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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3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ㅣ 파리 리뷰 인터뷰 3
파리 리뷰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앨리스 먼로, 트루먼 커포티, 프리모 레비, 수전 손택,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한다. 줄리언 반스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은 두 권 정도 읽어보아 아직은 무어라 말하기 힘든 상태다. 커트 보네거트, 잭 케루악, 돈 드릴로, 르 귄, 존 치버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다시 인터뷰다. 인터뷰어도 시간도 장소도 제각각이다. 작가들의 집으로 찾아간 경우가 많아 그 집, 함께 사는 사람, 채운 소품들에 대한 인상이 작가와의 만남과 더불어 출발점이 된다. 예컨대 아내를 잃고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쓴 줄리언 반스는 여기에서 아직 아내와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에서 행복하다.
이제는 늙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글을 쓰게 만드는 설레임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나이가 된 앨리스 먼로는 기대 만큼 따뜻하고 솔직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열여덟 살때 그녀를 홀딱 반하게 한, 하지만 그때는 응답하지 않았던 남자가 지금 그녀 곁에서 그녀와는 또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라난 곳에 함께 돌아와 있다. 한창 아이를 키우며 때로는 아이를 재우고, 때로는 학교에 보낸 시간에 열정을 쏟았던 이야기들은 그녀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곳에 다 커버린 아이들 만큼이나 회한을 남기기도 한다. 이야기에는 실패하는 부분이 있지만 쓰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가 써 낸 이야기 만큼이나 가슴을 뚫고 들어온다.
트루먼 커포티는 이미 백만장자가 되어 패션 모델 출신의 기자를 맞는다. 앨리스 먼로가 장편을 남기지 못하는 데에 느낌 아쉬움이 트루먼 커포티 앞에서는 가장 어려우면서 절제된 형태로서의 단편의 찬양으로 변주된다.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글은 절대 쓰지 않는다는 솔직한 고백이 놀랍다. 온갖 불길한 전조에 물러서는 모습은 그의 나약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는 찬란한 젊음을, 비참한 최후의 텍스트를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해 낸다. 그의 몰락을 알고 듣는 그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어떤 처연함을 내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드레스덴의 폭격을 관통했던 커트 보네거트의 신랄한 유머는 웅변적이다. 그는 전쟁의 무용함, 아무리 선으로 포장해도 그것은 학살임을 자신이 <제5도살장>을 써서 유일하게 드레스덴 폭격으로 이익을 본 이 지구상의 한 사람이라고 자조적으로 고백하며 역설한다. 훌륭한 작가는 부족하지 않고 오직 신뢰가는 독자가 부족하다며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복지수표를 수령하기 이전에 독서록을 제출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위트 앞에서는 이 진지하고 사려 깊은 작가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책에 엄격해야 한다"면서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만을 읽는다는 수전 손택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대부분의 작가들은 관계로부터는 거리를 두지만 세상 그 자체에 대하여서는 멀어지지 않는다. 수전 또한 그렇다. 인간의 잔혹성에 대한 그녀의 관심과 엄정한 묘사는 낭비를 싫어하는 작가들의 성향이 열정적 글쓰기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예루살렘상을 수상했다는 돈 드릴로의 일과의 고백은 하나의 아름다운 단편 같아 옮겨적었다.
아침에 수동타자기로 일을 합니다. 네 시간쯤 일한 뒤 달리기를 하러 나가지요. 그러면 한 세계를 떨쳐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요. 나무와 새들, 이슬비. 멋진 간주와 같죠. -p.351
그리고 그는 보르헤스의 사진을 본다.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무기력과 표류 상태에서 벗어나 마법과 예술, 예언이라는 별세계로 데려갈 안내자로 그를 삼으려고. 마치 르 귄이 베토벤이 자신이 향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거기에 이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내다보이는 작업실 창문 앞에서 진지하고 사랑스럽고 신비한 독자들이 있는 상상을 하고 글을 쓴다는 존 치버의 고백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지막으로 한창 젊고 예뻤던 사강이 라디오 녹음이 있다며 인터뷰를 마치고 소르본 대학으로 가는 여학생처럼 달려나간다. 여기에 그녀의 쇠락과 늙음은 없다. '삶'이 세 명의 인물이 엮어가는 일종의 리드미컬한 진행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제멋대로라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극히 사강다운 이야기가 남는다.
정확한 인터뷰의 일시가 누락되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의 작가의 이야기인 지를 정확히 추정하기 힘들 게 한 것은 아쉬운 점이기도 하고 의도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한때 어느 한곳의 그들의 찰나적인 모습과 생각, 가치관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삶의 찰나의 거대한 은유의 집적 같기도 하다. 다만 언어를 주무르고 이야기를 퍼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이들의 응축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라는 것. 기억할 만한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