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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평점 :
"현실속에서 직접 만나고 싶은 사람과 주택! 이런 곳 어디 없나요?"
현재 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일까? 유난히 이 책은 나에게 힐링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나의 이상향을 꽤 많이 충족시켜주는 내용이기도 해서 더 그렇게 다가온 것이 아닐까 한다.
순례 주택은 착한 임대인인 '순례씨'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로, 1인가구부터 4인가구까지 다양한 세대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평수도 현실속에 존재하는 가구보다 훨씬 커서(14평과 25평) 뭔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 읽는내내 행복했고, 읽고나서는 더 행복해지는 소설이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순례씨와 순례씨의 최측근 오수림, 그리고 순례 주택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로,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시대에서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집문제, 그리고 이웃,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잘 담아내고 있어 읽다보면 저절로 공감과 위로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시세는 반영하지 않고 먹고 살 만큼만 세를 받는 착한 임대인 순례씨, 자발적인 배려와 행동으로 연대와 소통을 이어나가는 순례 주택 주민들과 그 외 거북동 이웃들까지.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유연한 주거 형태의 본보기, 무욕의 태도, 관계의 본질, 공간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 의식, 공정한 대가에 대한 합리적 생각 등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각 장에서는 대략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1부: 배경과 인물설명
2부: 수림네 가족이 순례 주택으로 이사오게 된 이야기
3부: 본격적인 순례 주택에서의 이야기 시작!
4부: 순례 주택 적응기
5부: 변화를 겪는 수림이네 가족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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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및 배경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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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주택
-주소: 거북로 12길 19(거북동)
-거북역3번 출구에서 도보로 오 분 거리
-대지 면적: 72.5평, 필로티 구조의 4층 건물
-201호, 301호, 401호는 14평
-202호, 302호, 402호는 25평
-1층엔 12평짜리 상가가 하나 있고, 나머지 공간은 주차장
-옥상은 공용 공간으로, 전망좋은 옥탑방이 있음(통창으로 옥상 정원을 볼 수 있음)
-순례주택은 임대료가 싸고 입주자는 와이파이, 옥탑방, 옥상 정원을 공유할 수 있음
□1층 상가(조은영 헤어)
-원장 조은영씨(47세)는 유일한 더블 입주자
-1층은 미용실, 202호는 살림집
□원더 그랜디움
-거북역 2번 출구 앞에 원더 그랜디움 정문이 보임
-원더 그랜디움은 101동부터 109동까지, 모두 아홉 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낮은 동은 27층, 높은 동은 30층까지 있음
■순례씨
-75세 / 백발
-402호 거주
-순례주택의 임대인이자 건물주
-조사와 어미가 빠진 '순례어'를 자주 사용
-순례씨는 개명을 했는데,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뜻에서 '순례자에서 따온 순례'의 의미로 개명
-일찍 머리가 세기 시작해서 일찌감치 노인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순례씨는 이를 즐기고 있음 (몸이 힘든날은 지하철 노약자석을 이용)
-스물에 결혼하고 서른다섯에 이혼함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음
-이혼후 연애를 몇 번 했지만 재혼은 하지 않음
-세신사로 돈을 벌어 마흔다섯 살에 구 순례주택을 샀고, 이후 근처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시세가 뛰면서 보상금을 꽤 받음. 그걸로 십 년 전 건물을 허물고 '현 순례주택'을 지음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에 대해 마음이 불편했던 순례씨는 임대료를 시세에 따라 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받고 있음
-썩지 않는 쓰레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인간들, 쓰고 남은 돈 3가지가 순례씨의 3대 고민임
-순례씨는 '감사'라는 말을 잘 함
■순례씨 아들
-쉰 다섯으로 캐나다 교포
-이십팔 년 전에 이민을 갔음
-캐나다에서 슈퍼를 하고 있음
■오수림
-16세
-순례씨의 최측근으로 불림
-거북중학교 3학년
-주소지: 거북 공원로 27, 103동 1504호(거북동, 원더 그랜디움)
-원더 그랜디움에 거주하는 생물학적 가족은 엄마, 아빠, 언니로 수림은 그들을 1군이라고 부름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 입학전까지 순례씨와 외할아버지 손에서 큼
■오민택
-오수림의 아빠 / 47세
-대학시간 강사
-대학원 후배인 엄마와 서른 살에 결혼
-돈이 없지만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고, 대신 신혼집은 장인에게 얹혀사는 것으로, 부족한 돈은 부모형제(부모, 장인, 네 명의 누나)에게 받아쓰는 것으로 해결
-십오년 전임교수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에게 빌붙어 사는 중
-장인어른 집이 재건축에 들어가며 장인어른은 집에서 내쫓기고, 이후 원더 그랜디움이 지어진 다음에 수림의 가족이 들어가 살게 됨
■박영지
-오수림의 엄마 / 43세
-전업주부
-너무 솔직해서 문제를 일으킴
-입덧을 엄청 심하게 오래 하는 체질
-첫째 딸을 낳고 355일만에 둘째를 낳으면서 지독한 입덧을 심하게 겪었고 이로 인해 몸과 마음은 엉망진창이 됨
-임신 우울, 산후 우울, 육아 우울이 반복되면서 첫째딸은 친가로, 둘째딸은 외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짐
-외할아버지는 원래 살던 집을 딸의 가족에게 뺏기고 혼자 살고 있었는데, 이때 순례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수림을 함께 키우게 됨
-유난했던 첫째는 엄마가 조금 회복되자 데려와 키웠고 순하게 잘 크던 둘째(수림)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1군들과 합류.
■오미림
-오수림의 언니 / 17세
-거북고등학교 1학년
-사과와 배를 깎을 줄 모름
-라면을 끓일 줄 모름
-거북중학교에서 종종 전교 1등을 했음
-저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자매애는 1도 없음
-3가지 이유로 수림은 미림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음
1)밤마다 우는 아이가 되어 주어 더 어린 수림이 밀려났고,
덕분에 순례씨 품에서 더 오래 자랄 수 있었음
2)둘째, 수림을 끈질기게 괴롭혔음. 이 때문에 거의 날마다
순례주택에 가게 되었음
3)미림이 부모의 기대를 채워줌으로써 수림은 부모의
스케쥴 밖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었음
■202호 조원장과 남매 거주
-십 년 전 서른 일곱의 조 원장은 어린 남매를 혼자 키우면서 어려운 형편에 순례씨를 찾아왔고, 순례씨는 사정을 봐주며 보증금 없이 월세로 흔쾌히 집을 내줌
-조 원장은 이 년 만에 보증금을 채움
-삼 년후엔 202호로 옮김(202호는 방이 세 개라 남매에게 하나씩 방을 내줄 수 있었음)
-"우리 식구는 순례 주택을 딛고 일어섰어요." 조 원장이 자주 하는 말이다.
■302호 홍길동씨(66세)와 남편 거주
-길동 씨는 순례씨 전 직장동료로 '구 순례 주택' 대부터 별채에 세를 살았음
-길동 씨 본명은 이군자
-군자 씨가 이 년 전 요양보호사 필기시험을 보면서 긴장된 상태로 OMR카드에 자기 이름을 '홍길동'으로 잘못쓰면서 불합격함. 이때의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홍길동'으로 불리고 있음 (이후 열심히 연습해 재수후 합격)
■401호 영선 혼자 거주
-나이와 직업은 순례씨만 알고 있음
-영선씨는 새벽 옥상을 좋아함
-되도록 혼자 옥상을 즐기며 누군가 올라가면 자리를 피함
■301호 허성우(44세) 혼자 거주
-직업은 대학 시간 강사
-순례 주택 사람들은 '박사님'이라고 부름
-처음에는 마주보는 건물 옥탑에 살다가 순례 주택 옥상 정원을 보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투룸 임대료가 말도 안되게 싸다는 소리를 듣고 입주 대기줄에 줄을 선 후에야 입주하게 됨
-대기 삼 년 만에 들어와 오 년 째 살고 있음
-입주 청소 알바를 많이해서 청소를 잘하는 특기를 살려, 순례주택 계단과 엘리베이터 청소를 맡아서 함(한 가구당 2만원씩 박사님께 청소비를 냄)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나 아이스크림을 흘리면 벌금 5천원을 박사님께 내야하는 수칙이 있음
■201호 고 박승갑(향년 75세) 혼자 거주
-오수림의 외할아버지
-순례 씨의 오랜 연인이기도 했음
-정직한 사람으로 쉽게 돈 벌려는 사람을 싫어했음
-거북 마을에서 오랫동안 전파사를 했음
-성실하고 수줍은 전파사 주인이 마음에 들어 순례씨가 작업을 걸었고 이후 둘은 이십 년을 연인으로 지냄
-십칠 년 전에 전파사를 닫고, 인테리어 현장에서 전기공사 일을 함
-유머 감각이 꽝
-꿈은 순례씨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어지만, 결국 지난 1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함(쓰러진 곳은 공사현장,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외할아버지인 승갑의 사망으로 수림의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됨
■진하
-수림의 친구로 순례주택 202호에 사는 원장님 딸
■병하
-진하의 친오빠이자 조 원장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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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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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임신+산후+육아 우울증이 반복되면서 결국 외할아버지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이때 일찍이 외할머니를 여의고 홀로 살고 있었던 외할아버지는 당시 연인이었던 순례씨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그렇게 수림은 초등학교 입학전까지 순례씨의 손에 자라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순례씨와 함께 살아온 방식과 모든것이 너무 달랐던 수림은 생물학적 가족과 섞여들지 못하고 매번 가족의 집(원더 그랜디움)을 벗어나 따뜻한 순례씨와 정이 넘치는 이웃들로 가득한 순례 주택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러던 중 외할아버지가 갑작스레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수림의 생물학적 가족들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원래 외할아버지의 집이었던 원더 그랜디움이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항상 정직하게 살아온 외할아버지가 어쩐일인지 살아생전 태양광 발전 사업에 투자하고 명의를 빌려주었는데 그것이 사기를 맞게 되면서 모두 빚으로 남은 것이다.
이 일로 외동딸이었던 수림의 엄마는 모든 상속을 포기하게 되었고, 이로써 그들이 떵떵거리며 살던 원더 그랜디움에서도 떠나야 했던 것이다.
항상 오만한 태도로 남을 깔보고 무시했던 이들 가족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고, 이 사정을 알게 된 순례씨는 수림을 가엽게 여겨, 외할아버지가 살았던 방을 내주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순례 주택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는데, 더욱이 앞서 여러 일로 이미 순례 주택 주민들과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례씨의 너그러운 마음과 여러 이웃들의 도움으로 이들 가족은 서서히 순례 주택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늘 높은줄 모르던 콧대도 점차 꺾이기 시작하면서 남달리 금실이 좋았던 이들 부부 또한 진짜 현실적인 가족이 되어 간다.
이 과정에서 수림은 '모지리'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하게 되고, 생각보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음을 수림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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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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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부끄러운지 모르는 사람들과 가족으로 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게 부모라면 더욱.
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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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은 일찍이 순례씨 밑에서 자라면서 '부끄러움'을 배운 아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오만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모가 유독 부끄럽게 느껴진다.
감정적이든 정서적이든 가깝지 않은 그들과 그래서 더 거리를 두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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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들은 자기 힘으로 살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너희 집에 열여섯부터 알바해서, 스물엔 독립하겠다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
"내가 볼 땐 수림이 너 하나만 어른 같다. 현재까진."
53~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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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아이다. 고마움을 알고, 스스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찍 철이 든 아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와 가족들을 지켜보며 더욱 더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부모의 경제력과 상황을 알고 난 뒤 그 결심은 더 단단해진다.
그들의 부모는 결혼할 때부터 가족과 일가 친척들에게 빌붙어 살며 주변인들에게는 오만한 행동을 취해왔다. 이로 인해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을 딸에게 뺏긴 것은 물론, 생활비까지 벌어다 딸에게 주어야 했으며, 고모들은 계속 농사지은 농산물과 돈을 뜯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순례씨는 오랜 연인이었던 수림의 외할아버지와 수림을 통해 그들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수림을 더 애틋하게 여겼다.
집이 망해서 이제는 스스로 돈을 벌것이고, 20살에는 독립을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짠하면서도 기특한 마음이 들어 순례씨는 수림에게 '진짜 어른'이라고 말해주며 힘을 북돋아 준다.
이처럼 마음으로 믿어주고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순례씨가 있어 수림은 어쩌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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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식당에서 옆에 있는 부부 모임 얘기 듣고 깜짝 놀랐어. 늙은 부모가 차를 뽑아 줬다, 애들 학원비를 내줬다, 매달 생활비를 받는다.... 그런 걸 자랑이라고 하고 있대. 부모 도움 없이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마흔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떠들더만. 아주 '누가 누가 더 어린가' 내기를 하고 있더라고. 네 엄마 아빠가 그런 이들이랑 어울렸나 싶다."
(...)
나는 '누가누가 더 어린가' 내기를 여러 번 보았다. 엄마 아빠도 그들 속에 있었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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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에서도 '누가누가 더 어린가' 내기를 하는 사람들은 빈번하게 만나볼 수 있다. 오죽하면 '캥거루' 등 각종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니 말 다했다.
심지어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게 아니라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소설은 이런 부분까지 매끄럽게 잘 담아내며 지혜로운 진짜 어른과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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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라는 말은 '세상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라는 말만큼이나 어이없다. 부모 마음은 다 다르다. 친구도 다 다르다.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 한쪽이 너그러워서 상대방을 봐주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1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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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너무 당연한 듯 쓰였던 속담이 사실은 큰 오류를 품고 있음을 속시원히 지적해 주는 부분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라던가 '세상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는 말은 그저 하는 말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진실과 다른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말이나 속담들을 절묘하게 이야기에 녹여내면서 현실적 풍자는 물론,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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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모욕감을 안 느끼는데, 복수가 돼?"
"어. 내 감정만 해소하면 되나 봐."
1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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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매우 공감한다. 나 역시 최근 비슷한 일을 경험했는데, 상대방 감정과 상관없이 내 감정이 해소되면 어느 정도 복수가 된 느낌이 들더라.
그러니, 어떤 일로 화가 나거나 분노가 치솟으면, 내 감정에 솔직하게 대응하며,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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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그런 것 같아."
"전체는 어렵다고?"
"어, 전체도 어렵고 처음도 어려워. 풋노인, 나는 아직도 풋노인인 것 같아. 그래서 어려워."
2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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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인생은 전체도 어렵고 처음도 어렵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처음'을 살고 있고, 그래서 늘 '풋' 인생을 살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전체도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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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했다. 타인이 아닌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엄마 아빠가. 우리 집의 낯선 불화가. 십육 년을 헤매다 찾은 줄자끄트머리처럼, 나는 눈물 나게 반가웠다.
2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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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하는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낯선 불화가 오히려 눈물나게 반가웠다고 이야기하는 수림은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가족을 만난 기분이 든 것은 아니었을까?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기괴하게 끈끈했던 그들의 관계가, 순례 주택에 오면서 마침내 깨지게 된다. 그동안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부모님이었는데, 이번 불화를 통해 어쩌면 비로소 현실 부모를 마주한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현실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살았던 부모님이었던지라,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현실감각을 되찾은 부모님을 보며 수림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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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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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주거 공간을 통해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단순히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를 넘어, 공동체 주거, 이웃과의 관계, 성장, 삶의 자세, 연대와 소통 등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현실에서 주거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의미, 더 나아가 공간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 의식, 그리고 공정한 대가를 요구하는 합리적인 생각까지 더해지며 미래형 주거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임차인들이 자신이 사는 공간에 대해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정한 대가를 받고 관리인의 일을 직접 한다는 점은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라 더 공감이 많이 갔던 것 같다.
여기에 더해 현실과는 다른, 조금 더 너른 공간에서 1인가구(14평)와 다인 가구(25평)가 생활한다는 점, 공동체 생활에 있어 협동심과 공유를 기본으로 하지만, 개인 선택에 따라 거기에 동참하지 않아도 그것조차 존중해 준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공유와 공동체 생활에 있어 개인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부분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순례주택에서만큼은 이 모든 것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장되고 있어 나 역시 현실에 이런 주택이 존재한다면 대기를 걸어놓고서라도 입주해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공간이었다.
어떤 것이 행복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진정한 지혜와 현명한 답을 전해주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내 공간'과 '관계', '이웃', '공동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또 살고 있는 집의 가격이나 브랜드로 사람을 구별하여 차별하는 어른들의 무논리와 부모에게 기대어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또 다른 어른들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만약 나와 같이 집과 관련된 일로(임대인과 소음, 불쾌한 이웃들) 상처받고 지친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힐링의 시간을 만끽해 보자. 순례 주택은 지친 순례길에서 만난 따뜻하고 안온한 알베르게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