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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맨을 위하여 -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신보라 지음 / &(앤드) / 2025년 7월
평점 :
"한 소녀가 되고 싶어 하는 울트라맨! 그 절박한 외침이 의미하는 바는?"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던 책 제목과 만화 캐릭터 표지 디자인 때문에 만화적 요소가 결합된 소설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막상 마주한 스토리는 생각보다 무겁고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특히 약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던 '울트라맨이 되고 싶어'라는 말속에 담긴 의미가 너무 절박한 외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더 먹먹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가진 울트라맨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녀!
망상인지 현실인지 혹은 착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전반부를 지나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현실 속에 아주 참혹한 모습으로 소녀는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세상 속에서 억울함을 홀로 견디며 살아야 했던 소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너와 나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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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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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15세 소녀
-전학 첫날 메리를 만남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엄마 사이에서 홀로 생존 중
■우주의 엄마
-남편이 사망한 이후 알코올 중독으로 죽어가고 있음
■성태
-우주의 아빠
-화물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는 외제차와 충돌해 사망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살인자로 낙인찍힘
■메리
-15세 소녀
-본명: 문형은
-엄마로부터 학대 당하고 있음
-학교에서는 왕따
-엄마의 학대를 외부에 숨기고 유일한 버팀목인 엄마의 그늘에서 여전히 생존 중
■곽태주
-메리의 엄마
-기분이 나쁘면 누구든 머리를 쥐어뜯음
-풍채가 좋음(170cm가 넘는 키에 몸무게는 약 90kg 정도)
-낭만 상가에서 비디오 감상실을 운영 중
■정심 아저씨
-노래방 '환락송'의 주인
-중국인으로 추정
-노래방에 갈 때마다 늘 우주와 메리에게 단팥빵 하나를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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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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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전학 간 첫날 메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우주는 앞선 학교에서 폭력 사건으로 인해 강제 전학을 당하게 되는데, 사실과 다른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아이들을 참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한편 메리는 학교에서 왕따로, 그래서인지 함께 지내는 우주 또한 덩달아 친구들과 거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둘은 더 함께 보내는 날이 많아졌는데, 이 덕분에 우주는 메리가 하나뿐인 엄마로부터 학대당하고 있다는 비밀까지 알게 된다.
둘은 노래방과 비디오 감상실, 메리의 집을 전전하며 망상과 착각, 현실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다가 우주는 곳곳에서 검은 구멍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 침대가 있는 곳, 노래방의 구석진 장소에서 그것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이내 그 구멍 안에서 검은 어둠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기에 이른다.
텅 비어 있는 건지, 꽉 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구멍에서 우주는 양가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파괴된 가정 속에서 자란 우주가 마주해야 했던 현실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메리와도 관계가 소원해진 어느 날 사망한 엄마와 그 옆에 있던 우주가 사람들에게 발각된다. 이 일로 우주는 조사를 받게 되고, 조사가 끝난 뒤 마주한 현실 속에는 단팥빵을 들고 서 있는 정심 아저씨가 있었다.
이후 우주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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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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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고통스럽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아.
(...)
너도 아프니?
하고 내가 묻자
조금.
하고 메리가 제 코끝을 손등으로 비비며 대답했다.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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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등장하는 소녀 둘은 모두 지독한 아픔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보통의 15살 아이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서로 건네며 공감과 이해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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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도천동을 향해 걸었다.
도천동에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었다. 그곳은 또 두 집단으로 분리되었는데 1동과 2동은 매매 단지였고 3동은 임대 아파트 단지였다.
나는 1동에 살았다. 학교 친구들은 대게 1동과 2동에 살았다.
메리는 임대 아파트에 살았지만, 매번 나와 함께 1동의 입구로 들어섰다.
22~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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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돈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메리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3동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아빠의 사고 보상비로 우주는 1동에 살고 있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메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둘은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3동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고 싶어 늘상 1동의 입구로 들어서는 메리의 심정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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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어둠이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아무런 빛도 나오지도, 들어서지도 않을 어둠.
어둠이란 구멍과 비슷했다. 텅 비어 있는 건지, 꽉 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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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공허, 혹은 외로움, 어쩌면 현실을 반영한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는 어둠과 구멍.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우주는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도, 사랑도, 보살핌도. 그래서 어쩌면 어둠과 구멍이 그토록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현재를 나타내는 상태이자 또 내가 채우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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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보이는 문고리가 약했다. 문을 두세 번만 흔든다면 곧장 열려버릴 것 같았다.
왜 내부여야만 할까. 그럼에도 다를 게 없는데.
(...)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오줌을 마저 눴다.
밖에서 들리는 조그만 소음에도 문고리를 휙 낚아챘다. 언제까지고 이 문고리를 쥐고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서.
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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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는 현재 우주가 겨우 붙잡고 있는 내면의 아주 약한 고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곧장 누군가 부숴버리면 언제고 열릴 수 있는 문고리지만 그럼에도 불안할 때마다 꼭 붙잡고 있는 문고리. 그것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그래서일까? "언제까지고 이 문고리를 쥐고 살아야 하나"라는 마지막 문장은 스스로를 언제까지 지켜내며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소리를 내뱉는 것 같아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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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누구의 잘못도 없는 반복 속에서 자랐다. 그것은 굉장히 순도 낮은 자람이었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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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돈과 권력에 의해 뒤바뀐 현실. 이로 인해 우주의 가족은 파괴되고, 이 때문에 우주는 결핍 속에 자라게 된다.
그 속에 우주 가족의 하나도 잘못은 없다. 하지만 우주는 아빠에 이어 엄마까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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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하루에 여섯 가지의 약을 먹어야 했다. 그것은 분홍색과 노란색, 흰색이 섞여 있어 어마는 마치 봄을 먹는 것 같았다.
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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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잃어버린 우주가 유일하게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은 어쩌면 엄마가 여섯 가지의 약을 먹을 때가 유일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더 슬프게 다가왔던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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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고는 '포르쉐 충돌사고'라는 내용으로 헤드라인에 떴다.
(...)
어디에도 상대편 운전자의 음주 사실은 적혀 있지 않았다.
포르쉐 운전자의 과실에 대한 기사가 떴을 때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사라지는 글처럼 포르쉐는 빠르게 잊혀졌다.
(...)
아버지의 유물처럼 아버지의 기사는 끝까지 남아 있었다.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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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를 모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대편 운전자의 음주로 인해 아버지는 불에 타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모든 내용은 사실과 다르게 알려지게 된다.
잠시 잠깐 포르쉐 운전자의 과실에 대한 기사가 뜨기도 했지만, 그 내용은 금방 세상에서 사라졌고 오로지 아버지의 사고 내용만 유물처럼 남아 우주와 그녀의 가족들을 괴롭히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억울한 사람은 말이 없고, 넘치듯 많이 가진 사람은 과오가 사라지는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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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울트라맨이 되고 싶다.
진짜 울트라맨이 되고 싶어.
어디서든 어깨를 움츠리지 않을 수 있게 단단한 갑옷을 가진 울트라맨이 되고 싶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다.
무언가를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깊숙이 파버릴 수 있는 단단한 손가락을 가지고 싶다. 열 개, 스무 개, 아니, 셀 수조차 없는 수많은 손가락을.
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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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에서 우리는 우주가 절실하게 바라는 모든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왜 울트라맨이 되고 싶은지, 그것이 가진 메리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이다.
가족을 잃고 홀로 세상과 맞서야 했던 우주는 늘상 움츠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든든하게 보호해 줄 단단한 갑옷이 필요했을 것이고, 또 자신을 두고 사라진 부모님을 대신해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고 상처 준 사람들을 단단한 손가락으로 깊게 파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을 지킬 힘도 없었던 우주가 유일하게 혼자 망상하며 할 수 있었던 일은 어쩌면 이렇듯 울트라맨이 되고 싶다는 외침이 다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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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평화로웠다. 아버지와 등가교환 한 집. 아버지의 죽음을 놓고, 포르쉐와 엄마의 타협으로 가질 수 있었던 집. 그러므로 아버지처럼 평화로운 집.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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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와 반어법을 활용해 이야기하고 있는 '평화로운 집'은 죽음과 고요함을 상징한다. 죽은 자로 인해 지어진 집, 그리고 죽어가는 이가 머무는 집. 그래서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밖에 없는 집.
이 집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아. 아버지처럼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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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각의 공간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꾸역꾸역 미워했다.
무엇을 미워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언제까지고 사방이 꽉 막힌 이곳에서 눈을 뜰 것 같은 막막함. 언젠가는 이 집이 흔들려 천장이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주저앉아 내리면, 2층과 3층, 16층까지 모든 사람들이 내 위로 차곡차곡 쌓이겠지. 할멈이 파는 과일 바구니 속의 과일처럼. 가장 썩은 것은 가장 아래로.
나는 열여섯 가구의 사람들을 모두 등에 업은 채 사는 기분이 들었다.
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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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심정을 아주 잘 드러낸 문장이 아닐까 싶다. 사각의 공간 속에 빠져 허우적대며 막막함과 책임감, 두려움, 불안함 속에 매일을 사는 기분.
이것이야말로 우주가 가족을 잃고 매일을 사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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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구멍인 거지.
나의 말에 메리는 정답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구멍에는 모든 것이 있지. 그러니까 구멍인 거야.
메리가 말했다.
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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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른 관점과 시각을 우주와 메리의 입장을 통해 극과 극으로 보여주고 있는 문장이 아닐까 한다. 우주는 구멍을 통해 공허함과 결핍을 느낀다. 반면 메리는 구멍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느낀다.
이 극명한 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 어쩌면 메리는 구멍을 탈출의 도구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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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 앞으로 다가가 두 팔을 벌렸다.
나를 안아주세요.
나를 살려주세요.
나를 그저 사랑만 해주세요.
그들이 동시에 다가왔다.
1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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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혹은 착각 속에서 헤매며 우주는 사랑을 간절히 바란다. 꿈인지 현실이지 구분되지 않는 알 수 없는 곳에서 안아달라, 살려달라 강렬하게 외치자 그들은 마침내 여기에 응답해 준다.
우주의 내적 심리가 얼마나 불안하고 결핍이 심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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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살아남는 방식이라면, 나는 이제 어디든 끼어들고 달라붙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단팥처럼, 이가 시릴 만큼 달지 않을 정도로.
2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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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망이 사람들에게 발각된 이후 우주는 조사를 받게 된다. 조사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우주는 앞선 삶과는 다른 삶을 살리라 굳게 결심한다.
메리의 방식과는 다른,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살아갈 결심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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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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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노래 '울트라맨이야'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게 되었다는 이 소설은 가진 것 없고 애정이 결핍된 소녀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녀는 불우한 환경에서 홀로 구석진 곳만 바라보며 산다. 사람들은 긍정과 희망을 강요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찾기란 어렵다.
그렇게 늘상 버겁고 답답한 삶을 이어가던 우주는 어느 날 이미 오래전에 사망한 엄마와 함께 발견되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 이유에는 스스로 울트라맨이 되었다고 믿게 되어서는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원소 중에 최고는 바로 사랑이라고 믿었던 소녀 우주, 그녀는 엄마의 죽음 이후 진짜 혼자가 되면서 격렬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망상(혹은 착각)을 믿게 되면서 다른 방식으로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이는 혼자 클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진짜 혼자가 된 아이는 망상과 착각을 통해 새로운 무엇을 불러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우주는 깨달을 것이다. 세상에 울트라맨은 없다는 사실을. 그때쯤이면 그녀는 아마 홀로 남겨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훌쩍 자라 어른이 된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