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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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되도록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죽음을 더이상 추상적 관념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의 유한한 삶을 거의 매일 인식한다. 나보다 어리거나 나보다 나이 든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음을 의식한다. 몇 년 사이 실제 그런 일들이 있었다. 유한함을 알기에 이 생이 더 소중하다는 식의 논리에 별로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죽음은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다. 나는 더이상 지금 이 순간 감각했던 것들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다. 영원할 거라 생각하고 추구했던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무화된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그러고도 세상은 눈 깜짝 하나 안 하고 제대로 잘 돌아갈 것이다라는 점이다. 잊고 나아간다. 이러한 명확하고 냉정한 진실에 인간은 그리 쉽게 포섭되지 않도록 설계된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음에 관련한 여느 책들과 조금 다르다. 저자 레이첼 클라크는 그 자신이 영국의 호스피스 의사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로 생의 연장도 힘겹게 시도하지 않고 그 패배를, 마지막을 인정하고 최대한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평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완화의료 전문가다. 그러니 그녀는 지척에서 세상의 온갖 죽음을 목도할 수밖에 없다. 삶의 모습처럼 죽음도 어떤 큰 패턴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로를 그린다. 나이가 어리든 젊든 심지어 백 살 가까이 되어도 죽음은 생에서 많은 것들을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앗아간다. 흔히 이 과정은 잔인하고 고통스럽고 악몽 같을 줄만 알았다. 레이첼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생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죽음은 언제나 예정된 승리를 가지고 포복했지만 그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까지 의식하고 누리는 관계가 주는 위로를 누리는 장면들은 경이로웠다. 그곳에서는 소위 생에서 이룬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칭송되는 것들은 모두 사소한 것들로 치부되었고 진정 실재에 가닿을 수 있는 농축된 응시의 시간이 왔다. 그녀가 나누는 에피소드들은 그러한 것들이다.


어느 노인 환자가 마지막으로 레이첼에게 "자네가 모르는 게 있어. 세상 누구도 모르는 게 있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존재에 얽힌 마지막 비밀을 고백하고 편안히 눈을 감는 장면, 불편하고 노쇠한 몸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보기 위해 몇 번이고 버스를 갈아타며 오는 할아버지가 자신이 떠나고도 챙겨먹을 수 있도록 온갖 음식을 냉동고에 꽈꽉 채워놓은 할머니. 이 공간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우리 인간"이 레이첼을 늘 감동시켜 눈물짓게 했다. 죽음은 인간의 무기력함과 왜소함과 한계를 노출시키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지적으로 서로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떠나 보내고 떠나려는 연결에 대한 감동적인 소망을 보여줬다. 


하지만 레이첼 본인의 아버지의 최후에 이르러서는 그녀도 의사 가운을 벗고 아버지와의 작별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딸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암과의 투병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마지막 산행, 마지막 음악회, 마지막 운전 등 그토록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모든 일상의 행위들을 리추얼처럼 절절하게 받아들인다. 마지막이기에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그러한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의지를 발휘하며 작별의 방식을 택할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부인하며 몸부림치는 게 죽음의 일상적 풍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큰 위로와 메시지를 동시에 준다. 


애도는 사랑의 대가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두려워 사랑조차 시작하지 않는 것은 죽음이 두려워 태어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순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허용된 자유가 아니고 가치로운 일도 아니다. 고통스럽지만 그 와중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죽음의 별에서 일하는 저자의 통찰력이 스민 아름다운 문장들을 유려하게 번역한 번역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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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0-1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인지 딱 알아보게 리뷰를 잘 쓰셨습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났는데도 어젯밤 꿈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또 슬펐답니다.

blanca 2021-10-13 15:40   좋아요 2 | URL
페크님 그러셨군요. 저도 꿈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만나면 꿈에서 다 잊고 만나는 게 아니라 현실에 없다는 생각을 꼭 하게 되어 너무 슬프더라고요. 사랑의 대가가 애도라는 말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너무 아파요.

그레이스 2021-11-05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사 리뷰를 읽어보네요 ㅠ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blanca 2021-11-06 08:48   좋아요 1 | URL
아, 이 책 기대보다 훨씬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11-05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1-11-06 08: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초딩 2021-11-0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멋지세요~

blanca 2021-11-09 10: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초딩님.^^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어나더커버)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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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딸이 어릴 때 감정 동화책을 읽어주다 정작 내가 울어버린 적이 있다. 슬픔을 상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한 책에서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도 되고 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마음껏 해도 괜찮다는 처방이 실린 책에서 나는 늦은 치유를 경험했다. 그때는 절대 그 사람을 떠올려서도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된다고 했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과 성장으로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렵고 고차원적인 이야기 속에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이 책은 그렇고 그런 책으로 축소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기대 이상으로 거대하고 심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최혜진은 작가들의 성장을 묻는다. 그 성장은 결국 그들의 삶의 이야기로 그것은 다시 그들의 창작으로 뻗어 나가며 한 사람의 삶의 지도를 만든다. 제대로 된 질문과 그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타난 창작자들의 교감의 향연은 놀랍다. 여느 철학서 못지 않게 그것은 진지한 삶 속의 내밀한 질문들과 탐구, 그에 대한 천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림책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 누구라도 이 인터뷰 내용들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갈 수밖에 없다. 


"시도해보고, 감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배우고, 다시 해보면서 변화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은 거짓말이에요. 그 말 좀 믿지 마세요.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산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난관을 통과하는 과정이고, 우리는 언제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수정하고 진화할 수 있습니다."

-클로드 퐁티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프랑스의 국민 그림책 작가 클로드 퐁티는 대단히 불행한 유년 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유년에 함몰되는 대신 그것을 딛고 자신이 잃어버린 유년의 꿈들과 자유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인간의 회복 탄력성의 산 증인이 바로 그다. 슬프고 외로웠던 유년을 통과한 사람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동화들이 눈부시다. 인간이 대단한 점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절망 속에 고꾸라지는 사람도 목격하지만 그곳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때로 목격한다.


부모로서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그 어떤 육아서보다 실질적인 조언이 된다. 작가 키티 크라우더의 "우선은 엄마 이전에 자기만의 삶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아이를 삶의 중심에 놓고 이 사회가 제시한 경쟁 사회의 규격에 맞게 아이를 통제하고 채근하는 우리나라의 현 교육 과정에서의 학부모로서의 삶과는 다른 이야기다. 엄마가 엄마 본위의 삶을 살 때 우리는 모성을 의심하도록 키워졌다. 우리는 우리가 열망했던 자본주의의 위계의 사다리 위로 아이를 올려놓는 것이 가장 잘 성취된 양육과 교육의 최종 도착지인냥 간주해 왔다. 작가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우리의 열망과 대치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며 배워나가도록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본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생경하게 들리지만 그런 여건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바람직한 부모 자녀 관계는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같아야 합니다. 지하수로 연결되어 소통은 하지만 서로의 생태계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하죠. 

-클로드 퐁티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모든 인간 관계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 같다.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기억하고 싶은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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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08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1-10-08 19: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라요.

새파랑 2021-10-08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축하드려요 ^^

blanca 2021-10-08 19:44   좋아요 2 | URL
잊지 않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프레이야 2021-10-12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블랑카 님 리뷰만큼이나 좋은 비유라고 생각이 되네요.
분홍공주는 많이 컸겠어요. ^^

blanca 2021-10-13 07:5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이제 그 무서운 중2랍니다. 세월이 정말 빠르죠!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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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뜻한다."는 저자 크리스티안 보뱅의 이야기는 어쩌면 자신의 책을 설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이 프랑스의 시인이 쓴 작은 책, <작은 파티 드레스>는 위대하다. 


책을 읽는다는 일, 아이를 키운다는 일,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쓴다는 일, 이러한 일들을 시인의 언어로 해체하여 재해석, 재조립하여 고갱이만 남기고 나면 우리는 잊어버렸던 잃어버렸던 정작 소중했던 것들을 대면하게 된다. 진부하지 않고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독자와 밀착되는 지점을 작가는 기민하게 간파하고 인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쓸모로 귀결되는 세계에서 비로소 우리는 무용하고 작고 잊혀져 가는 일들의 가치를 깨닫는다. 무엇보다 읽고 쓰는 일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고 살고 죽는 이야기. 유년의 여름에서 황량한 중장년, 노년의 세계로 건너가는 이야기. 그 모든 잔해 속에서도 빛을 희구하고 마침내 찾아내는 이야기.


죽음 속으로 난 길은 갑자기 좁아져 지나가려면 모든 걸 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은 우리의 소유물을 사방에 흩뿌리며 우리가 이 종말에 대비하게끔 한다. 마당을 적시고 지나가는 한 차례의 빛줄기 같다. 우리 안엔 더없이 생생한 고독이 남는다. 조용한 자각이다. 유년기가 저무는 여름 끝 무렵의, 부드러운 한 줄기 빛이다.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안 보뱅


사랑이 결국 우리가 죽음을 대비하게끔 우리가 가진 모든 걸 내버리는 연습이라는 발견이 놀랍다. 그리고 가까스로 이해된다. 왜 그리 사랑이 어렵고 고통스러운지. 그 과정에서 가까스로 얻는 달콤함과 충일함의 대가가 그리도 대단한지. 그것은 생의 극치가 아니라 생의 종말의 작은 은유였다. 상대를 사랑하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지키겠다는 건 거대한 도박이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나를 죽이는 것과도 다르다. 그것은 억지로 일부러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일이 아니다. 소멸과 사랑은 닮았다. 어쩔 수 없이 어느 지점에서 타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절망스러운 포기는 아니다. 그것은 조용한 자각의 빛이다. 빛은 찰나에 영원을 담아 사라지더라도 절대적인 무로 축소되지 않는다. 위대한 비밀의 단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위대한 절망의 산문시다. 그것이 체념이 아니라 어떤 합일, 능동적인 수긍의 지점에 가 닿은 것은 작가의 사유가 농축된 빛나는 시어들을 닮은 언어의 태피스트리 때문일 것이다. 무심코 들어간 거리의 서점에서 이 책을 들고 나왔을 때 더위는 절정이었고 빛에 눈이 부셨다. 마스크로 답답하고 더운 날들, 파티는커녕 친구와의 오랜만의 약속도 위태위태한 나날들 속에서 '작은 파티 드레스'를 선물 받은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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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10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lanca 2021-09-11 08:5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9-10 1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

blanca 2021-09-11 08:56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감사해요.

오후즈음 2021-09-10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넘 읽고 싶은 책이었어요. 축하드려요~^^

blanca 2021-09-11 08:57   좋아요 0 | URL
오후즈음님, 이 책 저는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답니다. 추천드려요. 감사해요.

초딩 2021-09-1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문득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연상되는 작품은 어떤 배경이나 분위기일 수도 있고 문체일 수도 있고 이야기 그 자체의 얼개일 수도 있다. 김병운의 <한밤에 두고 온 것>은 연기자이자 퀴어인 '내'가 친구 대신 맡은 희곡 낭독 수업에서 만난 오십대 여성과 소통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다. 그 지점은 세상의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시선에 대한 것이다. 화자는 그녀의 과거 얘기를 통해 자신의 현재에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 세대를 가로질러 나눈 우정이 결국 성장을 유도하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뒤로 밀어놓고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얼마나 소모적인지를 깨닫는 시점이 온다. 그것의 대가는 결국 삶 그 자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주제는 다를지라도 세대와 성별을 가로지르는 소통이 소위 어떤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또 있다. 청년과 노인이고 수업은 도서관의 '시 윤독 모임'이었다. 어쩌면 가장 김연수다운 서정성이 그의 청춘과 만나 가장 만개했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스물다섯의 화자가 그 모임에서 만나게 된 희선씨와 암으로 요절한 그녀의 제자의 마지막 소원, 가닿지 못했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는 이야기는 여전히 청량하다. 삼십 대 초반에 읽었을 때와 지금 읽을 때의 느낌이 또 사뭇 다르지만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공명하며 작가의 저력을 실감한다. 마흔세살이 끊임없이 느끼게 되는 기시감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우리가 기꺼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 어떤 것들은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도 그 의미를 포착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천착이 현실에 기반한 것이라면 세월의 마모를 기꺼이 떨쳐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두 작가의 삶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따뜻한 시선이 와닿는다. 그 와중에 봄이 가고 초여름이 걸어온다. 이제는 알겠다. 이러한 나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할머니가 되어 추억할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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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묘한 책이다. 에세이집인데 우연의 빈도나 의미로의 집약도가 너무 높다. 마치 단편소설처럼. 이를테면 어머니의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의 우연한 조우, 아버지의 죽은 전처의 오빠집에 가서 며칠 묵는 유년기의 이야기, 어린 시절 바쁜 부모 대신 자신을 돌봐준 고모의 목조 연립주택에서 독거 노인의 사체를 발견한 일과 우연찮게 어느 한 남자의 자살 과정에 개입하게 되는 이야기 등. 하나하나가 다 극적이고 밀도가 높다. 

















물론 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때로 극적이다. 심지어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이 펼쳐지기도 한다. 누구나 정리되고 잔잔하고 건전한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쉽게 수습하기 어려운 일들이 즐비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경우 또한 잘 없다. 생에서 펼쳐지는 일들의 가장 잔인한 점은 무작위적이고 때로 불합리하고 심지어 무의미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미야모토 테루의 과거의 기억들은 그러나 편린처럼 흩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예술적인 경지, 생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이것이 소설가의 시선을 통과한 이야기라 그런 것인지 글쓰기를 위한 어떤 첨가나 삭제, 인위적인 의미 부여가 부연되어 일어난 일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 조금 혼란스러웠다. 좋았는데 너무 좋아서 의심이 갔다고나 할까. 모든 걸 다 실제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 의문은 후기에서 풀렸다. 미야모토 테루 자신이 시원하게 고백하고 있다. 


'소설로 쓰면 지나치게 소설 같아지는' 추억이나 경험 등의 소재를 쓰자고 마음 먹었다. <중략> 이 이상 쓰면 창작의 영역이다 싶은 아슬아슬한 분수령 언저리를 서성이며 에세이라는 장르를 뛰어넘겠다는 계획을 관찰할 수 있었다.

-미야모토 테루 <생의 실루엣>


그의 이야기들 모두를 과장된 자기 추억으로 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독자적인 아름다움과 공명하는 울림이 있다. 산만하게 흩어지거나 공허하지 않다. 공황장애로 고생하다 소설가가 된 이야기, 어머니가 실패한 결혼으로 남기고 간  아버지가 다른 형을 나이가 훌쩍 들어 몰래 찾아가 이름을 크게 부른 후 도망간 이야기, 미야모토 테루의 아버지가 일하는 중국집 종업원에게 속아 가짜 비취 반지를 사게 된 고모가 한번 더 크게 속게 되는 에피소드, 어린 시절 동네 대학생 형이 데려가 준 강에서 형이 구해준 여학생이 우연히 함꼐 찍힌 사진에 얽힌 이야기 등은 모두 생의 실루엣을 어른어른 비추며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준다. 


우연의 교차와 직조,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뒤돌아보며 추출해 내는 의미들은 결국 생과 생명의 신비함과 그것의 줄기를 끊어내는 시간과 죽음의 무자비함에 느끼는 어떤 놀라움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것은 헤아리기 힘든 억겁의 시간 "삼천대천세계" 속 찰나에서 명멸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처연한 엘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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