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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진짜 공부 - 10대를 위한 30가지 공부 이야기
강원국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평점 :
대기업 근무를 하다가 대통령 연설문을 썼고 지금은 방송과 강연, 글쓰기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강원국 선생이 뜬금없이 왜 공부 책을 냈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다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만 하다. 강원국 선생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이 행복해지는 공부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해답이 바로 이 책이다. 나로 말하자면 평생을 학생 공부시키느라 이골이 난 사람이기 때문에 공부라면 지긋지긋해서 정작 내 자식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번 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강원국 선생이라면 공부 책이라도 뭔가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 강원국 선생의 책은 언제나 재미나고 새로운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시키는 사람인 내가 공부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는 수고는 수업료로 생각하기로 했다.
막상 <강원국의 진짜 공부>를 읽다 보니 이 책은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알기 위한 학생뿐만 아니라 자녀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학부모,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인 교사 그리고 좀 더 훌륭하고 나은 인격체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학교 공부, 마음 공부, 인격 공부를 위한 ‘좀 더 친절하고 확실하며 다정한’ 도우미라고 해야겠다. 부모라고 해서 자녀 교육에 도통한 것도 아니고 교사라고 해서 공부하는 방법을 통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래 구절을 통해서 절감했다.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이는 없습니다. 무언가 잘하는 게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을 찾으면 됩니다. 과거에는 잘하는 것에도 우열이 있었습니다. 영어와 수학이 사회나 과학보다 중요했고 배점도 높았습니다. 아무거나 잘해선 의미 없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걸 잘해야 했지요. 까부는 것, 잘 노는 것은 아무리 잘해도 잘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에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잘 놀기만 해도, 잘 먹기만 해도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따지고 보면 요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고 한 번쯤은 자녀나 학생 그리고 후배에게 들려준 주장이다. 그러나 두서없이 한 시간 동안, 이 생각을 풀어서 한다고 생각해보자. 결국 듣는 사람에게 남는 기억은 내가 저 사람에게 한 시간 동안 잔소리를 들었다는 정보일 것이다. 이 구절이 이토록 설득력과 감동을 주는 이유는 강원국 선생이 평소 강조하는 말의 힘일 것이다. 한 단어도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최적의 길이로 듣는 사람에게 강렬한 설득력을 말의 힘.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지로 안 됩니다. 습관으로 해야 합니다. 자동차나 TV 만드는 공장에 가면 생산 라인이 있고, 거기서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자동화된 생산 라인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부품이 하나씩 보태져 완제품이 나오지요. 나는 습관이 이런 컨베이어 벨트라고 생각합니다. 습관이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자신을 올려놓으면 공부가 절로 되는 것이지요.
나는 이 구절을 뭔가 꾸준히 해야 하는 과업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피를 토하면서(물론 나는 강의를 30년 해왔지만, 피를 토하면서 강의를 한 적이 없다) 명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1분 정도는 세상을 정복하고 산을 옮기겠다는 의지에 불타지만 그 실천은 매우 어렵다. 나만 해도 그렇다. 불후의 명작을 써보겠다고 두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자료와 책들을 직장과 집 사이를 꼬박 5개월 동안 ‘들고 만’ 다닌 이력을 소유한다. 물론 그사이 쓴 글은 한 단락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들고 다녔던 자료는 너들너들한 걸레가 되었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내 나름의 글쓰기 루틴과 습관에 따라 마치 끼니를 때우는 것처럼 글을 쓰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하고 도서관에 출근해 근무 환경(?) 세팅을 마친 후 커피 믹스를 마신 다음 집필을 시작한다. 점심때가 되면 늘 가던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금쪽같은 식후 흡연을 한 다음 오후 집필에 들어갔다가 집에 와서는 안마의자에 하루의 피로를 푸는 식의 습관 말이다. 이건 마치 내 의지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키보드가 스스로 글을 쓰나 가는 경지를 맛본다. 습관이나 루틴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명장면이라고 꼽는 농사짓는 귀족 레빈이 풀베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는 농민과 함께 풀을 베는 게 너무 재미나서 낫이 스스로 풀을 베는 듯한 경지에 이르렀고 한나절 풀을 베었는데 누가 물으면 ‘30분 정도’라고 대답할 만큼 몰입했다. 공부나 과업 수행을 위한 자신만의 습관이나 루틴을 만드는 것은 몰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말을 통해 더욱 많이 알게 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른은 더 어른스러워지고, 선생님은 더 선생님다워집니다.
수다쟁이가 똑똑해진다는 말이 아니다. 이쯤에서 고백하건대 나는 대학에서 배운 내용보다 꼬맹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체득한 내용이 훨씬 많다.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남에게 거만한 표정으로 가르치는 재미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내가 교재 연구를 하면서 재미나고 기발하다 싶은 내용을 발견하면 학생들에게 알려줄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 다음날 마침내 내가 터득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면서 나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그 지식이 내 머릿속에 화석이 되었음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공부 방법을 알려주는 <강원국의 진짜 공부>를 제자와 친구에게 선물하면서 느낄 카타르시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