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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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의 이민 2세대 작가들을 토막으로 다룬 기사에서 아주 아름다운 여인네 사진을 보고
뚫어져라 관찰했었다. 정말 너무 예뻐서 과장 조금 보태어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예쁘니 외모덕으로 주목받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혹을 들이밀며 그렇게 잊고 지냈다. 

그녀가 그 이름도 어려운 줌파 라히리였다.
별을 네 개를 주어도 모자랄 지경이라느니, 책장 넘어가는게 아깝다고 하는 리뷰 등 극찬 일색에
게다가 아주 아름다운 여류작가의 이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한 수순. 

사실 이 책의 원서 제목은 Unaccustomed Earth'그저 좋은 사람'은 다른 단편이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출간될 때는 가장 앞에 실린 '길들지 않은 땅'을 표제작으로 내세웠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제목이 번역으로 인해 너무 평이해져 버려 덜 튀어서 그렇지 가장 좋았던 작품도(물론 나의 기준)
'길들지 않은 땅'이었다. 이 작품을 읽고는 정말 무언가 내 가슴에서 펑 터져 버린 기분이어서 솔직히 나머지 단편들은
다 읽어내겠다는 의지의 일환으로 숙제하듯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무엇보다 공감가는 상황이었고,
결론없이 계속되었던 그렇고 그런 고민들이 들킨 듯이 그녀의 인물들에 의하여 발설되는 느낌은
소설이 어떻게 독자의 삶의 편린들을 그러모아 출구로 밀어낼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놀라웠다.
그. 리. 고. 그녀의 삶이 너무 궁금해졌다. 사실 소설이라는 것이 작가들의 삶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작품들의 대부분에 그녀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뱅골 인 2세로 미국으로 뿌리를 옮겨 심은 부모님과
자식들이 어우러져 때로는 불화하며 그네들의 삶을 미국인들의 언저리에서 빙빙 돌려대는 것 같은, 그러나 그 속에
인도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의식이 차르르 스며있는 그런 삶. 그리고 사랑. 때로는 이방인들과 때로는 그네들과 같은
혈족과. 
 

'천개의 찬란한 태양'의 호세이니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천연했던 삶과 민족적 색채에 주목한다면,
줌파 라히리는 인도에서의 경험이나 기억은 대체로 지워져 있고 미국에서 그네들이 적응, 부조화하는 이후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미국에서의 삶의 문제들의 답변을 융화 및 화해 모드로 단순하게 결론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등장 인물들은 대체로 실패하고 튕겨져 나간다. 그 튕겨져 나감이 일탈 및 실패라고 판단한다면
더없이 답답한 해석이 되겠지만. 나는 그것이 또다른 출발이라고 여겨진다. 결국 누구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
삶을 살고 싶다면.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에쿠니 가오리와 닮아 있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면. 줌파 라히리는 체호프에 비견되는데 
대체로 말랑말랑한 순정만화형 작가라 생각하는 에쿠니 가오리를 빗댄다면 거부감을 보일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연작 소설 '헤마와 코쉭'은 사실 '냉정과 열정 사이'와 '좌안, 우안'과 아주 흡사한 대목이 많다. 어린 시절부터 예견되는
냉정한 남자와 따뜻한 여자의 힘겨루기. 그리고 각자 떠남. 새로운 공간에서의 조우. 그러나 다시 헤어짐. 각자의 시점에서의
듣지 못한 얘기들의 고백. 그리고 무언가 그 담담하고자 하는 서술.  

줌파에게 다가가고 싶은 것은 그녀가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낭만적인지 안다는 것이다. 
가장 좋았던 작품인 '길들지 않은 땅'에서 루마의 친정엄마는 "아이는 너의 고기와 뼈로 만들어진 거야'라고 하는 대목.
그러나 결국은 전존재로 받아들였던 부모를 떠나고 말 아이들이 남기고 갈 빈자리로 딸이 힘들어할 것을 걱정하는
친정 아버지. 고학력임에도 전업주부로 둘째를 임신하고 있는 딸을 안타까워하며 자꾸 일을 가지라고
넌지시 조언하고 손자를 위해 딸을 위해 예쁜 정원을 만들어 놓고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이제는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떠나는 그. 이 담담하고 평범한 풍경 속에는 과장되지 않은 삶의 진실과 그것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있어 숨을 멈추게 된다. 바쁘게 달리다 한번씩 멈추고 싶을 때, 아니 한번씩 멈추어 숨을 고르지 않으면
앞으로 달려나가기 힘들 때 그녀의 '그저 좋은 사람'이라 명명된 일시적인 호칭 아닌 호칭, 어머니의 가슴에
기대어 울 수밖에 없는 우리의 근원적인 고픔을 그녀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저 좋은 사람은 그 유아기의 전적으로 기대어 나의 생존을 의탁하고,
나의 우울과 나의 환희의 전적인 이유가 되었던 그 찰나의 어머니이다.
그런 관계를 때로는 친구 관계에서
때로는 연인 관계에서 찾으려 하는 데에서 관계의 붕괴는 시작되는 것 같다. 그저 좋은 사람. 그것은 누구나 한번쯤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 보고 싶은 환타지 같은 몽환적인 완벽한 의존에 대한 하나의 강한 그리움이 아닐런지.
그래서. 나는 그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이 짧은 기간 동안 정말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욕심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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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3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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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922=87+1=88
1995-1922=73+1=74
이 연산을 처음 책 날개를 펼쳐 주제 사라마구의 이력을 읽을 때 한 번 했고, 또 중간에 두 번 정도 더하고, 
마지막으로 또 한 번 했다.
그의 나이, 한국나이로 여든 여덟이다. 이 작품을 쓴 나이는 이른 넷이다.
물론, 단순히 수리상의 노화가 창작의욕과 일에 대한 정력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딱딱한 선입견과 어설픈 관념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의 나이는 상상력이 고갈까지는 아니어도 그 파고가 약해지고,
대중과의 감응도가 약해지는 여정의 끝자락이 아닌가.  

지금에 와서야 언젠가는 읽어야지, 의 과제를 완결한 것에 대하여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충격적인 작품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마르께스에게 달라붙어 있던 그 고귀한 어구를
나는 주제씨에게 당장 훈장처럼 달아주고 싶다.  

문장부호를 쳐내고 화법도 마구 섞어 버리는 그의 불친절한 문체는 그저 수사가 아니라
그가 하고 싶어하는 얘기들의 본질인 것 같다.
모든 관념, 형식, 사회적 담론들의 철책을 마구 허물어뜨리고
내외적으로 알몸이 된 인간들의 본질에 가 닿는 것. 그 본질에는 단순한 생존의 욕구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간의 기본적 연대에 대한 희망이 아스라이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한 것일까.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을 읽다 보면 실명이라는 것이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당자들에게 극한의 고통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뇌의 지형도를 변형시켜 시각으로 인지하는 세계 자체를 망각하여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다시 세계를 재구성 인지하여 적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름대로 살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의 실명은 백색 실명으로 특성화되었고, 전염병화되어 실명한 자들을 배척하고 격리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대치되었지만. 그 세계에서의 나름대로 진화되는 생존 방식은 결국 인간은 살아지게 된다는
끈질긴 명제를 증명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 실명의 세계에서는 약탈과 폭력과 속임이 난무하지만, 젊은 매춘부 출신의 아가씨가 노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는 즉, 보이지 않은 것의 가치가 불쑥 디밀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단 한명만 남기고 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세계를 공간화하고 
또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마치 영화 장면 처럼 기막히게 시각화하는 그의 능력.
담뱃재 털며 마구 참견해 대는 싫지 않은 전지적 작가 시점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맥 빠지지 않는
반전이 있는 결론까지 어디 하나 감탄이 안 나올 구석이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은 어느 정도 다운되어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갑자기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맹인들이 어우러져 절규하는 장면들은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일상의 수많은 것들에 뻔뻔하게 집착하는 스스로가 염증스럽게 느껴지고,
박팀장이, 김과장이, 혹은 그 누군가의 목에 난 털 하나까지도 얄미워질 지경이라면,
이 소설을 시작해야 한다. 당장.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423쪽)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4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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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의 그 쨍한 각성효과가 좋아, 쓰린 속을 달래가며
두 잔의 커피를 마시면, 그 후는 더부룩해지면서 우울해진다.
업되려고 마신 커피가 나를 끌어내리는 오후.
나는 왜 우울한 것인가를 고민해 보니, 대체로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우울의 이유는. 

책장에 꽂혀 있는 두서없이 섞여 허우적대는 후회되는 책 목록과 함께,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닌,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면,
덜 쓸쓸할 텐데,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 자못 슬픈 것이다. 
살면서 재수시절 응큼하게 생긴 국어강사의 권유로 읽게 된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에서(이거 읽으면 논술 잘 쓸 수 있다길래), 
건진 단 하나의 문장. 볼테르의 그것.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추이다, 라는 얘기
그건 왜 순간 순간 고개를 내미는지.
껄쩍지근한 일이 새벽에 등골을 스칠 때의 그 소름이 싫어 회사 뒷담화에 집중했던 시절에는
주로 신경질이, 
팀장님이 솥뚜껑 운전이라 명명해 주신 작금의 상황에서는,
극도의 단조로움이 권태를 끌고 온다. 

행복하다면 약간 농치는 거고
불행하다고 한다면 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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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다.
요즘 소위 잘 나가는 남성 작가들의 아내는 대부분 예쁜가 보다.
김영하의 아내도 아주 예쁘다고 한다. 
사진을 본 적이 없으니 그냥 주워들은 얘기들을 확정할 수는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박민규가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 인터뷰에서 아내를 되게 좋아해서 나와서 글을 쓴다는 그
얘기 하나 만으로 얼굴이 대단히 이쁠 것이고 신혼일 거라고 괜히 단정짓고 합리화했다. 

질투하나 보다. 웃긴 것은 그들의 아내가 부러운 것이 아니고 그냥 그런 아내들을 두고 글을 마음껏 쓰는
그들이 괜히 부러웠다. 왜냐하면 나도 퇴근할 때 아내가 있었음 했기 때문이다. 물먹은 스펀지처럼 흐물거리며
퇴근해서 산적한 집안일들이 반갑게 나를 마중나온 문지방은 넘기 싫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지라  
내가 하기 싫은 아내의 역할을 나는 받았으면 하는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는 고백은 참으로 불쾌한 것이다. 

각설하고,
대체로 잘 나가는 남자 작가들은 담배 연기로 그득찬 방문 앞에서 아내를 막 밀어낼 것 같은데,
예외없이 반대로 아내에 대한 찬탄으로 침방울을 튀긴다.  

특히 박민규의 아내에 대한 찬탄은 참으로 간지러운 것이면서도
그지없이 부럽기도 하고. 게다가 둘째까지 보고 남았을 결혼연차라니 신혼도 아니니 이건 모 공격할
건수도 없고.  많이많이 좋아해 주고 싶단다. 주름살 하나도 행복한 각도로 잡히게 하고 싶단다. 

그런 아내...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위해,
"어머니를 둘째라 생각하자"며 딸을 너무너무 낳고 싶어하던 그를 달랬다던 대목은,
사랑은...결혼 이후 지속되는 사랑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짐을 덜어  
내 어깨에 이고 괜히 씩씩한 척 하며 앞질러 갈 수도 있는, 그런 아픈 배려를 담보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의 사랑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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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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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의 한 해 걸러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사서 읽었더랬다.
이유는 단 하나, 재미가 담보되어 있었고, 그 재미가 가볍지 않아 뿌듯했기 때문이다.
그래도...상받은, 혹은 받으려다 살짝 미끄러진 작품들은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때로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도 살포시 끼어 보기도 했다. 별반 차이없이 작품성과 재미가 어우러져 있었다.
김훈의 '화장''언니의 폐경'을 만났던 것도 같다. 단편도 장편처럼 둔중한 울림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데에
약간 전율하기도 했었다. 

이 작품집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박민규의 '근처'를 수상작으로, '위험한 독서'의 김경욱, 은희경, 김애란, 배수아 등의 최종후보작을 싣고 있다. 전반적인 작품들에 대한 느낌은, 음, 긴장감이 대체로 떨어지고, 결론이 무언가 쓰다 만 느낌이랄까? 내가 감수성이 무뎌져서 그런가, 아님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들에 닳아 있어 그런지, 왜 예전 이런 수상집을 읽을 때의 그 간질간질한 재미와 명치 끝에서 전해 오는 울림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박민규의 작품이 가장 올돌했음을 인정하고, 의외로 김숨의 '간과 쓸개'가 가장 인상깊었음을 고백해야 겠다. 나머지 기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은 현을 팽팽히 당기는 그 맛이 쑤욱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단편에서는 긴장감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력이라고 생각함)

박민규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이 단편이 처음이기에 감상 및 평가를 뒤로 미루어 두는 것이 낫겠지만, 대단히 실험적이고 감각적인 전개방식과 문체를 사용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를테면 대화체를 부호 생략하고(요즘에는 이런 방식이 당연하게 간주되지만), 글자 크기를 확 줄여 버리는 것. 오히려 이런 시도가 역설적으로 대화를, 사람 간의 호흡을 더 돋보이게 한다. 죽음을 앞둔 마흔 살의 미혼 직장인이 타임캡슐을 통해 초등학교 추억들과 맞닥뜨리는 얘기를, 심사위원들은 작위적이라고 조심스런 비판을 날렸지만, 그 세부 전개는 굉장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풀어 나가고 있다. 주인공이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어찌나 절제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는지 꼭 인용해 두고 싶다. 

   
 

온몸을 파닥이던 붕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 몸부림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살아 있는 내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바람이 분다.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담담한 모습이겠지만, 더없이 풍만한 감정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중략>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이 넓고 깊은 삶이 흐르고 있다. 나는 기쁘고 기쁘지도 않다. 나는 슬픈데 슬픈 것만도 아니다. <박민규의 '근처'>

 
   

김사과의 '정오의 산책'은 초반을 풀어나가던 강력한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이러한 한계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무언가 아주 대단한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매듭짓는 마무리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느낌. 그런 면에서 김숨의 '간과 쓸개'는 빛나는 작품이었다. 역시 죽음을 앞둔 노인이 구십의 누나와 한데 누워 (나란히 간과 쓸개가 고장나) 유년의 왜곡된 추억을 교정하며 같이 흐느끼는  마무리는 결론이,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로 열려 있을 수 있는 예증 같아 보여 좋았다.   

여간해서는 인터뷰를 사양한다는 박민규의 수상 인터뷰가 아주 좋아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 그것만으로도 아깝지 않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치매에 걸린 노모 때문에 둘째를 미루고 goole earth에서 현재 상태의 밤하늘을 보여주는 천문 프로그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의 얘기는 그것 하나만으로 내러티브가 흐르는 느낌이다. 정말 삶은 이야기가 되려는 경향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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