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나라 소설은 조지수 선생이 쓴 <나스타샤>다. 이토록 애절한 러브 스토리가 또 있을까. 철학적인 통찰이 가득한 아포리즘과 서사가 매력적인 소설이다. 그저 구슬치기로만 생각했던 컬링이라는 운동이 사실은 바둑 만큼이나 전략과 전술이 총 동원되는 두뇌 운동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캐나다의 이국적인 풍습 또한 재미나게 서술되어 있다.
2008년에 나온 이 소설이 절판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다급하게 10부 정도를 매집(?)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다행이 초판이 절판이 되었지만 2011년에 개정판이 나올 줄이야. 개정판의 표지는 한 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뜬금없이 순정만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같은 소녀가 표지에 등장했는데 소설 속 사연 많은 나스타샤를 대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쨌든 구매를 했는데 2020년에 개정판이 또 나왔다. 물론 구매를 했다.
초판과 개정판은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 유심히 읽었는데 초판을 읽은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오늘 서재에서 놀다가 우연히 초판과 개정판을 발견했다. 문제는 2011년에 나온 판본이 보이지 않는다. <나스타샤> 트리오를 나란히 두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서재를 수색하기 시작했는데 도통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5단계로 나누어지다는데 <나스타샤>를 찾으면서 그 단계를 고스란히 겪었다. 첫번째는 부정이다. 책이 발이 달리지 않는 이상 도망을 칠 수는 없다. 어딘가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내 서재에는 가족이외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누가 봐도 유치한 표지와 제목은 뭍 사람들의 소장 욕을 자극해서 책 도둑질을 하게끔 할리는 없다.
둘째는 분노였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나스타샤>를 나란히 챙겨 두지 않았단 말인가. 거대한 도서관도 아니고 겨우 방구석에 불과한 서재에서 책한 권을 찾지 못한단 말인가. 나의 부주의와 방구석에서조차 책 한 권을 찾아내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가지고 무슨 서재란 말인가. 그냥 책 창고 일뿐이다.
셋째는 타협이다. 책을 사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마음을 다잡고 방구석을 뒤지다 보면 찾아내긴 하겠다는 자기 위로를 하게 되었다. 또 2011년 판본을 찾게 되면 다시는 헤어지지 않도록 책장에 나란히 꼽아 두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넷째는 우울이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슬프고 또 슬펐다. 내 심정을 어떻게 알고 아내가 티슈를 건넨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는데 내 눈물을 닦으라는 것이 아니고 책장을 정리하는 김에 먼지를 닦으라고 한다. 찾고 싶은 책은 찾지 못하고 먼지만 뒤집어 쓰고 기침만 연신 하였다.
다섯째는 수용이다. 2011년 판본은 표지가 못생겼단 이유로 내가 싫어하자 앙심을 품고 가출을 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재를 뒤졌는데 이 책만 유독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나 말고도 서재에서 예전에 사둔 기억이 있는 책을 찾지 못하고 새로 주문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도 나의 슬픔을 경감시켜주었다. 나의 부주의가 아니고 장서가의 운명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거친 내가 서재 밖으로 나갔더니 어느새 ‘립 반 윙클’이 되어있었다.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서 산골에 가서 잠시 놀다 왔더니 20년의 세월이 지나버렸다는 그 소설 속의 주인공 말이다.


분명 방금 전에 아내가 맛있는 밤을 삶을까 말까 고민을 하는 것 같았는데 나가보니 삶아서 먹은 것도 모자라 이미 소화를 다 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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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10-18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많은-_-) 책 중 한 권이네요. 저는 못 찾을까봐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뒀어요. 호호^^

박균호 2020-10-18 10:52   좋아요 0 | URL
네네 그러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