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이 많다. 원체도 모험심이 부족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시도,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점점 더 두려움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기분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냥 가만히 앉아 세월을 맞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결국 연약하고 유한한 몸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체현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품이 들고 상실이 들이친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은 나날이 더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헌 마음에 부대낀다.
요즘 젊은 작가 중 이슬아는 가장 전면에 부각된 인물일 것이다. 이렇게 안 읽는 시대에 글을 써서 유명해지고 생계도 가능하다는 걸 청년들에게 보여주는 드물지만 희망적인 사례의 대표 주자일 것이다. 그녀가 나이 든 육체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응급실 청소 노동자, 인쇄소 기장과 경리, 수선집 사장의 인터뷰는 나를 흔들었다. 이런 유형의 인터뷰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심지어 르포 형식의 이야기들도 있어 왔다. 그러나 이슬아 작가가 그들과 나눈 대화는 그러한 전형적인 틀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우리가 기대하게 되는 노동 현장에서의 애환, 소외감, 한탄이 아니라 그들이 그 화려하지 않은 자리에서 살아낸 각자의 삶으로 직조한 서사의 결정체가 이슬아 작가의 목소리로 빛난다.
응급실에서 환자들이 흘린 피, 남들이 기피하는 각종 쓰레기를 종일 치우면서도 "세례를 받아서 이제 더 으른이 되어야죠."라고 말하며 웃는 육십대의 청소 노동자 순덕 할머니는 그 피곤한 육체 노동의 와중의 유일한 휴일날 집에서 쉬는 대신 또 자신의 몸을 움직여 봉사할 일을 찾는다.
표고버섯을 키우는 농업인 윤인숙 할머니는 "스트레스를 안고 꿍해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잖아. 새 마음을 먹는 거지.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라고 스트레스를 받는 딸에게 말한다. 여느 철학자보다 더 심오한 인생 조언이다.
팔십대의 수선집 '미래로' 사장님에게는 슬아 작가에게 고백하는 늘그막에 찾아온 찬무 할아버님과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있다. 연인의 수선집에 '미래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예뻐해줬던 할아버지와의 마지막을 마감하며 사장님은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없단다. 왜냐면 "지금이 제일 좋아," 이 얼마나 도발적이고 기대치 않았던 명답인가.
저마다의 분야에서 하는 청소, 옷 수선, 농사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그리고 지금이 정말 너무 좋다,는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는 일은 그렇게 엄중하고도 존귀한 일임을 잊었다. "새 마음"을 먹어야겠다. 오늘도 내일도 또 흘려보낸 어제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