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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지 이틀이 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상품 준비중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한자 실력은 늘어간다.
잘하면 교육용 한자(--;;) 1,800자를 몇 달 안에 습득하고 3급 시험을 치러 갈 수 도 있을 것 같다. 아니, 치기를 한 번 부려 1급을 시도해 볼까 싶기도. 명함의 한자를 못읽어 전전긍긍하며 웅크리고 열심히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들켰던 기억이 아프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하이드님 덕분에. 그 몽화적인 불륜(--;)의 잔영 만큼 표지도 너무 매혹적이다. 영화가 참 좋았지만
서사의 긴박감 대신 등장인물들의 심리변화를 따라가는 나른한 전개 때문에 은근히 지루한 맛(이상하게 이영화는 지루한게 제격으로 보인다.)이 있었는데 책도 약간 지루하다는 평이 올라와서 다소 겁난다. 이외수재미없는 책은 재수없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재미도 주관적인 기준에 디룽디룽 매달리지만 그래도 사랑했지만 지루했던 영화는 영상미로 버텼다지만
책은, 음. 상당히 곤란하다. 재미없으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바렐라의 <윤리적 노하우>는 너무 소설만 읽어대는 것 같아서 균형 차원에서.특히 자아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라는 그의 논리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로쟈님의 서평을 재미있게 읽었다. 언니 아기가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되레 사람들이 멀거니 구경했던 모습을 보고 난 후 측은지심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대체 윤리적 행위라는 게 본질적 경향성이라고 믿게 된 것은 교육 탓인가, 언론 탓인가. 의인은 드물기 때문에 화제가 되는 것이겠지. <설득의 심리학>에서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강도한테 칼에 찔려 허우적대는 여인을 아무도 돕지 않고 구경하고 있는 잔인한 광경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건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 사례가 아니라, 나, 아닌 누군가가 해주겠지,라는 대중에의 함몰이라는 근거로 설명된 것으로 기억된다.  인간에 대한 기대로 붕붕 떠다니는 것도 안타까워 보이지만 불신과 악의적 단정 하에 침울한 사람의 
모습은 더 불쾌하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책을 읽는다.

<롤리타>는 영화 호평에 기대어 뒤늦게 그리고 어둠의 통로로 보려 했던 시도가 좌절로 끝난 오기 덕택에.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늦지 싶다. 뒤늦게 품절이라고 할 듯. 왠지 예감에. 

그리고 갑자기 읽고 싶어 온몸을 긁게 되는 책들. 배송이 밀리니 뛰쳐 나가 사야 하나. 

 

 

 

 

 

 

 

 

<벨아미>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여자들을 유린하는(적절한 표현인지) 스토리라고 한다. <면도날>은 재미를 보장하는 서머셋 몸이기에 주저없이 선택한다.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읽으면서 깜짝 깜짝 놀란다.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은  단조로운 얘기를 어떻게 아름답게 가독성 있게 감쳐 보여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증 같다. 심리 묘사에 집중하고 주인공이 하느적 하느적 걸어다니는 타입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소설을 한동안 읽지 않았는데 그 허구의 공허함 속에 인생에 대한 인간에 대한 통찰이 파고들어가 움찔움찔하게 되는 재미를 알아 버렸다. 거짓말이 다가 아니라, 그 거짓말 속에 녹아 있는 작가의 인생관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분석의 향연이 결국 작가의 자서전 내지 일기를 읽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끊임없이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교묘한 위장술 아래 자신을 숨겨놓는 작가들의 그 트릭을 발견하는 쾌감, 그게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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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1-1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벨아미...저는 이 책이 한동안 번역이 안 되길래 안타까웠어요.40년전 정음사 번역본을 읽었거든요.출세하려고 온갖 추한 짓은 다하는 젊은 놈이 등장하지요.게다가 직업이 기자! 여하튼 소설가들은 기자를 싫어하나 보다...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일단 읽어보세요.모파상 특유의 인간묘사가 적나라합니다.

blanca 2010-01-18 13:51   좋아요 0 | URL
40년 전에 읽으셨다는 얘긴 아니시죠?ㅋㅋㅋ 직업이 기자군요. 더 흥미가 갑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1-18 16:19   좋아요 0 | URL
'40년전의 정음사 번역본'으로 써야 하는데...추잡한 기자를 모델로 한 소설은 우리나라에도 있죠.

2010-01-18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8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9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곳 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전쟁과 평화, 논쟁과 타협, 이성과 감성, 위선과 위악.
들어가는 문은 좁았다. 그러나 나오는 문은 턱없이 휘했다. 허전하고 슬펐다.
나는 오른쪽 발을 그 출구의 문지방에 걸친채 그대로 있어도 될 구실을 찾아 더듬거렸다.
톨스토이의 분신 같은 레빈이 고개를 들었다.
안나는 갔어요. 나도 가게 됩니다. 사소한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순간순간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당신도 결국 한 줌의 먼지로 스러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그 경계 너머에 절대적인 선, 절대적인 진리가 스며 있습니다.
불합리한 사랑이지만 우리는 사랑을 합니다. 이 힘이 오는 그 시원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영화를 먼저 본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함정과 약간의 생생함을 떨구었다.
소피마르소의 그 에메랄드 빛이 살짝 휘감긴 회색 눈동자는 안나의 그것과 거의 흡사했지만
안나의 특질인 붉은 입술 사이를 팔딱팔딱 뛰어 돌아다니는 생기로 묘사되는 그 과잉된 뭔가
되레 온순해 뵈는 그녀의 인상에서 도저히 상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억눌린 생기를 마침내
발산하고 마는 안나를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건 분명 실책이었다. 소피 마르소의 안나를 알아 버린 것은.
내내 안나 카레니나를 소피 마르소로 치환하여 떠올리고 말았다. 



 

당시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들과 인용된 각종 원전들에 대한 친절한 각주들은 그 자체로 돋보였다.
모지락스러운, 숙부드러운 부인(사랑에 빠지기 전의 안나에 대한 세간의 평^^), 잇바디(치열),너나들이(격의없는 사이)
같은 우리말들을 활용하여 정성스럽게 한 번역은 간혹 만연체로 늘어지는 그 지루함에 대한
아쉬움 정도만이 남을만치 훌륭했다.
 

결국 불륜의 로맨스이자 실패한 일탈로 귀결지어질 수도 있는 안나의 사랑만이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는 아니다.
그녀의 오빠 스티바의 불륜으로 문을 열고, 스티바의 처제 키티와 결혼한 친구 레빈의 철학적 성찰로 작품의 문을 닫은 것은
톨스토이가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맞춤한 양단 같다.
온갖 불합리와 감정의 과잉이 판치는 세상사를 가족의 안에서 형상화하고 그 자잘한 불합리와 비극들의 소재들을,
결국 어떤 절대적 존재의 절대선으로 다림질하여 아퀴를 짓는 것.
물론 이런 이상주의적 결론에 아쉬움이 조금 남기도 하지만
그것이 소설의 틀 안에서 완성되는 모습이 그 자체로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가지는 것 같다. 
소설은 철학서가 아니지만, 그래서 어쩌면 이 아쉬움이 그대로 미결인 채로 아름답게 빛나지만
허구 안에서 진실의 사금파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유쾌한 경험이다. 

세 권의 두툼한 분량이 아쉬울만큼 재미있다. 뒤로 갈수록 더 속도가 나고, 안나의 내면에서, 또 레빈의 내면에서
들고나는 그 수많은 사고의 편린들이 긴박감 있게 묘사되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톨스토이는 꼭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한번 휘휘 저어보고 나온 이처럼 예리하게 우리의 마음 속을 지나가는 그 수많은 상념들을 집어낸다.
그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나 감정의 조각들도 그의 펜 끝에서는 하나의 서사가 되어 나오니 놀라울 따름이다. 

 

표지의 라일락빛도 안나에게 사돈처녀 키티가 상상으로 입혀보고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라일락빛에 대한 암시인 것 같아
기억해 두고 싶다. 물론 안나는 그 파티에 키티의 기대를 저버리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와버리지만. 아주 자상한 북커버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뭐든지 필연으로 감치는 것도 재미있는 습관이라고 합리화하련다. 

다 읽고 나서는 1권의 중반까지 걸치고 오만하게 내렸던 결론을 뒤집고도 한참을 어안이 벙벙하게 할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고전이란 이런 것이구나. 소설적 성취가 여기까지도 올 수 있구나.
답답하게 엉켜 있던 실타래를 마구 끄집어 내어 풀리는 데까지 막 흔들면서 풀어내고 마무리를 넘겨준 사람을 만난 느낌.
삶에 던지고 싶은 수많은 질문들을 들키고 그 해답을 차근차근 함께 연구하다 갑자기 내처진 느낌.
안나의 그 무모한 사랑과 그 사랑에 던진 과잉된 무언가의 그 극적인 마력에 이끌리다가도
심심하게 일상을 영위하고 항상 질문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레빈에게 결국 끌려가고 마는 아이러니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을
그가 농부들과 더불어 풀베기를 하는 그 노동의 무아의 지경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충동과 순간을 뚫고 나가는 과잉된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랑의 피곤함보다는 사물에 대한 우직한 투신과 연마가 남기는
담백한 만족감을 원한다면 자기기만일까, 아님 늙어버렸다는 방증일까.
이렇게 또 질문들은 또 숱하게 남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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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1-1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안나 카레니나를 독파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명이나 있을까요?

blanca 2010-01-16 22:03   좋아요 0 | URL
아...침울했는데 노자님 칭찬에 기분이 급좋아지는 이 단순함이라니. 책 다 읽었다고 칭찬받기는 또 처음이네요^^ 좀전에 우리나라에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다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답니다.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1-17 14:53   좋아요 0 | URL
율리시즈...유명하긴 하지만 실제로 읽기는 힘든 책들에 관심이 많으시군요.저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정도라면 몰라도 율리시즈는 좀...

다락방 2010-01-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과 blanca님의 이 댓글들을 보니, 반드시 율리시스를 완독해야겠다는 의욕이 불타올라요. 2010년에는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어요. 불끈!

blanca 2010-01-19 14:36   좋아요 0 | URL
아. 저 다락방님이 이거 산거 페이퍼 검색하다 보고 저도 사고 싶지만 읽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정말 다 읽고 리뷰 올려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당!

프레이야 2010-01-2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에요.
소피 마르소는 착해보이는 약간 처진 눈꼬리가 어떤 경우엔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나이 들어갈수록 오히려 더 분위기가 풍성해지는 배우 같아요.
저도 라일락색 참 좋아하는데요, 북커버에도 필연이^^

blanca 2010-01-24 20: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소피마르소는 언제나 착해보이잖아요. 그래서 좋아하기도 하구요. 라일락색 참 묘하게 이뻐요^^
 

요새는 인간 관계의 위선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인간 간에 모든 허위와 위선을 다 솎아내고도 남는 아름다운 부스러기들이 있기는 한 걸까?
친구, 우정, 연인, 사랑. 이게 정말 실재하는 것들일까?
아니 다만 살아나가기 위해 견디기 위해 그냥 모래 위에 쌓아놓은 하나의 허상의 탑이 아닐까,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영롱하고 빛나는 감정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완전 착각하며 행복해하던 어리석은 시간들도 있었지만.
이제 삼십대 중반으로 와보니 그런 모든 것들이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좀더 솔직한 관계가 추악하지만 담백하다면
좀더 위선적인 연극적인 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덜 위선적이려고 한다.
이제 더이상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에 연연하지 않고
나만은 다른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착각의 삶의 유인을 던져버리려고 한다. 

인간은 다 고만고만한 존재다.
다만 더 솔직해지느냐(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흔히 싸가지가 없다고 폄하하지만), 더 위선적이냐의 차이뿐. 
 

우리는 친구들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마련해 준 논리적이고 관습적인 패턴에 따라 움직여주기를 바란다. (중략)

우리는 그런 것들을 속으로 미리 다 정해 놓고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가 우리 생각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는지 확인하며 만족해 한다. 덜 만날수록 더 그렇게 된다. 우리가 정해 준 운명에서
빗나가는 경우 반윤리적이고 변칙적이라고까지 생각한다.
                                                                                         - 나보코프의 <롤리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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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에 뒤뚱거리며 집근처 도서관에 출근도장찍던 시절.
박완서의 책을 들고 근처 백화점 지하식당에서 배식을ㅋㅋ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에 풀썩 자리를 튼 50대의 아주머니가 그 책에 안광을 철하고 있었다.
자못 민망해져 갈 찰나 아주머니는 "저, 책좀 볼까요? 제가 박완서를 좋아해서." 하며 나에게서 책을 건네 받았다.
그녀는 이리저리 앞표지 뒷표지도 검사하고 책 속도 한 번 후루룩 넘겨보고 아쉬운 듯 다시 그 책을 돌려주었다. 

본론은 그게 아니라 갑자기 그 배경음악 같은 웅성거림을 뚫고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식당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며 포효하면서 펼쳐졌다. 그 는 아이란 다 그런거지,라고 용인하고 보아넘겨 줄 수준을 훌쩍 넘는 것이었다. 모두가 너무 놀라서 그 뒹굴면서 파닥거리는 그 어린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할 만한 강도였다.
엄마는 그 아이를 통제하지 못해서 어쩔줄 몰라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아이를 대면할 시간을 얼마 안 남긴 나로서는
그 아이가 아주 유난히 버릇이 잘못 든 극단적인 경우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내 배 속에서는 아주 예쁜 순둥이가 귀여운
물방울 놀이를 하고 있을 거라고 안위하며 이기적인 구경꾼을 자처했다.
문학적 감성을 잃지 않았다는 듯 책에 안광을 철하던 그녀의 안광은 그 아이와 젊은 엄마를 두루두루 성찰한 후
이윽고 나에게 다시 와 꽂혔다. 입술근육을 실룩거리며 "왜저래? 왜 저렇게 냅둬? 참나!"
그녀의 문학적 감수성은 타인의 곤란한 상황에 대한 철저한 변경의 냉랭함으로 이미 치환되어 있었다.
그녀의 강한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빛에 건성으로 대꾸하고 그 장면은 나의 기억 뒤켠으로 스며갔다. 

나의 아이가 그 여자아이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오랜만의 외식후 식사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주차된 차가 비집고 나올 틈을 기다려야 하는 이상한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나의 아이는 갑자기 부츠를 신고 대기실 의자로 올라가려고 버둥거렸다.
새된 소리를 지르면서. 나의 저지는 약효가 없었고 아이의 비명은 더욱 강도를 더해갔다.
울고 싶어질 찰나. 내 옆에서 잔잔하고 근엄한 중년남자의 목소리가 구원처럼 흘러나왔다. 

의자에 올라가려면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지.
너 참 예쁘구나.(빈말이겠지만 ㅋㅋ)
당근과 채찍의 이 절묘한 조화라니. 그는 분명 무언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분명하다.
 

그 두 마디에 딸아이는 갑자기 온순한 양이 되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냥 멀찌거니 구경하지도, 그렇다고 배려없는 참견도 아닌 그의 따뜻한 개입은 뭉클했고
무언가 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치유되지 않은 외상까지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 때의 냉랭한 구경꾼이자 공모자였던 아줌마와 나를 기억하게 된다.
거창한 연대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비난받을 만한 연대를 한 셈이 됐지만
그 자리에서 침묵하고 그 곤란한 상황을 관망하고 심지어 약간 즐기기도 했을 우리들과
떼쓰는 아이를 저지해 보려 너그러운 개입을 시도한 그 남자의 차이가 주는 간극이 나를 가르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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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7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7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솔직히 <롤리타>를 아주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는데 이 책 참 이상한게 읽고 나서 계속 생각난다.
끈적끈적한 잔상 때문이 아니라 괜히 마음이 처연해진다고나 할까. 네이넘에 로리타를 키인하면
당장 19금 인증을 받아야 한다. 다시 롤리타라고 치면 영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제레미 아이언스와 도미니크 스웨인 주연의 영화인데 호평 일색이다.
책보다 낫다는 얘기까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뮤직비디오 같다나. 실제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만든 경력이 있단다. 

그런데 98년도 영화를 어둠의 경로로 찾아 보려 했던 눈물나는 시도는 좌절을 거듭했다.
일단 롤리타, 롤 리 타, 심지어 lolita, 롤리, 어둠의 망 구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것을 향해
암호를 해독하듯 이리저리 설레발을 쳐봤지만 야동 목록만 뜬다. 저작권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린 그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다 서광을 만났다. 열심히 다운받았다. 

그런데 일이 너무 쉽다 생각해서 중간 정지하고 play 해보니 고색창연한 흑백화면이 뜨더라.
큐브릭 오빠가 60년대에 롤리타까지 손댄 지는 몰랐다.  

언덕 위 집에서 빵사먹으러 아기랑 내려가는 길은 고행이었다.
다시 내가 롤리타를 빌리러 그 전혀 친절하지 않은 대여점 아저씨한테 가서 롤리타를 발음해야 하나? 
나보코프 아저씨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이라 했던 그 롤리타가
그 나른한 아저씨 앞에서는 분명 젊은 애엄마가 이 추운데 애까지 데리고 나와 볼만치 화끈한 것으로 둔갑할 것이
분명한데. 

원래 가질 수 없는 것은 더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당장 롤리타를 그 제레미 아이언스의 시원하면서도 아득한 눈빛이 연기하는 험버트를 보지 못하면
안될 것 같은 절박감에 아니면 사서라도 봐야 겠다고 결심한 와중에... 

롤리타는 요기에 있었다. 그것도 대여료만한 가격에.
문제는 오늘 주문해 버린 안나 카레니나에 추가 주문을 해 보려 했는데 이미 출고 작업중이어서 안된다는 것.
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알아버렸다. 내가 요즘 실제 세상에서 격리되니 그런 간접 경험들에 집착하게 되버렸다는 걸.
경험한 것은 적고 읽은 것은 많았다,는 보르헤스가 왜 그런지 알아 버렸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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