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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 & 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ㅣ 지식인마을 7
조지형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평점 :
'역사'라고 하면 흔히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역사책을 떠올린다. 그 당시에 나에게 역사는 재미있는 이야기책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야기의 각 사건들을 외워서 시험 문제를 맞추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연도를 중심으로 외우기 보다는, 모든 사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고 생각하고 인과 관계를 통해서 각 시대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그 당시 배웠던 역사적인 사실들을 되짚어보니, 상당히 편협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방식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해석할 수도 있지만, 서점에 있는 다른 역사 관련 서적들 중에는 그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책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 때 살짝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실들이 진실이 아니게 되었을 때, 과연 이것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러면서 점차 역사는 나에게 관심이 멀어지게 되었다.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조금 딱딱해보이는 주제의 책이지만, 책장을 넘겨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와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 주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매일매일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한 가지 사건도 여러 사건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거기에 얽힌 이해 관계가 여러 갈래라서 한 가지의 흐름으로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역사책에서는 누가 서술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본다. 가장 많이 드는 예로 광해군을 들 수 있는데, 어떤 이들은 잔인한 미치광이로 그리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너무나 똑똑해서 단명했던 왕으로 묘사한다. 어떤 시각이 진실이라고 판별하는 것보다 이 두가지 시각 모두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모습일 수 있다.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해야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역사학 분야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 이들은 랑케와 카를 꼽을 수 있다. 물론 고대 신들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하기 시작한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나 기타 다른 학자들도 많지만, 오늘날 역사학의 토대를 만든 사람들이라면 보통 이 두 사람을 일컫는다. 학문적인 접근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면, 그런 걱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접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 책도 역사학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당히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완전히 배제하고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일단 그런 시도를 하고자 하는 발언을 꺼냈다는 사실 자체로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랑케의 업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역사학이라는 분야가 생각보다 다이나믹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찬 분야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래된 고서적들로 둘러싸인 과거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역사가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냐에 대한 공방은 쉽사리 끝나지 않겠지만, 진실을 찾겠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좀 더 잘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있는 고민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