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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도록 반복된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인간은 어떤 경우든 각자가 도달할  있으리라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을 결국 낮추거나적어도 수정할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러한 행복을 지성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부인이나 연인침대테이블안장난롯가시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모비  중에서

 

 

주인공 이슈마엘이 고체로 응고된 향유고래 기름을 짜면서  뱉는 독백이다향이 너무 좋아서 노동이 아니고 유희처럼 여겨지고 너무 행복한 나머지 동료의 손마저 응고된 기름 덩어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향유 고래의 기름 덩어리를   나는 향이 얼마나 향기로운  나로서는   없다마치 택배 상자에 딸려온 뽁뽁이를 하나씩 터트리는 쾌감과 비슷한 것인지 상상해  따름이다어찌되었거든 나이가  수록 거창한 것보다는 생활 속의 사소한 것에 행복감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분명한  같다.

 

나만 해도 퇴근을 하고 아무도 없는 원룸 숙소에서 밥을 차려 먹고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먹은 다음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울  마치 행복이라는 추상명사가눈에 보이는 물질 명사처럼 바로 앞에서 만난 것처럼 행복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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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0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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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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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0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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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06: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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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2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행복을 느낄 때도 있지만, 만약 책이 주는 기쁨이 없다면 지루한 일상이 어어질 뻔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박균호 2020-08-22 14:18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그렇네요. 책이 주는 소소한 행복.
 
피은경의 톡톡 칼럼 - 블로거 페크의 생활칼럼집
피은경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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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신문 서평 란을 참고해서 책을 사지 않는다. Sns 친구를 대부분 작가출판계 인사로 채워 나가다 보니까  분들이 내고만든 책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렇게 알게  책이 기자들이 알려준 책보다 알짜였다여기 알라딘 서재도 나에게는 좋은 책을 고르는 자양분이다

 

<피은경의 톡톡칼럼> 알라디너가  책이라서 읽었다그분과 일면식도 없고 심지어 서로 친구도 아니다다만  공간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니 그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내용이 기대가 되더라

 

책을 냈다고 여기 저기에 알리고홍보성 글을 스스로 올리고 콘서트를 하는 것들이 내게는  하기 싫은 일이다내가 하기 싫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부족한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준 출판사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없기 때문이다

 

책을 내다보면  권을 구매해준 독자가 마치 부처님처럼 보인다고 해야할까 손에 들어오는 인세는 1400원인데 말이다어렵게 책을  피은경 저자에게그런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책의 물성을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피은경의 톡톡칼럼> 장정이나 표지 그리고 내지 디자인이 다소 성의 없어 보여서 약간의 실망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사소한 일상 생활의 에피소드를 소재 삼아 동서고금의 명저와 작가의 통찰력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은 내가 최근에 읽은  중에 가장 뛰어났다.

 

 

연애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중국의 고전 장자 통찰 같은 경우가 그랬다.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같은 국내 자계서에서롤랑 바트트까지장르와 시대를 넘나 듣는 책과 작가들이 등장한다피은경 작가의 독서 편력이 참으로 거대하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고 어느  노선이나 기준에 함몰되지 않는 유연함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

 

마치 일상생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인문학 공부를 하게 해주는 책으로도 읽히고 실생활에 뼈와 살이 되는 지혜가 가득 담겨 있는 책으로도 읽힌다

 

 

누가 뭐래도  쪼대로 사는’ 것이 고착화된 나로서도 배울 점이 많은 책이었다독서가로서 재미나고 공감된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피은경의 톡톡칼럼> 관한 이야기를 마친다.

 

책과 관련하여 내가 싫어하는  들자면 다음과 같다책이 구겨지는 누군가가 책을 빌려 달라고 하는 책을 재밌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외출할 일이 생기는 아끼던 책이 오래되어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는  읽으며 안구 건조증이 느껴지는 전자책에 밀려 종이 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신문 기사를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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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9 1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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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9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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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9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과분한 호평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책을 내놓고 성취감보단 허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을 알게 되겠지, 하고 있어요.
그래도 이런 호평이 하나 있으니 앞으로 어떤 악평에도 꿋꿋이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힘이 납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0-08-19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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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9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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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기분 -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나를 찾아온 문장들
이현경 지음 / 니들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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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가  책이라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있다자신의 성공담과 아나운서로서의 활약상 그리고 약간의 위기를 겪지만 자신의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는 자화자찬이 떠오른다문예가가 아닌 유명인사의 책을 거의 사보지 않는 이유다저자로서 이현경 아나운서를 남다르게 생각하고 그의 책을 사서 읽게 것은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인데 그녀가  소개 유튜브 방송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유튜브 방송을 하는 시대이지만 특히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은 자신들의 유명세를 무기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방송을 하지  안되는  소개 유튜브를 하지 않는다이현경 아나운서는 책을 정말 좋아하는 구나이현경 아나운서는 본인 스스로 책으로 위로를 받는 경험을 이야기 하는 구나 이런 생각을하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라는 제목은 직장에서집에서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2 인생이지만 자신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자는 의미에서나온 것으로 안다누가 공영 방송국의 아나운서를 2 인생이라고 생각할까당연히 지나친 겸손이나 책이니까 뭔가 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기 싶다

 

그녀의 유튜브 방송을 구독하고 있는 나로서는 본인을 2 인생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믿는다제대로  장비나 스튜디오 없이 때로는 주차장  안에서  소개를 맛깔스럽고 정성스럽게 한다누가 봐도 돈이 된다거나 유명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구독자와 조회수임에도 불구하고말이다

 

성공이나 출세를 위해서 달려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것도 아닌 기분 쪽만 읽어 보아도 알겠더라아나운서에서 졸지에 피디로 부서이동을 하게되었고 심지어 남편 마저도 회사에서 시키면 어쩔  없지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녀는 사장을 어렵게 찾아서 탄원한다

 

사실 제가 결혼 10 만에 힘들게 아이를 가졌고지금 임신 초기입니다그러니 이번  번만 유예해주시면  될까요?”

 

간신히 원래 자리에 남게 되었지만 그토록 바라든 아기는 10주를 버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고 이현경 아나운서에게 남은 것은 전직을 하기 싫어서 아이를 가진 것처럼 꾸몄다가 유산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소문 뿐이었다나로서는 누구나 선망하는 아나운서 조차도 여성 직장인은 이토록 고달프다는 사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정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기분> 독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유명인사가   에서   있는 무용담이 없다대신 직장내에서의 원치 않는 부서 이동유산난임산후우울증부친의 백혈병 투병 생활식구와 동료와의 소박한 일상이야기가 많다

 

 속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오길래 자연스럽게  아빠’  남편을 말하는  알았는데 본인의 아버지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고 이현경 아나운서가 생전 부친과 얼마나 친근하게 지냈는지  알겠다

 

이현경 아나운서가 아내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아나운서로서  바쁘고 고된 일상을 많이 겪었다는 것도  알겠다. <아무것도 아닌 기분> 읽으면서 내내 생각은 이현경 아나운서는 어찌되었던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과 긍정의 기운을 찾으려고 애쓴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현경 아나운서는 책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다시 기운을 냈다고 하지만 나는 이현경 아나운서의 <아무것도 아닌 기분> 통해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이현경 아나운서는 주변에 박혀 있는 장식 덕택에 빛이 나는 보석이 아니고주변을 모두 보석으로 만들어 주는 따뜻한 햇살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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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8-17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이유에서 유명인사의 책은 안 읽는 편인데
이현경 아나운서 나름 사연도 있었군요.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똑같나 봅니다.
작가님 이리 쓰시니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내요.

저도 카메라 울렁증만 없다면 어디에서나 짤방을 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아무래도 이번 생은 좀...ㅋ

박균호 2020-08-17 15:09   좋아요 0 | URL
네 유명인이라고 보다는 평범한 여자의 일상이야기 였습니다.

2020-08-18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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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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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04: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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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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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서가 낯설고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충고는 일단 읽기 시작해봐라라는 것이다. <모비 > 좋다는 이야기만 듣고 문학동네와 작가정신판본으로 모자라 만화 버전까지 사둔  일년 만에 별다른 기대감을 가지지 않고 펼쳤다거의 900쪽에 이르는 벽돌 책을 아껴가면서 읽게 되더라

 

주인공 이슈마엘이 식인종 출신의 동료와 만나는 장면에서 무서워하는 내용은  어떤 코미디 보다  웃겼다고래와 포경 업에 관한 넓고 세밀한 정보는 책을 놓기 싫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실제로 모비 딕을 만나 추격하고 사냥을 하는 장면은 거의 말미에 수십  등장하며 별다른 극적인 서사가 없는데도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오롯이 채워주는 명작이라니무엇보다 <모비 > 빠져들게 하는 요소는 고전은 오래된 미래라는 명제를 틈나는 대로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여러 물체를 한꺼번에  수는 있지만 동시에  가지 물건을 세밀하게 관찰   없다는 구절을 읽고  여태 살도록  생각을 자각하지 못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고전을 누가 낡은 것이라 했는가. 19세기에 쓰여진 책을 읽고 21세기를 사는 사람이 새로운 지식을 얻는데 말이다

 

상류층 출신의 이슈마엘이 포경선에서 제일 하급 직원 그러니까 노꾼으로 취업을 하려고 하다가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노꾼은 선장항해사작살꾼보다 아래 그러니까 노예의 신분이나 다름없다스스로 노예의 길을 걷겠다고 덤벼들다가  자괴감에 빠지지 않겠는가

 

이슈마엘의 반문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우리들 중에 노예가 아닌가  누구인가

 

명칭이 노예가 아닐  40~50명으로 구성된 포경선의 조직 사회와 내가 근무하는 직장의 생태가 노동의 종류를 제외하면 뭐가 다른 것인지 찾지 못하겠더라이젠 교사는 노동자라는 생각에 반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교사는 전형적인 감정노동자다

 누구도 교직의 사명감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학교는 그저 직장이고 교사는  벌어 먹기 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교직 생활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고 실제로 그렇다형사처벌이라는 용어가 공문서에 흔히 등장하고 실제로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위가아닌 단순한 행정적인사적인 실수를 해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학교에서 하는 모든 행위를 하기 앞서서 무슨 탈이 생기지 않을까라는생각을 항상 먼저 하게 된다 생각이  모든 가치보다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나쁜 짓을 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명제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고 처벌에 대해서 과도하게 의식을 해야만  탈없이 교직생활을   있다는 뜻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여학생의 치마가 짧으니 실수라도 치마 밑을 본다는 고발(?) 당할 수가 있으니  선생들은 급식소의 제일 끝에서 창가를 향하는자리에만 의무적으로 앉아야 한다는 지침을 심각하게 시행할지 말지 고려를 했었다.

 

관리자라고 어디 노예가 아니던가가만히 보면 평교사보다  눈치를 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하다이재용이라고대통령이라고 마냥 편하고 상전 노릇만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세월이 갈수록 19세기 고전의 통찰이 더욱 현실화되는 것이다고전은 오래된 미래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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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8-1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어제 리뷰에서 모비 딕을 아껴가며 읽으셨다기에
의아했습니다. 전에 모비 딕은 지루해서 완독하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안 그런가 봅니다. 그러니 저도 문득 읽어보고 싶네요.
그런데 작가님은 역시 진정한 독서가십니다.
모비 딕의 버전을 여러 가지로 갖고 계시는군요. 대단하세요!!^^

박균호 2020-08-13 19:04   좋아요 0 | URL
독서가라기 보다는 수집가에 더 가깝지 않나요? 아무래도 극적인 서사가 별로 없으니 지루하게도 느낄수도 있는데 글에 언급한 저런 내용에 주목하다보니 정말 재미나더라구요.

2020-08-13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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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3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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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4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기엔 너무 두껍습니다. ㅋ
이젠 3백 쪽 이내의 책을 선호하게 됩니다.

박균호 2020-08-16 07:3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시군요. 그런 분량이 편하긴 해요.
 

특이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이념보다는 가족애가 우선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형제인 염상진과 염상구는 서로를 향해서 총구를 겨눠야 하는 처지다. 형 염상진은 빨치산을 동생인 염상구는 우익의 편에서 형을 소탕해야 하는 입장이다.
마침내 염상진이 토벌군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빨갱이라고 모욕을 받을 때 염상구는 가슴에 넣어두었던 형제애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놓는다. ‘살아서 빨갱이지 죽어서도 빨갱이냐’고 형을 보듬는다. 내 입장에서는 태백산맥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지점이었다.
시험 기간이라 일찍 퇴근해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넷플릭스로 삼국지를 보기로 했다. 과연 책으로 읽었던 때와는 다른 감동이 느껴졌다. 이제 막 여포가 천하의 절색 초선의 꼬임에 빠져서 주군인 동탁을 향해 창을 겨누는 순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피식피식 웃으면서 <뽕숭아 학당>을 봐야 하니 지금 보고 있는 삼국지를 그만 보란다. 식겁했다. 그놈의 임영웅, 뽕숭아 학당.
그건 그렇고 마치 등 뒤에서 아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착각을 했다. 가족 계정으로 묶인 사용자들은 다른 사용자가 어떤 영상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모양이다. 새삼 참 무서운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아내의 목소리 뒤로 딸아이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아내의 여포인 딸아이는 분명 대낮에 운동이나 공부를 하지 않고 골방에 혼자 누워 넷플릭스에 빠져 있는지 애비를 탓하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아내에게 한마디 항변도 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넷플릭스에서 빠져나오려고 몸을 일으켰다. 몇 번을 돌려보아도 지겹지 않은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를 보다가 딸아이에게 들키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아내에게 전혀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키보드로 손을 뻗는데 전화기 너머로 딸아이의 목소리가 커졌고 무슨 말을 하는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빠는 혼자 사는데 넷플릭스라도 봐야지. 아빠는 그냥 보게 하고 엄마가 나중에 봐”
이십 년 동안 마음에 두었던 염상구의 형제애가 새삼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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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8-12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색의 감독..이 도대체 뭔가 해서 검색해봤네요ㅎㅎ; 저는 조카가 제 계정으로 넷플릭스 시청 중인데 가끔 이 아이가 뭐 보나~ 체크-_-해 보게 되더라구요 호호^^ 효녀 따님이시네요. 흐뭇하셨을 듯. 그러나 임영웅의 늪은 매우 깊은가봐요. 일흔 넘으신 제 엄마도 영웅 앓이 중^^;;;;;;

박균호 2020-08-12 21:5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감히 불후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av에 대한 순수하고 열정적인 태도 ㅎㅎㅎㅎ 리스펙트하게 되던데요. 그리고 초반에 주인공이 영어교재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성공스토리가 나오는데 너무 재미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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