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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불편 -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날의 고도자본주의·소비사회에 불만을 품고 고민하는 당신에게 띄웁니다.

  똑똑, 혹시나 당신 마음의 문을 두드려봅니다. 가끔은 당신의 어깨가 그저 축 처져만 보이는군요. 무엇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나요? 이따금 당신의 얼굴은 왜 이리 어두워 보이는지요. ‘세상 고민혼자 짊어졌냐!’란 말을 들어보지 않았었나요, 그것도 여러 번이나? 그렇다면 혹시, 제 멋대로 추측해봐도 될까요? 당신은 현실 불만자, 당신은 이상을 좇는 자. 다르게 말해보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이!

  개인의 온전한 생존조차도 그닥 여의치 않은 이 정글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고 조금이라도 더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정답’인 이 고도 경쟁주의 사회에서 나 자신만이 아닌 세상에 대한 고민까지도 품은 당신. 아, 반갑습니다. 이런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이런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당신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역시나 괜히 어깨가 처지고 얼굴에 그늘이 진 게 아니었군요. 세상에 대한 고민이라, 세상을 바꾼다... 아, 쉽지 않죠? 심장을 쿵쾅이게 하는 마음 속 불만과 추상적인 이상향을 가슴 속에 품고있음은 확실한데 구체적으로 나아갈 길의 방향과 거리의 선정, 그에 대한 확신은 왜 이리도 어려운지요. 또한 우리는 그간 얼마나 수많은 과오들을 보아왔던가요. 성찰없는 확신으로 자신의 이상을 ‘정답’ 나아가 ‘선’으로 착각하여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인배들을, 결국엔 자신에 취해 거대담론형 구호들만 내 목 찢어져라 네 귀 찢어져라 외쳐대는 소인배들을. 긴장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이상이 소중한 만큼 우리도 그러한 과오에 빠져들기란 너무나 쉽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세상에 대한 고민이라, 세상을 바꾼다...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면 좋을까요. 방법도 모르겠고, 역량도 부족합니다.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괜스레 초조해지고 가슴이 막막합니다. 차라리 세상에 대한 이런 불만, 이런 희망을 품지조차 않았던들 이렇게 한숨짓고 있지 않아도 됐을텐데요.

  그런데요 여기 ‘즐거운 불편’이란 책이 한권 있습니다, 희망을 가려버리는 불만과 욕심과 초조의 그늘 속에 움츠리고 있던 저의 어깨를 토닥여준 책이. 이 책의 저자는 후쿠오카 켄세이 씨입니다. 그는 대량소비사회의 문제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소비사회의 병폐를 넘어서기 위해 한 인간으로서의 자발적인 실천을 다부지게 계획하고, 해나갑니다. 책 ‘즐거운 불편’은 바로 이러한 켄세이 씨의 소박하지만 치열한 실천기록입니다.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그는 오늘날의 대량소비사회에 불만을 품고 고민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거의 같지 않을까요?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있고 바꾸고 싶어 고민하고.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그는 우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란 고민에만 눌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담담히, 실제로 세상을 바꿀 실천에 임합니다. 설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일지라도, 국자로 강물 퍼내기 일지라도 그 ‘절망적’ 현실이 그에겐 그닥 중요한 게 아닌가 봅니다. 그는 그저 담담히 바가지에 물을 채우고 채워나갑니다. 그것도 고행적 수행의 자세라기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도 홀로 기쁜 마음이 아닌 더불어 기쁜 마음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실천계획들을 적어내려 갑니다.

- 자전거 통근  - 자동판매기 물건을 사지 않는다  - 제철채소나 과일이 아닌 것은 먹지 않는다  - 커피, 홍차를 마시지 않는다  - 엘리베이터, 이불건조기, 다리미, 무선전화기, 티슈, 샴푸, 린스, 식기용 세제를 쓰지 않는다  - 도시락 갖고 다니기  - 병, 우유팩, 일회용 접시는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 목욕하고 남은 물은 대야로 세탁기에 퍼 담는다  - 음식찌꺼기는 퇴비로 활용한다  - 고장이 나도 새로 사지 않고 수리해서 쓴다  - 쌀을 무농약으로 자급한다

  어떤가요? 죽 훑어보니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저는 실천계획들이 참 소박하다는 느낌에 웃음도 나오던걸요. 어떻게 보면 좀 시시하기까지도 하고요. 그러나 켄세이 씨의 실천기록을 읽어보면 그런 소소한 실천들 속에 깊은 사유와 성찰, 진중한 치열함과 진솔함이 담겨있음을 깨닫고 놀라게 됩니다. 그는 이야기합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그리고 그 산물인 대량폐기의 더미 위에 세워진 현대문명이, 이대로 가다가는 환경파괴나 인구폭발, 식량부족, 자원과 에너지 고갈 등의 위기에 휘둘리고, 마침내는 파탄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감하고 있는 터이다.”, “정신적 수양을 쌓은 종교인뿐만 아니라,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위협이나 의무감 때문이 아닌 기쁜 마음으로 그러한 생활을 선택하고,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현재 무엇보다 급선무다.”, “이 ‘즐거운 불편’의 실천과 대화를 통해서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지금 문명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취해 보면, 그때까지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상대화 되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종종있다.”

  저는 줄곧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하면 논리적으로 결점 없는 높은 수준의 탄탄한 이론이나 결연한 의지의 선구자들, 민중의 거대한 물결 등만을 떠올려왔었습니다. 그래요, 물론 중요하겠죠. 그러한 힘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써내려 가겠죠. 하지만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탄탄한 이론을 세울 실력은커녕 이미 제시된 이론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결연한 의지 가득찬 선구자가 되기엔 나란 존재의 그릇의 크기, 수없이 보아온 나의 치사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스스로를 선구자로 생각함은 엄청난 기만이 됩니다. 민중의 거대한 물결이라 함은 직접적으로 치열하게 참여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5·18항쟁을 되돌아보고 오늘날의 반전시위에 가담해 보아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합니다. 세상에 대한 나의 불만을 해소할 길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켄세이씨의 ‘즐거운 불편’과 같은 길이라면 어떨까요? 그 시시해보이기까지 하는 실천계획들과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철학이라면 어떠할까요? 고통 속에 독야청청이 아닌 기쁨 속에 평범한 다수가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의 길이라면 어떠할까요? 저는 저의 무력감과 절망감이 한층 덜어짐을 느꼈습니다. 나도 고민의 제자리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담담히, 실질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란 자신감. 소걸음일지라도 천리를 갈 수 있다는 희망. 이 ‘즐거운 불편’의 길이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만큼 훨씬 어려운 길일 수 있고, 소소하게 보이는 만큼 더욱 크나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길이리라 믿습니다. ‘즐거운 불편’의 실천과정에서 켄세이씨가 겪은 실천의 의미에 대한 고민과 사유의 나아감, 자기스스로와의 그리고 가족 및 주변과의 갈등과 그 갈등의 해결해나감 등의 너무도 실질적인 실천의 이야기들이 당신의 처진 어깨와 그늘진 얼굴에도 희망으로 다가가길 바래봅니다. 당신이 품은 세상의 불만을 넘어설 수 있는 의미있는 실천의 길의 제시가 되길 바래봅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소비문명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것들 중에 더 없이 소중한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할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결과, 당신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풍요로워졌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 후쿠오카 켄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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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8-02-2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 잘 받았어요. 저에게 쓰신 거 같았어요. 옆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 동네 친구집에 마실온 기분입니다.^^ 글을 제대로 읽으면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그게 즐거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어요. 앞에 놓인 일들에 순간순간 대면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먼얘기를 가까이 가져오는 감수성과 자세가 필요한 거 같아요.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서평단 알림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단 도서]
  우연찮은 기회에 김병종 화백의 ‘라틴화첩기행’을 손에 쥐게 되었다. 겉표지를 살핀 후 스르르 책장을 넘겨본다. 경쾌하고 선굵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내 머릿속, 낯설음과 미지의 신비감으로 희미하게만 그려지던 남미. 아! 이 책은 그러한 남미의 미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로구나! 그런데 어쩌나. 그림에 대한 조예가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 남미의 그림이라니? 물론 서구 중심의 사고에 짙게 길들여짐에서 비롯된 발상이겠지만, 서구의 유명한 명화 감상조차 서툰 내게 라틴 그림이라니, 무언가 한층 더 어색하고 어려워만 보인다. 미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맞는 책이 아닐까, 과연 이 책이 내 머릿속 희미한 남미의 이미지를 한층 확연하게 그려줄 수 있으려나, 의문이 줄을 잇는다. 혹시 이 책을 얼핏 딱 보고 나와 같은 의문을 품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막상 책을 제대로 펴보시라! 이 책은 전문가적 입장에서 단순히 라틴의 미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었다. 그러한 오해는 ‘화첩기행’이란 단어의 뜻풀이의 잘못에서 비롯된다. 먼저 전적으로 ‘기행’에 무게를 두라. 이 책은 김병종 화백의 남미 여행을, 그 여행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과 그림이란 그의 ‘언어’로 표현한 기행문이다. 즉, 책에 실린 많은 그림들은 남미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김화백이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경쾌한 언어인 것이었다. 글만이 아닌 글과 그림으로 쓰여진 기행문, 그것이 바로 ‘화첩기행’이다. 괜한 뜻풀이의 오해로 책장을 덮어버리지 말고, 용기내어 책장을 넘겨보시라. 라틴의 음악이, 문학이, 미술이, 자연이, 역사가 당신을 향해 손짓한다.

  김화백의 라틴화첩기행은 크게 여섯 장으로, 그가 지나온 국가인 쿠바,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페루 순으로 구성되어있다. 쿠바에서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흔적을 좇아 쿠바 재즈에 취하고, 허밍웨이가 드나들던 카페와 머물던 집들을 방문하여 그를 회상하고, 쿠바의 연인 체 게바라와 그의 정신적 사부인 호세 마르티의 족적을 따라가며 다시금 혁명을 떠올린다. 멕시코에서는 벽화운동의 기수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페미니스트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둘러보며 삶을 반추해보고, 혁명기념탑을 찾아가서는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를 만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환상문학의 대가 보르헤스가 걸었던 거리를 걸으며 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고, 탱고의 발상지와 유명 탱고극장들을 찾아 온몸으로 쓰는 시 탱고에 몸을 맡긴다. 브라질에서는 삼바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서 직면해보고, 코르코바도 산 정상의 거대한 예수상의 광경에 압도당하면서도 예수상 뒤편으로 펼쳐진 세계 최대의 빈민촌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칠레에서는 피로 얼룩진 현대사를 작품에 투영시키는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 불과 얼음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삶을 칠레의 풍경에 되그려본다. 마지막 여행지 페루에서는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와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광경에 감탄함과 동시에 서방세계의 야만으로인해 조락해버린 잉카의 후예들에 가슴 아파하며,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속의 리마 해변을 거닐며 희망과 고독과 절망에 대하여, 그 모든 것들의 바스러짐에 대하여 긴 생각에 젖는다.

  어떠한가, 라틴의 손짓이 느껴지지 않는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디에고 리베라, 로맹 가리, 파블로 네루다 등등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고? 괜찮다, 상관없다. 나 또한 그들이 그저 낯설기만 했으나 이 책을 통해 그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호감을 갖고 친해지게 되었으니, 영화를 찾아보고 소설을 읽고 시와 그림을 검색해가며. 이렇듯 이 책은 김화백이 여행길을 통해 만나고 느낀 남미의 음악, 문학, 미술, 자연, 역사를 글과 그림을 통해 독자의 가슴에 나누어주려 한다.

  물론 남미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고 남미인들의 낙천성을 정말 ‘낙천적’으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하겠으나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기행문이란 것, 그 사실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블랙커피를 한 잔 내린다. 그 향. 그 맛. 그 내음. 그 울려퍼짐. 오늘은 왜인지 남미의 뜨거운, 정열의 태양이 느껴져 지그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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