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진실’과 ‘정치적 편견 없이’ 등을 운운하는 모습이 거북하다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 최신 연구로 확인하는 인간광우병의 실체와 운명
유수민 지음 / 지안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대형마트에서 미국산 소고기가 다시 판매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의견이 격렬히 맞부딪치고 있다. 전방위적 탄압으로 촛불도 사그라지고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관심·우려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미국산 소고기 파동은 결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파동. 이러한 시기에 출간된 책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는 현실을 좀 더 냉철하게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되었다.

유수민은 현직 의사로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피카소’란 필명으로 많은 글들을 연재해오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광우병에 대한 뜨거운 말들이 신문과 방송, 거리에 넘쳤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라는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가 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우병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가 담긴 200여 편 이상의 논문 등을 직접 찾아본 후 이 책을 통해 정리해냈다.

“인간광우병의 진실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정치적 편견이나 오해 없이 보여주고자 초선을 다했다.” 저자는 이와 같이 선언하며 ‘1부-비극의 기원’에서는 광우병의 과거를 다루고, ‘2부-인간광우병 발병의 전제조건들’에서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요인들을 분석하며, ‘3부-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으며, 마지막 ‘4부-광우병의 미래’를 통해서는 우리나라에서의 광우병 발생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먼저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라는 저자의 의도는 성과를 거둔 것 같다. 주로 과학 논문의 내용을 전하는 책이기에 독자로서 굉장히 어렵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으나 저자는 수많은 그림과 도표를 이용하여 차근차근 설명을 해준다. 과학적 기본지식이 미천한 나도 인내심을 갖고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진짜 의도인 ‘진실’에 있다. 많은 최신 연구의 공부를 통해 그가 ‘정치적 편견이나 오해 없이’ 도달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어쨌든 광우병 위험도를 최대로 과장한 상태에서 계산해보겠다 (…) 한국에서 인간광우병 환자 한 명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 20년 정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 더 중요한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발생하는 변형 프라이온 단백질 스트레인이 영국에서 탄생한, 사람에게 전염 가능한, 소떼에게 쉽게 전염될 수 있는 독성이 강한 스트레인이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계산은 의미가 없다. 가능성이 0%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은 0%. 최신 연구성과들을 모아, 정치적 편견이나 오해없이, 과학으로 말했다는 저자의 결론. 그는 이러한 결론을 비유를 통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악어는 위험하다. 그라나 집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악어가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도심 한가운데 살면서 악어가 나타나 나를 물어죽일 가능성을 항상 걱정한다면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다. 밀림 지역이나 아프리카 여행 중에 걱정해도 충분하다.”

“누군가가 정말로 시침을 떼어다가 눈을 찌를 수도 있고, 벽에 걸린 시계가 그 아래에 있던 사람 머리로 떨어져 뇌진탕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 때문에 괘종시계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물건이니 없애자고 한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쉽다.”

뭐지? 그럼 촛불을 밝힌 5, 6월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광우병 괴담’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집 안에 앉아 악어를 두려워하고, 괘종시계를 살인도구로 보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인가? ‘과학’을 모르고 ‘정치적 편견’에 빠진 우매한 인간들?

물론 저자는 다른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무턱대고 아무 근거도 없이 괜찮다고 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 경우 준비되지 않은 위험에 처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광우병에 대한 위험이 확률상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광우병을 예방하기 위해 정해놓은 규칙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관리 및 감시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제도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은 책 전체를 통해 볼 때 미약할 뿐이다. 위에 인용한 문구 정도로만 언급하고 있을 뿐, 정작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광우병 예방 대책의 문제점은 인식조차 안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악어’, ‘시계’라는 비유의 힘을 강하게 실어 표현한 위험성 0%의 결론과 미약하게 언급한 위험성에 대한 예방의 말의 느낌 차이는 독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어마어마한 차이로 다가온다. 그러기에 그가 말하는 ‘예방’에 대한 언급에서는 형식성이 느껴질 뿐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물론 저자가 밝힌 광우병의 진실이 사실이라면 좋겠다. 반가운 소식 아닌가! 미국산 소고기를 마음껏 사먹어도 최신 과학 성과로 분석해 볼 때 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은 거의 거의 거의 없다니! 그래, 차라리 똑똑하지 못해서 지금껏 광우병 괴담에 시달려온 사람들이 무지를 반성하고 값싸고 맛좋다는 미국산 소고기를 실컷 사먹어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허허.

저자가 책을 쓰게 된 진솔한 의도야 어찌됐든, 나에게 이 책은 이렇게 읽혔고, ‘진실’과 ‘정치적 편견 없이’ 등을 운운하는 모습이 도리어 거북했다. 서평단 도서라서 꼼꼼히 열심히 읽었는데, 얻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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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실’과 ‘정치적 편견 없이’ 등을 운운하는 모습이 거북하다
    from I Need Another Day 2008-12-01 01:14 
      대형마트에서 미국산 소고기가 다시 판매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의견이 격렬히 맞부딪치고 있다. 전방위적 탄압으로 촛불도 사그라지고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관심·우려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미국산 소고기 파동은 결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파동. 이러한 시기에 출간된 책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는 현실을 좀 더 냉철하게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되었다. 유수민은 현직 의사로서 생물학연구정보센
 
 
 
아픈 아이들의 세대 - 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우석훈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멈추지 않는 불도저 

 불도저 소리가 요란합니다. 뉴타운 선정, 그린벨트 해제, 재건축, 재개발. 불도저 엔진의 굉음에 섞여 끊임없이 쏟아지는 말들입니다. 기존의 아파트는 더 높은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로, 주택지와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는 새로운 아파트로, 그리고 숲도 아파트로, 산도 아파트로, 게다가 국립공원 경계 지역의 문턱까지 아파트로 꼬박꼬박 시멘트를 채워 넣는 것이 서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최후의 안전판 노릇을 하던 그린벨트의 작은 숲까지 전부 망가뜨린 다음에 줄 맞추고 키 맞추어 심어 놓은 나무 몇 그루의 녹색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이 끊임없는 불도저 사회. 여기저기서 동시에 솟아오르는 건물만큼이나 그에 대한 많은 우려의 목소리도 치솟고 있군요. 그런데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 중에 정작 가장 심각한 문제점 하나가 빠져있는 듯합니다. 간담이 서늘해질, 훨씬 더 긴박하고, 우리 개개인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가 말이지요.  
 

PM10이 뒤덮은 먼지 지옥, 서울
 
우석훈씨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통해 환경오염의 구체적인 정도를 서울, 나아가서 한국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건설 및 경제정책의 문제점과 연결 지어 설명합니다. 혹시 PM10(피엠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자는 PM10을 화두로 내세워 대규모 개발의 광풍으로 뒤덮인 한국의 암울한 미래를 경고합니다. 
 

PM10이란 Particulate Matter10의 약자로서,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미터) 미만인 미세입자 먼지를 말합니다. 그만큼 작은 물질은 공기 중에서 잘 가라앉지 않고 계속 떠다니는데, 그것이 우리 인체로 들어가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원래 인체는 외부의 여러 물질들을 걸러내는 최소한의 거름망이 있습니다. 콧털은 먼지를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기도에는 주름이 있어서 여과장치의 역할을 하며, 점막에서는 가래를 통해 먼지 등을 배출시키죠. 
 

그런데 PM10은 워낙 미세하기 때문에 이런 여과장치에 걸리지 않고 폐 속 깊숙이 박혀버립니다. 허파꽈리를 죽일 뿐더러 몸 안 여기저기 달라붙게 됩니다. 인간의 인체에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계속 몸 속에 축적되는 거죠. 


특히 황산화물 등 다른 오염물질과 결합해서 발암물질을 만들어내며 폐렴과 폐암, 천식, 심혈관계 질환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9년 방콕에서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PM10 농도가 10㎍/㎥ 증가할 때 전체 사망률은 1~2%, 호흡기계 사망률은 3~6% 증가했고, 특히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해서 생활하는 대도시에서 PM10 농도가 10㎍/㎥ 늘어나면 25~30세 성인의 수명이 1년 줄어드는 것으로 계산됐다고 합니다. 몸 밖으로 배출되지도, 몸 속에서 정화되지도 못하는 PM10. ‘보이지 않는 살인자’, '보이지 않는 독‘으로 불릴 만큼 위험합니다. 


이렇듯 인체에 유해한 PM10은 자동차의 매연, 분진 및 각종 공사장에서 생긴다고 하네요. 주변을 둘러봅시다. 어느 곳을 가든 공사장을 몇 군데이고 쉽사리 찾아볼 수 있지 않나요? 뉴타운 하나 만드는 데 계획단계에서 10년, 실행단계에서 20년을 소요하는 외국과 달리, 1년 안에 토지수용을 위한 매입까지 마치고 5년 안에 공사를 끝내버리는 우리나라의 도시개발 체계, 게다가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서 진행되는 건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의 권고기준을 넘어선 서울의 PM10 지수로 보면 서울은 이미 '재난지역' 혹은 '긴급대피지역'입니다. 저자는 앞으로 서울은 거대한 PM10 공장이 될 것이고, 지금 서울을 뒤덮고 이는 미세먼지에 의한 죽음의 구름은 비가 와도 사라지지 않는 끈적끈적한 죽음의 운무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서울의 PM10 오염도는 경제협력개발기수(OECD) 국가 중 단연 1등이지요. 

 아이를 위해, 서울을 긴급탈출하라!

나아가 저자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위한다면, 어서 빨리 “서울을 떠나라!”고 강력히 권유합니다. 현 상태대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새로 태어날 아이들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토피를 비롯한 각종 유아질환에 시달릴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된다는 것이죠.

아이가 아픈 것은 어머니가 아플 수도 있고, 아버지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토피나 유아 천식과 같은 병들은 ‘환경성 질환’으로 PM10과 같은 미세 오염물질이 거의 즉각적이라고 합니다. 어른들은 공사장 근처에 오랫동안 살더라도 바로 아프지 않지만, 아이들은 과연 그 개발의 속도를 견뎌낼 수 있을까요? 한창 건강한 어른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이 광속의 로켓 속에서 아이들은 지금 너무도 아픕니다. 많이 아픕니다.

한 기사에서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3킬로가 채 되지 않는 아이가 천식으로 울고 있는 걸 보면서 책 쓰는 2주 동안 내내 울었다. 우는 것 외에는 아프다고 얘기할 수 없는 0세의 영아들 모습을 떠올리면서, 정말이지 내내 울면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아버지로서, 이제는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고, 성인으로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책의 곳곳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절절한 마음이 묻어납니다. 저자의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 아이의 건강,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환경 가치에 대한 자각으로 연결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눈에 띕니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향한 애정이란 진정성이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기에, “서울을 떠나라!”는 다소 생소하고 파격적인 그 말이 차마 마음에서 떠나질 못하는군요. 

잔혹동화의 시대

 이 책은 2005년, 참여정부 시절에 출간됐습니다. 지금은 2008년, ‘불도저 정부’ 시절. 오늘날, 상황은 과연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요? 개발의 광풍은 더욱 미친 듯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우리 몸 속의 PM10은 끊임없이 쌓여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돈독 오른 사회의 끝에서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불도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제는 우리가 실로 절절한 문제를 속히 깨닫고 마음 깊이, 많이 아파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이다. 우리는 지금 ‘아이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잔혹동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건설경기의 연착륙으로 경제성장률을 1퍼센트 높인다는 경제학을 가장한 정치담론이 실제로 낳을 것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곡소리와 아픈 아이들의 세대뿐이다. -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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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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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돌출된 곱사등, 짧고 가느다란 막대기 같은 다리, 진흙 덩어리를 뭉쳐놓은 것처럼 작고 뭉툭한 발, 심하게 뒤틀린 발가락, 손아래 누이보다도 작은 몸집. 이런 몸으로는 걷는 것 조차 힘이 들어 휘청거린다. 그래서 손을 땅에 짚고 네 발 달린 짐승처럼 재빨리 땅을 기어간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병신’ 취급을 받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흉측하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열 살짜리 소년 바르톨로메 카라스코이다. 주변 사람들의 낯설고 차가우며 매섭기까지 한 눈빛에 너무도 익숙할 아이. 그런데 소설 속 세계에서도 이미 충분히 타인의 눈빛으로부터 상처받았을 그 아이에게 소설 밖 세계에 사는 내가 보내는 눈빛 또한 평범하고 곱지 못함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마도 내 의식 속의 기형에 대한 낯섦과 무의식적 공포. 이런 미안함과 불편함을 품으며 17세기 스페인의 한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르톨로메와의 낯선 마주침을 조심스레 이어가본다.

바르톨로메는 아버지, 어머니, 4명의 남매와 함께 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수도 마드리드에서 공주의 마부로 일하게 되었고 따라서 가족이 마드리드로의 이사를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은 ‘온 가족’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병신’ 바르톨로메를 떼어놓고 이사 가기를 바랐고 이를 알게 된 바르톨로메는 애처롭게 흐느끼며 자신도 데려갈 것을 간청한다. 결국 아버지는 승낙하였으나 단 조건이 붙었다, 이사를 가면 사람들 눈에 절대 띄지 않게 골방에만 있어야 한다는. 상처가 아무리 쓰라렸어도 아이는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음이 기뻤다. 이사 간 새집,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창문 근처에 가는 것조차 금지당한 바르톨로메는 감옥과도 같은 골방에 갇혀 홀로 나직이 흐느낀다. 가족 내에서까지 받아야 하는 소외는 한없이 서러웠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그런 그 아이에게 얇은 희망이 비췬다. 바르톨로메와 같은 기형 난쟁이임에도 당당한 위풍으로 왕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온 형이 흥분하며 그 말을 전한다. 그동안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난쟁이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면서 능력을 펼칠 길이 있는 것이었다. 이내 아이는 집 근처의 수도원에서 글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 몰래, 형과 누나의 도움을 받아 빨래통에 몸을 숨겨 이동하면서. 바르톨로메는 넋을 잃을 정도로 글자 공부에 심취한다. 늘어가는 글자 실력과 함께 아이의 희망과 자존감도 자라났다. 그러나 희망이 한창 부풀던 그 때, 그만 큰 사고가 발생한다. 빨래통에 바르톨로메를 숨기고 성당으로 향하던 누나가 그만 빨래통을 놓쳐버렸고 언덕을 따라 쉼 없이 구른 아이는 공주의 마차 앞에서 널브러진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공주의 눈에 띈 아이는 그 길로 바로 공주의 장난감, 인간개로서 궁궐로 끌려간다. 기형을 가져 차별받고 업신여김 받던 ‘사람’에서 이제는 아예 공주의 개가 됨으로써 아이는 사람조차 아니게 된다. 공주에게 바르톨로메는 사람이 아닌 정말 개인 것이다. 아이는 개 의상을 입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고 ‘멍멍’ 짖으며 핥고 재롱을 부린다. 기형을 가진 존재에 대한 차별과 업신여김은 극에 달한다. 인간의 상실, 상실된 인간성.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완전히 짓뭉개져 버린 바르톨로메에게 다시금 희망이 찾아온다. 그가 개 분장을 위해 찾아가는 화실, 그 곳의 사람들은 아이에게 말한다, “물론이야, 너는 개가 아니야”. 바르톨로메를 온전한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따뜻이 말을 건네며 차분히 귀 기울여주는 화실 사람들. 그들은 아이의 기형을 무작정 기피하기 보다는 장애를 지녔다 할지라도, 아니 장애의 유무를 떠나 바르톨로메가 한 인간으로서의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아이의 그림에 대한 재능의 씨앗을 본 화실 사람들은 아이를 격려해주고, 이끌어준다. 결국 그들은 인간개와 진짜 개를 뒤바꾸는 마술을 통해 공주의 눈을 속여 바르톨로메를 인간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아이를 화실 식구로 맞이한다. 개에서 인간으로 즉, 기형이란 이유 하나로 무작정 차별받고 무시당하던 존재에서, 기형이 있더라도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로의 극적인 전환. 이는 책 속에서 그림 <시녀들>에 그려졌던 인간개 바르톨로메를 진짜 개로 고쳐 그리는 기막힌 상징으로 멋지게 표현되고 있다.

가정에서 공주의 방으로, 공주의 방에서 화실로 옮겨져 가는 바르톨로메의 삶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 각 과정에서의 아이의 표정이 얼마나 달랐을지 너무도 확연히 그려진다. 각 과정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냐는 시각의 차다. 한 사람에 대한 무시가 그의 존재를 서러운 시궁창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고,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한 존중이 그의 존재가 한없이 고양되도록 도울 수도 있다. 바르톨로메와의 마주침을 이어가며 기형, 더 넓게는 사회 비주류에 대한 나의 근거 없이 비뚤어진 시각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 잠시나마 비뚤게 거부감을 갖고 바라본 점을 깊은 마음으로 사과하며, 현실의 수많은 바르톨로메들을 온전한 존중의 시각으로 대할 것임을 조심스레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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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
이 책은 내가 읽은 사계절출판사의 1318문고 중에 최고였어요. 2006년 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로 추천했었죠. 우리 아이들도 굉장히 감동 먹은 작품으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시 찬찬히 뜯어보게 되었지요.

Arm 2008-09-26 00:51   좋아요 0 | URL
작가의 상상력의 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즐거웠어요~ 그 그림을 보고 결국 이런 소설을 탄생시키다니요! 아, 전문가 순오기님께 '최고'수준이었다면 제가 잘 골라서 봤나봐요~~~^^
 
내 친구가 마녀래요 - 2단계 문지아이들 6
E.L. 코닉스버그 지음, 윤미숙 그림, 장미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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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인 잣대, 사회의 일반적 규범이 우리 사고에 미치는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 우리의 일상들은 그저 그것들의 힘에 의해 이끌려 나아가기 쉽다. 이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착한 아이는 이래야 한다, 모범생은 저래야 한다, 이런 행동이 옳고 저런 행동이 그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모범답안’은 이미 굳건하다. 우리는 그 답안을 그저 따를 뿐이다, 답안의 근원에는 그저 무관심한 채. 물론 규범과 관습의 긍정적 기능을 결코 무시하면 안되겠지만 그 역기능은 한층 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규범과 관습의 일방적인 강요는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깊은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에게 다시금 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모범답안, 중심만을 강요하느라 정작 우리 아이들을 더욱더 비모범으로, 주변으로 몰아세워가진 않았는지. 작은 상처를 혹 불어주고 아물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 부위를 후벼댄 것은 아닌지. 그러하기에 착한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전형에서 벗어난, 어떻게 하면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책 ‘내 친구가 마녀래요’가 반갑다. 각기 갓 전학을 왔고, 교내에서 유일한 흑인인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외로움을 한줌씩 머금고 있다. 교내 연극에서 맡게 된 배역이 각기 공주의 개와 청소부였다는 내용은 이 두 주인공이 중심이 아닌 주변에 서있는 아이들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한층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따스하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소설은 마녀처럼 행동하는 제니퍼와 그의 친구가 되어 마녀 수업을 받기로 한 엘리자베스가 함께 엮어 가는 일들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우정을 그려낸다. 엘리자베스와 제니퍼는 본격적인 마녀 수업을 시작하며 둘만의 비밀스런 세계를 만들어 간다.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마녀에 관련된 책들도 읽고, 날계란과 생양파 따위의 음식을 먹고 비밀스런 쪽지를 주고받으며 둘만의 마녀 생활을 한껏 즐겨간다. 특히 하늘을 나는 연고 만들기를 준비하는 몇 달 동안은 점차 준비가 갖춰가는 만큼 둘의 소통도 늘어간다. 하지만 마녀라는 비현실적 요소를 매개로 한 관계, 스승 대 견습생이란 수직적 관계는 이 둘의 관계의 불완전함,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불완전과 불안정의 절정 그리고 그것의 파열은 역설적으로 둘만의 비밀이 가장 깊어진, 하늘을 나는 연고를 만드는 그 날 그 순간에 일어난다. 연고의 재료인 두꺼비를 둘러싼 갈등. 결국 몇 달을 바래오던 둘만의 꿈은 깨어졌고, 울며불며 헤어진 둘은 각자의 상처에 쓰라려할 뿐 벌어진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하지만 분열과 파열은 그저 깨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깨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태어남. 분열이자 성숙. 한바탕 울먹인 이 둘은 그 울먹임의 시간을 발판으로 삼아 한층 더 싱긋한 소통으로 나아간다. 둘은 더 이상 비현실인 마녀란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스승과 견습생이란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동등한 친구 대 친구로 다시 맺어진다. 울며 이내 웃으며 한 계단을 오른 것이다.

모든 어른이 예뻐할 모범생도 아니고 중심에 서있지도 않은 아이들. 허나 교과서적으로 ‘훌륭하진’ 않되 그들 스스로의 마음에 진솔하도록 걸어나간 그들의 작고 소중한 성장기. 아이를 위함이란 거짓 핑계로 아이들을 일정한 틀로 찍어내려는 어른의 욕심. 부디 엘리자베스와 제니퍼, 이 둘의 성장기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작은 깨달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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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5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못 봤어요. 코닉스 버그는 '클로디아의 비밀'과 '퀴즈왕들의 비밀'로 압도 당한 작가였어요.^^

Arm 2008-09-26 00:54   좋아요 0 | URL
아, 작가 이름만 보시고도 작품이 술술 나오네요- 찾아볼게요! 아동, 청소년 문학에도 관심이 가는 요즘이랍니다. ^^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9
존 셰스카 글, 레인 스미스 그림, 황의방 옮김 / 보림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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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고하기. 반대편에 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이러한 태도는 첫째, 다양한 입장에 서서 생각해봄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둘째, 폭 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관행적 사고를 넘어 창의성을 발휘하게 해주며 끝으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키워줌으로써 소모적 갈등을 이겨내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인성을 길러준다.

책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태도들이 확연히 반영된 책으로서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는 단순히 저자가 의도를 갖고 교훈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탈피한 낯선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아이에게 그저 생각의 계기를 던져줄 뿐, 낯섦을 받아들이고 헤쳐 가는 것은 결국 아이의 몫이 된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교육적 의의는 한층 높아진다고 평할 수 있다.

이 책의 특징들을 각 대목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먼저 그림동화의 핵심인 그림, 무난한 그림의 구성과 그림체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아기돼지의 묘사다. 돼지가 귀엽고 연약하고 동정심을 불러오게 그려지지 않고 강인하고 어두우며 무서운 얼굴로 그려진다. 그런 무서운 아기돼지 앞에 선 늑대가 오히려 조금은 주눅 들어 보인다. 이 렇듯 강하게 제시된 낯선 돼지의 그림은 다르게 바라보기란 이 책의 의도를 십분 실현시켜 준다.

그리고 아기돼지를 잡아먹은 늑대가 건네는 말은 인상적이다. 늑대는 자기가 아기돼지를 먹는 것은 독자(책을 보는 아이)들이 치즈버거를 먹는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치즈버거를 앞세운 늑대의 이 말은 생존, 먹이사슬 등 생명에 대한 포괄적인 성찰의 단초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늑대는 셋째 아기돼지의 집 앞에서 경찰과 기자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결국 탐욕의 살인자로 몰리고 감옥에 갇힌다. 이 대목을 통해 인권을 무시하는, 경찰로 묘사된 공권력의 횡포와 왜곡된 언론권력의 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란 생각을 이끌어내기가 아이들에겐 어렵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진심이 결여된 태도가 한 사람의 진심을 얼마나 짓밟을 수 있는가란 배움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감옥 속의 늑대가 독자(아이)들에게 직접 질문을 건넨다. 할머니 생일을 축하할 케잌을 만들기 위해 아기돼지들에게 빌리려 했던 설탕. 늑대는 독자(아이)를 바라보며 그럼 너는 내게 설탕을 한 컵만 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물음표로 끝맺은 이야기. 아이들은 늑대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자연스레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재밌게 읽고 볼 수 있으면서도 아이들의 내면에 작은 돌을 던져 어떠한 강압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의 파장을 일으키기에 이 책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가 유독 특별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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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5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님도 그림동화를 읽기 시작했나요?ㅎㅎㅎ
이 책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마지막 설탕을 줄 수 있겠니? 란 질문에는 준다 못준다 말이 나뉘지요.^^ 대선을 앞두고 MB가 생각나서 리뷰를 올렸죠.^^

Arm 2008-09-26 00:56   좋아요 0 | URL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무언가 의미를 만들고 싶어.. 독서지도사 온라인강의를 들어보고 있어요.ㅎㅎ 덕분에 완전 무심했던 아동,청소년 문학에 살짝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앞으로 순오기님의 리뷰를 열심히 읽어볼 일이 늘어날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