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   몽상가의 다락방 (blanca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우리의 감각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속인다.  -괴테</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28 Oct 2026 06:17:27 +0900</lastBuildDate><image><title>blanca</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1229119352563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lanca</description></image><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인간 저자는 영원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86293</link><pubDate>Thu, 22 Oct 2026 12: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8629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8963&TPaperId=175862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4/91/coveroff/k982138963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프랑스 작가의 소설이 AI 대필 의혹으로 공쿠르상 1차 후보에서 제외된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AI 탐지기의 신뢰성에 관한 논란뿐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AI 활용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간의 글쓰기 창작 활동만큼은 끝까지 사수해야 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하나 같은 논의를 촉발하는 지점이다.&nbsp;<br>회의록도 광고도 심지어 드라마도 AI로 만들고 감상하는 시대에 우리는 유난히 '글쓰기'의 '인간 저자'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셈이다. 이는 인간이 사고하는 존재로 그 사고를 언어화하는 예외적인 존재라는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을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인간이 언어로 사고하고 문자로 기호화하여 표현하는 것만큼 인간을 가장 인간적인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다른 행위가 있을까? AI가 사실은 거대언어모델로 이 표현의 영역에서만큼은 인간만큼, 어쩌면 인간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벌써 현실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사람이 아닌 AI에게 소통의 욕구를 채우고, AI로 블로그 활동을 하고, 심지어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이메일에 답장한다.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서툰 글과 유예의 지점이 과연 언제까지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br><br> <br>기술철학의 권위자인 마크 코켈버그와 데이비드 J. 건컬의 공저인 이 저작은 말 그대로 LLM으로서의 AI가 가지는 의미를 인문학적, 철학적, 역사적인 시선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 책에 따르면 가부장적인 저자의 절대적 권위는 생성형 AI의 발달로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바르트와 푸코는 이미 이런 저자의 절대적 권위와 기능이 조만간 사라질 것임을 예견했다. 소크라테스의 '테크네'로 명명한 글쓰기의 기술은 플라톤식 실재 대 형상이라는 이분법과 로고스 중심주의를 내려놓고 독자와 상호 접촉하는 가운데 생성되는 의미화 과정으로 무게추가 옮겨가고 있다. 이 와중에 출현한 LLM이 가지는 현상으로서의 의미는 "다르게 사유하고 다르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nbsp;<br>만약 작가가 자신이 AI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활용했는지 정정당당하게 밝힐 수 있다면, 이 과정은 AI와 "텍스트 및 텍스트성의 창조와 창발에 함께 참여하는 의미화 과정"을 글쓰기 과정으로 새로 해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조만간 인간과 비인간의 협업 과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읽는 게 일상이 되는 날이 오게 되는 걸까.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씩 잠식당하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게 달갑지만은 않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4/91/cover150/k982138963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49125</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아무도 모른다, 그 이후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60426</link><pubDate>Thu, 08 Oct 2026 1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6042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1685&TPaperId=175604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21/70/coveroff/k97213168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칠십대 중반 아버지는 이제 자주 사후 당신이 묻힐 곳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린다. 사후 당신의 영혼이 안식을 찾을 곳을 찾아 헤매며 육신의 죽음을 넘어선 그 이후 흐를 시간을 당연한듯 전제하는 모습에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종교가 없는 아버지는 그럼에도 영혼과 넋에 대한 믿음이 있다. 고인을 기리고 추억하며 각종 의례를 지내는 일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죽음 이후라는 가정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도 내 죽음을 떠올리면 아득한 두려움이 몰려오지만, 그 공포를 잠재우는 건 산란한 일상 빼고는 없다. 즉, 나는 내 호흡이 멈추고 육신이 부패하고 남을 그 뼈의 운명에 대해 불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 남는 것이 있다면, 죽음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답을 영영 알지 못한 채 나는 죽음으로 건너갈 것이다.<br><br> <br>이 도발적인 제목은 누구나에게 공명하는 한탄이기도 하다. 과연 누가 알겠는가? 종교적 믿음이 신실하다고 해도 죽음 너머 남을 뼈의 운명을 확신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17세기 의사이자 산문 작가였던 토머스 브라운은 영국 노퍽주 들판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것으로 추정한 수십 개의 유골 항아리들을 시작으로 죽음과 장례, 매장, 화장 풍습들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결국 삶에 익숙해지며 결코 적응하지 못할 허무한 결말인 죽음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러니임을 설파하는 브라운의 문장은 버지니아 울프의 경탄과 닿아 있다. 그는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설교자"이며 동시에 독자를 "비범한 사색의 비상으로 이끈다." 허무론자 같으면서 동시에 삶의 찬란한 불꽃을 찬탄하는 그 아이러니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nbsp;<br>삶은 순수한 불꽃이며, 우리는 내면의 보이지 않는 태양에 의지해 살아간다. 살아생전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작은 불씨 하나면 충분하지만, 죽음 뒤에는 아무리 거대한 불길도 인간의 허영을 채우기엔 늘 부족해 보인다.-pp.124<br><br>그의 사후 벌어진 웃지못할 해프닝은&nbsp; 그 자신이 쓴 이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에 덧붙여질 텍스트가 된다. 19세기 중반, 근처 무덤 작업 중 드러난 브라운의 두개골이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nbsp;반출되어 병원에 전시되었다 다시 원래 무덤에 안치된다. 그의 뼈는 만인의 전시 대상이 될 운명이었을까? 그 정도로 아무도 우리 사후 벌어질 일에 대한 통제권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방증 같기도 해서 씁쓸하기도 하다.<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21/70/cover150/k97213168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217041</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너울거리는 신의 마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53473</link><pubDate>Sun, 04 Oct 2026 09: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5347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1770&TPaperId=17553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2/78/coveroff/k89213177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398X&TPaperId=17553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8/84/coveroff/895460398x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지금은 비현실적인 정경이 있다. 집앞에 대학교가 있었고, 그 안에 대형 서점이 있었다. 지역 주민들도 부담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심지어 그 안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서너 살 아이를 데리고 그 서점에 가는 게 우리 가족에게는 일종의 가족 나들이였다. 매대에 눕혀 있던 수많은 책들 중 김연수 작가의 &lt;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gt;을 거기에서 만났다. 이름만 아는 작가의 이 표지에 매혹 당해 이 책을 집어들었던 시간. 서가 사이를 신나는 미로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를 말려야만 했다.<br><br> <br>이 표지다. 지금도 눈에 선연하다. 대학교 안 서점에서 집어들기에 가장 위화감이 없는 표지가 아닌가. 맨몸으로 자신을 감싸 안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그 하늘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결국 그는 땅을 내려다보며 점점 고개를 숙여야 하겠지만, 그런 말로는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다.&nbsp;<br>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러 여기에 왔다. 이제 그 서점은 사라졌고, 우리는 더는 대학교에 함부로 드나들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암묵적 합의. 세대는 분리됐고, 대학교 안에서 문학책을 파는 서점은 이윤을 남기기 어렵다. 작가와 나만 남아 그 사이로 나만 소중하게 생각하게 하는 애착이 자라났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 읽었다. 그는 나의 그 시절을 환기한다. 조금은 더 밝았고, 조금은 더 무람 없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는 온전히 그 시대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젊었던 내 과거에 대한 애달픈 복기이기도 하다.&nbsp;나는 나를 그리워한다.&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내가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건 그의 글에는 소위 '젠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줄, 한줄 읽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 지점을 만나게 된다. 30대였던 작가도 이제 50대를 훌쩍 넘었고, 청년이었던 인물들도 함께 나이 들어 인생의 능선을 내려오고 있다. 그 안엔 시간 여행자로 삶을 경유하는 감각이 있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기점으로 오고 가며 때로는 섞이고, 삶은 그 바깥에서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정경으로 떠오른다.&nbsp;<br>우주는 머물러 있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비로소 움직인다. 일월성신은 본래 멈춰 있으되 일월성신의 빛은 사람을 따라 움직이나니 그것이 시간이다. 빛은 나로 인해 생겨나고 나로 인해 소멸한다.&nbsp;-김연수 &lt;눈 내리는 삼일포&gt;<br>좀이 슬어 구멍이 뚫린 삼일포의 그림은 어느새 그것이 실격의 이유가 아니라 존재의 의의가 된다. 손상이나 실패, 좌절은 눈부신 눈이 되어 현재의 예술 작품으로 태어나고, 그것을 조우한 다른 작가는 하나의 서사를 꿰어낸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일까. 지금 여기에서 맞닥뜨리는 숱한 좌절들이 결국 빛의 염주가 되어 하나의 결실로 나타날지 모르는 이야기를 우리는 일상이라 부르며 사는지도 모른다.<br>작가의 표현으로 "너울거리는 신의 마음 아래에서"에서는 복원된 마음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8/84/cover150/895460398x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88447</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오늘 같은 날, 가장 맞춤한 작가의 조언 아닐까. 묻...</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52061</link><pubDate>Sat, 03 Oct 2026 11: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5206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1770&TPaperId=175520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2/78/coveroff/k89213177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오늘 같은 날, 가장 맞춤한 작가의 조언 아닐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가을가을을 누려 보자. 이 찰나 같은 삶에 그보다 훨씬 더 짧은 가을날은 언제나 누리기에 모자라다.<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2/78/cover150/k8921317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727813</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가차없는 애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19459</link><pubDate>Wed, 16 Sep 2026 10: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51945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250437970&TPaperId=175194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71/86/coveroff/1250437970ff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0397&TPaperId=175194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63/90/coveroff/k08203039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이윤 리는 베이징에서 태어나 면역학자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왔으나 우연히 아이오와대학 작가 워크숍을 통해 작가가 된 특별한 이력을 지녔다.&nbsp;<br><br><br> <br>"살아가는 일은 독창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이 에세이는 상당히 어둡다. 자식을 학대했던, 독선적이고 감정적인 친정 어머니에 대한 기억, 두 차례에 걸친 자살 시도와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명징한 언어들로 감침질되어 있지만, 처절할 정도로 삶의 그 잔혹한 속살을 드러낸다. "생명이 있는 한, 삶에 면역이 될 수 없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이윽고 다음 이야기의 복선이 된 것만 같다.<br>작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과거형이다. 두 아들중 한 명은 십대에, 다른 한 명은 대학생이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이야기는 이 에세이를 쓰고 난 다음 벌어진 일이다. 그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 않다.<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감정적으로 힘들어 몇 번이나 멈추며 읽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명민하고 건강하게 키워낸 아들 둘이 스스로 삶을 포기한 이후,&nbsp; 그 상실을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감당해 내고 품고 살아가야 하는 이윤 리의 형언하기 힘든 고통의 자장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 시련에는 이 상실이 주는 슬픔만이 다가 아니었다. 위로랍시고 응원이라며 무심코 던지는 주변인들의 상처 주는 말들,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쓴다는 걸 일종의 모국에 대한 배신이라고까지 비난했던 모국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선정적이고 잔인한 기사들. 타인들의 아무 의도 없이 지나가듯 묻는 안부. 그 모든 것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려와 아이를 잃은 어미의 상처를 짓이겼다. 인간은 때로 얼마나 오만한가.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위로와 도움이 결국 나의 안위와 우월감을 재확인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위험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우리는 삶의 뜻밖의 시련에 처한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가? 회의적이다.&nbsp;<br>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은 이 책에서 계속 흘러가고 있는 저류다. 이윤 리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질문할 뿐이다. 아들에게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도 이윤 리는 섣불리 낙관하거나 희망적인 답을 내어놓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일을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은 없다. 기만과 포장, 눈속임을 기꺼이 포기하고 나면, 우리는 결국 돌아설 수 없는 심연을 마주하게 된다.&nbsp;<br>쓰고 읽는 일은 그래서 때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예리한 통찰과 깊이가 있는 글을 읽는 일이 언제나 권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이야기인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아득해진다. 시린 이야기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63/90/cover150/k0820303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639055</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잘 왔구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444137</link><pubDate>Tue, 11 Aug 2026 10: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4441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13&TPaperId=174441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38/2/coveroff/893746471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회자되는 작가나 책은 아무래도 좀 저어하게 되는 면이 있다. &lt;인간실격&gt;도 읽었을 텐데, 내용이나 감상 모두 어렴풋하다. 젊은 시절 세상을 등진 그의 방식도 하나의 비장한 텍스트처럼 남았지만, 거기에 동의하거나 공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하지만 &lt;쓰가루&gt;를 읽고 나서 왜 사람들이 이렇게나 자주 그를 여전히 소환하는지 알 것 같았다.&nbsp;&lt;쓰가루&gt;는 자신이 나고 자란 혼슈 북단의 고향에 돌아가 옛 친구, 친척들을 만나고 어린 시절 곁에 있었던 유모를 찾아가는 자전적인 기행 소설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그 경계가 묘하게 흐릿한 일종의 오토 픽션이다. 중간중간 쓰가루 지역의 역사나 지리적 특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조금 지루해서 호흡이 느려졌다. 다자이 오사무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흐름이 정체되는 느낌이다. 그러다 갑자기 종반부에서 유모 다케를 찾아 상봉하는 장면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뭉클하니 좋았다. 여느 다른 책들과 달리 절정이 결말에 배치된 듯한 특이한 구조다. 그래서 더 좋았다. 마침표로 끝나는 이야기만 읽다, 이렇게 느낌표가 팍 찍히는 느낌이 신선했다.<br><br>그 둘의 재회는 의외로 담담하다. 다케가 울먹이며 장성해 돌아온 어린 시절 도련님을 얼싸안는 장면 같은 건 없다. 나이 든 유모는 담담하게 인사하고 벚꽃나무에서 가지를 꺾어다 하나씩 꽃잎을 흩뿌리며 그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돌아온 것을 반긴다. 이 절제미에서 응축된 감정의 깊이와 열기가 대단하다. 정말 깊은 것은 말해질 수도 표현될 수 없고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 흐릿한 지점을 예리하게 공략한다. 30년간 연락하지 않아도, 느닷없이 나타나 담담한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관계란...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었다.<br>-번역이 유려하고 좋아 찾아보니 유숙자라는 분이다. 이름으로 역서를 찾아보게 될 만큼 좋은 번역이었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38/2/cover150/89374647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380268</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현대문학</category><title>본질은 없어 - [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430502</link><pubDate>Mon, 03 Aug 2026 19: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4305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0825&TPaperId=174305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95/75/coveroff/k12213082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0825&TPaperId=174305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a><br/>아사이 료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07월<br/></td></tr></table><br/>아사이 료는 &lt;정욕&gt;으로 처음 만났다. 도발적인 제목, 제목 만큼이나 욕망의 다양성에 대한 작가의 지나치게 관용적인 시선으로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기도 했던 소설이다. 비범할 정도로 잘 쓴 이야기이긴 했지만, 작가의 가치관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나오키상을 받은 &lt;누구&gt;는 취업 준비 대학생들의 SNS를 통한 내밀한 심리 싸움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가차 없이 그려낸 작품으로 역시 이 작가의 필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겠다 싶었다. &lt;인 더 메가처치&gt;는 2026년 일본 서점대상 1위를 한 작품이라고 해서 번역을 기다렸다. 가독성 좋은 단문으로 쓰인 소설인데도 휘리릭 한 자리에서 읽을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며칠에 걸쳐 되도록 천천히 읽으려 속도를 조절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수많은 질문들이 몰아쳤다. 의심 없이,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오랜만에 묵직한 감동도 느꼈다.<br>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이돌 팬덤 문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십 대 후반의 음반 회사 재무회계팀에 근무하는 이혼남 구보타, 구보타의 딸로 유학 준비 중인 대학생 스미카, 최저 시급 파견직으로 그날그날의 고단한 노동으로 미래의 희망까지 저당잡힌 30대 여성 아야코의 세 사람 시점의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된다.&nbsp;<br>회사에서도 재무회계 한직에서 별 볼 일 없던 취급을 받던 구보타는 어느날 잘 나가는 프로듀서 동기의 제안으로 오디션 출신 아이돌 그룹의 특별홍보 업무를 맡게 되며 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그에게 떨어진 요구는 바로 '서사'다. 나날의 전투 같은 희망 없는 삶에 지친 이들을 이 '서사'로 끌어들여 쓸모 없는 구즈를 사게 하고, 팬미팅 티켓을 사게 하고, 듣지도 않을 수백장의 CD를 사게 하는 과정은 미국의 메가 처치에서 신도를 유인하기 동원하는 전략과도 닮았다.&nbsp;<br>"신이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람을 조종하려면 '서사'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아요."<br><br>구보타가 홍보 전략을 짜게 된 팀은 공교롭게도 방황하던 딸 스미카의 덕질 상대가 된다. 아버지가 유학 준비를 한다고 믿고 지원해 준 용돈은 그 아버지가 속한 팀이 소위 팬덤에서 돈을 뽑아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설계한 루프로 빨려들어간다. 그러나 아사이 료의 서사는 물론 이 한 겹이 아니다. 그래서 그 둘은 파멸했는가? 불행해졌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의 흔들림에 이 이야기의 정수가 있다.&nbsp;<br>구보타는 홍보를 맡았던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와의 거리 조절에 실패한다. 그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권하는 화장품도 산다. 연락이 되지 않자 그의 숙소로 먹을 것을 사들고 무작정 돌진하기도 한다.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은 40대의 중년 남성에게는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구보타는 바로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잠시 잠깐 되찾는다. 사람 간에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는 것, 내 약한 모습을 노출하는 것, 사회에서 그 연령대에 기대되는 굳어버린 선입견을 부수는 것. 그건 딸 스미카도 마찬가지다. 항상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고 친구들의 비위를 거슬릴까 전전긍긍했던 그녀는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 팬클럽 활동을 하며 연대하며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만끽한다. 분명 다시 한직으로 밀려난 아버지와 유학 준비도 어그러진 딸은 겉으로만 보면 추락한 것인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반전은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층적인 메시지의 숙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nbsp;<br>이 이야기에서 가장 추락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야코다. 좋아했던 배우가 자살한 후 함께 뭉치게 된 사람들과 함께 결국 사기꾼에게 걸려 돈을 날리고 이 모든 팬덤 문화가 결국 진짜를 보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대 세력의 음모라는 믿음으로 가두 연설까지 하며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오늘날의 청춘들이 때로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 같아 안타깝다.&nbsp;<br>우리가 좋다고 옳다고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을 붙들고 그 편견 안에 가둔 세상은 얼마나 빈약한가. 그 틀을 깨고 나가고 직면해야 하는 우리 인간의 민낯은 때로 불편하지만, 그것을 직시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읽는 일은 때로 필요한 시간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95/75/cover150/k12213082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95754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