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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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하루키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으면서 그의 에세이는 나오는 족족 챙겨 읽게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일단은 재미있고 적어도 공허하지 않고 호흡이 짧아 부담이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읽어도 좋고 자투리 시간에 들입다 한 편만 읽어도 무언가 독서를 했다는 포만감으로 배가 부르다.

 

에세이적 자아로서의 하루키는 그의 소설과는 다르게(사실 이렇게 쓰면서 그의 소설이 무언가 아주 비범하고 다소 잔혹할 거라는 쉬운 판단을 내려 버린다.) 지극히 평범하다. 나이는 아버지보다 많은데 감성은 지금 나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신기해하는데 후기를 읽으니 역시나 서른넷에서 서른아홉까지 쓴 에세이를 추린 거란다. 지금의 하루키가 아니라 과거의 하루키의 복기이다.

 

'청춘이라 불리는 심적 상황의 끝에 대하여'라는 글은 내가 나의 스무 살에 느끼는 감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며칠 전 화장품 코너의 아름다웠던 이십 대의 점원에 대하여 가진 묘한 느낌과 맞물려 '청춘이 끝났다'는 것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그 뒷맛에 대한 섬세한 통찰이 반가웠다. 그리고 청춘의 종결에 대한 자각이 삼십 대 중반부에서부터 다가온다는 서글픈 공감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루키가 '청춘이 끝났다'고 깨닫게 된 것은 청춘 시절 좋아했던 여자와 비슷한 용모를 가진 여자에게 그것을 이야기하자 그녀의 너무나 시큰둥하고 남자들이 그런 말을 잘한다는 식의 전혀 진지하지 않은 반응에서 어떤 소중한 것이 훼손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던 찰나였다.

 

물론 나는 과거의 그 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끝난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은, 정확히 말해 그녀가 아니라 그녀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녀에 부수되는 나의 어떤 심적 상황이었다. 어떤 시기의 어떤 상황에서만 주어지는 어떤 유의 심적 상황-그것이 실로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청춘이라 불리는 심적 상황의 끝에 대하여> 중

 

그러니까 내가 <건축학 개론>을 보고 울음보가 터졌던 것은 스무 살 좌절된 짝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 때 그렇게도 그 사람때문에 설레어 하고 하루 상간에도 천국과 지옥을 쉽게 넘나들던 그 감정의 파고를 떠안고도 견뎌야 했던 그 나약하고도 청승맞았던 나의 심적 상황에 대한 하나의 연민때문이 아니었을까.

 

짐 모리슨에 대한 이야기도 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치는 글도 팝음악을 그저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왠지 그들을 기억해야만 할 것 같고 하루키가 직접 추천한 빌리 홀리데이의 음반을 당장 사러 나가서 턴테이블에 걸어야만 할 것 같은 부책감이 들 만큼 달콤하고 끌리는 찬사들이었다.

 

그런 음악이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젊었을 때는 숨을 죽이고 수없이 들어봐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부분이, 지금은 이렇게 와인잔을 기울이며 느긋하게 들어도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시원하게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

-<LEFT ALONE-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침> 중

 

나도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적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싱그럽고, 또한 완벽하다. 위태롭고, 확고하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행복하고, 그리고 가슴이 아리도록 슬프다.'는 느낌을 그가 얘기한 빌리 홀리데이의 미국 컬럼비아 사에서 나온 <The Golden Years VOL. 1>이라는 음반을 들으면서 가져보고 싶다. 언어로 형상화하기 힘든 지점에서 그가 끌어오는 그 단순명료한 묘사들은 미처 입밖으로 꺼내어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으켜 세워 한없는 청량감을 준다. 음악을 들으며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행복하고 가슴이 아리도록 슬펐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기억해 낼 수 없고 기록해 낼 수 없다면 그 찰나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런 순간들을 채집해서 눈앞에 보여주는 하루키라니. 그는 부정하겠지만 하루키는 친절하고 다감한 사람같다.

 

<유명하다는 것에 대하여> 그가 느끼는 소회는 더없이 솔직하고 놀랍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가 유명해지면서 겪게 되었던 소란에 대하여 그가 느끼는 감정은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유명해지면 전혀 파악이 불가능한 세계로부터 파악이 불가능한 유의 호의와 악의를 동시에 받게 된다. 어떤 때에는 무의미하게 매도당하고, 어떤 때에는 무의미하게 치켜세워진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얽힌 적이 없는 없는, 이름도 모르는 상대로부터.

-<ON BEING FAMOUS> 중

 

이러한 것이라면 글쎄다. 별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은데. 하루키는 작가로서의 자아와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여 생각함으로써 유명세에 대처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나의 가설이라고. 가설은 자기 자신은 아니다,라고. 아, 이러한 대처는 상당히 유연하고 건강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적절하게 통합이 가능한 것이 또 하루키만의 강점이겠지만. 괜찮은 대처법인 것같다.

 

번역가로서의 그가 영어 회화 자체를 능수능란하게 하지 못해도 전혀 괘념치 않아하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공개하고 괜찮아할 수 있는 하루키의 모습도 부럽다. 삼십 대의 하루키가 육십 대의 하루키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육십 대의 하루키 속에 편재하는 그 모습들이 낯설지 않고 납득할 만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나머지의 에세이들이 시간의 연대기순으로 그의 나이듦을 반영하고 있다면 모조리 갖고 싶어질 정도로.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어느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 그 소중한 이야기들은 칠십 대의 시선과 깨달음과 회한을 반영하고 있겠지만 삼십 대의 청춘과 사랑을 포함하고 있기에 할머니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삼십 대의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하루키의 저물어 가는 청춘에 대한 단상은 꼭 그 만큼의 깨달음과 치우침을 가지고 있어 뒤돌아 보아도 앞서 보아도 어떤 애틋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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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 2012-10-08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로 형상화하기 힘든 지점에서 그가 끌어오는 그 단순명료한 묘사들은 미처 입밖으로 꺼내어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으켜 세워 한없는 청량감을 준다." 제 느낌에는 blanca님의 글이 딱 그렇습니다^^; (그런 분에게 상찬을 받는 작가라면. 읽어보고 싶네요)

한남자 2012-10-08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blanca님 뭐 한가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페이퍼 쓰실 때 혹시 글씨체가 뭔가요? 굴림? 돋음? 이것저것 해 봤는데 왠지 다르게 반듯해 보여서요

blanca 2012-10-08 09:13   좋아요 0 | URL
니코니코님 안녕하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니코니코님 덕분에 제 페이퍼의 글씨체를 지금 확인해 봤어요. 굴림체가 맞아요^^;

프레이야 2012-10-0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는 이 책을 읽고싶어 선물 받아놓고는 읽고있는 게 있어 아직 소중히 옆에 두고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요. 책도 참 아담하니 예쁘지요. 님의 리뷰에 어서 읽어보고싶어 안달 나요. 맛깔스런 리뷰! 오늘하루도 평안히 보내요, 우리^^

blanca 2012-10-08 09:14   좋아요 0 | URL
아, 선물받으셨군요! 저는 솔직히 착한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읽게 될 줄 알았는데 이거 한 권 읽으니 모조리 다 읽고 싶어졌어요--;; 여전히 오늘 하늘도 참 이뻐요^^

다락방 2012-10-0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은 참(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감수하고) 리뷰를 잘 쓰세요. 에세이는 그보다 더 잘쓰시지만요.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으면 참 질투나요.

blanca 2012-10-09 09: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ㅋㅋ 건방지게 안 들리고 황송하게 들려요. 다락방님은 일상에서 책 얘기를 너무나 부드럽게 잘 풀어내시잖아요. 다락방님만의 스타일. 그게 딱 확립되어 있어서 저는 그 점이 참 부러운 걸요.

2012-10-17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8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탐닉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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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만나서 이야기하자."

삐삐의 음성 사서함에서 다음 만남의 기약을 들었다. 그래, 그럼 만날 수 있는 거구나.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 걱정하기 전에 다음 만남의 기약이 주는 안도와 기쁨에 겨워 버렸다. 그런데 그 만남은 불발로 끝났다. 나는 찌질하게 채였다. 그렇게 울며불며 열광했던 스무 살의 첫사랑은 비겁하고 부끄럽게 막을 내렸다.

 

그것은 너무나 미숙했고 자기 도취적이었고 과잉이었기 때문에 지나고 나니 사랑으로도 욕망으로도 취합이 안 되었다. 차라리 중학교 때 혼자서 러브레터를 쓰며 언젠가는 만나 전해줄 거라 믿었던 뉴키즈언더블럭의 조 메킨타이어에 대한 열광의 시즌2  정도라고 해 두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실망하고 또 넘어지고 그리고 또 끊임없이 헛꿈을 꾸고. 괴로워할 이유와 눈물 흘릴 이유는 깨알처럼 많았다. 수많은 결핍을 모아 과잉으로 만들었다. 목이 마르고 또 말랐다.

 

갑자기 사춘기 때와 똑같은 서글픔을 느낀다. 마흔여덟 살에서 쉰두 살 사이의 중년의 여자가 사춘기 때와 얼마나 비슷한 것을 느끼는지에 대해 언젠가 말해야겠다. 똑같은 기다림, 똑같은 욕망. 그러나 여름으로 가는 대신 겨울로 가고 있다. 하지만 "인생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실은 너무 잘 모른다. 다만 사춘기 때만큼 괴로워하지 않는 몇 가지 하찮은 방법만 알고 있을 뿐이다.

-p.318,319

 

나는 또 착각하고 있었다. 인생을 알아가고 있다고. 이 책에 대한 솔직한 리뷰를 과연 쓸 수 있을까? 마흔 여덟의 여자가 서른 다섯의 유부남에 탐닉하는 얘기를? 게다가 이 책의 저자는 (작가가 아니다) 무려 스스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공언하는 아니 에르노다. 지독하게 솔직한 고백 앞에서는 그 내용과는 관련없이 그냥 져 주고 싶은 무력감이 차오른다. 도덕적인 잣대, 사회적인 통념, 상식을 들이밀기 이전에 도저히 재단할 수 없는 그 간명한 호소 앞에서 나마저 고고한 심판관 역할을 자처하고 싶진 않다. 자신의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랑할 가치도 없는 별로 지적이지도 않은 미숙하고 거만하고 속물적인 젊은 남자 앞에서 그녀는 어머니가 되고 물주가 되고 욕망의 배설구가 된다. 그녀의 얘기다. 그 유치한 남자를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고 전화가 오기를 기도하며 걸인에게 적선을 한다. 사춘기를 지나도 오지 않는 전화 때문에 밤새 울고 가위에 눌릴 수 있다. 어쩌면 삼류 신파 영화 같은 얘기일 수도 있다. 나의 사춘기를, 스무 살을, 그녀의 마흔 여덟 살에 대입하며 공감했다. 세상은 단 하나의 경계로 나뉜다. 그의 전화와 기다림. 후에는 가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진짜였을지도. 로맹가리가 얘기했던 것처럼 "노년이 '배워 알고' 있는 것은 실상 그것이 잊어버린 모든 것"일런지도. 나이가 들어가며 편안해지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완전하게 기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니 에르노의 처절할 만큼 솔직하고 잔인한 고백 앞에서는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처음으로 다시 회귀한다. 나쁜 애송이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다. 아니 에르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타입이었지만 그럴 가치는 없었던 한 남자"를 스무 살이 아닌 마흔여덟 살에 만나도 결론은 항상 눈물이다. 사춘기의 아이는 저만치 걸어가 버린 게 아니다. 항상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 기지개를 켤 틈을 엿본다. 돌아오면 또다시 울면서 맞을 수밖에 없을까. 인간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 성숙한다고 착각하며 죽을 때까지 미숙하고 유치한, 하지만 가장 절절한 그 시기를 재연할 기회를 엿보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속아주고 만다.

 

 

넉 달. 아직은 추억 때문에 운다. 아직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를 위한 것이다.-p.330

 

 

그녀의 고백은 위험하면서도 슬프다. 도저히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 사춘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사랑과 욕망의 경계가 얼마나 불분명한지를 고백하는 애가는 죽을 때까지 부를 수밖에 없다.

 

p.s.  이 책을 그녀를 위하여 소설로 분류해야 했을까? 아니,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일기를 읽었다고 믿고 있는데 이것도 교묘한 장치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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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6-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부터 강렬하네요. 아니 에르노.
블랑카님의 첫사랑 고백이 좋은걸요. 결핍을 모아 만드는 과잉에 대한 이야기요.^^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마흔여덟이 되니까요.
완전할 수 없고 부족하고 불안하고 서툴고 불발이고 그런 점에서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블랑카님.^^

blanca 2012-06-03 22:5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덕택에 편안한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욜 저녁에 갑자기 배탈이 난 건지. 지금은 몸이 영 안 좋네요. 고통을 항상 망각하고 모든 고통을 처음처럼 다시 아프게 겪는다는 저자의 말에도 공감이 갔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인가 봅니다.

다락방 2012-06-0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는 아니 에르노를 다시 읽어보려고 해요. 이젠 그녀의 소설(이라고 부를게요)을 이제는 소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블랑카님의 이 리뷰가 거기에 불을 당기네요. 리뷰가 무척 좋아요, 블랑카님.

blanca 2012-06-03 23: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저는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처음 읽어봐요. 정말 너무 솔직해서 책을 읽다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해요. 그런데 그 속에 어떤 진실에 대한 강력한 환기가 있는 것 같아서요. 참 묘한 책이에요. 모든 '척'을 벗어던지고 나면 그 속살이 어떤지의 유무를 떠나 그냥 어떤 공감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놀라웠답니다.

Jeanne_Hebuterne 2012-06-0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러질 때 마다 읽었던 유일한 글.
좋이 죽으면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알려준 점쟁이 같은 글.

blanca 2012-06-03 23:02   좋아요 0 | URL
쥬드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저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책을 통한 간접 소통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2012-06-28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 섬앤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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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의 힘은 강고하다. 우리가 자라나고 살아나가고 내일을 상상하는 공간에 차곡차곡 쌓인 것들은 때로 발목을 붙잡지만 그것을 뿌리치고 꿈꿀 수 있는 내일은 마치 위험한 반역 같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을 타협하고 굴복하고 견뎌 나간다. 용기는 나타와 안일, 생존까지 담보로 요구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막에는 생리통이 너무 심해 똑바로 서지 못하면서도 염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소녀가 있다. 그리고 아기를 낳자마자 천 조각처럼 바늘과 실로 봉해져야 하는 여자가 있다. 남편을 위해 질 입구를 단단히 조이고자 하는 것이다. 굶고 있는 열한 명의 자식들을 위하여 임신 9개월의 몸으로 먹을 것을 찾아 사막을 누비는 여자도 있다. 첫 아이 출산을 앞두었지만 여전히 질 입구가 막혀 있는 여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엄마처럼 홀로 사막으로 나가 아기를 낳으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불행히도, 나는 질문의 답변을 안다. 많은 여자들이 홀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운이 좋으면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오기 전에 남편에게 발견될 것이다.

-p.335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할례를 받고 열세 살에 낙타 다섯 마리에 노인에게 시집을 보내려 한 아버지를 피해 도망쳐나와 세계적인 모델이 된 입지전적인 여성의 이야기가 둔중한 울림을 가지게 된 것은, 자신은 어느 정도 극복한 고통일지라도 침묵 속에서 방관되고 있는 부당한 폭력과 고통에 대하여 용기있는 폭로를 했기 때문이다. 외모로 먹고 사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고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정신적 가치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상치되는 지점에서 때로 양심적인 머뭇거림을 느끼는 이 여인은 어느 날 우연히 패션지 앞에서 봉인되어 왔던 부조리와 불합리의 소굴의 빗장을 열고 행동하는 양심이 된다. 외부 세계에서는 이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신체절제술에 대하여 왜 아직까지 집단적인 거부의 움직임이 없었는지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없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겠지만 정작 그 속에서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며 면면이 살아 내려온 여자들은 이 고통을 감내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고 반역적인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여성 할례, 오늘날 이보다 적합한 용어로 말하자면 '여성성기절제술 FGM'은 아프리카내 28개국에서 지금도 크게 행해지고 있다. 유엔은 어림잡아 1억 3천만여 명의 여성들이 FGM을 받았으리고 추정한다. 적어도 2백만명이 매년 피해자가 될 위험을 안고 있는데 하루로 환산해 보면 6,000명이다. FGM은 대개 미개한 환경에서 산파나 마을의 나이 많은 여자에 의해서 마취없이 행해진다. 여자들의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수술에 사용하는데 그 중에는 면도날, 칼, 가위, 깨진 유리 조각, 날카로운 돌 등이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이빨을 사용하기도 한다. <중략> 가장 심한 방법은 '봉쇄술'이라고 하는 것인데 소말리아 여성의 80퍼센트에게 행해진다. 내가 당한 것이기도 하다. 봉쇄술을 받은 직후에는 쇼크나, 세균 감염, 요도나 항문의 손상, 흉터의 발생, 파상풍, 방광염, 패혈증, HIV 감염, B형 간염 등의 증세나 합병증이 올 수 있다.
-P.343

 

와리스 디리는 다섯 살에 받은 이 봉쇄술로 인하여 생리혈이 고여 생리 기간 중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통에 허덕이게 된다. 영국에 와서도 그녀는 이 신체의 부끄러운 비밀과 이해받지 못할 고통으로 인하여 남자,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이 고통이 자신을 좀먹게 내버려두지 않고 의사 앞에 나아가 상처를 공개하고 그 상처를 치료하고 사랑에 빠지고 마마가 되고 자신이 얻은 명성에 기대어 자신의 고통을 증언하고 아직 이 고통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는 소녀들을 구하기 위하여 용기있는 걸음을 내딛는다. 그렇다면 이 '사막의 꽃'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여인 앞에서 모든 아프리카적인 것들은 부정되고 있을까. 이렇게 잔인하고 미개한 관습을 전수하고 전수받고 꽁꽁 봉인한 채 부족끼리 죽이고 죽임을 당하며 자신들이 먹을 것조차 외부의 원조에 기대야 하는 사람들의 나라.

 

매일. 나는 내가 소말리아 사람임이 자랑스럽고, 조국이 자랑스럽다. <중략> 할례의 경험을 제외하면,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그 어느 누구의 어린 시절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나는 삶을 체득했다.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의 삶이었다. TV에 나오는 남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그런 인위적인 삶이 아니었다.
-P.347

 

 

 

르 클레지오는 소설 <아프리카인>에서 "아프리카, 그것은 얼굴이기보다는 몸이었다. 감각의 폭력이자 욕구의 폭력이었으며, 계절의 폭력이었다."고 증언했었다. 그렇다. 나는 와리스의 "그것은 실제의 삶이었다"는 얘기 앞에서 갑자기 망연해져버렸다. 나는 과연 실제의 삶을 체득한 적이 있었던 가. 먹는 것, 마시는 것, 자는 것, 사랑하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 나는, 우리는 어느새 남의 인생을 지켜보며 그것이 마치 내가 사는 삶인 것처럼 소비하며 대리 만족하며 지내지 않았던가. 와리스는 아직도 자신의 나이가 정확히 얼마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알지 못하고 의식하지 않는 아프리카적 시간 관념 안에서 산다고 한다. 언제나 물을 찾아 헤매는 생활이었기에 지금도 물을 보면 마냥 기쁘고 소중하다고 했다. 젖먹던 힘까지 내어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했기에 내일에 대한 걱정도, 과거에 대한 회상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저만치 뒤로 하고 달려야 했던 삶이 안쓰럽기도 하고 우리가 잊고 살았던 생에 대한 온전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슬몃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여자의 충절은 야만적인 관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얻어야 하는 것을 안다."는 와리스 디리의 고백은 할례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생에서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아프리카의 가장 잔인하고 미개한 폭력의 응축체 같은 할례 앞에서도 생명이란 선물에 경탄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때로 폭력과 이기심이 판을 치는 곳으로 비하되는 세상이 아름다운 별이 태어난 곳임을 기억하게 한다. 그런 기억을 간직한 사람만이 그 별을 볼 수 있다. 분명 이 지구별은 너무 슬프지만 아름다운 놓고 싶지 않은 작은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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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3-2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는 이게 책으로 있는지도 모르는채로 몇년전에 영화로 봤어요. 이 리뷰를 읽노라니 그때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먹먹함이 다시 찾아오네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어떻게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보고 자라온 삶이 전부라고 생각했을텐데, 거기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텐데, 어떻게 깨우칠 수 있었을까.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에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여자가 수술을 하러 갔을 때, 아프리카 출신의 남자가 아프리카의 말로 부끄러운 줄 알고 수술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거든요.

책이 묵직한가 봅니다, 블랑카님. 리뷰가 묵직해요.


blanca 2012-03-20 22:21   좋아요 0 | URL
아, 영화 보셨군요. 저는 못 봐서 영화로는 어떻게 묘사되었을지 궁금해요. 와리스 디리가 어렸을 때부터 반항아적 기질이 다분했대요. 일단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했는데 도망쳐나오면서부터 그녀의 다른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요. 남편도 본인이 쫓아다녀서 결혼하고^^;; 정말 솔직하고 대담한 여전사 같은 느낌의 여인이더라고요. 군데군데 에피소드들이 너무 귀엽고 발랄하답니다.

마녀고양이 2012-03-2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책을 책도 가지고 있고, 영화도 가지고 있고... ^^

요즘 제가 상담을 받는데, 제가 어떤 사람을 존경하는지 알았어요,
힘든 상황인데, 징징대지 않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사람이요. 그리고 그 반대 유형을 보면 화를 내는거죠.
그것은 아마 내게 화내야할 것에 대한 투사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반드시 읽고 싶은 책이예요.
그리고 블랑카님과 똑같이 망연해질까봐 두렵기도 한 책이죠....

근데! 왜 봄이 안 오는거죠!

blanca 2012-03-20 22:22   좋아요 0 | URL
아, 저도요! 저는 힘든 상황 앞에서 특히 담담하게 침착하게 잘 헤쳐 나가는 사람이요. 한 마디로 진정한 의미에서 강한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너무 나약해서.... 그죠, 오늘이 춘분이라는데 짚업 가디건 걸치고 밖에 나갔다 얼어 죽을 뻔 했어요--;;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더라고요. 저는 정말 봄이 온 줄 알았거든요--;;

비로그인 2012-03-2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어떤 책임을 졌죠?
어디까지나 그것은 당신의 삶일 뿐입니다.
라고, 조용히 말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러한 사람의 목소리는 그래요.
(블랑카님에게 하는 말 아니에요!! 놀라실까봐!)
종종 한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
다른 세계에서는 놀라운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 슬프기도, 기쁘기도 합니다.

아참, 저는, Jude입니다.
:)

blanca 2012-03-20 22:24   좋아요 0 | URL
쥬드님 ㅋㅋ 깜짝이야. 완전 찔리는 질문이잖아요. 저는 여러가지로 우물 안 개구리인데 앞으로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이 틀을 깨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이게 전부라고 자꾸 생각하며 살다 세상을 마감한다는 건 너무 비극적이잖아요.

비로그인 2012-03-21 12:49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블랑카님 놀래켜 드리려구요!

moonnight 2012-03-2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사놓고 아직 못 읽은 책이에요. (그런 책들이 너무 많아요. -_ㅠ)

책을 산 날이었나 케이블 티비에서 영화로 보여주기에 (즐겁게) 놀랐었어요. 정말.. 훌륭하다고 정말 장하다고, 다른 말은 떠올릴 수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그 입장이었으면 다들 그렇게 사니까,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체념해버리지 않았을까.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상상도 못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니 그 의연함이 존경스러워요.

블랑카님 멋진 리뷰를 읽으니, 마치 책을 읽은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큰일 났어요. ^^;;;;

blanca 2012-03-21 22:06   좋아요 0 | URL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두려움까지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런 용기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그녀가 정말 비범해 보입니다. 아, 책을 사신 날 영화가 했다니, 이런 기막힌 우연이라니요! 꼭 읽어 보셔요. 술술 잘 읽히더라고요. 군데군데 에피소드도 귀엽고^^ 아주 유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Jeanne_Hebuterne 2012-03-2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요, 블랑카님. 이사했어요.

blanca 2012-03-21 22:07   좋아요 0 | URL
아...그런 거였군요.
 
모든 삶이 기적이다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사투리가 섞인 소박한 음성의 아저씨가 내 핸드폰이 맞는지를 확인한 다음 너무나 절박한 톤으로 어머니가 머리를 다쳤다고 했다. 수많은 보이스피싱 사례들. 당했다고 하면 왜 순진하게들 그랬을까 머리를 갸우뚱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한번 쓰러진 적이 있는 엄마가 하필 머리를 다쳤다고. 게다가 내 이름을 호명하며 엄마를 바꿔주겠다고까지 하는 낯선 사람의 다급함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결론적으로 보이스피싱임을 알고 끊어버리기는 했지만 순간 지옥으로 갔다.

 

이제 친구들, 사촌들의 부모님의 부음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오랜 지병으로 미리 마음의 각오들을 한 경우들도 있었지만 어느 날 주무시다가 작별 인사도 없이 가시는 경우들도 많았다. 그런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산다는 게 죽음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의 줄을 결국 당겨야 한다는 일임이 너무 두렵고 자신없어졌다. 탄생을 마주대하고 나니 역설적으로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생명의 허망함이 더 둔중하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오래 공들여 해야 하는 경우 어차피 나는 죽을 텐데, 라는 허무감이 어리석게 덮쳤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일지도 모르는데, 하는.

 

네가 죽은 이후 나는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파울라,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까 봐 두렵고 그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두렵고 늙어서 망가져 가는 게 두렵고 날로 증가하는 이 세상의 빈곤과 폭력, 그리고 부패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p.153

 

더 많은 생명을 부려놓을 수록 더 많은 상실을 각오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이를 잃게 된 여자는 십대 소녀를 보고 "아이를 갖지 마."라고 되뇌인다. 칠레 출신의 저자 이사벨 아옌데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남매를 데리고 베네수엘라로 망명했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한다. 유전병인 포르피린증을 갖고 있던 딸은 어느 날 감기를 앓다 병원에 입원하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다 떠난다. 딸은 서른도 되지 않았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고 하나뿐인 남동생에게 어린 조카 둘이 있었고 아마존의 여전사 같은 어머니와 우직한 몸에 달콤함을 감춘 의붓 아버지가 있었다. <모든 삶이 기적이다>는 1992년 12월 작가의 심장과도 같았던 딸의 상실로 시작하고 있었다. 세퀘이아 나무숲에 딸의 재를 뿌리면서 이사벨 아옌데는 마약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된 또다른 딸 제니퍼 이야기를 꺼낸다. 제니퍼는 재혼한 남편 위예의 딸이었다. 탯줄을 자르며 눈을 맞추고 걸음마를 시작할 때 손을 잡아주며 감격하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불렀을 때 온몸으로 응답했던 아이도 자라서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학대하는 나약하고 피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제니퍼는 중증 마약중독자로 끊임없이 병원에서 탈출하고 그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는 또 사라진다. 이사벨 아옌데는 딸 파울라의 마침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남편 위예는 자신이 낳은 생명이 과연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스러졌는지초자 확인할 길 없는 불확실한 고통에 가슴을 친다. 이런 이야기들. 앞에서 끊임없이 망연해졌다. 이사벨 아옌데식으로 말하면 사방에 널려있는 어마어마한 고통들.

 

슬픔. 심리 상담사가 지적했듯이 위예와 나의 삶에는 슬픔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상실감과 어려움에 대한 의식.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면 짐을 제대로 짊어져야 한다.

-p.106

 

이사벨 아옌데는 고난을 얘기하는 대신 그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그 갈피짬마다 스며드는 생의 아름다움은 눈물겹고 사랑스럽다. 아들 니코의 세 명의 아이들, 손주들을 돌보는 일상들은 코믹하고 더없이 정겹다. 기저귀를 가는 것도 목욕을 시키는 것도 컨베이어 벨트에서 물건을 조립하고 포장하듯 기계식으로 할머니, 아빠, 엄마가 덤벼드는 풍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언제나 시어머니를 놀라게 했던 며느리가 양성애자임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게다가 이사벨 아옌데의 의붓아들의 여자친구가 며느리의 연인이 된다. 그래서 이사벨이 서문에서부터 나의 삶에는 드라마가 부족하지 않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유교정서에는 경악스러운 반전이 또 저자식으로 일상에 긍적적으로 녹아 수습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일은 감동적이다. 두 엄마는 아이 셋을 성심껏 건사한다. 그 과정에서 소외된 니코, 이사벨 아옌데의 아들은 또 새로운 삶의 동반자 로리를 만나 더 정돈되고 풍요로운, 조금은 헷갈리는 가정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 칠레의 부족 같은 대가족에게는 외부의 일들이 절대 흔들 수 없는 본질적인 결속력과 안정감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것같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악재들은 드라마틱하지만 그것을 헤쳐 나가는 이사벨 아옌데와 남편 위예, 아들의 모습은 견고한 실재에 닿아있다. 거기엔 그들이 조금 더 일찍 깨달은 비밀이 있었다.

 

나는 위급한 상황이 되면 항해에 필요없는 것들, 그러니까 가진 것의 모든 것을 배 밖으로 던져 버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결국 무거운 짐들을 버리고 계산을 마치고 났을 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사랑뿐이었다.

-p.458

 

 

사랑. 자신이 낳은 딸을 다 키워서 잃게 된 그녀가  죽고싶다고 편지에 쓰자 너의 그 말이 나를 죽고싶게 한다고 응답했던 그 늙은 어머니와의 사랑. 이사벨 아옌데는 칠레에 남은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편지로 쓴다. 오고가는 편지는 어느 날 곱게 포장되어 되돌아 온다.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지나친 솔직함이 남아 말썽이 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애 막바지에 이르면 기억하는 만큼만 살아온 것이 된다"는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사벨 아옌데는 105살이 될 때까지 매일 어머니와 주고받는 편지를 읽을 것이라 했다. 그때 즈음이면 노망의 혼돈 속에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터이고 나는 우리의 편지 덕분에 두 번 사는 게 될 것이라는 말에 눈물이 어렸다. 나도 그러고 싶다. 우리 엄마와도 나의 딸과도. 추억 속에서 나는 다섯 살. 치매가 오기 전 나의 할머니는 여전히 늙고 등이 굽은 꼬부랑 할머니. 기억을 부정하 면 나와 할머니와의 시간들은 모두 허공으로 흩어지는 게 되고 만다. 끊임없이 되돌아가 당신이 부려놓은 생명은 여전히 당신에게 매달리고 말대꾸하고  주름골에 손가락을 넣고 의기양양하게 존귀한 존재가 된다. 기억도 삶이다.

 

 

이 책. 150센티미터가 간신히 되는 작은 체구의 여자. 항상 모든 것을 스스로 지키고 편견, 인습에 당당히 항거했던 하지만 지금 곁에 있는 남편 위예에게는 연약한 아내가 되고 싶고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에 그것을 질문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는 여자. 일흔이 다 되어가는 작가의 진실에 근접하고자 하는 여정의 얘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내 눈의 비늘을 한 겹 벗겨 준 기분이다. 들고 갈 짐이 없다고 장밋빛 전망으로 눈을 어둡게 하는 얘기보다 인생은 지저분하고 무질서하고 빠르고 돌발 상황으로 가득차 있다고 제대로 짐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작가가 마지막에는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온 남편과 달콤한 사랑을 얘기하는 모습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폴 뉴먼을 닮았던 젊은 남편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일보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남편의 존재감 속에서 안온하게 안주하는 그녀의 모습은 삶의 잔혹함, 기만성 앞에서도 살아갈 힘을 나게 한다.

 

고마워요. 이런 글을 써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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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1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오프서점 에세이코너에서 봤어요. 이사벨 아옌데가 소설이 아닌 (왠지 차기작은 조로의 귀환, 뭐 이런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자신의 이야기로 대중앞에 나타난 것이 의외였었어요.

고마워요, 이 책의 리뷰를 써 주어서 ^^

blanca 2011-12-20 09:00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이사벨 아옌데 소설 중에서 추천해 주실 수 있어요? 저는 아직 소설은 못 읽어봐서요. <파울라>가 읽고 싶었는데 절판이라 너무 아쉽더라고요.

... 2011-12-21 18:12   좋아요 0 | URL
이사벨 아옌데의 대표작은 <영혼의 집>이 아닐까요? 저는 영화를 먼저봤는데 제레미 아이언스, 메릴 스트립, 안토니오 반데라스, 위노나 라이너가 총출동하는 완전 호화캐스팅이었어요. 재미없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펑펑 울면서 봤던 기억이 ^^;;

<영혼의 집>과 <운명의 딸??> 그것과 <세피아..어쩌구>가 대표작 이라고 들었어요.

moonnight 2011-12-19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맙습니다. 이 리뷰를 써주셔서요. ^^

얼마전에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제 이름을 똑바로 대면서 `큰일났어요!! 지금 아드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머리를 크게 다쳤어요!!!` 라고 다급하게 외치더군요. 아, 그래요? 하고는 딸깍 끊었어요. 나이로 봐서는 학부형이지만 결혼을 안 했는데 아드님이라니. 사전조사가 덜 되었었나봐요. 흐흐 ^^;;;


blanca 2011-12-20 09:02   좋아요 0 | URL
moonnight님 ㅋㅋㅋ 그런데 저는 어머니가 예전에 쓰러지신 적이 있어서 전화 받자마자 보이스피싱이고 뭐고 정신도 없고 하늘은 까맣고 그랬답니다. 게다가 통화조차 안 되더라고요. 지나고 나면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는데 잠시 상상만으로도 참 힘든 상황이더라고요.

다락방 2011-12-1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맙습니다, 이 책의 리뷰를 써주셔서요. 블랑카님의 이 리뷰가 아니었다면 전 이 책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에요.
보관함에 슬쩍 밀어넣습니다.

blanca 2011-12-20 09: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여자로서 산다는 것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일흔에도 아주 근사하고 행복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어 더 뭉클했어요. 마지막이 특히나 감동적이었답니다.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석에서 한참을 못 일어나는 기분이었어요.

비로그인 2011-12-1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맘에 드는 리뷰에요..꼭 읽어 보겠어요. ^^

blanca 2011-12-20 09: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1-12-19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맙습니다! 훌륭한 리뷰예요! 보관함에 넣고 갑니다.

blanca 2011-12-20 09:06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이사벨 아옌데가 남미 여인인데 우리나라 정서랑 흡사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오히려 영미 작가들 삶보다 더 공감이 갔답니다.

이진 2011-12-1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멋지니 갑자기 책 내용까지도 기대되는 기현상말입니다 ㅠㅠ

blanca 2011-12-20 09:08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고마워요. 그런데 이진이 성함이에요? 너무 근사한 이름이네요.

2011-12-20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1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12-2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맙습니다. `고난을 얘기하는 대신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책을, 저도 읽어보고싶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blanca 2011-12-21 22:50   좋아요 0 | URL
참 어려운 과제지만 결국 삶이란 게 이 방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들에게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답니다. 참 좋았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12-2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사벨 아옌데 대표작으로 <영혼의 집>을 꼽습니다.

blanca 2011-12-26 10:53   좋아요 0 | URL
아, 추천 고맙습니다. 영화도 책도 기회가 된다면 챙겨 봐야 겠군요. ^^

쾌진 2012-01-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리뷰 읽고 나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추천' 눌렀어요. 이 책, 담당 편집자인데요...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아마 비슷한 감동을 경험한 게 아닐까 생각하니 기분이 뭉클해지네요.
종종 들르게 될 것 같아요.^^

blanca 2012-01-26 22:13   좋아요 0 | URL
와! 반갑습니다. 비슷한 감동을 경험한다는 말이 정말 뭉클하게 들려요. 정말 좋은 책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간직하고 또 읽고 읽고 할게요.

쾌진 2012-01-30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선생님께서 쓰신 리뷰 글을 저희 민음사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도록 링크를 걸 어도 될른지요? 홈페이지에 있는 리뷰글 아래 <독자리뷰>에서 바로 링크해서 볼 수 있도록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blanca 2012-01-30 21:31   좋아요 0 | URL
예, 괜찮습니다.^^

쾌진 2012-01-3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합니다!! ㅎㅎ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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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바흐인벤션이었다. 싯누런 겉표지의 악보책을 올려놓고 안 쓰던 왼손을 거의 오른손 만큼 써야 하는 모험은 할 만하지도 다이나믹하지 않았다. 바흐인벤션을 치면서 피아노를 그만두는 일에 대하여 생각했다. 거의 매일 졸랐던 것 같다. 바흐인벤션만 치려하면 내 손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 마구 떼를 쓰며 이제는 그만하라고 발을 구르는 것 같았다. 오 년 간의 피아노 교습은 그렇게 바흐 덕택에 막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이 인간의 신체 그리고 그 신체가 연결된 정신의 불균형을 치유하기 위해 바흐라는 희유의 천재가 만들어낸 장절한 소우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원고를 쓰다가 지치면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더듬어 연습하며, 숨이 멎을 듯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우주에 기분 좋게 몸을 내맡긴다.
p.295 

어깨가 결릴 때 하루키는 피아노 앞에 앉아 바흐의 '2성 인벤션'을 친다. 그게 하루키와 독자를 갈라놓고 그를 유일무이한 작가로 만드는 지점처럼 보인다. 나는 울면서 그 앞에서 피아노를 그만두는 것을 생각했을 때 하루키는 '자 이제 한번 쉬어 볼까.' 하며 바흐의 인벤션을 쳤다는 얘기다. 안 쓰던 왼손의 근육을 오른손만큼 단련시키는 일은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루키는 그 느낌을 즐기고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소설을 제대로 완독해 보지 않고('노르웨이의 숲'도 거의 통독 수준이었다.) 그의 에세이들을 읽고도 충분히 그것에 몰입하고 반응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멈추고 머뭇거리고 돌아선 곳에서 그는 출발한다. 그러니 그의 얘기는 지루하지 않고 단조롭지 않고 뻔하지 않다.  

청춘, 반항 들의 표지자처럼 아이콘화된 그는 이미 육십 대에 접어들었다. 작가로 데뷔한 지 삼십 년이 넘었다. 이 책에는 단행본으로 발표되지 않은 글들, 에세이, 여러 책들의 서문, 해설, 문학상 소상 소감, 질문과 대담 등이 날것으로 퍼득인다. 내성적이고 관계를 두려워하는 하루키와 그가 좋아한다는 굴튀김 한 접시를 놓고 마주앉아 밤을 새워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라고 지우의 딸 결혼식 축사를 보내는 하루키와 함께. 

한창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을 때 그에게 예루살렘상이 수상되어 그 수상식 참석 여부에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하루키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물론 가는 것을 선택했다. 수상식에 참석해서 하루키는 예상과는 달리 한 방 제대로 먹인다. 역시나.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p.91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 하나의 알이라고, 더없이 소중한 하나의 영혼과 그것을 감싸는 깨지기 쉬운 알이라고,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벽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시스템'입니다. 본래 그 시스템은 우리를 보호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저 혼자 작동하여 우리를 죽이고,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살해하게 만듭니다. 냉혹하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p.92 

상을 주는 주체를 가장 효율적으로 비난하는 방법은 수상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게 통상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러지 않았다. 주는 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 사람들의 껍질을 깨고 그 사람들의 속살에 가닿는 말들을 쏘아 올렸다. 그것이 무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루키는 일단 그렇게 했다. 그게 하루키다. 

그의 스콧 피츠제럴드론과 레이먼드 카버 얘기는 당장 불꺼진 서점이라도 달려가 둘의 책을 들고 나오고 싶게 만든다. 레이먼드 카버의 전작품을 번역해 가는 일을 했던 하루키가 카버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스하고 눈물겹다. 잘난 척하지 않는 사람. 뽐내지 않는 소설을 쓰고 뽐내지 않는 시를 쓰고 뽐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고마워요, 레이'라고 덧붙이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위대한' 피츠제럴드에 대한 얘기는 또 어떠한가. 피츠제럴드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청춘기의 아름다운 발로이자 그 숨결이 공중에서 순간적으로 신화로 결정화한 것이라는 하루키의 얘기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하여 자신의 성공을 연기했던 개츠비를 부활시킨다. 저기에 꿈 하나를 놓고 달음질쳐 갔던 우리의 청춘에 대한 복기와 함께. 

키스 헤링(herring;청어)의 그림을 보면 반사적으로 청어 초절임이 당겨 곤혹스럽다는, 자신이 굴튀김이 아니고 소설가라 기쁘다는 하루키의 잡문들은 무언가를 한없이 그립게 만들고 아련하게 만든다. 누군가와 반 세기를 살아도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루키는 함께 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리고 손을 잡아주고 싶게 만든다. 열악하고 치사하고 차가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그럼에도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야 견딜 수 있는 우리들을 그는 불러 모은다.  그가 내세운 반세기가 넘어도 독자들이 피츠제럴드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에게도 유효하다. 그것은 '멸망의 미학'이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구원의 확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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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11-2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다가 좋아서 포스트잇 붙여가며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아직 다 못읽었어요), 블랑카님의 리뷰라니! 전 리뷰를 안써도 좋겠네요. 인용하신 91페이지의 에피소드는 저도 무척 좋았어요. 알의 편에 서겠다는. 그리고 모두가 거기에 가서 그 상을 받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는 거기에 가서 그 상을 받고 소감도 이야기하잖아요.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게 대체 가능하단 말인가,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는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한 하루키도 좋았어요. 이 리뷰를 읽으니 어서 빨리 끝까지 다 읽고 싶어져요.
리뷰를 써줘서 고마워요, 블랑카님. 왜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고마워요.

(235쪽을 읽는데 가슴이 벅차올라요!)

blanca 2011-11-23 23:0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리뷰를 쓰셔야지요. 저와는 또다른 다락방님의 감상을 듣고 싶어요. 그죠!! 저도 수상을 거부하는 대신 가서 그 사람들 앉혀 놓고 자기 소신을 피력하는 모습이 참 하루키답다,고 생각했어요. 당사자들을 앉혀 놓고 불편한 얘기들을 호소력 있게 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하루키인가 싶기도 했고요. 다락방님이 누군가에게 하루키의 그 단편을 필사해 주는 사진 참 근사했어요. 저는 하루키의 소설을 잘 모르지만 저의 친구가 저에게 열변을 토하며 그 책을 안긴 장면, 다락방님이 또다른 분에게 마음을 담아 자신이 반한 것을 전달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요. 그냥 하루키를 생각하면 우리의 청춘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왠지 모르게....

2011-11-23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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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3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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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2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당장 미국으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피츠제럴드와 카버.
당장 깨어지고 싶게 만드는 하루키의 알의 편에 서겠다는 말.

blanca 2011-11-23 23:11   좋아요 0 | URL
쥬드님, 저는 카버를 원문으로 읽어보겠다고 한창 시간 없을 때 새벽마다 아파트 베란다에 차갑게 궁둥이 깔고 한 달을 매달렸었잖아요.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감동 그 자체였어요. 그 사람은 정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난 여기가 아픈데 카버가 말한 건 저긴데 묘하게 공명해요. 정말 기가 막히게.

마녀고양이 2011-11-2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루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사랑해요!
저는 소설보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더욱 그에게 반하게 되더라구요.
넘 좋다, 이 책을 사야겠다고 맘을 굳혔어요! ^^

blanca 2011-11-23 23:12   좋아요 0 | URL
마고님, 저도 그래요! 저는 사실 하루키 소설은 워낙 마니아 들이 주변에 있어서 타의에 의해 두 번 시도해 봤는데 사실 저랑은 좀 안맞더라고요. 그러나 에세이는 아, 정말 아껴 읽고 싶어요.

2011-11-23 1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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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3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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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3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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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3 2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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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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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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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4 0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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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4 2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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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12-0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하루키 소설은 상실의시대가 다에요.
먼북소리의 여운은 길고요.
이 잡문집도 여기저기 호평이군요, 역시.^^ 담아가렵니다.
늘 멈추고 머뭇거리고 돌아선 곳에서 하루키는 시작했다는 문장이 쏙 들어와요, 블랑카님.
조용한 일요일 오후에요.^^

blanca 2011-12-04 21:3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오늘은 초겨울 날씨답잖에 참 푸근했어요. 저도 <상실의 시대>도 거의 대충 읽어서 하루키를 제대로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먼 북소리> 참 좋았어요. 그러고 보니 에세이들이 참 좋아요.

2011-12-06 0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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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6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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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7 0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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