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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안병수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충격이다! 

과자를 워낙 맛있게 잘 먹으면서도 늘 무언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기에 이 책에 살짝 관심이 가긴했다. 

그러나 책제목에 ‘아이’란 단어도 들어가고 표지그림엔 웬 막대사탕이 그려져 있길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솔직히 무시해왔었다. 왠지 깊이도 없고 별 특별한 내용이 있겠냐란 예상.

게다가 엄청 많이 팔리기도 했다. 소문난 집에 먹을거리 없다고 왠지 좀 가볍고 유치한 제목과 표지에 더해 그 유명세는 굳이 이 책에 손이 가는 것을 막았다. 

솔직히 이 책을 구매하게된 것도 알라딘 5만원 이상 구매시 2천원 적립금을 위한 금액 딱 맞추기, 인기도서 할인쿠폰 등의 마케팅전략에 말려들면서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약간 떨떠름한 느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결국 이 책을 읽고난 후의 평가는, 충격이다! 충격! 즐거운 충격!

16년간 국내 유명 과자회사의 신제품개발부와 구매부에서 근무했던 저자. 과자를 사랑했고 과자를 아꼈으며 이러한 과자로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그. 그런데 과자업계에 종사하는 선배, 거래처의 관계자들이 건강악화로 고통받고 세상을 떠나가는 것을 보고, 저자 스스로 건강이 안좋아져간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는 어느 때인가부터 심각한 의문과 회의에 빠진다. 막연한 의문과 회의를 돌파하기위해 그는 각종 도서를 구매하여 공부에 임한다. 공부의 결과, 그는 바로 16년간 몸담았던 과자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그 순간부터 각종 가공식품과도 결별이다. 그 후 그는 이 책을 썼고 그를 깨우쳤던 외서들을 번역하여 내놓았으며 지금은 슬로우푸드를 통한 삶의 진정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후델식품건강연구소를 운영중이다. 아, 물론 저자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한다.

저자는 오늘날 끊임없이 급증하고 있는 성인병 -암, 심혈관 질환, 당뇨병-을 ‘생활습관병’ 혹은 ‘문병병’으로 바꿔 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오늘날 사망원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암, 심혈관 질환, 당뇨병은 우리의 생활습관과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먹는 것이 곧 약’,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무엇을 먹는가가 우리의 건강을 나아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게 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밥상과 간식거리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가공식품을 우리의 건강에 대한 파괴, 공포로 보고 있다. 책에서는 앞에서 소개했듯 저자가 가공식품에 대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부하며 그 것을 뛰어넘기위해 힘쓴 실천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펼쳐지며 라면, 초코파이, 바나나우유, 청량음료, 피로회복제, 소시지, 아이스크림 등 우리들이 너무도 즐겨먹는 각 가공식품들의 유해성이 세세하게 분석되고 있다. 우리와 너무도 친숙했던 이 식품들에 대한 저자의 친숙하지 않은 분석은 분명 즐거운 충격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저자가 판단하는 심각한 가공식품 문제의 큰 세 줄기인 (1)정제당 (2)나쁜 지방 (3)식품첨가물에 대해서 심도있는 해설이 이어진다. 여기에서는 신체의 혈당조절시스템, 지방산의 결합구조, 세포의 활동 등 정신을 바짝 차리고 머리를 굴려야만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처음 이 책에 대해 가졌던 ‘가벼울 것이다’란 편견은 온데간데없이 난 잠시 머리를 싸매고 있어야만 했다. 그만큼 이 책을 통한 즐거운 충격은 깊이까지 있다!

여기서 잠시 시끄러운 소고기 정국을 떠올려보자. 애초에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유발 위험성에 대해 국민에게 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양식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유발 위험성은 온 국민이 알게 되었다. 이런 소고기 사기로 국민의 건강을 팔아넘기려는 오만과 불손으로 촛불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인데 끊임없이 광우병 괴담을 외치며 적반하장의 끝없음을 보이는 정부는 과연 언제쯤 미친 잠에서 깨어날지 참 답답하지만 어쨌든 소고기 정국을 통해 우리는 앎의 힘, 앎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광우병 유발 위험성에 대한 앎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저 값싸고 맛좋다며 연신 미국산 소고기를 구워댔을 것이다. 하지만 앎이 있기에, 지식을 갖췄기에 우리는 아무리 싸고 맛 좋더라도 미국산 소고기를 멀리하게 된다. 혹여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더라도 무언가 께름칙한 느낌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가공식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알면 보이고 지식을 갖추면 눈에 들어온다. 앎과 지식이 없을 때에야 그저 야참으로 보글보글 라면을 끓여먹고 무더위에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고 친구를 만나 햄버거에 콜라를 그저 즐겁고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일단 앎과 지식이 생긴 후라면 이미 세상은 달라져있다. 나 개인의 경험으로도 이 책을 통한 즐거운 충격!, 그로인한 앎과 지식의 획득, 깨달음은 식품을 보는 나의 눈을 총체적으로 바꾸었다. 물론 안다고 실천까지 당연히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내가 습관을 만들지만 후에는 습관이 나를 만들고, 처음엔 습관이 바뀌지만 후에는 나의 인생이 바뀌게 된다. 또 다른 세상, 더 나은 삶, 그를 위한 우리의 실천을 위해 일단 알자! 우리 모두 이 책을 펴자!

오늘날 주부들은 두 가지 점에서 경제성장에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무분별하게 가공식품을 소비함으로써 식품산업을 번창시킨다는 점이요, 또 하나는 가족을 질병에 걸리게 함으로써 의료산업을 발전시킨다는 점입니다.
- 어느 의학 평론가의 발언

내가 느꼈던 이 즐거운 충격!을 당신도 받길 바란다. 나아가 나의 삶도 당신의 삶도 한층 나아질 수 있길.  

 

덧글> 안병수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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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몰입 수업] 서평단 알림
어린이를 위한 몰입 수업
김진섭 지음, 김상민 그림 / 파랑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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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도서] 책 표지에는 또렷하게 ‘자기계발서’라고 쓰여있지만 이 책은 자기계발이란 주제를 담은 ‘소설’임을 밝히며, 먼저 간단히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특별한 열정, 꿈, 취미도 없이 다소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인 주인공 대치. 대치의 친한 친구인 축구사랑 지훈이. 대치의 학급 짝궁이며 만화에 푹 젖어있는 눈망울이 큰 나라. 그리고 이 세친구들을 가르치는, 여지껏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고 과학올림피아드에서 입상도 하여 수재라 불리며 결국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갓 입학한 과외선생님 한이 형. 이야기는 한이 형과 대치, 지훈이, 나라가 만들어가는 과외 수업을 중심으로 쭉 뻗어나갑니다.

이야기 속의 우리 이 세 아이들은 오늘날의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획일적인 점수따내기, 뿌리없는 실력 쌓아가기 공부에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 익숙함이란 결국 일상적인 시달림. 학교, 집, 학원이란 아이들의 비좁은 행동반경 내에서 내내 그침없이 선생님, 엄마·아빠, 주변의 경쟁자 친구들로부터 받아야만 하는 일상적 눈치와 압박이겠죠. ‘대치’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치열하게 비뚤어진 한국 사교육의 한 상징인 ‘강남 대치동’에서 따온 점은 이렇듯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의 반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세상에, 그런 그 아이들의 일상에 과외선생님 한이 형은 신선한 당혹함, 시원한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왜냐고요? 한이 형은 아이들에게 익히 가해지고 있는 기계적 사고의 효율적 주입을 거부합니다. 황당하게도 한이 형은 교과서대신 만화책과 소설책으로, ‘내가 죽을 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등의 아리송한 숙제로, 함께 하는 운동과 다큐멘터리 시청으로 과외 수업을 이끌어갑니다. 한이 형은 몰입이란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창의적으로 풀어가는 법을 깨우쳐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죠. “인간은 몰입의 과정에서 잠자고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명심해라. 몰입은 공부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공부도 중요하지만 몰입은 무엇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니까 말이야.”

이러한 한이 형의 수업 방식을 지켜보며 불안해하던 대치 엄마처럼 독자의 마음도 한 켠 불안해집니다. 뜻은 충분히 좋아보이지만 글쎄, 글쎄...... 하지만 다행이도 세 아이들은 한이 형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꿈을 명확히 꾸는 법을 깨닫고 그 꿈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당찬 걸음을 내딛는 일상의 힘을 체득해갑니다. 일종의 체질변환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는데요, 주체를 잃고 기계적 사고를 주입 받는 새하얀 아이에서 주체적으로 창조적 사고를 만들어가는 붉은 빛 감도는 아이로. 앞의 아이와 뒤의 아이, 누가 더 행복할까요? 누가 더 참 삶을 꾸려갈까요? 답은 너무도 명확하게 나와있습니다. 그렇죠? 물론 그 답을 실천으로 옮기기는 너무도 어렵지만요, 너무도. 이 소설은 우리의 일상에서 쉬이 망각되는 그 명확한 답을 다시금 떠올리고 곱씹어 보게 해줍니다. 그러한 의미로, 이 책은 교육에 관심이 지대한 이 땅의 엄마·아빠들과 아이들이 함께 읽어보기 괜찮은 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다만 아쉬운 점 두 가지는 첫째, 이야기의 중간에 한이 형이 아이들과 운동을 하며 ‘체력은 국력’이란 말을 쉽게 내뱉은 점. 텍스트면에서나 콘텍스트면에서나 ‘체력은 국력’이란 말은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고 수단화할 수 있는 말이기에 그 사용에 있어 조심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생각없이 참 자주 쓰는 말이기에 마냥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을 위한 소설인만큼 더욱 더 조심을. 둘째, 한이 형이 늘 전교 1등이었고 서울대생임을 굳이 강조해야 했을까요. 우리사회 교육문제의 뿌리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너무도 피라미드적인 학벌사회란 걸 생각해볼 때 ‘대치동 사회’를 걱정하고 살짝 비꼬면서도 아이들 교육의 역할모델로 제시된 한이 형을 굳이 ‘대치동 사회’의 정점에 올리고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이들이 왜 지금과 같은 공부같지도 않은 공부의 시달림으로 내몰리고 있습니까? SKY대학에 입학하거나 의대 등에 합격해 안정된 개인공간을 반드시 확보시키고야 말겠다는 사회적 광풍때문이 아닌가요. 책에서 말한 몰입수업이란, 그 자체의 의미는 전적으로 긍정함에도, 결국 작가가 진단한 오늘날 우리 교육의 문제점과 대안에 양다리를 걸치게 된 다소 어정쩡한, 모순된 모습은 아닐는지요. “그럼 네 아이는 서울대 안보낼거냐?”. 역시 쉽지 않네요.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걸까요? 그래도 우리 교육의 문제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작가의 의도가 십분 더 뻗어나가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습니다. 좀 더 욕심을 내셔도 좋았을 것을...... 한이 형이 일반 회사원이나 노동자 아니면 꿈꾸는 예술가나 실업자 등으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요. 아, 이건 제가 너무 욕심을 낸 것일까요?

어쨌든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앞서도 말했 듯 아이들 교육에 관심있는 엄마·아빠들과 아이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적극적인 강추까지는 아닐지라도. 다소 애매한 표현인가요?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개인적으로는 최근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도서 ‘리버보이’보다 30배 더 이 책을 추천합니다! ‘리버보이’에선 이미 아빠는 반말, 엄마는 존댓말을 쓰는 불평등한 모습을 그저 노출시키고 있지만 이 책에선 엄마, 아빠가 상호 존칭을 쓰고 있답니다! 그렇다고 이 한 측면이 30배의 차라는 건 결코 아니고요, 나머지 더 나은 장점들은 분명 스스로 찾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부디 책의 힘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의 욕심에 덜 시달리고 스스로 지혜롭고 마음 넓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길 희망하고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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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3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몰입 서평단으로 이 책 읽고 리뷰 올렸는데... 나름 인연이 있군요.^^

Arm 2008-07-01 23:25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한두번 아니 세네번의 인연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래된 정원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누군가는 80년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군사독재권력과 민주운동 간의 피어린 대결이 숨 막히게 진행된 저 80년대.” 

  그래, 고개가 끄덕여지다가 순간, 세차게 의문이 돋는다. 그런데 그 시절을 과연 ‘피어린 대결’, ‘숨 막힌 진행’으로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저들의 피흘림, 숨막힘과 이들의 피흘림, 숨막힘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무언가 부당하지 않은가. 부당하다. 부당하다. 시뻘건 피의 분한 비린내를 아프게 맡아야만 했고 잔인한 어둠 속에서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숨 죽여만 했던 이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언제나, 늘, 누구였던가. 

  “지난 새천년 봄에 출간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작과 비평)은 1980년대를 ‘관념, 시대, 역사’의 기존 틀에서 벗어나 ‘현실, 개인, 일상’이라는 새로운 틀로 바라본 걸작”이란 호평처럼 <오래된 정원>은 어두운 시대를 끊임없이 몸으로 부대끼며 견뎌내고 이겨내야만 했던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현실, 개인, 일상을 치열하게 그리고 있으며 또한 잊어서는 안될 한 시대의 진실을 끊임없이 진솔한 글로 버무려온 황석영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이기에 한층 각별하다. 80년대 군부독재에 반대하다가 젊음을 온통 감옥에서 보낸 민주활동가 오현우. 17년이란 긴 시간이 지난 눈 내리는 어느 겨울, 형을 마친 그는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교도소를 나선다. 세월을 따라 변해 버린 가족과 사회의 풍경, 모든 것이 그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허나 단 한 사람, 감옥에 있던 17년 동안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소식조차 접하지 못했던 그럼에도 늘 함께했던 한 얼굴만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바로 한윤희. 며칠 후, 현우의 누나는 그에게 한윤희의 편지를 건넨다. 

  혹시 누님...... 한선생 주소 아세요?
  내가 말했지? 편지 갖구 있다구. 너, 괜찮겠지......
  누님은 내게 가까이 다가앉았다.
  아주 오래 있다가 얘기해줄려구 그랬는데...... 그 사람, 죽었어.
  나는 숨을 두 번에 걸쳐 나누어서 크게 들이켰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17년 동안 그려왔던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1980년, 군부로부터 도피생활을 하던 오현우는 그를 숨겨줄 사람으로 한윤희를 소개받는다. 이제 막 봄의 문턱, 포근하고 흙냄새 풍기는 바람이 잔잔히 불어오는 갈뫼, 봄바람처럼 싱그러운 윤희. 현우는 윤희와의 갈뫼 생활 속에서 마치 딴 세상에라도 온 듯한 따스한 평화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나며, 시대적 사명감과 평온한 현실안주 사이에서 갈등하던 현우는 결국 갈뫼를 떠나, 아니 윤희를 떠나 새로운 활동을 펼칠 결심을 한다. 윤희는 그를 잡고 싶지만 잡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지고 17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다. 한 명은 감옥이란 ‘그 안’에서 한 명은 ‘이쪽 밖’에서. 다시 현재. 윤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갈뫼를 찾아간 현우. 그는 윤희가 남겨둔 일기, 그림과 함께 17년 전의 과거로 빠져든다. 과연, 그는 그곳에서 그토록 꿈꾸었던 그들의 오래된 정원을 찾을 수 있을까?

  80년대에 태어난 나는 그 어두운 시대를 어떻게 지나왔던가. 물론, 아무런 어두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 시대의 어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앞서 나는 어떤 어둠도 인식조차 못했었다. 난 그저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나는 80년대를 동심에 한껏 즐거웠음으로만 기억할 뿐 80년대의 사회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았다. 공교육의 기간을 거치면서도 누구 하나, 어느 교과서 하나 80년대의 사회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에 그 시대와 나와의 단절은 공고하게 지속됐다. 아니, 남 탓만해서는 어찌하랴. 한 때는 시험 성적이, 한 때는 군대가, 한 때는 취직만이 인생의 거진 유일한 초점이었기에 80년대의 사회는 언제나 관심 밖이었다, 지금 역시. 

  너무도 어렸기에 인식조차 못했던 80년대의 어두움. 나이 스물이 훌쩍 넘고 어른이란 표딱지를 달고 있는 지금, 여전히 80년대의 어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지금 이 2000년대의 어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너무 어리기’때문일까?

  철학자 김상봉은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80년 광주에 빚진 사람이다. 우리의 삶은 그때 거기서 죽어간 사람들이 흘린 피 값으로 대신 사준 것이다. 하기야 우리가 빚진 것이 어디 80년 광주뿐이겠는가? 멀리는 전봉준에게서부터 가까이는 전태일까지 자유를 향한 고통스런 장정에 자기를 바쳤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타인의 죽음에 빚진 것이며, 우리의 풍요는 타인의 가난에 힘입은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랍시고 잔디밭에서 음악실에서 또는 다방에서 빈둥거리던 바로 그 시간에 똥물세례를 받으며 구사대의 발길에 차이던 동일방직 여공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과연 무엇이었겠으며 또 무엇이 되었겠는가? 그들이 노동하며 흘린 땀으로 내 몸은 자랐고, 그들이 입술을 깨물며 흘렸던 눈물로 내 영혼이 성숙했다. 그들의 슬픔과 눈물은 내 존재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서 생각해보라. 우리는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통의 빚을 지고 있는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티없는 행복을 짓밟고 서 있는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우리와 피부색이 같거나 다른 사람들의 비참한 빈곤 위에 터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내 존재를 지탱하는 것은 타인의 눈물이다. 

  나는 김상봉의 이 말이 왜 우리가 우리와 상관도 없던 과거와 관계를 맺어야하며, 왜 황석영이 굳이 한 시대의 진실을 600여 페이지 분량의 글로 애써 써내려갔는지에 대한 현답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어렸을 때는 ‘너무 어려도’ 되었지만 아직까지 ‘너무 어리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 당신 자신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체험과 기억이 직접적으로 없는 경우일지라도 우리는 문학을 통해, 영화를 통해, 음악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상상력의 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하늘을 날아보았고 맨발로 바다를 건너보았으며 대통령이 되기도 하였으며 비극적인 사랑에도 빠져봤다. 경험은 간접적이되 감각은 비교적 생생하다. 상상력의 힘을 10억 모으기, 메이커 아파트 구매, 귀족적 문화의 향유, 로또 1등 당첨 등에 모두 쏟아버리지 말고 <오래된 정원>에 한번 ‘투자’해보는 건 어떻겠는가, 80년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80년대생들이여! 80년대 당시엔 지금의 나, 당신,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인 20대였을 오현우와 한윤희. 우리들의 부모님, 삼촌, 이모와 같은 세대의 또래로서 동시대를 살았을 오현우와 한윤희. 어째서 서로 사랑했던 현우와 윤희는 서로의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그토록 긴 시간을 이별해야만 했는가? 내가 연인과 떨어져 소식도 모른 채 17년을 감옥에 가있을 수 있을까? 현우와 윤희를 이별하고 고뇌하게 만든 80년대에 우리 부모님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그 80년대엔 우리 부모님의 연애 또한 힘겨웠을까? 나와 나의 애인이 80년대에 연애를 했다면 어떤 장면들이 가능할까? 부디, 상상력의 힘을 뻗쳐보자. 부디, 오현우와 한윤희의 슬픔과 고통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윤희의 기록은 거기서 끝났다. 내가 누님에게서 전달받은 마지막 편지는 구십육년 여름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그네의 마지막 글귀를 기억한다.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눈물이 떨어진다. 가슴 속 파장이 퍼지고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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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3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었다는 건,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을거라 믿는 근거가 되죠.^^
가슴 아픈 우리 역사~~~ 80년 광주에 빚진, 산자의 죄의식도 갖고 있어요.
영화는 광주에서조차 한주만에 내려서 못 봤어요.ㅜㅜ

Arm 2008-07-01 23:30   좋아요 0 | URL
역시나 황석영 선생님의 냄새가 배어있는 책이 영화보다 많이 더 좋았어요!
책이 영화화되면 그 둘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아요-
순오기님이 바라시면 영화파일 보내드릴게요! ^^
아, 그런데 광주에 사시는군요- 아, 광주...

순오기 2008-07-02 00:0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광주댁'으로도 통한다죠.
결혼 후 왔으니까 올해 20년째...자칭 '광주홍보대사'로 살아요.^^
 
즐거운 불편 -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날의 고도자본주의·소비사회에 불만을 품고 고민하는 당신에게 띄웁니다.

  똑똑, 혹시나 당신 마음의 문을 두드려봅니다. 가끔은 당신의 어깨가 그저 축 처져만 보이는군요. 무엇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나요? 이따금 당신의 얼굴은 왜 이리 어두워 보이는지요. ‘세상 고민혼자 짊어졌냐!’란 말을 들어보지 않았었나요, 그것도 여러 번이나? 그렇다면 혹시, 제 멋대로 추측해봐도 될까요? 당신은 현실 불만자, 당신은 이상을 좇는 자. 다르게 말해보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이!

  개인의 온전한 생존조차도 그닥 여의치 않은 이 정글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고 조금이라도 더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정답’인 이 고도 경쟁주의 사회에서 나 자신만이 아닌 세상에 대한 고민까지도 품은 당신. 아, 반갑습니다. 이런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이런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당신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역시나 괜히 어깨가 처지고 얼굴에 그늘이 진 게 아니었군요. 세상에 대한 고민이라, 세상을 바꾼다... 아, 쉽지 않죠? 심장을 쿵쾅이게 하는 마음 속 불만과 추상적인 이상향을 가슴 속에 품고있음은 확실한데 구체적으로 나아갈 길의 방향과 거리의 선정, 그에 대한 확신은 왜 이리도 어려운지요. 또한 우리는 그간 얼마나 수많은 과오들을 보아왔던가요. 성찰없는 확신으로 자신의 이상을 ‘정답’ 나아가 ‘선’으로 착각하여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인배들을, 결국엔 자신에 취해 거대담론형 구호들만 내 목 찢어져라 네 귀 찢어져라 외쳐대는 소인배들을. 긴장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이상이 소중한 만큼 우리도 그러한 과오에 빠져들기란 너무나 쉽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세상에 대한 고민이라, 세상을 바꾼다...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면 좋을까요. 방법도 모르겠고, 역량도 부족합니다.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괜스레 초조해지고 가슴이 막막합니다. 차라리 세상에 대한 이런 불만, 이런 희망을 품지조차 않았던들 이렇게 한숨짓고 있지 않아도 됐을텐데요.

  그런데요 여기 ‘즐거운 불편’이란 책이 한권 있습니다, 희망을 가려버리는 불만과 욕심과 초조의 그늘 속에 움츠리고 있던 저의 어깨를 토닥여준 책이. 이 책의 저자는 후쿠오카 켄세이 씨입니다. 그는 대량소비사회의 문제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소비사회의 병폐를 넘어서기 위해 한 인간으로서의 자발적인 실천을 다부지게 계획하고, 해나갑니다. 책 ‘즐거운 불편’은 바로 이러한 켄세이 씨의 소박하지만 치열한 실천기록입니다.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그는 오늘날의 대량소비사회에 불만을 품고 고민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거의 같지 않을까요?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있고 바꾸고 싶어 고민하고.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그는 우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란 고민에만 눌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담담히, 실제로 세상을 바꿀 실천에 임합니다. 설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일지라도, 국자로 강물 퍼내기 일지라도 그 ‘절망적’ 현실이 그에겐 그닥 중요한 게 아닌가 봅니다. 그는 그저 담담히 바가지에 물을 채우고 채워나갑니다. 그것도 고행적 수행의 자세라기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도 홀로 기쁜 마음이 아닌 더불어 기쁜 마음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실천계획들을 적어내려 갑니다.

- 자전거 통근  - 자동판매기 물건을 사지 않는다  - 제철채소나 과일이 아닌 것은 먹지 않는다  - 커피, 홍차를 마시지 않는다  - 엘리베이터, 이불건조기, 다리미, 무선전화기, 티슈, 샴푸, 린스, 식기용 세제를 쓰지 않는다  - 도시락 갖고 다니기  - 병, 우유팩, 일회용 접시는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 목욕하고 남은 물은 대야로 세탁기에 퍼 담는다  - 음식찌꺼기는 퇴비로 활용한다  - 고장이 나도 새로 사지 않고 수리해서 쓴다  - 쌀을 무농약으로 자급한다

  어떤가요? 죽 훑어보니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저는 실천계획들이 참 소박하다는 느낌에 웃음도 나오던걸요. 어떻게 보면 좀 시시하기까지도 하고요. 그러나 켄세이 씨의 실천기록을 읽어보면 그런 소소한 실천들 속에 깊은 사유와 성찰, 진중한 치열함과 진솔함이 담겨있음을 깨닫고 놀라게 됩니다. 그는 이야기합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그리고 그 산물인 대량폐기의 더미 위에 세워진 현대문명이, 이대로 가다가는 환경파괴나 인구폭발, 식량부족, 자원과 에너지 고갈 등의 위기에 휘둘리고, 마침내는 파탄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감하고 있는 터이다.”, “정신적 수양을 쌓은 종교인뿐만 아니라,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위협이나 의무감 때문이 아닌 기쁜 마음으로 그러한 생활을 선택하고,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현재 무엇보다 급선무다.”, “이 ‘즐거운 불편’의 실천과 대화를 통해서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지금 문명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취해 보면, 그때까지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상대화 되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종종있다.”

  저는 줄곧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하면 논리적으로 결점 없는 높은 수준의 탄탄한 이론이나 결연한 의지의 선구자들, 민중의 거대한 물결 등만을 떠올려왔었습니다. 그래요, 물론 중요하겠죠. 그러한 힘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써내려 가겠죠. 하지만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탄탄한 이론을 세울 실력은커녕 이미 제시된 이론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결연한 의지 가득찬 선구자가 되기엔 나란 존재의 그릇의 크기, 수없이 보아온 나의 치사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스스로를 선구자로 생각함은 엄청난 기만이 됩니다. 민중의 거대한 물결이라 함은 직접적으로 치열하게 참여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5·18항쟁을 되돌아보고 오늘날의 반전시위에 가담해 보아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합니다. 세상에 대한 나의 불만을 해소할 길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켄세이씨의 ‘즐거운 불편’과 같은 길이라면 어떨까요? 그 시시해보이기까지 하는 실천계획들과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철학이라면 어떠할까요? 고통 속에 독야청청이 아닌 기쁨 속에 평범한 다수가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의 길이라면 어떠할까요? 저는 저의 무력감과 절망감이 한층 덜어짐을 느꼈습니다. 나도 고민의 제자리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담담히, 실질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란 자신감. 소걸음일지라도 천리를 갈 수 있다는 희망. 이 ‘즐거운 불편’의 길이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만큼 훨씬 어려운 길일 수 있고, 소소하게 보이는 만큼 더욱 크나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길이리라 믿습니다. ‘즐거운 불편’의 실천과정에서 켄세이씨가 겪은 실천의 의미에 대한 고민과 사유의 나아감, 자기스스로와의 그리고 가족 및 주변과의 갈등과 그 갈등의 해결해나감 등의 너무도 실질적인 실천의 이야기들이 당신의 처진 어깨와 그늘진 얼굴에도 희망으로 다가가길 바래봅니다. 당신이 품은 세상의 불만을 넘어설 수 있는 의미있는 실천의 길의 제시가 되길 바래봅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소비문명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것들 중에 더 없이 소중한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할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결과, 당신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풍요로워졌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 후쿠오카 켄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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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8-02-2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 잘 받았어요. 저에게 쓰신 거 같았어요. 옆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 동네 친구집에 마실온 기분입니다.^^ 글을 제대로 읽으면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그게 즐거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어요. 앞에 놓인 일들에 순간순간 대면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먼얘기를 가까이 가져오는 감수성과 자세가 필요한 거 같아요.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서평단 알림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단 도서]
  우연찮은 기회에 김병종 화백의 ‘라틴화첩기행’을 손에 쥐게 되었다. 겉표지를 살핀 후 스르르 책장을 넘겨본다. 경쾌하고 선굵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내 머릿속, 낯설음과 미지의 신비감으로 희미하게만 그려지던 남미. 아! 이 책은 그러한 남미의 미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로구나! 그런데 어쩌나. 그림에 대한 조예가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 남미의 그림이라니? 물론 서구 중심의 사고에 짙게 길들여짐에서 비롯된 발상이겠지만, 서구의 유명한 명화 감상조차 서툰 내게 라틴 그림이라니, 무언가 한층 더 어색하고 어려워만 보인다. 미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맞는 책이 아닐까, 과연 이 책이 내 머릿속 희미한 남미의 이미지를 한층 확연하게 그려줄 수 있으려나, 의문이 줄을 잇는다. 혹시 이 책을 얼핏 딱 보고 나와 같은 의문을 품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막상 책을 제대로 펴보시라! 이 책은 전문가적 입장에서 단순히 라틴의 미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었다. 그러한 오해는 ‘화첩기행’이란 단어의 뜻풀이의 잘못에서 비롯된다. 먼저 전적으로 ‘기행’에 무게를 두라. 이 책은 김병종 화백의 남미 여행을, 그 여행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과 그림이란 그의 ‘언어’로 표현한 기행문이다. 즉, 책에 실린 많은 그림들은 남미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김화백이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경쾌한 언어인 것이었다. 글만이 아닌 글과 그림으로 쓰여진 기행문, 그것이 바로 ‘화첩기행’이다. 괜한 뜻풀이의 오해로 책장을 덮어버리지 말고, 용기내어 책장을 넘겨보시라. 라틴의 음악이, 문학이, 미술이, 자연이, 역사가 당신을 향해 손짓한다.

  김화백의 라틴화첩기행은 크게 여섯 장으로, 그가 지나온 국가인 쿠바,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페루 순으로 구성되어있다. 쿠바에서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흔적을 좇아 쿠바 재즈에 취하고, 허밍웨이가 드나들던 카페와 머물던 집들을 방문하여 그를 회상하고, 쿠바의 연인 체 게바라와 그의 정신적 사부인 호세 마르티의 족적을 따라가며 다시금 혁명을 떠올린다. 멕시코에서는 벽화운동의 기수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페미니스트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둘러보며 삶을 반추해보고, 혁명기념탑을 찾아가서는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를 만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환상문학의 대가 보르헤스가 걸었던 거리를 걸으며 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고, 탱고의 발상지와 유명 탱고극장들을 찾아 온몸으로 쓰는 시 탱고에 몸을 맡긴다. 브라질에서는 삼바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서 직면해보고, 코르코바도 산 정상의 거대한 예수상의 광경에 압도당하면서도 예수상 뒤편으로 펼쳐진 세계 최대의 빈민촌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칠레에서는 피로 얼룩진 현대사를 작품에 투영시키는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 불과 얼음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삶을 칠레의 풍경에 되그려본다. 마지막 여행지 페루에서는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와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광경에 감탄함과 동시에 서방세계의 야만으로인해 조락해버린 잉카의 후예들에 가슴 아파하며,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속의 리마 해변을 거닐며 희망과 고독과 절망에 대하여, 그 모든 것들의 바스러짐에 대하여 긴 생각에 젖는다.

  어떠한가, 라틴의 손짓이 느껴지지 않는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디에고 리베라, 로맹 가리, 파블로 네루다 등등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고? 괜찮다, 상관없다. 나 또한 그들이 그저 낯설기만 했으나 이 책을 통해 그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호감을 갖고 친해지게 되었으니, 영화를 찾아보고 소설을 읽고 시와 그림을 검색해가며. 이렇듯 이 책은 김화백이 여행길을 통해 만나고 느낀 남미의 음악, 문학, 미술, 자연, 역사를 글과 그림을 통해 독자의 가슴에 나누어주려 한다.

  물론 남미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고 남미인들의 낙천성을 정말 ‘낙천적’으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하겠으나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기행문이란 것, 그 사실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블랙커피를 한 잔 내린다. 그 향. 그 맛. 그 내음. 그 울려퍼짐. 오늘은 왜인지 남미의 뜨거운, 정열의 태양이 느껴져 지그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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