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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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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오는 길은 참으로 스산했다. 끝 간 데 없이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마음과
더불어 세상을 보는 눈은 달라져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그 편벽한 구획 안에서 난도질 당하고 있는 인간 본연에
대한 한없는 연민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조정래라는 작가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역사를 문학 속에
용해시키고 그 속에 잠들어 있는 민중을 하나 하나 일으킨 그의 저력에 감탄했고, 그 추상성을 구체화한 그의 작업이 궁금했다. 

이 책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감옥이 황홀할 수 있다는 그 역설의 중심에는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숨을 거두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문학에 대한 사위지 않는 열정과 역사 속의 민중에 대한 따사로운 애정이 있었다.
문학 인생 사십 년을 회고하는 자전에세이는 출판사를 차린 <시사IN>에 대한 맞춤한 호의와 더불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인턴기자 희망자인 대학생들의 500여 가지 질문들에서 84가지를 추려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으로 분류하여 그의 웅변을
들려주고 있다. 

소설에 대한 그의 정의인간의 총체적 탐구이다. 그것이 역사를 포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모국어에 은혜 갚기 작업이라 한다. 따라서 단어 하나 하나가 어법에 맞게 용례에 맞게 적절하게 쓰여야 하며 사전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하는 대목은 그가 질문자들의 질문을 문법에 맞게 정정해 주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항상 어휘가 문법에 맞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 지 자신 없어지곤 했었는데 책을 읽다 당장 국어사전을 주문하게 되었으니 그에게는 독자를 감화시키는 묘한 힘이 있는것이 분명하다. 또한 소설을 읽고 나서는 항상 전체적 감상을 정리하되 좋은 작품은 좋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가닥 곤두서는 자신감을 챙기라는 조언은 '태백산맥'을 읽고 기죽어 버린 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쓸 도리가 없다, 고 비애를 곱씹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어 주는 자상함이 고맙다. 인물 창조에 있어 개성과 전형성을 두루 갖출 것을 독려하면서 요즘 1인칭 시점의 유행을 비판하는 대목은 기억해 둘 만하다. 개성적인 인물을 많이 창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른 인물들을 '나'를 통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1인칭 시점을 경계하라고 한다. 무심코 읽어내려갔던 1인칭 시점 소설들의 한계가 바작바작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아 움찔했다. 그가 '태백산맥','아리랑','한강'에서 창조한 1천 2백여 명의 등장인물들의 그 생동감은 여기에 빚진 부분이 있을 터이다. 또한 그가 가장 애정을 갖는 등장인물은 바르고 굳센 민중성을 갖춘 인물이라고 한다. 이것은 곧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을 독자 앞에 바로 세우고 싶었던 그의 의도와 부합한다.

대처승인 아버지 밑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은 하나의 소설 같아 아련하다. '태백산맥'에도 등장하는 겨울의 머슴방의 
그 오밀조밀한 재미는 조정래 자신이 어린 시절 자주 다닌 머슴방 마실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강제로 볼 수밖에 없었던 사살당한 빨치산 시체들의 모습은 또 '태백산맥'의 결말에서 비감어리게 재생된다. 그 자신은 상상력의 고갈을 경계하며 직접 경험을 피한 소재를 소설에 활용하려고 애쓴 시절이 있었다지만, 결국 그의 역작 속에서 그의 경험은
새로운 의미부여를 받고 재점화 되고 있었으니 아이러니하다.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집에 틀어박혀 그린 링컨의 초상화로 평생의 동반자 시인 김초혜에게 구애한 대목은 더없이 낭만적이다.
그 초상화가 아리랑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다니 기회가 되면 꼭 그 배고픈 낭만의 응집물을 확인해 봐야 겠다. '태백산맥'에서
사회주의나 빨치산을 '인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던 시도가 국가 보안법 위법으로 11년의 세월을 시달려야 했을 때에는
영욕이 반반이라는 그의 아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의 고달픔과  글감옥 밖으로 나온 작가의 열정이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으로 무장할 때 어떤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방증 같아 안타까웠다.

하루 16시간씩 20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자기 학대적 노력을 기울여 그가 이루어 낸 찬란한 성취는 그 감옥 안에
머물지 않고 역사 속에 잠든 민중을 깨워 일으키고 민족의 중차대한 통일의 염원을 두드려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응집시켰기에
더없이 황홀할 수 있었다. 그 황홀함에 취해 작가에게 감사를 보내고 싶다. 아즘찮이  또 아즘찮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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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29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태백산맥에 이어 '활홀한 글감옥' 읽으셨군요~~~~
예약주문으로 받아두고 아직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리랑 문학관에 두번 갔는데 링컨초상화를 찍어온 것 같은데 찾아봐야겠습니다.^^
아츰찮이~~ 그 뉘앙스를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더군요.

blanca 2009-11-29 20:11   좋아요 0 | URL
아주 고맙다는 얘기인 것 같아요. 황홀한 글감옥 너무 좋더라구요. 눈물도 찌익~ 아리랑도 읽고 싶은데 내년에 읽으려구요. 순오기 님은 제가 가보고 싶은 곳을 다 가보셨군요.

순오기 2009-11-30 00:05   좋아요 0 | URL
남도에 사는 덕분에 호남의 좋은 곳은 여러곳을 가봤지요.^^
 
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
데이비드 리프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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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여기 있니?" <중략>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머니가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이것이 어머니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중략> 죽음을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했던 어머니는 그것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고 몹시 괴로워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머니는 간호조무사에게 몸을 기댄 채 말했다. "내가 이제 죽나 봐요." 그러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중략>죽음은 쉬웠다. 여느 죽음 같았다는 뜻이다. <중략> 이 멈춤은 영원이 되었고, 어머니는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나는 새벽 한 시에 절대 한번에 다 읽으려 하지 않았던 얇은 책을 다 읽어 버리고 그 앞에서 입을 틀어막고 울고 있었다. 그리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어떤 책도 그 어떤 사람의 말도 나를  타자의 경험 앞에서 나를 이토록 흔들지는 못했다. 감히 이 책을. 나는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정말 그랬으면 한다고 욕심을 부려 본다.  

수전 손택의 외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어머니의 골수이형성증후군 발병 소식을 듣고, 또 그것을 이성이 신앙이었다는 자신만은 항상 특별하다고 믿어 왔던 그녀의 투병과 마지막까지 죽음과 화해하지 못하고 슬프게 간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놀랍도록 담담하게 하지만 순간순간 여지없이 흔들리며 적어내려 간 <<어머니의 죽음>>. 

데이비드 리프는 수전이 열아홉에 낳아 스물다섯에 남편과 이혼하고 양육비도 거부한 채 홀로 키운 특별한 아들이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리 따사롭지 않았고 그녀의 눈물을 많이 흘리게 한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고백한다. 누구나 가까운 사람이 죽게 되면 남게 되는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죄책감이다. 그의 말마따나 주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고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순종 그 자체인 삶만이 죄책감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그가 인용하는 키에르케고르의 말. 그 말. 꼭 꼭 챙겨두고 싶다. 인생은 회고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지만, 사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의 죄책감을 다 한데 그러모아 흩어놓고 가신 할머니의 죽음. 나는 지금도 할머니가 치매로 정신이 온전히 못하셨을 때 내가 해드리지 못한 최선을 생각하며 가슴을 친다. 그렇게 가실 것을 알았다면 나는 그 분에게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시간들을 살아서 정말 고통스럽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고 싶은 그 마음은 데이비드 리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머니였을까......데이비드 리프의 이 말은 언어가 얼마나 많은 역사를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 한 문장 만으로 그 모자 관계의 대부분이 그려진다면 오만일까. 평생 가치에 집착해 자신마저 객관화시키느라 자신의 글도 "나의 글"이 아닌 '그 글'이라 불렀다던 그녀. 책에 하도 밑줄을 그어 대 종국에는 그 책을 읽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까기 이르게 했다는 그녀. 죽음 앞에서 "내 생전 처음으로, 내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구나."라며 절망했다는 그녀. 유방암 4기와 자궁육종까지 완벽하게 극복해 내어 급성 백혈병으로 전환된다는 골수이형성증후군도 그런 식으로 치료를 저돌적으로 받으면 이성의 힘으로 극복가능하다고 끝까지 믿고 자신의 몸을 각종 시술에 만신창이로 만들었다는 그녀. 그녀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끝까지 지키고 거짓 희망의 응원군으로 자신이 역할을 자리매김 한 것에 끊임없는 회한을 드러내었지만, 그는 수전 손택의 아들이었다. 둘은 정말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고, 수많은 감정들을 꼭꼭 숨겨두고 겉도는 언어들로 위장한 서글픈 모자 간의 대화를 이어 나가야 했던 그런 관계였다. 그의 극도로 절제된 감정 표현과 논리가 마구 디밀어 대는 듯한 글의 분위기가 사뭇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뉴욕에 새로 세워지는 건물들을 보면서 "저 건물 어머니가 얼마나 싫어하셨을까......", "저런, 어머니가 저걸 보지 못하시다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가 얼마나 쏟아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절제하고 있는 지를 느낄 수 있어서 역설적으로 더 슬펐다.  또한 그가 제도판에 어머니가 죽는 날까지 성취하고자 했던 목록을 작성해 보기도 했으며, 그러다 그의 머릿속이 온통 죽을 때까지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목은 그가 결국은 수전의 못다한 성취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깊은 곳에 침잠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인생은 스스로 인용문투성이라고 자조했던 수전은 끝까지 죽음과 화해하지 못하고 힘겹게 죽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열망하나로 인생 전체를 불태웠던 그녀의 삶의 방식이 존재 자체를 무로 태워버리는 죽음과 병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그 누가 자신이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 세상 모든 것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가장 명확한 종결에 고상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나도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 오는 것을. 수많은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하고 쓸 글들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던 그녀가 갑자기 인생의 3막은 없이 바로 퇴장이라는 선언 앞에서 담담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녀의 삶의 집착이 추했다고 판단해 버릴 수 있을까? 데이비드 리프의 회고가 빛을 발하는 것은 그것은 누구나 목도할 수밖에 없는 사랑하는 이와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 또 자신이 맞아야 하는 죽음에 대하여 뼈깊은 성찰을 할 수밖에 없는 그의 목소리 때문이다. 그는 울부짖거나 성토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하려 노력하며 군데군데 죽음이라는 그 잔인한 명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툭툭 뱉어내는 것이 오히려 독자들의 약한 감정의 둑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도록 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유한한 인간이라는. 누구나 비참한 최후와 종국에는 맞닥뜨릴 수 밖에 없다는.

죽음을 항시 의식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삶은 역설적으로 순간 순간이 빛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어제 이 책을 읽고도 나는 순간 순간을 권태와 싸우고 있다. 수전이 그렇게나 처절하게 고파했던 시간들이 한데 뭉뚱그려져 나에게 와 있는데도. 그래서 나는 그녀처럼 특별할 수 없지만. 수전을 존경하고 감히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고 고백하고 싶지만. 그녀의 삶이 스스로에게도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 이 순간 나는 그 특별해지고자 하는 해괴한 욕망과 이별을 고하고 싶다. 그리고 다만 데이비드 리프도 부러워 했던 죽음과 화해했단 그 사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죽음을 앞두고 썼다던 수많은 연작시 중 데이비드가 인용한 그 대목을 나도 재인용하면서 마침표를 찍고 싶다. 나도 그가 너무 부러우니까. 나도 그 불가능하지만 황홀한 명제. 죽음과 화해하고 평화롭게 이 세상의 마지막 문을 닫고 싶으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 아무것도 잘못될 게 없지. 이제 나는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지저귈 지빠귀의 노래도 즐길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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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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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고, 우선 그녀의 현란한 문체에 앞서 다방면에 걸친 독서량과 그 책을 적절하게 일상에 접목시키는 능력에 감탄했었다. 지나치게 자의식이 강하고 그녀의 문체가 거북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닥 동의하지 않았으나...... 
 

이 책을 보면 그녀의 문장은 지나치게 유려하려 애쓴 기미가 군데군데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순간 순간 거북함이 밀려온다. 쉽게 써도 될 말을 이중 삼중으로 꼬아 길게 늘이는 것, 큰 상관 관계가 없는 상황을 단순히 연결시켜 현란한 비유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등 물론 전적인 나의 의견이므로 이것으로 그녀의 장점인 독서의 깊이와 넓이, 지적 소양 등을 훼손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느낌이 그랬다는 것. 또한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는 것인지, 그냥 한 대목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 인용한 것인지를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추천도서목록을 작성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을 듯.

일단 책 표지 및 제본 상태가 참 이쁘다. 이 책을 받아든 순간 나는 그냥 행복했다. 판형도 날씬하고 작고 표지의 아름다운 여인네의 다리와 하늘색 배경은 아기자기한 어여쁨을 발산한다. 
 

그녀의 덕택에 물론 김연수도 강추했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게 되었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우회와 지연의 행성' 아, 정말 너무 마음에 드는 단어들. 우회와 지연. 우회와 지연. 이런 단어가 왜 이제야 나에게 왔지? 사족이지만 토성의 하늘은 연분홍빛이란다! 아. 쓰러진다.

다음은 배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에서.

내가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면 당시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이 떠오르고, 내가 죄책감을 느낄 때면 당시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온다. 내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낄 때면 당시의 그리움과 향수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 생동감있게 다가온다.  

내가 요즘 느끼는 바로 '그것'이 '이것'이다. 나중의 것에서 이전의 것을 만나는 것. 그 묘한 지점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무기력한 인간의 한계를 체감하며 가슴을 두드린다. 나도 더 리더를 읽었는데 이 대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저자는 이렇게 오감이 깨인 독서를 하니 훌륭하달 수밖에....누구나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을 잘근잘근 씹어 내 피와 살이 되어 흐르게 하지는 못한다. 물론 그런 무의미한 것 같은 독서 속에 알게 모르게 지적인 성숙이 이루어진다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좀 빈약한 변명으로 들린다. 
 

그리고 '보르헤스' 말년에 눈이 멀어가지나 국립도서관 관장이 된 것을 가장 큰 영예로 여긴 사람. 그.

내게는 수많은 나쁜 일과 몇 개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모든 것, 특히 나쁜 일이 장기적으로 글로 변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다른 것으로 변환될 필요가 없으니까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이것도 내가 요즘 생각만 하고 짧은 문장력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 글은 삶을 뛰어넘을 수 없기에 작가의 인생은 파란만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 단조롭고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산 작가의 작품은 그 역시 단조로운 서사 구조를 숨기려 동원한 언어유희의 망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쉽다는 점.

'현재란 미래가 과거로 허물어져가는 순간'(보르헤스가 자주 인용했던 브라우닌의 시구)

현재를 '선물'이라는 영어 단어로 그럴 듯하게 포장해 전혀 동의할 수 없었던 재정의에 이처럼 충실한 반기를 들 수 있는 아름다운 표현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고 싶다.

다음은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고독해지는 이유는 타인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는, 즉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

내가 자주 처하는 상황.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남의 판단 안에 나를 가두고. 그래서 삶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이 책은 수많은 인용과 수많은 작가의 직간접 경험이 어우러져 달콤한 변주곡을 들려주는 조금은 어려운 선율 같다. 다만 그 음악에는 너무나 많은 기교가 얽혀 있고 그 기교가 조금은 자의적이라는 생각이 숨어 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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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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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별로 책을 읽는 편인지라 좋아하는 작가가 책을 내면 예약구매가 개인적 관행이다. 박완서,공지영,에쿠니 가오리, 올리버 색스 등... 기다리느라 담금질 되는 기대의 파편들이 너무 예쁘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자필 사인이 들어가 있는 이 책은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일단 작은 판형에 책 편집이 넘 귀엽고 앙증맞아 한 손에 쏘옥 들어온다. 그리고 전작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연장선상인 듯한 느낌은 있지만 역시나 사서 읽을 만한 비야님의 책이라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 않다. 

'첫사랑 이야기'에서는 괜히 내가 달뜬다. 진부한 그렇고 그런 얘기가 아니라 묘한 반전이 있는 얘기이니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이정도...무엇보다 독서광인 그녀가 추천한 책 목록이 너무 놓아 줄 좍좍 그어가며 행복해 하고 있다. 특히나 '정약용'에 대한 묘한 호감도 공통분모이고... 

그녀가 소속되어 있는 월드비전이 그녀덕에 수많은 사람들의 성금이 답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기독교단체임이 부각되어 선교에 치중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몇 몇 있었는데 이 책으로 그런 오해가 많이 풀렸다. 개인적으로 이미 고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에게 물질적 원조를 얹어 타종교를 강요하는 행위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월드비전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타종교에 가지는 유연한 관념과 존중이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그녀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벌써 쉰이 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국에서 인도적 지원에 관한 석사 과정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난 그래서 그녀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녀만 보면 무언가 지금이라도 금방 저지를 수 있을 것 같고, 그래도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선의를 가지고 타인을 사랑하는 존재라는 데에 의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데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사랑으로 연결된 지구적 공동체...화두가 하나 생긴 셈이다. '나'보다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더 아름답기에 나는 오늘부터 샤워시 물을 좀 덜 틀고 간헐적으로 해 오던 미약한 기부를 조금더 저돌적으로 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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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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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한 번 읽어보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리뷰들이 썩 후하지 않아 미뤄 두었던 것이 포털에 뜬 표지에 또 내달아 리뷰 재독..역시나 대상으로 삼은 이들의 사연에 너무 자주 작가가 끼어든다는 것이 중론...망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내가 좋아하는 책 얘기를 한다는 데에 이 아이를 껴안고 왔다. 

리뷰어들의 의견은 맞았다. 작가가 너무 자주 독서가들의 얘기에 자신의 독서담이나 사견을 풀어낸다는 인상을 깨끗이 지울 수는 없다. 단 그럴 자격이 있어 뵌다는 것이 또 딜레마...대단한 독서량과 이해, 문장력을 자랑하는 작가에 약간의 질투심마저 느낄 지경이다. 나의 독서는 너무나 빈곤하고 나의 문장은 저절로 흐물어진다. 그녀 앞에서는...나름대로 책 많이 읽었다 혼자 착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멀었다는 생각, 아니 넘 늦어버렸을 지도...여하튼 이 책을 계기로 추천목록을 옮겨 적고 주문중이다. 맥락의 독서가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각주와 목록을 따라 여행을 떠나는 독서...나도 불완전한 사서로 가는 것인가?  

역시나 출발은 진중권이다. 그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만큼 잘 알지 못하지만, 언변이 마치 글로 서술해 내는 듯한 착각을 자아낼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나같은 버벅쟁이들은 글과 말이 완전 서로 다른 차원) 좀 나대는(죄송) 스타일로 결론짓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 얘기부터 들어보니 오히려 약간 선병질적이고 유약한 모범생 이미지가 그려져서 놀랐다. 플러스, 비행을 즐긴다는 얘기에는 상당히 놀랐음...탁상공론이 아닌 모험을 즐기는 이였다니...각설하고 그의 대목에서는 '독서' 그 자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있어 좋았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은 무언가 진중한 성찰의 결정체 같음...그러나 읽을 유인은 없어뵈는 것이 내용은 참으로 대단해 보이나 지루할 것 같아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하지만 전혀 절실하지 않은 욕심에 신경숙 작가의 치열한 글쓰기 훈련은 나를 무너뜨렸다. 난쏘공을 필사했다는 대목에서는...그만 좌르르...읽고 쓰는 일은 치열해야만 한다. 설렁설렁 겉멋 든 글쓰기는 그 얄팍함과 치기가 간파당하기 쉽상이라... 그런 점에서 나는 아웃이다. 

작가의 추천도서 목록이 좋다. 거기에 대한 적절한 인용들도...'월든'을 힘겹게 읽어 소로우에 그닥 좋은 감정이 없는 나에게 '소로우의 일기'의 좋은 대목들을 차용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겠지만...  

'겉으로는 순종하면서 안으로는 자신만의 삶을 사는 방식이 좋은 삶의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굉장히 찔림) 

'나의 인생 가운데 내가 다시 태어나도 기꺼이 다시 살고 싶은 시간들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나는 나의 중고교 시절을...) 

자...이제 나는 나만의 독서목록을 만들어 가기 위해 다음 독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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