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읽다 만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완독한 경우. 몇 년도 전에 나는 이북으로 이 책을 샀지만 초반부를 좀 읽다 덮어버렸다. 재회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겼다.
















김금희 작가를 좋아하지만 어쩐지 좀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초반부에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는 이제는 참고 읽지 않겠다는 좀 묘한 결심을 한 터라 그렇게 되어버렸다. 즐겨 듣던 <서담서담>에서 <경애의 마음>을 다루었고 언젠가 다시 제대로 읽어볼까 고민만 하다 드디어 다시 읽기 시작하여 완독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애의 마음>은 참으로 남다른 이야기구나, 다시 읽어 마땅했던 사연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는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도달하여 작가의 언어로 다시 우리에게 온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건 이야기의 당위성과 보편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러한 이야기다.


반도미싱 팀장대리인 서른일곱살의 남자 공상수에게는 표면적으로 뒷배가 되어 줄 수 있는 든든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친하지 않은 정치인 아버지가 있다. 공상수에게 아버지는 대립하는 가치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다. 이 "융통성 없고 눈치 없는 인간"이 조직에서 그 덕에 쫓겨나지도 않고 호칭도 애매한 팀장대리로 8년 차 총무부 직원 박경애를 유일한 팀원으로 받아들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경애는 공공연히 담배를 폈고 회사에서 농성대에 끼어 삭발을 한 전력이 있다. 그 둘은 한 마디로 조직에서 매우 튀는 세상과 불화하는 존재라는 공통점과 인천호프집화재사건 때 죽은 은총이라는 친구를 매개로 한 접점이 있다. 작가는 자본주의의 효율성에 반하는 두 존재가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과 자본주의의 효율성의 광기어린 집착이 빚은 참화의 중심에서의 친구의 상실이라는 이야기를 불러와 시종일관 우리가 간직하지만 어쩐지 드러내어 놓지 못했던 가장 우리다운 마음들에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상수가 속해 있는 세계란 터무니없이 복잡하고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측량되지 않고 가시적이지 않은 것들에 열을 올리고 헛수고가 분명할 일에 봉사하는 백일몽에 빠진 인간들이 있는 세계에 불과하겠지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김금희 <경애의 마음>


누구나 이런 세계에 살았던 경험이 있다.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이런 세계에 푹 잠겨 있고 어떤 이는 자신이 이 세계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여기지만 그곳으로의 귀환을 꿈꾼다. 비효율적인 곳, 쓸모없음이 판치는 곳, 그럼에도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영토. 공상수가 끝내 포기하지 않는 그곳에서 마침내 경애와 포옹할 때 나는 작가의 마음을 짐작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순간을 포기하지 않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 둘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거대한 세상을 대상으로 싸우기 위해 손을 잡고 그리고 넘어지고 그럼에도 다시 손을 잡는 이야기. 그리고 그러한 상수와 경애를 알아봐주는 주변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을 잠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위안을 준다. 현실을 반영하며 현실에 매몰되지 않는 것, 삶의 모순을 드러내며 그 긍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 모든 이야기가 이야기로서 끝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쓰고 읽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의심하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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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5-11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드물지만 그런 경우가 있죠.
그럼 어찌나 안도하게 되는지.
하마터면 안 읽을 뻔했잖아요.
그 책도 되게 기뻤을 거예요.ㅋ

blanca 2021-05-12 10:06   좋아요 1 | URL
이런 경우 왠지 특히 더 뿌듯해지는 것 같아요. 책값도 아끼고요.^^

레삭매냐 2021-05-12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빌려서 읽다가
말았는지 어쨌는지 잘 기억이...

어쨌든 다 읽지 못한 것으로.

blanca 2021-05-12 10:16   좋아요 0 | URL
그죠. 빌려 읽으면 완독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저도 읽다 말다 그러다 이번에 완독했어요. 지금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태반이 읽다 말다 반납하게 되더라고요.
 

나에게도 그런 입사 동기의 추억이 있다.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데에 가까웠다. 밝고 맑고 친절했다. 그런데 설명하기 힘든 어긋남이 있었다. 그는 나의 결혼식을 앞두고 여러 번 전화가 왔다. 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고 여러 진행 상황에 대한 조언을 아낌없이 주었다. 참고로 나는 그의 결혼식에 이미 기꺼이 참석했고 동기 회비에서 갹출한 부조금 외에 개별적으로 추가로 또 부조를 했다. 아, 계속 치사해지는 것 같지만 향후 할 이야기에 이 부조금은 대단히 중요해진다. 그는 반드시 내 결혼식에 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건 내가 먼저 원하거나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연락도 없이 내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부조금도 조금 기대했던 선물도 없었다. 아, 이 사람을 어찌할까나. 사실 그는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아도 무방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전에 나에게 했던 그 지켜지지도 못할 약속과 마치 자신의 결혼식처럼 기대를 나타내던 그 모습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 아마, 그는 아마도 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연락해 수다를 떨었지 싶다. 나는 진심으로 황당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형인데 또 미워할 수도 없는...  그런데 그러한 인간을 다시 만날 줄이야.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의 처음 이야기 '잘 살겠습니다'에서 나는 마치 그 동기를 아는 사람이 살짝 비틀어 이야기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싱크로율 백퍼센트의 현현인 빛나 언니의 등장에 움찔했다. 아, 이런 인간형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니구나. 그러니까 비호감인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마구 미워할 수도 없는, 대단히 계산적인 것 같은데 또 영 어리숙한 결국 내가 지고 마는. 장류진은 회사라는 조직에서 우리가 흔히 사람에게 가졌다 배반당하는 신뢰와 기대를 기민하게 포착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조직 안에서 나누는 교감은 어떤 한계와 의외성을 지닌다. 그것은 시스템이 각자에게 기대하는 몫과 그 시스템 안에서 자신이 가지는 페르소나의 격자와 충돌하는 개인성의 발견이다. 다른 환경, 다른 조직에서의 인간 관계의 역학과는 사뭇 다른 지점이다. 내가 빛나 언니를 미워하면서도 하려 했던 그 사소한 복수의 황당한 결말에서 언니를 결국 긍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 근방에서 나는 잊었던 그 동기에 대한 나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었다는 것. 여전히 어떤 속수무책의 오지랖들에 어쩐지 넉넉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것. 잘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된다는 것. 


대부분의 이야기가 어떤 허를 찌르는 기대의 배반의 변곡점을 지나 따스하게 마무리되어 좋았다. 특히나 마지막 <탐페레 공항>은 또 어떤 추억을 환기했다. 다큐멘터리 피디의 꿈을 지닌 화자가 아일랜드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다 들르게 된 경유지인 핀란드의 공항에서 만난 시각장애를 지닌 노인과의 교감. 연락처를 주고 받고 막상 바쁜 일로 답장을 보내지 못하나 가슴 한켠에 남는 그 어떤 부책감, 상대의 안부에 대한 염려. 


그리고 언어, 인종, 국경, 시간을 넘어 여전히 남는 서로에 대한 마음. 


<일의 기쁨과 슬픔> 덕분에 나는 잊은 그들 모두가 여전히 잘 살고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어긋남으로 각자의 인생의 경로는 다시는 교차하지 못할 방향으로 선회했지만 그럼에도 나누었던 시간들이 가지는 그 가치와 무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어떤 안도감을 얻었다. 어떤 관계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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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5-10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혼식에 참석할 의사가 분명한 사람은 개인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다면서 미리 연락을 합니다. 입사 동기는 애초에 결혼식에 참석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인사치레를 한 것일 수도 있어요

blanca 2021-05-11 12:42   좋아요 0 | URL
너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어서 --;;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튼 결혼식에 얽힌 황당한 일들이 제법 많았어요^^;;

레삭매냐 2021-05-12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결혼식을 치르면서 관계
의 손절이 많이 이루어진다고
하더군요.

현장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자연
스레 정리가 되는 게 아닌지...
사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출현하지
않아도 무방하겠지만요.

사람 사이의 관계란 그것 참.

blanca 2021-05-12 10:17   좋아요 0 | URL
저는 안 그러게 될 줄 알았는데 역시가 참 사람 치사하게 온 사람, 안 온 사람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훌쩍.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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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가벼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마론제과에서 일하는 90년대를 전후해 태어난 여성 세 명의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을 통한 인생 역전기? 작가 장류진 본인도 말미에 "이 이야기를 마지막엔 꼭 설탕에 굴려서 내놓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안 그래도 여러가지로 어두운 시대에 어떤 노골적이고 뻔한 훈수를 위해 허황된 욕망에 추락하는 인간을 그려 내려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대신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라는 정보값"이 없는 5평, 9평 원룸에 살고 있는 다해, 은상, 지송이 가상화폐 시장에 진입하여 가격폭등을 바라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은어인 "달까지" 함께 꿈을 이루어 내는 설탕이 흩뿌려져 있다. 언뜻 단순한 일확천금 스토리로 그칠 수 있는 이야기의 심도와 넓이는 작가 장류진 특유의 감각어린 문장들, 세태와 그 세태의 근저에 있는 시스템적인 오류와 맹점을 예리하게 읽어내는 직관에 의해 확장된다. 


나는 분명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전보다 세개쯤의 나은 점과 한개쯤의 별로인 점이 있는 곳으로 조금씩. 플러스마이너스를 해보면 결국 두개쯤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셈이었다. 비단 주거 공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장류진 <달까지가자>


이 인생의 행보를 박음질로 은유한 대목은 비단 다해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런 나날들을 살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뒷걸음질을 동반함으로써 나의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못하는 그런 자리로의 전진. 그것에서 점프하는 행위가 여기에서는 코인으로 인한 대박신화로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해가 회사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 대목에서 자신이 일하는 층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고위간부들이 일하는  8층의 커피머신의 고급 원두와 그들만이 사용하는 숨겨둔 제빙기의 발견은 강고한 한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결국 그 안의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장류진은 땅에서 점프하지만 결국 착지해야 하는 우리들의 삶을 결국 마침표로 찍는다. 그것은 한계이기도 하고 어떨 수 없는 귀결이기도 하다. 


욕망은 그것이 헛될지라도 반드시 품어보고 때로 실현해보고 좌절당해 봄으로써 삶과 시간은 전진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는 것은 삶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그 어떤 욕망도 사람에 대한 것이든 사물에 대한 것이든 함부로 폄하될 수 없다. 그것의 디테일을 형상화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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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신간이 오늘 아마존에서 출간된다고 해서 두근두근하며 기다렸다. 원서를 직접 받아보고 싶어서 고민하다 킨들로 다운받아 읽기 시작하는데 오잉? 왠지 이것 너무 낯익다. 장소와 관련한 소회, 다리를 건너는 일에 대한 삶의 은유, 친구 남편과의 커피타임. 이상하다. 이젠 점점 더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이럴 수가 있나? 직장의 죽은 전임자의 모르는 삶에 대한 상상의 대목에 이르러서는. 킨들을 껐다. 
















2019년 3월 이미 번역되어 나온 책, 이탈리아어로 줌파 라히리가 쓴 첫 소설은 단지 아마존에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에 불과하다. 신간이 아니었다. 이럴 수도 있는 것이다. 한글로 번역된 것이 영어 출간이 안 된. 나는 낚인 것이다. 나의 부주의함에. 

















아, 무르고 싶다. 그러나 이미 펼쳤기에 무를 수 없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하루키로 회귀한다.















하루키 신간이 나왔다. 사고 싶다. 참으로 나는 양심도 없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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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4-28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신간 소식만 듣고 깜짝 놀랐는데 아니었군요! 좋은건지 아닌건지 모르겠네요..

blanca 2021-04-28 13:21   좋아요 1 | URL
줌파 라히리는 몇 년 간 신간을 대체 왜 안 내는 거죠? 지금 이탈리아에 있는 것 같은데 왜 단편집이라도 안 내는 거죠? 이게 다 줌파 라히리가 너무 뜸해서 벌어진 일이라고요.--;;;

scott 2021-04-28 14:44   좋아요 1 | URL
블랑카님 줌파가 이딸리아말로 글을 쓰고 부터 미국내 문학계 입지가 확 꺾였어요,
이제야 출간되는 이유가 있음
줌파는 요즘 주로 이딸리아 작품 단편위주 번역하고 있고 대학 문창과 강의에 집중

잡지 뉴요커에 몇몇 단편 실렸는데 독자들 반응이 시쿤둥!
미국 독자들 냉정함 ㅎㅎ

하루키 티셔츠 에세이 작년에 나오자마자 읽었는데
맘 편히 설렁 설렁 읽기 딱 좋아요!

blanca 2021-04-28 15:13   좋아요 1 | URL
아니, 하루키는 왜 이리 요새 들어 다 짧고 설렁설렁... 좀 길고 묵직한 걸 써 주셔야 하는데... 아, 줌파 라히리가 단편을 냈었군요! 한번 찾아봐야 겠어요. 필력이 떨어졌나. 아니면 이탈리라어를 자꾸 고집해서 그런가.

잠자냥 2021-04-28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하, 진짜 무르고 싶겠어요....ㅠ_ㅠ

blanca 2021-04-28 15:14   좋아요 1 | URL
일단 몇 장 읽어서 불가능하더라고요. 비싸긴 또 어찌나 비싼지. 이걸 신간인 줄 알고 떨면서 음료까지 대령해서 시작했다는 ㅋㅋㅋ 이상타? 아, 이상하다, 계속 그러면서...

단발머리 2021-04-28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안타깝지만 이미 결제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ㅠㅠ
하루키 신간 읽으며 속상한 마음 달래시기를 바래봅니다.

blanca 2021-04-28 15:30   좋아요 1 | URL
근데 양심이 ㅋㅋ 바로 구입하기는 좀 그래서 참아보려고요. ^^;;;

레삭매냐 2021-05-1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떤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몰라서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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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유한하고, 우리의 생에 일어나는 일들은 무작위적인 우연으로 인한 부조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창하고 대단하고 개별적인 의미를 지닌 삶이란 없다."는 자명하지만 암울한 명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차원에서 받아들일 방법이 있다. 그것은 더욱 거시적인 관점에서 개별자의 이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신화가 될 수도 있고 우주가 될 수도 있다. 광대한 시간, 공간의 기원을 탐구하며 개개의 삶의 내면으로 돌아오는 여정의 안내자로 이 책의 저자로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그린을 강력 추천한다. 그는 자신의 표현처럼 "환원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며 "인본주의자의 감수성으로 생명과 마음을 탐구"하는 어렵지만 가치 있는 경로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여기 이 지상에서 지엽적인 문제들로 마음이 산란한 우리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위로하고 시의적절한 관점의 전환으로 유도할 수 있는 환상적인 책이다.


우주의 탄생과 별의 기원과 우주 공간으로 뿌려진 원소가 우리의 몸이 되기까지의 경로를 브라이언 그린은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임을 하나로 통일하는 통일장 이론을 연구해 온 터라 끊임없이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 그 진화와 엔트로피의 지침에 집중한다. 종교적인 서사나 신의 불가항력에 대한 이야기는 논외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형이 종교인이고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유대교적 의례가 위로를 주었다는 개인적인 고백이다. 이론 물리학자로서 환원론적 관점을 고수하며 모든 생명체를 입자의 배열로 설명하는 그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에피소드들의 틈새로 인간적인 모순을 고백하는 대목은 오히려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생명이 물리법칙에 의거하여 분자의 배열로 설명되지만 그 생명 중 우리 인간이 가지는 각자의 서사를 양립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결국 그가 약속했던 초반의 환원주의자적 관점을 고수하며 인본주의자의 감수성으로 탐구하겠다던 약속을 성실히 지키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머리를 맑게 하면서 가슴에 감동을 준다. 완전하고 완벽하고 딱 떨어지는 이론의 정립만을 향해 나아갔더라면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성취다.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여 빅뱅과 별, 행성의 탄생 과정, 마침내 인간의 출현까지로 이 장구한 이야기가 끝을 맺는 것은 아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비유를 통한 우주의 광대한 미래의 예견으로 마침내 '시간의 끝'으로 우주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머나먼 미래까지 브라이언 그린의 이야기는 확장된다. 영원의 시간에도 결국 마침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개별자적 한계 너머로 희구하는 영원의 끝에 방점을 찍으며 그는 이야기한다.


입자에게는 목적이 없으며, '우주 깊은 곳을 배회하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궁극의 해답' 같은 것도 없다. 그 대신 특별한 입자 집단이 주관적인 세계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성찰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태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바깥이 아닌 내면이다. 이미 제시된 답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인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면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과학은 바깥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과학을 제외한 모든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간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짙은 어둠을 뚫고 소리와 침묵에 각인되어 끊임없이 영혼을 자극할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 <엔드 오브 타임>


-흔히 과학책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천상 스토리텔러인 과학자의 아름답고 평이하고 적확한 문장들이 그런 우려를 일거에 씻어버린다. 같은 물리학을 공부한 번역가의 번역도 훌륭하다. 양자역학이론을 비롯한 몇몇 어려운 분야의 이야기들의 완급과 깊이 조절도 대중들의 이해도를 감안한 배려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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