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현장에서 오래 일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가 학생들이 고전을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고전은 '오래된 미래'이며 출간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이며 통속문학인 경우도 많다.

<오만과 편견>만 해도 오늘날 막장 드라마 시조새가 아니던가.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은 또 어떻가. 고전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면 학생들은 교사가 흔히 하는 '영혼이 없는 잔소리'라고 생각한다.

고전은 21세기 청소년들이 학교나 가정 그리고 교우관계에서 흔히 만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아가 건강까지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내가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을 쓴 이유다. 


<모비 딕>의 주인공 이슈메일은 한 번 바다로 나가면 최소 3년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포경선 피퀴드호의 선원으로 취직한다. 군대 보다 더 위계 질서가 뚜렷한 포경선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노꾼으로 일한다. 선장이 지시를 하면 마치 메뚜기처럼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노꾼이라는 신분을 이슈메일은 비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들 중에 노예가 아닌 사람 누구 입니까?" 


따지고 보면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고위공직자, 경영자 또한 그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납작 엎드려야 한다. 포경선에서의 생활을 읽으면 하급 선원을 동정하게 되기도 하지만 하는 일만 다를 뿐 현대 직장인들의 생활 패턴은 포경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일과 자기 생활의 밸런스 즉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경선의 노꾼 이슈메일의 직업관은 어땠을까? 이슈메일은 노꾼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보수나 사회적인 명성을 노리지 않았다. 그저 바다가 좋고 신선한 바람을 맘껏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

심지어는 향유고래의 기름을 짜는 것을 '소확행'으로 좋아했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이던 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하는 삶을 대변한다. 반면 포경선의 선장은 오래전 자신의 다리를 빼앗아간 고래에 대한 복수심에만 사로잡혀 있다.
 
말을 못하는 짐승에게 무슨 복수인가라는 건의도 무시하고 배와 선원들의 운명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선장의 모습은 오로지 돈과 출세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으며 그러한 삶의 아름답지 못한 결말을 <모비 딕>은 알려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의 아버지는 '여자에게 사랑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여자는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고 결혼 상대자도 골라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성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친다.

오늘날 여성에 대한 차별은 상당 부분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미국 남부 시골 사람들의 고지식한 편견을 여학생에게 강요하는 학교와 교훈이 있다.

남학교 교훈에는 용기, 명예, 단결 등 미래지향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이 많은 반면 여학교 교훈에는 순결, 정숙, 예의와 같은 전근대적이고 수동적인 가치가 많다. 교과서의 삽화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서 청소년들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직도 학교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개선책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내기>에서 부유한 은행가와 젊은 변호사는 종신형과 사형을 두고 어느 것이 더 관대한 처분인지를 두고 내기를 한다. 목숨을 앗아가는 사형보다는 종신형이 낫다고 주장한 변호사는 스스로 15년간 감금되어 있기로 하고 부유한 은행가는 그 대가로 거금을 약속한다.

그들의 무지막지한 내기와 결말을 지켜보고 있으면 오늘날 논술시험의 단골 주제인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라든가 국가가 과연 개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구축할 수도 있다. 

그밖에도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에서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서 정보의 홍수에 대한 문제를,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서 인성과 능력의 우선순위 문제를, 셰익스피어 비극을 통해서 학교에서의 휴대폰 사용 문제를, 장 그르니에의 수필을 통해서 동물의 안락사 문제를 히포크라테스를 통해서 다이어트 문제를 논의한다. 

이 책의 양념이기도 하고 청소년들에게 고민해결이 아닌 책 읽는 즐거움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또 다른 이야기> 코너는 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샀지만 부모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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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1-02-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십대때 고전을 읽디 않고 역사/소설에 편중된 독서를 한 거에요 그때 읽은 건 고스란히 남으니 십대에서 대학교 시절까지 고전문학을 잘 읽으면 평생의 교양이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그런 계기를 주었으면 합니다

박균호 2021-02-21 08:48   좋아요 0 | URL
네 고전이 오래 기억이 남더라구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얄븐독자 2021-02-21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른?이 될때까지 책과 담쌓고 살아본? 사람 입장에서, 청소년 때의 고전 읽기할 때 청소년 판 등 원본을 첨삭한 버전을 읽고 그게 전부다 인줄 알고 어른이 된 후 완전판을 읽지 않게 되는 일이 있다는 문제가...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진 어른이 된 후 읽는것과 어렸을 적 읽는 것은 다를수밖에 없다보니. 물론 어떤 사람들은 어렸을 적 닥치는대로 읽었던게 문학적 소양이 되었다고도 하지만 적절한 독서지도 없이 막? 읽는건 좀... 물론 안읽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말입니다. 어렸을적 봤다는 착각과 환상에 사로잡혀 어른이 되서 다시 보려니 뭔가 시시하기만한것 같고 말입니다. 근데 참 바지런하십니다 책 펴내시는걸 보면!

박균호 2021-02-21 10:52   좋아요 0 | URL
네 어린 시절 읽었던 고전들은 축약본이나 청소년 용으로 개작된 것이 많아요. 차라리 어린 시절 그런축약본을 읽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터인데 말이죠. 저는 참 게으른 사람입니다. ㅠㅠㅠ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주제이고 분량이 많지 않으며 학교 생활에 연관 된 분야라 빨리 쓰여진 것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 출판사 일정이 겹쳐서 동시에 두 권의 책이 나와 버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stella.K 2021-02-22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내주신 책이네요.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왔네요.
사실 청소년 때 고전을 읽기란 쉽지 않죠.
그나마 소년소녀 내지는 청소년 명작 고전으로 나오는 것도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 어려운 걸 원본으로 읽으라고 그러면 안 읽을 수도 있거든요.
청소년판으로 읽고 나중에 관심이 생겨 원본으로 읽는 사람도 있죠.
마치 고전을 영화나 연극, 뮤지컬로 보고 책으로 읽는 것처럼.
고전 명작은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접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박균호 2021-02-22 19:24   좋아요 0 | URL
네 뭐. 그럴수도 있겠네요. 책은 독자들에 따라서 다양하게 읽힐 수 있으니까요.
 

돌아가신 <녹색 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이런 저런 만담을 자주하셨다. 그러니까 <녹색평론>과 인터넷이 동시에 태동하던 1990년대 초반, 강의 도중 바둑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러시면서 “거참, 요새 컴퓨터로 바둑을 두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라면서 한탄을 하셨다. 이어진 말씀이 이랬다. “바둑은 바둑알을 만지는 재미로 두는 건데 말이죠”



나에겐 연필이 바둑알 같은 존재다. 사실 집필을 하면서 키워드를 메모할 때를 제외하고는 손 글씨를 거의 쓰지 않는 편인데 연필은 무척 좋아한다.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있을 때, 회의를 할 때 무표정하게 자리를 지킬 때, 책을 읽을 때 등 연필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모양이 예쁘고 좋은 향이 나는 연필은 모두 내 손을 거쳐 갔다.
좋다는 연필은 다 써봤지만 한 번도 몽당연필을 만든 적이 없었다. 연필은 거의 만지작거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연필은 그저 만지고 선물하는 용도였다. 내가 한 가지 연필에 탐닉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으면 모름지기 내 사무실 동료라면 내 연필 한 두 자루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심지어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아 일 년이 지나도록 말 한 번 섞는 경우가 드문 동료조차 내 연필을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아껴 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새로운 연필을 들였다. 미국에서 목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개인 공방에서 십자가를 비롯해 목공예 제품을 만드는 분의 작품이다. 원목을 깎고 기름칠을 한 연필인데 수공예로 만들다 보니 모양도 굵기와 길이도 다 제각각이다.



연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윷에 가까울 정도로 큰 것도 있고 작은 내 손에 맞는 것도 있다. 규격화되지 않은 이 연필은 오로지 칼로 깎아서 써야 한다. 붓글씨를 쓰기 전에 먹을 가는 것과 같은 아날로그 감성이 하나 더 추가 되는 셈이다. 원목과 기름향이 묘하게 섞여서 아날로그 감성을 제대로 발휘한다. 이 연필과 함께 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아울러 모양이 하도 특이해서 예전처럼 내가 모르는 이 연필의 새 주인은 생겨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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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2-09 2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볼록렌즈로 찍은 것처럼 제 눈에는 두툼해 보이네요..^^ 연필 잡아본지 참 오래되었는데, 저렇게 예쁜 연필이라면 소장각입니다^^

박균호 2021-02-09 20:37   좋아요 2 | URL
실제로 두툼합니다 홓

바람돌이 2021-02-09 2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필이 아니라 예술작품 같은 느낌이네요. 저거 칼로 깎을 때 손 떨릴듯 합니다. ^^

박균호 2021-02-09 23:46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게요

2021-02-09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2-10 00:11   좋아요 2 | URL
아 저 갑자기 어린왕자의 여우가 된 기분이에요. 네가 올때까지 난 계속 설렐거야. ㅎㅎ 미리 감사인사 드리고 이 설렘을 계속 만끽할래요. ^^

2021-02-10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2-10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저런 연필은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 저도 연필 좋아해서 연필 꽂이가 몇개인데 ㅜㅜ 아 완전 탐 납니다 ㅎㅎㅎㅎㅎ

박균호 2021-02-10 00:09   좋아요 2 | URL
https://www.canacreation.com 미국에 계신분이라 카톡으로 연락하시고 입금하시면 됩니다.

초딩 2021-02-10 10: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 2021-02-10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작품이네요~ 규격화된 사회에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애정이 돋습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2021-02-10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1-02-10 2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제연필은 처음보는 것 같아요. 신기합니다.
만드는 사람의 애정과 수공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예요.
오늘부터 연휴가 시작되어 명절인사 드립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세요.^^

박균호 2021-02-10 23:58   좋아요 2 | URL
근데 너무 굵어서 실용성은 그닥 없습니다.ㅠㅠ 서니데이님도 항상 건강하시고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언제나 고맙습니다 !!!

하나의책장 2021-02-13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쓰는 것을 좋아해 펜말고도 연필쓰기를 좋아해서 제 책상 위에 연필만 잔뜩 담겨있는 연필통이 하나 있어요! 사각사각, 연필은 연필만의 매력이 있어 예쁜 연필은 모으게 되는 것 같아요ㅎ 행복한 명절 연휴 보내세요🌻

박균호 2021-02-13 17:09   좋아요 2 | URL
네 하나님도 즐거운 휴일 되시길

2021-02-17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7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7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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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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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8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8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남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2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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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세계문학을 주로 강의한 이현우 선생이 쓴 ‘한국 소설 자세히 읽기’다. 이현우 선생은 대학뿐만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을 오래 해온 터라 이 책 역시 ‘그들만의 리그에서 주고받는 암호문’이 아니고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한국 소설 더 재미나게 읽기 안내서’에 가깝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학자가 쓴 ‘한국 소설 이야기’는 여러모로 독자들에게는 축복이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가 한국문학계에 유권해석을 내릴 만한 위치를 점유하지는 않더라도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러시아 문학을 비롯한 세계문학을 주로 공부하고 강의한 독서광이 바라본 한국문학이야기는 색다른 즐거움, 독특한 시각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장석주 선생이 쓴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은 학맥에 구애를 받지 않은 자유로운 생각이 만들어낸 한국문학으로 떠나는 소풍으로 이끈 다면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수십 년간의 지독한 독서와 세계 문학 강의 경력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누구도 가보지 않은 풍경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여러모로 기존의 문학비평과 서평과는 구별되는 지점이 많은데 그 대부분이 일반 독자들에게 반갑고 새로운 경험이 될 만하다. 


최인훈의 <<광장>>은 1960년 4.19혁명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작품이다.


이 첫 문장은 <안나 카레니나>의 그것만큼이나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한다. 최인훈의 <광장>과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을 비교하면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투신했기 때문에 더 큰 소설로 나아가지 못한 반면 <관부 연락선>의 주인공 유태림은 교사이라서 제자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 위대한 장편 소설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구절은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의 독창성과 참신함을 상징한다. 


이현우 선생이 국문학계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표현의 자유로움이 주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현대에 대해서 말을 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애용되는 역사소설을 이야기 하면서 황석영의 <장길산>을 평가하는 대목도 그렇다. 19세기 정도면 몰라도 조선 시대 숙종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은 현대의 이슈인 ‘자본주의’를 담을 수 없는 태생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쉽다는 평가를 내린다. 어촌이었다가 근대화로 인해서 개발되는 <삼포>를 다루었다가 갑자기 17~8세기로 돌아가 버린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문학은 개연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개연성 보다는 확실한 선을 긋는다. 그러니 독자로서는 그동안 금기시했던 문학 작품에 대한 냉정한 비교와 평가를 아낌없이 구경하는 호사를 누린다. 


아울러 황석영이 음식이야기를 비롯한 너무 많은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쓸데없이 작가적 역량을 소진했고 이문열 또한 <삼국지>와 <초한지>같은 소설에 너무 많은 재능과 시간을 허비한 탓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는 지적은 이현우 선생이 국문학에 관한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가능한 비판이다. 가령 이런 비판. 


이문열의  문학은 작가 자신이 어떤 지위에 오르기까지 하나의 방편으로 활용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


독자들은 다만 이 자유로운 영혼이 주는 가감 없는 평가를 독서와 읽을 책을 선택하는데 참고하면 될 것이다. 마광수 교수가 우리에게 윤동주 시인의 세계로 인도한 것처럼 이현우 선생은 이병주라는 걸출한 문인을 재평가함으로서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실록 소설’이라는 이병주 소설의 정체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병주는 소설을 통해서 역사를 기록했던 작가였으며 그의 소설은 자신의 체험과 조사를 통해서 나왔다고 평가한다. 


뛰어난 작가이지만 표절 시비에 휘말린 안타까운 작가로 치부되는 경우가 흔한 이병주에 대한 재평가는 이현우 선생의 큰 공적이 아닐 수 없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을 읽고 나서 이병주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지 않을까.


소설가 김승옥이 <무진기행>을 완성하고 서울대 불문과 동기인 비평가 김현에게 먼저 보여주었는데 그는 작품이 별로라면서 발표하지 말라고 당부한 에피소드는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가 일반 독자들이 좋아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작은 사례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남성작가편과 여성작가편 즉 2권으로 구성된다. 이 서평은 남성 작가편만 읽고 썼다. 2권 모두를 한 서평에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남성 작가편만 으로도 충분히 밑줄 긋고 싶고 무릎을 탁 친 순간이 허다했다. <죄와 벌>과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어떻게 한 서평으로 논할 수 있다는 말인가.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의 남성작가편만 해도 최인훈, 김승옥, 황석영, 이청준, 이문열, 김훈 같은 화제성이 높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채웠는데 왜 이랬는지 모르겠다. 


최인훈 같은 작가는 이런 작품을 쓰기 어렵다. 엘리트 작가로서 책을 통해서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삼포 가는 길>에 술집 작부인 백화가 자기 배 위로 남자들 사단 병력이 지나갔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런 표현은 얼추 그에 견줄 만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으면 쓰기 힘든 대사다. 


이현우 선생이 보여준 뛰어난 가독성과 독자들을 휘어잡는 재미난 이야기라면 더 많은 작가를 다루고 10권 전집으로 내도 아껴가면서 읽게 될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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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2-09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러시아문학 좋아하는데 책 제목만으로도 관심 갑니다 :-)
그리고 박작가님 책 보다가 광장 샀어요 ㅎㅎㅎ 딱 펼쳤는데, 광장의 그 그림이 있어 몹시 반가웠습니다~

2021-02-09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9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1-02-09 13:44   좋아요 2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2-09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장석주 작가가 5권짜리를 냈는데 못해도 그 정도 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ㅎㅎ
근데 마광수 교수 때문에 윤동주를 알게 된 건가요?
그분이 윤동주로 무슨 학위를 받은 것 같긴한데
윤동주는 보통 학창시절부터 알게 되는 거 아닌가요?
물론 요즘엔 출판계가 거의 경쟁적으로 내긴 합니다만
괜찮으시면 보충설명 부탁합니다.

박균호 2021-02-09 16:38   좋아요 2 | URL
제가 듣기로는 우리가 이토록 윤동주를 잘 알고 높게 평가하게 된 것은 마광수 교수의 연구 결과 덕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학창 시절 부터 윤동주를 모두 알게 된 것은 처음 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고 마광수 교수가 윤동주를 열심히 연구하고 그 성과를 널리 알린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ㅎㅎ 마광수 교수의 최대 업적이라고 하더군요.
 
케이팝 인문학 - 한국대중음악, 철학으로 듣는다
박성건.이호건 지음 / 미디어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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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biography는 자서전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13개의 철자로 구성된다. 영어 초심자에게는 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auto가 ‘스스로’, bio가 ‘생명, 생애’ , graphy가 ‘기록하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암기하기가 쉽다. 저 세 어근을 합치면 ‘스스로 생애를 기록하는’ 즉 ‘자서전’이라는 의미가 되니까. 단어는 암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해하는 것이다.


박성진과 이호건 선생이 쓴 <케이팝 인문학>은 노래를 단순히 노래로만 즐기지 말고 그 내면과 배경을 파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인문학 공부가 된다는 취지로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것만큼 노래가 보이고, 노래를 통해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인 지식과 성찰을 거둘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책이다. 노래를 단순히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그 밑바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취지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라틴어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라는 뜻이다. 그냥 흥겹게 춤을 추는 party로만 아는 사람과 저 ‘아모르 파티’가 사실은 철학자 니체가 주장한 운명관의 요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는 의미심장한 차이가 있다. 이 노래의 작곡가 윤일상이 실은 학창 시절 독서광이었으며 니체에 심취했기 때문에 나온 노래다. 결국 아모르 파티라는 저 명곡은 음악과 인문학 즉 철학이 융합된 결과의 부산물이다. 


그러니까 <케이팝 인문학>은 음악과 철학은 별개가 아니며 이 둘이 합쳐지고 공유될 때 우리의 사고가 유연해지고 더 위대한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증명한다. 트롯 가수 정동원이 세상을 다 산 것처럼 오래된 트롯을 부를 때 ‘어린 아이가 저게 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성건과 이호건 선생은 정동원이 트롯을 부를 때 우리에게 선사하는 ‘동심’의 중요성과 그 영향을 자세히 알려준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가 부르는 트롯이 어떻게, 왜 의미가 있으며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말한다. 이 얼마나 놀랍고 창의적인 발상이며 깨달음이란 말인가.


연예인에 대한 안티 팬을 말하고 실태를 파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셀 푸코의 비정상. 정상이론을 동원해 분석하고 마침내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통해서 안티 팬의 심리 분석을 하는 확장성은 놀라울 따름이다. <케이팝 인문학>는 가요에 대한 미시역사로 읽힐 수도 있고 인문. 철학, 심리에 대한 입문서로 읽힐 수도 있다. 케이팝과 인문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긴밀한 인과관계에 바탕으로 ‘음악 철학’이라는 인문학 장르를 선사한다.


가장 가까운 주제로 가장 멀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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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7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7 04: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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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08 22:58   좋아요 1 | URL
오늘 책을 받았습니다. 표지가 예뻐요. ㅎㅎ 감사히 잘 일겠습니다

2021-02-09 0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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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헌책과 희귀본 수집 이야기를 다룬 <오래된 새 책>을 냈다고 해서 그쪽 전문가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가끔 헌책이나 희귀본에 대한 의뢰가 들어온다. 


오래된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버려야 할 책과 소장해야 할 책을 구분하는 일이라든가(결국 이 책을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기는 한다) 읽고 싶은데 절판이 돼서 구하지 못하는 책을 구해달라는 부탁(어떻게 알았는지 생면부지의 사람이 내 친구도 모르는 직장 사무실로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다)도 자주 받고, 고객이 새 책 가격의 두 세배를 주고서라도 구해달라는 책을 나에게 알아봐 달라는 책방 주인의 요청도 있다.


나는 그냥 시골 학교 선생인데 이런 부탁을 받으면 어이가 없기는 한데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천성과 그 자체의 즐거움 때문에 열심히 알아보는 편이다. 또 내가 모르는 희귀본을 알게 되고 구한 김에 내 몫도 별도로 사는 경우가 많다. 아주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언젠가 <anal.realism> 즉 우리말로는 후장(변을 보는 그 후장 맞다) 사실 주의라는 발칙한 제목의 동인지를 구해달라는 의뢰인이 있었다. 제목이 제목인 만큼 내용도 스펙터클 하겠거니 기대를 하면서 열심히 수소문을 했지만 결국 내 힘으로는 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만나게 되었다. 별 수 없이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으니 그 내용이라도 읽겠다는 것이다. 




내가 검색한 바로는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에서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딱 한 곳인데 다름 아닌 딸아이가 다니는 서강대학고 로욜라 도서관이다. 음,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가톨릭 재단 학교에서 이런 발칙한 책을? 요상한 일이긴 하다. 자유로운 학풍의 일환인가?


어쨌든 딸아이에게 이 책을 대출을 하게 해서 복사를 하게 할 것인지 그냥 읽기만 할 것인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소 걱정스러운 것은 당시 신입생이었던 딸아이는 자기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적도, 빌리는 방법도 모를 것(두 달 뒤에 3학년이 되는 지금도 마찬 가지일 확률이 높다)이 분명했다. 내 딸아이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다. 그 아이에게 ‘후장 사실주의’를 아빠 대신 빌려서 복사를 한다는 부탁을 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손이 닿지 않는 가지에 달린 홍시를 바라보는 것처럼 침을 흘리고 있다가 얼마 뒤에 어처구니없게도 쉽게 그 책을 손에 넣었다. 어쨌든 그 일 이후로 서강대학교 도서관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는데 더 재미있게도 이 도서관이 내가 낸 책을 꼼꼼히 잽싸게 수집을 하고 있었다. 내 책이 나오자마자 예약 구매를 한 것이나 다름없이 빠르게 입고를 하고 있었다. 내가 유명작가도 아니고 내 책이 베스트셀러도 아닌데 말이다. 




서강대학교 도서관의 이 지독한 마이너틱한 취향을 보고 적잖이 신기해하지 않는데 오늘 그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되었다. 내 신간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구입중’이란다. 조금 과장하면 내 페이스북 친구나 알라디너 말고는 이 책이 나온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데 서강대학교 도서관 직원은 대체 누구기에 어떻게 알고 이 책을 구입하려는 것일까. 


페이스북도 글 쓰는 것도 접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 무슨 신기한 일인지 모르겠다. 혹시 내 알라디너 친구 중에서 서강대학교 도서관 직원이 있다면 알려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커피 한 잔 대접하겠다. 아니다. 만찬 정도는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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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30 14: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하...
책이 좋아서라고는 왜 생각을 안하실까요
책 좋아하는 사람은 저처럼 매일 나오는 신간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어쩌면 서강대 도서관 사서분도 그럴수 있지 않을까요?

2021-01-30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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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1 0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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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15: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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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1-30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어제 딱 후장 사실 주의 까지 읽었었는데 ㅎㅎㅎㅎㅎㅎ
그리고 서강 하이스쿨이 책을 보는 안 목이 있네요 :-)

박균호 2021-01-30 18:03   좋아요 3 | URL
아...그러셨군요 ㅎㅎㅎ 근데 이 후장사실주의 무슨 말인지 당췌 이해를 못하겠어요...완전 포스트모더니즘...ㅠ
서강 하이스쿨 도서관이 좀 훌륭한 것 같아요.

붕붕툐툐 2021-01-30 1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누굴까? 진짜 알라디너이실까? 웬만한 추리소설 범인보다 더 궁금하네요~👍

박균호 2021-01-30 19:28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ㅎㅎ

닷슈 2021-01-31 1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학생이나 교수가 신청했을수도있죠 서강대도서관은 세건물이붙은 요상한구조입니다

박균호 2021-01-31 12:51   좋아요 1 | URL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2021-02-02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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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1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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