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까지 다 읽어 버렸다. 고로. 또 책을 지를 시점이 왔다. 리뷰는 오늘 쓰고. 

대중의 무서운 관음증이 도덕적 타락과 연결되는 지점을 체험했다.  

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안구하더라. 도와주지도 않더라. 심지어 구경까지. 

예전 미국에서 백주 길거리에서 한 여성이 칼부림을 당하며 울부짖는데 단 한 명도 신고조차 해주려는 생각도 않고 

멀찍이 구경하다 그 희생자가 죽고 말았다는 사건을 읽은 기억이 오버랩된다.  

게다가 수전 언니의 '타인의 고통'까지 공교롭게  

이 시점에 오니 대중의 관음증과 '누군가 나대신 하겠지'라는 책임 떠넘김이 만나는 지점에서 인간에 대한 기대는 폐기된다.  

어쩌면 파충류의 변연계 뇌만 남아서 팔딱이는 지도.  

자신이 물에 빠지거나 아주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미디어에서처럼 정의의 사도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할 거라는 

환상은 버려라. 나부터도 그래야 겠다. 구경 대상이 안되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본 지하철 선로에서 취객을 구하다 숨진 고이수현씨와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려고 뛰어갔다 민첩하게 중간지점에 몸을 엎드린 김대현 군이 극복한 

그 지점에의 경의는 지금 나의 몸 속으로 그 어느 때보다 팔딱이며 들어오고 있다.  단순한 미디어가 전하는 이미지상으로 

간접적으로 느꼈던 그들에 대한 그저 '대단하군.' 정도의 찬사는 비로소 생명의 숨결을 얻은 셈이다.

그들은 충분히 훌 륭 했 다 고 마음 속으로 진심으로 외친다. 

왜냐하면 다수의, 대중의 습성을, 그들은 그 망설임의 지점을 넘어버려 부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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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테제 :  헤겔의 변증법에서 정립의 반정립으로 사물의 발전에 있어 최초의 상태가 부정되고 새로이 나타난 상태.  

  음. 안티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함. 그러나 단순히 반대의 상황을 얘기한다고 단순히 이해할 수 있는 용어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 공부가 필요한 부분임. 하루키가 자주 쓰는 용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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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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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을 떴는데, 그녀는 그 눈빛에서 아침에 보았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어떤 우수였다. 그녀는 그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스러운 울음이 그녀의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그녀는 서재를 나와 그녀의 방으로 가서 고개를 작업용 탁자에 떨어뜨린 채 눈물이 흘러나오도록 잠시 두었다. <중략> 

그러나 이제 슬픔 자체가 되어버린 여자는 무릎을 꿇고 이 내방객들의 숨소리를 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중략> 

아, 어디에서부터 얘기를 풀어가야 하나.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초등학교 5학년 때쯤 교보문고에서 서서 '죄와 벌'을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친구들을 한참이나 기다리게 한 원죄가 섞인 기억만 있을 뿐, 별다르게 그 작품에 대한 감동도 기억도 없다는 것을 먼저 고백해야 겠다. 고등학교 때 노총각 문학 선생님이 약간 변태스러운 눈빛(우리들은 대체로 그렇게 느꼈다)을 번득이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위대함을 강변했던 기억 정도가 덧붙여질 수 있겠다. 그는 줄치며 읽는 소설이란 이런 것이라고 몸을 떨며 외쳐댔었지. 그 후로 그 선생님과는 별개로 줄치며 읽어야 하는 그 소설에 대한 일종의 꼭 읽어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줄곧 따라다녔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의무감이 그 작품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게 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결론은, 아직 그것을 읽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절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이 소설은 픽션과 사실이 혼재하는 메타픽션 장르라고 한다. 그 기법이 대단히 도발적이고 문체가 세련되서 전문적으로 소설작법을 치열하게 공부한 작가의 작품인 듯 보이나, 기실은 유대계 러시아인으로서 생전에 단 한 번도 자신의 소설을 출판해 보지 못한 치프킨이라는 불운한 작가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의사이다. 20세기의 작가(화자)는 레닌그라드로 가는 기차 안에 앉아 재혼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내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페테르부크를 떠나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가는 여정에 3인칭 시점으로 동참한다. 이 경계는 굉장히 모호해서 작가의 자전적 얘기와 페쟈(도스토예프스키의 애칭 이하)의 얘기가 혼재되어 흔히 말하는 '서술의 일탈'(해설 인용)을 노출함에도 그것은 어떤 오류로 보인다기보다는 몽환적인 시의 잔영을 떨치는 듯한 마력이 있다. 이것은 나의 얘기, 저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얘기라고 친절하게 구획을 지어주는 대신 그는 끊임없이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왕복하면서 어쩌면 그 둘의 삶을 의도적으로 섞어 버린다. 이런 서술은 자연스러운 결론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치프킨의 유대인을 경멸했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경배의 노래는 이렇게 둘의 비애어린 삶을 결국은 한데 뭉뚱그림으로써 완결되었다고 보여진다면 무리일까.  

페쟈의 여정은 그의 다혈질적이고 나약한 성격에서 비롯된 도박에의 중독, 간질발작, 러시아의 주류문단에 대한 소외감에서 비롯된 분노, 거기에 더한 안나에의 집착어리고 열등감어린 애정들이 사물과 사건들에 투영되는 과정이다. 수전 손택은 무엇보다 이 여정이 부부애로 집약된다고 결론지었는데, 페쟈의 속기사로 들어왔다 그의 두번째 아내가 된 안나의 유약한 성격과 남편의 파멸에의 은근한 방관자로서의 모습은 무언가 아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비애가 서려있는 것이며,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판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녀의 옷가지까지 저당잡히는 페쟈를 그저 울면서 지켜보는 이 여인의 모습은 앞서 인용한 폐자의 임종 앞에서 슬픔 그 자체로 화한다.  

모스크바의 박물관의 '시스틴의 마돈나'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며 주위의 경악어린 시선을  끌어모으는 페쟈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화랑의 방문객들이 앉아서 쉬거나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는 다른 의자들과는 달리, 왠지 거기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의자는 화랑의 직원을 위한 것이거나, 어쩌면 의자 자체에 뭔가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그래서 그랬기 때문에 페쟈는 뻔뻔스럽고 터무니없게 그 의자에 척하니 두 발을 올려 놓고 직원이 제지하든, 또 거기에서 파생되는  어떤 굴욕감이든 이겨내고 그 한계를 넘어야 했다. 그것은 폐자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다수의 관념, 그것에서 파생된 관습, 그 관습이 만들어낸 말, 말, 말. 상징적으로 소묘된 이 대목은 그 내포한 많은 의미들을 차치하더라도 페쟈의 귀여운 오기가 상상되어 웃음짓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 상상해 보라. 머리가 까진 중년의 눈이 퀭한 남자가 갑자기 푹신한 안락의자를 끌어다 그 위에 번쩍 올라가 고작 그림을 열심히 보고 있을 모습이라니. 

옆의 그림이 페쟈가 그렇게 쇼를 하며 감상한 그림이고 죽기 얼마전 지인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 생각해 복사본을 선물하고 지금까지 그의 임종을 맞은 그 소파 위에 걸려있다. 

사실 이 그림이 의미하는 상징과 페쟈의 선호를 연결지어 분석할 만한 지적 소양이 없기에 그저 이 그림을 들여다 보고 그가 임종 직전에도 무신론적 삶과는 달리 복음서를 애타게 찾아 안나에게 읽어달라고 했던 사실과 견주어 그가 신을 조롱할 거리를 찾지는 않았다는 정도로 마무리 짓고 싶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서두에 인용한 페쟈의 죽음 대목이다. 안나는 페쟈가 그녀에게 어렵게 구해줘 함께 먹었던 포도를 그 때 그처럼 어렵게 구해 그의 입 안에 한 송이 한 송이 넣어주며 그의 회복을 염원한다. 마치 그 한 송이 한 송이에 생명줄이 달린 듯이 눈물을 목 안으로 넘기며 그랬을 안나의 환영이 떠오르고 페쟈의 거친 숨과 계속되는 각혈로 물들은 목언저리의 피들과 그리고. 그리고. 또 눈물 흘리는 나. 그는 알았을까? 평생을 빚과 도박과 따돌림과 간질로 시달렸던 그가 사후에 그렇게나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을 줄을. 또 그는 알았을까? 이렇게 폐자의 궤적을 따라가는 쓸쓸한 여정을 그 어떤 지원도 없이 홀로 치루어 냈던 그의 책이 결국 사후에 발간되고 문단의 극찬을 받았을 줄을. 결국 이 둘의 삶은 하나인 것이다. 현실적 한계를 딛고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냄으로써 지고의 진리에 합치되는 그 지점에이 처절한 희구. 그것은 둘 다 공교롭게 사후에 완결된다.  

수전 손택이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조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에 포함시키고 싶다고 극찬했던 이 유명하지 않은 소설에 나는 지극한 찬탄과 감동어린 눈물을 바친다. 그리고. 페쟈의 예술을 대가로 처절하게 휘저어진 정돈되지 못한, 정당화되지 못하는 그의 삶에도 후대의 독자들을 대신해 진심어린 공감과 이해의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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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지난 한 세기의 소설과 범소설(parafiction)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조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에 포함시키고 싶다. ... 만일 당신이 러시아 문학의 깊이와 매혹을 경험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택하려 한다면, 바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만일 당신이 영혼을 단련하고 당신의 감각과 호흡에 더 넓은 지평을 제공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수잔 손택,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서문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숭배로 바쳐진 작품이며 그와 불운한 작가 치프킨의 소설적 만남을 담은 두 개의 서사가 얽힌 작품이라는 해설 하나로 대체 왜 이런 책을 이제야 발견한 거야? 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주문하고 만다.  또한 수잔 손택의 서문의 발췌 부분은 또 얼마나 도발적인가?  기대가 너무 크다.  재미도 있을까?

 

아울러 이 책도 더불어 go! go!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 가독성이 좋다 하니 또 기다리는 마음이 더 흡족하다. 서문으로 얽힌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들고 9월달의 독서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아니, 10월달까지 천천히 읽어 내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사실 퇴행해 가는 머리 속에 마구 꾹꾹 눌러 디밀어 넣고 있는 독서의 속도를 조금 제어하고, 이제는 정말 제대로 머리에도 심장에도 심지어 손 끝에도 꼭꼭 여며넣는 독서를 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음... 그래야지. 수잔 손택이 나를 못마땅한 듯이 보고 있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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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구판절판


우뇌는 감성적.직관적.비언어적.시공간적이고, 좌뇌는 논리적.이성적.언어적.수리적.분석적인 틍징을 갖는다.-29쪽

두 돌쯤 된 아이는 다른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재미있어 보이면 서슴지 않고 그것을 빼앗는다. 상대방이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고 울어도 개의치 않는다. 자제력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인데, 이 시기의 아이에게는 아직 전두엽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인내하고 참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34쪽

기분 좋은 것을 좋아하는 뇌는 또 한 가지 비슷한 특징이 있다. 뇌는 '긍정적인 생각'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신경회로를 활짝 열고, 새로운 회로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회로 간 흐름을 방해하거나 억제한다.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싫어한다. 서유헌 교수는 뇌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곳 변연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변연계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거나 사건을 해석할 때 거치는 여과장치 같은 곳이다. 슬픔에 빠졌거나 우울증에 빠졌을 때는 부정적인 여과장치를 통과한다. 변연계가 부정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은 사건을 자꾸 부정적인 쪽으로만 생각한다. 부정적인 사람과 대화하면 자꾸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동되는 게 이런 원리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것은 변연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51쪽

아이의 애착 형성을 돕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원칙을 기억하자. 첫째,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고 즉각적이고 일관성 있게 반응할 것. 둘째,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것. 셋째,신체접촉 놀이를 많이 할 것. 넷째, 엄마 스스로 자신감과 소신을 가질 것. 특히 넷째 항목은 엄마가 잊기 쉬운 부분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열두 번 자신의 행동에 회의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아이를 부모만큼 오래 관찰한 사람은 없으며, 부모만큼 사랑스럽게 관찰한 사람도 없다.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자료와 사랑을 가진 사람은 바로 부모임을 기억하라. -57쪽

피부의 신경세포는 풍부한 신경회로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피부로 전달하는 정보는 아주 미세한 자극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감각을 이용하는 것보다 금방 뇌로 전달된다. -59쪽

그런데 이 시기(만1~2세)는 뇌의 어느 한 부분만 발달하는 것이 아닌 만큼 한쪽으로 편중된 학습을 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언어 교육만 무리하게 시키거나, 그림책만 많이 보여주는 것은 두뇌 발달에 좋지 않다. 이보다는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오감을 모두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62~63쪽

뇌에서 신체기관을 관장하는 부분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이 손을 관할하는 부위다. 따라서 세밀한 손작업을 많이 시키면 아이의 뇌도 함께 발달한다. (중략) 이런 식으로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하면 좌뇌와 우뇌의 발달이 고루 이루어진다.-64쪽

만3~6세는 대뇌피질의 전두엽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다. 전두엽은 종합적인 사고 기능, 인간성, 도덕성, 종교성 등 최고의 인간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다. (중략) 세살배기의 뇌 활동량은 어른 뇌의 2배로, 이처럼 어른보다 바쁜 뇌활동은 아홉 살에서 열 살까지 유지된다.(중략) 아이의 뇌가 이토록 분주히 움직이는 까닭은 그만큼 연결해야 하는 시냅스가 많기 때문이다.-66쪽

서유헌 교수는 이 시기에는 전두엽의 기능인 사고와 정신 발달을 촉진하는 교육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많은 지식 정보를 입력하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는 붉다'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붉은 과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붉다고 모두 같은 색일까?' 등 아이의 사고가 커질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67쪽

아이들은 사회적 규약을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누구를 통해서일까?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굉장히 의미있게 받아들인다. 이것은 생각보다 놀라운 사실이다. 인간은 절대로 조작할 수가 없다. 가장 불행한 아이는 부모가 그 아이를 조작해서 만들어내려고 할 때 생긴다.-70~71쪽

사람의 뇌 중 전두엽에는 동기유발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와 공부와 지적 활동을 담당하는 부위가 있다. 그런데 이 부위 바로 밑에는 감정.본능을 관장하는 부위가 있어, 이 부위들끼리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면서 영향을 미친다. 동기유발의 뇌가 자극받으면 감정 기능도 영향을 받아 즐거운 기분을 발산하고, 이는 지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자극해 집중력이 향상되고 공부도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한다. 반면, 공부를 억지로 시키면 감성의 뇌가 위축되어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기분이 나빠지면 스트레스가 쌓여 두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74쪽

반면 남자아이의 뇌량은 여자아이에 비해 좁기 때문에 좌뇌와 우뇌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그런데 감정의 뇌는 우뇌에 있고, 언어의 뇌는 좌뇌에 있다 보니 남자아이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102쪽

남자아이에게는 '어떻게 느끼는지'가 아닌 '무엇을 할지'를 물어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느낌이나 감정을 물었을 때보다 스트레스를 덜 느낀다.-103쪽

여자는 감정을 관할하는 부위가 뇌 전체에 넓게 퍼져 있어 슬픔에 복받치면 다른 일도 모두 그 감정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남자는 복받치는 슬픈 감정을 느끼더라도 그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다른 일을 처리해 낼 수 있다. 남자의 경우 뇌의 한 부위에서만 감정을 관할하기 때문에 다른 부위가 기능을 할 때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114쪽

맞은 아이의 기분을 상상해보게 하면, 다른 사람을 공감할 줄 아는 여자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안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다르다. 공감을 유도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짧게 "친구를 때려서는 안 된다"라고 따끔하게 말해주는 것이 낫다.(중략) 여자아이의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나므로 절대로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 -133쪽

여자아이들은 언어나 소근육 운동과 연관된 뇌 부위가 남아보다 약6년 정도 빨리 발달하고, 남자아이들은 여아보다 목표적중이나 공간기억과 관련된 부위가 약4년 정도 빨리 발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36쪽

남자아이와 여아아이들의 망막은 서로 다르다. 여자들에게 많은 P세포는 색깔과 질감 식별에 유리하다. 남자들에게 많은 M세포는 움직임을 잘 포착하고 사물의 방향이나 속도를 잘 감지한다.-137쪽

여자아이들은 '밝고 화려한 색'에 시선을 뺏긴다. 그리고 이런 색감의 자극은 아이의 뇌발달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중략) 여자아이라면 입장 바꿔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중략)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하게 혼을 내야 한다. -165쪽

만3세 아이들은 현실과 환상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중략) 하지만 이것을 거짓말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는 발달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271쪽

아이를 무조건 혼내는 것보다는 '왜'가 낫고, '왜'보다는 '어떻게'가 한수 높은 질문이다. "왜 안했니?"와 "어떻게 하고 싶니?", "왜 싸웠니?"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니?", "왜 말 안 하니?"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니?" 두 개씩 짝지어진 질문 중 어느 쪽에 아이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지 선택하기란 어렵지 않다. -315쪽

아이의 초기경험이 자존감을 세우는 데 긍정적이었다면, 그 아이는 자기 가치에 대한 느낌을 내면화해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그는 집단생활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조금 좋지 않게 말하더라도 크게 상처받지 않으며, 삶에서 어려움을 만나도 잘 극복해 나간다. 하지만 초기 경험이 긍정적이지 않아 자기 가치의 내면화에 실패한 아이는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항상 타인의 행동과 반응에 신경 쓰는 것이다. -355쪽

부모가 아이에게 공감해주면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존감이 공감능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부메랑처럼 다시 부모에게 돌아온다. 공감능력이 높은 아이는 부모의 입장 역시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370쪽

구소련의 교육학자 안톤 마카렌코는 "한 인간을 최대한 존중해주면 최대한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377쪽

자존감은 자신에게 이미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과장해서 자랑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384쪽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한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이를 대할 때 항상 웃고 애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 아이는 곧 그 모습을 자기 얼굴이 비친 거울로 받아들인다. 거울 속 모습을 보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이다. 자존감은 이렇게 형성된다. 순수한 애정만으로도 자존감이 형성될 수 있다. -400~401쪽

고대 중국인의 지혜가 담긴 <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일은 급히 서두르면 애매모호해진다. 느긋하게 늦추면 저절로 밝혀지니 조급하게 서둘러 분노를 사지 말라. 사람을 억지로 부리려면 순종하지 않지만 그냥 놓아두면 감화되는 수가 있으니, 심하게 부려 더 완고하게 만들지 말라."-411쪽

일부러 한 일이 아니라 우연히 실수를 저질렀다면,(중략) 이 때는 말을 줄임으로써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보자. 속으로 열만 세면 벼락같이 화를 내며 아이의 자존감을 낮추는 말을 쏟아내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이가 우연히 잘못을 했을 때는 잘못된 행동을 말하기보다 그런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을 말해 주는 것이 좋다. -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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