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대 최고의 심리역사학자였던 해리 셀던은 은하제국의 멸망을 예측한다. 책 뒷표지에 수록되어 있는 설명을 가져오면, 심리역사학이란 "인류 문명의 미래를 정치사회학과 경제학, 수학적 확률론, 집단심리학을 토대로 예견"하는 학문이다. 멸망을 막기엔 늦었다. 그러나 제국 멸망 후 도래할 인류 문명의 공백기만큼은 3만 년에서 천 년으로 줄일 수 있다. 해리 셀던은 천 년을 내다본 필생의 프로젝트를 고안하고 '파운데이션'을 창립한다. 파운데이션은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해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백과사전 편찬 작업에 착수한다. 이처럼 파운데이션은 처음에는 과학연구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띠고 은하계 변방에 있는 행성 터미너스에 자리잡는다(terminus에는 말단, 종점, 종착역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파운데이션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해리 셀던의 유품관에서 해리 셀던의 녹화상이 재생되며, 백과사전 계획은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실제 의도된 바는 셀던의 천 년짜리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기틀 다지기로, 은하계 끄트머리에 있는 행성에 10만 명을 이주시키고 이들의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여 향후 수 세기 동안의 경로를 고정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복무해온 일이 사실은 무의미한 것이었고, 개인의 삶이 거시적인 계획의 미미한 파편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개인이 느낄 절망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미시적인 데 맘이 쓰이고, 누군가의 삶이 거대한 계획의 도구로 쓰인다는 데 커다란 저항감을 느낀다. 그 대가가 3만 년의 암흑기라 해도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한 인간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다는 말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대와 소를 가릴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며,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럴 자격을 부여하거나 부여받을 수 있단 말인가. 더 중요하고, 급박하고, 영화로운 무언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사상이나 체제가 위험하다는 걸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익히 증명받았다. 그러니 나는 셀던의 계획이 어그러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은 계획의 변수로 작용하므로 셀던은 의도적으로 예비 지식을 감춘다. 파운데이션의 존립이 위협받는 위기가 도래할 때 그는 녹화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미래는 은폐되어야 하기에 그가 밝힐 수 있는 것은 이미 진행되었을 일들에 관한 진단과 목적, 밝혀져도 경로에 지장이 없을 정보뿐이다. 그래서 그는 예언자라기 보다는 해설자로서 기능한다.


시리즈의 1권에 해당하는 이 책에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1부와 2부 사이에는 50년, 2부와 3부 사이에는 30년, 3부와 4부 사이에는 50년, 4부와 5부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시간 간극이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켰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거시적인 흐름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운데이션이 주위 왕국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처음엔 종교로, 그 다음엔 무역으로 침투한다. 바탕은 우월한 과학기술이다. 제국주의를 위시한 서구 국가가 식민지를 개척했던 방식과도 유사하고,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금력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의 행태와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방식에서 개개인의 삶은 지워진다. 샐버 하딘이나 호버 말로 같은 인물들 한 명만 가지고도 책 몇 권은 나올 것 같은데 할애된 페이지가 너무 적어 아쉽다.


각 부는 <은하대백과사전>의 인용문으로 시작한다. 사전적 지식으로 박제된 죽은 이야기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재로 불러오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로써 독자는 셀던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운데이션은 제2 제국으로 성장했을 것이고, 암흑기는 천 년에 그쳤을 것이고, 사전은 완성되었을 것이다.


셀던 계획은 실패해야 한다는 나의 도덕적 판단과 짐작 가능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어서 다음 내용을 알고 싶어 조바심을 내며 책을 읽게 된다. 형식면에서도 세계관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임엔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를 읽는 경험은 한 권의 책 또는 하나의 시리즈를 다 끝내기 전까지는 다른 책으로 넘어가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난삽하게 여러 권에 손을 대고 하나를 제대로 끝내길 어려워하는 지금의 내겐 흔치 않은 일이라 이 경험이 무척 귀하다. 얼른 다음 편으로 넘어가야지.


(313) "제국은 언제나 거대한 자원을 가진 땅이었어. 그들의 계산은 죄다 행성, 항성계, 은하계 전 성역을 단위로 하고 있어. 그들의 발전기는 거대해. 그들 사고방식의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파운데이션, 금속 자원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고립된 세계에서, 이런 열악한 경제 조건에서 생존해 나가야만 했어. 우리 발전기는 크기가 엄지손가락만 해야 했어. 그래야만 금속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야. 신기술이나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야 했지. 제국이 따라올 수 없는 신기술이나 새로운 방식 말일세. 제국은 실제로 중요한 과학적 진보를 이룰 수 있었던 단계에서 퇴보해 가고 있어. 제국은 우주선이나 도시, 전 세계를 지킬 거대한 방어벽은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 한 사람을 지킬 수단은 만들 수 없는 거야."


(314)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모든 시설이 거대하다는 사실조차 몰라. 기계는 세대에서 세대로 자동적으로 넘어가고 감독자는 세습 계급이지. 그들은 거대한 건물 어딘가에서 튜브 하나만 타 버려도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어. 이 전쟁은 이러한 두 제도 사이의 싸움이야. 제국과 파운데이션, 거대한 것과 미소한 것 사이의 싸움 말일세. 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그들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우주선으로 매수하려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경제적인 의의가 없어. 그렇지만 우린 작은 것으로 매수했지. 전쟁에는 쓸모가 없지만 번영과 이윤에는 결정적인 것으로....... 왕이든 콤도든, 어쨌든 그들 무리는 우주선을 입수해서 전쟁까지 준비해 왔겠지. 역사를 통해 보면 독재자는 국민의 행복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명예나 영광이나 정복과 바꾸려 해 왔어. 그러나 힘이 되는 건 역시 생활과 관련된 사소한 부분이야. 그리고 아스퍼 아르고는 이삼 년 안에 코렐 전체를 덮칠 경제 불황의 태풍에 맞설 능력이 없어."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3-26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3-03-27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책먼지 님, 저는 이 책 읽을 엄두가 안나고(SF 잘 못읽어요. 어려워서) 사실 이 리뷰를 읽어도 책 내용을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책먼지 님의 이 리뷰가 참 좋습니다. 책먼지 님이 흥미롭게 읽으시는 게 드러나서도 좋지만 무엇보다 책먼지 님의 도덕적 판단이 나와서 좋아요. 저는 이런 글을 좋아합니다. 크-

책먼지 2023-03-27 14:05   좋아요 2 | URL
저는 반대로 로맨스에 무척 취약해서 열정적으로 주인공들에 이입하는 다락방님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감정을 쓰게 하는 책보다 머리를 쓰게 하는 책이 차라리 낫더라고요! 이 책의 경우 아시모프님이 쿨하게 웃겨서 더 재밌어요!! 휘리릭 쓰고 딱 한번 탈고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하는데.. 진짜 천재인가봐요.. 뭘 읽어도 도덕 못버리는 유교걸 여깄습니다ㅋㅋㅋ

건수하 2023-03-27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먼지님 재미있게 읽고 계시군요!
글 보니 저도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샀는데 왜 안 읽고..).

초기 3부작이 특히 재미있고 그 뒤에 좀 분위기가 바뀌었던 것 같은데... 책먼지님 글 읽으니 1권도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아무 것도 없는 3일... 3일 가지곤 안되겠고 최소 일주일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요 ^^

책먼지님 글로 대리만족해 보겠습니다 :)

책먼지 2023-03-27 14:11   좋아요 4 | URL
수하님 저 아직 재미없어지는 지점까지 못간거같아요!! 지금 2권도 거의 다 읽었음요ㅋㅋㅋㅋㅋ 폭주기관차입니다!!!

작가가 기획했던 건 초기 3부작까지였고 그 이후부터는 독자의 요구에 못 이겨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쓴 데다 후속작에서는 로봇 3원칙과 여타 다른 세계관을 다 하나로 묶어보려고 해서 재미가 떨어진다는 고런 정보를 읽기는 했는데.. 그래서 분위기가 바뀌나봅니다ㅠㅠ

아무 것도 없는 일주일 진짜 어디서 뚝 떨어졌으면ㅠㅠㅠㅠㅠㅠ

후후후.. 제가 수하님 대신 달립니다..💕 수하님께 지문 말고 지안이 역할을 달라!!!
 
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는 자율주행 차량이 상용화되고 돌봄 노동의 지극히 일부가 기계화된 근미래.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속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는 상태, 삼 개월 이상의 숙려 기간, 자의에 의한 선택 등(47)"을 조건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민 투표로 통과된다. 법이 통과된 후 임종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가족에게 밝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화자 '지혜'의 할머니는 이미 발빠르게 임종 계획을 세워두었고 가족에게 찬성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원래 사람이 자기 살날 다 살면, 자기 죽을 날을 아는 거야. 병원 들어가서 장사 지내고 그러기 시작한 지 백 년도 안 됐는데 원(59)"이라면서.


기술적으로 이 소설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보다 투박하다. 던지고자 하는 화두가 지나치게 선명하고 직선적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어딘지 만사에 의욕 없어 보이는 화자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담백한 신파가 등장한다. 평범하고 익숙해서 기시감이 드는 그런 신파들. 아마 여기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지혜가 할머니에게 가서 자두주를 담그는 방법을 배우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누군가와의 이별은 다시는 그 사람이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걸 배우느라 함께 보낸 시간, 레시피를 가르쳐준 사람이 부재하더라도 배운 걸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감각,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내가 만든 걸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이 분명 이별의 충격을 덜어줄 것이다.  


내겐 늘 주위 사람들과의 이별을 셈해보는 버릇이 있다. 도망치고 싶은 것들에서 도망치지 못했던 10대에 대한 앙갚음이라도 하듯 20대를 내내 도망치는 데 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만남과 이별 사이에는 때로 레시피 교환이 있었다.


그중 지금도 자주 해먹는 음식은 지우(Diu)라는 브라질 친구에게 배운 변형된 라따뚜이다. 커다란 냄비 가득 양파와 가지를 썰어넣고 토마토 퓨레와 다진 마늘을 넣은 뒤 뭉근하게 끓이다가 칠리, 파프리카 가루, 바질, 오레가노, 소금, 후추 등 수중에 있는 온갖 향신료를 손어림으로 넣고 얼추 간이 맞으면 약불에서 잘 저어가며 마저 끓이면 된다. 우리는 이걸 크래커나 빵 위에 올려먹었고, 가끔은 덮밥으로도 먹었다. 지우는 브라질에, 나는 한국에 있고, 더는 페이스북으로도 연락하지 않지만 이 음식을 해먹을 때면 지금도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147) 할머니는 이 술은 꿀꺽 삼키는 게 아니라 입술을 넘어 혀끝을 적시듯 조금씩 맛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잔을 살짝 기울여 입안에 소량의 술을 흘려 넣자 산뜻한 산미와 달콤한 기운이 입안 가득 퍼졌다. 목 넘김은 와인에 비하면 다소 묵직한 편이었으나 더 이상 소주의 독한 뒷맛이 입안에 남지 않았다. 숙성하면 맛이 달라진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술잔을 들었다.


자두주 아니라 뭐라도 마시고 싶어진다.


죽음에 지나치게 너른 선택이 주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죽음까지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도 암담할 뿐더러, 선택이란 게 오묘하고 얄궂은 것이라 선택을 하는 주체에게만 달린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불완전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른다.


그러니 레시피를 나누자. 오해는 미리 풀고 사랑의 말은 그때그때 아낌없이 퍼붓자. 이삭이 지혜에게 다가오듯 그 다가오는 모양만으로도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알 수 있는 방식으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새치를 흩날리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걸음걸이와 미소에 불확실한 지점은 하나도 없었다. 내내 풀리지 않던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허무할 정도로 쉽게 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99)."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3-23 0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3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3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3-22 2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변형 라따뚜이 사진 궁금해요.

책먼지 2023-03-23 09:18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레시피 떠올리니 저도 먹고 싶어져서.. 조만간 사진 가져오겠숨니다!!!

다락방 2023-03-23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뭐라도 마시고 싶어지는데요? 저도 이 책 읽어볼래요.

책먼지 2023-03-23 09:21   좋아요 3 | URL
어제 진짜 힘들게 참았는데 날도 궂고(?) 목요일이니 오늘부턴 그냥 막 마시려고요!!! 이 책 거의 소책자 느낌이라 후루룩 읽으실 수 있어요!!! 다만 좋아하실지는 미지수..

자목련 2023-03-24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지난 글에서 이 책이 익숙하다 했는데 저 있어요. ㅎㅎ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두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책먼지 2023-03-24 13:05   좋아요 1 | URL
각자도사 사회에서 나와서 궁금해했던 그 책 맞습니다!! 후후후 자목련님은 이 책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요!! 자두주 담그는 집들이 있군요??? 저는 처음 들어봐서 신기했는데 맛 묘사가 무척 아름다워서.. 술이 막 당기더라고요

2023-03-24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7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7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8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4-08 0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걸 모른다는 말이 인상 깊네요 한국 소설에서 안락사가 허용된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다니, 다른 소설에서도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못 본 것 같아요


희선

책먼지 2023-04-08 12:15   좋아요 1 | URL
무거운 주제를 따뜻하고 담백하게 잘 풀었더라고요!! 이렇게 본격적으로 안락사를 주제로 내세운 한국소설을 저도 못 본 것 같은데 혹시 있다면 그 책은 또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을지 궁금해집니다!!
 
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울이 극에 달했을 때의 내가 아니라 비교적 정상일 때의 내가 꿈꾸는 죽음은 건강하게 살다 수명이 다해 집에서 자다가 죽는 것이다. 대재앙으로 모두가 공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통계는 후자만큼 전자도 판타지임을 보여준다.


이 책에 따르면 1991년에는 재택사 비율이 75%, 병원사 비율이 15%였고, 1999년의 재택사 비율은 60%, 병원사 비율은 30%였다. 당시만 해도 죽음은 집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약 10년 후인 2008년에는 재택사 비율이 22.4%, 병원사 비율이 63.7%로 반전되며, 2020년에는 병원사 비율이 75.6%까지 치솟는다. 이제 열에 여덟은 병원에서 죽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애 말기 돌봄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시설화되었기 때문이다. 요양원엔 의사가 없고, 요양병원엔 요양보호사가 없다. 또한 이들 시설은 노인성 질환에만 특화되어 있다. 따라서 암 말기 환자나 기타 위중증 환자의 경우 생애 말기에 증세에 따라 대학병원과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 그 사이 어디에선가 임종을 맞는다.


그렇다면 탈시설화가 답일까? 여기서 죽음은 계급 문제로 환원한다. 경제적 여력이 있거나, 드물게 운이 좋으면 집에서든 시설에서든 존엄한 돌봄과 죽음은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 돌봄과 죽음은 그야말로 비참해진다.


책에는 종교시설에서 운영하는 무연고자 돌봄 요양원이 등장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식을 잃은 노숙인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다. 응급 처치 후 이들은 말기 돌봄을 위해 요양원에 맡겨진다. 연명 의료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사가 확인되어야 하는데 본인이 중환자라 의식이 없거나 의사 결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이는 불가능하며, 무연고자이므로 친족이 대신 결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연명 치료를 받게 된다. "생명은 신의 영역이므로 인간이 함부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고 "모든 생명은 지속되어야"하기 때문이다(79).


강남의 한 요양원에서는 "어르신들이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은 돌봄"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들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입소자들의 식사 수발"을 들 때(82) 무연고자 요양원에서는 입소자들의 삶의 질과 관계없이 그저 살려만 놓기 위해 비위관 삽입이 결정된다. 이렇게 "숨 쉬고 먹는 콧구멍을 가진 존재로 전락한 노인들은 10여 년간의 조용한 와상 생활 끝에 '자연사'한다(81)".


그토록 생명을 존중한다는 이 요양원의 간호부장의 말이 가관이다. "아, 저는 절대 싫어요. 저는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나이가 좀 더 들면 사전의료의향서를 꼼꼼하게 써놓을 생각이에요. 가족들에게도 내 생각을 명확하게 이야기해놓아야죠(81)."


죽음의 계급별 격차는 현충원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생전의 계급별로 묘역의 위치와 면적이 차등적으로 배치된다.


나는 이 책이 객관적으로 좋은 책이라 좋은 건지 내 의견과 구미에 맞아서 좋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저자의 생각에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저자는 가사노동이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실비에 페데리치 돋음).


2) 돌봄 노동이 젠더화되어 있어서 그 가치가 절하되었고, 돌봄 노동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이 정당한 임금과 사회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치료와 진단은 돈이 되는 반면 돌봄은 돈이 되지 않아서 병원에서 늘 호스피스 병동 수가 턱없이 모자라는 문제로 이어진다(성 차별 = 다 같이 죽자는 겁니다).


(85) 효, 도리, 연명의료결정법과 같은 '선언적 윤리'는 개개인이 경험하는 '일상적 윤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 한다. 문제는 그러한 윤리가 당사자인 노인을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사회가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된 문제를 윤리의 이름으로 가족, 특히 여성(요양보호사, 간호사, 딸, 며느리 등)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존엄하지 못한 돌봄의 경험은 결국 존엄하지 못한 죽음으로 이어진다. 생애 말기 돌봄을 담당하는 주체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의료적, 생물학적 돌봄만을 최선으로 여긴다. 대부분 병원에서 죽기 때문에 그 '나머지' 죽음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노화와 죽음에 대한 터부와 혐오는 그 위에서 싹튼다.


3) 인구 위기론, 즉,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은 성장주의적 관점에서의 정치적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이번 달 정희진 쌤 오디오 매거진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예요"와 같은 맥락). 생산가능인구 대 '의존적 노인'의 대결 구도가 사회적 갈등을 낳고 우리 모두는 존엄한 노년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42) 다시 말해 국가는 '정상 가족'을 기대하기 힘든 시대를 위기로 상정했고, 발전에 쓸모 있는 인구와 쓸모없는 인구를 분류했다. 의존적 노인은 이러한 정치적 상상과 인식 속에서 선별되고 의료적, 생물학적 차원으로 규정된 '인구'라고 할 수 있다.


노화가 극도로 기피하고 두려워해야 할 무언가가 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이가 들어도, 돌봄이 필요해져도 사회가 우리를 환대하고 필요로 하며 우리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준다는 선례가 쌓이면 삶은 지금처럼 불안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조금쯤 덜 열심히 살아도 될 것이고,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


4) '웰다잉' 열풍에 죽음마저 "개인의 노력으로 대비해야 하는 일"로 취급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5) 저자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읽었고, 그것을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좋은 방식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여러 소설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중 은모든 작가의 <안락>, 강화길 작가의 <음복>이 궁금하다.


이처럼 사람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권리주체인 동시에, 서로 섞이고 의존하는 나눔의 존재다. 그런데 냉동 인간을 둘러싼 담론은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구조적 무지‘를 강화하고 있다. 그 기술적 가능성은 개인의 권리(특히 선택의 자유)와 사회적 맥락을, 또 삶과 죽음을 대립시킨다. 생애 주기를 통틀어 누구나 겪는 질병, 노화, 의존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거나 기술적 실패로 여기는 규범을 확산시킨다. 과학기술이 사회적 맥락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특히 인간을 언제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상정한 연구 개발을 활성화한다. 반면 인간이 평생 주고받는 돌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인간이란 존재를 떠받치는 돌봄을 으레 있는 일로 여긴다.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의 일상, 노고, 책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회자원의 분배 방식을 따지지 않는다. 그 돌봄 덕분에 사람이 과학, 경제, 교육, 보건, 예술, 종교, 정치, 즉 모든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 P230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YDADDY 2023-03-09 2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경제적 여력‘이라는 문구가 너무나 슬프게 다가옵니다. 어느 인간이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생의 단계에서까지 빈부의 격차가 나뉘어지는 것은 결국 자본의 비인간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생각해요.
돌봄 노동의 젠더화는 주로 여성이 노인 부모를 돌보게 되는데 단순한 쇠약 상태시라면 다행이지만 치매나 알츠하이머같은 정신적인 질병이 있다면 고령화 사회에서 결국 돌봄 여성의 장기간 경력단절도 발생할 수 있어 쉬이 볼 문제는 아닐겁니다.
노인 공동체의 생성이나 존엄사의 법제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아 좀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온한 밤 되시길 바라요.

책먼지 2023-03-10 14:36   좋아요 2 | URL
자본이 여성을 잡아먹다 못해 이제 약한 고리부터 착착착 모두를 다 잡아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는 이 책이 위치와 맥락을 고려해서 여러 좋은 질문을 던져놨다고 생각하는데(중년남성이 환자인 경우 노인이 환자인 경우 아이가 환자인 경우 여성이 환자인 경우 등등을 비교해놨는데 각각의 경우 자기결정권과 보호자의 입김, 의료진의 태도 등등을요!! 그 부분 참 좋더라고요)그래서 대책이나 해결책이 뭐야 하면 역시나 깜깜해집니다ㅠㅠ 곧 있음 주말이니 대디님도 남은 오후 힘내세요!!!

2023-03-10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0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1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3-10 17: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먼지님 잘쓰는 사람… 역시….

잠자냥 2023-03-10 20:06   좋아요 3 | URL
먼지를 잘 쓴다고?!

책먼지 2023-03-11 00:1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저는 자냥님표 말장난이 왜 이렇게 좋을까요? 맞습니다 뭐가 됐든 잘 쓰는 그 사람 여깄습니다 움하하!!!

잠자냥 2023-03-11 00:45   좋아요 3 | URL
은오 2탄 먼지 탄생! ㅋㅋㅋㅋ

책먼지 2023-03-11 01:15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에게서도 은오님 흔적 찾더니 저에게도..🥹 자냥님이 이렇게 그리워한단 걸 은오님이 알아야할텐데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