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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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깝게 혹은 다행히도 밀레니얼 세대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IMF가 터졌고 졸업 전후까지 이 여파로 여러 대기업 공채들이 취소되거나 규모를 줄여 취업난을 호되게 겪기도 했다. X세대로 명명되어 거침 없는 자기 표현, 문화의 소비 주체로 인식된 시기를 잠시 겪기는 했지만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어떤 세대의 명명은 하나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된 감이 있다. 그 세대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결과는 아니었다는 느낌이다. 모두의 삶은 개인적인 것이고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는 얕은 사견이 깨어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노동자로서의 삶,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체제에 대한 비판적이고 심오한 인식이 따라온 것은 아니었다. 


반면 오늘날의 세대의 명명은 진지한 만큼 더 어두운 그 세대만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나 IT 기기를 필수품처럼 접하며 자라난 세대. 경제적 풍요와 번영을 누리며 집중 육아로 자라나는 가운데 미래의 꿈을 선언하며 그 꿈에 가 닿는 직진 경로로 교육을 통한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모범답안처럼 제시되던 세대. 그러나 막상 사회로 나왔을 때에는 약속 받았던 직장도 미래도 실종된 곳에서 그 어느 세대보다 많은 시간 고되게 일하며 번아웃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의 저자 앤 헬렌 피터슨 본인이 속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저자 피터슨이 자신의 "사적 이야기를 확장하고 상술하려는 시도의 결과물"로서 "우리 자신을, 우리의 번아웃에 기여한 체제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어휘와 틀을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미국에 사는 밀레니얼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2022년 이 지구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도모하느라 분투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열렬히 공감할 수 있는, 인간 존재가 시장 논리 안에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소모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명징한 분석틀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애들>은 요즘 애들이 아니어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시적인 그림 안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프리즘을 제공해준다. 


밀레니얼들은 수십 년 동안 특별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우리 개개인은 잠재력으로 가득하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잠재력을 부모와 달리 돈 걱정 없는 완벽한 삶을 만드는데 발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들을 일자리에 맞추어 기르고 최적화하는 사이에 그런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보호 장치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해체시켰고, 직장에서 없애버렸다. 

-pp.165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밀레니얼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대치 자체를 무한하게 끌어올림으로써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비전을 주고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최대한의 이윤을 내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 노동자들을 절감해야 하는 비용으로 치환 시켜버렸다. 우리는 산업 현장에서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없이 청년들을 착취한 사례를 잊을 만하면 듣게 된다. 그들의 비참한 처우는 사고가 나야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른다. 표면화되지 않은 은밀한 착취들은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이는 양육 과정 자체를 근사한 이력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뛰어들었던 마음과 그 시장 가치가 곧 존재 가치로 치환될 때 무시할 수 있는 인생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즉 기업의 이익에 기여하지 않는 노동자의 삶은 이야기될 가치도 없는 것으로 무화되는 경향성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은 하나의 부수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요즘 애들"을 양육하며 그들을 통해 키웠던 그 자본주의적 계층 상승의 꿈과 떨어져 이야기될 수 없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 "요즘 애들"과 우리 모두의 번아웃은 결국 우리 모두가 공모한 결과라고 이야기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 책의 한계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노출함과 동시에 결국 거대 담론화시킴으로써 개인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것과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각성 시키는 지점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탈진할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를 일에 쏟고 그 틈새에  SNS의 타인들의 자기 과시적 삶을 순회하며 비교와 불안으로 소진되는 하루하루가 삶을 채우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의 통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이 급진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렵겠다는 절망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생존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사는 일은 많은 것들을 합리화한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해내지 않는 일은 실패로 규정된다. 그리고 그 이윤을 가장 쉽게 가시화시키는 것은 더 많은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고 그것이 인건비가 될 때 근로자들의 삶은 간과된다. 더 많은 사적인 시간을 포기하고 회사의 공적인 삶에 자신을 복무시킬 때 그것은 미덕으로 간주된다. 소비자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은 물가가 안정되기를 바라고 주식 투자자가 되면 배당을 받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이면의 노동자의 착취를 의도적으로 간과하겠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부모가 되면 자녀가 이왕이면 공부를 잘 하길 바라고, 이름 있는 대학 졸업장을 들고 취업을 잘 해서 빠른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를 바라게 된다. 그것은 결국 이런 사회적 시스템에 순응하기를 바라는 지점에 저도 모르게 자녀를 던져 넣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이왕이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상충하는 욕망들의 집합소가 인간이라는 복잡다단한 존재들을 이루는 요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세대의 번아웃은 출구가 없는 영원한 쳇바퀴다. 우리의 자식은 누군가의 근로자가 된다. 입으로 대의와 노동자의 기본권을 외치지만 정작 자영업자가 되어 아르바이트생의 노동에 기대다 그들이 어느 순간 4대 보험 보장을 요구하면 난감해 한다. 이렇게 자신의 번아웃을 주장하며 저도 모르게 타인의 번아웃을 조장하게 된다. 결국 피터슨의 냉소는 하나의 단서이자 전조가 된다. 

자신의 번아웃을 줄일 생각만 하지 말고, 당신의 행동이 어떻게 남의 번아웃을 부추기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이었다. 

-pp.367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그 말만큼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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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의 탄생 - 대한민국 브랜드 100년 분투기
유승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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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명사가 된 고유명사 브랜드들의 역사를 통해 자꾸 그리운 과거가 소환되는 건 덤. 모두가 불가능을 얘기할 때 뚝심 있게 밀고 나가 우리만의 브랜드를 일궈낸 기업가들, 근로자들의 분투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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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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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그곳은 내게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여정. 그 이름은 저자 디디에 에리봉의 고향, 그가 "도망치고자 했던 나의 고장",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파리 교외의 도시 랭스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이자 자기 고백서이지만 사적인 자기 고백록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 정체성 자체를 문학, 이론, 정치의 필터를 통해 낱낱이 해부하여 공적인 담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경이로운 역작이다. 이런 유형의 책을 지금까지 경험해본 기억이 없다. 새롭고 혁명적인 방식의 오토픽션은 놀랍게도 십 년도 전에 나온 아버지 연배의 작가의 저작이었다. 그럼에도 이 읽기는 나를 뒤흔드는 차원의 것이었다. '나'와 내가 떠나온 '가족'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객관화된 탐사의 여정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발견은 놀라운 것이었다. 



계급 탈주자


중세, 근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계급 탈주라는 개념은 공명한다. 디디에 에리봉은 노동자 계급 출신의 대학교수이자 사회학자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차마 "사회관계자본"이라 여길 수 없는, 계층의 사다리의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의 육체 노동은 그가 "몽테규나 발자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에밀 졸라 책은 읽어본 적도 없는 어머니가 "에밀 졸라풍"이라 묘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떠나온 랭스로 돌아가 자신이 스스로를 발명해내야 하고 구축해야 했던 그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복기, 복원한다. 이 탐사의 미덕은 지독한 솔직함이다. 그는 스스로를 기꺼이 극단까지 해체한다. 자신의 위선과 위악과 속물성을 가감없이 언어화한다. 자신의 출신 계급은 내도록 그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힌다. 아는 척도 드러내어 놓고 싶지도 않은 가족들. 그러나 그런 가족들의 위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명명이었다는 깨달음은 그가 끝내 그들과 제대로 화해하지 않은 사실로 봉합되지 않는 부분을 저격한다. 정치적으로 노동자의 편이었지만 마음으로는 자신의 출신을 상기시키는 노동자들이 싫었다는 고백이 디디에 에리봉을 끌어내리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끝내 발화되지 않은 진실 속에 내재된 역설적 진실을 발견한다. 머리와 언어로 소외된 자들 편에 서는 건 쉬운 일이다. 정말 그들로 사는 것이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지 뼛속까지 알기에 그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는 고백이 가지는 함의는 횡행하는 공허한 입장 표명이 가지는 그 무력하고 가식적인 정치적 행동의 병폐를 일깨운다. 



너 같은 사람들


이 책의 다른 한 축은 저자의 게이로서의 성정체성이다. 계급 정체성과 교차하는 이 정체성은 그의 모욕으로서의 역사다. 나는 동성애자들이 과거에 그렇게 많은 폭력과 모독과 모욕에 노출되는 위험 속에 있었는지 몰랐다. 그것들을 뚫고 스스로를 재발명해야 하는 그 사회를 지칭할 마땅한 언어도 없이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속박했다. 에리봉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지는 그 성적 정체성을 제대로 명명할 언어조차 차마 동원하지 못해 "너 같은 사람들"이라는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한 언어를 가져온다. 그것은 그의 사회적 계급과 더불어 그의 "복수의 예속화 양태들"을 양산한다. 이 두 가지 예속화의 여정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탈주자이자 재창조된 정체성으로 거듭나게 해야 했던 저자의 여정은 분명 그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나에게도 나의 과거와 성장과정, 내가 떠나온 고장을 다른 차원에서 돌아보게 하는 획기적 전기로서의 전범으로 작용했다.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기까지 통과해 온 경험들을 재조명하며 나는 내가 선택하고 만들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 외부적 작용의 결과였음을 깨닫고 아연해졌다. 나를 만는 것은 비단 내가 아니었다. 모든 성장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여정이지만 동시에 공적이고 구조적인 산물이기도 하다는 그 자명한 진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비단 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라 읽는 자들 모두의 회고록으로 변환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심오한 성찰의 열린 오토픽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우리의 현재다. 따라서 우리는 표명되고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표명되고 재창조된다. 

-p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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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3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3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2-01-0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랭스로 돌아가다]의 장르를 오토픽션이라 하는군요. 많은 분들이 꿈꾸는 글쓰기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말끝에서 흉내라도 내고 싶어집니다.

blanca 2022-01-03 13:41   좋아요 1 | URL
자신의 삶을 이렇게 객관화며 돌아보는 행위는 쉽지 않아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 변호, 포장을 위해 회고록을 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치부를 확 드러내는 글은 그리고 그마저 사회학적 렌즈를 통과시켜 해부하는 책은 처음 읽어봤어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초란공 2022-01-03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글만으로도 강렬한 책인 것 같습니다. D.H. 로렌스의 영국에서만 계급문제가 고질적인줄 알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니 에르노도 자신이 노동자 출신인 걸 부끄러워한 고백이 기억납니다. 동성연애자였던 프랑스의 사상가, 철학자들의 고통과 고뇌를 염두에두면서 읽어야 겠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22-01-03 13:43   좋아요 2 | URL
초란공님 안 그래도 아니 에르노가 이 책에서 여러 번 인용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회고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이 찍히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그래서 여전히 내가 가진 결핍을 확 드러내는 게 놀랍도록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심지어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제가 가진 결핍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좋은 책입니다.

레삭매냐 2022-01-15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중고책방에 떴을 때
주저하지 말고 사두었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blanca 2022-01-15 09:49   좋아요 0 | URL
헉! 이게 중고로 떴어요? 요새 신간은 거의 중고로 안 나오더라고요.

새파랑 2022-02-10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당선 축하드려요 ^^

blanca 2022-02-11 08: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2-10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2-02-11 08:4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공쟝쟝 2022-04-07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열심히 읽고 너무 좋아하시는 거 티나서 ㅋㅋㅋㅋㅋ 저도 열심히 읽고 좋아하게된 책이라 ㅋㅋㅋ 살짝 미뤄뒀다 이제 리뷰 읽어요. 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책이 보내는 진동에 몸을 떨었던 것 같습니다!

blanca 2022-04-07 19:59   좋아요 1 | URL
솔직히 책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완독이 가능할까? 정말 좋은 책인가? 의심했어요. 그런데 점점 더 빠져들다 뭔가 저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책이라고나 할까요? 사적 경험의 노출이 과도한 세상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적인 장으로 어떻게 가져오는 것인가 그 지평을 보여준 책 같아서 두고두고 남았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도 나름의 눈으로 분석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실패했지만요. ^^;;;

공쟝쟝 2022-04-07 21: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그러더라고요. 실패라뇨! 용기내세요.😤 그도 오십세에야 이런걸 써냈으니 블랑카님도 저도 부단한 수행의 과정 (에리봉에 따르면 아스케시스) 중에 있으신 걸 거예요. 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4-08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공쟝님 리뷰 읽고 ‘읽고 싶어요.‘에 담아 뒀더니 오늘 이 책 관련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어 보란 메세지가 제 북플에 떴더군요^^
관심있던 책이었기에 몰래 들어와 눈으로만 읽고 가려다가 용기 내어 잘 읽고 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갑니다. 오랫동안 활동하시어 종종 블랑카님의 좋은 글들을 눈팅만 몰래 하고 갔었습니다. 오늘은 이상하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란 생각이 퍼뜩 들게 되었고, 그래서 댓글도 서슴없이 남기게 되네요^^
좋은 책 소개글 앞으로도 계속 몰래 읽게 될테니 양해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blanca 2022-04-09 09:38   좋아요 1 | URL
와, 이런 따뜻한 댓글이라니요. 소중한 시간 내서 읽어만 주셔도 감사하죠. 그러고 보니 제가 참 오래 있었네요. ㅋㅋ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진부한 말이 실감납니다. 책읽는나무님 활짝 핀 봄을 만끽하시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요.
 
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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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시 윌리엄 트레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산하고 아름답다. 사십대, 오십대, 십대의 주인공들의 내면의 풍경이 다른 시공간을 넘어 읽는 이들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원형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쉽게 쓰여지지 않은 작품인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휘리릭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들이다.


오랜 결혼 생활을 하고 이제는 망자가 된 남편의 시신이 아직 집에 있는 상태에서 방문객을 맞은 아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슬퍼하고 애도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그 수녀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남편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소유한 집을 보고 선택한 전력을 내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면. <고인 곁에 앉다>는 그런 이야기다. 사랑했던 남편과의 작별을 슬퍼하는 아내가 아니라 계산적이고 자주 욱했던 고인의 곁에 앉은 담담한 아내. 그 아내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수녀자매. 


중년의 남녀가 일종의 소개 업체에서 만나 소개팅을 하는데 서로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런데 그 점을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대담하게 고백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저녁 외출>은 엉뚱한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다. 나는 꼭 차 있는 여자와 만나야 한다는 그 내밀하고 언뜻 저급해 보이는 욕망에 솔직해질 수 있는 여자와의 만남은 분명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구태여 애프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렇게 헤어져도 괜찮은 그런 만남에 대한 이야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난 남녀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소통하게 되는 흩어지지 않는 시간에 대한 기록.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며 주로 책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며 맺게 되는 결혼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 어떤 죄책감을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되는 작품이 <그라일리스의 유산>이다. 남자가 먼저 죽은 여자의 그녀의 유산을 거부함으로써 얻게 되는 윤리적 자긍심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로즈 울다>는 늙은 과외 선생에게서 수업을 받음으로써 의도치 않게 그 시간을 활용한 젊은 아내의 외도를 돕게 되는 소녀가 느끼는 비애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외도를 스승과 제자는 알아차리고 그 패배감, 배신감, 비애를 공유한다. 소녀는 그 사연을 친구들과의 가십거리로 전락시킨 것에 대해 아픈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트레버는 소녀가 나이 든 남자의 무력함을 알아차리며 느끼게 되는 고통을 그녀의 성장통과 기민하게 연결시킨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느끼게 되는 슬픔의 지점은 각기 달랐지만 그것이 향해가는 것은 인간이 타인과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그 거리감에 대한 통찰에서 만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결국 기만당하고 현재는 언제나 과거를 좀먹는다. 그렇다고 거기 있었던 찬란했던 순간들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트레버식의 의미 부여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우리가 원하거나 예상했던 대로 나아가지 않는 인생의 흐름이 무의미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은 이 거장이 언제나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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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1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에서 저도 <로즈 울다> 여러번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순간 그 장면을 음미 했습니다 트레버의 문장은 단 한문장이라도 지나칠 수 없죠.^^

blanca 2021-12-21 21:55   좋아요 1 | URL
스캇님, 이미 읽으셨군요! <로즈 울다> 참 좋죠. 이런 건 트레버밖에 못 쓸듯...트레버는 소녀, 중년 여자의 심리 묘사에 가장 탁월한 남자 작가인 듯해요. 보통 뛰어난 작가라도 이성의 묘사는 단편적이거나 단순한데 트레버는 그런 면에서 정말 놀라운 작가 같아요.

나뭇잎처럼 2021-12-23 1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윌리엄 트레버 신간인가요? 저 진짜 윌리엄 트레버 좋아하는데. 넘 좋아서 낭독해서 읽기도 하고, 필사도 하고. 국내에 나온 건 다 읽고, 원서도 많이 찾아 읽었죠. 윌리엄 트레버 좋아하시는 분 만나니 넘 반가운데요? 파리 리뷰에 나왔던 윌리엄 트레버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그렇게 좋은데 우리나라엔 많이 안 알려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왜 좋냐고 물으면... 음. 참 딱 말하기 어렵지만. 깨닫지 않고서는 저런 글을 쓸 수 없다, 는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날씨가 아주 침착한 날, 다시 꺼내들어야겠어요. ^^

blanca 2021-12-23 11:10   좋아요 2 | URL
나뭇잎처럼님 반갑습니다. 저도 엄청난 팬입니다. 윌리엄 트레버는 대가죠. 어떤 사소한 이야기도 강력한 울림과 깊이를 지니고 있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작가 중의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펠리시아의 여정> 같은 작품은 정말 살떨릴 정도로 좋았어요. 서구 사회의 백인 나이든 남자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처절하고 아름답게 이름 없이 죽어간 소녀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하나의 애도를 이야기로 할 수 있을까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신간 단편집인데 사실 번역이 늦은 거고 시기상으로는 이미 읽으셨을 가능성도 높겠습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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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리뷰>에서 열다섯 명의 작가에게 <파리 리뷰>가 발표한 단편소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이유를 함께 얘기해 달라 요청해서 만든 단편선집이다. 열다섯 명의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작가들의 문체들과 서사의 구현 방식에 끊임없이 적응했다 나오는 건 정신적으로 품이 드는 일이었지만 좋은 작품들이 많아 기쁨으로 울렁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 인정 받은 소설가로서 인정 받은 작가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편을 선정했으니 그 작품의 수준이 어떨지 짐작할 만하다. 특히 좋았던 작품들은


<궁전 도둑> 이선 캐닌

상류층 자제들이 많이 다녔던 사립학교의 역사 교사로 퇴직한 화자가 정계의 거물이 된 45년 전 자신이 가르쳤던 문제아 제자와의 재회를 그린 작품이다. 자신이 은근히 반감을 가졌던 제자의 거대한 기만극에 의도치 않게 동참하게 되는 삶의 잔인한 역설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언뜻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의 회고가 연상되는 부분이 있다. 이 역시 구도는 다르지만 주인에게 충성한 세월이 결국 거대한 기만극의 일부였던 것으로 드러나는 결말을 지니고 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 스티븐 밀하우저

유년의 여름에 대한 그 끝날 것 같지 않은 막막한 아름다운 정조가 이야기 전반에 스며 있어 추억을 곱씹으며 읽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유년 시절의 그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환상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닮아 있다. 주인공이 그 양탄자를 더 이상 타지 않고 구석에 넣어 놓게 됐을 때 우리는 아쉽지만 그가 어른의 세계로 가파르게 진입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세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눈부시게 구현된 작품이다. 감각의 향연은 불가능한 세계를 마치 눈앞에 놓인 것처럼 완벽하게 재현한다.


<늙은 새들> 버나드 쿠퍼

도입부부터 눈길을 확 끌었던 작품이라 흠뻑 빠져 읽었다. 언뜻 보면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것 같은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그 내밀한 여운에 마음이 한동안 슬퍼 쉽게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느 오후, 건축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장례식 예약을 해두었냐고 묻는 아버지. 그게 아버지의 것인지 아들의 것인지 묻는 아들에게 우리 둘 다가 될 거라고 단정 짓는 아버지...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주변 사람에게 묻지 않고는 알아차릴 수 없는 늙은 아버지. 그 아버지의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의 끝을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건축가 아들의 건물 청사진은 그런 '늙은 새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스톡홀름행 야간비행> 댈러스 위브

엽기적이고 잔혹한데 아름답다. 놀라운 작품이다. 문학적 성취, 세속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씩 차례로 포기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이루지만 나의 몸은 절단 난다. 이것은 거대한 은유다. 비단 문학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신체를 포기해서 언어로 남기는 이야기. "우리는 산산이 분해되어 단어로, 문장으로, 단락으로, 서사로 들어간다."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모든 구체적인 것들을 세세하게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일반화와 추상화에 실패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보르헤스는 역시 천재다. 그것이 결코 본질이 될 수 없음을 간파했다. 결국 우리가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것들로 인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색깔들의 이야기가 빛나는 대목은 겹친다. 내가 미처 언어화할 수 없었던 내가 살며 느꼈던 그 감정들. 나 혼자만의 것이라 여기며 고독하게 여몄던 슬픔들. 부지불식간에 찾아오곤 하는 그 어두운 체념들. 이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는 그 기민함. 문학은 이 지대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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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1-07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ㅅ^

blanca 2022-01-08 08:48   좋아요 0 | URL
언제나 제 궁금증도 해결해주시고 감사합니다.

mini74 2022-01-07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도 축하드립니다 *^^*

blanca 2022-01-08 08:49   좋아요 1 | URL
미니님 정말 감사드려요.

새파랑 2022-01-07 1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당선 축하드려요. 이책은 제목도 너무 멋있는거 같아요 ^^

blanca 2022-01-08 08:49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그렇죠?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1-07 2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blanca 2022-01-08 08:49   좋아요 1 | URL
덕분에 좋은 주말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07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축하드려요

blanca 2022-01-08 08:4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드려요.

서니데이 2022-01-07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blanca 2022-01-08 08:5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잊지 않고 축하해주셔서 고마워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기를...

하나의책장 2022-01-08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2-01-12 12:38   좋아요 0 | URL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