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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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약을 먹어주었으니까.˝ 백수린 작가의 반려견 봉봉이와의 이별 장면에서 엎디어 펑펑 울어버렸다. 내가 사랑이라 믿은 그 사랑을 끝까지 지켜주려 했던 상대의 그 마음이 떠올라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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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08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백수린 작가의 책을 한 권 읽다가 포기했고 그래서 이 에세이에 관심도 없었는데 블랑카 님의 이 백자평으로 완전 읽고 싶어졌어요. 담아갑니다.

blanca 2022-12-08 17:35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사실 저도 이 작은 에세이집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요, 주책 맞게 막 엉엉 울게 만드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속수무책으로다가요. 사랑이었어요. 사랑...
 

평온한 일상은 영원하지 않다. 단단하지 않다. 언제나 허물어질 수 있다. 팔자가 사나워서도 내가 특별해서도 아니다. 그건 내가 보편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퇴락하고 소멸한다. 그 유한성에 도전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빛나는 아이돌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독재자도 언젠가 반드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예외는 없다.


그러나 이 생각을 맨날 하며 살 수는 없다. 대부분 대체로 잊고 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무언가 잠입한다.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이 바보야,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너조차. 그런데 고작 그런 걸로 고민하다니, 그러면서. 





















"카버가 카버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11편의 단편은 하나하나가 어둠 속의 날카로운 섬광처럼 나를 찌른다. 이런 게 삶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계속 살 거야? 라고 내 어깨를 쥐고 흔든다. 


표제작인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은 유독 그렇다. 어느 날 새벽에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 그게 사건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중년의 재혼한 부부는 그 전화에 잠이 확 깨어 뜬금없이 생의 유한성에 대해 그리고 내가 비참하게 죽을 확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때 스위치를 끌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그 고통스럽고 모두가 최후까지 유예하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공개 토론을 마침내 벌인다. 침대 위에서. 부인은 생의 존엄만큼 죽음도 그러하기를 바라며 옆의 남편이 기꺼이 생명유지장치의 스위치를 꺼 주기를 바라지만 남편은 다르다. 끝까지 그걸 유지해 달라고 기꺼이 비참해져도 좋으니 생의 끝까지 그 유지장치를 유지해주기를 바란다. 이 서로 다른 의견은 그러나 종국에는 같다. 


우리는 우리만큼은 끝까지 괜찮기를 바란다. 어떤 일이 닥쳐도 그렇게 금방 그런 고통스럽고 비참한 선택의 순간에 당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바람이다. 카버는 잔인하지만 그걸 끝까지 말고 나가는 작가다. 어이, 친구, 너라고 예외일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숨을 잠깐 멈춘다. 정말 하기 싫은 대답을 요하는 질문. 나는 끝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비겁하니까. 나는 진심으로 죽음이 두렵다. 그것에 관한 무언가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죽을 만큼 두렵다. 그래서 카버에게 대답할 수 없다. 나도 몰라, 생각하기 싫어.


"동생에게 그 돈을 주는 게 실수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코끼리>는 이렇게 동양적 정서를 지닐 수 있을까 싶었다. 분명 그 개인주의 최선봉인 미국 작가인데 신기하게도 농경사회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그 가족 전체의 끈끈하고 도저히 분리하기 힘든 경제적 의존, 공생, 기생 관계에 대한 그 복잡한 결을 하나하나 드러내는데 정말 낯선 풍경이 아니다. 끊임없이 돈을 빌려 달라 하고 갚지 않는 실패한 동생, 나의 죄책감에 호소하며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아가는 어머니, 심지어 다 큰 성인 자식들까지 학업을 핑계로 혹은 무능한 남편을 내세워 이 성실한 육체 노동자 사내에게 들러붙어 끊임없이 돈을 달라 요구한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오면 이 이야기는 그저 진부해졌을 수도 있다. 카버는 당연히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날 사내가 꾼 꿈. 꼬마가 되어 아버지의 목마를 타는 꿈. 다리는 아버지에게 감았지만 두 팔이 자유롭던 가장 이상적이었던 가족 간의 거리, 유대는 아이들이 크고 내가 늙으며 산산이 부서진다. 가족 간의 끈끈함은 위태롭다. 그것은 사랑이기도 하지만 내가 훨훨 날아갈 수 없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누구든 그 어느 지점에서 괴롭다. 그럼에도 거기에서 어딘가로 날아갈 수 있는 지점을 카버는 알고 얘기한다. 그의 결말은 그래서 소중하다. 불가능할지라도 잠시 꿈꿀 수 있는 거기에서 아름다운 승화를 발견한다. 이건 무책임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아들 부부에게 외로움과 삶의 고통을 호소하며 끊임없이 죄책감, 부책감을 자극하는 그렇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늙은 어머니에 대한 "가슴앓이"를 보여주는 <상자들>의 결말은 현관에 불을 켜두고 들어갔다 다시 나와 끝내 그 불을 꺼버리는 이웃을 우두커니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아들의 쓸쓸한 마음의 형상화다. 


그러다 기억을 하고, 불이 꺼진다.

-레이먼드 카버 <상자들>


카버를 읽고, 불이 꺼진다. 그건 카버를 읽기 전의 소등과는 다르다. 뭔가를 보고 듣고 느낀 후의 소등은 카버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다. 더 무겁고 더 처절하지만 무의미하지 않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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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blanca 2023-01-09 18:30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thkang1001 2023-01-0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blanca 2023-01-09 18: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 되찾은 시간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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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릴 시간을 살고 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내가 잃어버린 나의 시간을 찾을 수 있는 읽기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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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6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을 완독했다. 이로써 2012년 9월부터 시작됐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번역가 김희영 교수님의 번역 속도에 맞춘 10년여의 읽기였다. '오랜 시간'으로 시작한 책은 '시간 속에서'로 맺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을 중심으로 축조된 언어의 대성당이다. 침대에서 어머니의 밤인사를 기다렸던 소년은 어느새 '늙은 남자'가 되어 그때는 절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진정한 의미의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며 자신이 평생을 바친 문학의 완성을 목전에 두게 된다. 그것은 사물의 감각을 향유함으로써 실재에 가닿게 되는 그 지난한 과정의 결실의 에피파니에 다름 아니다. 화자가 마침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는 순간이 뭉클하다. 시간 속에 살며 그 침식 작용과 붕괴에 대항할 수 없는 육체에 갇힌 우리들이 그것을 넘어가서 영원을 목격하게 되는 찰나를 선물하기 위해 프루스트는 온생애를 바쳤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에는 프루스트가 왜 이 어마어마한 시간의 연대기를 기획하게 됐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죽음이 닥쳐오는 순간에도 죽음 그 자체보다 이 문학작품의 완결을 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했는지에 대한 내밀한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 주인공이 청년기에 선망해마지 않았던 게르망트 가의 귀족들이 시간 속에서 사회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점차 붕괴되어 가는 모습에 나타난 '시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그 잔인한 파괴력과 시간 바깥의 절대적인 실재의 발견으로 인한 전율의 아이러니한 대조는 프루스트가 예술을 통해 구현하려 했던 궁극의 아름다움에 대한 일종의 형상화다. 즉 사물의 바깥에서 구현하려 했던 의미와 사물의 이미지 앞에 놓여 있는 인간들의 구체적인 개별의 삶들을 통해 길항하는 생의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안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리지 않은 시간의 편린들을 모두 발견하는 찰나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본질적인 책, 유일하게 참된 책은 이미 우리의 각자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위대한 작가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발명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번역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의 임무와 역할은 바로 번역가의 그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프루스트의 훌륭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발견을 읽는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글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를 재발견해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사는 일에 바빠 놓친 그 수많은 개별적인 순간들과 빛나던 추억들의 세세한 풍경들을 연상시킴으로써 우리의 지나간, 잃어버린 삶을 재발견할 수 있는 거대한 지적 설계도를 펼쳐놓은 것이다. 따라서 그가 홍차를 마들렌에 적실 때, 그가 사랑했던 알베르틴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샤를뤼스의 기행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그와 유사하거나 그것들이 연상시키는 우리의 잃어버린 순간들을 재발견하고 마침내 우리 자신을 다시 읽게 되며 삶의 의미를 재발명하게 된다. 


중년의 남자가 나에게 인사했다. 그는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잠시 누군가 기억을 더듬다 비로소 나보다 두 살이 어렸던 동기의 얼굴을 떠올랐다. 나는 내가 이미 그 집단에 속하고 오히려 그 집단보다 더 늙었다는 사실을 타인을 통해 자각하고 내가 더이상 젊지 않다는 깨달음에 순간 아연해졌다. 이것은 마치 마르셀이 게르망트 가의 연회에 가서 그 수많은 늙음을 목격하고 그제서야 자신이 고정적으로 일관적으로 인식했던 동일한 젊은 시절의 자기가 더이상 아님을 깨닫는 순간과도 만난다. 알베르틴이 살아있었다면 그 소녀 시절의 빛나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은 사정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대신 질베르트와 생 루이의 열여섯 살의 딸이 마르셀이 추억 속에 간직한 첫사랑의 소녀들의 그 과거를 정확히 환기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 소망들은 세대를 가로질러 반복될 것이다. 존재는 시간 속에 현현하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영속한다. 그 시간의 바깥에서 그것을 스케치하려했던 작가는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의 소재로 승격시켰고 그것을 번역한 번역자는 비로소 우리 읽는 이들에게 그 작가의 의도와 노력의 결실을 건네 주었다.


지금 나의 순간들이 무의미로 흩어지지만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책.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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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26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10년간의 독서와 그 결실! 왠지 뭉클하면서 감동적이에요.
삶이 잃어버린 순간들을 독자 스스로 찾는 책이라니 이 책을 언젠가 저도 읽을 수 있을까요?

blanca 2022-11-26 16:50   좋아요 2 | URL
오늘 너무 기뻐 일기도 썼네요. ^^

붉은돼지 2022-11-26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완주를 축하드려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독하신 분 처음 뵙는 듯합니다. 아니 전에 한 분 계셨던것 같기도 하고.....저는 뭐 일단 완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만....(샀다가 팔았다가 다시 사고 있습니다.ㅋㅋㅋㅋ)

blanca 2022-11-26 16:52   좋아요 0 | URL
그냥 내가 뭘 성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잃시찾˝ 읽은 여자가 됐다는 자족감에 뿌듯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자랑했더니 ˝그게 뭔데?˝이러더라고요. 흑.

꼬마요정 2022-11-26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립니다^^
진짜 멋집니다. 잃시찾 완주라니... 정말 책도 경이롭지만 블랑카님도 경이롭습니다^^

blanca 2022-11-26 21:0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완독하고 싶었어요. 솔직히 아주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왜 사람들이 그렇게 이 책을 보통명사처럼 인용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뭔가 어떤 경지를 넘어간 책이더라고요.

새파랑 2022-11-26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긴 여정이셨을거 같아요. 전 10권까지 읽고 일단 3권 남았는데, 구매는 다 해놨는데 과연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요 😅 이제 시간은 안잃어버리는 것으로~!!

blanca 2022-11-26 21:07   좋아요 1 | URL
오, 10권까지 읽으셨으면 나머지는 순삭이죠. 왜냐면 분량 자체가 확 줄어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제가 1권부터 꺼내 봤는데 이 책은 초반부가 어렵고 나머지는 오히려 쉽게 탄력 받아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더라고요. 완독의 성취감을 누리시기를...

2022-11-26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6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11-26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잃.시.찾을 읽어보면 이 책 완독하기가 얼 마나 힘든지 알 수 있잖아요.
저는 이제 두 권 남았어요.
올해 완독 목표로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blanca 2022-11-27 07:58   좋아요 1 | URL
아, 마지막 권은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페넬로페님도 조만간 완독하시겠네요. 다시 찬찬히 읽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꺼내보니 그 엄두는 솔직히 안 나더라고요.^^;;

책읽는나무 2022-11-26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완독 축하드려요^^

blanca 2022-11-27 07:58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님 감사합니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정말 오랜만이랍니다.

단발머리 2022-11-27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블랑카님!! 긴 여행같은 독서가 끝나니 너무 후련하실듯 해요. 또 스스로도 너무 뿌듯할 거 같고요. 저 같으면 플랜카드 준비할 것 같은 ㅋㅋㅋㅋ 그런 맘입니다!!

blanca 2022-11-27 18:28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사실 이런 축하는 서재에서만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올해 제가 크게 이룬 건 없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성취가 될 것 같아요.

하이드 2022-11-27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저도 언젠가..! 한 번 시도했었는데, 2-3권 까지나 읽었나 몰라요. 23년에는 도전해볼까... 말....
앞서 완독하신 분 있으니, 등보고 따라가보겠습니다.

blanca 2022-11-27 18:29   좋아요 1 | URL
하이드님, 추천드려요. 정말 한번 해 볼만한 가치 있는 읽기의 과정이었어요. 중간중간 난해하고 지루한 대목들도 있었지만 넘고 넘다 보니 나도 나이 먹고 프루스트가 말하고자 했던 게 이거였구나, 하고 짐작되는 지점들이 늘어나더라고요. 특히 노화에 대한 장은 정말 ㅋㅋㅋ 크게 웃었어요. 너무 실감 나더라고요. 자기만 안 늙고 주변 사람들만 모조리 늙은 것 같은 착시에 대한 이야기요.

자목련 2022-11-28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캉카 님 멋지고 대단해요!
저는 ˝잃시찾˝ 읽은 여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ㅠ.ㅠ

blanca 2022-11-28 17:47   좋아요 0 | URL
그냥 그간 흐른 세월, 변한 모습 같은 것과 같이 오버랩되어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이 들더라고요. 프루스트가 마지막 장에 휘몰아치며 시간에 대하여 쓴 대목들도 이젠 진정 공감이 갔고요. 그리고 저야 제대로 분석하며 읽은 것도 아니고 쓰윽 읽은 거라 여기에서만 소곤소곤 자랑하는 거예요. 지루한 대목들은 영혼 없이 말 그대로 활자만 읽었답니다. ^^

레삭매냐 2022-11-30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

저도 한 두권 사두긴
했는데 아예 읽을 시도도
못하고 있네요.

blanca 2022-12-01 15:43   좋아요 1 | URL
각자의 때가 다른 것 같아요. 그때가 올 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12-01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년에 읽기 도전하려고 8권까지 일단 사두었습니다^^ 이제 완간되었으니 천천히 따라가보려구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2-12-01 15:44   좋아요 0 | URL
한꺼번에 사 놓고 읽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저는 드문드문 읽다 보니 자꾸 전의 내용을 잊어버려 난감하더라고요.

그레이스 2022-12-01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저는 내년1월부터 시작합니다.^^

blanca 2022-12-01 15:44   좋아요 1 | URL
오, 2023년에 시작하시는군요!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2-12-05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대단하십니다, 블랑카 님. 블랑카 님의 이 글을 읽고 나니 저도 이 책의 완독을 목표 삼아볼까 싶어지네요. 그동안 차마 엄두도 내지 못햇던 일인데요. 블랑카 님의 감격이 글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정말 멋져요, 블랑카 님!!

blanca 2022-12-05 19:01   좋아요 0 | URL
시간에 관련한 가장 길고 놀라운 연대기인 것 같아요. 저도 요새 시간, 노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서 공감 가는 대목이 정말 많더라고요. 결국 모든 걸 좌우하는 건 시간이었더라고요. 문제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 때문에 읽은 감동만 간직하고 있다는 거죠.^^;;
 

내 안에는 많은 내 모습이 있다. 그건 어는 날 소풍을 다녀오며 친구들과 폭우에 흠뻑 젖어 하필 대학가의 카페 유리창에 그 모습을 비춰보고 있는데 그 안에 선망해 마지 않던 대학생들이 안에서 우리가 비에 쫄딱 젖은 모습을 보고 유쾌하게 웃던 풍경이나(긴 머리를 빨래처럼 짜고 있었으니,), 짝사랑하던 사람 남자 친구와 헤어지며 다음에 그 얼굴을 볼 일주일을 기다릴 일에 돌아서며 벌써 괴로워하던 여대생의 모습이나(음..그 정도면 고백을 했어야지.), 아기띠를 하고 전투적으로 언덕을 올라가던 젊은 엄마의 모습이 이제 어엿한 중년의 모습으로 나아간다. 그러니까 결국 시간이다. 수많은 나를 양산한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다 결국 나인데 이 모습들은 시간의 나이테를 지나며 타인만큼 멀어졌다. 가끔은 그 간극에 아연하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내 안에 수많은 나를 품고 이제는 미래를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면 그 시간 속에서 할머니도 된다.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하다 보면 뭔가 몹시 신비하고 아득하면서 언어로 주워담을 수 없는 각종 감정이 휘몰아친다. 내 앞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뒤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다 죽을 것이다.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다 살 수 있다네. 그러므로 우리 정신의 삶은 이백사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김연수



















김연수의 이야기들은 스무 살의 추억을 이야기하던 삼십 대의 작가가 이제 오십 대가 되어 유장한 시간성 속에서 육체의 유한성, 인생의 한계를 조망하는 것으로 모인다. 현실을 비관하고 모든 것들을 비판하고 불만을 가지기란 쉽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낙관을 이야기한다는 건 용기와 비난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김연수는 거기에서 작가가 설 지점을 섬세하게 찾는다. 그건 통시적으로 우리의 짧은 삶을 바라보는 일이다. 자연히 우리의 삶은 작아질 것이다. 응축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괴로워하는 일, 한없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상의 과업들은 자연히 사소한 것으로 졸아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미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살아나가는 일의 그 가치에 대하여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이야기하는 소설가의 여전함이 반갑다. 나이 들어도 때가 묻어도 어떤 원형은 그대로 남는 것 같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오래도록 응원할 수 있다. 


"선생님, 저는 일 년 후에 제가 살아있을지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생각해보면 십대 때부터 그랬어요. 저는 그렇게 먼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본 적이 없어요."

-나종호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여기 조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먼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남미 출신의 40대 여성으로 트랜스젠더다. 그녀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한번도 흔들림 없이 믿었던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육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들을 버린다. 명문대 학벌, 주변의 시선, 사회적 기대.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단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그녀를 괴롭히는 우울증은 다른 문제다. 물론 이것이 결국 타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내년에 살아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은 그러나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열심히 산다. 그녀는 치료에도 적극적이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열정적으로 살아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그녀가 나름의 시선으로 보는 삶은 그렇게 가혹하고 유한하건만 그것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엄숙하기까지 하다. 이걸 비난할 수 있을까. 통시성이 아니라 여기, 지금에 집중하는 삶은 또 다른 견지에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모두 뒤로 걸어가는 중이다. 대부분은 인생이라는 여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망각한 채로,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닥치는 일에 충격을 받고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항상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아무도 언제 지뢰를 밟게 될지 미리 알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지뢰를 피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이젤 워버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좋다>














인생이라는 여정은 그러하다. 위험하고 허무하고 짧다. 그러나 그것에서 부조리와 무의미만을 추출한다면 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나갈 힘을 어디서든 끌어오는게 과제가 아닐까. 그 과정에서 저마다 삶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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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4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4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11-14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올려주신 세 권의 책들보다 블랑카 님의 이 글이 더 좋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blanca 2022-11-14 12:29   좋아요 0 | URL
^^;;; 다락빙님의 칭찬이 하이라이트네요. 고마워요.

바람돌이 2022-11-14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나라는 인간은 왜 이토록이나 성장하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한탄해온거 같아요. 저는 30살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게 10대나 20대 때 30살은 완전한 어른이 된 나이였고, 저는 그때쯤이면 뭔가 근사한 인간이 되어 있을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30살의 나와 20살의 나가 별반 다르지 않더라구요. 절망이죠. ㅎㅎ 그 뒤로는 근사한 인간은 영원히 물건너 가고, 지금도 별반 나이지지 않는 저의 크기를 책속의 삶들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있는 중인거 같아요. 블랑카님의 글을 읽다보니 책보다 그런 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지네요. 읽는 사람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블랑카님의 글을 좋은글이라고 하는거겠죠? ^^

blanca 2022-11-15 09:43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저에게 삼사십 대는 뭔가 아주 단단하고 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 멘토 같은 느낌의 어른이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겁나는 게 더 많아지고 어떤 선택에 확신도 들지 않더라고요. 저도 제가 성숙했는지 잘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나이들지 고민이랍니다. 그냥 계속 이런 불확실성, 모호함이 인생인 걸까요?

서니데이 2022-12-08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blanca 2022-12-14 10:09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