의 용모와 복색을 말했는데, 여자의 시체를 직접 보게 했더니 곱지가 맞다고 했다. 그래서 삼사三司(사헌부·사간원·홍문관)에서 창원군에게 노비등록대장인 ‘구사입안(丘史立案)’을 들이라고 요구했으나, 창원군은 ‘입안’이 없다고 대답했다. 삼사에서 이 사실을 임금에게 아뢰었다. 임금이 환관(宦官) 조진(曺疹)과 한림(翰林) 최진(崔璡)을 창원군의 집에 보내 ‘구사입안’을 가져오게 했다. 조진이 창원군의 집에 이르니, 창원군은 이미 그것을 벌써 보냈다고 했다.
  다음 날 동부승지(同副承旨) 이경동(李瓊仝)이 공초를 받은 내용을 아뢰었다. “창원군의 종 원만(元萬)·석산(石山)·산이(山伊)가 승복하였습니다. 그 공초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옥형(洪玉亨)이란 자가 주인집의 여종 옥금(玉今)을 아내로 삼고, 또 곱지를 간통하였습니다. 하루는 곱지가 옥금에게 “내가 꿈에 홍옥형을 보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상전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서 “네가 꿈에 옥형을 보았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고 우리들을 시켜 죽이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머뭇거리자 곱지를 익랑(翼廊, 대문의 좌우 양편에 이어서 지은 행랑) 처마에 달아매고 칼로 죽였습니다.>”
  곱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창원군은, 곱지가 홍옥형이라는 자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알고 불같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곱지를 추궁하다가 죽였던 것이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중신들이 의논하여 다음과 같이 논고했다. “창원군 이성의 큰 죄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이 일어나서 삼사의 낭청(郞廳)이 왕명을 받들고 그 집에 이르렀는데, 창원군이 왕명을 거역하고 그들을 집에 들이지 않은 것이 그 하나입니다. 살인한 형적이 이미 드러나 상께서 인견(引見)하고 친문(親問)할 때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은 것이 그 둘입니다. 칼로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거리낌 없이 멋대로 포학한 행위를 자행한 것이 그 셋입니다. 종들이 그가 흉악한 행위를 감행할 때 사용한 환도(環刀)의 형체와 모양을 분명히 말하였는데도, 내관이 전교를 받들고 가서 물었을 때 굳이 숨기고 승복하지 않았던 것이 그 넷입니다. 성이 비록 왕자이나, 이 같은 큰 죄를 범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건이 종묘사직에 관계된 것이 아니니, 상께서 재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창원군이 종친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면해주고 원방(遠方) 부처(付處)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충청도 진천에 유배하기로 결정했으나, 세조의 소생으로는 창원군 형제밖에 남지 않았다고 정희대비가 간청하여 며칠 만에 원방 부처한다는 판결마저 철회했다. 그 뒤로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판결 철회가 부당하다며 몇 차례 상소했으나, 성종은 결국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뒤에는 직첩(職牒)도 다시 돌려주었다.
  임사홍은 텔레비전 사극의 단골 주인공으로 곧잘 등장하는데, 연산군의 타락과 학정을 부추긴 간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훈구파의 거물로서 연산군 때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 연산군 10년)를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아들 보성군(寶城君)의 사위이며, 그의 두 아들이 예종의 딸 현숙공주(顯肅公主)와 성종의 딸 휘숙옹주(徽淑翁主)에게 장가들어서 왕실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성종 9년(1478)에는 유자광(柳子光) 등과 함께 파당을 만들어 횡포를 자행하고 조정의 기강을 흐리게 한 죄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의주로 유배당했다. 친아버지처럼 그를 의지하던 공주가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곧 풀려나왔으나, 정권에서 소외되어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임사홍은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유자광 등과 결탁하여 전횡을 일삼았고, 그 뒤 갑자사화 때는 그의 둘째 아들 임희재(任熙載)가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연루되어서 화를 입었는데도 구제하지 않았다. <중종실록>에는 그가 아들이 처형되던 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서 연회를 베풀고 고기를 먹으며 풍악을 울렸는데, 연산군이 사람을 시켜 이를 엿보고는 더욱 신임하고 총애하며 한결같이 그의 계교를 따랐다고 한다. 


   

묘비에는 ‘정헌대부 이조판서 풍천임공 휘 사홍, 정경부인 효령대군 손녀 전주이씨지묘(政憲大夫吏曹判書豊川任公諱士洪貞敬夫人孝寧大君孫女全州李氏之墓)’라고 쓰여 있다. 임사홍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 둘이 왕실의 사위가 되었다. 성종조에서는 정권에서 소외되어 큰 활약을 하지 못하다가, 연산군 때 재기하여 사화를 주도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읊었다.

작은 소인 숭재, 큰 소인 사홍(小任崇載大任洪)
천고에 으뜸가는 간흉이라(千古姦兇是最雄)
천도는 돌고 돌아 보복이 있으리니(天道好還應有報)
알리라, 네 뼈 또한 바람에 날릴 것을(從知汝骨亦飄風)

마지막 구절은 당시 죄인의 뼈를 부수어 바람에 날리는 형벌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빗대 표현한 것인 듯하다. 작은 소인이라고 지목된 숭재는 임사홍의 넷째 아들로, 전에 장녹수와 간통했는데 장녹수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게 되자 일이 탄로 날까 두려워하여 “만약 평소의 일에 대한 말이 나오거든 희재가 한 일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나를 믿고 시기하지 않을 것이며, 너도 보전될 것이다.”라고 몰래 말했다. 이 때문에 화가 그의 형 희재에게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랬던 임숭재도 그의 아비 임사홍보다 먼저 죽음으로써 나중에 중종반정이 일어났을 때 처형을 모면할 수 있었다.
  임사홍은 연산군 10년(1504)에 왕의 처남인 신수근(愼守勤)과 함께 모의하여,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되고 사사된 내막을 밀고하여 갑자사화를 일으켰다. 이때 성종 대의 중신과 사림들이 대거 제거되었다. 그러나 결국 1506년, 중종반정 뒤에 임사홍은 아버지 원준(元濬)과 함께 처형당했으며, 아들 숭재는 관직을 추탈당하고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가산도 몰수당했다. 임사홍은 중국어에 능통하여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경험으로 승문원(承文院)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촉체(蜀體) 해서에 능했다고 한다.
  경연에서 성종이 공주의 병을 운운한 것은, 현숙공주가 아버지 예종을 여읜 뒤 시아버지 임사홍을 친아버지처럼 따랐는데, 그가 유배 간 뒤 그리워하여 거의 병이 날 지경이 되었던 것을 말한다.
  세종 이후로 혼란했던 조선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가제도를 확립한 성종도 친·인척의 부정과 비리는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앞의 경연 기록을 보더라도 권력자나 관료, 공무원의 친·인척 비리는 국가의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 근원이 됨을 알 수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을 공정하게 선발하고 적재를 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다.
  사신(史臣, 사초를 기록하는 신하)은 이 날짜의 일을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허침이 신정을 청렴하지 못하다고 배척한 것은 참으로 여론인데, 좌우에서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으니 그들을 곧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박중선은 무인으로서 시서(詩書)를 알지 못하므로 인물을 전형하지 못할 것은 명백한데, 그를 전조(銓曹)의 장관으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시서를 알지 못하므로 인물을 전형할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문신관료는 이조에서, 무신관료는 병조에서 전형을 했다. 그런데 박중선이 무인으로서 이조의 장관으로 발탁되었기 때문에 사신은 그가 문신관료를 제대로 알아보고 전형할 수 없으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성종의 말처럼 경적에 통달한 문인도 일처리를 잘하지 못할 수 있으며, 무신이라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 행적이나 이력을 보고 평가해야지, 선입관으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고위 공직자를 선발하여 임명할 때 사전 검증하는 제도(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래, 2011년 현재 전 국민은 국무총리 후보와 몇몇 부서의 장관을 물망에 올려놓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몇 건의 ‘쇼’를 관람했다. 특권층의 가치관과 법의식이 보통 시민들의 그것과 정말 소양지판이요, 천양지차이다! 아무리 법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지만, 위장전입, 탈세, 공사(公私) 혼동, 특권의식에 따른 위법이 점입가경이다. 고대 헬라스의 어느 소피스트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한 말은 언제나 불변의 진리인가? 우리나라에서 법은 거미줄이다. 새는 아예 걸리지도 않고, 설령 걸린다 하더라도 날갯짓 한 번에 찢어지고 말 뿐, 나비, 파리, 모기, 잠자리 같은 잔챙이 벌레들만 걸려드는 거미줄이다. 청문회 자리에 불려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번이 나라에 봉사할 마지막 기회’라면서 인정을 호소한다. 무슨 놈의 마지막 기회가 저리도 여러 번이란 말인가! 마지막은 딱 한 번밖에 없다. 뻔뻔한 것도 유만부동이다. 작금의 인사청문회 관련 소식을 보고 있으려니, 상피(相避)와 피혐(避嫌, 상피와 피혐: 상피는 일정 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사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며, 어느 지역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관리도 그 지역에 파견되지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피혐은 어떤 사건에 관련되어 혐의를 받으면 그 혐의가 풀릴 때까지 벼슬을 삼가는 것을 말한다.
  이 상식이었던 조선시대라면 과연 이런 사람들이 언감생심 관료를 꿈에나 꿀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을 ‘파렴치하다’고 한다. 파렴치할수록, 얼굴이 두꺼울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인가 보다, 대한민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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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 2011-08-1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조선.
당파와 외침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500년을 버틴 건
정치의 근본엔 '민'이 있었기 때문에, 경연과 같은 장치들이 있었기 때문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8-26 11:40   좋아요 0 | URL
지금은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법 체계인데도 왜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까요...

상생 2011-08-1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으로 치자면 대통령이 비서진들과 각료들을 수시로 모아놓고 고전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모습일텐데,
그럴리는 없지만, 생각만 해도 즐거운 상상입니다.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의 헛짓거리들은 다 내면의 인문학적 소양과 자기성찰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낡은 과거로만 인식되던 조선, 우리가 과거보다 발전에 왔다는 단순한 생각이 실은 얼마나 비성착적인 관점인지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김태완씨의 전작 <책문>을 읽은 독자들은 기대해도 좋을 듯...

인문MD 바갈라딘 2011-08-26 11:39   좋아요 0 | URL
퇴임 후였지만 비서진과 각료 들 모아놓고 책 읽고 세미나하던 대통령도 있었지요. 말씀처럼 경연 자체가 과거로부터의 배움이니, 지금의 비성찰적 태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고맙습니다.
 

   
 

이 책은 사실상 방대한 규모의 인류 문명사 전반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 속의 '지식'보다는 '지혜'를 밝히고자 한다는 점에서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한 거북살스런 오만함이 없다. 약삭빠른 속도감보다는 그 뒤에 감춰진 느린 움직임들의 미덕을 품어 안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단순히 당위와 규범이 아니라 인류 문명사 전반에서 발견되는 명백한 사실들을 놓고 희망의 근거를 삼고자 한다는 점에서 종말론적 위협으로 먹고사는 다른 환경 도서들과도 다르다. 그래서일까. 왠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잘 모르겠다'는 소리도 맘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첨단과학기술의 똑똑함 앞에서 피곤하게 경쟁적으로 똑똑한 척하려 애쓰지 않고, 차라리 잘 모르겠다는 (무책임이 아닌) 겸양의 태도를 내보이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되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옮긴이의 말)

 
   

 

 

꽤 오래 전 책인데 <도둑 맞은 미래>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90년대 후반에 환경호르몬 문제를 제대로 알린 책이지요. 공저자 다이앤 듀마노스키가 오랜만에 신간으로 찾아왔습니다. <긴 여름의 끝>이란 멋진 제목은 지난 1만 1700년 동안 (고마운 줄 모르고) 누린 기후의 축복을 말합니다. 이 막간이 끝나면 우리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그렇다고 인류가 하루 아침에 멸망하거나 지구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큰 어려움을 이겨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제 기존의 진보 서사는 잊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다가올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문화 서사가 필요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에 맞서야 하는지,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새롭게 묻고 답합니다.

듀마노스키의 주장이 잘 정리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공개합니다. 

 

 

9.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_ 정직한 희망

 
이 세상을 뚫고 지나가는 길은 우회로보다 찾기 어렵다.
─월리스 스티븐스

 
위험의 시대에는 달콤한 거짓말보다 쓰디쓴 진실이 더 도움이 되는 법이다.
  근대의 세기에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준 신화의 약속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진보를 통한 구원의 믿음은 오존 구멍과 지구온난화 같은 사태가 나타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오늘날 가장 빠른 진보는 이 행성 을 우리 자신을 비롯한 많은 생명체들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십 년 뒤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손실이 나타날 것이 확실하다. 가을철 뉴잉글랜드의 설탕단풍나무숲이나 열대 바다의 산호초들, 북극곰과 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식물들과 저지대 섬들과 모래 해변, 그리고 일부 해안 도시들 같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오늘 태어난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바꾸게 하려고 겁을 주는 환경종말론의 어두운 예언이 아니다. 이미 벌어진 변화의 피할 수 없는 결과일 뿐이다. 지금 당장 모든 온실가스를 차단하더라도 온난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엔진을 끄더라도 질주하던 기차가 산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물론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재난의 강도가 약한 경로로 들어설 수도 있다). 앞으로의 100년은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 틀림없다.
  앞에 놓인 장애물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이제까지 세상의 변화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일어났고,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의 미래를 대비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다. 앞으로의 몇 세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처럼 인식 가능한 형태로 펼쳐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인류의 여정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 따르면, 역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이 세상의 부자들이 당연시해왔던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기대할 권한이 없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본 경험은 얼마 되지 않는다. 중요한 원인은 기후가 너무 불안정해서 농업이나 정착 문명을 형성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난 1만 1700년간 인간은 긴 여름과도 같은 기후상의 축복을 만끽했다. 이 간빙기는 유례없이 길고 도 평화로웠다. 기후사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이 막간의 시기는 특수한 가능성의 경관으로서 수천년 간 인간이 전 지구적인 문명을 건설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막간극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내일의 가능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를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의 다음 장이 어떨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특히나 기후시스템이 과거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변칙적인 양상으로 돌아갈 경우 상황은 더욱 난감할 뿐이다. 하지만 3만 2000여 년 전 우리 선조 가 완성해놓은 아름답고도 강력한 프랑스 쇼베 동굴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본질적인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다. 복잡한 문명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는 복잡한 방식으로 인간으로서의 특징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황갈색의 암벽에 목탄으로 그려넣은 말 머리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히 목이 굵고 턱이 묵직하며 칫솔모처럼 뻣뻣하게 일어선 갈기를 가진 말을 그려놓은 것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몽골의 초원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말을 본 적이 있었다. 프셰발스키말이라고 하는 이 말은 동굴 벽에 있던 그 말들과 너무 닯은 모습이었다. 이 말이 풀 뜯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단단한 근육질의 몸과 그 세련된 빛깔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황금빛의 어깨에서 초콜릿 빛깔의 다리까지 색깔이 차츰 어두워지는 것이 이 말의 색깔은 열대 지방의 새처럼 현란하지 않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섬세했다. 귀의 끝은 동양의 수묵화 느낌이 나는 어두운 색이었다. 불에 탄 검은색 나무덩어리를 쥔 손은 암석상의 음영 처리와 대담한 선들을 가지고 그 턱과 어깨를 선명하게 그려내고, 귀의 어두운 윤곽과 뻣뻣한 검은색 갈기를 따뜻한 사슴털빛의 몸 색깔과의 대비 속에 그려냄으로써 그 위력적인 아름다움을 완전하게 표현해낸 것이다. 이 고대의 예술가의 세상에 대한 반응은 문화와 시대를 초월해서 내게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예술가와 나는 같은 눈과 심장으로 야생마를 보았다.
  만일 지구가 이다음 몇십 년간 더욱더 거친 음악 속에 몸을 맡긴다면 나는 인간들이 복잡한 문명을 포기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 춤사위의 일부로 남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바람을 갖는 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들의 연방제 속에서 인간이 예외적이라거나(위장술의 천재인 오징어는 오징어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각 특수한 존재이긴 하다) 가이아 또는 우주가 우리를 어떤 이유로든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유구한 드라마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하고 이 푸르고 생기 넘치는 지구상에서 자기만의 순간을 갖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3만 2000년 뒤에도 누군가가 나와 마찬가지로 그 야생마 그림에 사로잡히고 감동을 받아서 말이나 이미지로 그것을 표현했으면 좋겠다. 이 탐험 과정에서 내게 분명해진 것은 오늘날의 문명이 인류의 척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유일한 또는 최선의 방식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구는 인간이 없으면 더 나아질 것이라거나 우리는 본성적인 결함 때문에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릴 이유도 없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위험은 과감한 문화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전 지구적 문명이 스스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조직된 인간 사회를 가능케 하는 조건까지도 파괴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최악의 경우 근대 산업문명이 유발한 전 지구적 변화는 지구를 우리의 생명에 유해한 새로운 상태로 몰아갈 수도 있다. 만일 지난 역사를 통해 어떤 지침을 얻을 수 있다면, 지구와 그 거대한 가이아의 과정은 산소 위기와 소행성의 충돌, 다른 충격적인 재난들 속에서 살아남았던 것처럼 근대적 세기의 공습 속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시간이 있다면 생명은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창조적이고 그 어마어마한 지구의 과정은 이미 레몬의 가장 쓴 부분을 가지고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독 성의 산소는 복잡한 생명체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 나는 우리가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인간이 근대적 세기의 악영향 속에서도 살아남아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쓸 수 있기를 기도한다. 


 
 

혼란 속의 길

앞으로 다가올 세기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지점은 그것이 엄청나게 불확실하다는 점뿐이다. 우리 시대의 거대한 유혹은 이 불확실성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충동일 수 있다. 서구의 사고방식이 흑백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을 때 절망‘(너무 늦었다’는 확신)에서든 과학에 대한 기대를 품고 근거 없는 장밋빛 환상을 대안으로 여기는 방식에서든 위안을 얻으려는 욕망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어두워질수록 희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희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지난 사회들이 문화적인 함정에 빠져 환경 변화의 도전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점을 돌아보며 인류학자 폴 보해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들은 최소한 자신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추려내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맹목적인 희망을 가지고 달리고 있는가? 이런 종류의 희망은 죽음을 몰고올 뿐이다.”
  나는 우리가 금지의 목록들을 다 추려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절망만큼이나 맹목적인 희망이 두렵다. 기술적인 조정에 대한 신념이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구원이든 인류의 역사는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종말론적 믿음이든 간에 불확실성에서 달아나 거대한 섭리라는 갑옷 속에 몸을 숨기는 경우, 우리는 미래에 대한 책임에서 멀어진다. 거칠고 비참한 변화의 한 중간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야 할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어려운 선택을 하고 행동하며 미래를 결정할 의무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인간의 문화는 그동안 도피주의에 안주하지 않고 존재의 필연적인 불확실성과 대면하기 위해 눈앞의 길을 밟아왔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베다의 영향권에 있던 인도처럼 극동의 고대 문명들은 이 세계의 질서인 코스모스는 언제나 혼돈의 위협 속에 있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존재의 드라마는 끝없는 투쟁 속에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지속된다. 이들의 신화에 따르면 존재의 핵심에는 바로 이 꾸준한 투쟁이 있다. 손쉬운 탈출구에 대한 약속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와 비슷하게 편안한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을 경계하는 북미 나바호 인디언들 사이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고난이나 슬픔이 없는 인생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보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사회는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불행을 인정하지 못한다.”
  영국의 역사가 존 그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비극의 경험을 부정하는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나는 다음과 같은 그의 결론에 동의한다.
  “훌륭한 삶은 진보의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대처 속에 있다.”
  내 경험에 따르면 현실의 위기는 내가 이전에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 내가 놀랐던 것은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것이었다. 생명을 위협하는 두 질병을 통해 나는 사람은 상황이 닥치면 강해지고 이전까지 끔찍하고 불가능해보이던 것도 쉽게 견뎌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명적일 수도 있었던 위급 상황에서 너무 늦어지기 전에 나 자신을 구제하는 데 필요한 차분함의 경지에 얼마나 재빨리 도달했던지 나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는 생명이 평상시에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강요함으로써 우리
를 단련시키고 더 깊어지게 할 수 있다.
  앞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일 이들 또한 폴란드와 보스니아에 있는 내 친구들이 그 길고도 잔혹한 전쟁에서 살아남아 투쟁과 상실의 한 가운데서 발견해낸 것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거대한 시도의 시기들은 단지 최악의 시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는 최고의 시기 또한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생명을 가장 소중하고 강력하며 의미있는 형태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 피크레트는 사라예보 위쪽에 있는 언덕으로 등산을 갔을 때 이 놀라운 역설을 설명하려고 했었다. 우리는 세르비아의 준군사 조직들이 역사상 가장 긴(고문과 다를 바 없는 치명적인 4년이었다) 포위 공격이 진행되던 동안 아래쪽 도로를 지나는 시민들을 추적하던 위치를 찾아나선 참이었다. 피크레트는 그 엄청난 공포에도 불구하고 포위당했던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회고하는 생존자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피크레트에게 물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아주 분명했거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보면 위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자연스럽긴 하지만, 이 불확실한 미래에 삶을 개척해나갈 이들은 특별한 기회 또한 손에 넣을 것이다. 이것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여정을 지속하려는 투쟁 속에 이들은 거대한 의도에 대한 공유된 의식을 통해 확장되고 상상력이 배어 있으며 생존에 필요한 창의성으로 더욱 풍부해진 삶을 살 수 있다.
  지난 500만 년간 부침과 큰 고난 속에서도 가까스로 생존해 아주 불확실한 세상에서 창의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낸 우리 선조들처럼 우리는 꿋꿋하게 이 거대한 불확실성에 맞서 이 어두운 혼란 속에서 길을 찾아내야 한다. 항상 그랬듯이 우리는 보호자도 없이 우리 아이들 이 미래의 도전과 맞서도록 내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현명하고도 겸손하다면, 아이들에게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유구한 가정들이 어떻게 이와 같은 불안정을 양산했는지를 이해시킬 것이다. 또한 이윤과 효율성보다는 유연성과 중복성을 중심으로 고안된 복원력 있는 제도들과, 이들이 살아갈 변덕스러운 자연의 성질을 반영하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문화 지도,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온 가장 값진 자산인 지식과 용기, 또한 정직한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이 험난한 길을 대비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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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출판사와 제목을 바꿔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으로 모습을 바꾼 두 번째 책이다. 서문에서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과 <빌린 책 / 산 책 / 버린 책 2>로 세 가지 책의 구분을 쉼표에서 빗금으로 바꿨는데 별다른 설명이 없어 단순한 실수인지 다른 의미를 의도한 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표지에서는 두 권 모두 빗금으로 표현했기에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겠다. 어떻든 최근 <시사IN>과 '프레시안BOOKS'에 꾸준히 서평을 올리며 의미의 확대재생산에 열심을 다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1년 만에 돌아오니 반갑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번 독서일기는 '사회적 독서'의 흐름을 더욱 강조하여 각 장의 제목을 '인권의 역사는 시민권의 역사와 동일하다', '뇌관이 제거된 사회주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시대가 달라도 인간문제는 늘 보편주의를 찾는다', '지성인이라면 거의 본능적으로 소설을 피한다', '근대는 오는가, 왔는가, 도로 갔는가'로 구성하였다. 책은 금요일에 나왔는데 등록과 판매는 월요일에 시작한다. 반가운 소식을 알리고자 책 뒷표지를 위해 따로 쓴 장정일의 글과 서문을 올린다.(빨리 알리고픈 마음에 직접 타이핑을 했는데, 짧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가 책장이 휘기 시작한 걸 알았다, 불행이다.)

 

-뒷표지 글-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안에 쾌락이 있기 때문이다
1994년에 출간한 첫 번째 <독서일기> 서문에, 내 꿈은 동사무소 직원이 되어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말이 “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원 없이 읽는다”였습니다. 저 문장 가운데 오늘까지 제게 의미 있는 대목은 “책을 쌓아두고 원 없이 읽는다”란 소원이 아니라,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었다는 것과 “딱딱한 침대”군요. 어릴 때의 제 꿈은, 수도사가 되는 건 아니고, 수도사처럼 사는 거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책을 쌓아 놓고 그 속을 파고들게 된 것이나 작가 노릇을 하게 된 것도, 다 수도사처럼 못 산 것에 대한 울분이나 앙갚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수도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도 분명히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한 게 아니라 한창 시를 쓸 그때도, ‘나는 딱 한 권’ 혹은 ‘딱 한 번만’ 시인이 되고, 시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첫 시집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 서문에 “유고시집” 운운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므로 한 권의 시집을 낸 직후, 혹은 젊었을 때의 몇 년간만 시인으로 살고나서 곧바로 문학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문학판을 떠나지 못한 채 어정거리다보니 문학이 그만 직업이 되어버렸습니다. 떠날 때 못 떠나면 항상 이런 횡액을 당합니다.
  저는, 책을 읽는 일에서 처음으로 쾌락을 느낀 어느 때부터 다른 사람의 글이나 책을 읽는 행위가 마치 제가 그 글이나 책을 쓰는 것인 양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환각 속에서는, 제가 읽어주기 전에 그 글이나 책은 아예 존재한 적이 없는 게 되죠. 유아적이고 독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런 방식으로 ‘나’를 바쳐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하고자 했습니다. 예의 <독서일기>tjansdp "나 아닌 타자의 동일성에 간섭하고 침잠하는 일“이라고 썼던 게 그런 뜻입니다. 그렇게 저는 많은 책들의 의사 저자가 되고 양부가 되었습니다. 저에겐 그게 쾌락이었습니다.
  쾌락이란 어떻게 보면 모순되고, 서로 길항하는 두 개의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보다 더 큰 전체에 몰각됨으로써 얻는 쾌락이 있고, 전체와의 일체감 속에서 자신을 명료하게 느끼는 쾌락이 있습니다. 마약이나 알코올에서 느끼는 쾌락이 전자라면, 신비주의에 귀일해서 얻는 쾌락은 후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독서는 몰각과 자각, 이 양켠 모두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의 생각에 완전히 녹아들기도 하고, 그 속에서 반성적이 되거나 자각을 얻기도 합니다.
 

-서문-
 

책은 파고들수록 현실로 돌아온다
이번에 출간하는 <빌린 책 / 산 책 / 버린 책 2>는 1994년부터 내기 시작한 <독서일기>의 아홉 번째 책이다. 새로 책을 낼 때마다 서문이랍시고 써왔으니, 서문을 쓰는 일 또한 아홉 번째다.
  서문은 그 책의 요약이자 지은이의 집필 목표 내지 동기를 적고, 아울러 자기 작업의 한계와 차후의 계획을 밝히는 글이다, 여러 장르의 책을 내면서 그런 일에 숙달됐다면 숙달됐을 텐데, 이 연작물은 특별히 매 권의 서문을 달리 할 게 없는 책이다. 그런데도 편집자는 항상 깅고 멋있게 써주길 바란다. 그렇게 어렵게 쓴 게 <독서일기>에 쓴 서문들이다.
  세상사는 고진감래던가? 언젠가 모처로부터 독서에 대한 강의를 해 달라는 청을 받고, 16년 동안 쓴 여덟 권의 <독서일기>에 쓴 서문만으로 두 시간 강의를 메운 적이 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 서문들이 나의 독서관을 잘 요약하고 있으면서, 시간에 따라 바뀌어 왔기 때문이다.
  내 생애를 지배한 최초이자 가장 강력한 독서론은 ‘독서는 극히 개인적인 쾌락’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마흔두 살에 이르러 ‘시민은 책을 읽는 사람이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무지한 게 아니라, 아예 나쁜 시민이다’라는 다소 과격한 독서론에 당도하게 됐다. 그 차이를 매개한 것은 개인적이고 문학적으로 겪게 된 적지 않은 변화였고,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회적 영향 탓도 컸다.
  지난번에 나온 <빌린 책, 산책, 버린 책>의 서문은 “무릇 책을 읽는 일은 도가 아니다. 이번 책에 실린 많은 독후감이 그렇듯이 독서를 파고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로 난 길이다”라는 말로, 변화된 내 독서론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16년 동안 쓴 여덟 권의 <독서일기>에 쓴 서문만으로 두 시간의 독서론을 펼친 자리에서, 나는 이런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를 자문하며 독자 인민들의 조언을 구했다. 작가의 독서론으로서는 마치 초등학교 학생들의 초보적 윤리와 같은 ‘독서는 현실 돌아오기 위해서다’보다, ‘독서 쾌락론’이 훨씬 낫지 않은가? 장고 끝에 악수도 있고, 죽 쒀서 개준다는 말도 있다. 수십 년이나 책을 읽고 나서, 고작 상식과 계몽에 낙착하고 보편주의에 투신한다? 어디로 더 나갈 데가 없을까?
  이번 서문으로 원래 하고픈 말은, ‘인문학 붐’이나 ‘고전 읽기’ 대신, ‘사회적 독서’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또렷이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시민은 책을 읽는 사람이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무지한 게 아니라, 아예 나쁜 시민이다’라고 쓴 2004년부터, 나는 사회적 독서를 해 온 셈이다. 또 실제로 이번 책은 거기에 부합하는 책과 주제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새로운 독서론으로 더 나아가기 전에, 앞서 살짝 비췄던 내 마음 속의 번민과 좀 더 부대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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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1-07-3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출간된줄 알고 열심히 찾아봤네요... ㅎㅎㅎㅎ
출간되기 전의 책을 먼저 읽어볼수 있다니!!! 축복받으셨어욧!!!

인문MD 바갈라딘 2011-08-01 15:21   좋아요 0 | URL
네, 이제 막 등록이 되어서 페이퍼에 표지 넣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낭만인생 2011-08-0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은 알라딘 운영 서재인가요? 아니면 개인인가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8-09 11:58   좋아요 0 | URL
운영은 개인이 합니다만(알라딘에서는 운영에 일체 관심 없음), 그 개인이 알라딘에서 월급 받는 직원으로, 대개 알라딘에 득이 되는 글만 올립니다. 개인이 드러날 여지가 거의 없어도 아쉬움도, 약간의 편안함도 있습니다. 꾸벅.
 

 

   
 

강남좌파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그 논쟁을 전반적으로 긍정 평가하면서도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건 바로 한국적 특수성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강남좌파론은 이 점을 소홀히 한 채 강남좌파를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limousine liberals)’ 모델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나름의 의미는 있겠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어딘가 좀 공허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인 이유에서일까? 그 점에 대해선 <제1장 강남좌파는 강남에 사는 좌파인가?: 강남좌파 논쟁은 엘리트 논쟁>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그로 인한 문제는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와 ‘소통(疏通)’에 대한 고민의 결여다.

 
   

 

 

 

아, 강준만 선생이 오랜만에 본격 정치비평으로 돌아왔다. 이제서야 정치의 계절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얼마 전 불거진 강남좌파 논란, 사실 강준만은 5년 전 지면을 통해 강남좌파 현상의 명암을 분석한 적이 있다. 5년이 지나서야 벌어진 논란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문제를 담고 있을까. 하나의 키워드에서 시작한 논의는 강남좌파의 아홉 가지 유형 분석으로 이어지며, 유시민, 손학규, 박근혜, 오세훈, 문재인 등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인물비평을 함께 담아낸다. 독자로서 두 가지 내용 모두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이다.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는 일갈로 시작하는 머리말을 공개한다. 책은 내일(7월 21일) 출간 예정이다.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다


강남좌파의 명암(明暗)

강남좌파는 보수 진영이 운동권 출신 486세대(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진보 인사들을 꼬집어 쓰던 용어다. 정치적, 이념적으론 좌파지만 행동은 '강남 주민스럽다'는, 일견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06년 5월 <인물과 사상>에서 강남좌파를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 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은 이들"이라고 정의하면서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려는 혐의로 읽히지만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강남좌파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자 강남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낸 첫 시도였다. 양홍주, <'노회찬 첼로 연주 사진' 강남좌파 전파에 일조: 강남좌파 형성 과정과 중심 인물들>, [한국일보], 2011년 2월 26일.

2011년 2월 [한국일보]가 게재한 <강남 좌파, 누구냐 넌!>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 중 일부다. 위 기사에 지적된 바와 같이, 나는 [인물과 사상] 2006년 5월호에 쓴 <강남 좌파: ‘엘리트 순환’의 수호신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강남좌파 현상에 주목하면서 그 명암(明暗)을 3가지씩 제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선 긍정론이다.
  첫째,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하층계급에 큰 힘이 된다. 상류층 사람이 점하고 있는 위치의 파워 덕분이다.
  둘째,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된다. 모든 상층계급은 보수, 모든 하층계급은 진보라면 갈등이 살벌해지겠지만, 상층에도 진보가 있고 하층에도 보수가 있다는 건 양쪽의 충돌 예방에 도움이 된다.
  셋째,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하층계급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다. 그걸 위선으로 보겠다면, 이 세상에 위선 아닌 게 뭐가 있겠는가.
  다음은 부정론이다.
  첫째, 권력․금력까지 누리면서 양심과 정의의 수호자로 평가받는 이른바 ‘상징자본’까지 갖겠다는 건 지나치다. 빈털터리라도 세상을 향해 큰소리 치면서 사는 맛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런 ‘도덕적 우월감’까지 상류층이 누린다는 건 부당하다.
  둘째, 진보를 보다 많은 권력․금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강남 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하층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으며, 상징적인 제스추어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강남 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말로만 강경한 속성이 있어 실천보다는 당위의 역설로 그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해낼 수 있는 실천마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자, 사정이 이와 같은데 무조건 ‘강남 좌파’를 탓할 수만 있겠는가? 각 인물별, 사안별로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는 게 공정한 대응일 것 같다. 이론상으론 그렇다. 문제는 한국사회․한국인의 특수성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정치혐오’를 넘어서 ‘정치저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다. 이런 상황에선 ‘강남 좌파’의 이론적 정당성이 인정받기 어렵다. 그건 마치 ‘국민정서’니 ‘위화감’이니 하는 단어들이 누구를 평가할 때에 이론적으론 부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현실에선 정당하게 여겨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5년 11월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가 여론조사기관 TNS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인 응답자의 82.1%가 사회 지도층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걸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배부른 진보’가 일부러 배가 고픈 척 할 필요까진 없지만, 자신의 포만감을 과시하는 건 금물이다. 그리고 공적 영역을 향해서만 진보를 외쳐댈 게 아니라 자신의 사적 영역과 행태도 진보적 가치의 지배를 받게 해야 한다. 사회를 향해선 기부문화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외치면서 자기 봉급은 고스란히 저축하는 고위 공직자들을 그 누구도 알뜰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공적 영역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 해소되는 날까진 과도기적 처방 차원에서라도 ‘강남 좌파’는 자신의 욕망을 통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강남좌파는 엘리트에 관한 문제
위와 같은 내용의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 5년여가 지난 지금, 강남좌파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그 논쟁을 전반적으로 긍정 평가하면서도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건 바로 한국적 특수성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강남좌파론은 이 점을 소홀히 한 채 강남좌파를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limousine liberals)’ 모델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나름의 의미는 있겠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어딘가 좀 공허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인 이유에서일까? 그 점에 대해선 <제1장 강남좌파는 강남에 사는 좌파인가?: 강남좌파 논쟁은 엘리트 논쟁>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그로 인한 문제는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와 ‘소통(疏通)’에 대한 고민의 결여다.
  5년전 내가 던진 “강남 좌파: ‘엘리트 순환’의 수호신인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즉, 강남좌파는 좌우(左右)를 막론한 한국 엘리트의 본질과 맞닿은 문제라는 것이다. 강남좌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엘리트의 위선’이다. 강남좌파는 이념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엘리트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만 강남좌파의 관한 논의가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생각해보자. 좌우(左右)를 막론하고 리더십을 행사하는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력·학벌에서부터 생활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조건 강남좌파 자체를 비판하는 건 좌파를 싸잡아 비판하겠다는 우파의 정치적 책략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아니 우파라도 서민을 상대로 포퓰리즘(populism: 민중주의) 자세를 취하는 게 ‘정치의 문법’인 바, 우파 정치인에게도 강남좌파 요소가 농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농후하다뿐인가. 우파는 강남좌파를 ‘위선의 화신’인 양 비난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말로는 늘 국가와 민족이 잘 되게 하겠다는 이타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사실상 강남좌파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다”는 전제하에 우리 모두의 삶에 보탬이 될 진지하고 성실한 논의와 연구를 해보자. 강남좌파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을 것이다. 그 장단점은 무엇인지 그 점이 갖는 사회적 함의는 무엇인지, 그런 걸 차분하게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걸 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정치를 과도하게 ‘의인화(personification)·개인화(personalization)'하는 ‘인물 중심주의’다. 본문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한국정치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쉽게 설명해보자.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주요 의제를 10가지만 뽑아보자. 예컨대, ①빈곤층 복지 강화, ②부유층 세율 인상, ③부동산 투기 근절, ④지역균형발전 추진, ⑤공정거래법 강화, ⑥병역 비리 척결, ⑦국가보안법 폐지, ⑧학벌주의 완화, ⑨전관예우 강력 억제, ⑩방송의 독립 등 10가지 의제에 대해 단순하게 찬반 표시를 해보자.
  이 10가지 의제에 대해 모두 찬성한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정치적으로 같은 편이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상호 우호적인 게 옳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노무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서로 원수가 될 수도 있다. 아니 될 수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좌우(左右)로 편을 갈라 싸우는 사람들은 위 10대 의제에 대해서도 ‘10대 0’으로 갈라질까? 그렇지 않다. 생각을 같이 하는 점도 있다. 생각을 달리 하는 것보다는 같이 하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싸울 땐 원수처럼 싸운다.
  왜 그럴까? 정치, 특히 대선은 권력을 놓고 다투는 승자 독식게임이고, 그 승자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제나 이슈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그래서 위 10가지 의제에 대해 100% 생각이 같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원수처럼 싸워야만 한다. 그게 바로 우리 시대의 정치를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며, 그 이데올로기가 바로 ‘인물 중심주의’다.


‘인물 중심주의’ 이분법의 재앙
우리 인간이 원래 이분법적인 동물이라는 점도 작용하는 걸까? 우리는 이론적으론 매사를 둘로 나눠서 보는 이분법이 무모하다는 걸 쉽게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늘 그런 이분법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선악(善惡)·흑백(黑白) 구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인터넷 토론 문화를 보라. 중간은 없다. 내가 옳다고 믿더라도 나의 정당성이 7이면 저쪽에도 3의 정당성은 있다는 걸 전제로 해서 주장을 펴면 어느 정도의 소통이 가능하겠건만, 인터넷을 지배하는 건 늘 ‘10 대 0’의 게임이다. 나는 10이요 너는 0이라는 식의 ‘배설(排泄)’ 뿐이다. 배설이 소통을 대신하는 불통(不通)의 공간에선 같은 편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 ‘카타르시스’ 제공에 능한 사람들이 대표 논객으로 활약하기 마련이다.
  극단적인 이분법 악플에 능한 네티즌은 악한 사람일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적(敵)에게 가혹한 사람일수록 친구에겐 잘하는 법이다. 적에 관대한 사람은 친구에게도 헌신하지 않는 법이다. 이는 정치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는 <정치성의 정의>라는 책에서 정치성을 ‘친구와 적’을 구분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이클 딥딘(Michael Dibdin, 1947~2007)의 소설 <죽은 늪(Dead Lagoon)>에서 베네치아의 민족주의 선동가는 “진정한 적이 없다면 진정한 친구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아닌 것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우리 것도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적에게 증오의 언어를 잘 퍼붓는 사람이 열정적이다 못해 광신적인 지지자들을 많이 거느릴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만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물 중심주의가 매우 심한 편인 건 분명하다. 예컨대, 2007년 2월 한국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전 서울시장 이명박이나 전 대표 박근혜가 탈당해 신당을 만들어 독자 출마하더라도 지지자의 약 70%가 “계속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2007년 5월 조선일보 조사에선 이명박 지지자의 61.6%, 박근혜 지지자의 64.2%가 ‘계속 지지’를 밝혔다. 또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2007년 4월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 71.2%가 당이 아닌 후보를 보고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한국은 ‘정당 민주주의’ 국가라기보다는 ‘지도자 민주주의’ 국가라는 걸 의미한다. 교과서적 원리와는 달리 한국의 정당 정치는 사실상의 인질 정치다. 정당 중심의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도 엄밀하게 말하면 정당을 지지한다기보다는 불공정과 편파를 자행할 힘이 있는 집단에 표를 주는 것이다. 즉, 정부 인사․예산권의 지배력이나 접근권에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힘 있는 몇몇 정치인만 움직이면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정당이다.
  2007년 5월 이기호는 “그저 감정으로 뭉친, 친목계나 진배없는 정당들. 문제는 그 정당들로 인해 전국민이 친목계화 되어간다는 점이다”고 주장했다. 한심한 정당들에 대한 분노엔 십분 공감하지만, 과연 정당의 친목계화가 전국민의 친목계화를 부른 걸까? 혹 그 반대는 아니었을까? 한나라당이 대선후보 경선 규칙 문제 때문에 한동안 분당 위기로 치달았던 것도 바로 인물 중심의 줄서기 때문이었으며, 이는 한국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관행이요 문화다.
  왜 그럴까? 오랜 세월 동안 정당은 포장마차나 천막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체험한 학습효과도 적잖이 작용했겠지만, 그보다는 한국인 특유의 ‘인물 중심주의’ 문화가 더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유력 정치인을 지지하는 각종 ‘사모(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클럽들의 과도한 전투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터져 나올 법도 하건만,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이 ‘사모’ 클럽의 규모와 전투성을 해당 정치인의 대중성 수준으로 긍정 평가하는 이상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인물 중심주의’ 문화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 인물 중심주의 문화의 토양에선 이성적인 정치적 논의와 토론은 물론이고 소통 자체가 매우 어려워진다. 아니 거의 불가능해진다. 매사를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에 대한 유·불리의 관점에서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소통의 재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시도할 강남좌파론도 그런 장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노릇을 어찌 할 것인가? 답이 없다. 그런데 실은 그게 바로 이 책의 한 주제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는 ‘민주화 이전의 엘리트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그런 인물 중심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본문에서 해보도록 하자.


‘편향성이 이익이 되는 장사’
정치에서 이분법적 대결구도는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니 당사자들이 그렇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와 각 진영의 열성 지지자들은 대선의 향방에 따라 이 나라가 흥하거나 망할 것처럼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혈투를 벌일 임전태세(臨戰態勢)를 다지고 있다. 이 책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며, 누가 되건 ‘정치의 이권화’·‘엘리트의 지대(地代) 추구(rent-seeking)’·‘승자독식주의’를 없애거나 완화시키지 않는 한 대선은 ‘밥그릇 싸움 도박판’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대선과 정치가 ‘밥그릇 싸움 도박판’이 될 때 국민이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두 진영사이의 이해득실을 따진다면 패자(敗者)는 보수라기보다는 진보 진영이다. 진보적 가치의 역설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말이다. 진보진영은 정치행태에 있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이전과 이후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도 되는 건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이전엔 옳고 바람직한 일이었더라도 그 이후엔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월과 시대가 어떻게 달라지더라도 변치 않는 항상심으로 초지일관하는 게 미덕인가?
  우리는 이명박 정권을 비롯하여 역대 서너 정권들을 거치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표방한 이념과 노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각기 생각이 다른 정치세력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과 화합을 이뤄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이게 어디 한국만의 사정인가. 미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당파싸움 망국론’ 논쟁의 핵심도 바로 그게 아닌가. 이 책이 강남좌파론을 소통과 연결시켜 논하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소통에 대한 열망으로 씌어졌다. 소통은 인기가 없는 주제다. 언론시장에서건 출판시장에서건 속된 말로 “편향성(당파성)이 이익이 되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다를 게 없다.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편향성(당파성)’을 보여주는 정치인에게 열정적인 지지자들이 많은 법이다. 그러니 시장논리상 소통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어렵게 돼 있다. 좌우(左右)를 막론하고 지금 ‘편향성(당파성)’으로 주목을 받고있는 이들이 그게 자기가 잘 났거나 똑똑해서 얻은 성공이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 좋겠다. 그 성공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기 위해 엄청난 대의(大義)와 명분을 동원하는, 자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기만도 더 이상 저지르지 않으면 좋겠다. 이들이 자제해야 소통도 활성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이하랴. 때론 세월이 약인 것을.
  사실 진정한 소통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소통을 근거로 합리적․생산적 경쟁체제를 꿈꾸는 사람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만 명은 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국민 대다수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파편화돼 있으며, 조직화되기 어렵다. 동기부여에 있어서 그런 염원은 비교적 소극적인 것이기 때문에 열정이 없다. 무엇보다도 소통을 위한 참여에 대한 반대급부로 줄 게 없다. 공직을 줄 수도 없고, 다른 인정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도 없고, 통쾌하고 후련한 카타르시스도 주지 못한다. 특정 이념․노선․당파성을 내세워 지지자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탁월한 논객들은 많지만, 이 방면의 논객이 거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에서 아무런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으면서 소통을 열망하는 소통파를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가, 이게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우선 공감대부터 넓혀 나가는 일이 필요하겠다. 이 책을 내게 된 이유다.  

                                                                                                                                      - 2011년 7월, 강준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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