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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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성장통, (), 질병, 노화, 죽음

가식도 금기도 없는 한 남자의 내밀한 기록

소설처럼』『학교의 슬픔의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차린 의 성찬!

- 앞 표지(띠지) 홍보문구

 

몸의 일기(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을 사서 읽어보기로 결심한 건 지금 찾을 수 없지만 어느 신문의 책 소개 글을 접하면서입니다. 책 속 구절을 인용하며 남자의 몸을 매력있게 다뤘다고 소개했던 기억이 나네요.

 

홍보 문구에도 알 수 있듯 성, 사랑, 질병, 죽음 등 한 남자의 생애를 일기라는 형식(당연히 1인칭 시점이죠?)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131개월 419361114일 토요일

아빠가 이런 말을 했었다. 모든 사물은 무엇보다도 먼저 관심의 대상이다. 따라서 내 몸도 관심의 대상이다. 난 내 몸의 일기를 쓸 것이다.

 

131개월 819361118일 수요일

내 몸의 일기를 쓰려는 또 다른 이유는, 모두들 다른 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란 몸은 전부 다 거울 달린 옷장 속에 버려져 있나 보다. (후략)

(33~34)

 

주인공 ''(저자의 친구 리종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 전쟁으로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두려움에 창피를 겪은 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때론 '라루스 사전'에 있는 인체 해부도와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비교하며 얼마나 자랐는지, 얼마나 아버지의 몸을 닮으려 했는지 알 수 있죠.

 

어렸을 적부터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꽤 발랄하고 야한 구석이 있습니다. 주인공을 돌봐주던 비올레트 아줌마, '도도'라는 주인공의 상상 속 동생, 주인공의 친구 티조, 팡슈 등과 함께 한 모습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죠.

 

135개월 61937316일 화요일

아빠가 미리 얘기해줬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일이 닥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난 잠에서 깨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잠옷 바지가 젖어 있었고 두 손도 온통 끈적끈적했다! 이불에도 묻어 있었다. 사실상 온 사방에 묻어 있었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퇑 뛰었다. 바지를 벗으면서 난 아빠가 얘기해줬던 걸 떠올렸다. 그걸 사정이라고 해. 밤사이에 그 일이 일어나더라도 겁먹지 마라. 다시 오줌을 싸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그건 새로운 미래가 시작된다는 신호야. 놀라지 말고 얼른 적응하는 편이 나아. 넌 앞으로 평생 정자를 만들어낼 테니까. (후략)

(53)

 

2319461010일 목요일

(전략)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가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 몸뚱아리도 나처럼 발가벗은 채였는데 따스했다. 포동포동한 데다 더할 나위 없이 여성적인 몸. 그녀의 말은 세 마디가 다였다. , 움직이지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고는 날 삼켜버렸다.

(중략)

모든 게 끝났을 때, 그녀는 내 귀까지 미끄러져 올라오더니 속삭였다. 팡슈가 네 생일이라고 해서. 나 정도면 괜찮은 선물이 아닌가 싶더라고.

(146~147)

 

모나와 결혼하고, 아들(브뤼노)과 딸(리종), 손자(구레구아르)와 손녀(파니와 마르그리트)를 얻은 주인공 ''는 서서히 늙음을 겪는데요. 자연스레 일기도 진지한 분위기로 접어듭니다. 젊은 시절의 발랄함과 180도 다르지요.

 

535개월 21977312일 토요일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 내 목욕의 변천사를 한 차례 정리해봤다. 여덟아홉 살까지는 비올레트 아줌마가 날 '씻겨주었다.' 열살에서 열세 살까지는 씻는 시늉만 했고, 열다섯 살에서 열여덟 살까지는 욕실에서 몇 시간씩 보냈다. 오늘 난 일터로 달려가기 전에 샤워를 한다. 은퇴하고 나면 늘어져 있게 되진 않을까? 아니, 습관이 무섭다고, 나 혼자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는 한은 샤워가 잠을 깨워줄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병원에서, 면회가 금지된 시간에 간병인이 날 씻겨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누군가가 내 시신을 닦아주겠지.

(300~301)

 

869개월 162010726일 월요일

우리 몸은 끝까지 어린아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

(471)

 

앞에 말씀드렸듯이 이 책을 밤에만 읽었습니다. 자주 빼먹긴 했지만 오랜 기간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가진 야함, 발랄함, 진지함을 모두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죠. 처음 읽을 땐 쑥스러움과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같은 남자가 남자의 몸을 읽는다는 게 아무렇지 않더라도 세밀하게 훑어보기 쉽지 않았으니까요. 성장하는 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다 늙어감과 죽음을 서서히 느끼니 책을 읽는 저 스스로의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야함 혹은 발랄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쓰기 힘든 데 한 남자의 인생을 다루니 알 것 같았습니다. 하나만 썼으면 이런 작품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홀로 두고두고 읽어도 좋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마음을 나누며 읽을 만한 '몸의 일기', 전 별 5개를 과감히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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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5-11-1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꾸준함이 관건인거 같은데 몸의 일기는 번뜩이는 상상력과 독특한 주제 설정으로 재미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즐거운 책이지 않을까 싶네요. 충실한 요약과 서평 감사합니다. ㅎ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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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사원, 신문사 해외통신원, 공공기관 직원, 신문 칼럼니스트, 방송토론 진행자, 국회의원, 장관, 작가 등등...

 

다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해왔던 일입니다. 그러면서 실력을 키운 게 있었으니 바로 글쓰기입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 길 펴냄)은 그가 오랫동안 했던 일의 노하우를 담은 책이죠.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 광고문구

 

저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 국가란 무엇인가, 청춘의 독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알 수 있듯, 유시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각자 호불호가 나뉩니다. 그럼에도 깔끔하면서 뚜렷한 논리와 필체는 무시할 수 없죠.

 

글쓰기에 대해 이 책에서 한 이야기는 대부분 내가 직접 겪었던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는 이렇게 해서 글을 잘 쓰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그런 이야기다.”

- 13글쓰기가 두려운 그대에게

 

여기 나온 내용은 책에 언급했듯이 수행평가나 논술, 리포트, 기사와 사설, 칼럼, 블로그 글 등 다양한 글쓰기를 쓰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입니다. 논증, 철칙, 책읽기, 외래어·한자어 오남용 피하기 등 두고두고 읽으며 공부할 만한 이론이 이야기 속에 담겼죠.

 

많이 읽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많이 읽을수록 더 잘 쓸 수 있다.”

- 78‘2. 글쓰기의 철칙에서

 

단문 쓰기만큼 중요한 것이 어휘선택이다. 말하려는 뜻을 명확하게 표현하려면 꼭 맞는 단어를 써야 한다.”

- 204‘5. 못난 글을 피하는 법에서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 260‘7. 글쓰기는 축복이다에서

 

이 책 속에 적힌 내용은 다 읽기 쉽고, 알찹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글쓰기 비법을 슬쩍 던져주는가 하면, 기존의 책이나 연설문 등을 인용하며 알맞게 고칩니다.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책이죠. 한번이 아닌 여러 번을 읽고, 빌려서 14일만 읽는 게 아니라 사서 두고두고 읽는다면 쉽게 독파할 겁니다.

 

친근하게 이야기하듯 글쓰기를 다루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제목만 봐도 설레지 않나요? 저는 이 책을 자신 있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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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5-10-2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글쓰기 경험을 통해 재미있는 한편의 이야기와 노하우까지 전해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체계적인 분류성(?)은 약간 부족해보이는 듯도 하나 쉽고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풍운아 채현국
김주완 지음 / 피플파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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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하면 떠오르는 표현은 뭐가 있을까요?

 

고집이 세다’, ‘귀나 눈이 멀다’, ‘어려운 말을 주로 쓴다’, ‘보수적이다

 

하지만 그런 관념에 맞서 거침없는 인생을 사셨던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십니다.

 

요즘 핫(Hot)하다는 할아버지

바로 채현국 양산 효암학원(양산 개운중학교, 효암고등학교) 이사장입니다. 나름의 철학과 개념을 가지고 인생을 사셨는데요. 이미 몇몇 언론과 인터뷰도 했었죠. 제가 소개할 책도 이 분과 인터뷰를 했던 내용을 다뤘습니다. 이름하야 풍운아 채현국(김주완 기록, 도서출판 피플파워 펴냄)!

 

오척단구 거한, 당대의 기인,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 가두의 철학자, 발은 시려도 가슴은 뜨거웠던 맨발의 철학도,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열 손가락에 들었던 거부(巨富),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한 채 씩 사준 파격의 인간,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 책표지 뒷면 홍보문구

 

이만한 수식어로 표현이 모자라는 분이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표현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책으로 남기겠다고 하자 자신을 훌륭하다든지 근사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쓰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만일 그런 식으로 자신을 미화시키거나 하면 불 싸지르라며 화를 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3비틀거리며 왔지만 그래도 수지맞은 삶에서(175)

 

1935(호적엔 1937) 태어나신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세운 흥국탄광을 물려받고, 아버지와 해인대학을 인수해 마산대학(현 경남대학교)으로 발전시키는 등 나름 사업을 하셨던 분입니다. 하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과 결탁해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양심을 택하고, 사업을 정리하셨습니다. 마산대학도 국가에 헌납을 하려 당시 문교부장관에게 넘기고(이후 박종규에게 넘어감) 지금은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소박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그럼 채현국 할아버지의 인터뷰를 살짝 맛볼까요?

 

나는 첫째 언론인 된 놈들은 전부 다 쓰레기다. 지 똑똑하고 지 잘하는 걸로 먹고 살겠다는 거지.” - 2사업 성공과 정리, 친구들이 남았다(116)

 

이사장님이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돈이 최고가 아닌 사회?

다양한 가치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계산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156)

 

워낙 사람을 좋아하시고 친하려 하시는데, 이사장님도 딱 이런 사람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부류가 있습니까?

이제 나이 먹으니까 점점 더 있죠. 막 생깁니다. 제일 싫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체 하면서 전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귀 안 기울이는 사람, 친한 체 하고 이해하는 체 하면서 나이 먹으면 자기 폐쇄 속에 삽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덜 합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폐쇄적이라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 다 속이고 삽니다. 그래서 나는 나이 먹은 사람 별로 안 좋아합니다.”(164)

 

이 인터뷰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도 이 할아버지처럼 양심을 지키고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통 사업을 물려받으면 유지하거나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데 말이죠. , 해직기자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산으로 기꺼이 집이나 쉼터를 마련했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계속해서 이런 개념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도 느꼈고요.

 

말이 필요없는 이런 할아버지를 누가 비난 할 수 있을까요? 한번 읽고 또 읽어도 가치가 있는 이 책을 감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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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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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스무살 무렵, 백석의 시 모닥불이 처음 내게 왔다. 그때부터 그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 7쪽 서문 백석을 베낀 시간들에서

 

시인 안도현은 백석을 동경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를 따라 순수시를 많이 발표했던 안도현은 그에게 바치는 일대기 백석 평전(다산북스 펴냄)을 펴냈습니다.

 

191271,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백석은 1935년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년 뒤 생애 최초 걸작으로 불리는 시집 사슴을 발표했었네요. 벌써부터 그의 매력과 순수가 묻어나는 군요.

 

이 책은 백석의 전 일대기를 다루었습니다. 조선일보, 영생고보, 만주를 거쳐 고향이 있는 북한에서 말년(1996년 별세)을 보낼 때까지 관련 자료를 수집해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할까요?

 

백석이 북한에서 창작과 번역활동을 하다 점점 북한 내 문단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예전에 백석의 말년을 알길없다 이제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백석 같은 문인은 북한에서 왜 밀려나야할까라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삼수군에서 농활을 하고, 북한 정부에 기대야했던 그였지만, 어떻게 하면 정치적 색이 덜한 작품을 쓸까를 고민한다던지, 조금씩 북한의 문단 분위기에 맞서는 모습에 희망도 가져봤고요.

 

무엇보다 백석의 일대기를 있는 그대로 담으면서 순수의 눈으로 관찰한 안도현의 매력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백석은 식민지로 오염되고 왜곡되기 이전의 고향, 즉 시원의 순결성을 가지고 있는 고향과 고향의 방언에 착안했다. 고향의 말인 방언이야말로 몰락의 길로 치닫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지켜낼 수 있는 하나의 시적인 연설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고 그는 판단했다.

- 99사슴은 문단에 던진 포탄에서

 

우리는 백석이 북한에서 아동문학 논쟁을 통해 문학의 자율성과 미학주의를 주장한 마지막 시인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의 지도 아래 놓인 북한의 문학을 조금이라도 더 보편적인 미학의 논리로 되돌려 놓겠다는 그의 문학주의는 결국 꺾일 수밖에 없었다.

- 413그리하여 사라진 이름에서

 

제 필력이나 짧은 소감으로 감히 백석 평전을 논하기 힘들었습니다. 백석이 살아온 일제강점기~북한정권 하에서 표현하려던 순수와 다양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시원하게 표현한 안도현의 기록을 어떻게 재미있게, 솔직하게 담을까를 생각했죠.

 

읽기는 가벼웠지만 쓰기가 무거웠던 백석 평전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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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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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8976962834_f.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68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2년 12월 03일 오후 12:01

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7.0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조선을 떠나며(이연식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의 부제입니다. 1945815일 이후,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아 기뻐했지만, 그곳에 있던 일본인들은 조국의 패전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패전의 멍에를 진 일본 정부의 어쩔 수 없는 무능함과 본토인의 멸시로 환영받지 못하는 같은 민족의 이방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히키아게샤(引揚者)’입니다.

 

2차 세계 대전 까지의 시대에 타이완 · 한반도 · 남양 제도 등의 외지, 일본에서 많은 이주민을 보내고 있던 만주, 소련 침공으로 인해 실효 지배권을 잃은 남쪽 사할린 등으로 이민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이 일본군의 패배 (항복)에 따라 일본 본토에 돌아간 사람을 가리킨다.

- 위키백과 항목

 

이 책은 히키아게샤, 특히 우리나라에 살았다가 떠나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들을 흔히 식민자또는 지배자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식민지에서 강제로 추방된 패전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자국 동포로부터 인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자국 동포로부터 식민지 사람들을 착취하여 호사를 누른 대륙 침략의 첨병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잇따른 공습과 패전으로 거의 만신창이가 된 일본 사회는 이들을 본토인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식량이나 축내는 마뜩잖은 민폐 집단으로 무시했다.

- 6책머리에

 

일본 본토에서 대부분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당시 일제의 식민지로 이주해 뿌리내렸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이주하였고 대부분 지역의 노른자 땅에서 한마을을 이루었죠. 옛 지명이었던 혼마치(本町, 지금의 충무로), 메이지초(明治町, 지금의 명동)가 대표적인 일본인 동네였습니다. 대대로 살면서 자연스레 자기 나라 땅이라 여겼고, 같은 일본인끼리 만나던 터라, 자연스레 외곽지역에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들이 왜 우리나라에 계속 있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 살았던 일본인은 어쩔 수 없이 본토로 돌아왔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주지 못했고, 본토인도 어렵게 살아야 했던 상황에서 이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식민지에서 잘 살다 왔다, 전염병을 옮기러 왔다는 식으로 경멸했죠. 한때 자신의 터전이었던 옛 식민지에서 쫓겨났고, 돌아온 본토에서도 온갖 차별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국가에 대한 나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귀환자·제대군인·소개민은 전후 일본의 열등국민으로 전락했다. 그중에서 특히 해외 귀환자는 본토인의 뿌리 깊은 편견으로 인해 혼처를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중략)

패전 후에는 이러한 선입견 위에, 본토인에게 민폐만 끼치는 귀환자라는 또 다른 차별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 190~1916모국 일본의 배신동포에게 당한 배신에서

 

우리는 일본인하면 우리나라를 착취한 나쁜 놈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들에게 심한 착취를 당했고, 역사교육을 통해 그런 이미지를 굳혀나간거죠.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했던 만큼 일본인 귀환자들이 혹독하게 당하는 모습에서 한 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들도 어쩌면 같은 처지의 사람일텐데...’

 

우리는 어쩌면 일본인 귀환자들의 처지를 영영 이해하지 못하고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을 떠나며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인식을 넓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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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기가 2016-08-1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되는데,, 일본인 귀환자들이 당시 핍박받던 조선민중들과 같았다니. 큰일 날 인식을 하고 계신 분이시네요. 어디가서 그런 소리 하지마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