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잰 몬틸로의 <The Lady and Her Monsters: A Tale of Dissections, Real-Life Dr. Frankensteins, and the Creation of Mary Shelley's Masterpiece(귀부인과 괴물들: 해부, 실제 세계의 프랑켄슈타인 박사, 메리 셸리의 걸작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William Morrow, 2013)를 읽었다.
메리 셸리와 주변 인물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당대에 과학, 의술이 발전하면서 해부학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져 시체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벌어지는 일들도 같이 들려준다. (시체도굴업이 성업했을 뿐 아니라 시체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살인을 일삼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메리 셸리 이야기와 시체 해부 이야기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시체를 꿰매어 괴물을 만들 때처럼 말끔하게 이어져 봉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야기가 각자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는 하나 왜 굳이 병치했는지 알 수 없게 끝까지 겉돌고 이야기가 깊어지지를 않는다. 재미있게 읽긴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우리의 '불쌍한 폴리도리'가 나오는 6장이다.
이름마저 귀여운 폴리도리가 누구인가 하면, 최연소로 명문 에딘버러 의대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젊은 의사였으나 스무 살 때 바이런 경을 만난 뒤로 인생의 내리막길을 죽 가게 된 불운한 사람이다. 얼마나 불쌍한 인생을 살았는지 이 사람에 관한 유일한 책의 제목이 <불쌍한 폴리도리Poor Polidori: A Critical Biography of the Author of "The Vampyre">일 정도다.
사실 폴리도리는 의학에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역시 의사인 아버지의 강압에 따라 의대에 진학했기 때문에,의대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의료업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폴리도리에게는 의사보다는 작가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러니 그때 미모와 문재와 방탕함으로 이름 높은 바이런 경이 유럽으로 여행을 갈 때 같이 동반하여 바이런 경의 건강을 돌보아줄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런과 교류는 폴리도리에게 문필가가 될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주로 좌절감과 굴욕감을 안겨주었던 모양이다. 바이런 경은 오만하고 까탈스럽고 선병질적인 성격이고 폴리도리는 철이 없고 세련되지 못하고 짜증을 유발하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짐작되니 두 사람이 잘 지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폴리도리의 문학적 야망의 행로에 대해서는 같은 범속한 인간으로서 서글픈 공감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바이런은 스위스 제네바로 가서 퍼시 비시 셸리 일행과 합류한다. 셸리는 그때 연인인 메리 고드윈과 메리의 이복누이 클레어 클레몬트와 같이 있었다. 이름난 시인 셸리야 말할 것도 없고, 메리 고드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최초의 페미니스트 저술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문필가 윌리엄 고드윈의 딸이며 나중에 셸리와 결혼하여 메리 셸리가 된다. 그러니 폴리도리의 말을 빌면, 그 사이에서 자기는 "달무리 안에 든 별"처럼 도무지 빛을 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바이런은 아폴론, 셸리는 아도니스 같은 외모를 지녔으니 오징어가 되는 경험까지 했을지도 모르겠다.) 바이런이 셸리와 철학적인 대화를 나눌 때 폴리도리는 거기에 끼지 못했고 무시 당하고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왕따가 된 폴리도리는 유곽이나 도박장을 찾아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간혹 작품을 써서 바이런, 셸리, 메리, 클레어와 같이 모인 저녁 시간에 낭독하기도 했지만 "무가치하다"는 가차 없는 평을 들었고 잔인한 천재들이 폴리도리의 작품을 가지고 두고 두고 놀려 먹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이런 일이 있었다. 폴리도리가 메리에게 푹 빠졌다는 것을 알고 바이런이 담을 넘어 셸리 일행이 걸어오는 길 쪽으로 뛰어내리라고 폴리도리를 부추겼다. 담을 훌쩍 뛰어 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메리가 반할 거라고 하면서. 폴리도리는 연애 전문가인 바이런의 충고를 받아들여 무용을 과시하려 했으나 생각만큼 멋지게 착지하지 못했고 롱에지에 그친 정도가 아니라 그만 발목을 삐어 망신살만 뻗치고 말았다.
폴리도리가 다리를 삔 날이 <프랑켄슈타인>이 태동한 그 운명적인 날이었던 것 같다. 일당이 저녁에 응접실에 모여 앉았고, 폴리도리가 자작 희곡을 읽자 사람들이 비웃었고, 바이런 경이 '우리 모두 저마다 유령 이야기를 하나씩 쓰자'고 제안한 날이다. 메리 셸리의 기록에 따르면 "불쌍한 폴리도리는(아마 폴리도리 전기 제목인 '불쌍한 폴리도리'가 여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구멍 안을 엿본 벌로 머리가 해골이 된 여자에 관한 끔찍한 아이디어를 냈다... 나도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프랑켄슈타인>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그 날, 바이런의 장난스러운 제안이 메리가 작가로서 첫발을 떼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그런데 그날은 메리뿐 아니라 폴리도리의 문학적 삶에서도 중요한 날이었다. 폴리도리도 (해골여인은 포기하고) <뱀파이어The Vampyre>라는 작품을 썼던 것이다. 이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과정도 특이하다.
바이런과 씁쓸하게 헤어져 영국으로 돌아온 폴리도리는 어느 날 <뉴먼슬리 매거진>이라는 잡지에 "바이런 경이 쓴 <뱀파이어>"가 실린 것을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작품이... 자기가 쓴 소설이었다. 누군가가 제네바에서 폴리도리가 쓴 소설 원고를 발견하고 바이런 경이 쓴 것이라고 착각하여 잡지사로 보낸 모양이었다. 바이런 경은 설마 내가 '그런' 글을 썼겠냐며 코웃음을 쳤고 잡지사에서는 바이런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철회해야 했다.
하지만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바이런이 그랬던 것처럼 쉽게 코웃음을 쳐서 무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작품성이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고, 뱀파이어를 단순히 피 빨아먹는 괴물이 아닌 "섹시하고 매력적인 귀족"으로 설정한 선구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바이런이 아니라 폴리도리임이 인정된 뒤에도 <뱀파이어>는 인기를 누렸고 덕분에 여심을 흔들어 놓는 뱀파이어의 전통이 수립되고 계보가 이어져 브램 스토커의<드라큘라>에서 완성되어 오늘날 <트와일라잇>까지 줄곧 이어진 셈이다.
그뒤 폴리도리의 삶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제네바에 있을 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도박장에 드나들었으나 워낙 허술한 사람이라 돈을 잃기 일쑤였고 큰 빚을 졌다. 의사로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환자가 죽어 나가 평판이 나빠졌고 병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결국 음독자살로 25세의 짧은 일기를 마감한다. 불쌍한 폴리도리.
폴리도리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 매력을 지닌 시니컬하고 카리스마 있는 귀족 뱀파이어 캐릭터 '루스벤 경'은 바이런을 쏙 닮았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생명의 신비에 관한 비전의 지식, 연금술 등에 탐닉하던 퍼시 셸리를 여러모로 닮았다('빅터'는 셸리가 어릴 적에 즐겨 쓰던 이름인 데다가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인데 프로메테우스는 퍼시 셸리의 자아이기도 하다. "결박이 풀린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Unbound"라는 시가 있다). 후기 낭만주의의 최고봉이라는 두 시인, 그들의 이상주의, 낭만성, 감상성, 숭고함, 열정의 이면에 괴기스러움, 잔혹함, 파괴성, 공포, 어두운 욕망이, 낮과 밤이,꿈과 현실이 공존하는 백일몽 혹은 몽유병처럼, 샴쌍둥이처럼 함께 깃들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메리 셸리의"괴물들"은 시체장사꾼들이 아니라 바이런과 셸리같은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닌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 "파괴적 이상주의자"들일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애를 만들어 놓고 책임은 지지 않는 남자들(셸리와 바이런은 둘 다 유부남이었고 클레어 클레몬트가 낳은 아기는 아버지가 바이런인지 셸리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이,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저버리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이다. 그 괴물들과 사회적 생물학적 굴레에도 '불구하고'메리 셸리는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 괴물들 '덕분에' 쓸 수 있었던 걸까?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집필에 퍼시 셸리는 손가락 하나도 거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셸리가 모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메리 셸리는 낭만적 이상, 결박 풀린 상상력, 진보와 미래에 대한 기대감 이면의 무모하고 섬뜩한 광기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