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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해바라기
오윤희 지음 / 북레시피 / 2025년 9월
평점 :
"미세한 가정의 균열이 만들어 낸 소년 범죄 이야기를 통해 법 너머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
초반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화자인 태연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토록 몰입해서 읽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점점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 너머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흥분감으로 빠져들어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 속에는 대표적인 세 가정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태연의 가족, 수완의 가족, 해준의 가족이다. 그리고 이 가족 중 태연의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 아들을 자녀 두었다.
저자는 남녀의 차이, 딸과 아들을 둔 부모의 차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경제적 차이 등 여러 가지 사회 이슈들을 이 소설에 모두 담아내며 픽션이지만 논픽션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미 겪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두루 녹여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사회 문제들을 심도 있게 고민해 보게 만든다.
대표적인 이슈들을 키워드로 정리해 보면, 소년범죄, 촉법소년, 가정의 분열, 편애, 성범죄, 맹목적 사랑,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스트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여자 화장실에서 몰카를 촬영해 현행범으로 잡힌 수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사회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수완이 겪은 문제들을 살펴보면, 가정의 미세한 균열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한 일을 만들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자녀들의 일로 완전히 갈라서게 된 태연의 오랜 친구, 서영의 일을 통해 다시 한번 잘못된 모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만든다.
틈이 생긴 가정,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이런 이야기는 비단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일은 아니다. 이미 뉴스와 언론을 통해 우리가 수십 번 보아온 일들로, 타인의 일로 여길 때는 '어쩜 저럴 수 있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 자신이 가해자의 부모가 되었을 때는 수완의 엄마나 해준의 엄마와 같은 태도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떻게 보면 법망을 벗어난 지극히 사적이며 도덕적 이야기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법 바깥의 이야기들이 결국 사회와 가정을 파괴하는 요인들이 되기에 한 번쯤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특히 요즘 시대에는 내 가족, 내 새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맹목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당연한 사과와 공감은 결여되어 있고, 그 자리에 이기심과 안하무인의 태도만 남은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돈으로 잘못을 무마하려는 태도, 우격다짐으로 자신이 피해자라며 우기는 가해자의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태연은 의뢰인인 수완의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자신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의 편애, 그리고 동생과의 관계, 여기에 더해 사춘기 딸과의 관계까지.
어쩌면 바쁘다는 핑계로, 내 가족이 소중하다는 이유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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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을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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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란?
말 그대로 미성년자가 저지르는 범죄를 뜻하며, 우리나라는 보통 만 19세 미만의 사람을 '소년'이라고 보는데, 이 소년들이 법을 어기거나 사회 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소년범죄'라고 부르게 된다.
■연령에 따른 구분
▷만 10세 미만 (범법 소년): 이 친구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형사적, 보호적 처분도 받지 않는다. 아직 판단 능력이 미숙하다고 보기 때문.
▷만 10세 이상 ~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 이 연령대의 소년들은 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징역, 벌금 등)은 받지 않는다. 대신 소년법에 따른 보호 처분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소년원에 보내지거나, 보호 관찰을 받게 되는 식으로, 재범을 막고 교화하는 데 목적이 있음.
▷만 14세 이상 ~ 만 19세 미만 (범죄소년): 이 소년들은 형법에 따라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 성인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마찬가지로 보호 처분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 교화의 여지가 아직 많다고 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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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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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연(47)
-검사 출신 변호사
-이혼 후 딸을 혼자 키우고 있음
-대표 변호사의 부탁으로 수완의 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됨
-동시에 딸에게 큰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됨
■김재희(16)
-태연의 딸
-동갑내기 소꿉동무 해준과 사귀는 사이
-부모님의 이혼과 사춘기를 겪으면서 힘든 날을 보냄
-큰 비밀을 품고 있다가 엄마에게 들통이 남
■박수완(16)
-'엄친아'인 형으로 인해 항상 그림자로 살아옴
-부모의 사정에 더해 늘 형보다 열등하다는 이유로 애정 없이 길러짐
-타고난 체격과 운동실력으로 유도 선수를 꿈꾸기도 하지만, 꿈이 좌절되면서 일탈을 시작
-여자 공중 화장실에서 몰카를 촬영하다 현장 검거되면서 재판을 받을 위기에 놓임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숨겨진 비밀이 많은 아이
■박지완(21)
-모든 것을 타고난 덕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한몸에 받음
-뛰어난 두뇌와 매력적인 외모, 여기에 더해 부모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며 살아옴
-여기에 더해 늘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동생까지 챙기는 배려심을 보임
-하지만 남들은 모르는 은밀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인물
■한여정(47)
-집안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과 결혼하게 되면서 '의사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은 얻었지만, 한평생 시댁과의 갈등을 겪는 것은 물론 무시당하며 살고 있음
-그녀에게 유일한 성취이자 자랑은 첫째 아들 '지완'뿐
-자신의 편애로 둘째 아들 '수완'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지만 무시
-그녀의 삐뚤어진 애정이 결국 괴물을 낳게 된다
-그녀에게 있어 두 아들은 탄생 시점부터 빛과 그림자로 나뉘었음
■전하연(46)
-태연의 연년생 동생
-미국으로 이민가 무명의 미술작가로 활동하다가 돌연 한국에 돌아오게 됨
-수완의 사건으로 태연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하연과도 더 가까워짐
■장서영(47)
-태연의 친구이자 해준의 엄마
-잘나가던 광고 회사를 그만두고 양육에 올인
-아들을 위해 우정이나 도덕관념 등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인물
■최해준(16)
-서영의 아들이자 재희의 남자친구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아 미래에 AI 쪽으로 진로를 고려 중
-재희와의 사이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지만 엄마와는 달리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아이
■최석준
-수완이 다닌 유도 체육관 코치
-수완의 솔직한 모습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수완의 가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음
■김종우(48)
-태연이 속한 로펌 대표이자 대학 한 학번 선배
-태연과는 20년간 인연을 이어 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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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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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계속 화자를 바꿔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에는 변호사 태연, 두 번째는 수완의 엄마 여정, 세 번째는 수완의 형 지완, 그리고 에필로그 1에서는 수완, 에필로그 2에서는 태연의 딸 재희가 화자로 등장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덕분에 독자는 숨겨진 이들의 가정사는 물론, 각 주인공들이 품고 있던 사정과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는데, 이를 통해 주인공인 수완이 얼마나 큰 짐을 짊어지며 오해 속에 살았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작은 틈새가 만들어 둔 구멍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또 맹목적 모정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몇 번의 비틀림과 오랜 시간 쌓아온 불안과 불신, 그리고 애정들이 뒤엉켜 결국에는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
결론에 다다라서는,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결말과 함께 끔찍한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은 여전히 가면을 쓰고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더불어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과 많이 닮아 있어 더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누군가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반성은커녕 잘못인지조차 모르고 산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이득과 실리를 위해 가면을 쓴 채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이용하고 속이며 살아간다.
태연은 한결같이 검사를 꿈꾸지만 결국 이혼과 자녀 양육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검사를 그만두고,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과연 그 결정이 옳은 선택이었을까를 늘 고민하며 지내게 된다.
우리 삶도 이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계속해서 고민하고 되짚어 보는 태도, 잘못된 방향이나 태도라는 생각이 들면 즉각 해준과 같이 사과를 하며 바로잡을 기회를 잡는 것. 어쩌면 이런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를 올바른 삶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수완이 몰카 사건에 휘말리는 일도, 지완이 안하무인 사이코패스로 성장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큰일을 겪고도 태연의 신중한 태도 덕분에 재희가 시련을 잘 이겨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삐뚤어진 모정을 이겨내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잘못을 사과하는 해준의 태도에서 밝은 미래가 보인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악과 선이 뒤엉켜 무엇이라 딱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잘못을 바로 잡지 않았을 때 생기는 부작용만큼은 이 소설을 통해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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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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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면 얼마든지 낼게요!"
(...)
"사실 애들 아빠가 병원 원장이거든요. 돈이 쪼들리는 형편은 아니에요. 그러니 그저 아이 장래에 빨간 줄 그어지지만 않게, 일이 커져서 주변에 소문나지만 않게 해주세요."
(...)
돈만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신경질적인 엄마와 아무런 죄의식도 없어 보이는 아들. 개인적으로 가장 혐오감을 느끼는 조합이다.
27~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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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봤던 대사들이다. 사과보다 앞서 돈 이야기를 하는 혐오감이 드는 인간들의 전형적인 모습.
이 조합을 우리는 또 다른 가정의 또 다른 엄마에게서 보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가정과는 달리 그쪽의 자녀는 다른 태도를 보여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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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뜨고 있다기보다 벌어져 있는 것 같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우물을 닮은 아이의 눈에 담긴 건 그저 공허와 허무뿐이었다.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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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고, 방어적이고, 감정이나 죄의식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섣부르게 '사이코패스인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중후반부에 들어서게 되면 이것은 진짜 공허와 허무의 눈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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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수완이는 실패작이었어요."
(...)
"그냥, 엄마는 동생이랑 절 대할 때 많이 달랐어요. 눈빛이나 말투 같은 게 전부 달랐어요. 제가 그랬다면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실수도 동생이 당사자가 되면 짜증을 내거나 말투가 험악해지고."
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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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정말 좋은 형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동생에 대해 '실패작'이라는 표현이 좀 거슬리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중에 제대로 된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 문장이 소름 돋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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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계속 해준일 피했거든. 걔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고 곁에 오는 게 싫었어."
(...)
"처음엔 내가 왜 화가 났는지도 모르는 것 같더라. 그런데 내가 계속 피하니까 나중엔 '혹시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거야?'라고 물어보더라고. 걘 자기가 뭔가를 잘못했다고는 아예 생각 못 하는 눈치였어."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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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의 극명한 차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사가 아닌가 싶다. 정작 피해를 입힌 가해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데, 피해자는 그로 인해 감정적, 정신적, 신체적 피해로 인해 괴로워하는 상황들을 잘 표현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 속에도 이런 상황들이 왕왕 일어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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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하잖아요."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는 투로 해준이 대꾸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놀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해준의 말처럼 잘못하면 용서를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살면서 그런 당연한 일을 목격한 기억이 오히려 드물었기 때문에.
1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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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의 이 한마디는 앞선 내용과 달리 마음을 풀어지게 만들었다. 초반에 도망가는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본인도 처음 당하는 일에 당황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해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처럼 너무 당연한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런 당연한 일을 목격한 기억이 오히려 드물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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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하는 사람을 미워할 순 없으니 대신 언니를 미워했어. 미안하지만, 언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매일 언니한테 화내고 아웅다웅하면서 나름대로 분노를 풀었던 것 같아. 그런데 만약 언니가 나한테 너무 잘해줬어 봐. 언니를 미워할 수도 없잖아. 그럼 난 어떻게 해? 마음에 앙금은 계속 쌓이는데 그걸 해소할 대상이 없잖아."
1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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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의 동생인 하연의 이 말속에 수완의 마음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다. 가족 중 누구에게도 마음을 붙일 수 없었던, 수완의 답답함과 힘듦을 태연은 동생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듣고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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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을 볼 때마다 이따금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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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성적표에서 내세울 만한 건 자식밖에 없는 셈이었다. 그런데 자식 농사에서마저 실패했다는 건 내 삶 자체가 자체가 실패작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수완을 대하는 내 태도가 예전과 달라지기 시작한 건 그 사실을 막 깨달았을 무렵이었다.
1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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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은 시댁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한 이후 삶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때문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둘째 아들인 수완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칠 때마다 자신의 삶에 투영해 동일시하게 된다.
때문에 정서적으로 가학적 태도를 보인 것은 물론, 아이의 존재 자체를 '실패작'으로 보고 첫째 아들에게만 편파적 행동을 보이게 된다.
엄마, 부모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평생 해오며 살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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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에 대한 죄책감은 이전보다 더 무겁게 내 마음을 내리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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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껏 잠자코 있었냐고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하고픈 질문은 너무나 많았지만, 만약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내가 그 사실들을 모조리 알고 있다는 걸 들키고 말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내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완은 나를 원망할 게 뻔했다. 그러느니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양 행동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설령 그게 부모로서의 도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2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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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실을 다 알게 된 뒤에도 여정은 여전히 자신을 위해 계속 핑계를 쌓아간다. 불편한 마음을 평생 껴안고 살더라도, 자신의 첫째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런 첫째 아들에게 올인한 자기 자신을 위해 여정은 둘째 아들의 삶 자체를 방관하고 포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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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인생에서 제일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됐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도 결국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2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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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진리이자 깨달음이지만, 이 깨달음을 얻은 대상자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소름이 돋을지도 모른다. 이 깨달음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은 유치원을 다니던 지완으로, 그는 일찍이 영악하고 교묘한 구석이 있던 아이였다.
그 좋은 두뇌와 판단력으로 그는 온 가족을 휘어잡는 것도 모자라, 동생을 가스라이팅 했고,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제 편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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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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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들을 긴장감 있게 잘 풀어낸 이 소설을 살펴보다 보면, 사람들의 추악한 내면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모정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치맛바람의 위험성, 나의 사회적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잘난 자식만 편애하는 부모들의 이기적 행태, 내 자식의 잘못보다 앞날을 걱정하며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 '나'와 '내 가족'을 우선하며 그 외에 것들은 다 포기하며 사는 사람들.
여기에 더해 내가 더 빛나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악랄한 심성을 가진 나르시시스트이자 사이코패스의 이해 불가 태도, 잘못은 알지만 더 큰 이득을 위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등을 관찰하다 보면, 하나같이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함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내 뱃속으로 낳은 아이에게조차 작은 배려나 애정을 보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으로 감정이 결여된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해 못 할 일들이 이런 이유로 계속 번져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만약 이런 것들을 우리가 계속 방치하고 외면한다면 분명 수완이가 겪은 일들, 수완이와 같은 아이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태연이 수완이의 일로 인생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되도록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려 함), 우리 역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며, 반성과 변화의 태도를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