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딸아이가 집에 왔다. 반갑고 좋아서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우리 몰래 남자 친구 사귀었다가 헤어진 거 아니니?’라고 물었다.
대학교 3학년 22살 딸이 남자 친구를 사귈지 말지를 부모한테 허락받을 일도 없고 간섭할 생각도 없다. 다만 그 놀기 좋은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그 나이 되도록’ 공식적으로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이 없으니 의아하기는 하지만 우린 그런 줄 알고 지낸다. 워낙 미주알고주알 우리에게 말을 하는 딸이고 여태껏 거짓말이나 욕설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는다. 정말 우리에게 굳이 말을 하지 않고 남자 친구를 사귀었거나 사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쪽도 나쁜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는 딸아이의 선택이다. 문득 내가 한창 연애할 때 장모님 말씀이 생각난다. 휴대전화가 상용화되기 직전 시절이라 퇴근 후 아내와 이야기를 하자면 집 전화로 전화를 해야 했다. 아내가 전화를 받으면 다행인데 종종 장모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집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자주 장모님과 아내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했다.
여하튼 딸자식을 워낙 귀하게 키우다 보니 장모님은 내가 아내에게 전화하는 빈도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결혼하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너무 자주 전화가 와도 걱정이고(이게 왜 걱정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너무 안 와도 걱정이었네’ 였다. 모든 부모가 자식 일이라면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대학교 3학년이 되도록 연애 한 번 안 해봤다면 은근히 걱정된다. 물론 연애가 끊기지 않는 것도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고. 가끔 공부만 하지 말고 대학 생활을 좀 즐기라고 조언을 하는데 1, 2학년 때 너무 놀아서 지금은 벌 받는 중이라나.
적당히 연애하다가 결혼을 하고 우리처럼 내 딸을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이 생겼으면 좋겠다.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언제까지나 우리가 끼고 살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