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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좋아하면서 어쭙잖게 책을 다섯 권이나 냈다. 자연스럽게 저자와 독자의 입장을 동시에 경험한다. 우선 저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자. 나의 경우에는 두껍고, 웅장한 장정판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간 책을 내면서 늘 아쉬웠던 게 내가 만족스러울 만큼의 웅장한 체구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뭔가 거대한 작업을 했고 공부를 많이 한 느낌이 들기 위해서는 일단 책이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 빽빽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뿌듯해하는 기분 말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원고지 900매 정도가 보통 크기의 책이 나오니까 내가 동경하는 벽돌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천 매의 원고가 필요하겠다. 내가 십 년 동안 매진해서 그런 원고를 완성했다고 한들 내 책을 내줄 출판사는 없을 터이고 그걸 읽어줄 독자도 드물겠다.

요즘 독자들은 두꺼운 책을 싫어한다고 한다. 독자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200페이지짜리나 1,000페이지짜리나 책 한 권일 뿐이다. 독서에 있어서 성취감은 중요하다. 내가 한 해에 몇 권의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 말이다. 벽돌 책은 독자들의 ‘수치 계량학’적인 성취감의 적이다. 두꺼운 책은 독자들의 ‘유동성’에도 방해가 된다.

침대에 누워서, 지하철에서 또는 화장실에서 읽기 힘들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자세로 읽어야 하고 독서환경을 위한 별도의 ‘세팅’이 필요하다. 저자의 입장으로 돌아가면 내 책이 기왕이면 장정판 위에 소프트 커버를 또 덮고, 간지도 있었으면 좋겠다. 독자는 띄지가 귀찮다. 계륵에 가깝다. 버리자니 찜찜하고 그냥 두자니 책장을 넘기는 데 방해가 된다.

띄지를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의제는 독서가의 영원한 고민거리다. <독서 만담>을 내면서도 편집자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두툼하게’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낼 때는 독자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저자의 입장이 된다. 편집할 때 삭제가 되는 구절이 있으면 마치 내 살이 뜯겨 나가는 고통을 느낀다. 내가 쓴 원고로 도대체 어느 정도의 두께가 되는 것일까 하는 주제로 밤을 새워 추측한 적도 있다.

<독서 만담>은 저자보다는 독자의 입맛에 맞게 나왔다. 어쩌다 보니 원래 실으려고 했던 꼭지 4개가 누락이 되었는데 그 녀석들이 제 자리에 들어갔다면 저자의 입맛에 맞는 두께에 좀 더 가까운 책이 될 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독서 만담>을 읽은 독자에게는 후식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애피타이저가 될 집 나간 내 자식 한 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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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아내가 딸아이와 나를 두고 탕평책을 쓰고 있는 듯하다. 하긴 식구가 달랑 3명인데 한 사람을 소외시키면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그리고 딸아이가 너무 기고만장해지면 부모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를 맞을 수도 있으니 아내의 조치가 이해되기도 한다. 백화점에서 내가 멜 가방을 사느라 딸아이가 노래 부르던 바지를 미처 사지 못한 일만 봐도 아내가 적당히 딸아이를 견제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더구나 며칠 전 내가 딸아이에게 뽀뽀를 하겠다고 덤볐는데 평소처럼 딸아이는 짜증을 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왜 자꾸 애를 귀찮게 하느냐”고 나를 꾸짖고는 했다. 그런데 이날은 나보다 딸아이를 혼내면서 “몇 초만 참으면 되는데 그걸 가지고 뭘 짜증까지 내느냐”고 되레 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아내의 훈훈한 조치에 감격하고 결초보은할 기회를 찾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주방을 돌아보니 설거지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리고 TV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젊고 잘생긴 남자배우가 열연하는 드라마가 나온다. 나는 살며시 주방으로 향했고 아내가 드라마를 시청하는데 조금도 불편이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설거지를 했다.


일희일비

잘생긴 배우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상스러운 그릇 씻는 소리가 섞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설거지를 했다. 음지의 설거지를 마친 뒤에는 조용히 서재로 복귀했다. 아내가 드라마 속 멋진 환상에 맘껏 취해 있다가 현실세계의 꾀죄죄한 남편을 보고 실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책을 읽는데 아내가 빨래를 널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세탁기로 달려가서 냉큼 산더미 같은 빨래를 담아들고 을씨년스러운 베란다로 나갔다. 옷의 종류별, 크기별, 두께별로 엄격히 분류하여 세탁물을 건조대에 널고 있는데 마침 외출했던 딸아이가 돌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가 딸아이에게 “너도 베란다에 나가서 아빠를 도와주거라” 명령하는 것이 아닌가. 

딸아이가 “이제 막 집에 돌아왔는데 오자마자 일을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항했지만 아내는 “아빠 혼자서 저렇게 고생하는데 자식으로서 돕는 것이 도리 아니냐“고 호통을 친다. 빨래를 널던 나는 감격해서 눈물을 왈칵 쏟아지려고 했지만 눈물에 젖은 빨래를 다시 세탁기에 넣어야 할 걱정 때문에 간신히 참았다. 눈물을 닦으면서 빨래를 정성스럽게 건조대에 널고 있는데 아내의 명령에 마지못해 베란다로 향하던 딸아이가 “흐흑” 하는 이상한 웃음을 터트렸다. 순간 나는 본능적인 위험을 직감했고 딸아이가 베란다 문을 잠그기 직전에 탈출할 수 있었다. 

아내는 무서운 사람이다. 일찍이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원숭이를 닮은 소인배고, 감히 우리나라를 침략할 인물이 못 된다며 왕과 국민에게 말한, 노회한 정치인 학봉 김성일의 후예가 아니었던가. 그녀는자신을 위해 보은하려는 남편을 베란다에 가두고 장난감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갑자기 베란다 문을 잠그기 위한 액션을 취하면 눈치가 없는 나라도 금방 탈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나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딸아이가 아버지를 도와주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활용했다. 

아내는 나를 속이기 위해 나에게 들릴 만큼 큰소리로 딸아이에게 나를 도와주라고 했다.  한편 딸아이에게 들릴 정도의 아주 작은 속삭임으로 베란다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아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딸아이는 노회한 안동 양반의 후예가 니다. 딸아이는 지리산 자락 함양박씨의 후예다. 순박한 농부의 피를 좀더 많이 물려받았다. 딸아이가 아빠를 교묘하게 속인다는 긴장감을 감추고 불과 4m 정도만 베란다로 향했으면 아내의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실현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딸아이는 역시 순박한 지리산 자락의 농부 출신 함양박씨의 후손이다. 털끝만큼도 남을 기만하지 못하는 유순한 성격 탓에 민중을 맘껏 요리한 양반네 후손인 아내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했다. 


희노애락이 담겨 있는 이야기 

아내는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내게 절대 끌려 다니지 않는다. 나의 용도와 장점을 잘 파악하여 필요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쓴다. 그리고 웬만하면 본인 스스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의 뜻을 잘 구현해줄 충직한 딸아이가 있지 않는가.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이 쓴 병원에세이 『만약은 없다』를 읽다가 아내 못지않게 현명한 사람을 발견했다. 

논산훈련소에는 4주간의 훈련을 마치면 공중보건의가 되는 전문의들만 모아 둔 중대가 있다. 대한민국의 10대 도시에 종합병원을 몇 개씩 세울 만큼 전공이 다양한 수백 명의 전문의들만 모아 둔 중대라서 그 위세가 대단하다고 한다. 본인들이 모두 전문의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잡다한 질병을 다 달고 살아서 그 중대는 마치 질병의 경연장과도 같은 모습이라고. 수백 명의 의사인 동시에 환자인 그 양반들을 치료해야 할 군의관은 이제 겨우 인턴을 마치고 복무 중인 중위였다. 그 어린 군의관이 전문의 병사들을 치료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에게 수영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든가 혹은 교황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나 진배없는 웃기는 상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어린 군의관은 수백 명의 의술에 도가 튼 환자들을 짧은 시간에, 그것도 효율적으로 진료를 해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전문의 환자들의 불평도 전혀 없었다. 그 군의관의 비법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늘 하던 것처럼 서로 진료를 보시고 차트에 적어오시면 됩니다.” 

이 영민한 군의관은 전문의 환자끼리 서로서로 상대방을 진료하고 차트를 기록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전공이 각양각색이니 모든 종류의 질병에 대한 진료가 환자들끼리 셀프로 가능했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면 수백 명의 무리 중에서 피부과 전공의를 불러서 진료하게 하고 자신은 “피부과 선생님이 하신 말, 잘 들으셨죠?”라고만 하면 되는 일이다. 

『만약은 없다』는 이것 말고도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병원과 환자의 이야기가 많다. 애잔한데다 사람 사는 냄새가 진득하기로 유명한 박경철의 병원에세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리더스북)과 비견되는데 그보다 드라마틱하거나 동화스러운 면은 적지만, 좀더 사실적이고, 치열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준다. 철학서나 자기계발서보다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기도 하다. 평소 최상급 사용을 금기시하는 나이지만 이 책에만큼은 최상급의 찬사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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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3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반갑습니다 제가 이따가 보내드릴께요 주소 알려주세요

2017-02-13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제가요 증정본이 없어서요 포인터가 많으니 주문해드릴깨여

박균호 2017-02-1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되면 서명 해드릴께여

2017-02-13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20부 받았는데 다 증정했고요 싸게 사는 건 불편해요 ㅎㅎ

박균호 2017-02-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책은 제가 나중에 사서 보겠습니다 ㅎㅎㅎ

2017-02-13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3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ㅎㅎ 오해 마셔요 경북 김천시 부곡동 우방아파트 108동 101호 박균호 01067767131 입니다 감사히 잘 읽을께요

2017-02-13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3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시고 간단한 서평 남겨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당

2017-02-13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3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그럼요

박균호 2017-02-1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가 우리집 신주소도 아직 모르는 바보라 ㅠㅠ

stella.K 2017-02-13 14:5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책도 내시고, 이사도 하시고.
올해 시작이 좋으신가 봅니다.^^

박균호 2017-02-1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해요

2017-02-14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여긴 시골이라 잘 들어올거에요 ㅎㅎ 감사합니다 잘 읽을께요

2017-02-14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4 18:55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착각을 해서 급하게 수정했어요...ㅎㅎ 편안한 저녁 되세요..
 

나는 문예반에서 하루 만에 쫓겨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달리 잘하는 것도 없고 그나마 덜 움직이고 되는 곳 같아서 문예반을 선택했는데 담당 선생님께서는 내가 쓴 글을 보더니 ‘넌 안 되겠다 나를 반품시키셨다. 나이를 먹어가도 달리 좋아하는 것은 없이 유일한 소일거리가 책 읽기인 삶을 살아갔다. 서른이 되도록 글쓰기와는 여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회적인 현상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이다.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그때쯤 일선 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나는 그 학교에서 손글씨가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시험지 원안을 작성한 최초의 선생이 되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워낙 악필이기 때문이다. 그때쯤 인터넷 언론사가 탄생했다. 원고지에 글을 써서 해당 언론사에 우편으로 보내는 수고를 하지 않고 컴퓨터에서 곧바로 글을 보낼 수 있고,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정책은 귀차니즘을 신봉하는 나에겐 최적이었다. 


원고가 기사로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고, 비중이 작은 기사는 1천원, 톱기사로 채택되어봐야 1만 원이 지급되는 환경 속에서 260만 원가량의 원고료를 받았다. <올해의 기자상>을 나에게 주지 않을 것 때문에 ‘삐져서’ 탈퇴를 고려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나의 글은 문예반에서 쫓겨난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이 나타난 초창기라서 나처럼 벌거숭이도 날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인터넷은 훌륭한 글쓰기 연습장이 되었고 출간제의를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거꾸로 보는 위인’이란 기획을 내게 제시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쓸 자신이 없었다. 내가 역사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자칫 후손들이 나에게 소송이라도 걸면 어떡하느냐는 공포감도 들었다. 그 기획은 거절하는 대신 ‘내가 헌책과 희귀본을 좋아하고 수집하니 그 경험에 관한 글’을 쓰겠노라고 제의를 했고 출판사 측은 수락했다. 출판사의 사정으로 출간이 연기되다가 어렵게 2011년 가을에 나온 책이 <오래된 새 책>이다. 


오래된 절판본이 새 책으로 재출간되기를 희망하는 뜻으로 제목을 지었다. 아니 선택했다. 지금에야 밝히지만 <오래된 새 책>은 서평가로 유명한 <로쟈>님의 블로그에 있는 카테고리 이름이다. 물론 그 카테고리도 절판되었다가 재출간된 책을 소식을 전하는 코너다. 코너 이름을 책 제목으로 사용해도 되겠느냐는 부탁에 <로쟈>선생은 ‘제가 그 말에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새삼 고마운 일이다. 


<오래된 새 책>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문화면의 톱뉴스로 내 책을 소개했고 공중파에서는 촬영기사를 우리 집으로 보내서 취재해갔다. 출간된 지 열흘 만에 초판이 다 팔렸다. 열흘 만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2쇄를 찍겠단다. 대뜸 오·탈자를 수정해서 찍으라고 부탁했는데 ‘시간이 없다’라고 하셨다. 2쇄를 찍자마자 책은 더는 팔리지 않았고 나의 짧았던 영광은 사라졌다. 


두 번째로 낸 <아주 특별한 독서>는 ‘신간이 언론에 소개되지 않기도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오래된 새 책>을 내고 하도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하고 소개가 되어서 ‘책을 내면 원래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읽을 만한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주변 사람들의 부탁에 대한 ‘답’으로 낸 책이다. ‘삼국지’나 ‘문학 전집’을 출판사별로 장단점을 분석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세 번째로 나온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는 나에게 ‘책 팔기의 어려움’을 더욱 가혹하게 알려주었다. 아내와 딸아이에게 치이는 40대 유부남의 비애를 재미나게 쓴 책인데 ‘재미’를 추구하는 내 글쓰기의 ‘원형’을 마련한 책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서 기존의 책보다 더 나은 조건의 인세를 요구했는데 이를 수락하고 출간한 출판사에 체면을 제대로 구긴 책이기도 하다.


네 번째 책은 <수집의 즐거움>이다. 피겨, 만화책, 카메라, 운동화, 연필 등의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재미있고 유쾌한 작업이었지만 원고를 쓰면서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있긴 있었다. ‘음식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모임’의 회장을 겸하는 한 수집가분과 식사를 하면서 푸짐한 밥과 국 반찬을 모조리 먹어치워야 했고, 피겨 수집가의 소장품을 구경하기 위해서 3층 건물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옥탑방에 올라가느라 고소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1인 출판사에서 낸 이 책의 영업사원은 따로 없었다. 대표를 할 사원이 없는 사장과 저자인 나는 영업사원으로 변신했다. 대외적인 상황도 좋지 않았다. 언론보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사장대로 나는 나대로 모든 지인에게 책 구매를 강권했다. 내 여동생, 누나, 그뿐만 아니라 조카들의 코 묻은 돈까지 약탈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게,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에게도 한 권의 책을 선물한 것이 아니고, 사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출판사 사장도 여기에 차마 쓰지 못할 눈물겨운 노력을 했더랬다.


 한 달 동안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영업을 했는데 어디 출판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해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출간된 지 2년이 다가오는 최근에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초판이 거의 소진되어 간다는 ‘보고’를 받았다.

또다시 눈물이 나려 했다. 

우리 둘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하루에 메신저를 달고 살았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초판이 거의 다 팔린것은 좋은 일인데 2쇄를 찍어야 할지 고민이란다 . 절판본 수집가의 책이 절판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최후의 10부는 내 몫으로 남겨두라고 했다. 내가 내 책을 수집해야 하다니 가혹한 현실이다.

다섯 번째 책이 <독서 만담>이다. 책과 재미라는 내 인생의 화두를 담은 책이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점잖다’라는 칭찬 아닌 비아냥을 꼬리표로 삼은 나의 글이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재미나다는 칭찬을 받을 땐 의아하다. 그냥 일상이 무료하고 너무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하철이나 직장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미친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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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깃털보다 내가 가벼웠던 시절
염신현 지음 / 이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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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여자를 처음 사귀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무려 3년 동안 이어진 짝사랑을 종지부 찍고 공부를 하겠다며 혈서로 다짐한 며칠 후였다. 대학입학시험을 2주 앞두고 새 출발을 했지만 불과 1주일 만에 첫눈에 반한 여학생을 발견했다. 2층에 있는 교실 창가에서 늘 하던 대로 지나가는 여학생의 평점을 매기는 놀이에 매진하고 있었는데 별 다섯 개로도 불가능한 인형보다 더 예쁜 운명의 여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늘 앞서가는 남자들의 본능이 발휘되었는데 그 여학생과 사귀게 되더라도 몇 달 후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신분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이내 그 여학생을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내 인생의 모든 행운의 기운이 그때쯤 집중되었는지 며칠 뒤에 대학입학시험 하루 전날 그 여학생이 내게 고백을 해왔다. 그 여학생이 ‘오늘 저녁 학교에 나오실 거냐? 잠깐 볼 수 있느냐?’고 물어온 것. 

그날 이후로 몇 달간 누구보다 달콤한 사랑을 나눴는데 언젠가 그 여학생에게 나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물었었다. 내가 잘 생긴 것은 다 아니까 진솔하게 대답해 달라고 물었는데 그 여학생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신을 좋아하지만, 엄청 못생겨서 싫어한 선배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 본관 건물에서 그 남학생이 걸어 나와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내가 걸어 나오더란 것이다. 

최근 ‘염신현’ 작가의 <당신의 깃털보다 내가 가벼웠던 시절>이라는 매력적인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타이밍 
여자 때문에 운 일이 있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오래전부터 언젠가 꼭 울어야지 했다가 그 울기에 좋았던 날 곁에 있던 여자가 걔였던 것만 같다. 여자한테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옳지 사랑인 게야 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그냥 고백을 간절히 하고 싶었던 차에 마침 그때 나를 지나쳤던 여자가 걔였던 것만 같다. 

어쩌면 그 여학생은 나를 애초부터 좋아했던 것이 아니고 그 못생긴 선배에 몸서리를 친 나머지 다른 대타가 필요한 시점에 내가 나타난 것은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확실히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나니 굳어진다. <당신의 깃털보다 내가 가벼웠던 시절>이 2016년의 독서가 된 것도 오로지 타이밍 덕분이다.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5천 명에 가까운 친구들의 글이 순식간에 지나치는 찰나에 한 분이 올린 이 책의 사진이 내 시선을 고정했다. 단순하면서도 수려한 세련미가 넘치는 이 책의 표지가 눈에 띄었다. 제목은 또 얼마나 시적이고 울림을 주는가 말이다. 나는 책이라는 물건을 참 좋아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표지디자인과 장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국내와 해외서적의 간격이 가장 큰 부분이 디자인과 장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 표지디자인이라면 그 어떤 해외서적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제목과 표지만으로 책 전체를 읽은 것 같은 포만감을 느끼고 싶다면 단연코 나는 이 책을 손꼽고 싶다. 서둘러 읽고 이 세련된 책의 서평을 남기기로 했다. 나는 서평을 쓰기 위해 읽는 책은 험하게 다룬다. 책장을 접고, 메모를 곳곳에 남겨두어야 서평을 쓰기 편하기 때문이다. 서평을 쓰기 위한 책은 거의 부검하다시피 하는 편이다. 

첼로 연주자 
자기 세계에만 빠져 사는 사람은 
잠시 남의 세계에 빠지는 걸 사랑이라 하고 
자기 세계로 돌아오는 걸 이별이라 하고, 
자신의 연주만 듣는 첼로연주자처럼 눈을 감고선 
추억이라 한다. 자기 세계에만 빠져. 

서평용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나의 오랜 버릇은 위의 첫 구절을 읽고 나서 무너져버렸다. 215편의 사랑에 관한 짧은 생각과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이 책을 오래 곁에 두고 소중히 간직하면서 읽기로 작정했다. 

겨울 햇볕이 내려쬐는 따뜻한 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책을 읽는 행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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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역사를 만들다 - 예술이 보여주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 전원경의 예술 3부작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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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방학이나 정년 보장이 아니다. 대학 시절 한 은사님은 선생이 된 이유를 ‘평생 젊은이와 함께할 수 있어서’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당시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나 자신이 피 끓는 청춘이었으니까. 세월이 흘러 내가 당시 교수님의 연배가 되었다. 생각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직업으로서의 교사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지.

내가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읽은 책에 대해서 말할 청중이 항상 대기해 있다는 점이 나는 가장 행복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창의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은 대부분 2천 권이 팔리기 힘들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사는 오천만 명 중에서 단지 이천 명만 아는 이야기를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일 수밖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지식이나 생각을 혼자 간직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자신이 발견했고 생각해낸 것인 양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아는 게 많더라도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랑할 수는 없다. 자칫하다간 잘난척한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교사는 얼마나 행복한가? 호기심이 많고 말 잘 듣는 학생이라는 청중이 있어서 언제라도 당신의 유식함을 뽐낼 수 있다. 아무리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영어 선생이 교과 내용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마구 할 수는 없다. 영어 교과서를 읽어나가다가 ‘돼지’가 나오면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와 수수께끼>에서 읽어서 알고 있던 돼지 숭배문화와 혐오 문화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영어라는 극협하는 과목을 담당하다 보니 아이들의 부담을 들어주고 졸음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려는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싶어서 교과서에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메모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신기해했고 즐거워한 적이 많았다.

전원경 선생의 <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이런 나의 버릇에 최적화된 책이다. 예술과 역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은 두툼한 책이라는 이유로 내 책상에서 한 달 이상 방치되어 있었다. 일단 읽기 시작하니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를 읽고 전원경 선생의 팬이 되었는데 <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쉽고 재미나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유물을 나열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왜 그런 풍습이 생겼고 왜 그런 유물이 남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역사책이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건 이거니까 무조건 외워! 라는 식이 아니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상한 설명 말이다.

이집트 파라오들은 왜 늘 옆을 바라보는가? 기사도가 발생한 배경은 무엇인가? 구약 성경의 내용은 왜 징벌 위주며, 구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거치고 사나운 것일까? 는 등의 흥미로운 의문에 대해서 자상한 설명이 따른다. 흥미로운 역사와 관련된 예술품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차라리 역사와 예술의 멋진 향연이라는 설명이 더 걸맞다. 역사와 예술을 이토록 흥미롭게 풀어나간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무거운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원경 선생의 필력은 워낙 뛰어나서 이 책에 수록된 많은 사진과 그림 자료에 눈길을 돌리기 어려울 정도다.

좋은 책은 메모를 부른다. 쉼 없이 밑줄을 긋고 잊어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적어놔야 마음을 놓고 다음 쪽을 넘기게 하는 책 말이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가 그런 책이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다 읽을 때까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참지 못하게 되는 책이다. 남은 분량에서 또 얼마나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슴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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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2-11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신청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잡식성책장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17-02-11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해요 앞으로 자주 봬요
 
아내와의 재혼 - 나이듦에 대한 공감 에세이
백문현 지음 / 두리반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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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교사답게 대체로 고지식하지만 뜻밖에 쿨한 면이 많다. 그녀는 여러모로 신식이고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난 진보적인 가치관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운전을 할 때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서 실망스럽다. 조수석에서 간섭 질이 대단하다. 그토록 고리타분한 것을 혐오하면서 왜 조수석에만 앉으면 쌍팔년도 다운지 모르겠다. 

조수석에 앉으면 일단 빛의 속도로 내 차 안의 상태를 점검한다. 차의 청결 상태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운전자라는 것을 인지한 지 오래라 포기하였지만, 그녀의 좌석이 조금이라도 착용감이 미흡하면 단박에 질타가 따른다. 그녀가 내 차에 타는 순간부터는 나는 어디까지나 개인 운전기사지 내 차의 주인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내 차 안의 모든 기기의 조정과 세팅은 아내의 권한에 귀속된다. 오디오, 에어컨의 설정은 모두 그녀의 입맛대로 움직이며 나는 단지 운전대만 잡고 있을 뿐이다. 

운전경력이 내가 더 많다는 점을 주장했지만 그녀는 경력보다는 타고난 운동신경과 능력이 자신이 더 우월하므로 닥치고 자신의 지시에 따르라고 한다. 그녀는 운행 속도, 차선 변경, 온도 조절을 완벽히 통제한다. 나라고 속이 없겠는가? 자존심이 없겠는가? 당연히 숨이 막힐 듯한 독재에 항거했다. 이 차는 내 차이며 내가 운전대를 잡았으니 내 맘대로 운전하겠다고 말이다. 감히 아녀자가 남편이 하는 일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지 말라고 버럭 화를 냈다. 

하여 내 마음껏 내 취향대로 운전을 하긴 했는데 긴 여정 동안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침묵 속의 레이스를 했다. 참으로 긴장감 넘치는 여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백문현 선생이 쓴 <아내와의 재혼>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선생은 아내분의 운전 섭정을 충직한 조언으로 받아들여 적극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쓸데없는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간섭을 ‘클래식’ 음악으로 여기는 경지의 반열에 오른 분이다. 

<아내와의 재혼>은 30년간의 직장생활에서 은퇴한 백문현 선생의 은퇴생활을 담담히 그린 책인데 남자가 은퇴하면 아내의 운전 간섭도 고매한 클래식 음악으로 여겨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러나 아내의 충언을 대놓고 불쾌해한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를 알겠다. 어쩌면 <아내와의 재혼>은 아내를 위해서 10시간 일을 해도 3초간의 실수 때문에 그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꾸지람만 듣는 은퇴한 남자들의 삶에 대한 예행연습이 될 수 있겠다. 

은퇴 이후의 삶에 관한 책은 많다. 그러나 대다수가 자기계발이나 돈벌이에 치중한 책이다. 물론 은퇴 이후에도 자기 계발이나 돈벌이가 중요하겠지만 정작 아내와의 관계의 재정립이 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남자들이 은퇴 후 신경 써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아내를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기사가 아니고 모셔야 할 봉건 군주로 생각하고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실감했다. 우리가 이 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퇴한 남자로서 아내를 어떻게 대하고 예우를 해야 애완견보다 못한 신세가 되지 않는지를 잘 말해준다. 

나만 해도 그렇다. 시집을 오기 전에는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 아내가 제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우리 집의 제례 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라도 하면 ‘감히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함양박씨 가문의 제례 전통을 무시하느냐며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어느 추석 때는 송편을 조상님 개인별로 그릇에 따로 담는 것이 아니고 큰 대접에 함께 놓아야 하지 않느냐고 아내가 물었을 때 대노를 했더랬다. 조상님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새참을 드시는 것도 아닌데 어찌 큰 대접에 송편을 함께 담아 쭉 둘러앉아서 드시게 하느냐고 말이다. 아내와 예송논쟁을 벌인 것이다. 치열한 예송논쟁 끝을 거쳤는데 오로지 나의 고집 덕분에 우리 조상님들은 여전히 추석 때 개인별 접시에 놓인 송편을 드신다. 

그런데 <아내와의 재혼>을 읽으니 제사를 위해서 가장 수고하는 사람들은 아들들이 아니고 며느리들이니 며느리들의 입장과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를 또 반성하게 한다. 저자 백문현 선생의 가문도 당연히 고유한 제례 풍속이 있지만 고생하는 며느리의 입장을 배려고 그 뜻을 따른다는 내용은 깊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재미있고 여운을 진하게 남기는 에피소드가 가득한 이 책으로 은퇴자의 삶에 대한 예방 주사를 맞는 것이 좋겠다. 당장 그 뜻을 실천하기로 했다. 아내가 주말에 가자는 국카스텐 공연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겠다. 방관적인 관객이 아닌 주인의식으로 똘똘 뭉칭 적극적인 관객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내가 좋아하는 국카스텐 공연을 남김없이 동영상으로 담아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긴 공연을 오롯이 담을 수 있도록 가장 큰 용량의 메모리를 준비했고 오래 들면 어깨가 무너질 것 같은 고통을 주는 DSLR과 대포만 한 렌즈를 가져가기로 했다. 국카스텐 멤버들의 숨구멍마저 담아와야 한다. 참으로 비장한 각오로 국카스텐 공연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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