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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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다.

열네 살, 스무 살, 때로는 나이조차 기억나지 않는 태초의 것만 같은 기억들.

다시 나는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았던 마흔의 철책 앞에 선다.

스무 살은 꿈꾸었지만 서른은 실감나지 않았고 마흔은 차마 상상해 내지도 못한 나이.

이제 나는 쉰도 되고 환갑도 되고 고희연도 치를 수 있기를 서글프지만 현실적으로 소망한다.

나도 늙고 늙어가고 있고 더 늙어가다가 마침내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이제는 실감한다.

삶은 스무 살이 세계 전체를 포박하고 내가 딛는 발자욱이 그려내는 지도로만 완성되지 않음을 배워가는 과정과

다름아니다.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이 추연한 제목 아래 처절하게 인간의 늙어감과 그것의 종말을 기술한 저자의 도저한 탐구, 모색이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영화의 클라이맥스 못지 않은 울림을 자아냈다. 순간 아연해졌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그 어떤 위로도 위장도 에두름도 없는 그 직설적인 산재한 진실들에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모순과 덧없음과 역설에 지는 것인지를 동의해야 하는 과정임에도 저자 장 아메리의 그 담백하고 처연한 문장들에 절로 목울대가 울렸다.

 

그 앞에서 '늙어감'은 그저 세계와 환상을 잃어가고 죽음이라는 도저히 풀길없는 하지만 자명한 역설의 진리로 한 걸음씩 내딛는 초라하고 처절한 행보다. 성숙, 세계를 보는 시선의 확장, 관용, 성숙의 휘장은 그의 예리한 언어의 칼날로 난자 당한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늙어가며 죽음으로 행진하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A의 시선이 관통하는 그를 둘러싼 세계들, 그리고 그것에서 밀려나며 자신이 쌓아온 시간들로 향햐는 시선들의 흐름은 마치 한편의 소설 같다. 실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시선들이 군데군데 녹아들어가 있다. 장 아메리는 자신이 실제로 만지고 느낀 것들을 충실히 자신만의 언어로 쓰다듬고 훓어내어 흩뿌린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천착했던 속물성이 횡행하는 사회의 실체는 장 아메리 앞에서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우리의 고향은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소유의 세계이며 소유가 있어야 사회적 연령을 부여받는다는 그의 지적은 우리의 늙음의 결이 사회가 부여하는 소유의 위계를 따라 스며듦을 간파한 것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그마저도 우리는 사회적 연령의 심판 하에 쌓아놓은 재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이렇게도 희망을 깨부수는 이야기들. 한마디로 '늙음'과 '나이듦'은 인간이 직면한 '죽음'이라는 그 불합리하고 역설적인 모순의 마침표로 규정된 '존재'와 얽혀 하나의 '무의미'로 회귀해 버린다. 실제 장 아메리는 오십 대 중반에 이 저술을 하고 십년 뒤가 지나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텍스트를 위해 산화해 버린다.

 

A는 균형을 깨뜨리며, 타협을 폭로하고, 통속화를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를 깨끗이 쓸어버리는  그 어떤 일을 해냈을까? 그는 그랬기를 희망한다. 남은 날들은 쪼그라들며 메말라 비틀어진다. 그럼에도 그는 진리만큼은 간절히 말하고 싶었다.

-p.211

 

A는 다름아닌 장 아메리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해냈다. 하지만 그의 인간의 삶에 대한 그 가차없는 메마르고 명징한 통찰은 또 다른 역설과 만난다. 찰나의 경건함. 그것이 꼭 대단한 의미와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은 날들이 쪼그라들며 비틀어지고 지나간 나날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으므로 '지금', '여기'가 가지는 무게는 한층 더 한량없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보는 거울에서 나의 얼굴은 빛을 잃었지만 벚꽃비를 맞으며 향그러운 그 덧없음을 향유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가 오십 대에 마침내 육십 대에 얻은 깨달음과 사유가 삶에 대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의 한계까지 밀고 나간 것이라 할지라도 남는 것들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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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4-1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는다`고 생각하면 늙으니,
`새롭게 새 하루를 산다`고 생각하면
나이가 드는 아름다움으로 가리라 느껴요

blanca 2015-04-10 13:56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말씀처럼 그렇게 나이들어 가야겠어요.

yureka01 2015-04-1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고맙게 읽었습니다.....

blanca 2015-04-10 13:56   좋아요 0 | URL
시간 내서 읽어주신 게 감사하죠^^

라로 2015-04-1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홀릭 리뷰 얼렁 써주세요~~~~ 안그럼 데모 할래요~~~~~ㅎㅎㅎㅎ

blanca 2015-04-10 13:58   좋아요 0 | URL
아, 나비님, 솔직히 제가 그 책은 리뷰를 못 쓸 것 같아요.
피아노에 대한 소양이 부족해서 저자 설명 따라가기도 바빴어요.
저도 어렸을 때 레슨 받고는 최근에 다시 학원을 다니다 그만 둔 상태인데
아무래도 성실하게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다 새롭더라고요.

프레이야 2015-04-1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살한 작가군요. 죽음으로 귀결하는 우리삶의 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blanca 2015-04-20 13:33   좋아요 0 | URL
아... 언제나 `죽음`은 참 어려운 문제예요. 장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요.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책세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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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솔직한 사람을 대면하면 그 미덕의 무게만큼 다소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구태여 의식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이 나열되고 그것에 대한 나의 느낌이나 의견까지 요구한다면 더더욱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시간, 장소는 어느새 어떤 공모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나는 도저히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이미 듣고 느낀 것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이 책은 그러한 책이다. 플롯이 있고 창작 의도가 명료한 장대한 이야기들을 써서 삶의 의미와 존재론적 핵심에 가닿으려 하는 그 지난한 노력이 주도하는 문학은 그 앞에서 절멸하고 만다. 데이비드 실즈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책의 주인공이자 매개체였던 구순이 훌쩍 넘었던 노장 아버지도 그 필멸의 과정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버지처럼 될까 봐 두려워하는 이 말더듬이였던 그래서 도리어 더 언어에 천착했던 작가는 그 '죽음'이라는 간명한 화두 밑에 모든 것들을 허무화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어차피 죽는 우리들은 왜 그것을 항상 의식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대척점에 놓인 삶이 지속되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분명한 명제를 가끔씩 놓쳐야 하고 이따금씩 이러한 글쟁이들 앞에서 또 그 잊어버렸던 슬픈, 어쩌면 다행인 마침표를 환기한다.

 

이 문학적 자서전은 문학에 대해 별 기대가 없는 아니,이제는 그 기대의 몸짓조차 허무로 환원해 버리는 편린들의 무작위적 조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를 흔들었던 수많은 작가들의 경구들이 편재하고 이제 정말 솔직히 삶과 문학의 기만을 응시하는 명민한 작가들의 조언을 적극 차용한 저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이비드 실즈는 독자들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그에게 있어 조지 부시는 그의 부정적 기질들이 구현된 존재이고 몰락한 타이거 우즈는 그 모습에서 은근히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시기심의 가운데에 있다. 대학 시절 그가 벌인 그 어설픈 연애들은 가장 못난 구석까지 가감없이 머리를 들이밀고 조이스의 단편이 훌륭한 것은 알지만 이제 그 비슷한 것을 쓰는 데에 더이상 흥미가 없음을 고백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무언가 짜임새 있고 유의미한 척 하는 것에 대놓고 역겨움을 표시하는 오십대 후반의 "우리 자기 자신에게만 쌓이게 되는" 그 어떤 나이를 넘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시각이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정말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빠져나가는 길은 더 깊이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것은 아찔하고도 홀가분한 일이다.

-p.112

 

열네 살 아들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으로 읽다니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고 말한 어머니를 둔 그런 사람은 언제나 드잡이해도 백전백패할 것 같던 아버지와의 애증으로 '죽음'을 '존재'를 응시했었다. 이제 그는 삶을 향해, 그 삶의 환각을 향해 그리고 그 삶의 구조화를 꿈꾸는 문학을 향해 냉소적으로 고개를 흔든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망과 허무를 마주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더욱 의기소침해지게 된다. 거짓말을 과장을 허구를 연기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그래서 건조하지만 무게가 있다. 당자에게는 아찔하고도 홀가분한 일이 때로는 청자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는 다음에 또 그와 만날 날을 꿈꾸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존재의 방점'이 있기 때문에. 일말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외면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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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이 궁금했는데 더 궁금해지네요. 다음주에 주문할 때는 반드시 이 책을 넣어야 겠어요.

blanca 2014-12-13 11:4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은 뭐랄까, 기존의 책에 관련된 책과는 조금 달랐어요. 어떤 고정된 틀이나 선입견을 해체한다고나 할까요, 그 시선이 좀 불편할 수는 있는데 흥미로웠습니다.

icaru 2014-12-1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게도 주문한 이 책이 도착했는데요~ 화제의 글에 님 글이 떠서 득달같이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혼자만의 책 읽는 시간과 같은 맥락의 책일거라고 짐작했는데,,, 음.. 정면으로 삶을 응시할 거 같은,, 바람부는 적막한 사막에서 존재의 실체와 맞닥뜨리는 느낌 들거 같네요..헛,,, 혼자 멀리갔나요?? ㅎ

blanca 2014-12-13 11: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icaru님은 이미 시작하셨겠지요? 저보다 더 저자와 잘 소통하실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제가 기대했거나 예상한 방향과 좀 어긋나서 중간부터는 좀 헤매고 그랬답니다. 저는 아직 어떤 진실이나 실체와 마주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나 봐요.

Jeanne_Hebuterne 2014-12-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늘 가장 밖으로 오픈된 것이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how are you?` 같은 것이오.

그럴 때는 배운 대로 fine, thank you. 가 나와야 하는데 살아있는 게, 꼭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블랑카님의 다가서기 쉬운 길잡이를 접하고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달달 외운 그 공식과도 같은 대화문이 떠올라요. 데이비드 실즈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 이어 이번에도 이러한 진리를 다시 끄집어들고 나왔군요. 늘 그랬듯이, 그것이 가장 자명하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blanca 2014-12-15 19:48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영어권에서 무슨 인사처럼 상대 기분을 알아내려 하는 게 참 허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기분 안 좋다고 이야기할 것도 아닌데 ^^;; 말이에요. 아, 누구나 죽는다,는 게 너무나 확실한 명제지만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 있을까요? 너무 선뜩해요. 나이가 들수록 삶에 생명에 자꾸 연연하게 되네요. 차라리 어렸을 때는 그 명제를 더 겁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이제 이런 함박눈도 영원히 맞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맞으면 더 기쁘기도 하고 더 슬프기도 해요, 쟌느님.
 
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지음, 윤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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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를 나왔지만 교사가 되지 않았다. 아니 되지 못했다. 대학 4학년 때 나간 교생 실습, 교실에서 아이들은 내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기도 했고 나의 예상과 흡사한 모습이기도 했다. 가장 지척에서 가장 오랫동안 볼 수 있었던 '교사'라는 직업과는 영영 멀어져 버렸다.

 

아이를 낳았다. 우연히 가장 친하게 된 동생은 열정적인 교사였다. 아이를 함께 키우며 우리는 서로 많은 것들을 주고 받았다. 나는 그녀가 점점 부러웠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더욱더 교실에서의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된 그녀의 모습은 내가 가지 않았던, 못했던 길에서 더욱 빛났다. 교권은 무너지고 교실은 붕괴되었다,고 연일 떠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교사들은 아이들 곁에서 죽고 아이들을 껴안았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곳에서 가장 위대한 일도 이루어지는 법인 것같다.

 

1학년, 2학년, 3학년. 항상 오십 명을 넘었던 학생. 선생님들은 지쳐 있었고 아이들을 하나 하나 개별적으로 쓰다듬어 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도무지 수업 내용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칠판에 판서한 글씨들이 희미해 제대로 필기해 집에 가서 짚어 볼 도리가 없었다. 나는 나 하나로 우주 전체를 채울 것도 같은데 저기 저 높은 곳에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선생님의 눈길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종일 책상에 엎드려 울어도 누구하나 물어봐 주지 않았다. 나의 초등학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고 진행되었다. 물론 바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 열등생이 되는 것이 얼마나 춥고 초라하고 가슴 아픈 일인지 너무 일찍 알아버려 후에는 열심히 노력하여 성적을 올리고 친구들과 교감하며 즐겁게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이 들어 가며 돌아오는 기억은 전반전의 것인가 보다. 후반전을 잘 뛰어도 전반전에 벤치에서 몸을 구부리고 앉아 지명을 기다리던 서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는 '교사'는 나에게 다소 음울하고 차갑고 슬픈 울림을 가진다.

 

백 세를 바라보는 엄마 앞에서 교사로 수십 년을 재직하고 베스트셀러를 펴 낸 유명 작가는 아직 여전히 열등생이다. 세 명의 형과는 달리 연산, 철자법에서 헤매고 꼴찌와 가까웠던 아이의 기억은 인생 중후반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교란 속에서 흔들리는 노모 앞에서 혼자 자립할 능력도 없어 보이는 걱정거리다. 다니엘 페낙,은 '학교의 슬픔' 그 자체다. 집안에서 말썽을 일으켜 간 기숙학교에서 그는 진짜 교사를 만난다. 그는 젊고 열정적인 교사가 아니라 교직 말년을 아이들에게 바친 노교사였다. 그는 다니엘의 내면의 이야기꾼 기질을 알아본다. 일주일에 한장씩 소설을 써서 한 학기에 소설 한 편을 완성하게 한 국어 선생님은 다니엘을 누군가의 앞에서 진짜 학생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이는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사라질 때까지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여 자신과 같은 열등생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뭐라도 해야지 '결코 아무것도'라는 말은 '결코' 없다는 것, 나와 내 동료들은 절대 그들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이를 수 있게 하려면 노력이라는 말의 개념을 다시 가르쳐주고, 결과적으로 고독과 침묵의 맛을 되찾아주고, 무엇보다 시간을, 즉 권태를 제어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p.206

 

다니엘 페낙이 직접 아이들에게 텍스트를 암송하게 하고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재미있는 내용으로 받아쓰기를 정기적으로 테스트하며 한 명씩 한 명씩 손을 잡고 언어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재미를 알게 하는 이야기는 무척 유쾌하고 역동적이다. 반항하는 아이, 비아냥거리는 아이들 모두를 뒷전으로 밀어내지 않고 함께 부둥켜 안고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조금씩 나아가려는 글 쓰는 선생님의 모습은 지나친 이상화라는 비난을 염두에 둔 듯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솔하고 아름답다. 무엇보다 '그'는 현대에서 학생의 모습을 부모의 부에 기생하는 자본주의 소비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에 분노한다. 오늘날의 젊은 교사들이 이러한 고객들로 이루어진 학급을 대면하는 일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그의 지적은 날카로운 것이다. 익명으로 떠오른 아이들을 지칭한 것도 아이들이 입은 옷과 신발의 메이커였던 슬픈 현실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상품을 만들어 순진한 열망을 소비욕으로 치환시킨 어른들에게 의당 가해져야 하는 비난의 몫이기도 하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다섯 종류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제 나라 안에서 고객이 된 아이, 다른 하늘 아래서 생산자가 된 아이, 다른 곳에서 군인이 된 아이, 매춘부가 된 아이, 그리고 지하철 광고판의 죽어가는 아이. 굶주리고 체념한 그 아이의 모습이 정기적으로 우리의 권태로운 시선에 걸려든다.

 다섯 모두 아이들이다.

 다섯 모두 도구화된 아이들.

-p.348

 

우리는 '아이였을 때'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아이들을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도구화한다. 성장하여 어른이 될 때까지 아이들은 너무나 무기력하다. 어른의 말에 반항한다고 하면서 정작 나름의 방법으로 순종하고 이 시간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다니엘 페낙이 부끄럽게 덧붙인 사랑. 너무나 진부하지만 그래서 투박한 진실인 사랑. 그리고 언제나 내민 손을 잡아주는 일. 심지어 우리의 손을 뿌리쳐도 포기하지 않는 일. 왜냐하면 주머니에 넣은 그 아이의 손은 사실 잡아 줄 누군가만을 기다리는 중이므로. 이것은 바로 나에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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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6-26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토닥토닥...그랬었구나....교사가 되셨어도 아이들을 참 따뜻하게 보듬어 안았을텐데.....
가끔 학창시절로 돌아가보면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혼난 기억, 친구들과 싸웠던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나더라구요. 나름 그 당시에 고민을 많이 해서 그런가? ㅎㅎ
다섯 종류의 아이들....맘 아픈 현실입니다.

blanca 2014-06-26 18:53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저는 교사가 되지 않았던 게 아이들 입장에서 다행이었을 거라고 ^^;;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다시 생각이 바뀌어 노력하는 좋은 교사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도 가져 봅니다. 저는 사실 가장 자주 떠오르는 기억은 중2 언저리인 것 같아요. 그 때 친구들이 제일 강렬하게 남아서요.

transient-guest 2014-07-09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교가 무척 싫었어요. 국민학교도 중학교도 청소하고 매맞고 시달린 기억, 그리고 집-학교를 오가는데 하루에 평균 2-3시간을 쓴 기억밖에 없어요. 그나마 고등학교부터는 미국에서 다녔는데, 일단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것, 때리지 않는것, 그리고 3시면 학교수업이 모두 끝난다는게 초기의 어려움을 잊게 했지요. 그리고 처음에 와서는 토-일 쉬는게 그냥 매우 연휴 같더라구요.ㅎㅎ

blanca 2014-07-09 14:01   좋아요 0 | URL
rransient님 댓글 읽다 웃음이 나왔어요^^;; 청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고 여러가지로 아직 '학교'가 가지는 문제는 항상 불거지고 결핍은 따라오고. 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또 내일이 나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요. 저는 수업 시간에 많이 졸았던 기억, 그리고 여중, 여고를 다녀 아이들이랑 연예인 이야기로 꽃피웠던 기억, 학교 앞 매점에서 열심히 군것질하던 기억 같은 게 많이 남아요.

transient-guest 2014-07-10 01:30   좋아요 0 | URL
지인들 중에 새로 설립된 사립학교에 1기생으로 들어간 이는 학교를 지어가면서 다녔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1학년 교사만 짓고 학생을 받아서 나머지 공사를 그해에 진행하고, 2학년으로 가면, 다시 3학년 교사를 짓는 식으로 부실하게 운영한 것이겠지요.
 
주거 정리 해부도감 - 정리수납의 비밀을 건축의 각도로 해부함으로써 안락한 삶을 짓다 해부도감 시리즈
스즈키 노부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더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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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시절 갑자기  여러 가지 일들이 함께 몰아닥칠 때 효율적으로 그 일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아직 서툴렀던 나는 전화를 받다 상사에게 불려가 일감을 받고 또 손님을 받다 우왕좌왕 하다 외근까지 나가고 나면 마치 세네 명은 일하는 것 같은 지저분한 책상을 잔해처럼 뒤로 했다. 그런데 유독 책상이 얼음알 처럼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대체로 그 사람들은 '일 잘한다'는 평까지 받고는 했다. 결국 모든 능력은 교차하는 것일까, 하는 부러움에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 종종 그들의 책상을 탐방했다. 말 그대로 '각 잡힌 자리'였다. 저 사람들은 타고난 걸까? 그냥 그때 그때 정리를 잘 하는 걸까? 아니면 몰아서 하는 걸까?

 

아이를 낳고 정리에 대한 능력은 본격적으로 시험을 받게 된다. 게다가 연령대가 층이 지면 아직 정리하지 못한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을 이유가 너무 많아진다. 그러니 '버리기'로 정리를 시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큰 아이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처분해야 하는 유아 블럭이 둘째 아이는 지금 당장 가지고 놀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가지고 놀 가능성이 다분하니, 이런 식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물이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정당해 보인다. 게다가 현관! 아이 자전거, 아기 유모차, 미처 정리하지 못한 택배, 신발들. 방문객들은 오른팔로 유모차 손잡이를 밀어야 우리 집에 입성할 수 있다. 내 공간을 이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절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게다가 '정리'는 아주  묘하게 인간의 자괴감을 자극한다.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내 공간조차 안전하게 확보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쉰다'는 개념은 이미 '정리된 곳'을 전제하기에 또다른 노동이 앞서야 한다.

 

그러니 정리에 대한 필요와 욕구가 생길 때마다 나는 마치 정리를 하듯 열심히도 정리책을 읽는다. 그런데 최근들어 나오는 대부분의 정리서적은 '버린다'는 개념과 맞물려 있다. 막상 그 앞에서 심히 망설여야 하는 사람은 또다른 스트레스 섞인 과제를 부여받는다. 물론 이러한 지침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쌓아놓기'에만 충실한 사람은 반드시 귓등으로라도 한번쯤은 들어야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잘 버릴 수 없는 사람은 또다른 난관에 봉착한다. 버릴 수 없는데 어쩌지? 또 다 내 잘못인가, 하는.

 

이 책은 백오십 페이지도 안 된다. 게다가 일러스트들이 많이 삽입되어 있어 다 읽어내는 데에 두세 시간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정리수납의 묘약을 던져 주는 것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저자는 정리의 달인인 주부도 아니고 전문적인 정리 수납 컨설턴트도 아닌 좀 뜬금없는 건축가다. 집을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정리 이야기라. 그런데 그의 시각에서 보는 '정리'와 '집'에 대한 이야기가 꽤 참신하고 청량하다. 소방법 때문에 복도에 유모차를 놓는 것이 꺼려져 현관에 들여놓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나에 대한 변명거리도 던져준다. 이는 현관을 단순히 손님이 들어오는 공간이 아닌 항구처럼 여러 물건들을 적재하고 수납하는 공간으로 겸용 사용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설계에서 기본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또한 무리한 확장으로 흙이 묻어 집안에 들여놓기 힘든 것들의 자리를 앗아가는 대신 미리 집을 짓기 전부터 봉당이나 달개집을 염두에 두는 통찰에 대한 이야기. 즉 처음부터 애초부터 우리가 살며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에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부터 '정리'와 만나자는 주장이다. 전창이 주는 눈부신 햇살이 벽을 생략해 각종 수납 공간을 파먹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나 빨래를 건조할 실내 공간, 부엌의 각종 쓰레기가 과도기적으로 쉬고 갈 공간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아일랜드 식탁이 가지는 단점 등에 대한 예리한 지적 등은 대단히 실용적이다.

 

물론 이미 부족한 공간, 이미 없는 자리에서 떠밀려난 것들에 대한 해결책은 아쉽다. 하지만 지나치게 정리 강박으로 좀 과도한 죄책감을 양산해 내는 데에 물린 사람이라면, 혹 새로 집을 짓거나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면 흥미롭게 금방 읽어내고 소장할 만한 책이다.

 

아기 유모차는 여전히 현관에 떡 버티고 있지만. 그 모습이 좀 덜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건 이 책의 미덕일까, 하는.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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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2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2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 포스터.

 

움베르트 에코와 오르한 파묵, 폴 오스터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다. 하루키는 소설을 제외한 에세이, 이언 매큐언은 <속죄>, 밀란 쿤데라는 <농담>,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 카버는 <대성당>, 마르케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 헤밍웨이는 제대로 다 읽은 것인지 기억 안 나는 대부분의 작품들, 윌리엄 포크너는 <내가 누워 죽어 있을 때>, 포스터는 <전망 좋은 방>의 앞부분 정도.

 

그러나 '완강한 무관심'이라는 전부를 다 아우르려는 만용을 경계하는 신선한 개념과 글쓰기를 기본적으로 '사랑의 행위'라고 보는 에코의 "저는 모든 것을 후회해요"라는 고백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는 이야기다. 작품을 다 쓰고도 다시 타자기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손끝으로 체감하는 폴 오스터가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다음에 작가가 되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는 "인생은 너무도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다."는 덧붙임으로 더없이 투명해진다. 그래, 분명 내가 느끼는 것들, 하지만 이야기하여질 수 없고 언어로 담아낼 수 없었던 것들을 명징하게 눈 앞으로 불러오는 그의 재능은 그의 책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파리 리뷰 인터뷰'의 강력한 매력이다.

 

모든 작가는 믿을 만한 독자가 있어야 합니다. <중략> 그렇지만 독자는 솔직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독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자격입니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거짓으로 위로해서도 안 되며, 칭찬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 경우에는 절대로 칭찬을 해서도 안 됩니다.

-P.181 

폴 오스터의 이야기다. 이것이 그 인터뷰 자체의 질과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모든 작가와의 인터뷰가 고른 흥미와 감동과 몰입을 자아낸 것은 아니다. 대단히 기대했던 필립 로스는 아직 <에브리맨>을 쓰기 전이라 그런지 도통 읽어보지 못한 작품과 캐릭터들에 집중한 이야기가 나로서는 노년의 대작가가 늙음과 죽음을 그렇게도 생생하고 포괄적으로 그려 낸 연유를 알아내지 못해 아쉬웠고 밀란 쿤데라의 작품의 기법은 평범한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어렵게 느껴져 알아듣는 데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왜 카버가 단편작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삶 앞에서 그가 느꼈던 무기력함과 고단함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럼에도 그가 사치라고 생각했던 예술을 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 지를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대목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답고 슬픈 단편 같았다. 나는 정말 레이먼드 카버가 이런지 몰랐다. 정말 몰랐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살아남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들을 먹이고, 동시에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쓰레기 같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글을 쓰려고 애쓰면서 제가 빨리 끝낼 수 있는 걸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한 권에 2~3년이 걸리는 소설을 쓸 방법이 없었어요. <중략> 그래서 단편이나 시를 썼지요. 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 <중략>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언제나 한 발만 내딛으면 파산이 기다리고 있었어요.-p.323 

회복된 알코올 의존자라 자신을 명명하는 레이먼드 카버는 열여덟에 결혼해 열아홉에 아빠가 되었다. 그 부부에게 청춘이라고 할 게 없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전설로 남은 위대한 단편 작가의 실제 삶은 얼마나 처절했는 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러니 그는 삶을 제대로 알았다. 겉만 핥고 남는 시간에 여유롭게 써대는 그런 긴 이야기 대신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도 이상과 꿈에 좌절당하는 현실의 속살을 절절하게 알기에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그의 표현을 빌자면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은 소설의 일반적인 정의가 아니라 반드시 카버의 것, 그의 작품에 적용되는 찬사일 것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르케스는 기대 이상으로 대단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다섯 권의 책을 내고도 단 한 권의 인세도 받지 못했다는 이 작가는 노벨상은 자신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단었했는데 노벨상을 결국 받고야 말았다는 점에서 심심한 위로를 표해야 할 것 같다. 계속해서 작가에게 명성이 가져오는 해악과 불편함에 대하여 역설하는 마르케스는 그것이 나쁜  고독을 만들기 때문에 권력자의 고독과 닮아 있다고 덧붙인다. 게다가 소설을 읽는 대신, 여성 잡지와 가십을 읽느라 바쁘다는 너스레와 정말로 유일하게 평생 동안 후회하는 일이 딸이 없다는 점이라는 고백은 이 작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아쉬울 정도로 유쾌할 것 같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아주 귀엽고 유쾌한 사람인 것 같다.

 

노벨상을 받기 전의 마르케스와 아직 <에브리맨>을 쓰기 전의 필립 로스는, 그리고 세상의 온갖 찬사를 받기 전의 레이먼드 카버는 마치 결말을 다 알고 있는데 입에 침을 축이며 그것을 머금고 있는 알고 있는 자의 여유를 두둑하게 하는 묘한 이끌림이다. 한편 그러기 전의 그들이 그런 후의 그들과 동일하게 이해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과 아쉬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백이다.

 

솔직한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폴 오스터의 말을 유념하고. 그럼에도 이 책은 칭찬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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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2-0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케스가 귀엽고 유쾌한 사람이었군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초등 두 아이의 엄마이며 학원 강사인 직장맘의 육아 애환을 듣는데 눈물 나더라구요. 레이먼드 카버........에구 딱해라.

blanca 2014-02-06 22:11   좋아요 0 | URL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고백하는 모습이 사실 공식적인 인터뷰 자리에서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작가가. 읽다가 가슴이 참 아프더라고요. 저는 막연히 알코올 중독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왜 술에 빠지게 되었는 지 현실적인 고통, 좌절로 막다른 골목에 빠진 결과였다는 것을 (물론 그게 잘못된 거라는 것을 알긴 하지만) 듣고 나니 그런 상황에서 빚어낸 그의 작품들이 더 빛나게 느껴졌어요.

페크pek0501 2014-02-0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벌써 이 책을 읽으셨군요.
신문의 신간 안내 면에서 이 책을 보고 관심 가서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던 책이에요. ^^

blanca 2014-02-06 22:11   좋아요 0 | URL
저도 관심만 가지다가 읽게 되었는데 아주 너덜너덜해졌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어요, 페크님.

mira 2014-02-0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고뇌들이 제대로 나와있네요. 읽고 싶어지는군요

blanca 2014-02-06 22:13   좋아요 0 | URL
mira-da님, 사실 작가들의 소설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저는 이러한 사적인 고백들과 어우러진 인터뷰가 참 흥미롭기도 하고 그 작가의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도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정말 작품 얘기 위주로만 한 인터뷰도 있어요. 밀란 쿤데라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저는 그래서 좀 오히려 섭섭하더라고요.^^;

transient-guest 2014-02-07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솔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팬심이랄까, 그저 그 작가의 글은 무조건 읽고만 싶고,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르케스의 작품은 두 개를 보았는데 상대적으로 더 유명한 백년 동안의 고독보다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더 잔잔한 맛이 느껴져 좋아합니다.

blanca 2014-02-07 13: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안 그래도 관심이 있었는데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솔직히 <백년 동안의 고독>이 저의 취향이 아니었던 터라서요^^;;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몰입이 좀 힘들었어요. 레이먼드 카버는 너무 좋아하는 작가인데 역시 인터뷰 내용 듣고 나니 더욱 더. 정말 정직하게 솔직한 사람 같았어요. 사실 소설가가 자신의 삶 그 자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면 그는 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치부를 고백하는 모습이 진정성이 있어 보였어요.

감은빛 2014-02-2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의 인터뷰네요.
재밌을 것 같아요.
움베르트 에코와 오르한 파묵은 읽어봤고,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은 책장에 방치중이예요.
헤밍웨이는 분명 읽었을 것 같은데, 막상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네요.
나머지 작가들은 확실히 읽은 기억이 없네요.

이 글을 읽으니, 이 책을 시작으로 저 작가들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 읽고 싶어져요.

blanca 2014-03-01 08:0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재미있어요. 에코와 파묵을 읽어보셨다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저도 <백년 동안의 고독>은 힘겹게 읽었어요^^;;

앤의다락방 2014-12-23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면 아마 주문한 책들중에 이 책도 섞여 배달 됩니다~ 읽고 싶은책이었거든요~ 이 리뷰를 보니 더욱 기대되요^^

blanca 2014-12-26 07:34   좋아요 0 | URL
댓글이 너무 늦었지요? 지금쯤 이미 다 읽으셨을까요?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보내셨겠죠!

에이바 2015-06-1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작가란 무엇인가` 1권이 2014년에 나왔었군요. 인터뷰는 더 오래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깔끔했다고 느낀 인터뷰는 포크너였고요. 카버와 오스터 인터뷰는 작가의 인성이 보이는 느낌이었어요. 따뜻하고 진솔하고요... 전 파묵 인터뷰가 별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