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민이 있단다. 아빠로서 뿌듯한 순간이다. 23살 대학생 딸이 아빠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자체가 아빠로서는 자랑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고민인즉슨 교환학생에 관한 건이었다. 결국 제 뜻대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는데 문제는 해당 지역의 기후가 너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오하이오에 있는 작은 예수회 소속 학교인데 기숙사 시설도 좋고 교육여건도 좋은데 문제는 평생 구경할 눈을 다 구경해야 할 정도로 춥고 눈이 많이 온다고.
나는 애당초 교환학생 건에 반대를 해왔는데 결국 가게 되었으니 체념한 상태다. 별 감흥 없이 대충 조언해주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후회하지 말고 애초에 그 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되새기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딸아이는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아빠라면 적어도 근사한 조언이나 위로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정말이지 난해한 자식이다. 나보고 뭘 어쩌란 말인가.
근사한 조언을 해주지 못한 못난 아빠를 자인하며 ‘밥 잘 먹고 조심히 출근’하라고 말하는데 딸아이가 말을 끊고 ‘왜, 마무리하게?’라며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공고히 했다. 머리를 쥐어짜 가면서 오하이오주와 미국 동부 지역에 관한 좋은 점을 말하였다. 심지어 십 년 전에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지문에 나왔던 오하이오주 농부의 이야기를 섞어서 오하이오주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딸아이는 만족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난해한 자식이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딸아이에게 애초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그러면 말이다. 날도 춥고 그러니 교환학생 가지 말고 내년에 서울의 봄을 만끽하는 것은 어떻겠니?’라고. 아주 작은 희망을 가지고 한 말인데 딸아이는 여지없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란다. 보내줘도 문제로 가지 말라고 해도 문제다.
또다시 그놈의 오하이오주 예찬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오하이오주라면 프로야구 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랑 신시내티 레즈 밖에 모르는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또 바닥이 드러났다. 딸아이도 내가 측은했던 모양인지 ‘그래그래’하면서 내 말에 동조해주는 척하더니 드디어 나를 석방해주려는 기색을 보였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딸아이의 한마디가 귀를 때렸다.
“그래, 알겠어. 그럼 마지막으로 오 분 동안 실의에 빠진 딸에게 힘이 되는 말을 좀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