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은재 사계절 아동문고 100
강경수 외 지음, 모예진 그림 / 사계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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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코로나로 매몰된 채 1년하고도 반이 되어간다. 세상은 힘들고 사람들의 마음은 각박해지고, 여러 편으로 갈라서 나와 다른 곳에 서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다투고.....

아이들은 그 시간을,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뉴스에서는 하루도 코로나 이야기를 거른적이 없다. 이야기에 '아이들'은 얼마나 등장했을까. 등교중지, 등교시작, 온라인수업의 폐해, 매체에 중독되는 아이들 같은 뉴스거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본 어른들은 얼마나 될까.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다.

여섯편의 이야기에 그런 아이들의 시선을 담은 거 같아 서늘하고, 부끄럽고, 안타깝게 읽었다. (정의로운 은재)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과 소용없는 짓일지 몰라도 그걸 지켜보려는 사람들, (그 날밤, 홍이와 길동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어른들 나아가 그 어른이 부모일 때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떨까, (골목이 열리는 순간) 재지않고 순수하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내 친구를 만드는 일이 제일 어려운 세상, (살아 있는 맛) 사육장에 동물들을 가두어 기르듯이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우리도 그렇게 갇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손톱끝만큼의 이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커녕 자신만 이해받고 싶어하는 어른들 또는 무관심한 사람들- 그게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바이, 바이)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진짜로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이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

오늘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음을 묻는 이야기를 건네봐야겠다.

바다 말대로 양동이를 쓰는 건 언제나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난 후였다. 찬물을 한 번 뒤집어쓴다고 못된 마음이 마법처럼 녹아 없어지지도 않았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은재는 알았다. 모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겠지. 양동이가 없는 다른 곳에서. 그렇다면 지금껏 은재가 한 일은 뭐였을까? 은재의 속마음만 시원해질 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그러면....은재는 바다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러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오하림_정의로운 은재) - P26

우리 안에는 좋은 마음도 있고 나쁜 마음도 있어. 나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아주 못된 짓을 하기도 하지.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좋은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면, 아버지도 오늘 일을 틀림없이 후회할 거야."
"흥, 나중에 후회를 하든지 말든지."
"길동아, 우리가 세상의 나쁜 마음들을 다 혼내 주자..(진형민_그날 밤, 홍이와 길동이) - P58

내 머리를 위해서라도 잘못 본 게 아니면 좋겠다. 엄마도 반가워할 텐데. 혹시 나처럼 그걸 본 애가 있을까. 내 머리가 멀쩡하다는 걸 증명해 줄 사람. 단 하나라도.

‘그런 애가 있다면 내가 평생 친구로 인정할 거야. 그런 애면 돼, 내 친구는. 진짜로 봤으면 어떻게, 상상이면 어때. 나한테는 다를 게 없는걸. 어차피 세상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잖아. 나는 내가 본 걸 믿을래. 그때 분명히 가슴이 막 설레고 행복했단 말이야. 그걸 본 애가 하나도 없다면, 그때 행복해질 권리는 나한테만 있었던 거야!‘(황선미_골목이 열리는 순간) - P72

어두운 거리와는 달리 집집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집집마다 안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실과 수업 때 봤던 닭장과 돼지사육장이 떠올랐다. 층층이 쌓인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 모습이 사육장에 갇힌 동물들과 벼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모두 다 청결과 위생에 힘쓰는 공간이었다. 살아있는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농장 주인의 말도 떠올랐다. 사람들이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니 거꾸로 동물들이 사람들을 집에 가둔 것 같았다. 이제 사람들도 살아 있는 맛이 날까? (전성현_살아 있는 맛) - P114

전광판 화면에 ‘평화는 힘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에 의해서 이루어질 뿐이다.‘라는 글이 떴다. 이해가 없으면 평화는 유지되기 힘들다고?
나는 할머니가 기를 쓰고 시위에 나가는 이유도, 아빠가 그런 할머니를 못마땅하게만 여기는 이유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엄마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손톱 끝만큼도 서로 이해하려 들지 않는 우리 집에서 더 이상 나 혼자 애쓰고 싶지 않다.
‘왜 나만 이해해야 해!‘(최나미_손톱 끝만큼의 이해) - P142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수한 별들이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나와는 상관없어질 아름다운 광경. 이 거대한 우주의 수많은 생명체 중 나의 존재가 지워져 간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우주는 팽창하고 은하는 반짝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별들이 더 아름다웠다. 왜 이전에는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을 안했을까? 왜 다이빙대에서 돌아섰을까? 왜 친구들과 다투었을까? 왜 사랑한다는 말을 아꼈을까? 왜 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야,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 자세히 발견했을까.(강경수_바이, 바이)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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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재능이 엿보인다고, 좋은 기회를 주겠다고, 나에게 관심있어할 사람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후하게 제시하는 사람을 그냥믿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경험 부족에서 비롯한 잘못된 판단으로, 유명하고 힘있는 남자의 손에 떨어진 여러 여성 중 한 명이었다. 단지 내가 그중 마지막이었다는 것이 그 모든 오해를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말하고자 한다.
나는 그를 파멸시키지 않았다. 그는 나를 사랑해서 죽은 게 아니다.
-『사랑은 아무 관련이 없었다』(2000)에서 - P105

경아는 오래전에 식어버린 커피와, 오래전에 끝난 대화를 하와이에서 곱씹었다. 만약에 경아가 완벽한 코나 원두를 사서 엄마가좋아하던 묵직한 미국식 머그에 내려 제사상에 올리면 죽고 없는사람이라도 웃을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유머였으니까. 엄마, 그때 말했던 그 코나 원두야, 하고 죽고 없는 사람을 웃게 하고 싶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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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엄마가 젊었던 시절 이 섬을 걸었으니까, 우리도 걸어다니면서 엄마 생각을 합시다. 엄마가 좋아했을 것 같은 가장 멋진 기억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 P83

"나 결심했어. 할머니 제사상에 완벽한 무지개 사진을 가져갈거야."
"뭐?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하는 거야?"
지수의 결정에 우윤은 깔깔 웃었지만, 속으로 자신도 결정했다.
완벽하게 파도를 탈 거야. 그 파도의 거품을 가져갈 거야.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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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가 굳이 사랑이니 외로움이니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다……… 열여덟의 아들을 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예쁜 우리 엄마 때문이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혼자서 나릿나릿 걷고 있는 작은 뒷모습이보인다. 엄마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을까? 사랑이나 연애 같은, 젤리처럼 말랑하고 탄산처럼 톡 쏘는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을까? 엄마에게도 진짜 파트너가 필요한 것 같다. 아들이 아닌 배우자로서의 남자 말이다. - P14

그건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잘 살든 못 살든 혼자 다 책임져야 하니까. 만약 엄마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엄마의 삶은 조금 더 나아졌을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 P32

"세상도 그래요. 아기를 포근포근하게 감싸 주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절대 기죽을 필요 없어요. 여러분은 누구보다 반짝이는 사람이니까."
각자가 만든 머리핀과 브로치를 자랑하며 우리는 그 반짝이는 것들을 서로의 머리와 가슴에 달아 주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고, 기죽을 필요 없다고, 우리도 다시 반짝반짝해질 수 있다고 꼭 그런 삶을 만들자 다짐하면서. - P53

나는 정확한 시급 외에 모든 돈을 다시 금고에 넣어 두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한 만큼만 받고 싶었다. 남에게 괜한 호의를 받는 게 싫었다.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기 싫었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사람들은 내게 다른 시선을 던지니까. 그 누구도 나를 보며 혹은 엄마를 향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가급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크게 모나지 않도록, 딱히 문제 될 리 없도록 하루하루 성실하게만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가 미혼모와한 부모 가정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은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낸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다름과 틀림을 똑같이 여기곤 한다. - P59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런 것 같아. 그냥 요철이나 장애물 없이 잘 닦인 고속도로 위에 오르는 것. 좋은 대학 나오고 취업에 유리한 학과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거. 몇 살쯤에 결혼하고 아기는 몇 살에 낳고 집은 언제 사고, 이미 시뮬레이션까지 완벽하게 끝낸 삶을 그냥 따라가는 거. 다른 길 볼 것 없이 잘 닦아 놓은고속도로로 무조건 진입해. 그게 가장 안전하고 빨라."
"하지만, 더 이상은…..."
"알아,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이제 고속도로도 없어졌을뿐더러 설령 간신히 그 길에 올랐다 해도 전처럼 얌전히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진 않아."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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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그 아픔을 딛고 한층 더 성장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혹은 고정관념이 있다고. 왜 꼭 가족의 죽음을 극복해야만 하고 그것이 성장의 발판이 되어야만 하느냐고, 슬프면쭉 슬픈 대로, 회복하지 못하면 회복하지 못한 대로 남겨둘수도 있는데." - P55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는 것은 어렵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어려운 그 기분. 그런 기분이 찾아올 때 나는 주로 질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수현을 생각할 때나 곡 작업이 안 풀릴때, 돈이 너무 없을 때에도 그렇게 질 수 없다는 말을 되뇌었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래서 내가 결국 이긴 건지 진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은 누구를 상대로 ‘질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질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 P61

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바르게 ‘저는 잘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질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심보선 시인은 시는 두 번째 사람이 쓰는 거라고 했다.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거라고.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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