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가족이 다 잠들고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정말 숙제하듯이 다 읽고(몰입도도 긴장감도 없었다--;;) 아이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 오늘을 걱정했다. 

오늘은 고작 세 돌 넘은 아이(한국 나이로는 다섯 살이다)가 처음으로 유치원에 등원하는 날이었다. 기관을 안 다녀봤고 예민하고 소심한 스타일이라 어떤 반응이 올지 심히 걱정되었다.  

운동장 대자보. 나의 손을 잡은 만삭의 엄마. 교실 안 육십삼 명의 아이들. 게다가 오전 오후 이부제 수업. 나의 기관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뒷자리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 달라고 뒤돌아 본 나에게 들입다 달려와 따귀를 때린 중년의 담임 선생님. 난 고작 만 여섯 살을 넘은 나이 그렇게 따귀를 맞으며 학교 생활을 열었다. 매일 혼자서 걸핏하면 울었던 것 같다. 너무나 커다란 운동장 뒤켠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오후 수업을 들어가며 나는 실내화 가방을 그만 벤치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또 혼자 울기 시작했다. 내가 우는 걸 알아 채고 걱정해 준 건 입성이 불결하다고 툭하면 맞고 다녔던 짝꿍 하나였다. 왜 우니? 나 벤치에 실내화 가방...엉엉. 그 남자애는 대열에서 갑자기 이탈하여 머나먼 운동장 뒤켠으로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고 나서야 그 남자애는 빨간 우주표 실내화 가방을 달랑거리며 나를 안심시켰다.  

갈 때는 잘 간다고 따라나섰다. 어찌나 체구가 작은지 원복을 입히니 가련하다. 세탁소 아저씨에게 자켓 좀 줄여 달라며 들고 가서 아이 착용컷을 보여주니 슬퍼하며 웃으셨다. 이걸, 이걸, 대체... 아저씨는 안타까워서 죽으려고 하셨다. 그리고 일 주일을 연구하시더니 이 방법밖에 없겠다며 또 미안해하시며 어깨 봉이 산처럼 솟아 있어 입고 있으면 목 생략하고 바로 얼굴이 나오는 듯이 보이는 자켓을 내미셨다. 

아아. 기대 이상이었다. 삼십 분을 설득하고 어르고 달래도 흐느끼며 엄마와 함께 있겠다는 아이. 엄마가 오래도록 남아 있으니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엄마, 보고싶다"하며 약한 모습을 보며 독한 마음을 먹고 대성통곡을 뒤로 하고 달려나왔다.

사 년 만에 영화도 보고 근 십 사 년 만의 대낮의 자유를 누려 보려고 했으나, 계속 초조하고 나를 찾는 전화가 올 것 같아 전화기를 부여잡고 근방을 배회했다. 솔직히 애 낳으러 병원 갈 때보다 더 떨렸다. <블랙 스완>을 보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지고 입맛도 없어 점심도 걸르고 싶어졌다. 왜 황금돼지해에 12월생을 낳았을까, 하며 또 자학하다 시계를 보다 <킹즈 스피치>를 보다 말다 또 떨다 말다 또 시계를 보다 그렇게 시간아, 제발 가다오, 하며 한시 사십분이 되자 뛰어 나갔다.  

반전이 있다. 유치원 정문 틈으로 살며시 보니 까르르 웃으며 천방지축으로 뛰어 나오는 아이가 내 아이였다. 집에 안 온다는 걸 억지로 끌고 왔다. 어떤 할머니가 아이의 원복 입은 모습을 보니 또 의아해 하시며 "얜 아기네." 이러신다.--;;  하지만 하루가 즐거웠다고 내일 아침 등원이 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떨린다. 안 울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을 했는지. 안 울면 주어지는 뇌물들을 얼마나 많이 땡겼는지.  시집은 대체 어떻게 보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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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0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모녀여전인가요?
하지만 울고불고 시작한 유치원 생활도 금세 좋아하게 될거에요.
유치원샘들은 아이 맘을 사로잡는데 선수거든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

시집은 어떻게 보내지?
보내지 말고 끼고 살까요? ^^

blanca 2011-03-08 20:1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오늘도 울었어요. 참--;; 유치원 원장님과 샘이 고생이네요. 삼월달이 어여 빨랑 가서 웃으며 등원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2011-03-0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가방 2011-03-0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아들 군대 보낼 때보다 딸 시집 보낼때가 더 아프더라고...
어울리지않는 짧은 머리에, 무리에 섞여 끌려가듯 사라지는 아들 뒷모습도 아팠지만
곱게 한복 차려입고 새신랑 곁에서 행복에 겨운 얼굴로 멀어지는 딸의 뒷모습은 쓰라리더라고..
군대 간 아들은 제대하면 다시 당신품으로 돌아오지만
시집 간 딸은 영영 남의 식구 되는 듯하여 정말 많이 아팠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신혼여행 후 친정에서 시댁갈 때.. 차가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눈물이 나서 정말 많이 울었답니다.
다시 못 올 길도 아닌데.. 그냥 기분이 그렇더라구요.

휴~~ 전 딸이 둘이나 되는데 어떻게 시집을 보내죠 정말...

blanca 2011-03-08 20:16   좋아요 0 | URL
책가방님이 공주님이 두 명이나 있군요. 저희 엄마가 왜 울었는지 이제 알겠더라구요. 고작 유치원 보내놓고 밥맛이 돌 같다니까요. 자식 낳으면 기쁠 일도 많지만 가슴 아플 일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1-03-08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걱정스러워요.
님은 딸을 어떻게 시집 보내실거며, 전 아들을 어떻게 장가 보낼까요?
천년만년 끼고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blanca 2011-03-08 20:1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참 왕자님이 두 명이나 있죠! 나중에 제대로 잘 키워서 행복한 가정 이루는 것까지 보면 마음으로 잘 독립시켜야 할 텐데 그게 참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3-0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 정도 안절부절 못 하고 기다리면 이제 안심이 될거예요.
분홍공주님이 적응 잘하네요? 즐거웠나보다.. 아유, 그다지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우리 코알라보다 훨씬 낫네. ^^

그런데 블랑카님, 학교 가서 진짜 따귀 맞았어요? 진짜?
나 그 글귀 읽으면서 맘이 다 철렁하던데요..

오늘은 분홍공주님 잘 가셨나? 화이팅!

blanca 2011-03-08 20:18   좋아요 0 | URL
아녀요. 마고님, 오늘도 역시나--;; 게다가 지금 아프기까지 합니다. 지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나 봐요. 오늘 미용실 갔다가 시간이 촉박해 얼마나 전속력으로 뛰었던지 온몸이 쑤셔요.

2011-03-08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3-0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남자들 술자리에 끼어서 주워들은 이야기 하나.
지난 주에 큰 애 초등학교 입학식에 다녀온 와이프가 전하길, 하필 그 학교에서 제일 '나쁜' 선생님이 담임으로 걸렸는데 입학식에서, 학부형들 다 있는 그 자리에서, 아이들한테 시끄럽다고 소리치고 욕하고 화내서 급기야 반 애들이 다 울어버렸다, 라고 해서, "뚜껑이 확 열려뿐기라. 이사 갈 각오하고 교장선생님 찾아가서 따질거라예! 걸리기만 걸려라 하고 베르고있다 아입니꺼!"
이 대목에서 저는 '역시 남자들은 권력지향이군. 문제는 담임선생님인데 당사자는 냅두고 교장선생님부터 찾는거 봐.' 라는 생각(만, 말로는 안하고 생각만..)을 했는데 다른 네 명의 남자들은 각자 '해결 방법'을 제시하느라 여념이 없는 가운데 분위기는 무르익고 소주는 끊임없이 '한 병 더' 행진을 이어갔더랍니다. ^ ^

blanca 2011-03-08 20:2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ㅋㅋ 그래도 그런 얘기가 든든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네요. 저는 왜 엄마한테 따귀 맞은 걸 얘기 안했을까요?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앙금이 남나 봐요. 안그래도 요새 담임배정으로 초등학부모들이 신경들 많이 쓰시더라구요. 자녀분 초등입학 축하드려요^^

비로그인 2011-03-0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가 이제 어린이집으로 등원합니다. 입학식도 갔죠. 준비물들을 사서(또는 훔쳐서!) 네임펜으로 이름을 쓰고, 반명함판 사진을 뽑습니다. 너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구나. 나는 뒤에서 응원한다. 앞에서 나아가는 것은 네 몫이다. 하고, 엄마 치고는 차가운 편지를 써서 추억상자 안에 넣어둘 참이었습니다.

아차차 정작 쓰려고 했던 한 마디-블랑카 님의 눈길은 정말 엄마 같아요.(물론 내가 가짜 엄마는 아닙니다만), 역시 사람마다 감상과 대응과 느낌이 다른 법. 그래서 글이 참 좋습니다.

blanca 2011-03-08 20:23   좋아요 0 | URL
바다가 몇 개월이나 됐을까요? 삼십 개우러 정도인지. 네임펜! 안그래도 저도 이름 쓴다고 남편보고 가지고 오라고 했었는데. 저는 별로 좋은 엄마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더 찔려서 그러는가 봐요. 바다의 어린이집 등원기도 기대됩니다. 잘 하고 있죠?

2011-03-08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1-03-08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시집 보낼려면 아직도 먼것 같은데요^^

blanca 2011-03-08 20:2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ㅋㅋㅋ 제가 완전 오버한 거죠? 딸아이가 컸을 때 이 글 보여주면 완전 비웃을 것 같긴 해요^^;;

노이에자이트 2011-03-0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이 시집 안 가고 할머니로 늙는 것에 비하면 시집 보내는 서러움 쯤은 감수하셔야죠.

blanca 2011-03-09 22:45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런가요?^^;; 그래야 겠죠?

후애(厚愛) 2011-03-1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아직 어린데 벌써 시집 보낼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ㅎㅎ
잘 지내시죠? 즐거운 주말 되세요~ ^^

blanca 2011-03-13 22:32   좋아요 0 | URL
후애님,반가워요. 그러게요. 제가 괜히 혼자 오버하고 있어요^^;;

꿈꾸는섬 2011-03-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 보낼때의 마음이에요. 현수는 오빠 덕에 워낙 잘 적응해주어서 걱정 없네요.
힘내세요. 곧 괜찮아질거에요.^^

blanca 2011-03-15 22:09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이제 저희 딸도 신 나게 다니게 되었어요^^ 괜시리 이틀 아주 대성통곡을 해주셔서 맘이 참 안 좋았거든요. 형제들 같이 다니는 아이들은 너무나 즐겁게들 잘 다니더라구요. 보면서 또 부러워하고^^;; 그랬어요. 현수도 참 대견하네요.
 

이렇게 된 것은 1763년 5월 16일 런던의 데이비스 서점에서 보즈웰과 존슨이 처음 만난 덕분이었다. 당시 영국 문단의 거두였던 존슨은 53세였고 영웅 숭배의 기질이 있던 스코틀랜드 사람 보즈웰은 22세였다. 자신의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 보즈웰은 위대한 문인의 말, 습관, 의견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단절이 있었지만, 그는 존슨이 1784년 사망할 때까지 이 기록을 계속했다.

보즈웰은 존슨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들었다. 존슨이 말하기 싫어하는데 억지로 말하게 한 것이 아니라, 존슨의 사람됨이 활짝 꽃피어나게 했다.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 중

 

패디먼은 제임스 보즈웰의 <새뮤얼 존슨의 생애>이 영어로 된 최고의 전기이며, 나아가 세계 최고의 전기라고 극찬한다. 자서전, 평전이라면 껌뻑 죽는데 아직 최고의 전기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 

분노의 검색질을 시작했다. 그.러. 나. 이 책은 없다. 번역본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니 확신은 못하겠다. 사무엘도 넣어보고 존슨도 넣어보고 존슨전도 쳐 보고 했으나 책의 이미지는 뜨지 않는다. 원서? 18세기의 천여 페이지가 넘는다는 평전의 원서를 내가 어떻게 읽겠는가. 언감생심이다. 잡담과 스캔들을 좋아해 언제나 그 현장에 있었다는 보즈웰. 유명인을 쫓아 다니는 열성 팬의 원조로 새뮤얼 존슨이라는 인물을 아예 창조해냈다는 보즈웰의 글을 읽을 방법은 과연 없는건지 내가 무식해서 책을 못찾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고 실망스럽다. 

게다가 오늘 책을 주문하고 추가로 주문했어야 할 책이 자꾸만 생각나 취소했다 다시 하고 별 쇼를 다했는데 또 생각나고 이런 상황이다. 

 

지금 봤다. 박완서 샘의 추모편. 죽기 전에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는데 야속하게 하필 이사하는 날 그 눈 내리던 날 먼저 가버리신 분. 어쩌면 저렇게 노란색을 잘 소화해 내셨을까. 빨리 주문하지 않으면 책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초조하다. 병이다.--;; 

 이 표지를 자꾸 보니까 더 허무하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없구나, 싶어서.

 

 

 

서점에서 스무 살 언저리에 위대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 그 사람을 쫓아다니며 거의 삶의 반을 그 사람의 전기를 완성하는 데에 쓰고 그 사람 자체를 재창조하는 과정이 삶이었던 사람. 그 사람을 직접 만날 수는 없으니 이 책을 꼭 읽고 싶다.  1763년. 2011년. 자꾸 자꾸 과거로 휙휙 흘러가 버리는 현재가 아까워 숨을 가다듬게 된다. 늙고 죽는 게 무섭고 납득이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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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3-0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옛날옛날에 그 얘기 듣고 원서로 가지고 있어요. ... 가지고만 있어요 'ㅅ'

blanca 2011-03-02 20:49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그럼 이건 정말 번역본이 없는 거군요. 흑흑. 하이드님이야 영어가 되시니깐 마음만 먹으시면 바로 읽으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거 정말 두껍던에 아마존에서 주문하셨어요? 침만 계속 흘리고 있어요.

하이드 2011-03-03 08:20   좋아요 0 | URL
아마존에서 주문했는데, 이 시리즈는 800페이지가 우리나라 책 이라이트 400페이지보다 작고 얇아요.
우리나라 책들 이라이트가 얼마나 부피 많이 차지하는지 ㄷㄷ

양철나무꾼 2011-03-0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의 '은교'가 생각나는 페이퍼예요~^^

blanca 2011-03-02 20:5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아, 왜 '은교'가 생각나시나 했더니 퍼뜩 깨달았아요. 적요 시인이 등단까지 시켜주는 그 젊은이(이름이 가물가물)의 모습이 비슷하군요. 맞아요. 비슷한 구석이 있네요.

stella.K 2011-03-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문인들의 강연회에 쫓아 다니면서 이쪽에 사명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능... ㅋㅋ
아, 정말 그러네요. 노란색을 잘도 소화해 내시는 박완서 선생님!
맞아요. 늙고 죽는 게 무섭고 납득이 안 가요.ㅠㅠ

blanca 2011-03-02 20:51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스텔라님 강연후기는 항상 현장감이 생생하고 너무 좋아요. 정말 그쪽으로 진출하시는 것 아니에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믿을 수가 없을 만큼. 그래도 오는 봄은 참 좋네요.

비로그인 2011-03-0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사람이 죽는 게 너무 슬프다.
라는 저의 말에 저희 모친 '슬픈 일이 아니지. 사람이 늙고 죽는 건 모두 시간과 자연의 일이니, 언젠가는 일어날 일일 뿐이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라고 쓸쓸해 하셨던 모친이 떠올라서, 바로 선물포장에 편지를 써서 주문했어요. 쓸쓸한 일들이 너무 많아지는 봄입니다.

blanca 2011-03-02 20:53   좋아요 0 | URL
쥬드님 어머님은 달관하신, 초연한 그런 아름다움을 아시는 분 같아요. 맞아요. '죽음'이라는 게 막상 내 주변 인물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예전에 죽을만큼 힘들다,는 말을 조금만 힘들어도 내뱉곤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어차피 싫어도 죽을 테니까요. 다만 나이드는 건 항상 두려워요.

비로그인 2011-03-0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과 죽음의 이미지가 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어떨 땐 오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꽃샘추위가 한겨울 한파보다 더 뼛속 깊이 추위를 느끼게 하는 모양이에요...

blanca 2011-03-02 20:53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저는 영화 <시>에서 봄이 와서 새순이 돋느 것을 보면 너무 이뻐서 눈물이 난다고 했던 초로의 여인의 고백이 너무 와닿아요. 그냥 너무 이쁘면 난 이 이쁜 걸 영원히 볼 수는 없겠구나, 싶어서요. 오버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마녀고양이 2011-03-0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두 그 기분 알아요.
분노의 검색질.. 응응, 맞아요, 원하는 그 책이 없을 때 기분이라니. 난 요즘 M.C.에셔의 책을 원해요!!

blanca 2011-03-02 20:55   좋아요 0 | URL
분노의 검색질 ㅋㅋㅋ 저는 제 자신을 잘 못 믿어서 끝내 안 나와도 누군가는 '있다'고 댓글을 달아주기를 바라면서 이 페이퍼를 작성했나 봐요^^;; M.C. 에셔는 누구일까요? 궁금해지네요.

cyrus 2011-03-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가끔 유명 서양고전 같은 거 읽고 싶은데 검색하면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아서 아쉬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닌거 같아요, 저는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우리나라에 소개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blanca 2011-03-03 20:59   좋아요 0 | URL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처음 들어 보는데 어떤 작가인지 궁금하네요. 외국어 실력이 좀 되면 더 넓은 세계를 살 수 있을 터인데 그게 참 쉽지 않아요.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잘 아는 번역가를 친구로 두는 ㅋㅋ 번역 안된 책은 선물로 번역을 강요하는 아주 파렴치한 상상을 해봅니다.^^;;

kimpk 2011-03-0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SS reader로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책을 영어로 읽고 싶으시면 http://www.gutenberg.org/ebooks/1564 로 가면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이 풀려있으니 안심하고 다운받아 읽으시기 바랍니다.

blanca 2011-03-03 20:57   좋아요 0 | URL
kimpk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잘 활용할게요^^

노이에자이트 2011-03-03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무엘 존슨 이야기 얇은 것으로 시사영어사 세계명작영어학습문고 72번 나다니엘 호오도온 <전기 이야기>가 있어요.아이작 뉴톤,벤자민 프랭클린 전기가 함께 있습니다.단 영한대역이 아니고 왼쪽엔 영어원문, 오른쪽에 단어풀이가 되어 있어요.존슨 이야기 분량은 원문과 단어풀이 모두 합해서 28쪽입니다.

blanca 2011-03-03 21:00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게 이상한게 저도 이런 책에서 읽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제대로 원본을 보고 싶은데 아직 수요도 그럴 계획도 없는 것 같아 참 아쉽습니다. 모르는 건 노자님께 물어보면 되겠군요. 만물박사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3-03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슨과 보스웰의 일화는 영어권에선 매우 유명해서 영어교재 같은 데 가끔 나와요.아마 그런 데서 보신 듯.위에 제가 소개한 책은 난이도 표시가 되어 있는데 고3이상 대학생용으로 나와 있지요.이 정도면 고급편입니다.영어권에서야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교재인데 아무래도 외국인에겐 어렵겠죠.

cyrus 2011-03-0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에는 많이 생소한 작가인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도 살짝 언급되는 여성 작가에요.
제인 오스틴과 동시대에 활동했습니다. 대표작이 <남과 북>인데 국외에서는 캐스켈도 오스틴 버금가는
여성작가로 평가를 받는데 반면 국내에서는 워낙에 오스틴, 브론테 자매의 인지도가 세다보니
지금까지도 여전히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거 같아요,,

원서로는 펭귄 북스에서 나온게 있던데 펭귄클래식 카페에서 어느 회원분이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작품 번역에 대해서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답변으로 번역 계획이 없다고 했을 정도이니,, 국내에서 소개되기에는 아직 먼 거 같습니다. ^^;;

blanca 2011-03-06 22:27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로맨스 소설 작가인지 궁금하네요. 번역 계획이 없다니 저까지 덩달아 아쉬워지네요. 원서는 정말 진도가 안 나가더라구요. 다만 원문의 뉘앙스를 십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시대 배경, 사회적 배경까지 알고 있어야 가능한 고유 명사 앞에서는 좌절합니다.

순오기 2011-03-0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샘 추모특집 보고 싶어 장바구니에 담아요.
결제는 10일 이후에~ ^^

blanca 2011-03-08 20:2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 아직 이 책 주문 안했어요. 먼저 읽으실 것 같은데요. 감상이 기다려집니다.
 

거추장스럽다고 오래된 스피커를 내다 버린 후 컴퓨터가 시위하듯 입을 닫았다. 오디오 드라이버도 다시 깔고 다른 스피커도 연결해 보며 낑낑대던 남편은 손을 들어 버렸다. 갑자기 들어야 하고 듣고 싶은 것들이 산처럼 쌓였다. 순한 학생처럼 네이넘의 지식인에서 하라는 대로 다 해봐도 묵묵부답이다. 연두색 출력 단자. 이거 맞는데. 갑자기 본체 컴컴한 뒷편에도 연두색 출력 단자가 있나 찾아 본다. 있다! 이어폰 꽂는 데에다 떡하니 연결해 놓고 소리 안 나온다고 주변에 호소하고 다녔다. 도와준다고 약속했던 제부가 왔으면 거하게 망신살 뻗칠 뻔 했다. 기본 중의 기본도 제대로 모르고 놓치고 마는 것들. 이런 것들이 아찔하다. 바보 같다. 

그리고 정말 보고 싶었는데 볼 수 없었던 영화 <시>의 초입부를 보기 시작했다. 벌써 새벽 한 시. 전날에도 <유령작가>를 새벽 세 시까지 보고 연달아 달린다. 영화관에 가 본 지가 사 년이다. 주위에서 <아바타>로 들썩일 때는 소외감을 느꼈다. 다들 알고 얘기하고 즐거워하는 것들에서 물러나는 것은 우울하고 쓸쓸한 일이다. 아이를 가지고 낳고 키우며 영화관을 가지 못하고 가지 않은 것은 게으름과 귀찮음을 숨기기 위한 변명거리일지도 모른다.  

 

시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힘든 시대다. 시를 읽는 사람들이 귀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 소설가였던 선생님은 윤동주의 시를 적어주시곤 했다. 아이들은 마치 가수에게 노래를 조르듯 수업 시작 전 시를 조르는 습관을 들였다. 화석 같은 정경이다. 이 영화에는 시를 조르는 할머니가 나온다. 같은 학교 여학생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고도 무감각한 외손자를 돌보고 반신불수 노인을 목욕시키러 다니는 미자 할머니. 자꾸 명사에서 미끄러져도 금새 작은 수첩에 시상을 메모하고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응시하느라 걷던 길을 멈추는 주책맞은 몽상가. 빛나고 생기어린 아름다움은 주름살 골에 희미하게 박혀 미끄러지고 있지만 가느다랗고 투명한 음색으로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대배우의 넘치지 않는 연기와 아름답게 시간과 타협하는 법을 배워가는 듯한 모습은 절절하게 예뻤다.  

문화원에서 시작 강의를 받는 나이든 늦깎이 학생들의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회고하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유행가가사를 짚어가며 가르쳐 줬던 손녀는 할머니의 부재 앞에서 오열한다.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다,고 덤덤해했던 초로의 사내는 갑자기 지하에 살다 이천의 임대 아파트에 들어왔던 그 해방의 소박한 순간을 기억하며 전율한다. 봄에 비죽비죽 솟아 나오는 새순이 너무 이뻐서 쓰다듬어 주며 나이듦을 체감한다는 중년의 여인네는 누구와 닮아 있다. 내가 두고 갈 것들과 내가 가도 남을 것들은 순간을 더 고양시키고 서럽게 만든다. 소위 불륜에 빠져 아름답지만 너무 힘든 사랑을 하고 있다는 아주머니는 너무 아프다고 울먹인다. 

일상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그때는 몰랐다. 잠깐이라도 멈추고 싶은데 기착지의 막간은 너무나 짧다. 차창 뒤로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들이 애달프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없고 영원한 것이 없음을 머리로는 아는데 자꾸 사소한 것들에 끄달린다. 매일 매일이 어리석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시작 강의 시간. 미자 할머니는 강사와의 약속을 지킨다. '아네스의 노래'라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하고 떠난다. 윤정희의 낭송은 갑자기 어린 소녀의 것으로 바뀐다. 죽은 그 아이다. 소녀와 할머니. 꿈 같은 만남. 아찔한 거리감. 사실 누구나 소녀였고 누구나 할머니로 죽는다. 어렸을 때 나는 우리 할머니가 할머니로 태어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할머니로 영원히 내 곁에 계실 거라고 참으로 지겹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가고 난 다음에서야 할머니도 소녀였다고 정말 그랬다고 그리고 나도 할머니가 되는 거라고 결국 그러고 말거라고, 지금 나를 미친듯이 사랑하는 이 어린 딸아이는 언젠가 그 시간들마저 다 잊어 버리는 때가 올 거라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엄마, 정말이지 세상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들뿐이네요.'-사노 요코 <나의 엄마 시즈코상> 

어쩔 도리 없는 일들. 그리고 너무 이쁜 풍경들. 봄이 되면 더하겠지. 환장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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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2-0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성이 풍부한 소녀스럽고, 고운 할머니인데 현실이 참 팍팍하네요.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답답했습니다.
나이들수록 말을 아껴야 겠다는, 실없이 웃지 말아야 겠다는 생뚱맞은 생각을 했습니다.

blanca 2011-02-07 21:38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정말 그랬어요. 글구 아이가 나를 보고 웃어줄 때 그리고 나를 계속 부를 때 더 열심히 응해주리라고 결심도 했구요. 서글퍼지는 대목이 많더라구요. 제가 할머니한테 했던 행동들도 생각나고.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2-0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방송 일요일 밤 11시 한국영화걸작선을 보면 정말 윤정희 씨 영화가 많음을 알 수 있어요.모두 젊은 시절 영화지요.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런 영화를 꽤 보았답니다.특히 신성일과 주연한...그런데 저 영화 포스터...정말 많이 늙었군요.엉엉엉...미녀가 나이들면 더 슬퍼 보여요...구하라 누나도 늙겠지요.

blanca 2011-02-07 21:3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노자님, 정윤희 아세요? 저 하도 어른들한테 그녀 이쁘다,는 얘기 많이 들어 어제 검색해 보고 정말 반했답니다. 최고더라구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영화도 찾아 보고 싶었는데 EBS에서 해 줄 때 열심히 볼걸,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이쁜 사람들이 할머니가 되면 이목구비가 큼직하니까 더 확연히 늙어 보이는 것 맞는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2-07 21:43   좋아요 0 | URL
수애 씨가 정윤희 씨 비슷하다고 하지요.교육방송에서도 안성기 정윤희 주연의 안개마을을 가끔 방영합니다.제가 이 프로그램 덕에 60~80년대 영화를 좍 끼고 있지요.

비로그인 2011-02-0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작가>는 저도 그 시간에 보았는데, <시>가 방영되었는지는 몰랐네요.
영화관에서 크레딧이 올라갈 때 모두들 야단 맞은 학생처럼 조용히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호되게 야단 맞은 기분이었죠.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blanca 2011-02-07 21:40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저 이틀 연속 새벽 세 시에 잤답니다.--;; <유령 작가>, <시> 둘 다 삶의 무자비한 잔혹성을 보여주는 영화였어요. 보고 나면 꼭 우울해지는.... 호되게 야단 맞은 기분... 맞아요.

마녀고양이 2011-02-0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힘든 시기라는 문구 절대 공감.

어느 시대나 그렇긴 하겠지만, 요즘은 특히 예술이 금전과 연결되어 힘든 시기죠.
대중에게 영합해야 하고, 하기사.. 인정받는다는 자체가 대중 인기 영합일까요? ㅠㅠ

순수한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정녕 힘든 시기인 요즘이지만, 그만큼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양면성도 바라봅니다. 아, 곧 봄이 되나요? 통영 다녀오면서, 통영의 봄빛을 맞으며, 그 생각했어요, 베란다 손질 좀 해야게따 하구.

blanca 2011-02-07 21:42   좋아요 0 | URL
시인들이 특히나 더 힘든 것 같더라구요. 인터뷰 기사 같은 것 읽으면. 이런 풍토에서는 대시인이 다시 나오기는 힘들겠지요. 통영의 봄빛,이라는 말이 하나의 시어 같아요. 너무 이쁘네요. 베란다. 생각하니 심란해지네요. 여긴 곰팡이가 멋지게 춤추고 있어서 락스로 뿌려 놓고 닫아 놓고 산답니다.--;;

2011-02-07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2-0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조르는 할머니,,, 누구에게요?
결국 자기 자신에게요?
궁금해요.

봄, 오지 말라고 조르면 봄이 안 올까요.
봄, 어서 오라고 조르면 봄이 어서 와 줄까요.

blanca 2011-02-07 21:45   좋아요 0 | URL
미자 할머니는 시인을 보고도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냐고, 조르고 자기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조르다 한 편을 남기고 떠나요. 죽음을 암시하는 라스트 신이랍니다. 저는 올해부터 봄이 정말 정신 잃을 정도로 기다려지기도 하고 그래요. 이제 정말 좋은 줄을 알겠어요. 신기해요.

비로그인 2011-02-07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궁창 속에 발붙이고 서서, 무지개를 보더라.

-영화를 보신 저희 모친이 하신 말씀. 전 못봤습니다. 저 대신 보고 저 대신 허무하고 후련해 하셔서, 이러한 감상만을 빌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아직 안봤지요.

blanca 2011-02-07 21:46   좋아요 0 | URL
쥬드님의 언어감각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군요. 시궁창 속에 발붙이고 서서, 무지개를 보더라! 이 영화 보고 나면 참 쓸쓸해져요. 나라서 쓸쓸한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인 게 쓸쓸해져요. 다 불쌍하고 슬퍼요. 나이들고 죽음을 앞두고 망각으로 가면 결국 다 사라지고 마는건데 현생은 끊임없이 집착과 끄달림을 부르네요.

2011-02-07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2-0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우리딸이 말해줘서 꼭 보고 싶었는데 깜박했어요.ㅜㅜ
이상하게 '시'와 인연이 안 닿네요.
우리동네 극장에선 안했는데, 작년에 인천갔을 때 내가 다니던 극장에 걸려서 볼려고 했는데
그걸 보면 내가 뵙고 와야 될 분은 못 만나게 되고.... 갈등하다가 영화를 접고 그분을 뵙고 왔어요.
그래도 시를 본 것보다 그분을 뵙고 오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토닥여줬는데...

나도 시를 써본다고 우리동네 대학교사회교육원 시창작반에 디니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blanca 2011-02-08 21:1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꼭 보셔야 해요. 순오기님도 참 좋아하실 것 같아요. 시창작반에 다니셨어요? 우아, 그럼 더욱 더 보셔야겠어요. 시창작반 수강생들의 자기 삶 고백 장면은 정말 뭉클하더라구요.

카스피 2011-02-07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좋은 영화를 노쳤군요.신문을 안봐선지 요즘 통 TV에서 무슨 영화를 하는지 당최 알수 없어요ㅡ.ㅜ

blanca 2011-02-08 21:19   좋아요 0 | URL
저도 신문도 안 보고 티비도 잘 안 봐서 중요한 것들을 자꾸 놓쳐서 영화는 챙겨 보려고 해요. 안그러면 극장을 가야 하는데 쉽지 않아서요. '아프리카의 눈물' 같은 프로도 너무 좋더라구요.

꿈꾸는섬 2011-02-10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를 이번에 TV에서 보았어요. 애들 다 보내놓고 한가하게 영화구경해야하는데도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이 영화보고 정말 너무 좋았어요. 역시 이창동 감독이다 싶기도 했구요.

blanca 2011-02-10 13:42   좋아요 0 | URL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 출신인 걸 몰랐어요. 정말 한 편의 시 같은 영화더라구요. 윤정희의 연기도 참 좋았구요. 구십 살까지 연기하겠다는 꿈 이루어질 것 같아요. 저는 갑자기 이 시대의 배우들한테 필받아서 다 검색해 보고 그랬잖아요^^ 저는 지금 <블랙스완> 기대하고 있어요. 아이 유치원 가고 나면 저 사 년만에 처음으로 보는 영화가 된답니다!^^

꿈꾸는섬 2011-02-11 23:18   좋아요 0 | URL
이창동 감독의 소설도 전 참 좋았어요.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들도 모두 좋았구요.
윤정희님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죠. 그 절제된 표정과 소녀같은 모습, 정말 멋졌어요.
아이 보내놓고 블랑카님의 자유를 만끽하시길...그런데 아이들 올 시간은 또 어찌 그리 빨리 오는지 모른답니다.ㅎㅎ

후애(厚愛) 2011-02-17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기회가 오면 영화 <시>를 보려고 합니다.^^
잘 지내시죠?

blanca 2011-02-17 23:05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 참 좋아하실 거예요. 꼭 보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1월 22일 토요일. 아침 눈발이 날렸다.
1월 22일 토요일 기다리던 아이를 가지고 낳고 3년을 키워낸 집에서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나의 이사를 정작 주도하는 아저씨들에게 괜히 면구스럽기도 계면쩍기도 해서
구석에서 핸드폰을 조물딱거리다 
1월 22일 아주 오랜만에 박완서 샘이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을 알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두부> 정말 좋더라. 정말." 

거짓말과 칭찬을 동격으로 싫어하는 여동생이 <두부>에 반하며 박완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책을 동생은 사지 않고 동생이 선수친 책은 내가 뒤따라 읽으며 샘의 책을 모았다.
둘 다 결혼을 하고 책장이 분리되면서 우리는 똑같은 책을 한 권씩 가지게 됐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빌려줄까?" 

"이미 읽었어."

  

 

 

 

 

 

 

 

혼수로 해 온 거실탁자의 상판 유리가 깨지고 내부순환 도로의 교통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파아란 하늘과 구름을 눈썹에 달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멋진 방이 발치에 잔잔한 곰팡이 포자들을
무수히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그 교통상황은 귀로도 확인가능할 정도로라는 것을
수긍해야 할 때쯤 이사가 끝났다.  

침대에 누웠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왜 아픈지 하나하나 헤아려 갔다. 

내가 떠나온 집은 나의 것도 아니었고 이별한 친구처럼 작별인사마저 없었다는 점.
그럼에도 나는 부른 배를 부여잡고 뒤뚱거리며 올라가 만났던 너.
안아달라는 아이를 끌고 밀여 올라가서 만났던 너.
잘 돌보지 않았다고 야단맞아야 했던 너. 

를 헤어진 연인마냥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너를 떠나오며
동생과 나누던 무수한 에세이들.
아이를 안고 읽었던 그 누군가를 속이거나 의식하지 않는 삶의 이야기들과
아직은 한번쯤 더,라고 기대했던 그 분이 하필 이제 영영 가버리셨다는 거.  

명치 끝이 계속 서늘했다.
모든 익숙한 것들과 반드시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그 명제는
나의 것이기도 했다.  

이사하는 와중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거의 일 주일을 넘게 읽다 말다 눕혔다 꽂았다 하는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가 얌전히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없어져서 다 읽지 못했다고 하고 싶었나 보다.
변명거리로 맞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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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1-2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셨군요. 추운 날 고생하셨어요.
'주기율표'는 저도 끝을 못 내고 눕혀뒀어요.
전 박완서님의 '나목'을 쓸어봤답니다.
알라딘 서재 어여쁜 님이 주신 거라 더더 생각하면서요.

blanca 2011-01-25 22:4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 그냥 안끝내기로 했어요^^;; 집중도 안되고 너무 질질 끌다 말다 하니 의욕도 안 생겨서 오늘 새로 온 책들 읽기로 했답니다. '나목' 그런 소중한 사연이 있었군요. 저는 교과서였나, 참고서에 발췌된 것으로만 읽었다 최근에서야 전문을 읽었답니다.

양철나무꾼 2011-01-25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결혼 초창기에, 남편이 사업을 말아 잡수셔서 이사를 엄청 많이 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집이랑 정들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마구 옮겨다녔었어요.
글에서 님의 애잔한 마음이 느껴져 짠 하지만요, 또 정 붙이고 그렇게 살다보면 추억이 되어 있겠죠.
이사하시느라고 고생하셨겠어요, 이젠 용이랑 돼지랑 블루스 추는 꿈만 꾸시면 되는 건가요?^^

blanca 2011-01-25 22:4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ㅋㅋ 슬픈 사연을 재미있게 말씀하셔서 죄송하지만 웃었답니다. 안 그래도 삼일 지내니 또 정이 차차 들어가네요. 다만 대중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다리품좀 팔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이긴 한데 용이랑 돼지랑 블루스 추는 꿈이라면^^;; 무슨 의미이신지. 제가 형광등이라는 소리를 좀 들어서 망설이다 질문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1-25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태어난 집에서 스무해를 살아서 서울살이에 가장 힘든 점이 이사예요.
집 뿐만 아니라 동네, 타고다니던 버스에 마저 정을 붙이고 마는 저같은 촌년에겐 정말 도전이예요.

blanca님 여튼 날도 추운데 고생 많으셨어요.
곰팡이들이랑 헤어지신건 잘된거 같아요.
새집에서 더 행복한 기억들이 많아지시길.

blanca 2011-01-25 22:49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안그래도 오이지군과의 결혼 축하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니 자꾸 멋쩍어 못드렸어요. 정말 축하드려요. 이쁜 새댁이 되셨군요. 스무해나 사셨어요? 맞아요. 도전 맞아요. 고작 사 년 살고도 맘이 참 휑하던걸요. 행복한 기억 만들어 갈게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11-01-2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이사한 거군요.
난 벌써 하신 줄 알았는데.
어제 고 박완서님 추모 특집하는 거 보다 잤어요.
그걸 보다 자다니...ㅠ
그러고 보면 박완서님 책 제목은 정말 기가막히게 잘 지으시는 것 같아요.
얼마나 서민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드는지.

여담이지만, 예전엔 두부 좋은 줄 몰랐거든요. 그냥 덥덥하고 밍밍한 게.
그런데 요즘들어 부쩍 두부가 좋아졌어요.
아무래도 추모하는 마음으로 박완서 선생님 책 한 권 읽어줘야 할 것 같아요.
언제고 블랑카님 동네 좀 사진 찍어 올려주세요. 궁금해요.^^


blanca 2011-01-25 22:51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네, 그랬답니다. 저도 요새 두부 좋아지던데 어쩜 같아요. 이제 맛을 알겠어요. 예전엔 정말 맛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김치만 걸쳐 먹어도 어찌나 맛있는지. 된장찌개에 넣은 두부는 한 마디로 화룡점정^^;;이지요. 저도 잠깐 그 프로 보긴 했는데 졸리던걸요. 그 분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요^^;; 그러고 보니 동네 사진 좀 찍어야겠네요!

책가방 2011-01-25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사는 집에서 10년을 살았네요.
이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환경을 접해보고 싶어요.
여긴... 너무 재미없어요 ..ㅜ.ㅠ;;

blanca 2011-01-25 22:52   좋아요 0 | URL
책가방님, 저도 이사 좀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랬는데 막상 떠나오니 참 섭섭하더라구요. 다만 이사를 하며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할 것 정리하는 과정이 또 좋긴 하더라구요.

비로그인 2011-01-2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어요. 전 담 월요일에 이사랍니다. 추운 때 낯선 집으로의 이사는 좀 황량하고 심란하지요?
봄이 오면 그 용문고등학교 고갯길이 그리워지시려나요?

blanca 2011-01-25 22:54   좋아요 0 | URL
만치님은 월요일이군요.만치님 기억력 정말! 우아, 어쩌면 이제 몇 개월 지나면 만치님만 용문고등학교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저 기억력은 정말--;; 아, 그 고딩들의 시끄러움도 그리워지네요 ㅋㅋㅋ 정말 쉬는 시간, 점심 시간마다 얼마나 아우성을 치는지. 합창대회 연습기간에는 정말 대박이었답니다. 대회하기 직전 연습하던 모습 보고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cyrus 2011-01-2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추운 날씨 속에 이사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블랑카님은 집에 책을 많이 소장하셨을거 같은데,, 이사하는데 힘들지 않던가요?
아직 이사 걱정할 정도는 아닌데,, 방 안에 있는 책이랑 책장을 보니
괜시리 막막해지네요ㅎㅎ;;

blanca 2011-01-25 22:55   좋아요 0 | URL
cyrus님 안 그래도 이사할 때 책 많으면 정말 힘들다면서요. 저는 게다가 정리도 잘 안 되어 있어서. 아저씨들이 알아서 구멍구멍마다 잘 꽂아 놓으셨더라구요. 찾기는 힘든데 되레 정리가 되더라니까요. 안그래도 그래서 책을 사기 전에 조금씩 주저하게 됩니다. 이사를 겪어 보니 참 부담스럽더라구요.

카스피 2011-01-2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날 이사하셨네요.고생이 많으셨겠네요.새로운 집에세 아가와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당^^

blanca 2011-01-25 22:5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아이는 이 집이 더 좋다네요 ㅋㅋ 몸고생은 아저씨들이 다 하셨고 저는 맘고생을 좀 많이 했답니다.

꿈꾸는섬 2011-01-26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추운날 이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저도 이사하는 날의 그 쓸쓸한 감정을 알아요.ㅜㅜ
게다가 박완서 선생님 소식은 더더욱 가슴 아픈 일이죠.
전 요새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 읽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이 글 쓰시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ㅜㅜ

blanca 2011-01-27 18:47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이 책 읽고 계시군요. 이사는 하기 전보다는 지금 맘이 더 정리되고 무언가 할 일을 한 것 같아 가뿐한 느낌도 있고 그래요.약간 낯선 느낌도 있지만요. 책을 통 못 읽네요.

세실 2011-01-2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는 참 번잡스럽기는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도 교차하지요. 저도 슬슬 떠날때가 되었는데....ㅋ
두부 음 집에 있을듯한데 찾아봐야 겠습니다.
전 박완서 작가님 책중 '그남자네 집'이 참 좋았어요.

blanca 2011-01-29 23:44   좋아요 0 | URL
세실님, '그 남자네 집' 저도 참 좋아해요. 우연찮게 그 남자네 집이 저희 집 근처이기도 했구요^^;; 갑작스레 알고는 다시 읽어 보기도 했답니다. 역시나 좋더라구요.

2011-01-28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9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9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9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1-2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저는 아직도

문 앞에서 나를 맞아 주던 봄 바람.

고개를 젖히면 조각처럼 보이는 하늘.

사계절 마당을 늘 어슬렁 거리던 고양이.

수줍게 바람에 흔들리던 이름 모를 식물들.


이런 것들이 아른거려요. 사진에 담으면 잊을까, 마음에 새기고 왔습니다. 마음에 새기니 더 기억에 꺼내기가 쉽네요.
이사는 끝나셨겠지만 마음은 아직 그자리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툭툭.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지만 여전이 조금은 바지에 묻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요.

blanca 2011-01-29 23:50   좋아요 0 | URL
혹 유년 시절의 집 얘기인지요. 바람결님 같은 집에 대한 기억을 저도 가지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없어요. 지금도 가슴이 조금씩 저릿해요. 상황에 밀려 이렇게 되어 더 그런가 봐요. 작지만 아주 따사로운 집이었는데. 그리워지네요.
 

아이폰의 어플 ireaditnow(알라딘 서재 모분이 만드셨단다)는 일종의 독서기록장 어플이다. 별점도 매기고 간략한 코멘트도 덧붙이고인용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책 이미지를 바로 불러와 읽는 진행 상태를 기록해 둘 수 있고 독서량 통계도 낼 수 있는 아주 사랑스러운 어플리케이션이다. 

나름대로 책을 좋아하고 어설픈 다독가라고 자평하지만 기록에 인색하니 읽은 책을 또 읽고 열심히 읽은 책 얘기를 남에게서 듣고 생소해하는 지경에 이르니 허무해서 시작한 서재활동은 그러나 보여진다,는 것을 의식하는 피로감이 있었다. 그리고 리뷰를 다 작성하기는 여력도 없고 능력도 없고 해서 숭덩숭덩 건너뛰니 독서 목록과 어느 기간 동안 얼마 만큼 읽었다,는 수치상의 합산 개념을 가질 수 없어 아쉬웠다. 이 어플은 정말 맞춤하였다. 한 달에 몇 권을 읽나, 별점 다섯 개인 책은, 세 개인 책은 어떤 게 있나, 이런 식의 조망이 가능해지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괜히 스마트한 척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도 하고 했는데. 

바보처럼 인터넷에 연결해서 동기화를 잘못 하는 바람에 다 깡그리 모조리 아주 시원하게 날아가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애플에서 세 번째 무기한 병가를 내고 퇴장했다는 스티브 잡스의 어느 대학에서 했다는 연설문이 출력되어 옆에 놓여있고. 

최고의 최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회자되는 그가 대학생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입양아였고 췌장암진단으로 죽음 가까이 다가가 본 경험을 통해 죽음이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이미지화되고 저장되는 것들은 어쩌면 실물이 아닌 하나의 허상, 환상일지도 모른다.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고 견디는 것은 아닌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오만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아주 시원하게 다 날려 버리고도 또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지. 잃어버린다는 것이 대체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개념과 어긋나는 건지 하나인 건지 모르겠다. 놀라웠던 것은 다 날아가 버린 것들을 애타게 그리워하지 않는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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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1-2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날아가 버린 것을 애타게 그리워하지 않는 쿨함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blanca 2011-01-21 21:35   좋아요 0 | URL
여기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을 세워 놓았다 갑자기 이사 가게 된 것만 봐도 그런 것 같아요. 이제는 하나씩 버리고 추리는 연습도 해야 할까봐요, 순오기님.

양철나무꾼 2011-01-21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폰으로 바꿔봐 했던 게 아이폰의 어플 ireaditnow때문이었는데 말이죠.
시원하게 날아가 버린 건...시원하게 잊어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순오기님 말씀에 한표요~!^^

이사 준비하시느라 바쁘시죠?
이사 끝내고 차근 차근 다시 시작해 보세요.
그때쯤 제가 혹 아이폰을 장만하기라도 하면,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시구요~^^

blanca 2011-01-21 21:3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도 아이폰 장만하시려구요? 저는 먼저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에 걸맞는 내공은 전무하답니다.--;; 오죽하면 다 날려 버렸겠어요 ㅋㅋㅋ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는 것들도 컴퓨터처럼 백업을 해야 겠더라구요. 결국 정말 소중한 것들은 수고를 해서 담아 놓고 관리해 주고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 내일 이사인데 집안 정리도 안되고 지금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안 해 놓은 것 같고 서재에서 이러고 있고 --;;

turnleft 2011-01-21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걱.. 죄송합니다. 미리미리 백업 기능을 제공했어야 하는데.. ㅠ_ㅠ
혹시 iTunes 에서 아이폰 이름에 오른 클릭 하신 후 Restore 선택해 보셨나요? 그럼 최근 백업한 데이터로 되살려지기는 하는데..;;

blanca 2011-01-21 21:39   좋아요 0 | URL
TurnLeft님이 왕림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제 소심증이 왔어요. 이 좋은 정보를 막 날아갔을 때 알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이후로 또 이거저거 깔고 그래서 불안불안하답니다. 다시 시작할게요. 좋은 어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탓이지요.

비로그인 2011-01-2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기록이 있었어요. 내 기억의 한자락.
내가 들었던 말들과 내가 했던 말들을 다 기록했어요. 유아원 때, 집에 가기 전 동화책 한 단락을 읽어주는 걸 듣고 집에 가자마자 그걸 그대로 기록하게 하는 기억력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요.
그걸 내도록 곱씹으며 몇 번을 다시 봤는데, 아, 세상에.

정품을 사용하다가 탈옥을 하다가 다시 정품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 백업도 소용없이 그게 다 날아갔지 뭡니까.

행여나 아니 올까 그 님이 아니올까 기다리는 이 마음 허무해라

그 마음이었어요. 그 마음이었어요.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털석 주저앉아 버렸는데, 제 기억 속에서 어떤 부분은 이제 잊혀져서 기억이 나지 않고 어떤 부분만 더 빛을 발합니다. 결국 기록하지 않고 있는다는 건 잊는다는 것이 아니라 더 생생하게 보관하는 일일거란 생각을 했어요. 양각과 음각이 있어 더 도드라지고 더 생생해집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볼에 홍조가 생기고,내 표정이 들뜨곤 해요.

결론-이제 탈옥 안합니다(응?)

blanca 2011-01-21 21:43   좋아요 0 | URL
쥬드님도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하셨군요--;; 순간 정말 벙찌다,는 표현이 절절하게 와닿더라구요. 게다가 쥬드님은 그토록 소중한 기억의 기록이었다니 순간 얼마나 허무하셨을까요. 양각과 음각. 이 말이 너무 좋아요. 책을 몇 권 읽고 별점 몇 개를 줬다는 데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란 가르침일까요?

결론 그러나 또 시작합니다.^^;;

saint236 2011-01-2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럭...저도 그래서 아이튠즈는 거의 사용 안합니다. 노래 넣을 때나 영상을 넣을 때는 다른 프로그램으로...동기화로 몇번 날린 기억이 있어서...컴퓨터에 데이터화해서 집어 넣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한 휘발성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blanca 2011-01-22 20:33   좋아요 0 | URL
saint236님, 정말 그래요. 저도 두 번째랍니다. 눈 깜짝할 새에 그렇게 되더라구요. 백업을 해 두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네요.

like 2011-01-2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오래전 아이팟에 녹음한거 날라가서 국제전화까지 한적있어요..ㅎㅎ 편리하긴해도 저장매체로서 안정성은 최악이라는 글을 보면서 동감100%

blanca 2011-01-24 22:50   좋아요 0 | URL
저는 솔직히 제 잘못이라고만 자학했는데 댓글들에 위로를 받아요^^;; 아이팟! 넘 귀엽더라구요. 드라마도 다운받아 보는 거 보고 넘 귀엽고 간지럽고 하더라구요 ㅋㅋ 저 하도 저장 관련해서 식겁한 적이 많아서 이제는 정말 백업좀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역시나 안 하는 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