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숲에서 만난 한국문학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지음, 이태연 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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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한국학 연구자가 쓴 한국 소설, 한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장클로드 드크레센조는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엘스마르세유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창설한 사람이다. 이런 배경을 듣게 되면 흔히 설정하게 되는 기대치가 있다. 즉 대단히 심오하거나 한국적 정서에 대한 깊은 이해가 따르지는 않을 거라는.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다. 그 어느 한국인 평론가 못지않게 한국 소설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넓고 본질에 가닿은 해석이 놀랍다. 한유주, 장강명, 은희경, 김애란, 저자와 사적인 친분이 있는 이승우에 이르기까지. 미처 읽지 않은 소설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충분히 그 내용이나 작가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스포일러가 되는 것은 지양하면서, 소설과 작가, 그것이 태어난 한국의 사회, 경제적 상황까지 심도 있게 고찰한다. 


특히나 이제는 사라져 가는 한국의 포장마차에 대한 아련한 정경에 대한 글은 한 편의 아름다운 단편 같다. 파란 눈의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프랑스인이 포장마차에서 한국어로 이제는 사라질 옛사람들과 밤새 나누는 일회성의 정담의 풍경은 박완서, 김승옥이 그렸던 포장마차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우리보다 더 그리워하고 있다. 


한국의 MZ 세대가 느끼는 구조적 불안에 대한 해석 또한 냉철하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가 없는 사회에서 살아야만 한다. 새로운 사회 규칙은 과잉 상태이다.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기준의 부족이 아니라, 기준의 과잉이다. 새 시대는 긍정의 과잉으로 특징 짓는다. 

-pp.42


우리가 기준의 과잉으로 억압하는 청년들에게 그들의 자리가 없는 사회에서 살기를 강요했다는 고백을 그 사회 속의 기득권인 기성 세대가 과연 과감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빛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애정을 가지고 이국의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그곳에서 거주하고 그곳의 언어로 그곳의 글을 읽고, 그곳의 사람들과 교유하며 진단하는 여러 문제적 지점들은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가장 오리엔탈리즘과 대척점에 있을지도 모를 저자의 신중한 제언의 울림이 크다. 그리고 그 진동의 폭은 결국 저자가 한국의 작가와 문학에 가진 진심어린 애정 덕택일 것이다.  


저자가 예견적 시각이라 상찬한 우리 작가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누군가 하는 우리의 이야기 덕택에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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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른다섯이 채 안된 아는 동생이 아직 다섯 살이 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들었다. 익숙한 어려움, 낯익은 환희들, 피곤함 등이 떠올랐다. 대체 서른다섯이 되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나,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서른다섯 살이 되던 봄" 에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 같지도 않다. 스무 살의 봄은 생생한데 그 반환점의 기억이 흐릿하다니...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수명이 일흔여덟에서 여든이 되고, 여든에서 여든둘이 되고, 여든둘에서 여든넷이 된다. 그런 식으로 인생은 조금씩 길어지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사람들은 자신이 벌써 쉰이 되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쉰이라는 나이는 반환점으로는 너무 늦다. 백 살까지 사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된단 말인가?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반환점을 잃어가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풀사이드> 중




여덟 편의 단편에는 하루키의 실명이 등장한다. 소설가가 청자로서 기능하고 우연히 마주친 화자들은 대부분 그 인생의 반환점에 다다랐거나, 혹은 그 이전 정도의 나이로 저마다 겪은 인생의 이야기를 하루키에게 털어놓는 방식의 이야기들이다.  하루키가 가장 자신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실린 <레더호젠>이다. 이 이야기가 놀라운 것은 화자 역시 다른 이야기 속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젊지만 그녀가 이야기하는 오십 대의 어머니에 대한 인식이 당시 하루키의 나이를 생각할 때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는 것이다. 은퇴를 앞둔 남편를 두고 독일에 홀로 여행을 떠난 중년 여성이 남편의 반바지를 구입하며 문든 남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직시하게 되며 스스로의 반환점을 뒤늦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건 해피엔딩이었을까? 하루키도 그 이야기를 해줬던 아내의 친구도 섣불리 단정짓지는 않는다.  어떤 변화는 급진적으로 전개되지만 이미 그것은 그 사람속에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루키가 유일하게 인생의 턴지점인 반환점을 삼십대 중반에서 오십대로 나름의 기준으로는 너그럽게 양보한 이야기다. 

















줌파 라히리는 이제 영어로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탈리아에 이주해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고 꾸준히 번역 작업도 하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예민하고 섬세한 촉수로 이방인의 정서를 어루만진 글을 좋아하지만, 외국어로 이중의 이방자 의식을 조탁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이제 점차 오십대 중반에 아이들을 독립해 보낸 중년의 쓸쓸함으로 가닿은 변화가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반환점을 맞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특유의 버석거림이 로마라는 이국적 도시의 정경과 맞물려 그녀 특유의 서정적 정조 아래 투명하게 드러난다. 문득문득 작가 자신의 고백이 아닐까, 하는 심증이 들었지만 그것조차 독자의 자의적 해석의 영역 안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이라는 틀을 자의적으로 부여했지만 그 생물학적 맞물림은 거기에서 우리를 쉽사리 해방시키지 못한다. 내가 이 정도 나이이니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느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그러하다. 실제 육체적 노화도 큰 준거점이 된다. 에너지는 떨어지고 그건 분명 삶의 반경을 제약한다. 잃어가고 타협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무도 섣불리 단정짓지 못한다. 반환점을 인식하지 못했으니 나의 반환점은 아직 오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반환점이 오면 다시 턴하고 나에게 남은 시간들을 제대로 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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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19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나 너무나 좋은 블랑카 님의 글입니다.
저도 줌파 라히리의 신간 주문해 받았어요. 곧 읽을 생각에 설렙니다.

blanca 2023-10-19 16:32   좋아요 0 | URL
애정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또 그 작가가 신간을 낼 수 있다는 건 참 일상의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작가들의 부고가 뜰 때마다 참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스파피필름 2023-10-19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 님 이 글 참 좋게 읽었습니다^^ 저도 주문했습니다.

blanca 2023-10-19 16:32   좋아요 1 | URL
스파피필름님, 감사합니다. ^^
 

열 살에게 어른의 세계는 위압적이다. 특히나 그 어른이 부모일 경우, 그 세계의 문은 닫혀 있다. 아무리 탈출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그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그래서 넌 다시 어린이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때로 그 부모가 믿는 세계가 얼마나 어린 아이에게 폭압적이 되는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기 때문에...


그건 도덕률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아이는 선택할 수 없다. 부모가 교회에 가라면 가고, 그 친구를 만나면 안된다고 하면 때로 사랑하는 친구와 헤어진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이는 그걸 도저히 거역할 힘을 낼 수 없다. 그건 반역에 버금가니까. 사랑과 폭력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 에리히 프롬은 알았다. 그는 "통제와 폭력 행사는 불과 한 걸음 차이다" 라고 엄중히 경고한다. 내가, 어른이 상정한 완벽한 세계가 과연 절대적인가, 자문하고 의심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지 않는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를 그 세계 안에 우격다짐으로 구겨 넣게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가 성장하고 난 후 기억하는 폭력의 시절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읽은 <1Q84>의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아오마메는 어린 시절 주말마다 폐쇄적 종교 단체에 속한 어머니의 전도 활동에 동행해야 했다. 덴고는 아버지의 회사 수금에 동행해야 했다. 그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일요일은 없었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아픈 시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그 아버지와 그 어머니는 나쁜 사람들이었을까? 내 아이에게 내가 믿는 종교 활동의 전도에 동행하게 하고 나의 삶의 전장에 데리고 다니는 게 과연? 어쩌면  그들에게 그 행위는 하나의 사랑의 방식이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론적으로 부모가 그럼으로써 아이다울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요일에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며 수금을 하거나 무서운 세상의 종말을 선전하고 다니거나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건-만일 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렇다는 것이지만-어른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1Q84


현실 세계와 덴고가 쓰는 허구의 이야기의 세계가 중첩되는 곳에서 아오마메와 덴고가 각자의 시간대를 살아나가며 그 상실과 아픔을 소화하고 마침내 재회하기까지의 여정은 선과 악의 경계와 옳은 것과 그른 것의 분별의 지점을 사정 없이 흔든다. 우리가 절대적인 가치라 믿는 것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혼란과 질문을 유도하는 하루키의 이야기는 그가 그린 달이 두 개 뜨는 세계만큼이나 몽상적이지만 도저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슬며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정말 달이 두 개일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건 이야기의 힘일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이 또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의심 또한 그렇다. 리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무는 이야기다. 


사랑이라고 믿고 행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게 통제하고자 하는 힘으로 분출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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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0-11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Q84 개정판으로 읽으셨군요~!
3권이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재독하게 되더라구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하루키 특유의 이야기는 최고인거 같아요! 오늘밤 달이 두개 떠있는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ㅋ

blanca 2023-10-11 14:46   좋아요 1 | URL
진짜 이상한게요. 완전 허구잖아요. 그런데 달을 자꾸 보게 된단 말이에요. 오늘 달이 두 개 뜰지도 몰라, 이러면서...하루키 월드에 빠졌습니다.

다락방 2023-10-11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글 너무 좋네요. 이 글 읽으니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 도 생각나고요. 덕분에 이 책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이 책 읽고 남아있는 기억이라곤 아오마메는 고환을 걷어찰 수 있다는 것 뿐인데요...

blanca 2023-10-11 19:4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댓글 읽고 벌써 잊어버렸었네, 이랬어요. 정말 독특한 캐릭터죠. 저 1권 읽다 몇 번이나 빵 터졌는지 몰라요. 하루키 초기작 속 여주인공들은 남주의 대상화가 보여서 거부감 드는데 여기에서는 완전 쎈 언니들 대거 등장해서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자목련 2023-10-1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Q84, 읽었는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주인공 이름은 익숙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ㅎ

blanca 2023-10-11 19:44   좋아요 0 | URL
저는 읽기 전부터 이 두 주인공 이야기는 종종 봤던 것도 같아요. 저는 요새 재독하는 책들이 좀 있는데 다 처음 읽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라요.

은하수 2023-10-11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그 다음 권을 한동안 계속 기다렸잖아요!
좀 더 희망적인 내용을 기대하면서요.
3권이 끝이라는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 마음은 지금도 그렇구요^^

blanca 2023-10-11 19:45   좋아요 1 | URL
그죠, 은하수님. 이건 끝이 아니야, 같은 여운이 길어서...그래서 둘이 돌아온 세계는 어디였을까, 정말 궁금해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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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지금 나의 깨달음, 앎을 가지고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나는 더 행복해질까? 젊고 에너지가 넘치던 그때로 돌아가서 무모하고 어리석었던 실수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나의 삶은 한층 근사해질까? 그렇다고 여겼던 것은 삼십 대이고 그건 아니라고 체념하게 된 것은 사십 대이다. 시간은 내 바깥을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통과하여 흐른다는 것은 바로 하루키의 이야기다. 즉, 지금의 나를 스무 살의 나로 변환시키는 행위는 그 시간의 통과 자체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지금 나의 기억과 의식을 가지고 다시 스무 살을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열일곱 살 소년과 열여섯 살 소녀의 아름답고 아련한 사랑의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문장 하나하나가 산문시의 그것처럼 정제되어 있고 빛난다. 순식간에 소녀에 대한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을 눈앞에 불러온다. 


마치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실이 너의 몸과 나의 마음을 촘촘히 엮어가는 것 같다. 네 눈꺼풀이 한 번 깜박일 때도, 입술이 희미하게 떨릴 때도 내 마음은 출렁인다.

-pp.12


소년의 마음에 소녀의 몸이 연결되는 것. 소녀의 이야기로 축조된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진짜 소녀가 있다고 주장하는 그곳. 그 여름의 열일곱 살과 열여섯 살은 가상의 도시를 함께 건설해 나간다. 이 도시는 기묘하다. 모든 욕망과 꿈이 실현되는 이상적인 곳이 아니라, 간소하고 엄격하고 건조한 곳, 사람들이 그림자를 지니지 않은 곳이다. 시계탑에는 바늘이 없고 소녀가 일하는 도서관에는 책이 없다. 이야기는 현실 세계에서의 소년의 성장과 소녀와의 헤어짐, 그 가상의 도시에서의 소녀와의 재회로 넘나든다.  그 도시에서의 소녀는 어른이 된 소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꿈 읽는 자'로서의 역할을 보조할 뿐이다. 



현실에서 소년은 차곡차곡 나이를 먹어 어느덧 마흔다섯 살이 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의 작은 도서관의 관장으로 취임하며 그 도서관의 설립자이자 고문인 노인 고야스를 만나게 된다. 치마를 입는 노인의 캐릭터는 상당히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주인공이 이런저런 도서관 일로 헤맬 때나 , '그 도시'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감정으로 고민할 때마다 나타나 실질적인 조언을 해준다. 고야스가 주인공의 나이에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고 사재를 털어 설립한 도서관의 관장으로 재직하지만 그 자신도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한 유령이라는 반전은 그 둘의 관계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고민하는 그림자와 본체와의 분리와 통합에 대한 그의 해석은 현실에서 우리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기능하는 사회 생활에 대한 심오한 조언 같아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pp.452


주인공은 그 도시에서 분리된 그림자만 벽 바깥으로 탈출시킨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도시에서 거주하려면 기꺼이 자신의 그림자를 포기해야 한다. 이 그림자는 현실에서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입는 일종의 역할의 옷이 아닐까 싶다. 내가 믿는 나, 그렇다고 믿으며 기능하는 나의 모습이 그림자일 것이다. 그것이 무의미한 껍질이라 폄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게 바로 나라고 섣불리 단정 짓지도 않는 그 경계에서 하루키는 삶과 자아를 다룬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의 끊임없는 왕복은 결국 우리의 의식 속 심해를 탐구하는 과정의 은유다. 내 안에 가상의 도시를 짓고 벽을 세우고 때로는 그 벽을 넘어 탈출하기도 하고 다시 회귀하기도 하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하루키 월드는 어떤 논리적 정합성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저에 있는 깊은 의식에 대한 천착의 울림으로 그 이야기에 직관적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이게 말이 되나? 같은 질문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말이 되기 이전에 어, 어, 하면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세계는 모두에게 낯선 곳이 아니라 그런 것일까? 우리는 모두 우리의 내면에서 만난다.


옐로 서브마린 파카를 입은 열여섯 살 소년의 등장은 결국 이 현실과 도시의 세계의 통합을 위한 것이었다.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이탈하고 세상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소년은 오직 도서관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내면에 개인화된 서고를 만들어 나간다. 어느 날 그가 사라지고 주인공이 그 도시에서 소년과 재회하며 역할 분담을 하게 되는 결말은 결국 이 형상화된 인물들이 어쩌면 주인공의 내면의 여러 요소들을 인물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한다. 심지어 유령 고야스까지도. 


"그래요. 이 도시에는 현재뿐입니다. 축적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덮어쓰이고 갱신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세계입니다."

-pp.738


소년의 축적에 대한 이야기는 이 761페이지의 이야기가 결국 말하고자 한 핵심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뭔가를 쌓아나간다고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삶의 어느 순간, 내가 쌓은 것은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소년은 하고 있다. 이 세계는 현재뿐으로 순간순간 갱신되고 있다. 그 새로움은 그 자체로 순간을 만들고 그 속의 나는 매시간 다시 태어난다. 그 이행은 진실의 유동성을 만들어 나간다. 고정되고 영원불멸인 진실은 없다. 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갱신된다. 그것은 하루키의 말이기도 하다.


중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사십 년이 흐른 후 장편으로 개작한 이야기는 이제는 노년으로 접어든 하루키 월드의 집대성으로 보인다. 그때 쓸 수 없었던 이야기는 작가 인생의 흐름과 더불어 숙성되어 더 깊이 있고 넓은 이야기로 확장, 심화되어 독자 앞에 나타났다. 삼십 년을 더 산 하루키가 인지한 세계와 깨달음을 내가 온전히 다 이해하고 체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먼저 깨달은 그가 언어의 병기를 써서 만들어 낸 이야기의 세계는 내 전체를 흔들었다. 무릇 좋은 이야기란 이런 것일 테다. 완벽하지 않아도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자아내는 이야기에는 작가의 삶 그자체가 들어가야 한다.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다. 더불어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작가 후기' 또한 명문이다. 그의 둔중한 마침표가 마음의 현을 건드린다. 


이 이야기가 부디 끝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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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13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블랑카 님의 리뷰 너무 좋네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하셨지만 그럼에도 제가 이 책을 읽게 될 재미를 조금도 해치지 않을 것 같아요.

blanca 2023-09-13 13:07   좋아요 2 | URL
다행이네요. 물론 부족하고 아쉬운 대목도 있어요. 작가가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를 위해 인물을 활용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는 평범한 사람을 넘어서는 지점을 통과했고 그걸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여느 다른 소설들과는 정말 달랐어요. 일단 문장들이...특히 첫 챕터는 그 누구도 이 사람을 흉내는 내더라도 하루키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보물선 2023-09-13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으셨네요! 리뷰 좋아요♡

blanca 2023-09-13 13:08   좋아요 1 | URL
벽돌책이었는데 워낙 문장이 좋아서 그냥 쭉쭉 나가더라고요. 아쉬워요. 무엇보다 작가 나이를 생각할 때 저는 역주행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안 읽어본 작품들을 하나하나 독파해 나가야겠어요.

호시우행 2023-09-13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찜했어요.

blanca 2023-09-13 13:09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 즐거운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거라 믿고요.

책읽는나무 2023-09-13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장 하나 하나가 하루키의 소설을 직접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문장 속에서 블랑카 님의 세상을 보는 시선 또는 소설을 대하는 자세랄까요? 그런 모습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blanca 2023-09-13 13:11   좋아요 1 | URL
이 소설은, 정말 묘한 구석이 있는 게 제가 고민하던 문제들을 다 들킨 기분이 들더라고요. 보통 그런 진지함을 기대하며 소설을 읽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읽다가 멈추고, 줄치고, 플래그 붙이고 그랬답니다. 그리고 저를 본받으시면 안 됩니다. ㅋㅋ

새파랑 2023-09-14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이야기가 끝이 아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은곳이 있다는건 행복한거 같아요. 그게 가상의 기억? 꿈? 이더라도요 ㅋ

이 책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blanca 2023-09-14 10:03   좋아요 1 | URL
주인공이 다시 젊어지는 장면 있잖아요. 강에 발을 담그고 과거로 과거로. 이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요. 마치 주인공처럼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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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나를 툭 건드린 이야기. 아이 안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해 주는 건 전적으로 내 몫이 아니었다. 아이는 아이의 세계를 택하고 자신만의 가장 좋은 도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세계에서.

"그러니 어쨌거나, 네, 그가 어느 쪽 세계를 택하느냐를 두고 당신이 고민할 필요는 없답니다. 그애는 스스로 판단해서 앞으로의 삶을 선택할 겁니다. 그래봬도 심지가 굳은 아이니까요. 자신에게 어울리는 세계에서 확고하고 힘있게 살아나갈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세계에서, 당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아가면 됩니다. - P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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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9-11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까말까 고민중이었는데 방금 블랑카님 이 글 읽고 샀어요. ㅎㅎ 잘 읽을게요!^^

blanca 2023-09-11 10:08   좋아요 2 | URL
저는 하루키를 좋아해서...일단 좋아할 준비가 된 상태로 읽어 별점이 상당히 주관적이랍니다.^^

책읽는나무 2023-09-11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육아서로도 읽히는군요?^^
저도 살까 말까 며칠 고민했었는데....어제 구매 완료해버렸네요.
이 책은 도서관에서라도 꼭 빌려 읽어보고 싶네요.

blanca 2023-09-11 10:11   좋아요 1 | URL
전혀 기대 못했는데...제가 사춘기 아이로 고민했던 지점을 하루키한테 들킨 기분이었어요. 아, 이게 맞는 걸까? 내가 다 알아 해줘야 하나? 저 아이가 가는 길은 옳은 것인가. 나는 내 인생은...뭐 이런...그런데 하루키가 그 질문을 다 아는 것 같잖아요. 아, 여튼 저는 이 대목에서 눈물 또르르. 여튼 제가 지금 소설 병렬 독서 중인데, 하루키 정도 살아야 아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쉽게 쓰는 것 같은데 무겁고 진지한 그런 부분들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고양이라디오 2023-09-11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벌써 읽으셨군요!!

즐독하셨다니 기쁩니다^^b

blanca 2023-09-12 08:57   좋아요 1 | URL
마지막 3장 남겨두었어요. 다시 재독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되도록 천천히 읽으려 합니다.

새파랑 2023-09-11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하루키여서 그냥 좋은거 같습니다 ㅋ 읽으면서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게 너무 슬펐습니다 ㅜㅜ

blanca 2023-09-12 08:58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저 그게 너무 싫어서 지금 3장 못 읽고 있어요. 49년생 하루키가 또 장편을 쓸 수 있을까요? 이상하게 책을 읽으며 자꾸 마음이...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는 것 자체가 좋은 게 아니라 기분이 가라앉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