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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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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되었다. 완전히. 정말 완벽하게. 리뷰를 쓰고자 하는 <면도날>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읽은 <달과 6펜스> 얘기다.
고갱을 모델로 한 그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슬퍼서가 아니라 그 웅혼한 작품성에 완전히 압도되어 울었다.
눈이 멀고 문둥병까지 걸려 그림을 그려나가는 그 사내의 그 무모한 열정과 이상주의적 삶에 대한 치기가 속물 근성의
그 연약한 거죽을 통째로 벗겨 버린 듯한 착각. 이 한 권의 책이 서머싯 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의 절대적인
기반이 되었다.  

<면도날>을 읽고 나는 알라딘의 리뷰어들에게 감사했다. 칭찬일색의 그 리뷰들이 이 책을 챙기게 했고 오백여 페이지의
그 책을 다 읽고 난 새벽 한 시경 나는 예전 그 때와는 또다른 감동으로 한참을 오도카니 앉아 있게 됐다. 서머싯 몸은
흔히 대중적인 작가로 불리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소설은 여하튼 재밌기 때문이다.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며
일으키는 그 가벼운 바람은 진중한 작품성도 왠지 가벼운 것으로 치환해 버린다. 재밌기 때문에 되레 그의 인생에
대한 통찰과 사려깊은 성찰은 천덕꾸러기처럼 돼 버렸던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나도 진부한 칭찬으로
이 책의 지름신을 강림케 하련다. 작품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소설이니 얼른 읽으라고.  

1차 세계대전에 비행기 조종사로 참전중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귀환한 래리 대럴이라는 젊은이가 삶과 신의
의미를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나는 여정을 중심으로 사교계의 노회한 신사이자 대단한 속물이지만
비열한 사람은 아니라고 몸이 변호한 엘리엇 템플턴, 그의 조카이자 래리의 약혼녀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물신주의에 경도되어 래리를 떠나 안온하고 부유한 결혼생활을 택하는 이사벨 등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다.
인상적인 것은 작중 화자가 대놓고 서머싯 몸 자신임을 밝히고 등장인물들을 때로는 관조하고 때로는 다둑이고 때로는 비난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다. 마치 논픽션인 것같은 효과와 더불어 서머싯 몸 자신의 이야기들도 다소 들어볼 수 있는 아주 유쾌한 경험이었다. 참고로 그는 못생긴 사람과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절대 익숙해지지 않으며 작가는 열과 성을
다해 몇 달에 걸쳐 완성해 놓은 책을 독자는 이 세상이 하나도 할 일이 없어질 때까지 아무 데나 놓아둔다는 생각에
몹시 우울해진단다.

주인공 래리 대럴이 사랑과 세속적인 부를 모두 놓아두고 떠나는 그 구도의 여정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있는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 대척점에 서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엘리엇의 얘기가 그것을 중화해 준다. 엘리엇은 지극히 리얼하고
지극히 유쾌하고 지극히 속물이지만 그래서 미워할 수 없고 관심을 계속 기울일 수밖에 없는 우리 주변 사람이다.
미국인으로서 프랑스의 상류층에 입성한 그는 파티를 숨구멍처럼 여기며 사교계를 그의 삶전체의 무대로 간주한다.
그런 그가 죽어가면서까지 공작 부인이 여는 가장 무도회에 초대장을 받지 못한 것에 격분하다 몸이 재치있게 공작부인의
비서를 사주해 만들어낸 초대장을 받고 참석하지 못함을 애석해하며 죽어가는 모습은 가슴이 아프면서도 무언가에
끝까지 전체를 걸 수 있는 그 순진하고 정열적인 무모함에 경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언은 정말 귀엽지 않은가? 

"엘리엇 템플턴 씨는 하느님과의 선약 때문에 노베말이 공작 부인의 친절한 초대에 응할 수가 없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p.397 

 

끝없이 존속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더 좋아지지는 않으며 하얀 것이 더 하얘지지는 않죠. 새벽에 아름다웠던 장미가
정오에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이 새벽에 가졌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중략>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예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p.459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차 차창으로 뒷걸음치던 풍경마냥 자꾸만 스러져 가는 그 수많은 추억들의 덧없음과 비례하는
생생하고 절절한 기억들의 무게 속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우두망찰하는 요즈음 나에게 래리 대럴은 얘기한다.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거라고. 구도의 여정을 밤을 새워 들려주고 난 래리는 작중 화자이자 작가 서머싯 몸과 함께 아침에 갓 배달된 바삭바삭한 크루아상과 카페오레로 아침 식사를 한다. 래리의 얘기와
몸의 냉정하지만 사려깊은 추임새가 엮어낸 하룻밤을 마감하는 그 아침의 크루아상과 카페오레의 그 아늑하고
그리운 냄새들이 나의 코앞에 와서 당도했다. 나도 그들과 밤을 지새운 듯한 피곤함과 또 래리의 구도의 여정 끝에
함께 당도한 듯한 그 아름다운 지향의 웅장한 아름다움(착각일지라도)이 뒤섞여 그 밤 나는 잠을 설쳤다.  

그리고 구정 전날 제사 일손을 거들면서 어머님의 주름 속에 알알이 박힌 그 수많은 추억들과 고단함에 진정한 애정과 연민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것이 아주 짧은 시간만 유효한 사이비 약발일지라도 나는 몸에게 숭배를, 감사를 바칠 수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의 고장에 가 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정보국의 무리한 비밀 첩보 임무를 맡았다는 그런 사람에게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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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2-16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머셋 몸 작품 중 못 읽은 책이네요... 서머샛 몸 작품 무척 좋아하는데. 캡쳐하신 글 와닸네요. 찰나와 영원. 영원한 기쁨은 없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찰나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 장바구니에 넣어야겠습니다.

blanca 2010-02-16 14:0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명절 잘 치르셨는지요? 이 책은 피곤한 와중에도 열심히 읽었답니다. 무엇보다 몸 책은 재미있으니까요. 분량이 좀 있어서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금방금방 넘어가더라구요. 다음에는 '인생의 베일'을 읽어볼까 하고 있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17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모옴의 중단편집도 재미있으니 하나하나 독파해 보세요.그런데 계속 읽다 보면 모파상의 인물묘사를 연상케 하지요.모옴도 모파상의 작품을 좋아했으니까요.결국은 읽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어요.그런 걸 극복하지 않으면 독서가 독이 될 수도 있죠.

blanca 2010-02-17 18:19   좋아요 0 | URL
모옴의 중단편집이 재미있군요. 그런데 모옴은 어떤 이상적인 인간을 꼭 대척점에 놓아 두는 것 같아요. 이게 조금 작위적이기는 한데. 맞아요. 박완서. 모파상. 모옴. 인간 속의 잔인하고 절망적인 속성을 너무 적나라하게 파헤쳐서 읽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츱츱해지는 단점이 있더라구요. 노자님의 고언을 들어야 이들의 독서가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18 16:20   좋아요 0 | URL
하긴 박완서도 우리 마음 속 누구나가 갖고 있는 속물근성을 잘 끄집어 내지요.특히 모옴의 성격묘사를 보면 아주 악랄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착한 사람이 남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당하는 이야기를 통쾌하다는 듯이 그리거든요.달과 6펜스에도 그런 인물이 나오죠.마누라를 뺏기는...
 
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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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야망이 빈약한 배경과 만났을 때 인간은 때로 극단적으로 잔인해질 수 있다.
재능과 야망에 성적매력까지 가진 남자가 출세를 위하여 상류층 부인들의 속되고 무른 감정을 희롱하고 이용하는 이야기.
게다가 해피엔딩이기까지 하다. 

모파상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갈라져 있다. 유려한 묘사도 섬세한 감정의 속살의 드러냄도 없는
그저 툭툭 거친 붓으로 캔버스에 보이는 대로 단조롭게 그려갈 뿐이다. 
솔직히 이 점이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처음부터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그리고 그 나쁜 놈을 훑고 가는 수많은 단상도 다 같은 색깔로 도열하고 있다.
인간의 그 연약한 가변성과 복합적인 감정의 다채로운 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가 뛰어드는 언론계의 추악함도 그 부정성이 지나치게 비대하게 부푼 느낌이다. 
 

인간이 이용가치로만 저울질당하고 애정도 하나의 약점으로서만 작용하는 그 세계가 거북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현실을 눈감아버리고 싶어만지는 나의 미성숙함때문인지 재미있고 술술 읽혔던 소설의
해피엔딩이 자못 거슬린다. 인간의 비열함과 비루함이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해피엔딩으로
읽히는 기괴함이 있다. 권선징악적인 그 위선적이고 단순유치한 도식에도 손을 들어줄 수 없지만
결국 인간과 삶을 긍정할 수 없는 그 결말에도 찝찝한 뒷맛이 과히 좋지 않다. 

모파상의 견고한 현실은 긍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빡빡했다.
대작가이지만 당시의 자연주의적 사조는 사실주의적 배경에 과장된 인간형이 얽혀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그래서 <벨아미>를 닫고 나오는 길은 조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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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아미는 못 읽은 책이라 모르겠고,
적과 흑, 위대한 개츠비~ 도 같은 부류의 책이 아닐런지...

blanca 2010-02-03 15:31   좋아요 0 | URL
다 비슷 비슷한 부류 같아요. 개츠비만 사랑을 위해 출세를 이용했고. 저는 자꾸 청춘의 덫의 이종원 생각이 나서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2-0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파상의 소설은 인간을 너무 적나라하고 비관적으로 그려서 싫다는 사람이 많아요.이문열 씨도 <비계 덩어리>에 대한 감상을 그렇게 쓴 적이 있지요.그런데 저는 모파상,특히 비계덩어리는 몇 년에 한 번씩 꼭 반복해 읽어요.굳이 표현을 찾자면 섬뜩한 유머라고나 할까요.블랙 코미디라는 단어로 부족하니까요.

blanca 2010-02-06 15:03   좋아요 0 | URL
아....제가 놀란 건 결말부분이었어요. 벨아미를 냉소하는 건지 옹호하는 건지 모호하게 그의 마음 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마치 당연한 상념들인마냥 나열해 놓고 끝내버려서. 참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보통 이런 인물들에 대한 냉소가 없어 좀 거북했나 봐요. 비계 덩어리 읽어봐야겠어요.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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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플의 아이폰과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를 접해보지 못한 데서 느끼는 소외감과 자괴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와 조지오웰의 『1984』를 읽지 않은 데서 온 것만큼은 아니었다. 

조지 오웰을 모르고 이 책을 시작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자 치기였다. 각오도 단단히 했다. 
비판적 개인의 대명사라는 그의 대표작과 그것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외면하고 바로  그의 정치적 견해로
뛰어드는 것은 그가 언급했던 나폴리아이스크림(3색 아이스크림)의 가운데 층을 떠내려는 것과 유사한 시도였다.
 

그런데 그 무모하고도 용감한 시도는 그의 익살과 재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
친절함덕분으로 가두리라도 훑고 내려올 수 있었다. 아주 재미있고  친절하고 쉽게 독자들을 끌어오려고
애쓴 작품이자 번역이다. 1부의 탄광노동자의 르포르타주와 2부의 사회주의에 이르게 된 자전적 내용,
정치적 견해 등도 전혀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다. 실제 항상 모든 일을 직접 체험해 보고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이해를
지양했던 그의 태도가 문체에도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 현학적인 어휘와 만연체로 동사를 행한 주인을 찾기 위해 목을 빼고
주어를 찾아 헤매어야 하고 그럴듯한 논리와 문학적 깊이는 지루함을 덧대어야 한다는 듯이 얘기하는 글들과는 애초 다르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조지 아저씨는 이런 사람이다. 

아직도 나는 다른 사람이 입 댄 컵이나 병에 든 무얼 마시는 것 싫다(다른 사람이란 남자를 말하는 것이고, 여자가 입 댄 건
상관없다
).-p.177 

1부의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실상을 다룬 르포는 우리가 호흡하느라 들이키는 산소 만큼 산업사회에 필수적이지만
그래서 더 자주 망각하는 하류 노동자들의 고된 노역을 직접 따라가며 보여준다. 특히 막장에 가기 위하여 몸을 반으로 접고
1.5킬로미터를 가야하는 그 댓가없고 드러나지 않는 긴 여행에 대한 묘사와 땅속 삼백미터 밑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탄진을
들이키며 무릎으로 기어가며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한 얘기는 편하게 앉아 그 얘기를 듣는 것이 마치 죄악처럼
느껴져 무언가 참회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안달에 사로잡히게 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도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p.49 

2부는 오웰이 소위 상류 중산층 하급에서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어 노동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는지의 궤적을
보여주고 이어 파시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주의의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전파의 방법에 대한 나름의 모색과
대안이 펼쳐진다. 특히 그가 이튼 스쿨 같은 영국의 사립학교가 속물근성을 세련되고 미묘하게 길러내는 곳이라고
지적한 대목이 인상깊다. 머리에는 기득권에 대한 비판과 온갖 혁명의 명분들을 채워넣지만 정작 갈라지고 유쾌한
향을 기대할 수 없는 노동자의 손을 잡을 수 없는 그 속물근성과 부조리에 대하여 고백하는 장면은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끄집어 내어 펼쳐 놓은 것 같아 뜨끔하다. 

그가 얘기하는 사회주의는 대단한 대의나 그럴듯한 명분의 허식을 벗어버리고 드러나는 정의와 자유의 속살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도식과 고루한 관용어들과 경직된 이념의 틀 바깥에 내쳐진
노동자 계급들을 포용하고 소극적인 지식인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직접 그들 속에 몸을 던진 그의 체험적 이념의 실현에
대한 기대는 허식이 아니고 기만이 아니고 속물적이지 않아 설득당하게 되고 설득당하고 싶어진다. 

모든 혁명적 소신이 갖는 힘의 일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은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p.212 

혁명은, 그 단어가 가지는 도발의 핵심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우리 자신의 일부를 허물어뜨리는 자기희생의 다리를
건너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지향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의 속물 근성과 우리의 위선을 아프게 긁어내고 우리가
서있기 위한 땅을 고통스럽게 지지해 주고 있을 그 수많은 무리들과 함께 가는 그 길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에 대한
존중이며 인간 최선의 미덕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1930년대 오웰의 통찰은 그래서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며
장중한 울림을 가진다. 



다시 돌아와서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와 조지오웰의 『1984』를 함께 읽으려고 한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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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2-0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저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와 <파리와런던의 밑바닥생활>을 먼저 읽어서 이 책 상당히 궁금했거든요. 이 책에서도 오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우러나는 진실함을 읽을 수 있을까,하고 말이에요.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프랑스 혁명은 그 때 단발적으로 끊어진 것이 아니고
저런 노동자 파업, 여성의 참정권 시위 그리고 68혁명까지 이어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blanca 2010-02-01 14:53   좋아요 0 | URL
조지 오웰의 다른 에세이들이 있었군요. 저는 부끄럽지만 이 책이 그의 책으로는 처음이라 솔직히 깊이있는 이해는 부족했다고 봅니다.^^;; 기억의 집님 얘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그런 역사 속의 저항의 힘이 피를 따라 내리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댓글 하나에도 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masarururu 2010-02-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내전(스페인 '내전'이 틀린 용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만)에 직접 참전하고 쓴 르포르타주인 <카탈로니아 찬가>도 아주 재밌습니다. 이걸 보고 나면 조지오웰을 안 좋아할 수가 없지요..

blanca 2010-02-07 12:5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조지오웰의 1984가 읽기 힘들다고 해서 그의 책은 다 지루한 줄 알았더랬어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1/4 정도 읽게 되면 불편해진다, 에로티시즘의 향연이 너무 노골적으로 펼쳐질까봐 지레 난감해진다.
1/3 정도 읽게 되면 생각보다 음탕하지 않아 지루해진다.(저자 나보코프는 예리하게 독자들이 멈출 것이라 예견한다.)
1/2 정도 읽게 되면 대체 롤리타와 험버트가 어떤 결론을 맺을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길을 서두르게 된다.
다 읽게 되면. 에로티시즘의 정수에 있는 어떤 아이콘으로 잘못 길을 찾은 롤리타를 데려와 도덕과 관습의 틀마저
부수어 버린 정열이 공글린 사랑 안에 가두어 놓고 싶게 된다. 

의붓 아버지가 열 두 살의 법적인 딸을 끌고 다니며 벌이는 변태스러운 도피 행각으로 <롤리타>를 규정지어 버리면 더 이상 이 책의 가치를 논할 여지가 없다. 흔히 롤리타의 이미지에 덧댄 음란하고 노골적인 장면을 기대했다면 이 책은 더없이 실망스럽고 지루하다. 그 수많은 암시들, 해독하기 힘든 암호들이 어우러져 펼져지는 난해한 기류가 몽환적인 에로티시즘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결코 포르노나 각종 에로영화에 영감을 주는 것 이하로 전락할 만한 졸작은 아니다. 

험버트는 어린 소녀들에 대한 도색적 성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지만, 첫사랑 애너벨에게서 출발한 롤리타에 대한 사랑의 여정이 단지 육체적인 쾌락을 희구하는 욕망으로 점철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떠나버린 롤리타가 더이상 아름다운 님펫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여인이 되어 재회했을 때도 그는 돌아오라고 눈물로 애원한다.  또한 그녀의 행복한 유년을 갈취한 것 같은 죄책감으로 몸을 떤다. 그는 미성숙이 주는 그 완전성에 대한 무한한 기대에 매혹당했지만, 그 매혹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존중해 주지 못한 것으로 끝났음에 절망한다. 험버트는 뻔뻔하지 못했다. 그의 자책과 스러져가는 시간에서 침식당하는 롤리타에 대한 여전한 사랑은 우리가 그의 롤리타를 철저히 잘못 이해하고 그 이미지를 차용해 왔음을 깨닫게 한다.

퍼즐 같이 난해한 각종 암시 및 끊잆없는 시점의 이동, 인칭의 파괴 등이 다소 어지럽고 불편했다. 그러나 늙수그레한 중년 남자의 옆구리에 끼인 듯한 미성숙한 소녀의 이미지로만 롤리타를 생각해 왔던 나에게 롤리타는 저자 나보코프의 잃어버린 유년에 대한 비대한 그리움이고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모국어에 대한 애상어린 비가였다는 발견만으로도 값진 독서였다. 

나의 개인적인 비극은 타인의 관심사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그토록 자연스러운 내 말, 자유롭고 풍요하고
끝없이 온순한 러시아어를 버리고 이류의 영어를 해야 하는 내 설움에 있다.-블라디미르 나보코프

p.s. 이 책을 들고 다니면 표지의 그 예쁜 소녀의 두 눈과 제목이 한데 모여 묘한 오해받기 쉽상이다. 다들 한번씩 책 표지와 책 주인을 물끄러미 볼 수도 있다. 그게 롤리타의 현주소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재미있고 잘 되었다는 평이다. 비감어린 애상이 잘 재현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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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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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없더라, 위대한 개츠비."
"나도 들었어, 그 책 재미없다는 사람 많더라." 
................................................................
영어학을 전공했던 친구의 재미없다는 얘기는 그 후로도 <위대한 개츠비>의 명성과 비례하는 부정적 아우라였다.
걸핏하면 쏟아져 나오는 가장 위대한 영어 소설이라느니 미국대학생들의 필독서라느니 하는 찬탄은 역으로
그 책을 더 얄밉게 보이게 했다. 사실 <위대한 개츠비> 재미없다고 학교 게시판에서 한 마디 거들다가 개츠비 추종자로부터
약하게 한 대 얻어 맞은 기억이 한 몫 단단히 했다. 



얄미운 개츠비가 성큼성큼 걸어온 것은 문학동네전집의 책 디자인이 요요하기도 했고, 번역자 김영하에 대한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번역할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서점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이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다"고 성토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한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에 바쳐지는 각종 헌사들 그 자체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개츠비가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점에는 동감할 수 없었다 한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만난 개츠비에 대한 기억의 고백은
되레 너무 재미있어서 중간에 덮어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정. 말. 이. 다. 그리고 사실 어쩌면
한 가난한 남자가 부잣집 아가씨에게 차이고 난후 절치부심하여 거부가 되어 나타나 그녀와 재회하고 밀회를
즐기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이 간단한 플롯의 로맨스가 사실 졸라 재미없을 정도로 처질 것은 아니지 싶다.  
충분히 재미있을 개연성을 품고 있는 스토리가 그간 번역의 한계의 틀 안에서 지루하게 처져버린 것이다. 
그 안타까움은 김영하가 다 스러지게 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자~ 그럼 김영하 오빠의 귀환 신고식의 향연들~ 

좀 재수없었다. p.22
웬 촛불? p.24
나야 뭐, 올해 오십이고, 있어봐야 주책이고......p.93
미친 거 아냐? p.146

 

김영하 번역의 미학을 뛰어넘는 피츠제럴드의 저력은 상황과 풍경과 인물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다. 그 묘사는
여느 다른 고전의 나른함과는 다른 통통 튀는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의 집에서 커튼이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장면의 묘사는 그 커튼 자락을 독자의 코 앞까지 드리운다. 또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분위기와
개츠비의 지향의 덧없음을 표상하는 데이지의 묘사는 당장 1920년대 중반 미국 동부의 된장녀를 끌어다 내 앞에
세워놓는 듯한 환각에 빠지게 할 정도다. 데이지는 이런 여자다.
 

"저 분홍색 구름 하날 가졌으면 좋겠어. 거기다가 당신을 집어넣고 밀고 다닐 거야." p.119
이런 뻔하고도 수작 좋은 얘기를 개츠비를 버리고 떠나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할 때는 언제고 부자가 되어 컴백한
그한테 했던 여자라면 짐작 가능할 것이다. 

오후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허망한 꿈만이 홀로 남아 싸우고 있었다. 방 건너편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향해,
더이상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려고 애쓰면서, 암울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으면서 끝까지 분투하고 있었다.-p.169 

물질만능주의로 흥청대던 전후상황에서 신생 제국 미국의 인격화라고 개츠비를 이해하는 당시 평자들이 많았다지만
우리는 이미 2010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 개츠비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개츠비는 누구나의 마음속에나
살고 있고 죽을 때까지 붙들고 싶은 무모한 순정에 대한, 무모한 열정에 대한, 무모한 도전에 대한 아련한 향수라고.  
그 지향이 덧없음이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순정을 가녀린 손끝에 걸치고 있었던 우리 스스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개츠비의 외로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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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10-01-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럭... 이 뽐뿌질은 정말이지, 너무하십니다아아아아아아!
저 위대한 개츠비 이미 세권이나 가지고 있단 말이지요. 게다가 그 중 한권은 민음판 세계문학 전집의 75번 이구요. 저 또한번 강력 주장하건대, 민음판 세계문학전집 이미 백오십권!!!이 넘게 콜렉션 했단 말이여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ㅠ.ㅠ
괜히 샀어, 괜히 샀어, 사지 말걸, 문학동네 기다릴 걸, 괜히샀어, 괜히샀어~!!!

자, 이제 제 앞에 요술봉을 삐리링 하고 휘저어 주셔요. 제발!

blanca 2010-01-05 14:23   좋아요 0 | URL
아시마님, 세 권이요?ㅋㅋㅋ 그럼 안사심이 맞을듯. 제가 저지하겠습니다. 아무리 김영하라지만 개츠비 네 권은 좀--;; 이 정도면 되나요? 개츠비 네 권 주르륵 꽂혀 있는 모습은 과히 바람직해보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ㅋㅋㅋ

순오기 2010-01-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도 민음사 위대한 개츠비지만, 이런 뽐뿌질은 피해갈 수 없을거 같아요.
다독다필상 적립금 들어오면 님께 땡스투 할랍니다.ㅋㅋ
고딩때 그러니까 30년도 더 전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개츠비에 껌뻑 넘어갔던 1인~ 내사랑 개츠비!^^

blanca 2010-01-05 16:2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대단하십니다. 연초부터 여기저기서 상금이^^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였어요?
우와~ 지금 막 상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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