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   몽상가의 다락방 (blanca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우리의 감각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속인다.  -괴테</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5 Aug 2026 03:50:04 +0900</lastBuildDate><image><title>blanca</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1229119352563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lanca</description></image><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현대문학</category><title>본질은 없어 - [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430502</link><pubDate>Mon, 03 Aug 2026 19: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4305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0825&TPaperId=174305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95/75/coveroff/k12213082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0825&TPaperId=174305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a><br/>아사이 료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07월<br/></td></tr></table><br/>아사이 료는 &lt;정욕&gt;으로 처음 만났다. 도발적인 제목, 제목 만큼이나 욕망의 다양성에 대한 작가의 지나치게 관용적인 시선으로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기도 했던 소설이다. 비범할 정도로 잘 쓴 이야기이긴 했지만, 작가의 가치관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나오키상을 받은 &lt;누구&gt;는 취업 준비 대학생들의 SNS를 통한 내밀한 심리 싸움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가차 없이 그려낸 작품으로 역시 이 작가의 필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겠다 싶었다. &lt;인 더 메가처치&gt;는 2026년 일본 서점대상 1위를 한 작품이라고 해서 번역을 기다렸다. 가독성 좋은 단문으로 쓰인 소설인데도 휘리릭 한 자리에서 읽을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며칠에 걸쳐 되도록 천천히 읽으려 속도를 조절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수많은 질문들이 몰아쳤다. 의심 없이,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오랜만에 묵직한 감동도 느꼈다.<br>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이돌 팬덤 문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십 대 후반의 음반 회사 재무회계팀에 근무하는 이혼남 구보타, 구보타의 딸로 유학 준비 중인 대학생 스미카, 최저 시급 파견직으로 그날그날의 고단한 노동으로 미래의 희망까지 저당잡힌 30대 여성 아야코의 세 사람 시점의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된다.&nbsp;<br>회사에서도 재무회계 한직에서 별 볼 일 없던 취급을 받던 구보타는 어느날 잘 나가는 프로듀서 동기의 제안으로 오디션 출신 아이돌 그룹의 특별홍보 업무를 맡게 되며 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그에게 떨어진 요구는 바로 '서사'다. 나날의 전투 같은 희망 없는 삶에 지친 이들을 이 '서사'로 끌어들여 쓸모 없는 구즈를 사게 하고, 팬미팅 티켓을 사게 하고, 듣지도 않을 수백장의 CD를 사게 하는 과정은 미국의 메가 처치에서 신도를 유인하기 동원하는 전략과도 닮았다.&nbsp;<br>"신이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람을 조종하려면 '서사'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아요."<br><br>구보타가 홍보 전략을 짜게 된 팀은 공교롭게도 방황하던 딸 스미카의 덕질 상대가 된다. 아버지가 유학 준비를 한다고 믿고 지원해 준 용돈은 그 아버지가 속한 팀이 소위 팬덤에서 돈을 뽑아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설계한 루프로 빨려들어간다. 그러나 아사이 료의 서사는 물론 이 한 겹이 아니다. 그래서 그 둘은 파멸했는가? 불행해졌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의 흔들림에 이 이야기의 정수가 있다.&nbsp;<br>구보타는 홍보를 맡았던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와의 거리 조절에 실패한다. 그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권하는 화장품도 산다. 연락이 되지 않자 그의 숙소로 먹을 것을 사들고 무작정 돌진하기도 한다.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은 40대의 중년 남성에게는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구보타는 바로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잠시 잠깐 되찾는다. 사람 간에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는 것, 내 약한 모습을 노출하는 것, 사회에서 그 연령대에 기대되는 굳어버린 선입견을 부수는 것. 그건 딸 스미카도 마찬가지다. 항상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고 친구들의 비위를 거슬릴까 전전긍긍했던 그녀는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 팬클럽 활동을 하며 연대하며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만끽한다. 분명 다시 한직으로 밀려난 아버지와 유학 준비도 어그러진 딸은 겉으로만 보면 추락한 것인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반전은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층적인 메시지의 숙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nbsp;<br>이 이야기에서 가장 추락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야코다. 좋아했던 배우가 자살한 후 함께 뭉치게 된 사람들과 함께 결국 사기꾼에게 걸려 돈을 날리고 이 모든 팬덤 문화가 결국 진짜를 보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대 세력의 음모라는 믿음으로 가두 연설까지 하며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오늘날의 청춘들이 때로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 같아 안타깝다.&nbsp;<br>우리가 좋다고 옳다고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을 붙들고 그 편견 안에 가둔 세상은 얼마나 빈약한가. 그 틀을 깨고 나가고 직면해야 하는 우리 인간의 민낯은 때로 불편하지만, 그것을 직시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읽는 일은 때로 필요한 시간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95/75/cover150/k12213082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957541</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고전</category><title>시작 안의 종말 - [1984]</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410924</link><pubDate>Sat, 25 Jul 2026 1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4109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835925&TPaperId=17410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69/99/coveroff/k72283592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835925&TPaperId=174109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984</a><br/>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br/></td></tr></table><br/>&lt;1984&gt;는 기묘한 책이다. 읽어보지 않고도 책 속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감시자 '빅 브라더'는 대부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조지 오웰의 예언적 디스토피아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거의 1세기 전에 출판된 이 책은 개인 정보, 온라인 검색 알고리즘 추적이 일상화된 2026년에 읽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현재적이다.&nbsp;<br>종이 위에 뭔가를 기록한다는 것을 결정적인 행위였다.-pp.15첫장면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모든 행동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을 등지고 일기를 쓰고 있다. 오세아니아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그는 핵심당원 오브라이언이 자신과 당에 반하는 무언의 가치관을 은밀히 공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오세아니아는 상시 전쟁 중이고 그 상대는 유라시아나 동아시아와 어디여도 상관없다. 여기에서 전쟁은 잉여 물자를 처리하고 사회적 긴장감을 만들어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으로 기능한다. 당은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하며,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실제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를 편의에 맞게 갱신하고 있고, 그 일에 윈스턴은 연루돼 있다. 알지만 알지 못하는 것의 이중사고는 사상으로 저지르는 반역조차 엄벌에 처하는 이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 시민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상의 사고방식이다. 그들은 "2 더하기 2가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다.&nbsp;<br>유부남이었던 윈스턴은 사상경찰이라 의심했던 젊은 여성 줄리아와 금지된 사랑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그들의 밀회의 장소가 됐던 곳에서 체포된 이후 그는 자신의 사상적 동료라 믿고 의지했던 오브라이언에게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며 결국 지배적 당론에 자신의 의지와 반해 항복하게 된다. 조지 오웰은 인간이 육체적 고통 앞에서 얼마나 비겁해질 수 있는지를 읽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결국 이 끝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이나 이상적 가치를 내던지고 연인까지 배신하게 되는 윈스턴의 전락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하게 되는 것들에 대한 하나의 예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실에 맞닿아 있다.<br>'최후의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던 윈스턴이 우리가 숱하게 접해왔던 현실을 뛰어넘거나 영웅이 되는 주인공 서사에 대한 기대를 보기 좋게 꺾어 버리는 장면은 서글픈 현실의 축도이기도 하다. 여기에 낭만적이거나 로맨틱한 반전은 없다. 이 건조하고 잔인할 만치 인간의 위선과 위악, 유약함을 증언하는 거친 이야기 사이 윈스턴이 이따금 회고하는 어린 시절 가난한 어머니와 여동생과의 슬픈 삽화는 윈스턴이 결국 그 최후의 인간이 되지 못한 하나의 애조 띤 복선으로 자리한다. 조지 오웰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갈피짬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사랑을 바랐지만, 서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없을 만큼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가진다는 게 그 사람의 성장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면, 삶은 결국 정치 행위와 동떨어져 얘기될 수 없다.<br>더는 책을 읽거나 스스로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 되지 않는 시대에서 단어를 폐기함으로써 사고를 제한하는 이 디스토피아가 가지는 무시무시한 위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좋은 책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해 주는 책"이라는 문장은 조지 오웰의 1984가 그 전범이 됨을 보여주는 말 같다.&nbsp;<br>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인간에게 자유는 그 무엇보다 근원적인 존재 기반이 된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읽고 쓰는 일은 그 존재의 무게추가 된다는 것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69/99/cover150/k72283592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4699927</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자기계발</category><title>맨 끝이 좋으면 다 좋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85909</link><pubDate>Sat, 11 Jul 2026 1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8590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8640&TPaperId=173859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79/83/coveroff/892556864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635836&TPaperId=173859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88/88/coveroff/k95263583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최민식 주연의 &lt;맨 끝줄 소년&gt;의 원작은 스페인 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희곡이다. 고등학교 문학 수업 시간에 제출한 학생의 과제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제 관계의 이야기 원작은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는 최민식이 대학 교수로, 그에게 작문 과제를 제출하는 학생은 같은 대학의 공대생으로 변주되고 작문 내용 또한 조금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드라마틱하게 각색됐다. 맨 끝줄에 앉은 소년이 친구의 집에 들어가 그 가족을 향한 관찰과 관음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 기본적인 설정은 같다. 이 이야기의 전개에 집요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교사의 욕망과도 미묘하게 얽혀 있다.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만든 타인의 삶의 서사는 그 진실성에 있어서도 흔들리는 기준이 교차하고 빗나간다. 각자의 진실은 각자의 몫인 동시에 모두의 욕망을 반영한 기만과도 만난다. 드라마도 희곡도 탄탄한 서사와 묵직한 메시지가 각기 다른 색채로 공명한다.<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죽어가는 태양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살 임무를 떠맡게 된 전직 과학 교사가 다른 항성계에서 조우한 외계인과 친구가 된다면, 그는 과연 지구에 영웅이 되어 돌아올 것인가? 모두가 열광하는 &lt;프로젝트 헤일메리&gt;는 이 질문을 시종일관 강력한 에너지로 끌고 가는 이야기다.<br> <br>이렇게 애정이 가는 외계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앤디 위어는 분명 특별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보통 연상하는 괴이하고 공격적이고 소름 끼치는 외계 종족 같은 건 여기에 없다. 외계인 로키는 착하고 귀여운 츤데레 스타일이다. 결국 주인공이 하게 되는 선택에도 외계인 로키는 생각보다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lt;맨 끝줄 소년&gt;에서 헤르만 교사가 좋은 결말이라 이야기했던 "필연적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거. 그럴 수밖에 없으면서 반전이 있는 거."에 정확히 부합하는 엔딩이 인상적이었다. 왜 이 소설이 이렇게나 많은 사랑과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지 설득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lt;맨 끝줄 소년&gt;의 교사가 이 소설을 봤다면, 그런 결말을 써냈다고 칭찬해줬을지도 모르겠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688/88/cover150/k9526358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6888898</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비비언 고닉, 하이데거, 아렌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76563</link><pubDate>Mon, 06 Jul 2026 1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7656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0594&TPaperId=173765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9/19/coveroff/k48213059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비비언 고닉의 &lt;연애 시대의 종말&gt;을 읽고 있다 화들짝 놀랐다. 뒷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나 아렌트와 마르틴 하이데거가 각각 열여덟 살의 대학 신입생, 삼십 대의 교수로 만나 실제 불륜 관계로 나아갔으며, 이후 각자의 길을 가고 나서도 결국 노년에 다시 재회했다는 얘기를 비비언 고닉을 통해 알게 됐다.&nbsp; &lt;예루살렘의 아이히만&gt;을 쓴 한나 아렌트가 한때 나치에 협력했던 하이데거와 연인관계였던 것도 모자라 노년에는 그를 변호하는 데에 힘을 보탰다고? 비비언 고닉은 용감하게 아렌트의 허점을 공략한다. 즉, 그녀가 자신의 갈망,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삶에 통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nbsp;<br><br> <br><br>결국은 이런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평생 감정에 휘둘리게 된다. 감정을 이해하더라도 삶에 통합하지 못하면 오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 감정을 부인하고 감정의 힘을 무시하면, 완전히 망한다.-비비언 고닉 &lt;연애 시대의 종말&gt;<br><br><br><br><br><br>'아렌트와 하이데거 이야기는 비평가가 아니라 극작가의 영역'이라는 고닉의 이야기는 맞다. 머리로 옳고 그름을 재단할 사안이라기보다는 십대의 영특한 여학생이 학문적으로나 위계로나 자신을 압도하는 젊은 유부남 교수와 함께 '마의 산'을 읽고 사랑에 빠지는 일,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도 자신의 의지에 반해 그 영향력으로 다시 회귀하는 일은 비평가가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nbsp;<br>나는 이 사랑을 지지하지 않지만, 어렵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관계를 전면에 내세워 모두가 행동하는 지식인이라 칭하는 한 사람의 신화를 벗겨내면서도 그 사람의 성취나 기여를 폄하하지 않는 비비언 고닉의 다층적이고 섬세한 글쓰기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9/19/cover150/k4821305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91999</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이런 낭비가 있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69540</link><pubDate>Thu, 02 Jul 2026 1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6954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9722&TPaperId=173695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6/0/coveroff/k96213972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이제 뭔가를 좀 알까 싶은데 이런 앎의 유효 기간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짧다. 우리는 뭔가를 향해 평생을 달리기도 하는데, 그 종점은 어처구니없게도 죽음이다. 이런 부조리가 또 있을까. 모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를 욕망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 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더 나이 들어 노년의 삶을 사는 사는 사람들은 이런 부조리와 실존의 비극을 어떻게 삶과 화해시킬 수 있는 걸까. 종점이 뻔히 보이는데도 일상을 충실히 영위할 수 있는 그 용기가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존경스럽다. 내게는 각자의 고단한 운명을 감내하며 묵묵히 살다 죽는 일 자체가 영웅적인 행위로 보인다.<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리디아 데이비스의 &lt;세부 속으로&gt;는 예일대 문학상 재단에서 출판하는 '나는 왜 쓰는가' 시리즈 청탁으로 완성된 책이다. 통상, 이런 테마 선집 청탁에 의해 나오는 책은 아무래도 기대되는 틀 안에서 작가의 또렷한 개성이 발휘되기 힘들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리디아 데이비스의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칠십 대의 노작가가 자신의 쓰는 일의 의미를 풀어나가며 대뜸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책,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을 들이민 것은 큰 복선이었다. 독자와 시대의 요구에 영합하지 않는 우직한 내 세계에 대한 천착과 기록이 결국 '쓰기'의 의미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이 모든 쓸모없고 작은 것들의 가치는 결국 죽어 사라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에 몰두하고 사랑하고 시간을 들이는 삶의 그 무용해 보이는 아름다움과도 만난다. 젊은 시절 처절하게 굶주림과 사투를 벌이는 &lt;굶주림&gt;을 써냈던 크누트 함순이 말년에 &lt;풀이 무성한 오솔길에서&gt;의 일상의 산책기를 툭 던져 놓고 가장 중요한 재판의 결말은 밝히지도 않은 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그 무심함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수용시설에서 130킬로(13킬로가 아니라)미터를 걸어 집으로 갔던 존 클레어의 시에 대한 이야기는 언뜻 이 책과 어떤 접점이 있는지 노골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공명한다.&nbsp;<br>결국 좋은 에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원대한 사회학적 장광설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 미시사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그 누가 독자로 와도 개인적인 읽기가 가능한 글 말이다. 사소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테마를 불러내는 작가의 필력에 처음부터 끝까지 마법처럼 걸려들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책 안에서 인용한 이 짧은 민속시가 이 책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br>빨간 털실로 이 손모아장갑 뜨기를 시작하는 게&nbsp;아니었는데.장갑은 이제 완성했지만,내 인생은 끝나버렸네.-러시아 민속 시(세부 속으로-리디아 데이비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6/0/cover150/k9621397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260072</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고전</category><title>진실을 진실로 말한다는 것 - [올빼미의 낮]</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43552</link><pubDate>Fri, 19 Jun 2026 14: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435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53&TPaperId=173435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5/84/coveroff/89374648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853&TPaperId=173435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올빼미의 낮</a><br/>레오나르도 샤샤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어떤 것을 목격하고 진실을 얘기하는 건 생각만큼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하필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닐 때, 그리고 나머지 모두가 다 함께 침묵할 때 그걸 깨고 나오는 건 더더욱 그렇다. 사람은 생각보다 더 비겁하고, 복잡한 존재다.&nbsp;<br>레오나르도 샤샤의 &lt;올빼미의 낮&gt;은 백오십 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흔히 이 정도 분량이면 앉은 자리에서 집중하면 두어 시간 정도면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며칠에 걸쳐 집중해서 읽어야 사건의 내막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다층적인 결과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점의 변화가 계속되긴 하지만,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농밀한 페이지터너다.<br>첫 장부터 귀를 찢을 듯한 총성이 울리며 시작한다. 바로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시칠리아 팔레르모행 버스에 올라타려던 건설협동조합장의 죽음 이후 이 사건을 맡게 된 군경 벨로디 대위는 정보원 파리니에두에게서 연이어 벌어진 농부의 실종 사건까지 연결 고리를 찾게 된다.<br>이 사건의 정점에는 '마피아'가 있다. 우리가 영화 '대부' 같은 곳에서 떠올리는 그 끈끈한 혈족 같은 마피아의 유대는 이탈리아에서 훨씬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것은 하나의 금기로 작용한다. 바깥에서 보듯 낭만적이고 미화된 캐릭터의 어두운 뒷 배경 정도가 아닌 것이다. 작가 샤샤는 이 소설의 분량이 이렇게 줄어든 데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마피아의 거대한 영향력이 있었음을 작가 노트에서 고백한다. 덜어내고 또 덜어낸 이유를 솔직하게 항변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마지막에 덧붙인 작가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하나의 눈속임 장치인지도 모른다. 즉, 이 정도로 두려워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비겁한 공모의 풍자일 수 있는 것이다.&nbsp;<br>정의를 믿고 그것의 실현을 추구하는 청년 장교와 노인이 된 마피아의 대화 장면은 영화의 한 씬처럼 인상적이다. 노인은 사회, 국가, 법망의 외부에서 하나의 힘이 된 그 불의의 세력을 이 청년에게 이해시키려 해보지만, 물론 실패한다. 그러나, 그가 이 파르티잔 출신의 청년에게 '인간'이라고 칭한 것은 그 젊음이 가지는 무모한, 무해한 희망에 대한 일종의 경의 또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lt;올빼미의 낮&gt;의 미덕은 이것이다. 이 복잡다단한 인간과 그 인간들이 엮어내는 그 역동의 가운데에서 섣불리 판단, 재단하려 하지 않는 작가의 신중함이 결국 독자들에게 저마다의 감상을 살아내기를 바라는 것. 절대악을 성토하는 것으로 납작하게 눌러버리지 않고 그 악을 눈앞에 갖다댐으로써 어떻게 대결해야 할지를 개인 각자의 교훈으로 남겨두는 틈에서 작품의 깊이가 더해진다.&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5/84/cover150/89374648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58474</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테마가 있는 이야기</category><title>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성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05409</link><pubDate>Sat, 30 May 2026 09: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30540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7559&TPaperId=173054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8/91/coveroff/k15213755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336&TPaperId=173054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79/coveroff/k17213833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둘째 아이가 열네 살이 됐다. 목소리도 변하고 체구도 커졌지만, 무엇보다 부모와의 관계가 변했다. 이제 더는 내가 절대적 보호자나 아이 앞에서 절대적인 권위자가 될 수 없다. 사사건건 대립하자면 끝도 없다. 어제의 아이는 없고 매일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급변하는 이 시대에 아이의 성장은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오는 투쟁을 밖에서 지켜봐야 하는 어른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말 그대로 '줄탁동시'의 어미닭처럼 안에서 부리로 알을 쪼고 있는 병아리를 시의적절하게 도와줘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며 서두르지 않아야 하는데, 바깥 세계는 그런 잠깐의 여유를 용납하지 않는다.<br><br> <br>미국의 흑인 노예제와 남북전쟁을 다룬 문학은 많지만, 몇 대에 걸쳐 한 가문을 뚫고 내려온 유장한 역사를 짊어진 한 소년의 성장기를 이토록 아름답고 치밀하게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소설은 포크너만이 쓸 수 있지 않을까. 똑같이 존엄한 인간을 단지 피부 색깔로 나눠 차별하고 한 가문의 노예로 종속시킨 백인의 오만함은 대지, 노동, 야생의 자연과 맞물려 그 윤리적 패배의 업,속죄, 수치심과 섞여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유장한 가문의 연대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단 하나 아이의 '성장'에는 주인도 노예도 신분도 차별도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하고, 모두가 한 가족처럼 협력하여 하나의 지도를 그린다. 포크너 자신이 투영된 것만 같은 소년의 성장기가 그렇다.&nbsp;<br>여섯 편의 연작 소설은 따로 분리된 것 같으면서 연결되어 있다. 가장 중심적인 인물인 아이작 매캐슬린의 탄생 비화를 풀어내는 &lt;옛일&gt;을 필두로 그 소년이 샘 파커스라는 흑인 노예 노인으로부터 야생에서 첫사냥을 배우고, 곰을 대면하게 되며 성장을 이뤄내는 이야기인 &lt;곰&gt;과 그 소년이 노인이 되어 후손들을 지켜보게 되는 &lt;삼각주의 가을&gt;로 이어지고, 다시 몇 대를 내려와 그 매캐슬린 가문이 흑인 노예 집안의 손자를 장사 지내주는 &lt;내려가여 모세여&gt;로 마무리된다. 외형적으로는 엄격하게 주인과 노예로 양분되어 있는 두 집안이 수 대에 걸쳐 서로 얽히고 설켜 살아나가는 대서사시는 우리 인간이 아무리 계층, 계급을 만들고 삶과 사회를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해도, 인간의 생명과 삶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나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기 전인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세속적인 경계선 일거에 지워버리고 진짜를 기민하게 인식하는 직감이 있다. 이 이야기 속 소년의 평생을 지배한 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런 통념까지 다 부수어 버리고 난 대지에서 야생의 숲을 향해 전진하는 법을 가르쳐 준 흑인 노예였다.&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일본에서는 어느덧 우리에게도 익숙한 용어인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세대도 나이를 먹어 50대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돼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80대가 된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사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nbsp;이 소설은 중학교 시절 등교 거부 이후로 7년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게 된 히키코모리 아들과 뒤늦게 그 아들의 가해자들을 향한 학폭 소송을 진행하게 된 50대 아버지의 이야기다. 초반부에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들과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가정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아들의 칩거의 원인을 간파하게 된 아버지가 법적 투쟁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과 그 마무리가 여러 의미 있는 질문과 생각 거리를 남기는 소설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 어른들이 선호하지 않는 비학군지 지역 학교 출신 젊은 변호사 다카이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한 아이의 성장에는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nbsp;<br><br>십대의 성장이란 안온하고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을 야생숲 곰사냥을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안의 핸드폰 앞에서 홀로 고립되는 현대의 아이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시간, 부모는 아이의 열리지 않는 방문 앞에서 망연히 서성인다. 성장이란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일 텐데, 오늘도 이런 고립된 가정들이 겪고 있는 성장통에 대해 화두를 던져주는 읽기였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79/cover150/k172138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317951</link></image></item><item><author>blanca</author><category>고전</category><title>영원한 비통함 - [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nca98/17264172</link><pubDate>Fri, 08 May 2026 09: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nca98/172641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2641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off/893746495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2641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a><br/>윌리엄 포크너 지음, 권지은 옮김 / 민음사 / 2026년 04월<br/></td></tr></table><br/>이 책이 너무나 완벽해서 별 다섯 개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인종, 여성에 대한 멸칭, 편견은 오늘날 PC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논란 거리가 될 지점이다. 하지만 이 책이 출판된 20세기 초 시대상을 감안하고 본다면, 별 다섯 개를 주지 않을 도리가 없는 책임은 분명하다. 어떤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노출하는 한계, 단점에도 불구하고 너무 크고 심오해서 읽는 행위 자체가 버거울 때가 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생명력을 지닌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 여전히 읽는 일에 대한 환희를 느낀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잠식한다는 기사로 사방이 도배되는 와중에도 한 인간이 직접 몸으로 부딪혀 살아내고 만들어 낸 이야기에 감동 받을 수 있다는 건 여전히 경이롭다.<br><br>&lt;야생 종려나무&gt;는 윌리엄 포크너가 처음 내세운 제목이 아니다. 부제인 &lt;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gt;이 그가 붙인 원제목이다. 성경 구약 시편 137편에서 따온 유대인들의 망향가의 일부다. 물론 이 대목 또한 현대 중동 상황을 감안한다고 보면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nbsp;<br>이 소설은 그 시대를 뛰어넘는 실험적 구조다. 1930년대 사랑 이야기인 &lt;야생 종려나무&gt;와 1927년 미시시피주 대홍수를 배경으로 한 죄수 이야기 &lt;노인&gt;이 교차하며 십 장으로 구성된다. 결국 그 이야기 속 인물들이 서로 시간의 흐름 속에 만나는 걸로 쉬운 접점을 가질 거라 생각했던 내 기대는 보기좋게 깨졌다. 주인공 둘이 마지막으로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교화 시설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완전히 분리된 이야기로 이렇다할 접점은 없다. 이 두 이야기는 설정이나 인물이 아닌, 주제에서 만난다. 사회의 통상적인 기대나 가치관을 배반한 두 인물의 실패담으로, 승리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결국 무참히 패배하고 마는 이야기다. 윌리엄 포크너는 바로 이 실패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시간과 육체 앞에서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생래적 한계를 직시한 작가가 어떻게 그것을 극한까지 밀고 갔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의 읽기다.<br>&lt;야생 종려나무&gt;이야기의 시점은 언뜻 치밀한 위장으로 보인다. 사십대 의사가 한밤, 정식 부부로는 보이지 않는 이십 대 부부 세입자 중 남자의 구조 요청을 받는 걸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지식한 '순수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의사는 그 베일을 타의에 의해 찢을 수밖에 없는 불편한 순간이 온 것을 감지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 의사의 것이 아닌, 그에게 찾아온 청년 헨리와 죽어가는 샬럿의 것이다. 샬럿은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남편과 두 아이가 있는 여자다. 의대생 인턴이었던 헨리는 우연히 파티에서 그녀와 만나 위험한 사랑의 도피 행각에 빠지게 된다. 사회적 관습, 시선, 평판에서 벗어나 오직 둘만의 사랑의 세계로 만들었던 그들의 일상은 그러나 지난한 먹고사는 문제들과 충돌한다. 여기에 더해 샬럿은 임신까지 하게 되며 그 낙태 과정에 헨리를 끌어들임으로 둘의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들이 추구했던 영원한 사랑은 결국 지고야 말 싸움이다. 한낱 가벼운 불륜 스토리로 치달을 수 있었던 통속적 이야기는 포크너의 펜끝에서 인간이 시간과 사회, 관습 바깥으로 탈출을 감행할 때 감수해야 할 것이 결국 삶 그 자체라는 통렬한 진실로 파고든다.&nbsp;<br><br>&lt;노인&gt;기차 강도 미수 혐의로 십오 년의 형량을 선고받고 열아홉 번째 생일이 지나자마자 감옥에 갇힌 죄수는 대홍수 수재민 구조 작업에 투입되고 이 과정에서 실종돼 졸지에 사망자로 둔갑한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만삭의 임산부를 구해 함께 이 재난을 통과하고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후일 엄청난 서사를 갖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닌, 오직 이 생면부지 여자의 안전한 출산과 이후는 아기와의 생존을 위해 온갖 굴욕과 고난을 감내한다. 윌리엄 포크너는 진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끼워 넣어 이야기의 균형을 잡는다. 어떻게든 교도소의 배를 안전하게 반환하기 위해 그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노력하는 장면과, 자수해서 그곳으로 안전하게 돌아가려고 시도하는 대목들은, 장기수가 탈출하여 해방되고 싶을 거라 생각하게 되는 게으른 선입견을 일거에 박살낸다. 그 과정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혼혈인과 함께 한 기묘한 협업과 동거 속에서 악어 사냥을 나서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다.&nbsp;결국 다시 감옥으로 돌아와 십 년 추가 형량까지 받고도 크게 분노하지 않고는 동료 죄수들 앞에서 만담을 떠들듯 자신의 여정을 간략하게 압축해서 들려주는 상황은 또 어떠한가. 윌리엄 포크너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농담 같은 결론이다. 즉 그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모범수로 형량이 줄어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난 상태로 다시 갇히지만, 어쩐지 그 상황이 크게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결국 그가 자신도 모르게 그럼으로써 한 여자를, 그리고 그 여자의 아이라는 생을 구원한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nbsp;<br>여기에 영웅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두 남자의 처절한 이야기가 있다. 손쉬운 허무주의로 침몰하지 않고 결국 삶의 부표에 올라서는 그 둘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가로질러 여전히 빛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결국 그러해야 하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영웅이 아닌 일상으로서 영위하는 삶, 끊임없이 패배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 연약한 육신은 결국 누군가의 기억으로 시간을 횡단할 것이다. 대단한 이야기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150/89374649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089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